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Flashgen] 바람과 희망, 그리고 방랑

Session 00 - Verdant Vines - April 26th

Mergo 2019. 10. 23. 13:10

세션 00 녹취록 : 수석 수사관 버던트 바인스

일자 : 4월 26일

시각 : 오후 8:48

 

 

녹음기를 가방에 넣어두고 꺼내지 않은 바람에 초반 몇 분의 기록은 정확하지 않으나, 중요한 내용은 아님.

 

도착 예정 시각보다 이른 시간에 현장에 도착해서, 곧장 바인스 수사관의 천막으로 갔다. 천막에 들어서니 책상 옆으로 세 명이 모여 있었는데, 수사에 관하여 몇 가지 논의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버던트 바인스(VV) : 케이지, 식당과 야영용 천막 한 바퀴 돌면서 경계작전명령서 좀 붙여 줄래요? 저번 토요일 같은 개판은 더는 못 봐 주겠어요. 일이 제대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짐 싸서 여길 뜰...... 블루 스카이 선생님? 의료진은 내일이나 되어야 올 줄 알았는데요.

 

블루 스카이(BS) : 조금 일찍 기차를 타도 그리 문제될 건 없겠더군요. 의료팀이 도착하고 나면 상담을 시작해야 하니까, 조금 일찍 와서 개인적으로 몇 마디 나눠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VV : 그렇군요. 랜턴, 펜던트, 케이지. 이 얘긴 내일 8시 반에 마저 하도록 하지요. 돌아가 쉬세요.

 

셋은 자리를 떠났다. 그 중에서도 유독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전해들은 바에 따라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랜턴일 것이다. 바인스 수사관은 셋이 모두 자리를 비켜주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나는 녹음기를 꺼내 올려놓았다.

 

VV : 개인적으로 말씀 나누고 싶으셔서 일찍 오셨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BS : 죄송합니다. 후세를 위해서 기록을 남겨야 해서요.

 

바인스 수사관은 당혹스러워하는 눈길을 던졌다.

 

VV : 좋아요. 그럼 정확히 어떤 주제로 말씀 나누시려고 온 건가요? 클로버 부장님이 보내준 편지를 보니, 어떤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지는 대강 짐작이 가긴 하지만.

 

BS : 그냥......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 것뿐입니다. 의료진이 심리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법한 것들 말이죠.

 

VV : 정확히 어떤 주제를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군요. 저희가 파견된 이유는 전달받으셨나요?

 

BS : 모호하게나마 듣기는 했습니다. 수사관님을 비롯한 다른 수사관들과 근위대원들이 여기 파견된 이유를 납득 가능한 최소한의 정보만 받았지요. 문건을 받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접근 권한이 없거든요.

 

바인스 수사관은 내가 사건에 관하여 명백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듣자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캔틀롯에서 출발하기 전에 들은 얘기라는 것은 보안 문제로 구멍이 엄청나게 뚫린 것들이었다. 바인스 수사관은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서류 몇 장을 집어 무언가 몇 글자 끄적거리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쳐 보였다.

 

VV : 선생님 개인이나, 의료팀 전원이 볼 수 있게 사본을 만들어 드리려면 서류 작업을 좀 해야 할 거에요. 그래도 대충 요약해 놓은 쪼가리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묵으실 텐트는 이미 쳐 두었고요. 왼쪽으로 세 개 가셔서...

 

BS : 바인스 수사관님. 기분은 좀 괜찮으십니까?

 

VV : 네, 지금은요. 서류 작업이 생각보다 늦어져서 또 밤늦게까지 자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안 좋아질 수도 있지만요. 아무튼, 텐트는 왼쪽으로 가셔서 세 개를 지나간 다음, 오른쪽으로 꺾어서 왼쪽에서 다섯 번째 텐트에요. 거기서 두 개까지는 의료팀이 묵으시면 됩니다. 수사관 하나를 배치...

 

BS : 혹시 수사관들이나 근위대원들이 보고한 것 같은 이상한 꿈을 꾸진 않으셨고요?

 

VV : 그런 일 없습니다. 랜턴이란 수사관이 텐트에서 같이 묵을 겁니다. 스케줄이나, 요청하신 서류는 그 친구에게서 받으시면 됩니다. 내일 정오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BS : 평소 뒤숭숭한 꿈이나 악몽 같은 걸 꾸신 적은 있나요? 잠을 못 주무신다거나?

 

VV : 선생님!

 

바인스 수사관이 나를 노려보는 폼이, 분명히 아주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수사관은 화를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VV : 이 얘기는 내일 마저 하시는 걸로 하시면 안 될까요?

 

BS : 그렇게 하시죠, 미안합니다.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으신... 아, 그건 그렇고. 그 랜턴이란 사람 말인데요. 그 사람만 다른 수사관들과 업무 스케줄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VV : 네. 일이 좀... 있고 나서는 밤낮이 완전히 뒤바뀌어서요. 그래도 그게 도움이 되긴 하더군요.

 

BS : 정오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아침에 랜턴 씨가 잠자기 전에 상담하는 건 혹시 안 될까요?

 

바인스 수사관은 다시 서류 몇 장을 집어들었다. 새로운 양식이 하나 들어 있었는데, 수사관은 신속하게 서류를 채우고 내게 건네주었다.

 

VV : 그 친구만 동의하면 상관없습니다. 안 될 이유가 없지요. 랜턴을 보시면 이 서류를 건네주시면 됩니다.

 

BS :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바인스 수사관.

 

나는 천막을 나서기 전 잠시 멈추어 녹음기를 껐다. 바인스 수사관은 본인이 평소 악몽은 물론 꿈조차 거의 꾸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