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go 2020. 11. 1. 22:35

. 도와 줘요! 누구, 누구 없어요.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 주세요!.

 

.오랜 세월이 흘렀음은 알고 있었으나, 괴로움을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전까지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본디 그쪽 방향이 아닌 다른 망자를 향하여 노를 저어 가고 있었는데, 그 소리에 놀라 배를 멈추고 가만히 서서 창백한 뼈무더기만 가득한 모래톱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비탄에 찌든 망자들이 빽빽하게 모여든 사이로, 여기 좀 보라는 듯 어색한 몸짓으로 바둥거리는 한 여자가 보였다.

 

.그 여자로 말하자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유독, 특히, 가장 겁에 질려 있었는데,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상하좌우로 돌려 두리번거릴 때마다 참혹하기 짝이 없는 강변의 모습을 더더욱 믿지 못하겠다는 듯 표정이 굳어져 갔다.

 

.저기요! 친구 좀 찾고 싶은데요! 어머니랑 아버지, 언니 동생도! 설마 이런 곳일 줄은 몰랐죠!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같은데! 누구라도 좀 도와 줘요! 아니지, 이건 꿈일 거야. 아주, 아주아주 나쁜 꿈!.

 

.나는 곧장 내게 다가오던 망자 하나를 옆으로 밀쳐냈다.

 

.강가에 모여든 망자들의 아가리에서 비탄에 찌든 비통의 노래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내가 저들에 하등 관심이 없음을 눈치채고는 내 배를 향하여 무리지어 미친 듯 달려들었다.

 

.상관없었다.

 

.그 여자의 모습을 보고, 그 여자의 소리를 들었으니.

 

.노를 저어 배를 강변에 가까이 붙이고, 대충 소리쳐서 들릴 만한 거리에서 큰 소리로 호령했다.

 

.너. 배에 올라라. 당장.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한 쌍 새파란 눈이 아픔과 혼란으로 가득 찬 두 개의 샘을 보는 듯하였다.

 

.가족이랑 친구들 찾아야 해요! 분명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배에 오르거라. 두 번 묻지 않겠다.

 

.여자는 몸을 떨면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여자를 강물에 처넣어 빠뜨려 죽이겠다며 길길이 날뛰는 망령 떼 한가운데서 분홍 갈기가 흔들렸다.

 

.어쩔 수 없다 싶어 한숨을 내쉬며 가슴에 발굽을 댔다가, 그 발굽을 두건 아래로 집어넣어 보였다.

 

.괜찮을 거다. 내 약속하지. 이제 이리 오너라.

 

.여자는 내 몸짓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몸짓에 진정이 되었는지, 입술을 달달 떨면서도 강변으로 다가왔다.

 

.몇몇이 미쳐 날뛰며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사나운 기세로 달려들기에, 노를 휘둘러 두 배는 더 아프게 두들겨 날리고 나서 여자의 발굽을 잡아 배 위로 끌어당겼다.

 

.여자는 얼이 빠져 배 한가운데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시간 낭비할 것도 없이, 모래톱을 노로 밀어 배를 검은 물 위로 띄워 보냈다.

 

.끔찍한 반향이 뒤따르던 자리에, 여자의 나직한 목소리가 가만히 자리잡았다.

 

.내 평생을 낭비하며 살았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강의 흐름을 탔으니, 노를 차분히 움직여도 목적지까지 가는 데 무리는 없었다.

 

.그건 무슨 말이냐?.

 

.결국 이렇게 되고 말 줄 알았으면, 광대처럼 굴며 다른 사람들 웃기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었을 거란 얘기지요.

 

.그러면 뭐가 달라지느냐. 네 벗들은 너와 어울리기를 좋아했을 것 같다만. 네 가족들도 그렇고.

 

.여자가 조금 전보다 더 독기 서린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여자의 몸에서 빠져나온 흐릿한 빛과 색이 뒤섞여 안개를 이루고 등잔에 부딪쳤다.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잖습니까? 내 벗들은 여기 와 있지도 않아요!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나 고민하던 시간을 다른 데 썼으면 세상에 더 이로운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요. 우리 친구들 모두 마땅히 그래야 했단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

 

.플러터샤이가... 세상을 떠난 뒤 세상 모든 게 바뀌었지요. 친구들이 웃는 게 좋아서 놀이도 하고 농담하기도 계속했지만, 어딘가 달랐어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슬픔으로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이전처럼 벗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슬픔은 혈연보다도 진하고 질긴 것을 따르는 법이다. 만물에 각자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한, 네 이번 생이든 다음 생에서든 슬픔은 모든 존재에 처음부터 예정된 결과일 수밖에 없느니.

 

.그렇다면 거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애초에 웃음이 존재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닌가요? 목숨이란 게... 생겨날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닙니까? 결국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겁니다. 내 동아리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나는 다만 바보같이 폴짝거리기나 할 줄 아는 멍청한 광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네 평생 저들에게 준 선물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지 말아라. 너는 네가 하고자 했던 바를 훌륭히 해냈다.

 

. 여자가 나를 마주보았다. 푸른 한 쌍 눈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하? 제가 무슨 선물을 줬다는 거죠?.

 

.창조의 선물이다. 만물의 끝에는 망각이 기다리고 있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고, 최후의 순간까지 그러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기회와 미래를 꿈꾸고 상상할 기회, 타인의 열망을 인도할 기회는 오직 산 자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지. 너는 살아서 이 모든 것들을 몸소 보여 주었던 것 같구나. 그것으로 모든 선을 향한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이 정신이란 우리가 지나온 어둠과 우리 앞에 놓인 어둠을 가지고도 함부로 꺼뜨릴 수 없는 빛과 같다. 네가 살아온 시간은 역사 전체에서 아주 작은 티끌에 불과할지 모르나, 그 시간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퍼뜨리고 다닌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 영원히 남을 것이며, 너와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활력과 기쁨을 가져다 준 시간으로 그들이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기억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저들이 슬퍼할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슬픈 한편으로 행복하기도 할 것이다. 행복은 오직 산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지. 오직 산 것들만 앓는 질병이며 대체 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멍청한 개념이나, 그 스스로 영속하기도 하지. 너는 행복을 주변에 나눠 줄 기회가 있음을 알고 그 기회를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니 기 죽어 있지 마라. 가장 깊은 슬픔의 진창에서조차 네 벗들과 가족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 또한 행복이니.

 

.은색으로 희미해져 가던 여자의 모습이 다시 본래의 색을 되찾아 갔다.

 

.뺨을 타고 눈물이 뒹굴어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 얼굴에는 희망 어린 미소가 떠 있었다.

 

.사자의 강 너머 어디에선가 환청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억겁의 세월 동안 오직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내리깔려 있던 심연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처음으로 웃음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히히히히...... 그러고 보니 진짜 웃긴 거 있는데, 혹시 알아요?.

 

.모른다. 무엇이냐?.

 

. 쿡, 하하하하...... 체인질링 침략에 맞서 싸우고, 드라곤에쿠스와 드잡이질을 벌이고, 에버프리 숲의 온갖 흉물들과 투닥거리면서 살았는데, 아니 글쎄, 유통기한 지난 누들 수프 한 캔 잘못 까먹고 죽어 버렸지 뭐에요! 하하하하!.

 

.흠......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하나.

 

.이 얼마나 달콤한 아이러니인가, 라고 말씀하시려던 거죠?! 하하하하! 잇몸이가 심폐소생술한다고 바둥거릴 거 생각하니까 우스워 죽겠지 뭐에요! 부엌 바닥에 나동그라진 포니 위로 다 큰 악어 한 마리가 올라타서 인공호흡한답시고 입술 박치기 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하하하하! 야 그걸 내가 못 보다니 아깝기도 하지!.

 

.배가 한 번 삐걱했다. 우리는 섬에 도착했다.

 

.웃음소리가 멈추었지만, 여자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남아 있었다. 오직 시커먼 어둠만이 넘실대는 곳 한가운데 홀로 흐릿하게나마 빛나는 봉화처럼, 찬란한 웃음이었다.

 

.가거라.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쉴 때가 되었다. 겁먹을 것 없다. 그냥 잠드는 것 뿐이니까.

 

.오호, 그거 재밌겠는데요.

 

.여자가 순진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보고 말했다.

 

.무섭지 않아요. 정말요. 이제 무섭지 않습니다.

 

.네 벗들과 가족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내 약속하지.

 

.그래요.

 

.그녀는 몸을 돌려 섬 중앙으로 향하는 걸음을 내디뎠다. 배에서 내리는 걸음은 한없이 차분했다.

 

.여자는 통통 튀는 걸음으로 샘을 향해 걸었고, 죽은 듯 고요한 대기를 콧노래로 약동시켰다.

 

. 내가 어린 망아지였을 때 해가 지고 있었지-이. 어둠과 그림자 때문에 늘 울상이었지-이.*1

 

.입가에서 최후의 숨결이 빠져나와 입김으로 엉겼고, 그 위로 노랫말이 하나하나 떠다니며 별처럼 반짝이는 잔불로 일렁거렸다.

 

. 끔찍한 걸 본 나는 베개 밑에 숨었지. 근데 할머니 파이가 그럼 안된대 절대 숨지 말랬지-이.

 

.여자는 그대로 몸을 기울여 검은 못에 몸을 담갔고, 분홍색 돌처럼 가만히 가라앉았다.

 

.그 땐 어깰 활짝 펴고 서...... .

 

.노래가 남긴 빛기둥을 남겨둔 채, 그녀는 사라졌다. 여자가 사라지고 얼마 있지 않아 빛기둥도 퇴색하여 사라졌다.

 

.나는 침묵의 세레나데와 함께 배를 돌려 떠나갔다.

 

 

미주

 

*1 이하 핑키 파이의 말은 모두 노래 가사로, 시즌 1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삽입곡 'Giggle at the Ghosties'의 가사를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감수성 따위 개나 물어 가라고 내버린 사람이 번역하기는 좀 어렵고 그래서, 더빙판 가사를 그대로 옮겨 썼습니다. 노래 부르는 거라서 맞춤법은 잠시 쌩까기로 하고 들은 대로 베껴 적었어요. 감사합니다 ㅌㄴㅂㅅ 번역팀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