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SkyWriter]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차를 싫어해Princess Celestia Hates Tea : Part II

Mergo 2019. 9. 21. 19:09

"미각이상 증세 같군요." 저마다 종이조각 하나씩 들고 부산히 달려드는 처부 차관의 무리를 헤치고 걸어가던 중, 옆에서 걷던 카두케우스 선생이 말을 꺼냈다.

 

"감기 조심하라는 걸로 알죠." 농담조로 한 마디 던졌다. 나 자신이 처해 있는 이 웃기지도 않은 곤경 때문에 갈수록 자포자기하고 있던 참이어서, 흡사 추수한 곡식을 탈곡하기라도 하듯 결재서류 위로 승인 도장을 마구 찍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차관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언제나 오늘 같기만을 바랄 것이었다. 정말 얼마 안 되는 수의 서류를 제외한다면, 죄다 거기서 거기인 한 뭉치 종이 더미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예를 들어 본다면, 등 뒤로 몇 백 야드 정도 떨어져 있는 장식용 꽃병에 행정결정권을 주는 것에 대한, 아주 인상 깊은 포트폴리오와 같은 서류들이 거기 해당한다. 부디 꽃병이 권력을 남용하지 말아야 할 텐데.

 

"그것이 아닙니다, 공주님." 카두케우스 선생이 말했다. "미각이상입니다. 그것은—"

 

"맛을 감지하는 감지체계가 붕괴되었다는 뜻이지요, 그렇지요, 선생님." 이라 대답하고 덧붙여 말했다. "저도 잘 알고 있답니다."

 

밤색 몸의 유니콘은 헛기침을 하며 무기력하게 뒤에 쫓아오던 조수를 잡아 끌어당겼다. "그러시다면 이 또한 아시겠지요." 카두케우스가 말했다. "심각한 질병 중 몇 가지는 전조 증상으로 미각이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심각한 질병 말씀입니다, 공주님."

 

"카두케우스 선생님." 지구의 자기장이 치즈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라면 뭐든 알고 있는 이를 향해, 한없이 무심한 말투로 대답했다. "걱정해 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허나 제가 느끼는 차 맛에는 그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는 점을 확실히 해 두고 싶네요. 어저께 마신 차는 어제 마신 차와 마찬가지로 맛없고, 어제 마신 차는 오늘 마신 차와 평등하게 맛없답니다."

 

카두케우스는 입 속에서 혀를 차더니 염동력을 끌어다가 자그마한 클립보드와 연필을 들어 올렸다. "기억장애도 있으시군요." 종이에 끄적이며 그가 중얼거렸다.

 

"선생님, 이건 중대한 일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3월을 청어잡이의 해로 지정하자는 서류에 서명하며 말했다.

 

"물론 중요한 사안이지요, 공주님!" 그가 대답했다. "미각이상에 기억장애 증세입니다. 이것으로 생각의 폭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지요, 아주 안 좋은 쪽으로 좁혀진단 말씀입니다! 부종양증후군(악성종양의 전이로 발생하는 신경계 질환)이 의심됩니다."

 

"이 모든 걸 부종양증후군 탓으로 돌리시려는 것 같습니다만." 덧붙인다. "전 분명 시종 한 분의 발굽에 귀찮은 돌이 하나 박혀서 선생님께 보낸 건데, 시종에 부종양증후군 진단까지 딸려서 돌려보내시는군요." 썰매개를 이용한 극지방 탐험예산 신청 서류에 허가 도장을 쿵 하고 찍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병입니다." 라는 불길한 대답만 돌아왔다. "하지만 동시에 온갖 소리를 다 내며 죽이기도 하죠.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 병을 앓던 환자들은 모두 이 침묵과 소음 사이에서 죽어 갔습니다."

 

"뭐 그렇겠죠." 비서 중 하나가 궁을 떠나 세운 나라에서 날아온 독립선언서와 촛대의 대량 수출을 허가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홀까지는 이제 몇 야드밖에 남아 있지 않다. 힘 내라, 셀레스티아. 할 수 있어......

 

"이 말씀만은 올려야겠습니다, 공주님." 카두케우스가 말했다. "옥체를 살피셔야 합니다. 어의로서, 공주님께서, 음...... 약간이라도 정신이 돌아오실 때까지 공판을 연기하시기를 정식으로 권장합니다."

 

"제정신 말이죠?” 카두케우스를 쳐다보며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하는 와중에도 깃펜은 휘둘러져 국경 근처 얼마 안 되는 땅을 국토로 편입하는 안을 승인했고, 이어서 식량난에 허덕이는 얼룩말의 나라로 수천 톤의 얌(열대 지방의 뿌리채소)을 지원하는 계획에 동작을 마무리하듯 서명했다. “조금이라도 더 제정신으로 만들어 줄 만한 게 무엇인지 아시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카두케우스 선생님? 당장 북새통을 이루며 모여든 차관들을 전부 다 물리치고 알현실로 들어가 조용한 가운데 평화를 즐기는 것밖에는 없어요!” 눈을 깜박이고 덧붙였다. “아, 벌써 다 와 버려서 물리칠 것도 없겠네요!”

 

“좋습니다, 공주님.” 카두케우스가 들으란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신이시자 여황이시니까요.”

 

“고마워요.” 대답하며, 겨우 몇 야드밖에 남지 않은 지루하고 따분한 시련을 마저 통과해 알현실 문을 활짝 열었다.

 

알현실은 말 그대로 송곳 하나 꽂을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소방국장 권장 재실인원’을 기준으로 꽉 차 있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안전보장가능 최대수용인원’을 잣대로 해 말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송곳 하나 더 끼어 들어올 틈도 없이 방을 꽉 메우고 들어차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끝도 없는 숫자의 페가수스 민원인들이 양쪽 벽과 천장에까지 가 붙어서, 더 이상 수학적으로도 알현실 내부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들어와 있었다.

 

알현실 내부 민원인들은 모두 차와 관련된 큐티마크를 하고 있었다.

 

찻주전자 모양의 큐티마크를 한 이들과, 티 스트레이너(차거름망) 모양의 큐티마크가 있는 이들, 최신 유행의 프레스 포트식 찻주전자 모양도 있었고, 양 옆구리에 세 장의 찻잎 또는 세 개의 실크 티백 모양이 새겨진 포니들도 있었다. 어떤 건장하고 턱수염이 난 포니는 극도로 정교한 은제 사모바르(러시아식 찻주전자)와 설탕 그릇 큐티마크를 하고 있었다. 이퀘스트리아에서 차와 관련된 재능을 타고난 이들 전부가 밤 동안 수도, 캔틀롯을 향하여 몰려든 것이다.

 

알현실은 포니들의 몸으로 쌓인 단단한 벽으로 채워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열린 문 사이로 얼굴이 드러난 순간, 몸의 벽으로 채워졌던 방 안에 소음의 벽들이 끼어들어 남은 자리를 채웠다. 몇몇은 차 상인들이었는데, 내가 차를 싫어한다고 선포한 것 때문에 다음 4분기 때 판매수익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면서도 내게 화가 나 있었다. 다른 몇몇은 말 그대로 차에 미친 이들이었는데, 내가 감히 자신들의 ‘신성한’ 음료를 향하여 감히 그런 불경스러운 짓을 했다는 것에 그네들 나름의 도덕적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또 다른 몇몇은 자신들의 공주가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삶의 의욕을 잃은 것이라며 찻잎이라면 자신들이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으니 어서 훌륭한 한 잔 따뜻한 차를 올려 격려해 주자는 착한 사마리아포니들이었다.

 

조용히 두 눈을 감은 뒤, 그 누구도 말할 엄두가 나지 않도록 가슴을 터뜨릴 것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로 명료하게 선포하듯 말했다.

 

“주목하라, 내 사랑하는 시민들이여!” 입을 열자 알현실 안에 잠깐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다가 다시 침묵이 드리웠다. “짐은 이를 선포함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바이나, 오늘부터 왕실은 더 이상 차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구입하지 아니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항의와 경악으로 가득한 웅얼거림이 들불처럼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말을 꺼내 입을 다물게 했다. “나 혼자서 너희들의 진정을 하루 동안 모두 들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할 것이다. 내일 오전 8시까지 너희는 캔틀롯 왕궁으로 와 왕실 옴부즈포니 사무실 앞에 줄을 서 있도록 하라. 그러하면 외견상으로나마 잘 정돈된 상태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터이니!”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하면, 그 누구라 해도 대꾸하기 어려워했다. 민원인 무리가 맥이 쭉 빠져 질질 끌리는 발굽을 끌고 알현실 밖으로 느릿느릿하게 빠져나갔고, 다 나가는 데 약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날개를 펼치고 군중 위로 날아가 왕좌로 가서, 오늘 처리해야 할 민원을 들고 온 이를 차분히 기다렸다.

 

모두 다 밖으로 나가자, 발굽 소리가 메아리지는 알현실 안에는 선명한 노란색을 하고 세 개의 밀알을 큐티마크로 하고 있던 포니 하나와 나 혼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왕좌 가까이 오거라. 와서 네 이름을 밝히라.”

 

젊은 여자는 명한 그대로 하고는 낮게 절하며 말했다. “엠버 웨이브입니다.” 여자가 밝혔다. “네이브라스카에서 왔습니다.”

 

“엠버 웨이브, 말하라.” 물었다. “그대의 용건이 무엇인가?”

 

“저, 공주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본래 제가 온 까닭은 밀밭에 심각한 병충해가 생겨 보조금을 주실 수 있는지 여쭈어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할 테니.” 차 이야기가 아닌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고 실제로도 너무나 좋았기에, 여자가 꺼내놓은 말들을 짓밟듯 말들을 늘어놓았다. “병충해를 입은 작물을 구제하는 데 능한 어스 포니들이라면 많이 거느리고 있으니, 그들 전부를 보내주겠다.”

 

“감사합니다, 허나……” 엠버 웨이브가 거칠어진 발굽으로 바닥 판석을 긁적이더니 물었다. “공주님께서 더는 차를 즐기시지 아니하신다는 말들이 돌고 있는데, 그것이 정말인지요?”

 

“음, 맞다.” 지복의 샘에서 아득하고 높은 기쁨을 잡아당겨 꺼내 자리에 튼튼하고 굵은 못들을 박아놓듯이 대답했다. “그 전부 다 사실이다.”

 

엠버 웨이브가 고개를 흔들더니 문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 하나가 모든 걸 바꿔놓을 겁니다.” 조용히 말을 끝맺은 여자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완전히 비어 버린 알현실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뭐 좋다!” 소리쳐 보았다. “오늘 업무는 이걸로 끝인가 보군.”

 

“공주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문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문가에서부터 깔려 왕좌에까지 이르는 벨벳 카펫을 밟고 걸어오는 내 신실한 제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져 거의 감긴 눈에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옆에는 왕실 티마스터인 코지 부인이 눈시울을 붉힌 채 따라오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간헐적으로 훌쩍거리면서.

 

“공주님.”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성큼성큼 걸어오며 말했다. “오늘부터 차와 관련된 사안은 듣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알지만—”

 

“트와일라잇.” 말을 잘랐다. “너는 내 신실한 제자이며, 코지 부인은 우리 왕실에서도 귀하게 여기는 궁아宮娥시다. 그 어떤 선언이라 해도 내 마음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노라.”

 

* 궁아란 나인과 유사한 말로, 궁내에서 왕이나 왕비를 모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번역은 다모이나, 다모는 일반 관아에서 차, 술시중을 들던 관비로 격 차이가 심각하게 나서 궁아로 옮겼습니다.

 

트와일라잇은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코지 부인에게 몸짓했다. 나이든 유니콘이 왕좌 쪽으로 와 깊게 숙여 절했다.

 

“코지 부인?” 이라고, 말을 걸었다.

 

코지 부인이 눈물을 쏟아냈다. “제가 준비해 드린 차가 마음에 드신다고 늘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나이든 여자가 통곡했다. “수 년 동안이나 항상, 제 차가 얼마나 탁월한지 말씀하시며 치하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터무니없는 일련의 사건을 개인적인 모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코지 부인.” 누군가 이 상황에서 나를 건져 줄 로프를 던져 주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수천 년 동안 살면서, 숙련된 솜씨와 재능으로 완전히 우려낸 차가 준비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 정도로 차를 마셨으니까요. 코지 부인은 분명 최고의 티마스터이며, 제 개인적인 음료 취향이 부인의 노고와 뛰어난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것 또한 절대로 아닙니다.”

 

이렇게 일러두었음에도, 코지 부인은 여전히 비탄에 빠져 있었다. “바로 지난 주였습니다!” 부인이 울부짖었다. “바로 지난 주만 해도 제 귀한 손녀딸 차이Chai에게 꾸준히 연습하기만 한다면 언제가 이 할미처럼 왕실 티마스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에 기뻐하던 그 아이를 긍휼히 여기사, 부디 선처를 해 주십시오. 하스워밍이브 트리처럼 밝게 헤아려 주십시오. 제가 무어라 해 주면 좋단 말입니까?”

 

* 차이 : 터키, 아랍, 인도권식 홍차

 

“코지 부인—”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코지 부인이 울부짖더니 곧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앞치마에 코를 세게 풀고는 몸을 홱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알현실을 나갔는데, 늙은 여자의 울음은 그녀가 시야에서 멀어진 뒤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한숨을 쉬며 왕좌에서 일어나 나의 신실한 제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트와일라잇.” 말을 꺼냈다. “내가 실수를 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제자에게서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니라 차갑고 섬뜩한 침묵이었다.

 

“공주님, 처음으로 함께 차를 마시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제자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대답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너마저Et tu, Twilight? , 란 생각을 하면서.

 

“몇 달 동안이나 문화관 안 공부방에서, 제가 마법을 깔끔하게 쓸 수 있도록 연습하는 동안 한두 잔 정도의 차를 드시는 게 눈에 들어왔었어요. 게다가 그 향기란 따뜻한 비에 젖은 화원의 그것과도 같아서, 조금만이라도 맛보게 해 주실 수 없는지 끊임없이 부탁을 드렸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저와 앉아 찻물 조금을 따라 주셨죠. 그 때, 정말 행복했어요, 공주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을 정도로.”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처음으로 맛을 봤을 때는, 진흙으로 입을 헹구는 듯한 맛이 났었어요. 그래도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계속해서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아끼며 즐기시는 거라면 분명 특별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기숙사로 돌아올 땐 부엌에 들러 찻통에서 이 맛없고 새카만 닐기리 찻잎을 한 움큼이나 슬쩍 꺼내 혼자 우려 스물여덟 잔의 차를 만들어 육 분 동안 전부 다 마셔 버렸어요. 그 덕분에 새벽 네 시까지 자지도 못하고 헤롱거리다 쓰러져 잠들었는데, 크림 단지가 살아 움직이며 자그마한 찻숟가락으로 절 찔러대는 악몽을 꿨죠.”

 

* 닐기리 : 인도의 고원지대에서 재배하는 찻잎 품종. 스리랑카와 가까워 실론과 유사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마셔 본 적은 아직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저, 어—”

 

“그래도 계속 마셨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빛에 약간의 광기가 어려 있었다. “마시고, 또 마시고, 계속 마시기를 반복하면서! 그러다 보니까 조금씩 이게 좋아지더군요. 비록 이게 절 중증 카페인 중독자로 바꾸어놓긴 했지만!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던 소포에 들어가 있던 티 스트레이너 값이 얼마인지도, 공주님께선 상상도 못 하실 거라고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눈에 점점 황달이 생기기 시작하고,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면 색이 들리기까지 해서, 차를 끊고 커피를 대신 마셔야 할 지경까지 갔죠!”

 

트와일라잇은 숨을 헐떡이며 잠시 말을 멈췄다.

 

“공주님을 위해서였어요.” 트와일라잇이 끝내, 말을 이었다. “공주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공주님께서 차를 싫어하실 리가 없다고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어요.”

 

“……미안, 정말 미안하구나.”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아뇨.” 트와일라잇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공주님께선 사과하실 필요가 없으세요. 왜 그런지 아시겠어요? 어젯밤 내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이제 알게 되었거든요. 이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럼 이제 괜찮은 부분이 하나 정도는 생겼구나.”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백성들이 무언가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트와일라잇. 전부 내 잘못이지. 어의는 내가 미쳤거나 부종양증후군을 앓고 있거나, 아니면 부종양증후군이나 기타 다른 질병 때문에 미쳤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럼 이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네요. 오후에 내각 고위관료들과 회의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그렇단다.” 대답했다. “차 때문에 부린 사소한 짜증 때문에 발생한 피해를 어떻게 해 보려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공주님 곁에 서서 회의를 참관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 또한, 네가 그렇게 해 준다면 정말 기쁘겠구나.”

 

“감사합니다!” 각자의 옆에 서로를 두고 함께 알현실을 빠져나올 때, 트와일라잇이 밝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공주님. 해결책이 있어요. 곧 아시게 될 거에요.”

 

 

* * *

 

 

“자리에 참석해 주신 각료 여러분.” 연설하듯 말을 꺼냈다. “이번 일련의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나, 그 비슷한 것들을 추진하기 위한 합의가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만, 누군가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통감하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겸손함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다가 이제야 그러한 성품의 필요성을 깨달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배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눈을 맑게 하고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관료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았다. “존경하는 장관 여러분,” 그대로 선언하듯 말했다. “어제 제가 보인 공주답지 못한 행동과 사소한 음료 취향 하나 때문에 이퀘스트리아 사회의 기반까지 뒤흔들게 된 점에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 또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옆에 있던 트와일라잇이 말했다. “제 2차 체인질링 습격의 가능성 하나 때문에 완전히 공포에 빠져 이성을 잃지만 않았어도, 저희가 조화의 원소의 칼끝을 제 훌륭한 스승께 돌릴 일도, 그렇게 크게…… 화를 내시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과의 말씀은 괜찮습니다, 공주님. 스파클 양도요.” 팰림세스트 총리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쩌렁쩌렁한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지는 못합니다. 하룻밤 만에 차 수출량이 급락하기도 했지요. 이는, 공주님께서 보인 노기 때문에 올해 농가들의 자금사정이 극도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작물들에 사악한 저주나 그에 준하는 주술이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골든로드 부인이 덧붙였다. “공주님, 재정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많은 가정이 파괴될 겁니다.”

 

“사회학적인 이야기를 덧붙이겠습니다.” 그을린 듯한 작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꺼낸 것은 포트리 슬램이었는데, 상황을 읽어내는 데는 옆 사람이 질려 버릴 정도로 능한 문화부 장관이었다. “이제 조금만 삐끗하면 다도문화의 급격한 몰락이라는 벼랑 밑으로 떨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면 강제된 낯설고 새로운 문화기준에 비추어 우리의 문화 정체성을 재구축하고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데, 이는 전 사회적으로 큰 불만을 야기하고 말 것입니다.” 그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방향타 없는 선박과도 같이 된 것이지요.”

 

“그래요.” 고개를 높이 들며 답했다. “제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포트리 슬램의 말만 빼놓고요. 이해가 되어야 책임을 지지 않겠어요.”

 

“그리고 사실, 공주님께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으시답니다.” 트와일라잇이 말을 끊었다. “왜냐면, 공주님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연단 위로 걸어 올라오는 트와일라잇을 흘끗 내려다보았다. “여러분, 잠시 이쪽을 봐 주시겠어요!” 트와일라잇이 말했다. “당황시켜 드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상황은 단 한 개의 단어로 요약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트와일라잇이 연단 모서리에 두 발굽을 단단히 붙이고 그 너머로 몸을 기울였다. “바로, 디스코드지요.” 아이가 말했다.

 

내각 전부가 당황한 소리를 토해냈다. 아, 아냐, 아냐, 아냐, 아냐, 그거 아냐, 그거 아니라고. 조용히 걸음을 옮겨 트와일라잇과 각료 사이를 가로막았다. “제 신실한 제자가 말하고자 한 바는—” 말을 꺼냈다.

 

“디스코드가 돌아왔다는 말입니까?” 흥분 잘하기로 유명한 카디널 추기경(Cardinal Cardinal)이 소리쳤다. “그리고 이제 포니들로 하여금 차를 싫어하게 만들 수 있단 건가요?”

 

* Cardinal이란 말 자체가 추기경이라는 뜻입니다.

 

“돌아오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돌덩이인 상태죠. 하지만, 맞습니다. 차를 싫어하게 만들 순 있죠!” 트와일라잇은 연단에 선 바위처럼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단단하게 서서 말했다. “그자의 타락 주문이 남아 있는 동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죠! 어젯밤에 이 모든 상황을 파악했는데, 어제 공주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에 대하여 얼마나 생각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공주님께서 차를 싫어하실 리가 없다고 제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하나가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이었죠. 이제 제가 깨달은 게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제가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었죠!” 트와일라잇이 낭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관 여러분들께서도 아시겠지만, 디스코드가 제 친구들과 저의 마음을 조종해서 조화를 부수려고 했을 때, 그자는 우리가 타고난 성품의 정반대로만 행동하도록 만들었고, 그 덕에 저희 모두 온갖 괴상망측한 일들을 했어요. 애플잭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핑키 파이는 까칠해지고, 래리티는 탐욕왕이 된 데다 플러터샤이는 비열해졌고 레인보우 대쉬는 아예 다른 이 모두를 무시하기 시작한 거죠! 그 때문에 우정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되었고요. 내각 위원 여러분, 디스코드는 우리 누구도 평상시에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하게 만들었어요. 뭐, 애플잭이 가끔 거짓말을 하긴 하지만요. 어쨌든 이게 영감을 주었어요.”

 

트와일라잇이 내 쪽을 향해 돌아섰는데, 두 눈이 옛날 내 제자로 들였던 어린아이의 눈동자처럼 믿음으로 가득 차 빛나고 있었다.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평소에 차를 즐기시지 않을 리가 없죠! 공주님께도 중요한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자, 이 이야기의 결론은…… 디스코드가 공주님까지 건드리고 말았다는 거에요! 확실히, 우리가 알고 사랑하던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차를 드시지 않는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그야말로 대척 관계에 있지 않나요.” 트와일라잇이 나를 보고 웃더니 내 옆으로 다가섰다.

 

“기다리게.” 펠림세스트 총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스파클 양은, 여기서 논의한 대로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디스코드의 타락 마법에 걸려 계시다고 말하는 것인가?”

 

“네!” 트와일라잇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묻겠네, 친애하는 자매, 스파클 양. 우리의 공주님을 돌려놓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포트리 슬램이 물었다.

 

“간단합니다!” 트와일라잇이 외쳤다. “맛이 간 친구들을 되돌려놓을 때 제가 했던 것과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 됩니다! 제가 공주님께 기억복구 마법을 걸어 드리면, 이제 공주님께서 즐기셨던 찬란한 티 타임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나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차를 사랑하시던 마음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게 될 것이며, 저희는 다시 교양 있고 차를 즐기시는 태양의 공주를 다시 한 번 우리의 품으로 맞이하게 되는 거죠!”

 

왼쪽 눈꺼풀이 씰룩거렸다.

 

“지금까지의…… 모든…… 티 타임…… 전부 다?” 조용히 물었다.

 

“물론이죠!” 트와일라잇이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천 년에 수천 년을 반복해 가며 즐기셨던 티 타임의 행복한 기억 전부 다요! 멋지죠!”

 

조용히, 가늘게 몸을 떨며 내 신실한 제자의 빛나는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각자의 자리 위에 놓인 방석 가장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내가 꺼낼 말을 기다리던 내각 관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았다.

 

저들 모두가, 내가 지금껏 겪었던 고역을 다시 겪기를 바라고 있었다. 세상이 바라고 있었다. 1분기에서 4분기까지의 경제지표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외교적 관계를 얻는 대신, 나 자신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왜곡되어 백성 모두가 알고 있는 공주로서의 내가 되고 말 것이었다.

 

나는 국민의 주인이 아니다. 역사 속 훌륭하고 올바른 통치자들이 그러했듯, 나 또한 국민의 종일 뿐. 그리고 다음으로 내가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일깨우는 것 또한 그 사실 하나밖에는 없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나는 결정했다. “...의 말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 * *

 

 

바로 그 다음 날, 대관식 발코니에 꼿꼿이 서서 환호를 보내며 거대한 무리로 군집한 백성들 앞에 섰다. 오른쪽에는 나의 신실한 제자가 조화의 원소를 머리 위에 쓰고 당당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내가 부순 행복한 작은 세상이 이제 무너진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선 것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밝디밝은 얼굴을 하고 있던 코지 부인이 내 왼쪽에 있었다.

 

앞으로 몇 걸음 내디뎌 밀집해 웅성거리던 군중들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차 문제로 찾아왔던 민원인들도 분명히 저들 중 어딘가에 끼어 있을 것이었지만, 태양의 공주가 어둠의 마법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아끼고 즐기던 그들의 음료를 등진 말을 한 것이라는 갑작스런 발표 덕에 이제 그들의 근심은 사라져 있었다. 백성들은 이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온 대양의 바닥만큼이나 깊은 만족감을 보이고 있었다. 대중이란 이 세상 그 어떤 것, 사과나 보석, 심지어 머핀 같은 것들보다도 평범한 일상을 더 사랑하는 법이었으니까.

 

이제 저들이 바라는 것을 해 줄 때가 되었다.

 

코지 부인이 최대한의 격식을 갖추고 의식을 거행하듯 작은 찻잔을 띄워서, 난장판을 벌이며 모여 있는 군중을 똑바로 대면하던 그 자리로 가져와 그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물건을 내 앞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찻주전자를 기울여 잔을 채웠다. 코지 부인이 트와일라잇이 가져온 다즐링을 골라 왔다는 게 곤혹스러웠지만, 어울리기는 했다.

 

창백하게 질린 채 찰랑거리는 호박색 액체를 들여다보았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쓸데없는 배려 덕분에 지난밤 내내 차에 대한 증오로 속을 끓이던 수천 년의 세월을 다시 겪는 동안 미쳐 버리는 줄만 알았지만, 결국은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간단한 일 단 한 번만이 남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찻잔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고, 그 끔찍한 액체를 입 안으로 받아들였다.

 

어릴 적 언젠가, 작은 산 위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그걸 조그마한 조약돌 크기까지 줄여 본 기억이 있다. 당시 들었던 힘이라 할지라도, 지금 당장 배에 주고 있는 힘과 비교할 수는 없을 터이다. 조그마한 헛구역질 하나가 다시 온 세상을 뒤집어놓고 말 터였으니.

 

다행히도 메스꺼운 속이 잠잠해지고 난 뒤, 찻잔을 높이 띄워 들고 군중을 향하여 완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네요!” 내가 선언하자 그들이 환성을 터뜨렸다.

 

“돌아오셔서 기뻐요, 공주님.” 환호가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 머리 위를 씻어낼 때, 트와일라잇이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기쁘구나.”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