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E/포니 최후의 날

Chapter 09. The Art of Subtlety / 재번역 필요

Mergo 2019. 8. 25. 14:46

"너는 재앙 4개월 전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이게 중요한 거야스쿠틀루이퀘스트리아의 완전한 파괴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니까그 말은네가 관측한 결과와 지금 우리가 관측한 결과를 종합해서 무엇이 그 재앙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있을 거란 이야기야."

 

"그러면왜 날 치어릴리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보내는 건데?" 마지막 포니가 물었다보랏빛 드래곤 친구가 강철 같은 몸으로 실험 용구 몇 개를 치워 실험실 내부에 빈 공간을 만들었다. "물론 치어릴리 선생님은 착하신 분이야하지만 치어릴리 선생님이 이퀘스트리아의 과거사를 이야기해 줄 만한 유일한 포니는 아니지 않아차라리 날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보내서 이 모든 사실을 직접 이야기해 드리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데?"

 

"그건 정말로 거의 완벽한 해결책이지." 스파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보랏빛 펜던트가 덜렁거리며 흔들렸다.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야." 그는 근처에 있던 캐비닛에서 재가 들어 있는 유리병들을 꺼내 바닥에 휙 뿌리고는 연구실의 돌 바닥을 녹색 가시가 돋아난 꼬리로 쓱쓱 쓸었다고운 먼지가 쌓인 연구실 바닥에 스파이크의 날렵한 손가락이 둥그런 마법진을 그리며 지나갔다. "유감이야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직접 알현하는 건 분명 최고의 시나리오가 되겠지하지만 내가 바로 널 셀레스티아 공주님에게 보내 줄 수는 없어직접 공주님의 영혼에 접근할 수 없단 말이야."

 

"?" 스쿠틀루는 스파이크가 조심스레 그려 놓고 있는 마법진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떤 포니든지 너랑 연관만 있으면 보내 줄 수 있는 걸로 알았는데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캔틀롯에 있을 때그러니까 공주님의 직속 제자로 캔틀롯에 있을 때 공주님을 한 번도 뵌 적 없다는 건 아니잖아?"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내가 친분이 있다고 생각해 주다니그것 참 고마운데 그래." 그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지하지만 내가 캔틀롯 왕가의 페가수스 유니콘과 얼마나 잘 지냈는지는 중요한 게 아냐어떻게든 공주님의 영혼을 포착하려고만 하면 바보가 된 기분이니까설령 내가 역사상 최고의 드래곤이라고 생각해 봐도셀레스티아 공주님이나 루나 공주님과 같은 강력한 마력을 지닌 포니들을 '목적지'로 시간 역행을 한다는 건 불가능해필멸자로 태어났다면 필멸자로 살 수밖에 없어. 300년의 경험은 절대로 쓸모 없는 게 아니라고."

 

"뭐 네가 그렇다면야." 스쿠틀루가 웅얼거리듯 말했다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실험실에 늘어선 형형색색의 실험 도구들과 약품들을 둘러보았다순간 녹색의 화염을 향한 발사대 위에 자신이 놓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굳이 치어릴리 선생님한테 그걸 말해야 하는 거야어떻게 이 세계가 멸망할지를 다 알려 드린다고 해도치어릴리 선생님이 우릴 도와 주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그럴 필요는 없어."

 

스쿠틀루의 진홍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럴 필요가 없다니?"

 

"스쿠틀루 '관측자'로 과거로 돌아가는 거야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아야 하는 건 그들이 아니야바로 너야."

 

"농담하는 거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뒷걸음질치는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스파이크우리가 정말 진지하게 재앙의 근원을 찾는다고 하면우린 가능한 많은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내가 '음 그래아무 일도 없을 거야.'하면서 포니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순진한 표정이나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네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네 일을 끝내는 데는 충분할 거야스쿠틀루." 스파이크가 마법진을 다 그리고는 남은 잿가루를 크리스탈 약병에 다시 담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지식이 너에게는 자산일지 모르지만그들은 절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을 거야네가 시간을 거슬러가 파멸이 다가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치자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얻어내지 못할 거야온 이퀘스트리아에 대공황만을 초래할 거라고."

 

"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고!" 스쿠틀루가 스파이크를 향해 얼굴을 들이대자 그녀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스파이크우리가 모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야기해주면 아마도—"

 

"—어쨌든 일어나고야 말 뭔가를 멈출 수도 있을지 몰라그것도 시간의 불변 법칙에 위배되는 거야?" 스파이크는 깊은 눈시울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의 두 눈동자는 차가운 에메랄드처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기운이 쭉 빠진 채 말을 듣지 않는 발굽으로 바닥을 디뎠다. "그래... 일어났던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스파이크그냥... 그냥 마음에 걸릴 뿐이야그저 네가 날 과거로 보냈을 때 내가 그들을 속일 수밖에 없다는 게 걸릴 뿐이야물론 난 수많은 녀석들을 속여 왔고나중에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용병 자식들에게 사기를 쳐 왔어하지만 생명이 약동하는 이퀘스트리아에서 내가 만날 존재들은 포니들이야그리고 나한테 포니들은 친구나 마찬가지라고난 이 불모지를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거짓말이라도친구들에게 하지는 못할 것 같아."

 

"스쿠틀루내가 널 과거로 보내는 건 네가 기지가 있고 영리하며 용감하기 때문이야하지만 이것들보다도 더 중요한 덕목이 하나 있지너의 새로운 도전을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몸에 익혀야 할 덕목이 하나 있어."

 

"이해가 잘 안 되는데그럼 그게 뭔지 말해 주겠어?"

 

"좀 더 복잡미묘해질 필요가 있지."

 

그녀는 그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뭐야."

 

"흐음... 참 놀랍기도 하네." 스파이크는 반쯤 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고그의 코에서는 즐거운 듯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막상 도착하고 나면 알아서 익히게 될 거야네가 갈 곳은 그게 산소보다도 더 풍부한 곳이니까뭐 일단 도착하고 나면누구랑 이야기를 하기 전에 숨을 좀 길게오래 쉬어 두는 편이 좋을 거야."

 

"내가 거기에서 얼마나 머무를 수 있는데?" 그녀는 찰나의 긴장감을 담아 물었다.

 

" 5일에서 7일 정도 머무를 수 있을 거야화염분비선에 화염은 충분히 비축해 뒀어." 스파이크가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명심해넌 치어릴리 선생님과 링크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절대로 선생님한테서 40미터 이상 떨어지면 안 돼그 이상 떨어지면 링크가 깨지면서 네 영혼이 과거에 '고정'되지 못하게 될 테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스쿠틀루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 5일이 지나기 전에 화염이 다 떨어지거나선생님과의 링크가 깨지면 난 어떻게 되는 건데?"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그럼 나도 죽는 거야한 줄기 연기로?"

 

"내 친애하는 친구가 '죽을 것같으면 내가 개입해서 바로 널 이 연구실로 데려올 거야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스파이크가 껄껄 웃었다. "무서워하지 마스쿠틀루네 육신 자체를 과거로 돌려보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넌 고통을 느끼지도 않을 거고배고픔이나 피로함도 전혀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네 영혼은 너랑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날 거고과거에서 널 보는 포니들도 네가 '실존'한다고 생각할 거야그러니까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노력해 보라고."

 

"하지만 그들이 날 알아보면 어떻게 해?" 그녀는 갑자기 움찔하며 말했다.

 

"네가 그런 걱정을 해도 되는지 난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스파이크는 대단히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넌 네 어렸을 적 모습이랑 완전 다르거든그러니까넌 그 누구도 닮지 않았으니까 말이야하하하하— 어흠..." 스쿠틀루를 바라보는 스파이크의 얼굴에 순간 슬픈 빛이 어리었다. "그리고 네 옛날 모습 하니 말인데..."

 

스쿠틀루는 스파이크를 쓸쓸히 바라볼 뿐이었다.

 

스파이크가 입을 열었다. "네 어렸을 적 모습이랑 마주칠 수도 있다는 건 알 거야어쨌든 과거는 과거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까그래서 충고 하나만 할게과거의 너와 만나는 건... 네 영혼을 과거에 묶어 둔 '고정'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거야이건 그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야."

 

"알았어그렇게 할게." 그녀는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뭐 사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지만 말이야." 그녀는 중얼거리더니 홱 돌아서서 마법진 중앙으로 들어갔다. "그럼 과거로 가 보자고!"

 

"가 볼까." 스파이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 주위를 돌아 마법진 근처의 보석 더미에 걸터앉았다. "명심해스쿠틀루복잡미묘하게 접근해야 해." 그가 몸짓하자 그녀 옆으로 드리운 스파이크의 그림자도 같이 몸짓했다. "그 미묘함이 성공과 실패를 가를 테—"

 

"— 알아들었습니다요—"

 

"그리고서두르지 마스쿠틀루될 수 있는 대로 오래 머무를 작정이라면절대로 막 밀어붙이지 마일단 시간을 거슬러 그 때로 되돌아가면그들에게 가혹한 진실을 알려 주는 건 되도록 피해 줬으면 좋겠어침착하고 조용하게친절하게 그들을 대하거나아니면 아예 그냥 입을 닫고 있어도 돼너만 원한다면 말이지가장 중요한 건 보고듣고, '관측'하는 거라는 거 명심하고그리고 치어릴리나 다른 아는 포니를 만나게 되면최대한 신중하고 정중하게 대하도록 해그들의 신뢰를 얻고 난 다음에그 때부터 천천히더 높은 지위의 포니들과 만나도록 해셀레스티아 공주님과 직접 대면하면 더욱 좋겠지만이건 아주 천천히 체계적으로그리고 느긋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을 거야누가 알겠어아마 스스로도 즐기고 있을지." 스파이크는 마지막에 씩 웃으며 말을 끝마쳤다.

 

"즐긴다고?" 스쿠틀루가 어린 소녀 같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그녀는 마법진 한가운데에 똑바로 서서 멈칫거리고 있었다. "날 갖고 노는구나스파이크."

 

"솔직히 말하면난 그냥 우리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뿐이라고이퀘스트리아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지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네가 이 '실험'을 하면서 평화와 만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거야."

 

"스파이크나 이러고 서 있다 늙어 죽을 것 같은데."

 

스파이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곤란하지." 스파이크가 말했다. "스쿠틀루눈을 감아."

 

그녀는 순간 당혹스러웠는지 가는 눈을 뜨고 스파이크만 보고 있었지만이내 스파이크가 시킨 대로 했다떨리는 숨과 함께 어둠이 그녀를 감쌌다메마르고 차가운 공기가 온 몸을 감싸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솜털이 곤두섰다그녀는 녹색의 화염이 내뿜는 불꽃이 자신의 몸을 태우기를 기다렸다떨리는 네 다리를 좀 진정시키려는 순간그녀의 눈꺼풀 너머로 희미한 아우라가 새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잔잔했던 공기가 갑자기 엄청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고그녀는 이를 단단히 악물었다언제 화염 밖으로 튀어나오며 어디로 처박힐지 몰랐기 때문이었다그 대신 훨씬 괴상한 느낌만이 들었다마치 한 무리의 차가운 가루가 온 몸에 뒤덮이는 기분이었다.

 

스쿠틀루는 도저히 그 기분을 견딜 수가 없었다그녀의 진홍색 눈이 열려 떠졌고한 무더기의 먼지가 그녀의 이마갈기발굽까지 덮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거친 회색의 가루들이 덮인 마법진은 이제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그녀는 턱을 마구 떨면서도 스파이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대체 이 재는... 뭐야?"

 

스파이크의 몸 위로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둥글둥글한 눈은 차가워져 있었다. "치어릴리." 스파이크는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단지의 뚜껑을 비틀어 닫았다.

 

"-?" 스쿠틀루는 말까지 더듬었다.

 

"스쿠틀루미안해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어." 스파이크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이내 입을 열었다그리고 방의 절반을 안개 같은 에메랄드 빛의 불꽃으로 채워 버렸다.

 

"스파이크—!" 깜짝 놀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하지만 스파이크의 모습은 엄청난 속도로 멀어져 갈 뿐이었다수백 개의 번들거리는 비늘로 뒤덮인 뱀처럼 꾸물대며 풀빛의 혼돈을 간직한 독 안개가 그녀의 뼈와 살을 녹여 잡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그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치어릴리 선생님의 상아빛 뼛가루가 부드럽게 온 몸을 뒤덮었고 이내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 박동과 섞였다마치 도자기로 만든 보호막을 보는 것 같았다이내 재로 만든 달걀 같은 보호막은 태풍에 부서지듯 깨졌고그 자리에는 투덜거리는 포니 하나만 서 있었다다채로운 색들과 향기그리고 생명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 포니 하나만 서 있었다. "안 돼잠깐만!" 스쿠틀루가 소리쳤다하지만 그 목소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가쁜 숨의 장막 아래에서 그녀의 두 눈은 깜박이고만 있었다깜박이던 두 눈은 그녀를 태양의 요람으로 포근히 감싸며 낯선 하늘 위로 떠오른 낯선 무언가를 향해 가늘어졌다가슴 한복판에서 벅찬 무언가 올라오며 그녀의 숨은 가빠져 갔다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으로 간신히 서 태양을 바라보았다너무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태양이기에그녀는 순간 태양을 직접 보면 위험하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하지만 태양을 바라보던 그 순간에도 그녀는 전혀 눈이 부시지 않았다마치 두 눈이 눈이 아니라 뭔가 돌보다 더 강한 무언가로 되어 있는 양.

 

일단은 초점을 좀 맞출 필요가 있었기에스쿠틀루는 태양을 바라보던 시선을 떼어 주변을 둘러보았다남부 산맥지대의 새하얀 모습이 보였고언덕 아래로는 수정같이 맑고 푸르른 호수가 보였으며 에버프리 숲의 가장자리가 보였다그리고 동쪽의 따뜻한 지평선 건너로 금빛의 초가지붕을 얹은 지붕들이 보였다포니빌 시내 변두리가 보였다.

 

"나 참스파이크 너..." 그녀는 훌쩍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고낯선 숨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쉬었다그래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과거로 보내 준다고 해 놓고서는천국으로 보내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홍수처럼 밀려오는 감정들 사이에서 마음을 다잡았다폐가 떨려오고 있었고헐떡이는 그녀의 숨은 행복에 겨워 더욱 가빠졌다그녀는 좀 전에 스파이크가 알려 준 것들을 떠올리려고 애쓰며 찬 숨을 가라앉혔다그녀의 숨이 잔잔해졌고이내 그녀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녹아 들어갔다하지만 그녀는 스파이크가 알려 준 건 전혀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그 대신 하늘에 수놓아진 하나의 무언가를 찾아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고온 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무지개... 어디로 갔지...?"

 

그녀의 시선은 다시 한 번 호수의 투명하고 맑은 표면 위로 향했다빛의 다리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확실히 저번에 스파이크가 이곳으로 그녀를 보냈을 때보다 훨씬 확 트여 있었고훨씬 더 따뜻했다스쿠틀루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너무 놀라 말도 못 하고 그 이유를 알아챌 때까지 얼마간 그렇게 있었다간단했다지금은 아침이 아니라 오후였으니까지난 25년 동안 불모의 이퀘스트리아의 회색 정경만 바라보고 살아온 그녀는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그 다음 순간눈 앞에 들어온 무언가를 보자 그녀의 심장이 기쁨에 약동했다그녀가 타던 스쿠터가 눈 앞에 놓여 있었다.

 

내 스쿠터... 내 어렸던 시절... 이퀘스트리아.... "정말 끝내주네셀레스티아 공주님께 경배를." 목소리는 그녀의 눈물에 가려 그녀 안에서만 요동쳤다그녀는 굳어 버린 네 다리를 움직였다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그럼 이제 학교를 찾아볼까나치어릴리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면 곧장 입맞춤을 해 버릴 거야아무렴!"

 

그녀는 발을 헛디뎌 긴 학교 지붕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며 비명을 질렀다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그녀는 지붕 위의 종탑에 부딪히며 두 번이나 굴렀고이내 그녀가 '실체화'된 과거의 시간 속의 학교 한쪽에 떨어져 처박히고 말았다.

 

"아욱!" 그녀는 운동장 한구석에 비치된 식수대에 거꾸로 처박혔다. "푸하-" 그녀는 물통에서 휙 튀어나와 운동장의 흙바닥에 내려앉으며 숨을 헐떡였다한바탕 물이 튀었다흠뻑 젖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온 몸을 털어내 대충 말렸지만 몸은 덜덜 떨고 있었다. "스파이크가 심호흡하라고 하면서 뭐라 그랬더라설마 이걸 얘기한 건 아니겠지."

 

그녀는 얼굴을 젖히며 운동장을 슥 훑어보았다얼굴을 젖히자 흠뻑 젖은 갈기가 그녀 목 옆까지 내려와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발굽을 들어 갈기를 끌어당겨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흠뻑 젖은 검은 갈기와 그 위로 난 희미한 호박색 갈기였다그녀가 여기저기 곁눈질하며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표정은 조금씩 일그러졌다그리고 마침내그녀의 시선이 식수대로 향했다.

 

그녀는 식수대를 향해 걸어가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식수대의 물은 여전히 물결치고 있었고그 때문에 그녀의 모습은 똑바로 비쳐지지 않고 어그러지기만 했다물이 다시 잔잔해지자 낯선 페가수스 하나가 비쳤다발굽부터 날개까지 찰흙 같은 갈색으로 물든 어린 페가수스가 보였다미래의 스쿠틀루가 하고 있는 칙칙한 갈색 솜털보다는 차라리 더 밝고 아름다운 색이었을 뿐만 아니라 빛까지 나는 듯 했다마치 어린 시절의 그녀의 모습과 같은짙은 오렌지색의 솜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색 바랜 진홍색이나 보라색이었던 눈동자는 사라지고 그 대신 둥글둥글한 호박색의 눈동자가 봄 나무의 속살처럼 빛났다그리고그녀의 갈기는 길고 아름다운 검은 비단처럼 흘러내려 있었다그 가운데 자라난 가느다란 호박색 갈기가 그녀의 깜박이는 눈과 같은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오호안녕하신가." 그녀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술을 한 잔 하고 난 것 같은 이상한 즐거움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누구?" 그녀는 비로소 그 이상한 목소리가 그녀 자신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녀가 이 과거에 '투영'된 모습과 같이 그녀의 목소리도 달라져 있었다좀 어려진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영혼이 굴절되며 '투영'된 모습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한 목소리였다스쿠틀루가 보기에는 자기는 22살 정도로 보였다과거 기준으로 계산하면 플러터샤이나 트와일라잇 스파클 등그녀가 어릴 적 만나 왔던 다른 포니들과 비슷한 나이였다모든 게 다 이상했지만적절하기도 했다누군가를 만나는 그 두려움의 창을 깨고 다른 이들과 만날 수 있다는 거니까만일 그녀가 미래로 돌아갔을 때지금 이 모습과 이 목소리를 지니고 돌아갈 수 있다면 스파이크라 해도 그녀가 누군지 어리둥절해하며 뒤통수를 긁적댈 것이 틀림없었다.

 

과거로 돌아와 '고정'된 그녀는 한쪽 발굽을 들어 그녀의 광택 있는 검은 갈기를 쓸어 넘겼다그 순간그녀의 주의를 확 끄는 무언가가 눈 앞에 보였다앞을 바라보고 나서야 그녀는 지금 자기가 학교의 창문 앞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판유리로 만든 창문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지만루비 빛 그림자가 건물 밖으로 뻗어 있었다그리고 그 그림자 뒤로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어린 아이들이 웅얼거리면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25년 하고도 3개월 전의 과거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있었나 보다스쿠틀루의 심장 박동이 일순간 박자를 놓쳤다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따뜻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상쾌한 봄 공기의 향이 느껴졌고새들이 노래하는 소리와 봄 매미가 웅얼거리며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스파이크가 포니빌에서 가꾸던 정원은 지금 눈 앞에 펼쳐져 그녀를 둘러싸고 껴안아 주는 생명의 세상에서 보자면 애처로울 정도로 초라했다그녀는 바로 여기 서서 이 순간을 영원히 즐기고 싶었다.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누구 하피가 무엇인지 아는 포니 있나요?" 선생님이 던진 질문의 답을 안다는 흥분으로 가득한 몇 개의 발굽이 들어올려졌다수령초(후크시아)의 꽃잎처럼 연보랏빛을 띤 아름다운 갈기를 한 암말이 학생들을 바라보더니 유독 열심히 발굽을 들고 있던 포니를 골라 지목했다. "그래요스닙스하피가 뭔지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 — 시내에서 음반 가게를 운영하는 분의 큐티마크가 하피처럼 생겼어요!"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교실에 가득 찼다그 웃음의 중심에 선 청록색 꼬마 유니콘은 창피한 듯 책상 아래로 얼굴을 숨길 뿐이었다.

 

귀엽다는 듯 웃고 있는 선생님의 몸 색깔은 루비의 진홍색을 닮아 있었다. "아니에요스닙스라이라의 큐티마크는'리라'가 정확한 이름이에요. '하프'가 아니랍니다." 치어릴리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학생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하피는 매를 닮고 어느 정도 지각능력이 있는 녀석들이에요매의 몸과 커다란 날개날카로운 발톱을 달고 있는데상반신은 원숭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치어릴리는 천천히 걸어가 하피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덮어 놓았던 베일을 치웠다절반쯤 되는 학생들은 깜짝 놀라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고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라고 중얼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하피의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피의 90%는 여성이라고 해요하피는 주로 쥐나 새의 고기를 먹고동쪽 해안의 절벽에서 무리를 지어 살아가고 있고야행성으로 알려져 있어요."

 

"어우." 분홍 솜털과 티아라 큐티마크를 가진 망아지가 얼굴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고기를 먹는 애들 중에 제 정신 박힌 애들이 있을까 몰라?"

 

"그러게진짜 역겨워 죽겠네!" 한 자리 건너 앉은 은빛의 망아지도 친구의 역겨운 듯한 목소리를 따라 중얼거렸다. "분명 쟤들은 서로를 뜯어먹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을 거야!"

 

"흐음뭐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반응이에요." 치어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포니 문화에서는 굉장히 금기시되는 행위죠하지만지각능력이 있는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고기를 먹고 있답니다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쪽의 그리폰들도 그 부류에 속하고 있어요그들도 그들 나름의 평화와 평온한 삶이 있답니다." 치어릴리가 학생들 앞에 놓여진 하피의 그림을 향해 다시 한 번 몸짓하며 말했다. "오늘날에 살아가고 있는 하피의 대부분은 평화주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어요하지만 그들 모두가 항상 평화를 말하는 건 아니랍니다이퀘스트리아 제 2시대 때 커다란 전쟁이 있었죠그 때 무자비한 하피 해적들이 이퀘스트리아의 농경 지역을 황폐화시키고 온 하늘을 그들의 피로 물든 깃털로 뒤덮은 적 있었어요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온 발굽 소리를 향해 치어릴리의 시선이 옮겨졌다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녀의 얼굴은 순간 찡그려졌지만 곧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아왔고이내 헛기침을 하더니 부드러운 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흠흠... 왜 거... 안녕하세요혹시 뭐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30명쯤 되는 망아지들의 얼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갸웃거리고 있었다나무 책상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망아지들의 호기심에 찬 시선이 교실 뒤쪽으로 향했다다 자란 젊은 페가수스가 서 있었다길고 검은 갈기는 축축히 젖어 먼지가 끼어 있었고갈색 몸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져 교실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은 흰 광채를 그 페가수스에게 비추고 있었다그 때문에 그녀는 마치 '저 너머 어딘가'에서 그들을 찾아온 특별한 손님처럼 보였다그 누구도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스쿠틀루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를 향한 무수한 눈길들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절멸 이후로 처음으로 보는 포니들이었다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있었고그 때문에 서 있기도 힘들었다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네 다리로 천천히 한 발걸음을 디뎠다망아지들의 밝은 눈빛도 그녀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건 무시했다그녀의 이빨은 꽉 악물어져 있었고그녀는 이내 한 줄로 늘어선 책장에 기대어 마른침을 삼키더니 거친 숨을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이야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오." "반갑슴다." "안녕하세요."

 

"그래." 스쿠틀루의 몸은 떨리고 있었고목 안에 무언가 시큼한 게 걸리고 있었다너무나 많은 눈들너무나 많은 재들눈을 깜박하는 그 순간어두운 회색의 물결이 그녀의 시야를 뒤덮었다하지만 눈이 다시 열리자 온 교실이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느낌그들 한가운데 서 있는 그 느낌은 단순한 떨림과 두려움뿐만이 아니었다마지막 포니는 순간 모두가 그녀를 포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학교 비품을 배달하러 오신 건가요?" 치어릴리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스쿠틀루의 귓가에 울리며 스쿠틀루의 환상을 깨쳤다. "비품 상자는 뒤쪽에 있어요... 그럼 전... 다시 수업을 하도록 할게요." 그녀는 눈을 찡긋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하피의 육식 습성에 대해 공부하러 오신 게 아니라면 말이에요!"

 

어린 망아지들은 일제히 즐거이 웃었다.

 

"아뇨그게... 그게..." 스쿠틀루가 중얼거리며 느릿느릿 교실을 돌았고망아지들의 머리도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따라 돌아갔다. "그게그래요뭘 좀 전해...드리려고요뭐 그런 거...있잖아요..." 그녀는 어쩔 줄 몰라 겨우겨우 말을 꺼냈지만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서서히 희미해질 뿐이었다콜록거리며 기침을 한 그녀는 축축한 갈기를 조금이라도 말리려고 머리를 흔들었지만 이내 셀레스티아의 엠블렘이 그려진 깃발이 걸린 깃대를 향해 넘어지고 말았다그녀는 깜짝 놀라 움찔하고는 초조하게 흔들리는 깃발을 바로했다그리고 곧장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냥... 지나가던... ..."

 

"누가 당신을 보냈나요?" 치어릴리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그들 둘만의 질문을 던졌다치어릴리는 살짝 앞으로 다가왔다. "저기취업허가증은 가지고 계신가요?"

 

"... 저기..." 스쿠틀루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지만치어릴리의 얼굴을 보려면 오히려 내려다보아야 했다. "어라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키가 작으시군요."

 

치어릴리의 녹색 눈은 슬슬 짜증이 난다는 듯 깜박이고 있었다.

 

그 순간앞줄에 앉아 있던 망아지 하나가 여자아이다운 목소리로 외치며 잔뜩 들떠 발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우와저 언니 큐티마크 좀 봐!"

 

"이야아아아!" "진짜 멋있어!" "멋있다!" "저런 큐티마크는 본 적 없었는데!" "예쁘다아!"

 

치어릴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치어릴리의 표정은 그녀가 '방문자'의 옆구리로 다가가는 동안 완전히 풀어져 밝아져 있었다. "우와그러네요정말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큐티마크에요그렇지 않나요?"

 

"?" 스쿠틀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치어릴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내 자신의 옆구리를 흘끗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 다른 쪽도 바라보았다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커졌다. "세상에이게 뭐람!" 그녀의 갈색 솜털 위로 정교하고 화려한 큐티마크가 새겨져 있었다검은 우주의 원과 호박색 햇빛이 서로 얽혀 빙글빙글 도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마치 숫자 8을 길게 늘여놓은 모양 같았다옆쪽에서 보면 '무한'의 상징을 자연의 모습으로 그려 놓은 듯한 모양이었고그 위로는 셀레스티아의 태양의 문장이 추상적으로 변형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스쿠틀루의 고개는 깃발과 자신의 큐티마크 사이를 빠른 속도로 왕복했다뜬금없이 나타난 그녀의 큐티마크는 깃발에 아로새겨진 셀레스티아의 문장과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글쎄요지금까지 나타났던 큐티마크 중에 가장 멋졌던 큐티마크보다는 좀 덜한 것 같은데..."

 

"여러분— 지난 달에 큐티마크에 관한 수업을 했었는데기억나나요누구 이 언니의 큐티마크가 뭘 상징하는지 알 것 같은 학생 있나요?" 몇 개의 발굽이 올라갔다치어릴리는 교실 한가운데 앉아 있던 학생을 지목했다. "그래요트위스트."

 

"캔틀롯 왕궁에서 왕실 임무를 수행한다는 뜻 같아요!"

 

"왕실 임무 중에 뭐인 것?" 스쿠틀루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정말 그렇네요트위스트!" 치어릴리가 활짝 웃으며 어안이 벙벙해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는 '방문자'의 옆에 가서 섰다. "이런 문장을 타고난 포니들은 모두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왕궁에서 공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답니다그 뜻은태양의 공주님의 광명을 좀 더 넓고 멀리 퍼뜨리며 이퀘스트리아의 질서를 수호하는 수호자이자 감시자란 뜻이겠죠오늘 이런 특별한 손님을 맞을 수 있다니 오늘은 정말 운이 좋군요!"

 

치어릴리는 곧장 스쿠틀루를 향해 돌아서며 활짝 웃어 보였다그녀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스쿠틀루를 향해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캔틀롯정원까지가는길을알아보러오신건가요?"

 

스쿠틀루의 관자놀이에서 커다란 땀방울이 떨어졌다. "그래요전 그저—"

 

"셀레스티아 공주님 아래 포니들 중 가장 존경받는 분이셨군요..." 치어릴리는 자랑스러운 듯 코를 똑바로 세우고는 교실에 있던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내 사탕옷을 입힌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양의 수호자를 위해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우리 아이들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스쿠틀루의 두 눈이 불룩해졌다줄을 맞추어 앉은 아이들의 눈은 부드러운 색조로 빛나며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아이들의 눈을 불안한 듯 곁눈질하며 바라보았다아이들은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에 차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 전 대왕궁에 무물건을 전달하는 역할을... ... 맡고 있..." 그녀의 눈이 깜박였다. "화염석을 전달하고 있어요." 그녀는 움츠러들었지만 아이들은 그녀의 거짓말에 놀라워하면서도 존경하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그 덕에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화염석이란 건 뭔가요?" 두꺼운 안경을 쓰고 꼬불꼬불한 붉은 갈기를 한 아이가 입을 벌린 채 물었다.

 

"화염석이란 건..." 스쿠틀루는 숨을 내쉬고는 갑자기 아주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어흠화염석은 일종의 보석인데붉은 화염의 정수를 담은 보석이에요버려진 이퀘스트리아의 땅 위로 달이 부서져 떨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만들어진 보석이죠그러니까대애애애-재애애애-아아아앙 뒤에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간 말이 뭔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당혹감에 일그러졌다.

 

아이들은 그저 멍한 얼굴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목이 길고 갈색 솜털을 한 유니콘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기—무슨 대장이라고요?" (원문은 Cat of clysm, 재앙을 뜻하는 Cataclysm Cat of clysm으로 알아들은 겁니다.)

 

"그건 대지의 모습을 아예 영원히 바꿔 버리는 아주 끔찍한 일이에요잠깐 실례할게요여러분." 치어릴리가 불안한 듯 돌아서서 스쿠틀루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저기괜찮으신가요아니그런 의미가 아니라그래도 어딘가 좀 불편하신 것 같아서요기분은 괜찮으신가요?" 치어릴리의 녹색 눈이 깜박였다. "저기요?"

 

스쿠틀루는 아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코도뿔과 귀갈기까지 모두 보았다하지만 커다란 리본을 단 아이는 없었다. "저기 애플블룸은 어디 있나요?" 그녀는 어린 아이 같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음—애플블룸이라면 오늘은 아파서 집에 있을 거에요." 치어릴리는 헛기침을 하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다면방에서 잠깐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을까요—?"

 

"모두...죽고 말 거에요..." 스쿠틀루의 발음은 뭉개져 있었다그녀의 두 눈은 눈앞의 행복하고 순진무구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떨리고 있었다. "그 누구도살아남지 못해요." 그녀의 악문 이빨은 떨리며 천장을 향했다스쿠틀루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악문 이빨 사이로 말이 새어 나왔다. "제가 구름 위에서 본 바로는이 건물도 무사하지 못해요벽돌 하나조차 남지 않을 거에요..."

 

"저기요!" 치어릴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치어릴리의 눈은 아이들과 스쿠틀루를 안절부절못하며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치어릴리는 천천히 스쿠틀루를 밖으로 몰고 가며 말했다. "제발다른 곳에서 이야기하죠아이들이 무서워할 거에요."

 

'무서워할 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스쿠틀루의 눈이 번쩍 떠졌다예전의 기억이 마치 채찍처럼 그녀의 온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어둠 속에서 쇄도하는 시커먼 트롤 놈들이 떠올랐고당장이라도 비행선을 찢어발길 것처럼 다가오던 거대한 폭풍이 떠올랐고죽은 공주의 일기를 읽으며 흔들리는 그물침대에 뻗어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폐 속에서 고통스런 숨이 새어 나오며 살기등등한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불타 스러지는 이 세계를 봤기에탐욕스런 지옥의 불꽃의 주둥이에서 겨우 몸을 빼내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이 있기에이 재앙은 어딘가에서 반드시 멈추어야 했다.

 

"미안해스파이크네가 말한 건 때려치우자." 그녀는 홱 돌아서 치어릴리의 눈을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당신지금 당장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만나 주셔야겠습니다."

 

"저요...?" 치어릴리가 뒷걸음질쳤고이내 긴장한 듯 웃었다. "전 캔틀롯 왕궁비서관도 아닌데요그분을 알현할 자격이 있으신 건 그 쪽—"

 

"그 빌어먹을 놈의 '비서관소리는 좀 치워 두시면 안 될까요?!" 스쿠틀루가 소리질렀다교실에서 깜짝 놀란 망아지들이 헉 소리를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이내 치어릴리를 향해 사납게 몇 발자국을 떼어놓았다. "내가 여기 있는 건오직 전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 전갈은 반드시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전해져야 하고요그 누구도 아니란 말입니다그리고 전 시간이 많지 않단 말입니—"

 

"전 그 어떤 걸 전달하든지 이 교교실을 떠나면 안 되는데요!" 치어릴리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설령 제가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알현할 수 있다 해도—"

 

"이런 젠장지금 농담하는 것 같습니까?" 스쿠틀루가 으르렁댔다그녀가 치어릴리를 내려다보며 소리친 소리는 교실 안까지 울렸다.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 거란 말입니다아주 끔찍하고 잔혹한 일이 일어난다고요포니들이 죽고 말 겁니다몇몇만 죽는 게 아닙니다대절멸이 온단 말입—"

 

"저기요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이런 망할맞는 말이라고요됐으니 헛소리는 그만하고 공주님을 뵈러 갑시다내가 여기 영원히 있을 것도 아니고시간은 아주 귀중하단 말입니다그리고 당신은 지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모르고 있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

 

"포니들의 종말이 온다 그 말입니다!" 스쿠틀루의 호박색 눈은 그녀가 거친 숨을 헐떡일 때마다 타오르고 있었다. "마법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화염파가 우리 모두를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릴 거다이 말을 하는 겁니다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시죠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실마리도 없다 이 말입니다해와 달도 마찬가지입니다그것들도 없어져요사라진다고요영겁의 황혼 말고는 남는 게 하나도 없다 이 말—"

 

스쿠틀루의 목소리가 멈추고그녀의 귓가에 아이들이 훌쩍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그녀의 떨리는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안경을 쓰고 붉은 갈기를 한 아이가 책상 밑에 숨어 덜덜 떨고 있었다아이의 안경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그 아이 말고도 주변에 있던 아이 몇몇도 덜덜 떨며 무서운 듯장황하고 두서도 없이 지껄이는 낯선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아이들이 울고 있다울고 있다고...

 

"아냐아냐괜찮아그렇게 심각한 문제는그러니까심각한 문제—" 스쿠틀루는 헝클어진 검은 갈기를 쓸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스쿠틀루는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아이들은 그녀가 뭘 하든지 관심조차 없었다그녀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말했다. "좋아이건 분명 끔찍한 일이지하지만 너너희 모두는 아직 어리고그러니까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게 좋을 거야모든 포니들이 동시에 죽어 버릴 테니까하지만 이건—" 몇몇 아이들의 혼란스러운 듯한 흐느낌이 교실을 채웠다스쿠틀루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내가 이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 같진 않잖아그렇지그러니까 날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아이들은 여전히 벌벌 떨고 있었다그녀가 소리질렀다. "이 자식들아무서워하지 말랬잖아!"

 

아이들은 깜짝 놀라 움찔했고그녀의 무서운 시선을 피하려고 눈을 꽉 감고 있었다그녀는 아이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앞으로 닥칠 무서운 일들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그녀의 숨은 갈수록 가빠졌다교실 뒤편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 옆에 서 있던 치어릴리는 어느 샌가 교실 뒤편으로 가 목이 긴 유니콘 꼬마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스네일스피프스 앤 매크래캔 가로 가서 실버트롯을 모셔오세요."

 

"알았어요치어릴리 선생님." 꼬마는 불안한 듯 속삭이더니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가 학교 밖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입니까—?" 스쿠틀루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치어릴리는 문 쪽으로 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일단 좀 진정하시고일단 앉아서 말씀—"

 

"잠깐만요!" 스쿠틀루가 치어릴리를 향해 달려갔고치어릴리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여길 떠나지 마세요제발—!" 스쿠틀루는 치어릴리를 문에서 멀찍이 밀어내며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됐어요저한테서 떨어지지 말아 주세요너무 멀리 떨어지면 저전 미래로 다시 돌아가 버리게 되거든요—"

 

"미래라뇨?" 치어릴리는 말문이 막혀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길어요이건 당신이 알 얘기는 아니에요." 스쿠틀루는 치어릴리의 움츠러든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공주님께 전해 드려야 해요공주님이시라면 이해하실지도적어도 당신보단 많이 이해하실 테니까요세상의 종말을 막지는 못하시겠지만적어도 그 원인을 밝혀내는 걸 도와 주실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아이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자 스쿠틀루는 치어릴리를 다독이면서도 찌푸린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아 좀그만 울어다 괜찮을 거라고공주님을 뵙기만 하면—"

 

"잠깐만 앉아 계세요그럼 제가 편지를 준비해 드리—"

 

"멍청한 편지는 집어치워요난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개인적으로 만날 필요가 있단 말입니다!" 스쿠틀루가 소리쳤다치어릴리의 옆구리 쪽을 바라본 그녀는 흠칫 놀랐다햇볕이 드는 창문 너머로 어린 유니콘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그 뒤로는 푸른 제복을 입은 두 성년 포니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당신경찰을 부른 거에요?"

 

"..." 치어릴리가 몸을 떨며 완전히 울음바다로 엉망이 된 교실을 슥 둘러보더니 잔뜩 화가 난 페가수스를 향해 돌아섰다. "부탁드려요진정해 주세요."

 

"아뇨잘 됐네요!" 스쿠틀루가 활짝 웃었다이윽고 당황해서 눈이 크게 떠진 치어릴리를 꼭 안았다. "어서 경찰을 더 불러오세요왕실 근위대원들도 불러와 주셨으면 좋겠네요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주의만 끌 수 있으면 되거든요어떻게든 이 사실을 알게 되실 테니까이야햇볕이란 참 기분 좋네요!" 경찰이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는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고그녀의 숨은 즐거움에 가빠졌다. "아아도저히 견딜 수가 없네요너무 좋아요저녁노을을 볼 수 있을까요제가 노을을 본 지도 엄청 오래 되었네요그 세상은 춥고죽음만이 만연한데다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었거든요노을이 어땠는지...잊어버리고 있었어요...... 하하하!" 그녀는 그러면서도 다시 말을 뱉어냈다. "그만 울라고 했잖아포니가 이렇게 약해 빠지진 않았던 것 같은데—!"

 

"모셔왔어요치어릴리 선생님!" 스네일스가 교실 뒤편으로 재빨리 들어왔다스네일스가 들어온 문으로 키가 큰 두 포니들이 걸어 들어와 근엄한 얼굴로 스쿠틀루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선생님?"

 

"오셨군요!... ......" 치어릴리는 눈을 크게 뜬 채 너털웃음을 지으며 두 발굽을 딱하고 부딪쳤다. "내가 사춘기를 맞았을 때 당신네들은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니까?" 스쿠틀루는 헛기침을 해 목을 정리한 다음입술을 바로 하고 연설하듯 강한 어투로 말했다. "지금 당장셀레스티아 공주님을 뵙고 싶습니다만."

 

경찰관 하나가 눈썹을 치키며 물었다. "정말이십니까?"

 

"당연하죠당신들이 수갑을 채우든 뭘 하든 상관없어요날 공주님께 데려다 주기만 하면 좋아요한시가 급한 일이에요."

 

"그럼그 한시가 급한 일이라는 건 대체 뭐죠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두 경찰관이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가벼운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제가 이 얘기를 얼마나 많은 포니들에게 직접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줘야 하는 거죠?" 그녀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지금부터 4개월 후이 세상이 불에 타 멸망을 맞게 될 겁니다모든 생명들이 한 줌 재로 변해 스러질 것이고해와 달조차도 사라질 겁니다그래서 공주님을 뵙고자 하는 겁니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여쭈어 봐야 해요그래야 그 이후에 제가 불탄 세계와 해와 달을 되돌릴 수 있게 됩니다."

 

경찰관들은 교실을 심란하다는 눈으로 슥 곁눈질로 바라보았다그러더니 다시 스쿠틀루에게 다가섰다. "저희와 함께 가시는 건 어떠십—"

 

"좋아요데려가세요공주님을 뵈러 간다는 조건으로요."

 

"고마워요여러분." 치어릴리가 교실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여러분이 안 오셨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스쿠틀루는 치어릴리의 행동에 숨이 막혔다. "여기 있지 마세요!" 그녀는 소리치자마자 치어릴리를 향해 훌쩍 뛰었다"우린 붙어 있어야 한다니까요안 그러면 제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 두 경찰관 포니들이 갑자기 그녀의 옆구리와 꼬리를 붙잡는 순간스쿠틀루의 몸은 거칠게 움직였다. "아으이거 놓으세요!"

 

"진정하십쇼—!" 경찰들은 체중을 실어 그녀를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충분히 일 벌이셨지 않습니까—"

 

"내 말 못 들었어요?" 스쿠틀루는 집요하게 자기를 붙잡고 있던 경찰관을 향해 날개를 휘둘렀다당황한 경찰관은 교실을 가로질러 날아가 사물함에 부딪혔다아이들은 덜덜 떨기 시작했다. "같이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요당신이랑은 싸우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이것 보세요진정하시지 않으면 저희도 강제력을 동원할 수밖에—!"

 

"세상이 지금 불구덩이 속으로 죽으러 기어 들어가는데지금 나보고 진정하란 소리가 나옵니까?" 스쿠틀루가 으르렁거리며 자세를 낮추었다갈색 날개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두 경찰관을 향해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두 번 다시 이 얘기 하지 않게 하세요이 쓸모없는 작자들아당장 날 공주님께 데려가든가아니면—"

 

"됐어요그만들 해요!" 치어릴리가 갑자기 뛰어들어 살기가 등등한 스쿠틀루와 경찰관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부탁할게요이제 그만해요굳이 싸싸울 필요는 없잖아요." 치어릴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이 분과 같이 공주님을 뵈러 갈게요." 치어릴리는 눈을 꿈벅거리는 경찰관들을 등지고 서서 스쿠틀루를 향해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치어릴리의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붉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거맞죠저한테 꼭 붙어 계세요같이 공주님을 뵈러 가요."

 

스쿠틀루의 숨이 천천히 가라앉았다그녀는 똑바로 서서 피를 타고 흐르는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 고마워요그 편이 훨씬 좋겠네요적어도 하나 이상의 포니가 이퀘스트리아의 미래에 대해서 '허튼소리'를 하게 된 것 같군요!" 스쿠틀루는 학교 정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중간에 멈춰 치어릴리가 그녀를 잘 따라오고 있나 확인했다치어릴리와 함께 걷는 동안스쿠틀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무례를 범해 죄송해요하지만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전 괜찮답니다!" 치어릴리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확실히당신은 정말 끔찍한 삶을 살아온 것 같네요그리고그 경고를 하려고 돌아오신 건 정말 훌륭한 일이고요셀레스티아 공주님도 당신한테 빚을 진 거나 다름없을걸요포니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명성이나 명망을 얻으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저는 그저 제가 사는 세상에 다시 해가 뜨기를 원할 뿐이에요노을 좋아하시나요?"

 

"그럼요당연하죠!" 치어릴리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두 경찰관을 곁눈질하며 슬쩍 쳐다보았다경찰관들은 스쿠틀루와 치어릴리와 같이 운동장을 지나쳐 가 포니빌 가장자리로 향했다. "저기절 따라오시면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전보를 부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분명히 공주님과 직접 면담을 하고 싶다고 전에 말하지 않았었나요?"

 

"물론 기억하고 있죠하지만 당신 같은 페가수스가 보낸 전보라면우리가 직접 공주님을 뵐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 거에요!"

 

"그것도 괜찮네요괜찮아요아아신이시여이 잔디는 정말 훌륭하네요그렇지 않은가요그쪽도 아시다시피앞으로 잔디란 건 존재하지 않을 거에요..."

 

"새들은 있을까요없어요다 죽고 없거든요그 미래가 부끄럽지 않냐고요솔직히 말하자면 전 별로 신경 안 써요하지만이건 제가 할 이야기가 아니에요."

 

"." 치어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니빌 가장자리에 세워진 2층짜리 콘크리트 건물로 들어갔다그 둘의 발굽 소리와 경찰관들의 발굽 소리가 밝은 복도에 울렸다그들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하고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하면서희미한 빛이 비치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어디서 오셨는지는 몰라도많은 걸 그리워하셨나 보네요."

 

"휴우제가 봐 왔던 것들이 워낙 끔찍해서좀 두서가 없어도 이해해 주세요." 스쿠틀루가 가볍게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다른 포니랑 이야기해 본 것도 얼마나 오랜만인지 몰라요죄다 죽어 버리고 뼈다귀만 남았거든요정말 놀랐던 건제가 혼자가 된 뒤로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저 스스로와 대화하지 않았다는 거에요그러니까미치지 않았다고요항상 무엇이 우리를 불태웠는지그것만 생각하고 지냈죠잠깐포니빌이 불탔었나어느 여름날에 메인해튼의 수양부모님 댁에서 지내던 기억이랑 섞여 버린 것 같네요재앙 이후에 바닷물이 들어와 아주 잠겨 버린 걸 보고서전 그저 헛웃음만 웃을 수밖에 없었고요."

 

"이야그것 참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치어릴리가 웅얼거렸다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스쿠틀루를 넘어 경찰관들을 향해 가짜 웃음을 지어 보였다대화는 끝났다.

 

"하아어디가 재미있다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스쿠틀루는 웃다가 눈을 꿈벅거리며 지하실을 멍청히 둘러보았다지하 복도의 양쪽으로 철창이 걸린 방이 몇 개 보였다. "잠깐여긴 대체 뭐 하는 곳—?"

 

갑자기 두 경찰들이 그녀를 거칠게 떠밀었다그녀는 순간 비틀거리며 감옥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철창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발굽으로 문을 힘껏 두들기며 소리질렀다.

 

"안 돼그만둬!" 그녀는 철창 문으로 달려가 온 힘을 다해 부딪쳤다철창은 쨍 하고 울리며 제자리에서 진동할 뿐이었고그 소리는 천둥처럼 온 지하를 채웠다경찰들이 이상한 힘으로 그녀를 저 멀리 감방 안으로 던져 버렸다그녀의 숨은 아까보다는 진정되어 있었지만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러지 마세요!" 스쿠틀루가 소리쳤다. "공주님을 만나야 한다니까요잠깐만이라도 뵙게 해 주—" 스쿠틀루의 눈은 가늘어지며 철창 너머로 보이는 치어릴리의 떨리는 얼굴을 째려보았다. "거짓말을 했군요."

 

"고마워요...." 치어릴리가 비틀거리며 경찰 쪽으로 쓰러졌다경찰 하나가 치어릴리를 받아 안고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저 분이 아아이들을 무무섭게 했어요전 저 분이 더 심한 짓을 할까 무서웠어요!"

 

"응당히 하셔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치어릴리 선생님." 치어릴리를 받아 안은 경찰관이 말하며 치어릴리를 부축해 앉히며 말했다. "블루스톤." 그는 다른 경찰을 향해 발짓했다. "가서 레드하트 간호사님을 모셔와그 분의 정신의학 학위가 이 가엾은 분이 제정신을 찾게 하실지한번 보자고."

 

"알겠습니다즉시 모셔오겠습니다." 블루스톤이라 불린 경찰관은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당신들... 당신들 지금 날 보고 미쳤다는 거야?" 스쿠틀루가 중얼거렸다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이빨 사이로 으르렁대며 철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좋아내가 미칠 만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정말 그렇게 생각해당신네들이 직접 끝없는 파괴와 피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마지막 포니로 살아 보는 게 어때그럼 당신들도 미치지 않고서는 못 배겨난 당신들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다른 건 아니라고이 빌어먹을 자식들아이퀘스트리아를 구할 수 있단 말야앞으로 일어날 대참사와 대재앙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먹을 수 있다고당신들이 날 공주님과 만나게 해 준다면 말이지!"

 

"당신은 당신께 어울리는 분과 만나게 될 겁니다." 경찰관의 얼굴은 차가웠고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경찰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진정 좀 하시죠안 그러면 레드하트 간호사님이 호신용구를 갖추고 들어가실 겁니다." 그는 치어릴리를 데리고 살기를 흘리는 페가수스에게서 멀어져 갔다. "치어릴리 선생님일단 잠깐 앉으시죠뭐라도 마실 걸 내오겠습니다선생님 교실에는 헤이브리즈를 보내 놓았으니 괜찮을 겁니다모든 게 다 괜찮을 테니 안심하세요선생님 학생들은 무사합니다."

 

"어떻게 멀쩡히 수업 잘 하던 교실로 들어와서그것도 아직 어린 아이들이 배우는 곳에 들어와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죠?" 치어릴리는 부들부들 떨며 카우치로 걸어가 앉아 울기 시작했다스쿠틀루의 눈으로 보자면모퉁이 쪽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쳐 왔지만...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척 하지는 않겠습니다치어릴리 선생님저는 오직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

 

'평화'란 말은 흐느끼는 치어릴리의 목소리와 같이 스쿠틀루의 귓가에 들려왔다그녀의 숨소리는 공포에 질려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달고 덜덜 떠는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로 변했다아이들의 눈은 두려움에 커져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다들 그렇게 무서워하는데?" 스쿠틀루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앉아 산발이 된 검은 갈기를 발굽으로 빗었다. "이들은 알 필요가 있어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반드시 알아야만 한다고."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몸을 떨었다감옥 가운데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스쿠틀루는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우린 모두 죽게 될 거야우린 모두 죽게 될 거라고저들 모두에게 말하고 싶어그것뿐인데..." 그녀는 두 눈을 꽉 감았다감은 눈 저편으로빙빙 돌아가는 기억의 소용돌이가 보였다아이들의 겁에 질린 얼굴들이 보였다. "아오작작하라고진짜 공포가 뭔지도 모르면서그만 울어그만 울라고... 그만... 그만!!"

 

그 순간감방 안에 녹색 빛이 감돌았다스쿠틀루는 깜짝 놀라 숨이 막혔다순간경찰관 하나가 전등을 물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하지만 치어릴리와 실버트롯은 저기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에메랄드 빛이 다시 한 번 깜박이더니 조악한 침대부터 시작해 온 콘크리트 벽을 태우며 서서히 방을 채웠다연갈색 페가수스는 덜덜 떨며 일어나 비취색의 화염이 방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바라보았고그 화염은 이내 그녀 주변까지 번져와...그녀를 집어삼켰다순간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모니 호를 이륙시킬 때 드는 느낌과 똑같았다스쿠틀루의 연갈색 몸은 이내 갈색으로 변했고길고 검은 갈기는 까칠하게 자란 짧은 보랏빛 갈기로 변했다눈을 깜박이자 호박색이었던 눈은 이내 진홍색으로 변했다그녀는 다 타 버린 마법진 안에동굴 같은 연구실 안에 멍청하게 서 있었다스파이크는 고요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썩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았다.

 

"..." 스쿠틀루가 눈을 꿈벅였다. "나 돌아온 거야벌써?" 그녀는 새파랗게 질려 눈앞의 보랏빛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난 적어도 5일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어떻게 된 거야?"

 

스파이크는 톱니 같은 손에 뺨을 괴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너한테 일주일 정도는 과거로 보내 둘 수 있을 정도로 화염을 비축해 두었다고 얘기했었지다만난 네가 그렇게 막 나가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야."

 

"하지만... 하지만 왜스파이크." 스쿠틀루는 억지로 목소리를 크게 내려고 애쓰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그녀의 목소리는 오히려 꺼져가는 듯 했다. "정보를 얻으려고 날 돌려보낸 걸로 기억하는데."

 

스파이크의 눈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고이내 중얼거리듯 말을 꺼냈다. "잘 생각해 봐스쿠틀루'미묘하게행동하지 않았어." 그는 두 손을 내리고는 몸을 굽혀 스쿠틀루를 깊은 눈초리로 노려보며 말했다. "내 충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더군뭐라고 변명할 거지?"

 

스쿠틀루는 스파이크의 시선에 풀이 죽었다무서워하던 망아지들의 눈처럼아직도 생생한 그 모습처럼그녀의 시선이 마구 흔들렸다그녀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알았어?"

 

"내가 널 알잖니스쿠틀루." 스파이크는 그녀 주변을 빙빙 돌다가 연구실 한가운데서 발을 멈췄다그는 천천히 스쿠틀루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까칠한 갈기를 쓰다듬었다. "네가 살아오며 수많은 것들을 배우고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을 읽고수백 번씩 닥쳐온 죽음의 손아귀에서그 공포의 손에서 살아나오고피에 굶주린 괴물 놈들에게서 수백 번씩 도망쳐 오긴 했어하지만네 본모습은 여전해늠름하고 대담한데다 용감하기까지 하지만포니빌 길거리를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던그 저돌적인 어린아이가 바로 너잖아." 그의 입술이 살짝 굽어졌다. "네가 아무리 그 거친 세월을 보내 왔다곤 하지만넌 여전해날 놀리던 사내놈들 둘을 때려눕힌 용감한 어린 망아지 그대로야. 4월이던가비 오던 오후에 같이 앉아서 장난하던 그 때 얘기를 하는 거야기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네가 구한 그 조그마한 드래곤이었던 난 그 때 네가 날 구하려고 했던 것이 아직도 고마워비록 내가 도와 줄 순 없었지만난 네가 가슴으로 행동하는 만큼이라도 이성적인 판단을 했으면 싶었어."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그녀는 눈물 젖은 눈으로 스파이크를 올려다보았다. "얘기...했어스파이크."

 

"누구에게 이야기했다는 거야스쿠틀루?"

 

"치어릴리 선생님그리고 경찰 둘... 그리고... ... 아이들한테..." 그녀의 몸은 고통스러운 듯 떨리고 있었다. "다들 들었어세계가 멸망할 거라고다 들었어그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더라고..." 스쿠틀루는 몸을 움츠렸다. "정말 그랬어제기랄정말 미쳐 있었다고하지만...하지만..."

 

"다 털어놓아도 돼."

 

"스파이크네가 나한테 시킨 게 뭔지는 똑바로 알고 있는 거야?!" 스쿠틀루는 끝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눈물이 뺨 위로 흐르고 있었다. "그 끔찍한 진실을 내 안에 가두고절대 말하지 말라고 그랬잖아그러면서걔들한테서 세계가 왜 멸망할지어떻게든 도움을 받으라고말할 수밖에 없었어누군가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하지만넌 그 진실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었어다만 좀 눈치껏 했어야 했지만." 스파이크가 그녀의 갈기를 부드럽게 톡톡 치며 고개를 숙여 스쿠틀루와 눈을 맞추었다. "미묘하게 말야스쿠틀루도저히 충분히 이야기해 줄 수 없었어그들은 네가 겪은 재앙을 겪지 않았고살아 보려고 아둥바둥해 본 적도 없어생각해 봐네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세계가 멸망한다라고 소리지른다고 하면누가 널 믿어 주겠어안 믿거나 충격받거나둘 중 하나밖에 더하겠어?"

 

"따뜻한 태양 아래 서 있었어..." 스쿠틀루는 부들부들 떨리는 발굽으로 거칠게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흐느끼는 목소리였다. "풀도 자라고 있었고새들도 있었고애들도 있었어애들이 있었다고스파이크내가 애들한테 겁을 줬어내가 애들한테 소리를 질렀다고." 그녀는 눈을 꽉 감았고 몸을 떨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몰라그건...마치..."

 

"화가 났었구나."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그녀는 힘없이 그녀의 오랜 친구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나 무섭고 끔찍했는지 몰라."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걔들은 내가 걔들을 시기하게만 만들었어."

 

"걔들은 죽었어스쿠틀루전부 죽어 버렸다고그리고 너와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 스파이크가 말했다. "재앙이 어쨌든재난이 어쨌든여전히 그건 우리의 가장 큰 공통분모지살면서 누군가를 질투하고동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동전의 양면 같은 거지하지만그게 애들을 앉혀놓고 너희 죽어이렇게 말해도 된다는 건 아니잖아걔들을 욕하는 건 걔들 비석 앞에 가서 해도 돼하지만 바로 앞에서 하는 건 아니야."

 

그녀는 축 처져 연구실 테이블로 걸어가 아무렇게나 털썩 앉았다그녀는 피곤하다는 듯 포갠 두 발굽 위로 얼굴을 비볐다. "이제 뭐 더 쓸 거라도 있어?" 그녀는 슬픈 듯 벽에 검댕으로 그려진 도표만 바라보고 있었다과거와 미래, X표식을 둘러싸고 비취색 선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망쳤어스파이크시간을 거슬러 갔지만 내가 다 망쳐 놨어내가 모든 걸 망쳐 버린 거야."

 

"내가 보기에는 별로 그런 것 같진 않아." 스파이크의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이 어려 있었고그는 발을 질질 끌며 방을 가로질러 왔다. "물론 네가 좀 실수를 한 건 확실해하지만 그게 모든 걸 망쳤다는 얘기는 아니야."

 

"진짜?" 스쿠틀루가 시선을 돌려 스파이크를 바라보았다찡그려진 얼굴이 스파이크를 향했다. "그래서애들로 가득한 교실에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건 '망치기에는부족하단 말이야너 산에서 너무 오래 처박혀 있던 거 아냐?"

 

"난 트와일라잇의 훌륭한 조수였다고내 과제는 끝냈어." 스파이크가 두꺼운 종이들로 가득한 선반 위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이윽고 그는 둘둘 말린 종이를 꺼냈다그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놓인 두루마리는 마치 종이조각처럼 보였다스파이크의 비늘 덮인 다리가 스쿠틀루를 향했고이내 꿇어 앉으며 두루마리를 그녀 앞에 놓았다. "포니빌의 모든 산 것들이 죽었다고 해도그들이 남긴 유산은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어정말 별 것 아닌 기록들도 여전히 보존되어 있더군시간이 남을 때 저기 저 폐허정확히는 포니빌 경찰서의 문서보관소를 찾아보니 나오더라고."

 

그녀는 눈썹을 치키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흥미로운 듯 눈앞에 놓인 두루마리를 잡아당겨 봉인을 뜯었다. 25년의 세월을 버텨낸 문서가 펼쳐졌다그녀의 눈동자가 단정히 쓰여진 글자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고문서의 마지막 부분을 읽던 눈은 반짝 뜨였다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미친 페가수스'에 대한 보고서네치어릴리 선생님의 교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즉시 감옥에 가두고 즉시 정신감정을 시행하기 위해 전문의를 호출함그러나 경찰관들이 간호사를 데려왔을 때용의자 사라짐..." 그녀의 시선은 동굴 한쪽 벽을 향했다. "스파이크 '미친 페가수스'가 나야."

 

"적절하게 잘 쓴 보고서지나도 대충 상상은 가더라." 스파이크가 부드럽게 소리내어 웃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거야?" 스쿠틀루의 눈이 가늘어지며 스파이크를 향했다.

 

그는 순진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뒷목을 쓸었다. "그냥 예상만 하고 있었지내가 시간 역행을 시작한 이래로 시간이 완벽하게 앞뒤가 들어맞은 걸 처음 보는 일은 아니거든그러니 나한테는 전혀 놀라울 게 없는 일이지오히려 우리는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고."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 '페가수스'에 대해서 더 나와 있는 게 있니?"

 

스쿠틀루가 다시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진홍색 눈동자가 좁아졌다그녀는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치어릴리와 몇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용의자의 인상착의에 대해 수사함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즉시 검색했으나 일치하는 데이터 없었음. 2주가 되지 않아 골드메인 보안관이 공개 수배할 필요는 없는 사건이라고 판단함." 그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런 젠장내가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나쁘다고 속단하기는 너무 일러스쿠틀루." 스파이크가 말했다. "내가 똑바로 기억한다면 말이지치어릴리가 재직하던 그 학교는 이상한 일 정도는 늘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일어났다고언제 겨울이던가그 때 창문만 세 번 바꿨었거든어떤 우편배달부 페가수스 하나가 비행 기준 고도를 어기고 너무 낮게 날아 버려서 말이야너도 알고 있겠지만포니빌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해 준 건 이 불모지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해 준 것들과는 완전 다르다고." 스파이크가 능청스레 웃었다.

 

"......" 스쿠틀루는 숨을 들이마시고 두루마리를 스파이크에게 건넸다. "이것 말고도 내 시간 역행의 증거가 네'서고'에 남아 있는지 알고 싶어."

 

그는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는 고개를 저었다보랏빛 펜던트가 흔들거렸다. "아니없어하지만 굳이 들어야겠다면앞으로 남을 그 증거들은 아주 훌륭하고 멋진 증거들이 될 거야."

 

"?"

 

"왜냐면넌 이제 내 충고를 따를 테니까 말야!" 스파이크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그는 이내 두루마리를 집어넣더니 문서보관함을 닫았다. "그리고다음 번에 과거로 갈 때는 조심 좀 해 줬으면 좋겠어. '미묘'하게 말야."

 

그녀는 눈을 꿈벅였다눈이 커졌다. "날 다시 과거로 보내겠다고지금 당장내가 이렇게 멍청한 짓거리를 벌였는데?"

 

"물론 널 그렇게 오랜 과거로 보내진 않을 거야." 스파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너무 가까워서도 안 돼." 스파이크가 다른 보관함으로 걸어가더니 납과 강철로 된 상자를 집어 올렸다. "혹시 모르니까이번엔 널...어디 보자...'치어릴리 사건' 1개월 뒤로 보낼 생각이야."

 

"그럼 재앙 전까지는 세 달밖에 안 남잖아." 스쿠틀루가 말했다그녀의 눈은 다 안다는 듯 가늘어졌고눈 앞의 스파이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넌 이 모든 걸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잖아안 그래치어릴리 선생님은 그냥 테스트일 뿐이었고 말이야!"

 

"확실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상자를 집은 채로 걸터앉았고이내 스쿠틀루 앞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이번에 네가 갈 곳 역시 다른 테스트가 될 거야이번에는 네가 과거에 잘 섞일 수 있을 만한 끈기가 있는지 시험할 거야얼굴과 이름그리고 그들 자체와 잘 적응하는지를 시험할 거란 얘기야왜냐 하면이번에 네가 진실을 찾아 갈 곳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는 곳이니까."

 

"뭔가 날 과거로 보낼 때 날 '고정'할 대상이 누가 될지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녀는 상자를 흘끗 보며 일어나 스파이크의 옆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여기엔 누구의 재가 들어 있는 거야?"

 

"재는 없어스쿠틀루 '고정'시킬 포니의 재는 여기 안 들어 있어."

 

"없다고?" 스쿠틀루가 깜짝 놀라 눈만 깜박이며 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어쩌면 내가 시간 역행에 통달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스파이크는 잠긴 납 상자를 열며 말했다상자가 열리며 녹슨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니면 내가 이 폐허에서 으뜸가는 폐허 청소부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그는 상자에 손을 넣어 몇 개의 목걸이를 꺼냈다자그마한 칼슘질 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스쿠틀루네가 이 실험에 완전히 전념할 거라면그리고 네가 치어릴리 선생님 사건 같은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그건 전적으로 너한테 달린 거야."

 

"왜 너랑 테스트만 하면 늘 이러는지 모르겠다." 스쿠틀루는 스파이크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녀는 스파이크의 손에 매달려 흔들리는 조각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건 뭐야?"

 

"아기 드래곤의 이빨이야마법에 극도로 예민한 물건이라고 알려져 있지."

 

"누구 이빨인데?" 스쿠틀루가 숨을 들이쉬며 말했고이내 두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어디좀 맞춰 볼까..."

 

"물론내 이빨이야." 스파이크가 웃으며 말했다그 웃음은 이내 한숨에 섞여 녹아 버렸다. "수백 년 전부터 모아 왔지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말이야그리고...드디어 그 순간이 왔네." 스파이크의 얼굴은 손에 들려 흔들리는 이빨들과 동굴을 밝히는 보랏빛 불빛 사이로 왔다 갔다 했다. "이 이빨들은 각각 다른 영혼에 알맞게 조정된 것들이야내가 알고 지냈었고내가 너의 영혼을 '고정'할 만한 포니들의 영혼 말이지이 이빨들이 있으면 이퀘스트리아가 멸망하기 전에 우리와 같이 할 수 있었던 옛 친구들을 지금 여기이 폐허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그리고 네가 한 번 그 실험을 끝내고 나면..."

 

"...그들의 재를 얻을 수 있겠지." 스쿠틀루가 침을 삼키며 말했다. "'고정'에 필요한 재들을 얻을 수 있겠지." 스쿠틀루는 슬픈 듯 스파이크를 올려다보았다. "스파이크왜 날 과거로 돌려보내기 전에 치어릴리 선생님의 재밖에 없다고 얘기해 주지 않은 거야?"

 

스파이크의 콧구멍에서 거무스름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네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를 실행해 줘야 하는데계속 입을 닫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

 

"스파이크네가 날 영원히 지켜 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도 그 진실은 아주 잘 알고 있어." 스파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렌지빛 끈으로 묶어 둔 이빨을 건네주었다. "그게 바로 내가 널 믿는 이유야네가 이 연구를 진행하는 데 완벽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 이유고네가 다음 번의 시간 역행에도 잘 준비되어 있다고 믿는 이유기도 하지."

 

그녀는 살짝 오렌지빛이 감도는 이빨을 눈 앞에 대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두 눈이 가늘어졌다. "우리가 같이 이 일을 하게 될 건 어떻게 안 거야이 이빨이 알려 줬나?"

 

"내가 재앙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널 보낼 순 있다는 데서 착안한 거야." 스파이크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포니들의 영혼의 정수야말로 이 마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드래곤 이빨은 우리가 필요한 재를 찾는 데 도움을 줄 거야하지만 난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어그게 내 이빨인데도 말이지."

 

그녀는 이빨을 골똘히 주시하기 시작했다땀이 흘렀다. "... 나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스파이크"

 

"." 그가 차분하게 숨을 내쉬었다. "편안하게 해너무 신경 쓰지 말고그저 느끼기만 해."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흔들리는 이빨을 그녀의 심장 가까이 대고고개를 숙여 더욱 가까이에서 바라보았다몇 번의 거친 숨과 함께그녀는 마음속에 무언가를 그리려고 애썼다하지만그녀가 느낀 건 향기였다마른 건초의 냄새와 비옥한 토양녹슨 쟁기와 목제 멍에그리고 달콤한 붉은 과실의 향기가 느껴졌다그녀의 감은 눈 앞에 감미로운 녹색 나무들이 반짝이며 빛나는 정경이 그려졌다그녀는 진홍색 눈을 번쩍 떴다진실의 무게 앞에온 몸의 피가 엄청나게 흐르는 것 같았다.

 

"애플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