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 Everkind
"저기... 플러터샤이?"
"응, 왜 그래, 스쿠틀루?"
"에버프리 숲 있잖아, 어떻게 그 이름이 붙은 거야?"
"아. 아.... 그래, 좋은 질문이야, 스쿠틀루."
두 페가수스가 플러터샤이의 오두막 거실에 놓여 있던 녹색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나는 어른이었고 하나는 아이였다. 하나는 노란색이었고 하나는 오렌지색이었다. 둘은 다리를 접고 앉아 활짝 열린 오두막집의 창문 너머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오후의 비는 장막이 되어 세계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고, 바깥은 빗물로 철벅이며 자욱한 물안개를 피우고 있었다. 셀레스티아 공주가 다시 태양빛을 꺼내 저 천둥 치는 풍경 아득한 곳을 어둑하게 비추기 전에, 수십 개의 커다란 거울에 태양빛을 비추어 보기라도 하듯, 푸른 연무가 보였다. 꽤나 고풍스러운 집 주위로 펼쳐진 푸른 대지는 때마침 내려 주는 비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나뭇잎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끼잉대고 있었다.
"언니, 그 좋은 질문이란 게, 답을 안 해 줘도 좋은 질문이라는 건 아니지?" 몇 초의 편안한 정적이 흐른 뒤, 스쿠틀루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 어머! 정말 미안해, 스쿠틀루. 잠깐 딴생각을 좀 하느라......"
"난 괜찮아. 사과할 것 없어, 플러터샤이." 스쿠틀루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오두막 벽난로는 둘 뒤에서 따뜻하게 탁탁 하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고, 잘 마른 둘의 몸에 기분 좋은 온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바깥에 내리는 장맛비를, 둘은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비 오는 걸 되게 좋아하는 포니들이 많더라고. 스위티벨은 자장가 소리 같아서 좋다고 하고. 핑키 파이는 갈기가 젖는 게 좋대."
"핑키 파이는 늘 무언가를 적시는 걸 좋아한단다." 플러터샤이가 입을 열었고,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스쿠틀루의 웃음소리가 더해졌다. 플러터샤이가 빙긋 웃더니 한 마디 물음을 던졌다. "스쿠틀루, 너도 비를 좋아하니?"
한 쌍의 보라색 눈동자가 깜박였다. 비. 날지 못하는 망아지의 머릿속에 빗물을 먹어 서서히 썩어 가는 헛간의 대들보가 떠올랐다. 그리고 헛간 지붕은 비를 다 막아 주질 못해서, 어느 날 밤에 새어 들어오는 빗방울은 언제나, 언제나 어떻게든 뚝뚝 떨어져 스쿠틀루의 하나뿐인 담요를 축축하게 적셔 아이는 몸을 떨곤 했다.
"엄마랑 아빠가 그러는데, 비는 맞고 다니지 말랬어." 아이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일종의 무조건반사와 같은 것이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거라면 다른 페가수스한테 맡겨도 되는데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도통 모르겠어."
"저기... 음... 나도 물이 조금 무섭기는 해." 플러터샤이가 입을 열었다. 분홍 갈기로 가려진 얼굴에 홍조가 떠 있었다. "다른 것 중에서도 유독..."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한두 군데 빗물 고인 데 가 엎어져도 날개가 똑 하고 떨어져 나가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쳇!" 스쿠틀루는 툴툴대며 한쪽으로 몸을 굴렸고, 장난치듯 오렌지색 발굽으로 헤엄 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이는 좀 더 멀리까지 헤엄쳐 가려는 듯 더욱 몸을 꿈틀댔다. 스쿠틀루가 플러터샤이를 보고 눈을 찡긋해 보였다. "페가수스가 물에서 사는 포니들로부터 진화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거든. 날개 대신 아가미가 달려 있는 모습이라니, 상상이 가?"
"난... 음... 그런 얘기는 잘 모르겠어. 스쿠틀루."
"씨 포니(Sea Pony) 얘기를 안 믿는 거야?"
"저기... 난 그렇게 되는 게 좋은지 잘 모르겠어..."
"히히히!" 스쿠틀루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플러터샤이, 언니가 마음만 먹으면 진짜 재미있는 포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 미안해. 그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었—"
"하아, 플러터샤이. 그거 칭찬이야, 칭찬!" 망아지가 보라색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레인보우 대쉬랑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다며!"
"어, 맞아."
"대체 언제부터 농담하는 거랑 물어뜯는 거랑 분간도 못 하게 된 거야?"
"내가 네 나이였을 때, 그런 '농담'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단다. 그리고... 음... 그렇게 기분 좋은 말도 아니었어." 플러터샤이가 몸을 움츠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스쿠틀루는 깜짝 놀랐다. 아이는 몸을 똑바로 굴리고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녀는 미안함이 묻어나는 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플러터샤이. 정말... 정말 뭐라 해 줄 말이 없네. 내가 생각이 짧았어......"
"삶에 슬플 건 없어. 나에게 다가와 많은 것을 보여 주었고..." 플러터샤이가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또 나에게 주어졌음에 감사할 것들을 주었으니까. 스쿠틀루, 너희 친구들처럼 말이야. 너랑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 어떻게든 내가 내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때부터 모든 걸 바꿔 나가고 싶어. 분명 내가 지금 살아가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거고, 좀 더 나아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도 영향을 줄 거야. 스쿠틀루, 미안해할 것 없단다. 슬픔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지. 그리고, 그 스스로 어떤 가치를 품고 있기도 하단다."
"언니가 그렇다면야." 스쿠틀루가 나직이 중얼거렸고, 아이의 작은 날개는 살짝 늘어졌다.
그녀는 창문 가까이 있던 수풀을 바라보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은 잎사귀가 반짝이고 있었다. 두 송이의 흰 장미꽃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그 모습은 기념비에 새겨졌던 흰 이름과 비석들, 그리고 삶의 공백을 떠올리게 했다. 빗소리는 불현듯 낮아졌고, 그 소리에 아이는 언젠가 애플블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스미스 할머니의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던 낮은 바이올린 소리를 떠올렸다. 한 음악가의 발굽을 통해 연주되는 우울한 음색 안에는 거룩함과 힘찬 기운이 담겨 있었다.
다른 큐티마크 크루세이더 아이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스쿠틀루는 가끔 언젠가 레코드 플레이어를 하나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면 친구들이 '지루하고 딱딱하다'며 싫어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자리에 앉아 바이올린의 음색에 빠지는 것은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는 일이나, 집라인을 타는 일이나, 악어와 레슬링을 벌이는 일과는 천지 차이였다. 특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외로운 순간에 그랬다. 스쿠틀루가 더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 더욱 그랬다. 여덟 살이었지만, 아이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세상 모든 것은 원래부터 가만히 있다가 가끔씩 움직이는 걸 좋아할지 모른다고. 지금 저 바깥에 드리워 아이를 둘러싼 먹구름과 익숙한 아름다운 목소리처럼.
"스쿠틀루, 혹시 지금 말해 줘도 되니?"
"음......" 망아지는 당황하며 시선을 돌렸다. "뭘?"
벽난로는 따뜻한 기운을 뻗어 둘을 감싸고 있었고, 플러터샤이의 얼굴은 살아 있는 보석처럼 웃음짓고 있었다. "에버프리 숲에 그 이름이 붙은 이유 말이야."
"어! 당연하지! 흠흠..." 어린 페가수스가 숫기 없이 웃으며 발굽을 흔들어 보였다. *"자, 그럼 시작하자!"
"시작하다니? 우, 우리가 뭐 같이 해야 할 일이라도—?"
원문은 Fire away. "그럼 말하세요." 와 '총을 쏘다' 라는 뜻을 이용한 말장난. 딱히 대체할 만한 게 없길래 변형. 원문 그대로 가자면 "내가 뭐, 뭐라도 쏴야 하니?" 식입니다. (Fire)
"플러터샤이......"
"아. 에헤헤헤... 흠흠. 에버프리란 이름은 파우스트메어와 다른 이들이 포니빌에 정착하기 전에 미리 조사를 나왔을 때 붙여진 이름이란다."
"알아요." 하모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검은 갈기가 그 뒤를 따랐다.
플러터샤이는 생각에 잠긴 듯 빽빽한 그림자가 드리운 숲 속을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여로의 끝이 흐릿하게 보여 오고 있었다. "아셨어요?"
황동색 페가수스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버프리 숲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 있거든요. 정말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얘기해 주신 분이 있었어요."
"어머. 그럼 제 이야기는 굳이 안 들으셔도 되겠네요." 플러터샤이의 발굽은 흐느적거리며 비옥한 검은 흙 위로 질질 끌렸다.
하모니가 빙긋 웃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듣고 싶은데요."
"하지만 하모니, 전에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셨—"
"플러터샤이, 지금 당신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 숲이에요. 이야기할 때마다 확실해지고 있지요. 또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드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는 '무엇'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에요. 특히 당신이 에버프리 숲에 대해 아는 것과,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그렇죠." 그녀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유쾌하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플러터샤이, 부탁이에요.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그녀는 가볍게 마른침을 삼켰고, 왕궁비서관 같은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며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당신 목소리는 참 듣기 좋아요."
플러터샤이의 노란 얼굴에 새빨간 홍조가 떠올랐다. 시간여행자의 말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든 없었든 관계없이, 그 말만으로도 플러터샤이의 몸 깊은 곳까지 기운을 불어넣기엔 충분했다. 그녀는 좀 전보다는 확실히 당당해진 걸음걸이로 '캔틀롯 왕궁비서관'의 옆에 다가갔고, 그 둘은 여전히 에버프리 숲의 한가운데로 향한 길을 걷고 있었다. 염소자리를 찾아서.
"뭐,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파우스트메어와 일행 개척자들이 발을 들여놓기 전에, 이 땅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어요. 어쨌든, 어딜 가든 포니들에게 해가 될 만한 것들이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특히, 안에 뭐가 사는지도 모를 숲이 가장 비옥한 농경지 근방에 있다면 더욱 그렇죠......"
"......그리고 그 때, 그러니까 제 3시대 중반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야생 동물들은 지금처럼 필요한 보호를 받지 못했단다."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그녀의 두 날개는 비가 들이치는 오두막집 창문 앞에서 가볍게 씰룩이고 있었다. "클라우드데일은 세워진 지 이백 년도 채 되지 않았단다. 너나 나 같은 페가수스들을 만나려면 스트라토폴리스까지 가야 했지. 동쪽 대양 근처에 세워진 도시였어. 지금의 스탈리온그라드의 남쪽이란다. 자, 그럼 이제 스쿠틀루 너도 알다시피, 어스 포니 혼자서만 포니빌을 세운 거야. 대지에서 살펴볼 수는 있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데 필요한 비행 능력은 없었거든."
"음, 그럼 적어도 보호 주문이라도 걸어 줄 유니콘도 없었단 말이야?"
"흐음... 네 말대로야. 그 때는 대도시 바깥으로 나가 살고 싶어하는 유니콘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거든. 물론 요즘에는 자주 보이지. 하지만 수백 년 전에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단다. 캔틀롯이나 위니페그 같은 곳이 아니면 살려고 하질 않았어. 그 바깥에서 유니콘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든 일이었단다. 천 명 중에 하나만 봐도 운이 좋은 거였으니까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루나 리퍼블릭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수의 유니콘들이 전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렇구나. 전에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그거 비슷한 얘기를 해 준 적 있었어."
"어스 포니들은 유니콘도, 페가수스도 없었기 때문에 이 땅을 조사하는 데 마법도, 비행사의 지원도 받을 수가 없었단다. 순전히 의지력과 용기 하나밖에 믿을 구석이 없었지. 이 말은, 그들이 계획을 계속 진행했다는 이야기야. 파우스트메어가 개척자 가족들과 같이 이퀘스트리아 대협곡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전에, 파우스트메어는 미리 용감한 포니들을 뽑아 그 땅을 미리 살펴보게 했어. 어스 포니에게 득이 되는 땅인지, 거기서 살 만 한지, 그리고 찾던 게 거기 있었는지 알아봐야 했거든. 선발대가 저 숲을 만난 장소가 바로 이 오두막 너머에 있단다."
"그리고, 그 선발대가 에버프리란 이름을 붙인 거지, 맞지?"
"음, 아뇨. 처음부터 그런 이름은 아니었어요." 플러터샤이는 초조한 듯 종종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드러난 나무뿌리와 그녀의 걸음걸이는 짧고 잦아서 닮았다.
하모니가 살짝 뛰었다. 시간여행자는 축축한 흙을 밟으며 원을 그렸고, 한 바퀴 돌고 뒷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나 쾅 하고 박수를 쳤다. "뭐, 언제부턴가 그런 이름이 붙었겠죠. 맞나요? 제 말은, 그 선발대 포니들이 숲 속으로 딱 한 걸음만 들어가서는 '에버머디'(Evermuddy. Muddy는 진창, 진흙투성이라는 뜻이 있음)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을 거란 거에요."
"다, 당연히 그런 건 아니죠." 플러터샤이의 노란 다리가 불안하게 흔들거리더니 덜덜 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발대도 감히 숲 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못 했어요. 이퀘스트리아 대협곡의 발길 닿지 않은 숲 속에는 맨티코어나 히드라, 팀버울프 같은 위험 생물들로 가득하다고 문헌에 나와 있었으니까요. 어마!" 플러터샤이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고, 곧장—
—마지막 포니의 품으로 떨어졌다. 하모니가 비록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숙련된 솜씨로 그녀를 받은 것이다. 하모니는 아직도 떨고 있는 페가수스를 부드럽게 내려 주며 말했다. "저기, 당신도 날개 있는데요." 그녀가 눈을 찡긋했다.
플러터샤이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단단히 접혀진 날개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혹시 제 날개한테 제 옆구리에 달린 존재가 바로 너라고 납득시키시려면 좀 더 행운이 따라야 할 거에요."
"헤헤......" 하모니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해 보였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근처의 수풀에는 관목들과 나비, 잽싸게 달려가는 양서류들로 가득했다. "자, 그래서 파우스트메어가 보낸 선발대는 어떻게 됐나요? 수많은 위험과 마주했나요, 아니면 충분히 모면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를 잘 굴렸나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어요. 숲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차린 야영지에서부터 수많은 짐승들이 공격해 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세상에! 좀 더 얘기해 주세요!"
"선발대에서 꽤 많은 부상자가 나왔어요. 선발대 대부분은 선발대장이 당장 파우스트메어에게 편지를 보내길 바랬죠. 이 땅은 도저히 우리가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적힌 편지를 말이에요. 어떤 저술가가 그에 관해 아주 유명한 저술을 남긴 게 있답니다. 잠깐만요, 그게 뭐더라...... 아! 흠흠. 그 저술가가 남긴 글은 이랬어요. 비록 공주님께서 '명백한 사명' 법령이 지극히 거룩하고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신다 해도, 이퀘스트리아 대협곡을 개척함에 있어 숲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아무리 잘 돼 봤자 숲은 지극히 위험하고, 또 위협적인 곳으로 영원히 남을 거라고."
(역주: 명백한 사명(Manifest Destiny): 1845년 미국의 텍사스 병합 당시 나온 논설에서 비롯된 말. 텍사스병합 이후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등의 합병 등 미국의 영토 확장주의 정책의 논거로서 사용되었다.)
"좀 더 긴 이름이었단다......"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이야. 온갖 미사여구를 잔뜩 갖다 붙이기라도 했나 보네."
"스쿠틀루, 그 시대는 단순한 시대였단다. 오늘날의 포니들처럼 많은 수식을 하지 않았어. 온갖 수사는 그냥 습관의 문제였으니까."
"그럼 그 이름은 대체 어떻게 붙은 건데? 혹시... 어... *'에버멜레볼런트' 이런 거였어?"
(역주: Ever-Malevolent. Malevolent 악의적인)
"음, 사실 좀 더 진취적인 배경이 있었단다."
"어, 진짜?"
"캔틀롯 왕궁에서는 파우스트메어의 편지를 반송해 버렸단다." 플러터샤이가 설명했다. "파우스트메어는 그... 음... 겁에 질려서는 별 말도 못하는 다른 포니들한테 아주 정나미가 떨어졌단다. 그래서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이퀘스트리아 대협곡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어. 자살행위에 가까운 행동이었지. 파우스트메어는 망아지, 그러니까 자기 딸을 데리고 갔단다. 당시의 통념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었지. 파우스트메어는 눈앞에 펼쳐진 그 위험한 모습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 오히려 짐승들의 공격으로 무너진 야영지를 직접 복구했단다. 야영지를 다시 세우고 난 다음에는 심복 몇몇을 데리고 에버프리 숲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어. 무섭기 짝이 없었던 에버프리 숲으로의 첫 번째 조사를 파우스트메어가 직접 지도한 거야. 그녀의 용감한 진두지휘 아래, 포니빌의 아버지들은 숲을 조사하면서 발견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단다. 단 일 주일 정도밖에 조사하지 않았는데도 수백 종의 못 보던 동물들을 찾을 수 있었지. 그 어떤 포니도 보지 못한 나무들과 기암괴석들도 있었어. 심지어 날씨마저도 완전히 달랐단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책을 한 권 내기에도 충분할 정도의 자료가 모였어. 그 책은 아직까지도 유명한 책이란다. 제목이 뭐냐 하면—"
"맞춰 볼게. '환상적인 야생 동물들과 함께하는 파우스트메어의 동물 농장'?"
"히히히... 아니야, 스쿠틀루. '한 여행가의 에버프리 숲 여행기' 정도로 보는 편이 좀더 괜찮을 것 같아.그래, 파우스트메어는 처음으로 개척 계획에 난색을 표하면서 반대한 이들의 부정적인 견해를 회피할 만한 수단을 찾아낸 거야. 그 책의 골자는 이거야. 이퀘스트리아 대협곡의 숲과 거주 지역에 경계를 설치하는 일은 아주 특수한 일이라는 거지.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말이야. 숲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수많은 동물들이 적당한 수를 유지하면서 번성하는 자유의 땅이었어. 여기저기 풀이 자라면 동물들은 그걸 먹고, 날씨는 자기 내키는 대로 변하는 땅 말이야. 그 누구라도 에버프리 숲을 관리하고자 한다면 환경을 부숴서 약화시키기보다는 그 안에 사는 놀라운 생명들을 모두 보존하면서 안고 가야만 한다는 거였어."
"파우스트메어가 고집불통에 근본주의적이기까지 한 환경보호 운동가였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하모니!" 플러터샤이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걷는 길가 옆에는 폭포가 반짝이며 떨어지고 있었고, 길은 낮게 뻗은 나뭇가지에 돋아난 나뭇잎으로 초록 장막이 덮인 것 같았다.
"헤헤헤...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시간여행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퀘스트리아의 문명이 닿지 않은 곳으로 세 살도 안 먹은 어린애를 데려갔고, 거기에 이 풀 나부랭이들에 대한 책을 오백 페이지가 넘게 썼다고요? 제가 보기엔 그 시대의 어스 포니들은 단순하기보다는... 꽤나 심심했던 것 같은데요."
"그냥 어스 포니 사회에서 파우스트메어가 좀 특출한 포니였을 뿐이에요. 용기와 끈기, 지도력이 아니더라도 그 분께서는 뛰어난 분이셨으니까요.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의 포니빌도 없었을 거에요. 아마 사계절 중에 한 계절도 못 넘기고 무너졌을 테니까요! 포니들이 야생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 주고, 또 존중하면서 공존하게 한 건 그야말로 혁신이었어요. 그 혁신에 뒤따른 무지와 공포를 극복해 낸 건 그분의 천재성 단 하나밖에 없었어요. 혁신을 이끈 것도 그 천재성 하나뿐이었죠."
"파우스트메어를 매우 높게 평가하시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분이 좋네요." 하모니가 씩 웃으며 삐죽 튀어나온 나뭇가지 몇 개를 구부려 주었다. 플러터샤이가 긁히지 않고 지나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진 모르겠는데, 파우스트메어 이야기를 하시기 전까지는 목소리에 힘이 쭉 빠져 있었거든요, 플러터샤이."
"오... 음..." 페가수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전 그저 포니빌의 설립자와 그분의 유산에 대해 말해 드리려던 것뿐인데요."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파우스트메어의 업적이라면 저도 좀 알거든요. 저... 음..." 하모니가 살짝 곁눈질을 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지금... 음... 수행하고 있는 업무를 받자마자 바로 그분의 업적에 대한 기록을 읽었거든요."
"그럼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인데, 굳이 저한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신 이유는 뭔가요?"
"플러터샤이, 제가 좀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었나요—?"
"염소자리를 찾는 동안 저한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신 데에 뭔가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걸요."
"뭐......" 하모니가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슬쩍 웃어 보였다. 그녀의 입에서 한 줄기 한없이 가벼운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마호가니 나무처럼 그어진 호박색 갈기 몇 가닥이 흔들렸다. "제가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 이유는 말이죠, 지금 당장 우리를 잡아먹었으면 소원이 없을 정신 나간 동물들로 가득한 숲 속으로 대략 이 킬로미터쯤 들어왔다는 사실을 잊게 하려고 한 거에요."
"어맛! 세상에세상에세상에!" 플러터샤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지막 포니에 찰싹 붙어 매달렸다. 그녀는 파묻은 얼굴과 꽉 감은 눈에서 수백만의 지진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듯 덜덜 떨고 있었다. "에버프리 숲으로 이 정도까지 들어왔을 줄은 몰랐어요! 꺄악! 저 나무, 저 나무, 저 나무에 온통 팀버울프의 발톱 자국이 나 있어요! 그리고 이 냄새! 쿠거(퓨마)가 우리를 몰래 쫓아오고 있었어요! 알아요! 이 냄새라면 스컹크로 가득 찬 곳을 사이에 두고서도 알아볼 수 있어요!"
"사실, 쿠거 냄새가 스컹크 냄새보다 더 지독하긴 하지요."
"하모니, 어떻게 그걸 아셨어요?"
"뭐, 제가... 음..." 하모니는 나뭇잎의 녹색 장막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녀의 눈앞에 구릿빛 거미가 매달아 놓은 달랑이는 거미줄이 들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는 고기 수프 너머로 비치는 전등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엔트로파의 몸 깊숙한 곳에서, 스쿠틀루가 습관적으로 내뱉곤 하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부끄러운 그 소리가. 그 소리를 억누르는 데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했다. "음, 뭐 그냥 많이 머... 음... 알아봤거든요. 쿠거에 대한 정보라면 많이 읽어 뒀어요."
"어마!" 플러터샤이는 여기저기 구멍이 난 노란 망토처럼 하모니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었다. "우리를 잡아먹고 말 거에요.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어요! 오... 대체 어쩌면 좋죠?"
"음... 언제부터 '워시샤이'가 된 거에요?"
(역주: Wussyshy. Fluttershy에서 Flutter를 Wussy, 겁쟁이로 변환.)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플러터샤이..." 하모니가 다정하게 웃으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는 전혀 떨리지 않는 다리를 들어 플러터샤이의 떨리는 다리를 움켜잡았고, 그녀의 떨리는 푸른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당신은 당신이 일을 잘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일을 잘 했어요. 그런데, 대체 왜 그냥 일을 잘 하는 편에서만 끝내려고 하는 거죠?"
"하지만 숲 속까지 너무 깊이 들어왔고, 벌써 오두막으로 돌아갔어야 했을 시간이에요. 설령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밤이 되고 말 거에요! 그 누구도 밤 동안에 에버프리 숲에 있고 싶어하진 않을 거에요!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요!"
"수백 년 전에 이 숲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 없이, 덧붙여서 날개도 없고, 마법도 못 쓰고, 책 제목도 짧고 함축적으로 짓지도 못하는 저질스런 필력만 가진 파우스트메어에게도 이 숲 속으로 들어오는 건 자살 행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음..."
"플러터샤이..." 하모니는 낄낄 나오려는 웃음을 억누르고 그 대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모르시겠어요? 파우스트메어와 다른 개척자 포니들에 대한 당신의 존경심은 그냥 대리만족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요. 그건 당신이 누구인지 잘 드러내주는 거라고요. 당신은 강하고, 아는 것도 많아요. 그리고 당신은 다른 동물들을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재능도 타고났잖아요! 뭐, 당신은 그게 겁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아직도 모르겠어요? 무언가에 전심전력으로 매달리는 것 자체가 용기의 표현이에요. 그래요. 당신은 단순히 용감한 것 이상으로 용감한 포니에요!"
"음......" 플러터샤이는 몸을 웅크리며 분홍 꼬리 너머 뒤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근처의 그림자가 비쳤다. "하지만, 다 당신 덕이잖아요! 당신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생각도 못했을 거라고요!"
"플러터샤이, 떨고 싶으면 떨어도 돼요. 하지만... 아, 나. 썅!"
플러터샤이는 시간여행자의 생각대로 얌전히 몸을 떨고만 있었다.
하모니는 잠시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제가 한 건 그냥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당신 이야기를 들은 것밖에 없어요. 그... 어... 염소자리 수색을 하는 동안 방향을 찾고, 길을 찾은 건 모두 당신이 한 일이에요."
"그래도 아직까지 못 찾았잖아요."
"그래도 찾을 거에요, 플러터샤이! 제가 당신한테 그러는 것처럼, 믿음을 좀 가져 보세요! 제가 그 덩치만 큰 녀석을 찾는 데 뭔가 결정적인 힌트를 갖고 있을 것 같은가요? 헤, 아니에요! 제가 이 숲에 아는 거라고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우리가 사실상 길을 잃었다는 거 하나 말이에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한쪽으로 젖혀 푸른 경치를 바라보았다. 눈이 한 번 깜박이자 그녀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잠깐만요, 이런 젠장. 길을 잃었다고요. 이제... 아으... 망할. 여기가 대체 어디래...?"
"음! 알아요! 알아요! 제가 알아요! 오, 하모니, 정말 죄송—"
"헤. 사소한 문제일 뿐이에요."
"사소하다뇨...?"
"최악의 상황에는 우리 둘 다 날아서 이 숲에서 벗어날 거에요. 제 보조 역할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라는 거, 아시죠?" 그녀는 플러터샤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다시 웃어 보였다. "그렇게만 생각하세요. 이제 변명의 여지는 없어요. 염소자리를 데리고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요. 여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는데, 그 클라우드데일 뭐시깽이 위원회에서 당신한테 더 던져준 일은 더 없나요?"
"하지만 제가 너무 놀라면 어떡하죠?" 플러터샤이가 마른침을 삼키고 몸을 떨었다. "혹시 제가 당신을 여기 버려두고 날아서 오두막집으로 가 버리면 어쩌죠?"
하모니는 플러터샤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과연 그럴까, 싶은 눈초리로 플러터샤이의 노란 날개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도 한번 깜박이지 않으며 다시 플러터샤이를 쳐다보았다.
플러터샤이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 그렇죠. 음... 이제 염소자리를 찾으러 갈까요..." 그녀는 다리를 떨면서도 용감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 분에 오십 센티미터를 갈까 말까 한 걸음걸이였지만, 시간여행자의 얼굴에 다시 미소를 띄우는 데는 충분했다.
"걱정 말아요, 플러터샤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필요하다면 우리 둘 다 지킬 자신이 있고, 또 그렇게 할 거니까요. 그래도 제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당신, 완전 끝내주잖아요!"
"격려의 말씀이 참... 멋지긴 하지만... 그만큼... 음... 좀 비뚤어진 면이 있네요."
"왜 그렇게 세상 딱딱하게 살아요?!" 하모니가 외치듯 말했다. "세상에, 세상에. 전 그냥 당신이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는 그 로즈파트 과장의 상판에 당신의 능력을 뽐내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뿐이라고요!"
"레드게일 부서장이에요."
"무슨 상관이에요. 어쨌든, 당신 능력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요?" 하모니가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녀는 플러터샤이의 '용감한' 걸음걸이에 맞추어 주려고 일부러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자의식 과잉 늙은이는 당신을 나약하고 무력한 포니 다루듯 하잖아요."
"하지만 전 정말로 나약하고 무력한걸요."
하모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이나 누군가를 꽉 껴안아 주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엔트로파 공주의 몸 안에서 고동치는 무언가를 느끼며 신음하듯 숨을 흘렸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플러터샤이, 다른 포니들이 당신을 그 모양으로 대접하게 내버려 뒀다가는 당신 인생도 그 모양이 되고 말 거에요. 그 다른 포니들이 클라우드데일의 고위 공무원이 됐든, 캔틀롯 포니가 됐든,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됐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당신 스스로와 당신 일에 좀 더 믿음을 가져야 해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이상의 온갖 놀라운 것들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죠!"
"전... 어... 전 제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믿음을 얻는다고 봐야겠죠."
"결론은 똑같은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 그렇지도 않아요, 하모니. 제가 좀 전에 말해 드렸듯이, 전 아주 나약하고 무력하답니다."
"하아... 플러터샤이..."
"끝까지 들어 주세요."
플러터샤이의 말은 지극히 엄격한 하나의 명령이어서 빛 바랜 루비의 색을 닮은 한 늙은 페가수스의 말을 닮았다. 마지막 포니는 플러터샤이가 갑자기 꺼낸 명령에 즉시 입을 다물었고, 플러터샤이는 말을 이었다.
"저는 결점이 있고, 못난 구석도 있어요. 제가 그것들을 어떻게 손볼 수 있는 방법도 없죠. 그것들도 어쨌든 제 본질이니까요. 하지만... 음... 지금의 저와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은... 제 단점에도, 전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포니가 되고 싶어서 아주 오랫동안 노력해 온 결과물이랍니다. 그러니 하모니, 제가 제 입으로 저한테 약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냥 받아들여 주셨으면 해요. 제 말은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한 것이니까요. 혹시 의심이 남으신다면 클라우드데일의 의료 기록을 확인해 보시면 아실 거에요. 저는 출산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세상에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 다리가 아주 약했답니다. 날개를 피는 데도 평균보다 일 년이 더 걸렸죠. 그래서 제 또래들이 다 비행 과정을 수료했을 때 저 혼자만 통과하지 못했죠. 그 외에도, 마법 치료에도 아주 예민해서 부작용이 잦았어요. 다른 의료 관련 공포증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아요. 이것들은 모두 제 삶에서 지극한 진실이자 현실이었고, 분명히 존재했었던 것들이에요. 이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제가 포니빌 수석 동물훈련사가 되기 위해 걸어간 모든 시간들을 부정하는 것이고, 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해요."
의료 관련 공포증: X-ray 공포증이나 치과의사 공포증 등.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모습이 정말로 자랑스럽겠군요."
"맞아요. 바로 그게 문제에요, 하모니. 지금 여기까지 걸어왔지만, 여전히 전 수많은 결점들을 갖고 있어요. 제가 파우스트메어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인 업적을 남기더라도, 그것들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 제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관계없이, 그 약점들이 나타나고, 자꾸 따라와요. 그래서 제가 다 자란 드래곤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포니빌 주택가에 집을 하나 사는 것도 힘들어하죠.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가, 가족들이..."
하모니의 발굽 밑에 깔렸던 나뭇가지 몇 개가 으스러지며 세 번 우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그제서야 그녀는 플러터샤이가 말을 하다가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친절의 원소이자 그녀를 고정해 주는 기둥을 바라보았다. 플러터샤이의 고개는 늘어져 있었고, 걸음이 느린 한숨이 감겨 있었다. 그녀의 네 다리는 흔들림 없이 땅을 디디고 서 있었고, 발굽을 질질 끌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다리는 비단결 같은 갈기에서 몇 인치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렇게 걸어 왔던 듯 걸음은 익숙했고, 그 모습은 가엾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날개는 여전히 제자리에 박혀 움직이지 않아서 처음 구름을 밟아 보는 연약한 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에버프리 숲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걸음이, 이 위험한 걸음이 불현듯 무가치한 것으로 느껴졌다. 염소자리가 엄청난 위험에 빠져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모니는 플러터샤이가 평생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며, 오직 단점밖에 보지 않으며 느꼈을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녀 앞에서 축 처져 걸어가는 저 풀 죽은 포니에게 그건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여행자는 플러터샤이가 얼마나 쉽게 그 결론을 믿었을지 생각하자 몸을 떨었다. 다른 포니들이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안 좋은 생각들에, 플러터샤이는 빠지고 만 것이다.
플러터샤이는 천사였다. 언제든지 그녀를 물어뜯을 수 있다고, 육식동물의 잠깐의 피 끓는 충동으로도 충분하다고 위협하는 악마의 숲 가장자리에 내려와 자리잡은 천사였다. 포니빌은 늘 그러던 것처럼 즐거이 춤추며 오두막에서 멀어져 갔고, 주민들은 하나같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영혼으로 서 포니 문명과 우거진 나무숲 안에 숨은 은밀한 광기 사이의 보람 없는 수호자로 섰다. 뻔하디 뻔한 오명이 이 무서운 이분법적 결론을 만들었을 것이었고, 플러터샤이에게도 그녀 스스로 그런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을 거였다. 포니 사회의 심드렁한 모습은 방정맞게, 그리고 또 게으르게 저 가엾은 암말에 매달려 있었다.
하모니는 한숨지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그 어떤 천재지변보다도 무서운 재앙이 앞으로 세 달 하고도 반 달 후에 닥쳐올 것이었고, 지금 이 자리에는 지난날이 하나의 분수가 되어 겸손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는 불꽃과 잿가루가 날리는 그때보다도 마음 한편을 흔드는 슬픔과 비극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하모니는 순간 자신의 영혼이 담긴 엔트로파의 강한 몸으로 플러터샤이의 부드러운 몸을 언제까지나 안고 있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지독하게 끓어오르는 회색 하늘이 있는 곳으로 그녀를 데려오고 싶었다. 데려와 부드럽게 웃어 주며 그녀의 결점은 포니 사회의 모든 좋은 것들을 지키려는 삶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거라고, 별로 상관도 없는 것들이라고 알려 주고 싶었다. 비록 플러터샤이가 언제나 숙이고 있던 고개를 다시 들 수 있을 용기, 어쩌면 허락이 없더라도 그녀는 그 모든 가치의 완벽한 귀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포니는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았다. 에버프리 숲이 단순히 플러터샤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면, 황무지는 말 그대로 그녀를 파괴하고 말 것이었으니까. 소중한 세계에 살던 소중한 것들과 플러터샤이의 충고는 그녀가 결점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안고 갈 지혜로서 노래하고 있었다. 슬픔은 행복이 있기에 존재했고, 하모니는 불현듯 너무나 지치고 아팠다. 녹색 불꽃에 휩싸여 엔트로파의 화신(化身)으로 여기에 오기 전부터 신랄하던 한 포니의 성정은 더 이상 플러터샤이를 두고 골머리를 앓기에는 너무 피곤해져 있었다. 수많은 쇠도리깨로 머리를 두들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플러터샤이의 정신을 찾는 일은 염소자리를 찾는 일과 같을 것이었다.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었고, 시간은 하모니에게 있어 약점이 아니었다. 그 시간이 플러터샤이의 시간인 이상 말이다.
"플러터샤이, 에버프리 숲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세요." 그녀는 플러터샤이의 옆으로 다가가며 깊은 생각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플러터샤이가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치키며 대꾸했다. "더 들으셔야 할 게 있나요?" 그녀는 눈을 깜박이더니 음산하게 드리운 나뭇잎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면, 더 보셔야 할 게 있는 건가요?"
"생각해 볼 게 있다, 는 어떤가요?" 하모니가 싱긋 웃었다. "이런 음침한 곳 근처에서 사시는 걸로 봐선, 단순한 역사 수업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전... 어..." 플러터샤이가 마지막으로 몸을 떨었다. 그림자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 에버프리 숲은... 어... 제 철학을 비추는 거울 같아요."
"플러터샤이의 철학이라고요?" 하모니가 활짝 웃었다. "들어봐야겠는데요."
"하모니, 공주님께 제가 인근 식물들에 대해 잘 안다거나, 아니면 숲 바깥으로 패러스프라이트가 확산하는 걸 막는 방법을 안다거나 하는 사실들을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 건 염소자리를 찾고 난 다음에 들어 봐도 돼요. 플러터샤이, 말씀해 주세요. 솔직히 당신도 말해 주고 싶잖아요."
"제가요?"
"언니가 에버프리 숲에 꽤 호의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 어린 스쿠틀루가 창문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내 말은, 코카트리스가 산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야, 에버프리 숲도 그냥 평범한 숲이었거든. 왜 언니가 그렇게 무서워하는지도 알 것 같아."
"무서운 것들은 그 자체로 품위를 가진단다, 스쿠틀루. 내 말이 조금... 음... 바보 같을 거라는 건 알아. 겁쟁이 포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당연하지..."
"플러터샤이, 언니는 내가 아는 가장 용감한 포니들 중의 하나야."
"히히히... 어떤 날씨 관리 비행사를 잊은 것 같지 않니?"
"글쎄... 가장 용감한 포니 중 하나라고 한 것 같은데."
"그렇구나."
"그런데 말이지, 솔직하게 얘기할게. 그 추잡한 코카트리스를 노려봐서 쫓아낸 거 말이야, 진짜 끝내줬어!"
"너와 네 친구들 같은 소중한 포니들을 지키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야. 하지만 사실, 에버프리 숲은 단순히 무서운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곳 그 이상이란다. 뭔가 생명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그곳의 자연은 순환하거든. 그래서 에버프리 숲의 생물들이 다른 곳 못지않게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거고. 나는 그 모든 것이 정신 때문이라고 믿어. 단 하나 존재하는 정신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돌봐 주고 있다고 말이야. 어떻게 보면 그것들은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 모두도... 한 생명의 일부인걸. 우리 모두 그 목적이 있어.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싸우는 것보다는 서로를 도와 주는 게 그 목적이야. 설령 우리가 서로를 돕는 방식이... 음... 아주 잔혹하고... 또 아주 무서운 경쟁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해도."
"언니, 정말로 그걸 믿어?"
"스쿠틀루, 나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니? 세상 모든 것을 감싸 주는 친절의 정신이 있다고, 난 그렇게 확신해."
숲 속의 작은 빈터는 에메랄드처럼 푸르렀고, 나이를 안 먹는 나무들의 그림자로 거미줄이 끼었다. 두 페가수스는 그림자의 거미줄을 헤치고 염소자리를 찾아 걸어가고 있었다. 둘은 날개를 펼치지 않고 뿌리덮개의 언덕을 올랐고, 오래 묵은 삼나무는 뿌리째 뽑혀 자신의 장(腸)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뒤틀린 나뭇잎이 줄지어 늘어섰고, 그 위에는 장막 같은 이끼가 덮여 있었다. 둘은 그 사이를 헤치고 걸어갔다. 에버프리 숲의 미궁 같은 안은 당장이라도 자신의 거대하고 푸르른 몸뚱이 밖으로 두 이물질을 토해내기라도 할 양인지 몸을 떨었다.4
튀어나온 나뭇가지에서 무언가 거칠고 털로 덮인 것의 그림자가 휙 하고 지나갔다. 하모니는 아장아장 걷고 있는 플러터샤이보다 먼저 그 그림자를 잡아냈고, 그녀가 계속 앞으로, 더욱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풀 덮인 곳에 가 움직일 줄 몰랐다. 어쩌면 귀중한 우주의 생명이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아니, 제발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숲은 더욱 단단하게 조이며 다가왔고, 숲의 걸음걸이는 생기 없이 둔감해서 질질 끌렸다. 하모니는 좀 더 확실하게 숲을 감시하기로 했다. 플러터샤이는 하모니가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두 포니 사이의 거리는 이십 미터에서 삼십 미터로, 사십 미터로 벌어져 갔다. 하모니는 녹색 화염의 고정 범위를 시험하고 있었다.
하모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청나게 큰 나무의 가장 위에 매달린 녹색 나뭇잎 정도까지 고도를 높였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는 무언가 움직이진 않는지, 여기저기 훑어보고 있었다. 숲의 광활한 녹색 바다 속에서 홀로 반짝이는 염소자리의 실루엣이 그녀가 찾는 것이었다. 마지막 포니가 날고 있는 고도에서 염소자리의 흔적을 찾아낸다면 바로 염소자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고, 이는 성공적으로 조사가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언제라도 녹색 불꽃이 튀어나와 그녀를 낚아채 어둡고, 가시 돋친 세계로 다시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으르렁거리며 그녀의 죽음을 예비할 푸른 짐승이 있을 것이었다.
저 위의 하늘은, 그 무엇인지 모를 희미한 금빛 섬광이 조각조각 찢어져 자신의 생명으로 숲을 덮는 나뭇잎 사이로 번져 가고 있었고, 부드러운 푸른 하늘색은 가을의 노랑으로 서서히 녹아 정오를 향하여 떠오르던 그날의 아침을 생각하게 했다. 이퀘스트리아의 하루는 빠르게 저물었다. 하루가 빨라서 시간여행자는 다시 놀랐다. 셀레스티아 공주가 띄우고 내리는 태양,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을 태양의 운행은 회색 황무지의 기나긴 장송곡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시였다. 하모니는 언젠가 자신이 과거 속의 존재가 되어 한 포니를, 한 시점을, 한 순간을 지지할 기둥이 되어 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저 가만히 누워 돌고 도는 하루가 그녀를 씻어주는 손길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마지막 포니는 스스로를 타일러야 했다. 그녀와 스파이크의 힘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곳에서 멈추었다. 영원한 시간에 둘의 힘은 닿지 못했다.
하모니는 한 시간 내내 하늘을 날아다니다 비로소 생기로 탄력 있는 에버프리 숲의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두 힘없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는 것으로 플러터샤이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플러터샤이를 설득해 숲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건 시간여행자였다. 그리고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도와 줬지만, 플러터샤이는 레드게일 부서장이 명령한 그 생물에게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하모니는 자기가 여기 오기 전에 플러터샤이가 직접 숲 속으로 들어갔다면 조금이나마 운이 따라 주지 않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염소자리는 그 누구에게도 자기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설령 1개 군단 전원이 파견된다 하더라도 떨어진 염소자리를 찾을 길은 없을 성싶었다.
한 시간 반 동안 그들은 걸었다. 하모니는 플러터샤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왠지 깊은 수치심이 그녀의 영혼 깊숙이 가 박혔다. 그 느낌은 백만의 트롤이 몰려와 창을 꽂아 넣는 것보다도 더한 느낌이었다. 하모니가 가까스로 포니빌 동물훈련사를 똑바로 쳐다보았을 때, 순간 눈 앞에 닥쳐올 미래의 회색 잿가루처럼 빠져 나오는 그녀의 숨결이 보였다.
플러터샤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포니 모양으로 만든 앙증맞은 인형이라고 할 것이다. 흰 비석들이 늘어선 평원에 놓인 시든 꽃의 떨어지는 꽃잎처럼, 비애가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안개 앉은 에버프리 숲의 거품 위로 드리운 비누거품 같은 구름 속에 있을 한 금속제 비행선을 향해 물 흐르듯, 무감을 표했다. 그녀를 살아 있게 한 비행선은 무기력하게 구름을 가르고 있었다. 노란 솜털 속 어딘가에 차분히 품어졌을 부드럽고 아름다운 심성 어딘가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뜨거운 애정이 담겨 있을 터였다. 그랬기에 플러터샤이가 알지도 못하는 신비한 동물을 찾아 에버프리 숲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거였다. 그것이 그녀의 외로운 눈꺼풀 속에 새겨진 유일한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들어오게 했을 거였다.
하모니는 한두 번 자기 스스로를 용감한 포니라고 생각해 본 적 있었다. 그녀가 뻔뻔하게도 과거의 찬란한 그림자를 꺼내와 어찌어찌 베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찬란한 그림자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수 번의 영겁이 지나기 전, 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한 오렌지색 망아지에게 다가온 것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그녀가 어렸을 때, 단 하나의 진실된 영웅이 있었다. 날개를 펼쳐 날씨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그런 암말은 아니었다. 도저히 굽힐 줄 모르고 빗줄기에 몸을 떠는 한 가엾은 영혼을 감싸고 부드러운 위로의 말을 건네던 그런 암말이었다.
하모니가 다 자라고 났을 때, 그녀는 히드라와 대판 씨름을 벌였고 트롤에게서 몸을 빼내 달아났다. 하피 해적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무너져 가는 폐허에 몰래 숨어들기도 했다. 마지막 포니는 그녀의 고뇌와 고통으로 가득했던 삶 동안 단 한 순간도 다른 생명을 향해, 훨씬 순진한 생명을 향해 날아가는 무자비한 세상의 구타를 대신 맞아 준 적이 없었다. 그녀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피 튀기는 육박전에 뛰어들 때 무기를 전혀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후는 에버프리 숲 깊숙한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고, 플러터샤이는 언젠가부터 마지막 포니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드러냈던 용기보다 더욱 큰 용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하모니가 그녀의 마음이 아픈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와 플러터샤이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의 머리가 아파 왔다. 하모니는 단순히 살아남겠다는 의지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다. 녹색 주둥이를 쩍 벌린 에버프리 숲 속으로 어떤 동물을 찾으러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플러터샤이와 그녀는 그래서 닮은 구석이 있었다. 플러터샤이가 여기까지 들어온 것은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랑에 관한 일이었다. 마지막 포니는 지금 자기를 과거에 고정해 주고 있는 이와 같은 공기를 들이마신다는 것이 영광스럽기도 했고, 또 동시에 부끄럽기도 했다.
하모니는 치기 어린 그림자처럼 플러터샤이의 곁에 바짝 붙었다. 그녀가 엔트로파의 가슴 한가운데 비밀을 품었듯, 그녀는 웃음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다시 한 번 더,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와 황동색 솜털 아래 놓인 심장에 다시 불을 피워 뛰게 해 줄 때까지 접어두기로 했다. 몇 번 들이마시고 내쉰 숨결은 황동 라이플이나 묵직한 룬스톤을 가득 채운 탄창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친절함이란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이란다. 조화의 원소, 그 이상의 것이기도 해. 친절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 주는 선물이란다. 네가 어떤 포니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다면, 너도 모르는 새 또 다른 포니에게도 친절을 베푼 거란다. 네가 처음으로 친절하게 대해 준 포니도 네 친절에 마음이 움직일 거고, 자연스럽게 다른 포니에게 친절하고 착하게 대할 거기 때문이지. 에버프리 숲은 온 생명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가장 좋은 예란다. 서로 영양을 나눠 주는 뿌리가 서로 얽히고 설켜서 바다를 이룬 것 같아. 직접 보면 세상의 모든 자연물들이 얼마나 완벽하고, 또 영원한 결속을 이루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가장 놀라운 건 말이야, 복잡한 미로처럼 서로 얽힌 자연의 관계는 결코 자연물 하나하나의 논리에 의해 강제된 게 아니라는 거야. 대자연은 근본적으로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어."
"내가 배우기로는 엘렉트라 공주님과 네뷸라 공주님께서 세계를 만드시고 길토핀 공주님께서 생명을 불어 넣으셨던 것 같은데."
"음... 그건 신성한 진실이지. 하지만 스쿠틀루, 왜 길토핀 공주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목적과 생명을 주셨을지 고민해 본 적 있니?"
"길토핀 공주님의 부모님, 에포나와 콘수스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거 아닐까?"
콘수스(Consus): 고대 로마의 농업신. 같은 로마신화의 풍요의 여신 옵스(Ops)와 종종 관련된다.
"히히히... 스쿠틀루, 친절함은 영원한 것이란다. 이것만은 확신하고 있단다. 친절은 영겁의 세월 전에도 그래 왔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모든 생명의 뒤에 숨어 그들이 살아있음을 알게 해 줄 거야. 모든 생명의 목적은 서로를 돕는 거란다. 부디 몇몇 무서운 괴물들과 안 좋은 포니들이 그 목적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하렴. 이 세상은 친절한 세상이란다. 그 스스로 그러고 싶어하지. 그 사실을 증명하는 데 필요한 증거는 단 하나뿐이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이퀘스트리아 말이야. 이퀘스트리아는 만물이 실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친절의 정신이 꿈꾸던 숭고한 목표에 거의 다다른 곳이야."
"플러터샤이, 그럼 언니의 목표는 대체 뭐야?"
"조화(Harmony)란다."
스러져 가는 오후의 그림자는 서서히 에버프리 숲의 화려하게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자이크화를 집어삼켰고, 두 포니들이 걸어가는 숲의 풀 덮인 땅바닥을 조금씩 씻어내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여자아이 같은 부드러운 숨소리가 채우며 울렸다. 하모니는 플러터샤이가 하품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심 있는 듯한 시선이 황동색 페가수스에게, '캔틀롯 왕궁비서관'에게 향했고, 하모니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지막 포니의 마음은 사과 나무와 수선화 알프레도, 달빛에 젖어 사방으로 나가 떨어지는 가죽질의 몸뚱이의 아득한 신기루 너머에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애플잭을 만나러 갔을 때, 끈기 하나만은 확실하게 몸에 익히고 돌아온 것 같다고, 시간여행자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그 덕에, 엔트로파의 몸을 빌어 나타난 그녀는 참을성 있게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전형이 되었다. 에버프리 숲에서의 일 분은 금방 한 시간으로 늘어났다. 하모니는 몸을 떨던 플러터샤이가 한 번 멈추지 않고 보이지 않는 염소자리를 찾아 숲 속으로 당당히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에, 그녀는 온 포니 사회에서 가장 영웅적인 포니조차도 부끄럽게 할 훌륭한 포니들이 아직 남아있음을 보았다. 황무지로 변해 버리기 전의 세상에 훈훈한 즐거움과 광영을 가져오는 이들이 아직 남아있음을 보았다. 재 섞인 구름 속에서 순간 떠오르던 외로운 꿈 사이의 고통스런 숨결에 반짝이던 그 마법의 빛은 그 꿈을 눈물 흘릴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모니의 역할은 '보조자'였고, 그녀는 화려한 언변을 동원해 플러터샤이가 말 그대로 '보조자'의 도움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플러터샤이가 숲 바닥의 갈라진 틈에 떨어진다면 하모니는 기꺼이 몸을 떠는 그녀를 다시 꺼내놓으려 힘쓸 것이었다. 진흙 늪을 건너가야 한다면 하모니는 곧장 그녀를 업고 한 번 훌쩍 뛰어 플러터샤이가 꺅 하고 비명을 지르는 동안 늪을 건너갈 거였다. 위협적으로 꿈틀대는 그림자가 몰래 두 포니를 향한 가느다란 길을 뚫어 다가온다면 마지막 포니는 폐허를 뒤지던 눈으로 놈들을 찾아내 플러터샤이를 교묘히 설득해 방향을 바꿀 것이었다.
그 도움의 수단이 어떤 것이든 간에, 플러터샤이는 속에서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더욱 화끈거리며 붉힐 것이었다. 하모니의 안에 엔지니어가 하나 있어서 플러터샤이의 몸에 증기기관을 하나 달아 그 사랑스러움을 측정할 수 있다면, 아마 그 장치는 재앙이 닥치기 삼 개월 전부터 이퀘스트리아의 절반을 잿더미로 만들며 폭발해 버릴 거라고, 마지막 포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영혼에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은 분명히 자신을 슬프게 만들 거라고, 하모니는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을 감싼 어떤 기운 가까이 가면 떨리는 짐승이자 하모니의 얼굴은 늘 그녀에게 무너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플러터샤이가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속삭여 준 어떤 시시해 빠진 이야기를 다시 기억해 내려고 애쓰고 있는 거였다. 슬픔은 그 자체로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그 이야기를. 하모니는 왠지 그 대신 올라오곤 하는 고독의 독니를 느끼지 못했다.
세상의 녹색 아지랑이는 서서히 아득해지며 사라져 갔고, 깊은 진홍으로 물든 하늘을 따라 흩어져 갔다. 몰려든 귀뚜라미가 울었고 몇몇 이름 모를 곤충들이 숨은 자리에서 나오지 않고 노래하고 있었다. 플러터샤이의 어깨는 언제부턴가 다시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모니는 얼굴로 그녀를 콕 찔러 달랬고, 진주 같은 광택이 어린 플러터샤이의 두 눈에는 활짝 웃는 하모니의 얼굴이 비쳤다.
숲은 아직까지 염소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지만 하모니는 여전히 플러터샤이의 용감한 발걸음을 도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빈둥거리는 시커먼 나무들과 두 페가수스 위에 매달린 나뭇가지 사이로 행복한 숨결이 걸렸다.
"우리는 조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단다. 아름답고, 비옥한데다 생기가 넘치는 곳이지. 우리의 발굽 닿는 길 아래에서 노래하며 우리의 날개에 힘을 실어 주는 곳이란다. 지금 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나도 따라서 노래하고 싶어질 정도니까."
"오, 플러터샤이. 솔직히, 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히히히... 나도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이미 우리 모두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있으니까 말이야. 네가 조용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또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면 네 마음으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거야. 친절의 정신의 부드러운 실타래가 널 끌어당기며 네 생명의 목표를 향해 가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 거야. 너와 만나는 모든 것들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를 즐기고 기뻐하도록 하라고, 너와 그것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 그렇게 하라고 하는 소리가. 그러면 슬픔에 젖었던 날도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될 거야. 그게 우리가 사는 이유이자 황금률이란다. 우리는 다같이 살아가고 있어. 서로를 도우며 사는 것은 천성일 수밖에 없단다. 그 때문에 친절은 원을 그리듯 돌고 돌지. 네가 잘 살펴보기만 한다면, 이 놀라운 흐름이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여기 에버프리 숲에서도 그래. 이 모든 진실은... 음... 정말 아찔할 정도야."
황금률(Golden rule):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말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과 예언서(선지자가 쓴 책)의 규칙 중 으뜸이라고 했으며, 이에 그리스도교들은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 부르게 된다. 요즘에는 뜻이 심오하여 인생에 유익한 잠언으로 받아들여지는 듯.
하모니는 잠시 두 뒷다리로 땅을 디디고 서며 나무에 몸을 기댔다. 무의미한 일이었지만, 나름 귀여워 보이기는 했다. 그녀는 심드렁하게 바로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기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플러터샤이가 염소자리를 찾아가다 말고 멈추어 서서 다 말라 버린 숲 속 빈터에서 가엾은 개구리 다섯 마리를 꺼내주더니 바로 수풀 너머에 있던 연못가의 축축한 땅으로 데려가 주고 있었다. 그녀는 애정을 담아 속삭이고 있었고, 앙증맞은 입술 사이로는 우쭈쭈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며 개구리들을 새로운 집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개구리들은 한 마리가 퐁당 하고 물에 뛰어들면 다시 한 마리가 뛰어드는 식으로 몸에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연못 바닥의 흙이 올라오며 물을 흐렸다. 플러터샤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모니가 한쪽 눈썹을 치켰다. 그녀는 웃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앞의 광경은 마치 산만한 짐승 하나가 조그마한 쓰레받기 하나만한 동물과 싸우는 모습처럼 보였다. 이 부드럽고 즐거운 상념은 순간 마지막 포니의 정신을 흐트러뜨렸다. 그래서 그녀는 근처의 나무에서 비죽 튀어나온 나뭇가지에서 울긋불긋한 비늘로 뒤덮인 짐승 하나가 갑자기 훌쩍 뛰어내려 플러터샤이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할 뻔했다. 하모니의 눈이 순간 불거져 나왔고, 그녀는 급히 숨을 들이켜며 재빨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재빨리 대롱대롱 매달린 산호뱀을 향해 달려들었고, 깜박이듯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놈의 혓바닥이 플러터샤이의 갈기에 거의 닿기 직전에 놈을 쳐낼 수 있었다.
산호뱀(Coral snake): 적, 황, 흑, 백색의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코브라과의 독사. 주 서식지는 미국 남부에서 남아메리카. 미국 쪽에 사는 산호뱀의 평균 길이는 91Cm, 많이 자라면 150Cm 이상으로 성장한다. (같은 코브라과인 킹코브라가 최대 550Cm, 블랙 맘바가 최대 450Cm 정도.) 사람의 경우 한번 물리고 난 뒤 24시간 내에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사망한다.
바로 그 때, 포니빌 동물 훈련사가 고개를 들었고, 불안한 듯 씩 웃는 하모니를 멀뚱거리며 쳐다보았다. 하모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호박색 줄 그러진 검은 갈기를 긁적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플러터샤이는 방긋 웃어 보이고는 헛기침을 하며 피곤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가 보지 않은 유일한 지역, 에버프리 숲 동쪽을 향하여.
하모니도 날카로운 숨을 들이마시며 플러터샤이를 따라 느릿느릿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외롭고 황량해 보이는 눈길을 들어 흐릿해져 가는 숲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에버프리 숲의 바람 맞는 나뭇잎 너머로 별들이 반짝이며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별자리가 하나씩 꽃피듯 하늘 위에 나타났고, 종말의 때를 아는 시간여행자는 그 모습에 즐거워했다. 순간 그녀의 안에 막을 길 없는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녀는 몸을 떨었다. 그녀가 쫓아가야 할 밤하늘의 풍경은 둘을 피해 달아난 염소자리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한 걸음, 한 걸음 떨어지는 발걸음은 어두운 밤의 전조 속으로 사라져 갔고, 하모니는 목에 응어리진 무언가 때문에 힘겨워했다. 그녀의 눈앞에 칠흑 같은 어둠과 그 안의 가시덤불이 나타난 것 같아 그녀는 온몸이 따끔거림을 느꼈다. 그녀 스스로 나아가기를 결정한, 그녀의 기억 속으로의 발걸음을, 그리고 플러터샤이를 다시 데려오려는 발걸음을 가로막는 그 가시덤불에...
"에버프리 숲이 '친절의 정신'을 증명하는 완벽한 전형이라고 치자. 그럼 왜 플러터샤이 언니는 늘 저 안에 들어가는 걸 무서워하는 거야?"
"좋은 질문이구나, 스쿠틀루. 이퀘스트리아는 분명 아름다운 곳이야. 하지만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불완전한 세계지. 난 언제나 진심으로 모든 생명은 자연적으로 다른 생명을 돕고 싶어한다고 믿고 있어. 하지만 이 세계가 그 완벽성에 가까이 다가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단다. 항상... 음... 약점이라는 게 있단다, 스쿠틀루."
"약점이라니?"
"약점이 없이 강점만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란다, 스쿠틀루. 이건 콘수스와의 이별 뒤에 에포나 여신께서 북받치는 슬픔과 아픈 마음으로 하늘을 날아 별로 돌아가셨을 때부터 남겨진 슬픈 진실이란다. 비록 제 1시대가 끝나던 그 때부터 생겨난 세상의 약점, 이를테면 잔인한 괴물이나 질병, 불행이 전염병처럼 돌아다니며 우리를 괴롭게 한다고 해도, 그게 우리가 희망을 놓아야 한다는 이유는 아니란다. 우리는 강해질 수 있어. 강해질 수 있단다, 스쿠틀루. 우리가 우리의 약점을 사랑과... 친절로 채우는 한, 우리는 계속 강해질 거야."
"플러터샤이,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스쿠틀루, 네가 나와 같이 있어 줘서 정말 기뻐."
"음... 에헤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네가 빈틈을 채워 주고 있잖니. 네가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말이야. 그리고... 그리고 고마워. 고마워, 스쿠틀루."
"정말 고마워요..."
플러터샤이는 잔뜩 기진맥진해 있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뒤에 서 있던 하모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하모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흠흠. 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그녀는 어둑해져 이제 흐릿하게 보이는 나뭇잎 너머를 바라보았고, 걱정스러운 듯 플러터샤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음... 플러터샤이, 좀 쉬시지 않으시겠어요?"
힘들어하던 페가수스는 잔뜩 진이 빠져서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하모니..."
하모니는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걸어가던 길 한쪽에 가득 자라나 봉긋한 모양새를 이룬 풀밭으로 플러터샤이를 데려갔다. 에버프리 숲이 한 몸으로 깍깍거리며 짹짹거렸고, 둘 앞에서 파도치고 있었다. 성긴 별빛이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떠서 반짝이고 있었다.
에버프리 숲에 으스스한 평온이 찾아왔다. 저 먼 훗날 에버프리 가시숲으로 변해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악몽을 품을 그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었지만, 또 닮기도 했다. 시간여행자의 마음에서 떠나간 두려움은 조금이 아니었다. 어쩌면 강인한 엔트로파 공주의 몸 덕분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하모니가 더 이상 그녀의 삶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서였다. 별 소득도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동안, 그녀는 계속 플러터샤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포니빌 동물훈련사가 안전하기만 하다면, 마지막 포니는 가시덩굴이 빽빽이 들어찬 황무지의 무서운 그림자를 보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와 동시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차치하고라도, 그녀는 자신이 자랑스러움을 부정할 수 없었다. 플러터샤이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밤길을 걸어 염소자리를 찾아가는 그 모습이, 그녀는 자랑스러웠다.
"플러터샤이, 이건 꼭 여쭈어 봐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요." 둘이 다리를 포개고 자리에 앉았고, 하모니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오늘 오후에 처음 뵈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지셨네요. 숲에 들어갈 때도 끌고 들어가야 했었는데. 심경의 변화라도 있으셨던 건가요?"
"음...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플러터샤이는 마른침을 삼켰고, 갈기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녀의 옆에는'보조자'가 있었다. "여전히 위험하고, 또 불길한 곳이니까요."
"전혀 무서운 것 같지가 않은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보다도 더 빨리 걸으시던데요."
"저도 이렇게 무서운데, 염소자리는 분명 저보다도 많이 무서워하고 있을 거에요. 그것뿐이에요." 플러터샤이가 입술을 깨물며 슬픈 눈으로 별빛에 젖은 녹색 숲의 가장자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천상의 생명이에요. 이렇게 오랫동안 대지에 있는 건 결코 그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에요. 전 제가 행복해지는 것보다도 그 아이의 건강이 더 걱정이에요. 찾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거에요."
"공주님께서도 당신의 그 성정이 정말 칭찬할 만한 거라는 걸 아시게 될 거에요. 제가 장담하죠."
"무슨 성정이요?"
하모니가 웃어 보였다. "플러터샤이, 다 따지고 보면 말이죠, 당신은 당신 자신보다도 당신이 맡아 돌보는 생명들을 더 걱정하는 것 같아요.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는 그런 헌신이라면 아주 그냥 좋아서 아주...... 어..." 시간여행자는 순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골라 썼다는 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말을 조금 더 끼워 넣었다. "왕족답게... 좋아하시고 예뻐하시니까요."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플러터샤이는 올라오는 하품을 다시 삼키고 부드러운 땅에 슬픔 어린 입가를 가져다 댔다. "하모니, 달리 나쁜 뜻은 없지만...... 저는 공주님보다도 레드게일 부서장이 제가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게 더 걱정돼요."
"우리가 실패했다고 누가 그래요?"
"부탁해요. 절 격려해 주시는 건 정말 고마워요, 하모니. 하지만..." 촉촉해진 푸른 눈동자가 나뭇가지 위에 걸린 보랏빛 하늘 위에서 은색으로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그 가엾은 아이만 찾아낼 수 있다면 상황이 훨씬 좋아질 텐데요."
"왜 걔를 찾는 게 그리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진심으로 물으시는 거에요?"
"진심이에요, 플러터샤이."
"음......" 플러터샤이의 눈이 좁혀졌고, 그녀의 얼굴은 생각에 조금씩 구겨졌다. 그녀는 마침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아이는 천상의 생명이에요. 물고기나 양서류들처럼 염소자리도 익숙한 원소 바깥에 나가면 죽어 버려요. 하지만 물고기들과 달리, 염소자리의 원소는 별이에요. 물이 아니에요."
"물탱크 하나에 우주진(宇宙塵, Stardust)을 가득 채운 다음에 그... 음... 염소자리를 갖다 처박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만큼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뭐, 일반적으로는 그래요. 여전히 그 아이는 별빛을 먹고 살아요. 숲의 나무들이 밤하늘을 이렇게 빽빽하게 가리고 있다면, 이렇게 그림자 가득한 길가에서 그 아이를 만나기란 절대 불가능할 일일 거에요."
"저기... 어... 플러터샤이, 지금 염소자리가 그 별빛을 받아먹으려고 에버프리 숲 바깥으로 걸어 나갔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지는 않을 거에요. 염소자리는 희귀한 만큼이나 소심한 아이들이니까요."
"헤. 그래서 뚝 떨어졌대요?"
"우리에게 허락된 별빛만 조금 있었더라면... 아마도... 아마 분명히..." 플러터샤이가 입을 열었지만, 짙은 한숨에 말은 떠나갔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하모니는 한쪽 눈썹을 치켰고, 그녀의 황동색 얼굴은 플러터샤이를 향해 돌아갔다. "별빛이 있으면 그 염소자리가 숨은 데에서 나와 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숲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고 있는 한, 또 염소자리를 덮고 있는 한, 달리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하모니." 플러터샤이는 오르는 신음을 억누르고 아득한 숲의 끝 쪽을 바라보았다. "정말 죄송해요. 절 도와 주신 다음에 공주님께 보고를 올리려고 오신 건데, 전 바보 같고 따분한 일만 해 드렸네요."
"어......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당신의 적절하고 친절했던 도움이 쓸모 없게 되어 버린 것도 모자라,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했든지 전혀 도와 드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플러터샤이, 당신을 돕는 일인데 저한테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에버프리 숲에 대해 몰랐던 것도 많이 알아 가고, 좋은 말도 많이 들었는데요. 다시 역사 속 파우스트메어의 행보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또 어떻게... 음... 개구리들을 데려가는지도 직접 보여 주셨잖아요!"
"이 지역 생태계에 대해 알아보고 싶으셨던 게 많으셨을 텐데, 하나도 대답 못 해 드렸네요."
하모니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는 정수리를 따라 이리저리 굴러갔다. "뭐..." 하모니는 마음 속으로 밤에 흠뻑 젖은 숲의 흔들리는 가장자리로 재빨리 걸어가고 싶었다. 플러터샤이의 푸른 눈동자에 그녀는 다시 한 번 빠져들었고, 그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저기, 그건 다음에 언제라도 말할 수 있잖아요." 그녀는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음... 뭘 알고 싶으셔서 오신 건가요?"
"아... 어... 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하모니는 부드럽고 유연한 풀 깔린 흙바닥을 발로 짓이겼다. 지금은 하모니가 아닌 마지막 포니로서의 순간이었다. 무서운 폭풍 대신 붉은 새벽이 떠오르던 과거의 능숙한 관측자를 어떻게든 닦달할 수 있다면, 재앙의 수많은 전조들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기... 플러터샤이, 혹시, 혹시 최근에 근처에서 이상한 거 보신 적 없으세요?"
"공주님께서 그걸 걱정하실 만한 어떤 구체적인 이유는 있나요?"
"아, 전 잘 모르겠네요......" 하모니는 헛기침을 하고, 앞으로 몇 번 더 던질 물음에 예비하여 어떻게든 웃어 보이려 했다. "동물들의 대규모 이주라거나 먹이사슬의 붕괴, 안 그러던 동물들이 갑자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거나 하는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음... 본능적인 공포를 보여 준 적이 있나요?"
"어떤 공포 말씀이신가요?" 플러터샤이는 차분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까닭으로 아이들이 공포에 질린다는 건가요?"
하모니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접시 돌리기 묘기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모두를 죽여 버리고 말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어느 적정선상에서 털어놓아야 했다. 단, 너무 대놓고 말을 꺼내면 안 됐다. 지금 이 순간, 튼튼한 엔트로파의 몸을 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깨닫고 있었다. 시간을 건너온다는 것은 비단을 바느질하는 것보다도 더욱 섬세해야 할 일이었고, 그녀는 몸을 코끼리로 채우기라도 한 듯 무겁게 숲 한가운데에 주저앉았다.
"저기... 음..." 하모니는 가늘어진 눈을 별이 총총한 보라색 밤하늘로 가져갔다. 별은 은가루라도 되는 듯 희미하게 그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한 호수가 떠올랐다. 시간의 어딘가에 매달려 있었을 호숫가의 오후, 호수는 오리와 두루미, 다람쥐, 거북이로 가득했었다. 그녀는 다시 기운을 차린 목소리로 아이처럼 입을 열었고, 그 말에 떨었다. "플러터샤이, 대략 삼 년 전에 포니빌에 들이닥쳤던 폭풍 기억해요?"
"어머, 물론이죠! 제 동물들이 들어가 숨을 피신처를 만들어 주느라 다른 포니 몇몇의 도움을 받아야 했었는걸요! 정말 무서웠어요!"
"폭풍이 닥치기 전 말인데요, 근처 동물들이 그걸 미리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무언가 징후를 보이지 않았었나요?"
"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그래요. 하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죠."
"동물들이 무슨 징후를 보였었나요?"
"생쥐들은 쥐구멍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숨었어요. 새들은 모두 남쪽으로 날아갔고요. 좀 더 큰 동물들, 그러니까 곰이나 코요테, 맨티코어 같은 애들은 먹이를 구해서 곧장 자기들 굴 속으로 들어갔어요. 그 외에도 더 있었을 건 확실하지만, 거의 마지막에 와서야 볼 수 있었거든요."
"폭풍이 오기 며칠 전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아뇨, 몇 시간 전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겠죠."
"아, 어... 음... 네..."
"동물들의 행동으로는 이유 모를 폭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예측하기 어려워요. 다음 날 날씨 정도라면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말이에요. 물론 동물들의 직감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알아챌 만큼 뛰어나지만, 우리 같은 포니들보다 더 통찰력이 있다고는 볼 수 없어요. 하모니, 우리 포니들도 결국은 동물이에요. 우리는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돼요. 우리는 그저 조금 발전된 능력을 가진 동물이에요." 플러터샤이는 올라오는 하품을 참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음... 어... 그럼 최근에 지역 동물들이 무언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겁에 질린 것 같은 건 보시지 못했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네, 전혀 보지 못했답니다. 하모니."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곤한 듯 눈을 깜박였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 또 무시무시한 폭풍이 올 거라는 예측이 있었나요?"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하모니가 말을 꺼내놓으며 눈을 깜박였다. 회색의 미래가 그녀의 목 뒤에서 아득한 눈보라처럼 꿈틀대며 그녀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니에요. 그렇지는 않아요." 다음으로 그녀가 꺼낸 말은 아무런 느낌도 없었고 힘이 없었으며 맥이 빠져 있었다. "다만 캔틀롯 왕궁에서는 엄청나게 크고 천문학적인 피해를 야기할...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날 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어요. 동물들이라면 우리들보다 좀 더 미리 예측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죠. 그... 본능적인 감지의 형태로 말이죠. 유니콘의 마법도 그 정도까지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요. 뭐, 전 잘 모르겠지만......"
"제 대답이... 부족해서... 실망시켜 드려서... 정말로... 정말로 죄송해요..."
"실망시키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하모니가 부드럽게 웃으며 플러터샤이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급하게 자기를 낮추고 책망하려고 하시는 건지, 도저히 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네요. 플러터샤이."
"이해하시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모니." 플러터샤이는 피곤하게 눈을 깜박이며 자리에 앉았다. 노란 귀가 축 처져 늘어졌다. "제 친구들도 제 버릇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렸으니까요."
하모니가 한쪽 눈썹을 치켰다. "정말이에요?"
"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플러터샤이가 하품을 했고,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부드러운 풀이 덮인 땅 위에서 그녀의 얌전하고 소심한 발굽들이 천천히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제 친구들은 모두 착하고, 절 많이 도와 준답니다. 하지만 가끔씩 제가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그런 친구가 아니라 그냥 따분한 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저는 그렇게 용감하지도 않고 다른 포니들처럼 외향적이지도 않아요. 그 아이들과 친해지는 데도 일 년 하고도 반 년이 걸렸어요. 왜냐면 제가—"
"나약하고 무력하다고 말씀만 해 보세요. 그러기만 했다간 바로 당신을 저 하늘 너머로 집어 던져 버릴 테니까요. 당신 이름의 '플러터(날갯짓)'가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그럼 알 수 있겠죠."
"읍!" 플러터샤이가 움츠러들며 말했다. "하지만 하모니, 그건 사실인걸요! 제 친구들이 저 때문에 얼마나 희생하고, 재미있게 놀다가도 저 때문에 놀이를 늦추고, 제 수준에 맞춰 주려고 얼마나 많을 걸 포기했는지 아시면..."
"당신 친구들이 그렇게 해 준 이유가 뭘까요? 다 당신을 사랑해서 그런 거라는 생각, 안 들어요?" 하모니가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분들이 즐거워했다면, 당신과 어울릴 수 있어서 그랬기 때문 아닌가요?"
"전 도저히 모르겠는걸요. 절 동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대해 줄 수 있는지 전 정말 모르겠어요." 플러터샤이가 슬프게 몸을 떨었다.
하모니는 룬스톤을 탄창에 끼우고, 탄창을 라이플에 끼워 격발,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친절 아닐까요?"
플러터샤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뺨은 순간 장밋빛으로 물들었고, 그녀의 두 눈은 하모니가 꺼낸 말이 남기고 간 잔향(殘香)을 마시려 피곤한 시선을 들었다.
하모니가 다시 웃어 보였다. "전 당신 근처에 꽤 오래 있었어요. 왕궁 업무 때문이었죠. 그리고 제가 본 건..." 마른침은 쓴맛을 남기고 삼켜졌다.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가 본 건 포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정수였어요. 우리는 누군가 시켜야만 그렇게 움직이는 생명이 아니에요. 우리는 어떤 절대불변의 정신을 따르죠.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우린 그걸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죠. 이 가치의 대부분은 당신의 '원소'와 큰 연관이 있어요, 플러터샤이. 친절은 건전지를 연결해 놓은 전선을 따라 흐르는 전류처럼 우리 모두를 따라 흐르죠. 한 번 돌 때마다 강해지고, 더욱 강해지면서요. 무언가가 친절을 받기를 포기하거나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 자리를 사랑과 헌신으로 채워요. 친절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죠. 이 아름다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행복하고 놀라운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알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법은......"그녀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들이마신 다음, 자신이 품고 있던 두꺼운 아이러니의 벽을 뚫으며 한 마디 말을 꺼냈다.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거죠." 하모니의 호박색 눈동자가 다시 뜨였고, 그녀는 겨우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친절은 그걸 가능케 해요. 그리고 플러터샤이, 당신의 친절은 온기가 전해져 가듯 퍼져 가고요."
"저... 해 볼게요..." 플러터샤이의 피곤한 얼굴에 장미가 피었다. 그녀는 하모니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전 그저 제 친구들 모두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에요..."
"친구분들도 분명 알아 주실 거에요." 하모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그분들이 당신을 만나러 오지 못하시는 거에요. 플러터샤이, 당신은 귀찮은 포니가 아니에요. 당신은 보물이에요."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요?"
"그러니까 당신도 보물이라고요." 하모니가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플러터샤이도 가볍게 까르르 웃었다. 시간여행자가 웃었으니까.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잔뜩 진이 빠졌으면서도 나직하게 몇 마디 말했다. "분명 친구도 많으실 것 같네요, 하모니."
하모니는 그 말에 굳어졌다. 불현듯 그림자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몸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억누르며 말을 꺼냈다. "많은 기억이 남았죠..." 그녀는 자기가 꺼내놓은 말에 몸을 움찔했지만, 몇 마디 말을 꺼내며 다시 몸을 추슬렀다. "행복한 기억이에요. 가끔, 그 기억들이 저한테 지혜를 나누어 주기도 해요. 뭐, 늘 그걸 나눌 포니를 찾아 헤매고 다니긴 하지만 말이에요."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옛날 포니들과, 지금 포니들 둘 다요."
"하지만 분명..." 플러터샤이는 다시 하품을 밀어넣고 그녀 가까이에 붙으며 말했다. "분명 가까운 친구가 있으시다고... 하셨죠?"
"이... 있죠... 있었죠..."
하모니는 에버프리 숲의 녹색 아지랑이 한쪽을 바라보았다. 눈을 깜박이자 한쪽에는 다 자란 그녀가 본 눈과 재 쌓인 숲이 보였고, 다른 한쪽에는 두 망아지가 보라색 별빛을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빈 엉덩이는 붉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망토에 일렁이고 있었고, 그 위에는 파랗고 노란 패치가 선명히 장식되어 있었다. 그들 안의 활기찬 영혼과 불변의 여정을 상징하는 패치였다. 그래, 거대하고 시뻘건 화염이 그들의 얼굴을 집어삼킬 때까지 말이다. 달려가듯 지나가던 시간의 끝에서, 그 둘은 마지막 포니를 부르려 몸을 돌렸다. 녹색 눈동자와 호박색 눈동자, 노란 솜털과 하얀 솜털, 빨간 갈기와 라벤더색 갈기, 미소와 웃음, 웃음... 그리고 재.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요..." 하모니의 말은 죽은 것처럼 귀뚜라미 우는 밤공기를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공포, 눈물, 그리고 배고픔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죠."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 애들 덕분에... 웃음으로도 가득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그 나머지 것들은 그렇게 슬프지 않았어요. 아니... 전혀 슬프지 않았어요." 눈에 들어오는 세상의 초점이 흐려졌다. 한 쌍의 호박색 눈동자는 황동색 얼굴 위에서 흔들렸고 에버클리어 광산 바깥에 세워졌던 기념비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프, 플러터샤이. 전 친절이 무엇인지 잘은 몰라요. 하지만 제 삶에서 저에게... 저에게 보이지 않는 희망을 주어 살게 한 그 모든 것들은 똑똑히 기억해요. 저에게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다가온 것들이니까요. 하지만 그게 제가 그걸 아직도 기억하게 만든 건 아니에요." 그녀는 아직도 남아 울리는 노래하는 목소리 속에 고통스러이 웃어 보였다. 그녀는 싱긋 웃음지으며 고개를 돌렸고,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당신 덕분이에—"
플러터샤이는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노란 솜털은 부드럽고 흐릿한 곡선을 그리며 부풀었다가 오므라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따뜻한 숨은 남아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몸 안이야말로 이퀘스트리아의 거대한 공허에서 유일한 집이었으니까. 하모니는 아이처럼 그녀의 분홍 꼬리갈기를 배배 꼬고 있었다. 그녀의 큐티마크인 나비 세 마리는 불현듯 밤새도록 켜 놓는 등불처럼, 그녀의 순수한 영혼을 휘감는 광휘가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하모니는 깊은 숨을 마시며 빙긋 웃었다. 플러터샤이가 자느라 모르는 동안, 그녀는 눈물을 자유롭게 해주기로 했다. 밤을 뚫으며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하모니는 급히 앞다리로 뺨을 문질러 닦으며 플러터샤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벽난로에서 퍼져 나오는 흐릿한 불빛으로 에버프리 숲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포니의 가난한 마음의 한구석에서, 숲 근처 오두막이 훈훈한 불빛으로 밝아 오며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혼란스러운 눈을 깜박여 잔영을 치우기도 전에,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그녀는 들었다. 그 쪽을 바라보자, 눈물이라곤 한 방울도 들이지 않게 생긴, 그리고 눈물을 버텨낼 힘도 없게 생긴 오렌지색 망아지 하나가 발을 질질 끌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희미한 그림자는 녹색 풀밭 위에 잠든 플러터샤이를 향해 조용히 걸어오고 있었고, 아이와 그녀가 닿는 그 순간, 세상은 폭발해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모니는 떨리는 발굽으로 급히 얼굴을 가렸다.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심장은 거세게 뛰고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호박색 눈동자를 다시 열어 뜨자 에버프리 숲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보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사라져 있었다. 벽난로도 사라져 있었다. 계단도 그 자리에 없었다. 오렌지색 망아지도 사라져 있었다. 남아 있는 거라곤 오직 그림자와...
...플러터샤이일 뿐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잠을 자는 그녀의 네 다리에는 가시도, 재도 엉겨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보다 아름다울 순간은 세상에 영원히 없을 듯싶었다.
"그럴 필요는 없었잖아." 마지막 포니는 침울하고, 또 충고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플러터샤이를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페가수스는 네 다리로 일어서 플러터샤이를 향해 걸어갔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플러터샤이를 슬슬 업었다. 그녀의 앙증맞은 몸이 엔트로파 공주의 어깨 위에 얹혔다.
"흠... 가볍기도 하네. 제기랄, 잘 좀 먹고 다녀."
그녀의 목소리는 웃음과 한숨이 같이 묻어나고 있었다. 하모니 호의 황동 기구들을 다루는 것보다도 훨씬 조심스레, 마지막 포니는 친절의 원소를 등 위에 안전하게 업었다. 그녀는 날개를 펼쳤고, 이내 에버프리 숲의 녹색 이파리 위로 날아올랐다. 플러터샤이의 집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