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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InsertAuthorHere]고기의 맛A Taste of Meat

by Mergo 2019. 11. 2.

고기의 맛

 

 

 

눈앞에 들이밀어진 음식을 하나하나 살펴볼 때마다 선셋 시머의 위장이 뒤틀렸다.

 

이쪽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품는 혐오감은 다분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퀘스트리아의 학교 카페테리아의 음식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었다. 굳이 선셋이 어린 급우들에게로 고개를 돌리지 않더라도, 일 년에 열다섯씩은 양호실 급행열차를 타게 만드는 빙산 샐러드 이야기나, '셀레스티아 서프라이즈'라는 음식은 악몽의 밤 축제가 끝나고 나서 뒤에 남은 찌꺼기를 긁어모아 만들었다는 괴담이 횡행했다.

 

그리고 다시, 선셋은 더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고 지냈었다. 셀레스티아 공주의 수제자가 누리는 특권 중에는 이퀘스트리아의 농작물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들로만 골라 만든 도시락을 싸들고 셀레스티아 공주와 주기적으로 소풍을 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캔틀롯 고등학교 학생으로 지내며 온갖 말들로 표현된 지혜를 익히거나, 다중우주의 존재와 그 우주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한 수많은 이론을 공식화하는 동안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선셋이 식판을 집어 줄 뒤로 가서 서려는 순간, 스미스 할머니 앞에 차려져 있던 음식 쟁반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주 목요일이 그러했듯이, 오늘 목요일도...... 사방에 육류 천지였다.

 

선셋은 한숨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왜 또 이렇게 됐지?

 


 

 

그 날은 아주 평범한 하루였고, 점심도 마찬가지로 평범했다. 손을 쓰지 않고 사과를 먹으려 드는 이상한 학생들도 없었고, 뮤지컬 넘버를 불러 다른 학생들을 현혹시키려 드는 신입생도 없었으며 착륙한 UFO가 조용히 이륙한 일도 없었다. 그러므로 선셋 시머와 친구들은 얌전히 점심을 먹으며 체육과 화학 시간 사이 문득 찾아드는 고요를 즐기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

 

늘 그랬듯 선셋은 맨 마지막에 자리잡고 앉았다. 자신이 못되게 굴었던 학생들에게 자기 자리를 양보하느라 몇 번이고 뒤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식판 절반 정도를 해치운 채였다. 그 정신 나간 식욕으로 다른 식판을 비워대며 자신의 우월한 신진대사량을 증거하는 핑키 파이를 위해 반은 먹지 않고 남겨둔 것이다. 래리티와 애플잭은 땅콩버터와 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입안 가득 구겨넣은 채 다람쥐 같은 뺨을 하고 선셋 시머를 고개를 주억거리며 반겨주었다. 플러터샤이는 과일 컵에 담은 깍둑썬 수박을 숟가락으로 떠 먹으며 보다 활기찬 인사를 건넸다. 핑키 파이도 선셋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했지만, 세 번째로 들이킨 소다에 들어 있던 당분이 단맛을 내면서 핑키 파의의 의식을 인간이나 포니의 이해 너머의 공간으로 날려 버린 지 오래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앉은 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일종의 마약 투약에 의한 흥분 상태처럼 보이는 과잉 당 섭취성 과잉흥분 증세를 보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워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레인보우 대쉬 하나가 남는다. 캔틀롯고 최고의 운동 선수 겸, 자기보다 정신 연령이 좀 더 높은 선셋 시머와 맞먹으려 하는 유일한 친구 말이다. 대쉬는 스파게티와 토마토 소스, 미트볼이 담긴 식판 위로 포크를 돌려대고 있었다. 선셋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레인보우 대쉬는 선셋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러더니, 그 시선이 선셋 시머가 막 내려놓은 식판에 향했다......

 

"그래서...... 또 샐러드?"

 

선셋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식판을 내려다보았다. 선셋은 급식대에서 온갖 녹색 채소와 토마토, 양파, 작은 빵 튀김만 담아 식판에 담아 온 것이다. 물론 물 한 잔과 냅킨으로 싼 식기도 빼놓지 않았다. 선셋은 대쉬를 쳐다보더니, 순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음...... 그러네?"

 

대쉬가 눈을 부라렸다. "어제랑 똑같네, 그렇지?"

 

"음...... 그렇지. 샐러드를 많이 먹었었어."

 

"화요일에는 타코에 고기 대신 풀때기만 왕창 넣어 먹었고, 일 주일 전에는 야채 키슈, 샌드위치 사먹으러 나갈 때마다 고기는 빼고 먹었지." 대쉬의 포크가 미트볼을 찍고는, 아주 긴 동작으로 레인보우 대쉬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빠져나온 포크에는 살덩이를 뭉쳐 굴리고 그을린 그 물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솔직히, 샌님 같아."

 

* 키슈Quiche : 계란, 우유에 야채, 고기, 치즈 등을 섞어 만드는 파이. 정황상 고기 빼고 풀때기만 넣은 듯합니다.

 

"저... 레인보우 대쉬, 너도 알잖아. 선셋 시머는 채식주의자야." 플러터샤이가 대답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특유의 속삭이는 듯 작은 목소리로는 들리지가 않기 때문이다.

 

선셋은 한숨지으며 한쪽 손에 턱을 괴고 말했다. "사실이야. 먹는 것에는 까탈스러워. 이퀘스트리아에 살 때부터 채식주의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대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단 거야?"

 

래리티가 대쉬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자 휘둥그레 뜬 두 눈이 보였다. "레인보우 대쉬, 그런 걸 묻는 건 무례한 행위야! 선셋이 무엇을 섭취하든 그건 온전히 선셋 본인의 자유라고."

 

"아주 좋아, 그게 요점이야!" 대쉬가 두 팔꿈치로 식탁을 탁 치며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쥐었다. "그 이퀘스트리아라는 곳에서 선셋은 조랑말이었단 말야. 아마 트와일라잇도 지금쯤 조랑말이 되어 있겠지. 조랑말과 사람은 전혀 다른 음식을 먹어. 그러니까, 저쪽 세상에서 선셋은 건초를 씹고 있었다는 얘기야."

 

"야!" 선셋이 짜증냈다. 딱 한 번이지만 건초를 씹기는 했으니까.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애플잭이 끼어들었다. "선셋이 저쪽 세상에서는 조랑말이었고 지금은 사람이니까 음식 선택의 자유를 박탈해도 된다는 거야? 그럼 다른 학생들은? 너도 알잖아? 선셋 시머 말고도 채식주의자들은 얼마든지 있어. 그 친구들에게도 그런 소리 할래?"

 

레인보우 대쉬가 한숨을 쉬고는 한쪽 손을 내리고 다른 손에 머리의 하중을 옮겨 실으며 말했다. "봐봐. 내가 그냥 헛소리나 하려고 이러는 게 아냐." 나머지는 레인보우 대쉬가 무슨 소리를 하든 맞받아칠 말을 고르고 있었는데, 정작 레인보우 대쉬가 한 말은 꽤나 납득이 가는 소리였다. "사람이 일단 다 자라고 나면 고기나 풀때기 중 어느 하나만 골라서 먹어도 그닥 상관은 없어. 괜찮아. 선셋 시머는 귀리나 사과 같은 것만 먹는 세상에서 왔단 말야. 그러니 한 번도 먹어 본 일이 없고, 한번쯤 맛봐서 나쁠 건 없잖아?"

 

선셋이 눈을 가늘게 뜨며 포크와 나이프를 싸고 있던 냅킨을 풀었다. "여기서 그런 게 저기서는 안 그럴 거란 보장이 있나? 대체 왜 내가 상추 뜯는 게 불만인데?"

 

선셋의 말을 신호로 레인보우 대쉬가 등을 기대고 앉아 팔짱을 끼고는 천장의 움푹 들어간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토르고 피자로 바베큐 피자 주문하러 갔던 거 기억나나 모르겠는데, 정작 우리가 주문한 건 버섯 양파 피자였어. 그것밖에 네가 먹을 게 없어서." 나머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프 버거 갔을 때는 주문도 못 했지. 가게에서 샐러드를 취급 안 하는 것 하나 때문에 말이야."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해수욕장 놀러갔을 때는 어때? 가장 빨리 질러가는 길 근처에 도살장이 있다는 이유로 다섯 시간을 더 뱅뱅 돌아갔잖아."

 

선셋은 끙 소리와 함께 식탁을 한 번 탁 가볍게 쳤다. 두 눈은 레인보우 대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대쉬는 씩 웃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다! 내가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아서 너희가 희생해야 했던 건 이해해. 그래도 난 고기 먹기 싫어. 이해하지? 이 점에서만큼은 공동의 이해가 있는 거겠지?"

 

애플잭과 래리티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플러터샤이도 곧장 고개를 끄덕였는데, 원래는 애플잭과 래리티와 동시에 끄덕일 생각이었는데 수박씨를 먼저 뱉어야 했기 때문에 조금 늦어진 것이다. 핑키 파이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는데, 머지않아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면 레인보우 대쉬 하나만 남는데......

 

"그냥 쫀 거 같은데."

 

레인보우 대쉬는 항상 똑같은 못된 말로 의사를 표시하곤 했다.

 

"쪼... 쫄아?" 선셋은 움찔하며 대답했다. "안 쫄았어! 그냥 먹기 싫은 거......"

 

"그럼 증명해 봐." 레인보우 대쉬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일, 고기 들어간 메뉴를 골라서 들고 와서 말야. 샌드위치나 파스타나,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냥 고기 든 걸로 우리 앞에서 먹어 보이면 돼. 그럼 인정할게. 안 먹으면, 그냥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생각하지 뭐."

 

"세상에, 어쩜 그런 못된 소리를 할 수 있어!" 래리티가 소리쳤다. "선셋 시머가 너한테 증명할 것도 없고, 너도 마찬가지로......"

 

레인보우 대쉬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아니, 이건 나랑 여기 베이컨색 머리를 한 아가씨 사이 문제야. 그럼, 어떡할래?"

 


 

물론,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셋 시머, 너는 항상 포니들 가운데서도 가장 잘 말려드는 녀석이었으니......

 

"그럼, 어떡할래?"

 

선셋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현실이 선셋 시머의 무의식을 현재로 되돌려놓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본인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짜맞추려는 절박한 시도를 하는 동안 몸은 계속 줄을 따라 움직여, 급식대 앞에 가 서 있었다. 스미스 할머니는 애플잭의 할머니인지 증조할머니인지 고조할머니인지 그 너머의 할머니인지 모를 할머니였는데, 카운터 뒤 보호유리 뒤에서 재촉하는 듯 서 있었다. 감히 자기 앞에서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건방진 애송이를 보고 짜증이 난 듯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선셋이 웃어 보였지만, 아무도 거기 낚일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선셋은 그 순간에 더없이 부적합한 캐릭터였다. "아, 죄송해요. 그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셋은 할머니에게 식판을 넘겨주고 씩 웃으며 말했다. "깍지콩 조금이랑요."

 

스미스 할머니는 플라스틱 배식 스푼으로 반들거리는 깍지콩 몇 개를 떠 올렸다. 이게 올라오리라고 진즉에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선셋의 식판에 턱 하고 담았다.

 

"옥수수 조금이랑,"

 

푹, 폭, 탁.

 

"그리고...... 고기...... 조금이요..."

 

푹, 폭...... 응? 스미스 할머니는 그 자리에 얼어 버렸다. "저기......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런데, 학생 방금 고기라고 했는가?"

 

선셋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이목이 벌써부터 느껴졌다. 물론 같잖은 장난질 하지 말라는 힐난의 눈길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캔틀롯 고등학교 학생들은 지난 삼 년 동안 선셋 시머에 관하여 크게 두 가지를 학습하고 있었다. 첫째로, 선셋 시머는 나쁜 사람이다(어쩌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이쪽 분위기가 더 우세하다), 그리고 두 번째. 선셋 시머는 채식주의자다. 그리고 이제 그 선셋이 그들 사이에 끼어 같이 움직이고, 갈 때가 됐는지 뜬금없이 뜨뜻한 음식을 찾고 있다.

 

전 조랑말이었던 선셋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어디 도망갈 쥐구멍이 없을까 식당을 샅샅이 훑고 있었지만...... 레인보우 대쉬가 눈에 들어오자 그만두었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그 녀석은 이미 늘 앉던 자리에 앉아서,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마다 짓던 그 특유의 재수없는 표정으로 씩 웃고 있었다. 선셋은 주먹이 하얗게 되도록 꾹 눌러 쥐었다. 저 놈 뜻대로 해 줄 줄 알고.

 

선셋은 스미스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세를 재빨리 바꾸며 대답했다. "그...네. 고기를 좀 먹어 볼까 해서요."

 

그 순간 온 식당 안에 헉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같잖은 장난질이냐는 의심도 사라졌다. 직사각형 모양 식당 한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던 플래시 센트리와 밴드부 친구들도 헉 소리와 함께 식기를 떨어뜨렸다. 저 멀찍이 창가 자리에 앉은 트릭시도 마찬가지로, 불길한 예감이 들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덜덜 떨었다. 서로 어울려 이야기하던 무리들도 공포에 질렸다. 연극부는 평소보다도 더 진짜 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스미스 할머니와 주방 사람들도, 한때 캔틀롯 고등학교 최악의 양아치였던 선셋이 짐승의 살을 먹겠다고 나서자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 그려, 그럼." 할머니가 겨우 말했다. "그, 그럼 뭘로 드릴까? 스파게티랑 미트볼로 드려, 아니면 소고기 간 걸 드릴까, 아님......"

 

선셋은 몸을 떨면서 첫번째 육류 요리를 가리켜 보였다. 요리책에서 본 풀드 포크라는 음식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저게... 뭐든지 일단 좀 많이 부탁드려요." 레인보우 대쉬 너만은 꼭 물을 먹이고 말겠어.

 

* 풀드 포크Pulled Pork :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구운 돼지고기.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보시면 비슷한 거 나옵니다. 포르투갈인가? 그쪽에선 화덕에 집어넣고 3~4시간 굽는다대요. 일종의 숯가마 삼겹살 같은 느낌인데, 이쪽은 돼지가 한 마리 다 들어갔다 나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얼굴에 순간 서렸던 공포 어린 시선을 지우고 다른 배식 스푼(채식주의자용 음식에는 쓰지 않는 스푼)을 들어 소스로 범벅이 된 그 미스터리한 고기 더미를 하나 가득 떠서 식판 위에 턱하니 올려주었다. 선셋은 순식간에 생겨난 그 고기의 산 아래로 바베큐 소스가 흘러내려 고이다가, 채소 더미에 가 스며드는 모습을 보고 움찔했다. 무슨 고기든지, 이걸로 레인보우 대쉬의 그 애 같은 도발을 엿먹여 줄 생각이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여기 있다." 할머니가 선셋에게 식판을 돌려주었다. 선셋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쟁반에 놓고 아주 조용한 걸음걸이로 식탁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학생들은 선셋이 지나쳐 걸어가고 나서야 시선을 떼고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선셋에게는 그닥 위로가 되지 않았다. 뭐, 적어도 악마가 되었을 때보다는 덜 화젯거리가 되겠지만.

 

레인보우 대쉬는 선셋 시머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앉을 자리를 비워주었다. 선셋 시머는 아무 말도 없다가, 식기를 싼 냅킨을 푸는 대신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다른 친구들은 아무 말도 없었는데, 각자의 식사를 즐기며 닥쳐오는 공포를 피하는 대신 그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셋 시머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 분 정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때 레인보우 대쉬가 침묵을 깨뜨렸다. 그와 동시에, 그 얼굴 위로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어쩔래? 먹어, 안 먹어?"

 

애플잭이 레인보우를 째려보았고,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것만으로 파란 친구의 입을 닫고 밥을 먹이는 데는 충분했다. 선셋은 고맙다고 말한 다음, 눈 앞에 놓인 식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식판 위로, 선셋의 입 안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던 고기더미가 쌓여 있었다. "흠...... 이거 대체 뭘까?"

 

래리티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래리티의 식판에도 햄 샌드위치가 있긴 했다. 고기는 고기였지만, 다른 고기였다. "나도 잘 모르겠는걸. 전에 이런 건 한 번도 본 적 없어. 메뉴에도 없었고." 래리티는 애플잭을 향해 물었다. "조모님께서 주방 담당이셨지? 이걸 두고 뭐라고 하신 적 있어?"

 

애플잭도 잘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글쎄. 할머니 말로는 스테이크를 개시해 볼까 한다고 하시긴 했는데, 지난번에 학교 박살난 것 때문에 보수한다고 예산을 깎여서." 애플잭은 선셋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셋은 자리에 더 늘어져 있었는데,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그래서 신메뉴 재료로 좀 저렴한 고기를 썼다는 모양이야."

 

"그러면 내가 먹지는 않았어도 본 적은 있는 고기가 아니라, 그 대체품인 먹지도 않았고 본 적도 없는 음식을 먹게 생겼다는 뜻이네." 선셋이 한숨지었다. "대체 뭔지 알고 싶었는데."

 

"야, 걱정할 게 뭐 있냐." 레인보우 대쉬가 끼어들었다. "학교 밖에서 사먹는 것에 비하면 한없이 거지같은 게 학교 식당이잖아? 저번주에 핑키가 케이크 때문에 날뛴 거 기억하지?"

 

"아무렴 그랬지!" 핑키가 큰 소리로 말했다. "조그만 케이크라니, 그건 디저트에 대한 범죄행위나 다름없어! 학교가 점심이라고 내미는 음식이란 것들이 전부 감방감이긴 하지만! 자라나는 새싹, 미래의 주역들이 필수 영양소인 충분한 달걀과 밀가루와 우유를 섭취하지 못하고 자라는데 어떻게 세상이 더 발전하......" 핑키는 학교 축제 때 쓰고 남은 풍선 하나가 풀려 날아가는 걸 보더니 그쪽으로 주의가 쏠려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어쨌든." 레인보우 대쉬가 말했다. "그냥 한 번 눈 딱 감고 먹을 정도는 된다는 거지. 진짜 못 먹겠다 쳐도 적어도 먹어 보려고는 한 거잖아."

 

"그래...... 그렇지." 선셋이 착 가라앉은 투로 대답하며 손을 움직였다.

 

그녀는 고기를 포크로 찍었다. 조금 단단했지만, 포크가 파고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포크를 들어올리자 육즙과 소스가 뒤엉켜 뚝뚝 떨어지며 길게 늘어졌다. 고깃덩이는 엄연한 조리 과정을 모두 거친 듯했다. 세상 모든 요리책을 뒤져 봤을 때 보였던 그 새빨간 색깔은 보이지 않았다. 냄새를 맡았을 때는, 맛탱이가 갔다거나 시큼한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소스를 살짝 핥아 보자 조금은 짭조름했어도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이 났다.

 

이제 마지막 한 단계가 남았다.

 

선셋은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마른침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리다가, 손끝을 조금 떨더니 고기 조금을 입 안에 넣고, 입술로 감싼 뒤 포크에서 뽑아냈다. 첫 번째 조각을 잠시 씹어 보며 입안에서 몇 차례 굴리고 나서도, 이게 무슨 맛인지 설명하기는 애매했다. 사실, 셀레스티아 공주 밑에서 공부할 때도 그 맛을 정확히 짚어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분명히 어떤 맛이 났는데, 지금껏 먹었던 그 어떤 음식과도 달랐다. 이퀘스트리아 최고의 식재료와도 닮은 구석이 하나 없었다.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마음에 들었다.

 

정말 맛있다.

 

선셋은 씩 웃으며 고기를 씹어 삼켰다. "이거 굉장한데! 식감도 그렇고 소스도 그렇고, 진짜 맛있네!"

 

레인보우 대쉬가 빙긋 웃었다. "그래, 그렇다니까. 끝내줘. 학교에서 주는 고기가 이 정도야. 그러니 다음번에 진짜배기 고기를 먹을 땐 어떻겠어? 햄버거, 프라이드 치킨, 물고기도 있고. 그 겨자랑 사워크림이랑 해서 나오는 게 뭐더라......"

 

대쉬가 이것저것 늘어놓는 사이, 다른 친구들은 일종의 좌절감과 짜증, 그리고 일말의 기쁨이 뒤섞인 눈빛으로 계속 먹고 있는 선셋을 쳐다보았다. 대쉬가 처음 도발해 왔을 때는 엄청나게 짜증이 나긴 했지만, 고기가 맛있다는 말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감할 수 있었다. 이거면 애들과도 더 잘 어울릴 수 있을 거야. 어쩌면 고기 먹는 게 그리 나쁜 건 아닐지도...

 

"학생, 좀 어떻수?"

 

전원의 이목이 스미스 할머니에게 쏠렸다. 놀라울 정도로 나이든 주방장은 그 어떤 낌새도 없이 자리에 끼어들었다. 레인보우 대쉬는 마카로니와 치즈를 왕창 넣어 먹는 핫도그의 위대함을 한창 설파하고 있었다. "오, 할머니!" 애플잭이 손녀와 조모만 아는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오늘도 점심이 끝내주대요! 선셋 이 친구도 새 메뉴가 마음에 드나 봐요!"

 

"이야, 그거 잘됐구나!" 할머니는 마침 마지막 조각을 해치우고 있던 선셋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학생이 처음에 고기를 달라며 저걸 달라고 했을 땐 나를 물먹이려고 그러나 싶었다오. 내 지금까지 학생이 고기를 시킨 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니 말이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 좋은 걸 안 먹었더라고요." 선셋이 고기를 싹 비운 식판을 내려놓고 물잔을 들며 물었다. "그런데, 이거 무슨 고기에요? 돼지? 소?"

 

선셋이 물 한 모금을 마셨고,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오, 그런 게 아니올시다. 평범한 재료를 구할 수 없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기로 작정했지. 말고기올시다!"

 

스미스 할머니의 말을 선셋 시머의 뇌가 받아서 처리하고, 입에 물고 있던 물을 뿜어내며 컵을 떨어뜨리는 데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선셋은 혈관을 타고 올라오는 열을 견디며 식판의 텅 비어 버린 자리를 쳐다보았다. 두 뺨이 녹색으로 질리더니, 시야 역시 가장자리에서부터 흐려지기 시작하며 주변 모든 것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이것들은 선셋의 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하면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 돌멩이 하나를 던진 것만도 못했다. 소화 기관 전체가 방금 들은 말을 부정하고 있었다. 처음 맛본 고기의 낯선 즐거움은 이제 공포와 구역질로 바뀌어 있었다.

 

기제류 말목 말과에 속하는 동물의 고기라는 말에 담긴 무게는 다른 친구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그게 말고기였다고요?!" 플러터샤이가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예산에 맞추려거든 그것밖에 쓸 게 없었거든." 할머니가 대답했다. "선셋 시머 학생에게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묻지도 않고 빨리 달라길래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으려고 서두는갑다 했지 뭐냐."

 

애플잭이 펄쩍 뛰었다. 그 언제보다도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매, 말고기면 말고기라고 말을 하고 주셔야죠! 세상에, 앞으로는 말고기 쓰지 마세요!"

 

"글쎄다, 음식은 음식인데, 안 그러냐?"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리실로 돌아갔다. "하여튼 요즘 것들이란. 나 어릴 때만 하더라도 말고기 스테이크 해 달라고 얼마나 졸랐다고......"

 

"왜 하필...... 왜 하필 골라도 그런 걸......?" 플러터샤이는 겨우 이 말만 남기고 울면서 식당을 뛰쳐나갔다. 플러터샤이가 느낀 한없는 절망은 핑키 파이의 뛰어난 감정 파악 능력을 자극했고, 핑키는 곧장 겁에 질린 친구를 보듬어 주러 따라 뛰어나갔다. 애플잭과 래리티도 급히 자리를 떠났다. 따뜻한 우정이 만들어낸 위대한 성과로, 플러터샤이의 우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남은 것은 레인보우 대쉬였는데, 한창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던 선셋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 그게, 이런 일을 계획한 건 아니었거든. 그냥 돼지나 뭐 그런 동물의 고기인 줄만 알았지. 그래도 일단 먹어 봤고, 좋아했으니, 그게...... 된 거지?"

 

선셋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대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누가 보면 몸을 돌려 앉았다고 오해할 정도로 고개가 돌아가 있었다. 목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머릿속이 혼란의 도가니이기는 했지만, 이 참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레인보우 대쉬만 아니었다면, 선셋 시머가......

 

동족 포식자가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셋 시머의 위장이 몇 차례 경련한 덕분에, 선셋 시머는 점심 식사에 대한 본인의 감상평을 레인보우 대쉬의 옷가지 위로 쏟아낼 수 있었다.

 


 

레인보우 대쉬는 한없는 공포를 느끼며 양호실로 들어섰다. 대쉬는 체육복을 입고 있었는데, 다른 옷은 학교에서 입고 다니기에는 좀 지저분하고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양호 교사 레드하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양호실 한쪽에 놓아둔 침대를 가리켜 보였다. 선셋 시머가 누운 침대였다. 옆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양동이가 놓여 있었는데, 지금 당장은 비어 있었지만 거기서 풍기는 신선한 향취는 그 양동이의 용도를 짐작케 하기 충분했다. 플라스틱 의자도 하나 있었는데, 흡사 유치원 교실에서나 볼 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의자는 쓰러진 친구와 손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놓여 있었다.

 

"저기 선생님...... 좀 어때요?" 대쉬가 물었다.

 

"맥박은 정상. 열도 내리고 있고." 레드하트는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구토 방지약을 먹긴 했지만, 지금은 더 쉬어야 할 것 같아."

 

"호, 혹시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요?"

 

레드하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 있을 테니 필요하면 불러. 그래도 별 기대는 하지 마. 부작용 때문에 졸려서 의식이 영 가물가물할 테니까."

 

레인보우 대쉬는 레드하트가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나서야 선셋에게 다가갔다. 대쉬는 플라스틱 의자의 금속 다리가 바닥을 긁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듯 대충 슥 당겨 놓고 가능한 가까이 붙어 앉았다. "선셋 시머."

 

앓는 소리가 대답보다 먼저 나왔다. "저리 가."

 

"그게...... 다른 사람들이 식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걱정해서. 그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걔들은 모르잖아. 그냥 고기가 몸에 안 맞아서 아픈 게 아니냐고만 알더라고. 다들 그러더라."

 

"가라니까."

 

"야, 솔직히 넌 더했어!" 레인보우 대쉬가 의자에 기대 앉으며 오른쪽 팔을 휘둘러 보였다. "열세 살 때 생일파티 이후로 그렇게 세게 나동그라진 건 그 때가 처음이다 야. 아, 그게 왜 그렇게 됐냐면 내가 누구 가슴을 좀 세게 쳤더니 걔가......"

 

"넌 이 상항이 웃겨?" 선셋 시머가 으르렁거렸다. "나는 내 동족을 먹었는데, 너는 거기 기대 앉아서는 농담따먹기나 하자고 들어?"

 

"동족을 먹어......?" 대쉬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앉으며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말했다. "넌 조랑말이지 말이 아니잖아. 플러터샤이한테 물어 봐, 조랑말과 말이 어떻게 다른지 백 가지는 얘기해 줄걸. 네가 말이었다 쳐도, 넌 다른 세상에서 왔잖아. 우리 동네 말들은 생각도 못 하고 말도 못 해."

 

선셋이 대쉬를 등지고 누운 몸을 굴려 대쉬와 삼 인치 정도나 되는 거리를 두고 맞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넌 이해 못 해. 나는 조랑말이든 젖소든 양이든 말이든 전부 말하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다 왔단 말야. 심지어 우제류의 시민권을 보장하라는 시민단체에도 있었어. 얼룩말 외교관하고 점심 같이 했었고. 돼지들은 말은 못 해도 금본위제 화폐시스템에 비해 중앙은행이 화폐발행권을 갖는 통화시스템이 우수한 이유가 무엇인지 논쟁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이 있었어. 네가 입 안에 고기를 잔뜩 구겨넣고 씹어댈 때마다, 내 고향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어. 저렇게 훌륭한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대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네가 날 싫어하게 될까 무서워서 그랬지." 선셋은 다시 돌아누우며 양동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내가 무슨 말 한 마디라도 잘못하면, 너희가 날 찌꺼기 치우듯 내칠까 봐 무서웠어. 나는 친구 없이 지냈었는데, 그건 내가 친구 따윈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그랬어. 하지만 너희를 잃어버리는 건 견딜 수가 없어."

 

시큼한 위산 냄새와 함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이쪽 세상과 내 고향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 이퀘스트리아의 닭도 사실 여기 닭들과 그리 다를 건 없어. 그래도...... 즐긴 게 문제야. 그걸 먹는 걸 즐긴 게 문제라고. 내 동족을 뜯어먹으며 즐거워했어. 나는......" 선셋이 몸을 떨며 기침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 이게 앞뒤 안 맞는 소리라는 것도 알아. 그래도...... 이해하진 못할 거야."

 

"네 말이 맞아."

 

선셋은 레인보우 대쉬를 향해 다시 돌아누웠다. 두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레인보우 대쉬는 일종의 '공감 능력'이라는 게 본인의 후두부를 할퀴고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조랑말로 사는 게 어떤 건지 난 몰라. 또, 채식주의자 친구를 둬 본 적도 없어. 플러터샤이도 채소버거나 과일을 선호하긴 하지만, 그 플러터샤이도 페퍼로니나 해산물 조금은 먹으니까. 그래서 같이 지내는 게 좀 어려웠어. 그냥... 그냥 너도 바꿔놓을 수 있으면 좀 편하겠지 싶어서 그랬어."

 

대쉬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거의 입술이 무릎에 닿을 것만 같았다. "왜 내가 그 때 그랬어야 했나 생각하고 있어. 네가 고기를 좋아하길래 나도 좋았지. 근데 그게... 그거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네가 먹은 그것들을 전부 쏟아놓았을 때, 초죽음이 된 널 끌고 식당을 나왔을 때...... 몇 가지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선셋이 웃으며 대답했다. "플러터샤이가 째려봤다는 거구나."

 

레인보우가 몸을 떨었다. "솔직히, 걔가 째려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추악한 짓을 했구나 싶고 왠지 시간도 더 느리게 가는 것 같단 말야. 옷 갈아입힌다고 애플잭이 옷 찢을 때는 더했어. 내가 뭐라는 거람... 쓰레기 같은 짓 해서 미안해. 네가 동물을 먹기 싫어하는 데 잘못된 건 없어. 몇 가지 바꿔야 하는 건 있겠지만...... 그래도 친구를 잃느니 햄버거 따위 안 먹고 말지." 대쉬가 고개를 들며 선셋을 쳐다보았다. "그것도, 네가 나를 버리지 않을 때 일이지만."

 

선셋은 아무 말도 없었다. 레인보우 대쉬는 한숨지으며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레인보우 대쉬는 그 자리에 얼어 움직이지 못했고, 그 사이 조랑말 아가씨는 돌아누워 레인보우 대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입가에 구토 얼룩이 묻어 있지만 않았으면, 다분히 웃는 얼굴이었을 것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 심히 유감이야. 그리고, 나는 아직도 아주, 아주 많이 화가 났어. 그래도 찾아와서 하는 얘길 들어 보니...... 뭐, 내가 고기를 보면 드는 생각을 미리 얘기하지 않은 것도 잘못한 거고 하니까."

 

대쉬가 씩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래. 그냥 네가 조랑말이었을 때 습관을 바꾸기 싫다고만 하고 퉁치지만 않았어도 그런 뻘짓거리 하기 전에, 어... 조금은 더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둘은 잠시 깔깔 웃었다. 선셋의 웃음은 배가 당길 정도로 웃는 바람에 아픔이 조금 섞여 있었다. "그럼... 퉁?"

 

선셋이 피식 웃었다. "퉁은 무슨. 내 신성한 점심을 조져 놨으니 저녁 사면 몰라. 피자?"

 

레인보우 대쉬는 손으로 플라스틱 의자의 등받이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네. 애들 불러?"

 

"당연하지." 선셋 시머의 웃음은 흡사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네가 사는 거야. 다음 주까지 계속."

 

레인보우가 입을 떡 벌렸다. "뭐, 뭣?"

 

"거기 더해 말과 조랑말의 차이를 상세히 기술한 리포트를 제출하도록 해. 참고문헌에 플러터샤이 이름 쓰지 마."

 

"야, 그래도..." 레인보우 대쉬는 한숨을 쉬고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러지 뭐. 한다. 우정과 다른 뭐시깽이의 이름으로."

 

"좋아." 선셋이 말했다. "아, 혹시 실례가 안 되면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 동족을 먹는 게...... 어라..." 레인보우의 말은 선셋 시머에게 투약된 약이 선셋을 재우면서 새어나온 부드러운 숨소리에 중단되었다. 레인보우 대쉬는 잠든 친구를 보고 씩 웃은 다음 문을 열고 나갔다. 속으로는 돼지 저금통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그 때 선셋 시머는 침대에 누워 악몽에 빠져들기 전 마지막 의식으로 한 가지 생각을 끌어 잡고 있었다.

 

대쉬 저놈 저거 내가 장난인 줄 아는 모양인데...... 며칠은 봐준다. 가마솥에 저놈을 넣고 산 채로 삶는 악몽만 끝나 봐라...

 

 

 

 

덧붙이기

 

* 다른지 안 다른지를 알고 싶다면 학명을 보면 쉽습니다. 말은 Equus Ferus Caballus, 조랑말도 Equus Ferus Caballus. 그렇습니다. Horse와 Pony의 차이는 Pony는 Small horse라는 것뿐입니다. (출처 영문 위키백과) 대쉬는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 금본위제 어쩌고 하는 부분 덧붙임. 중앙은행이 뭐시기 한다는 부분의 원문은 Paper Money입니다. 사실 금본위제도 옛날에는 미국 달러와 일정량의 금을 교환(금태환)하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엄연한 Paper Money를 쓰는데 금본위제나 다를 바가 없지요. 그런고로 텍스트가 길어지고 복잡해지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었읍니다. 

 

애니웨이.

 

인터넷 팬픽션에 진지 복용하고 달려들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