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후회Regret
The Assassination of Twilight Sparkle
트와일라잇 스파클 암살 사건
By The Rated Ponystar
대관식으로부터 1년이 지난 후,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는 죽음을 맞는다. 더러는 두려움에, 더러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녀 자신의 백성들이 그녀를 죽였다. 장례식이 끝난 뒤, 셀레스티아 공주는 가장 뛰어난 제자이자, 딸처럼 여겼던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칩거를 거듭한다.
그렇더라도 평생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암살 사건의 기억들과 그 다음의 일들로 머리가 꽉 찬 채, 셀레스티아 공주는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묘지로 향한다.
셀레스티아 공주는 트와일라잇 스파클에게 내려준 첫 번째 책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할 수 있었다. 트와일라잇이 캔틀롯 성으로 거처를 옮긴 첫날, 셀레스티아 공주는 트와일라잇을 데리고 왕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셀레스티아 공주도 어지간히 독서와 공부를 좋아라 하는 어린이나 성년들을 많이 알고 지냈지만, 어떤 책이든지 읽고 싶을 때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방을 뛰어다니며 춤추며 기뻐하는 어린이는 그 때 처음 보았었다. 트와일라잇은 어떤 책을 가장 먼저 빌려 갈지 정하지 못했었고, 셀레스티아는 새 제자에게 아무렇게나 잡히는 대로 책을 한 권 집어 건네주었다. '턱수염 스타스월의 비전학 입문'이었다.
그때부터 트와일라잇은 가장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로 스타스월을 꼽았다. 그 작은 유니콘 꼬마는 사흘 동안 셀레스티아의 날개 밑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 책을 읽어댔다. 캔틀롯 성에서 지낸 지 일 년이 되었을 때, 트와일라잇은 그 책만 백 번을 넘게 읽었었다. 물론 그 책 외에도 많은 책들을 읽었고, 몇몇은 그보다 고등한 수준의 논의를 담고 있는 것이었지만 트와일라잇은 그 책 하나만은 옆에 끼고 하염없이 읽었다. 왜 항상 그 책만은 옆에 두고 있는 것인지 셀레스티아가 묻자, 트와일라잇은 "공주님께서 제게 주신 첫 번째 책이니까요. 평생 보물로 간직할 거에요!" 하고 대답했다.
그 때 셀레스티아는 자신과 트와일라잇의 관계가 사제지간을 넘어 보다 특별한 것이 되리라 직감했고, 그렇게 되었다. 천 년이 다 되어가는 외로운 통치의 나날 동안 수도 없는 제자를 들였었고, 그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걸출한 인재로 성장했다. 트와일라잇은 자신의 위대한 선배들과도 궤를 달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트와일라잇은 셀레스티아 본인이 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이퀘스트리아의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자신 앞에 놓인 시련을 훌륭히 극복해냈다. 나이트메어 문과 디스코드, 솜브라를 비롯한 자들이 그러했다. 그런 뒤에는 스타스월 본인도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알리콘이 되어 이퀘스트리아를 통치하는 공주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훌륭히 개척해냈고, 이퀘스트리아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던 혁신에 착수할 준비도 마쳤었다. 셀레스티아가 바꿔놓으려고 애를 썼음에도 옛날 것이 편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이 바꾸려고 하지 않았던 구식 방법론에 온 이퀘스트리아가 매몰되어 있었다.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팔백 년 전 최후의 용족 내전이 끝난 뒤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용족 재연합이 표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폰들은 과학과 기계공학을 동원해 한때는 마법으로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입맛만 다셨던 일들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서방 해역을 탐험하고 돌아온 뱃사람들이 고유의 문명을 개척한 신대륙의 존재를 수군거리며 퍼뜨렸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이퀘스트리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만 했다.
셀레스티아를 도와 그 과업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기반을 닦을 재주가 있는 것은 오직 트와일라잇 스파클뿐이었다. 루나 공주 또한 영민하기는 했으나, 근대식 정치체계와 사회구조에 채 적응하지 못했다. 케이던스 공주 역시 젊고 강인했지만 천 년의 세월 동안 잠들어 있던 크리스털 왕국을 재건하기에도 벅찼다. 즉, 트와일라잇만이 자신의 스승을 도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공주의 신실한 제자는 귀족적인 생활과 평범한 생활 모두를 경험해 보았고, 동족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과도 친교를 맺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을 보다 훌륭한 미덕으로 가득 채워 준 친구들이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침대에 주저앉아 트와일라잇에게 주었던 첫 번째 책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좋았던 날들과 수많은 추억이 거기에 엉겨 있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마음만 아픈 추억들일지라도. 책을 바라보던 셀레스티아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책은 오직 셀레스티아가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만 명료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알리콘으로 다시 태어난 후 트와일라잇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지 알았더라면, 그녀 자신의 백성들이 네 번째 알리콘이자 새로운 지도자가 된 트와일라잇에게 무슨 짓을 할지 미리 알았더라면, 그 주문서를 트와일라잇에게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그녀 자신의 제자는 여전히 포니빌에 머물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리라. 기념공원에서 영면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아는 한 가장 용감하고 선량했던 다섯 여자들은 여전히 가장 좋은 친구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아기용은 어머니처럼 따르던 자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막내딸을 잃고 한 가족이 비탄에 잠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셀레스티아의 두 눈도 눈물에 젖어 짓무르고 핏발이 서지 않았을 것이고.
울음이 이어지는 와중,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누구일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장례식 이후 매일 밤마다 셀레스티아를 찾아왔으니 당연했다. 루나 공주가 문을 닫고 들어와 한숨지으며, 자신이 언니라 부르던 폐인을 바라보았다. "셀레스티아, 이제 놓아줄 때도 됐어. 침실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한 지도 벌써 네 달째야. 이제 슬퍼할 만큼 슬퍼하지 않았어?"
"내가 충분히 울었다 싶으면 그만두겠어, 루나." 셀레스티아가 루나의 슬픈 시선에서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날 내버려둬. 혼자 있고 싶어."
"하관한 때부터 매일 밤낮으로 그 소리만 했잖아." 루나가 앞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나 혼자서 평생 태양과 달의 일을 맡아볼 수는 없어. 이제 해야 할 일을 해야 해."
"태양이라면 띄워주고 있잖아. 그걸로는 부족해?" 셀레스티아가 루나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루나 공주가 셀레스티아의 어깨 위로 차분하게 한쪽 발굽을 얹었다. 셀레스티아는 루나의 발굽을 밀어냈다. "백성들이 걱정하고 있어. 몸은 괜찮은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항상 물어와. 못 견디고 자살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도 일쑤고, 이제 그만 자신들을 용서해 달라고 애걸하는 자들이 태반이야. 얼굴 비출 것도 없으니까, 발끝이라도 내보여. 그러면 좀 나아지지 않겠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셀레스티아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며 따지듯이 쏘아붙였다. 두바다를 가르고 다가오는 폭풍처럼 분기탱천한 두 눈이 캔틀롯을 흘겨보았다. "내가 사랑한 모든 걸 다 바쳐 가며 나라를 보살폈더니, 거기에 침을 뱉고 내다 버린 작자들에게 왜 내가 신경을 써 줘야 하는데?! 내 행복은 앗아간 주제에 이제 와서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밑도 끝도 없이 떼를 쓰는 저치들을 내가 왜 보살펴야 하는데?! 트와일라잇이 죽은 게 누구들 때문인데!"
"이제 그만 좀 해!" 루나가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암살을 모의하고 실행한 작자들이라면 이미 땅속에 파묻혔어! 그 자들이 처형당하는 꼬락서니도 다 봤잖아! 애초에, 백성들 모두가 트와일라잇이 주도한 개혁이나 트와일라잇 본인을 증오한 게 아니잖아. 열성 지지자가 많았으면 많았지! 트와일라잇이 암살당한 게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잖아!"
셀레스티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침실 창문 중 하나로 뿔을 겨누고 마력 에너지를 쏘아냈다. 창문이 산산이 부서져 떨어졌다. 침소 인근을 경비하던 근위대원들이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적이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하나같이 무기를 뽑아든 채였다. 물론 근위대의 눈에 적들은 없었다. 루나 공주가 근위대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근위대는 경례를 바치고 경비구역으로 돌아갔다. 방에 다시 둘만 남았을 때, 루나 공주는 천천히 다가가 자매를 가만히 안았다. 셀레스티아는 두 눈을 감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뭐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어떻게든 했어야 했는데. 너를 지키지도 못했으면서 이제 트와일라잇도 지키지 못했어."
"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루나가 눈물을 참으며 가만히 말했다. "언니라고 항상 사람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는 건 아냐."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안 돼......" 셀레스티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 모두를 위한 큰 청사진이 있었는데. 온 이퀘스트리아가 미래에도 번영할 수 있는 계획이 있었는데.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었던 것뿐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그 계획이 급진적이긴 했어. 모든 걸 바꿔놓을 정도로." 루나는 씻지 않아 뒤엉킨 셀레스티아의 갈기 너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족들이란 부류가 그렇지. 그치들이 가진 권력을 빼앗는 것으로도 모자라 평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한다면 돌아 버려. 트와일라잇은 우리 나라가 다른 종족들에게도 보다 포용적인 국가가 되길 원했었어. 그렇지만 포니 외의 종족은 무조건 혐오하는 백성들도 있었지. 마법을 일부 대체할 기술을 들여오자는 생각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변화가 두려웠던 거야."
"왜? 나는 그치들을 도왔어!" 셀레스티아가 소리쳤다. "팬시 팬츠같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나, 캔틀롯에서도 가장 유서깊은 귀족 가문들까지도 트와일라잇을 지지했는데! 트와일라잇을 못 믿었다고 쳐도, 적어도 나는 믿었어야 하는 거 아냐?"
"그자들이 퍼뜨려대던 소문을 모르지 않잖아." 루나가 말했다.
셀레스티아의 뿔이 빛을 내뿜었다. 마력 덩어리가 침실 바닥에 잘 쌓여 있던 더러는 벗들로부터, 더러는 셀레스티아를 경애하는 자들로부터 진상된 물건들을 훑고 지나갔다. 물건들은 곧 순식간에 산산조각나 사방에 쓰레기로 널렸다. "나는 조종당하지도 않았고, 자리를 위협받지도 않았어! 트와일라잇을 두고 그런 끔찍한 말들을 쏟아내다니!" 셀레스티아는 더욱 고개를 숙여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이래서는 안 됐어. 어느 하나라도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었는데......"
"티아..." 루나가 무릎을 꿇고 앉으며 날개를 펼쳐 언니의 몸을 감쌌다.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잖아. 우리의 선택이나 행동이 앞날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그래도 트와일라잇을 죽일 줄은......" 셀레스티아가 눈물을 닦았다. "뭐라도 했어야 했던 게 맞아. 좀 더 경각심을 가지게 할 수도 있었고, 더 뛰어난 근위대원을 붙여 줄 수도 있었는데. 아예 처음부터 알리콘이나 공주로 승격시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는지도 모르고."
"언니가 할 수 있던 건 다 했어." 루나가 말했다. "누구라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알 수 없었을 거야."
"트와일라잇에게 약속한 게 있어서 그래, 루나...... 약속을 했어......"
그들은 끝없이 몰려왔다. 한없이 몰아쳐대는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셀레스티아 스스로도 트와일라잇의 승격을 두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반대 여론의 규모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대관식 이후 부정평가 비율은 올라가기만 했다.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평민들에게서도 그러했다. 다행히도 트와일라잇의 승격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반대파와 달리 목소리를 내지도, 이렇듯 귀찮게 굴지도 않았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탄원서 조각들이 벽난로 불쏘시개로 아주 좋았다는 것뿐이었다. 탄원서 무더기를 불길에 밀어넣자마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고개를 돌리자 일곱 달 전 대관식을 마친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셀레스티아는 이제 자신과 동격의 자리로 올라온 제자인 트와일라잇을 기꺼이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트와일라잇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한숨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날개로 트와일라잇을 가만히 감쌌다. 예복을 두르지 않은 가슴에 트와일라잇이 안겼다. "힘든 날이었나 보구나."
"네..." 트와일라잇이 조용히 대답했다.
"털어놓고 싶으니?"
"...일단은 안겨 있기만 하면 안 될까요? 쓸쓸하네요."
셀레스티아는 트와일라잇을 데리고 침상으로 건너갔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안고 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셀레스티아의 머릿속에 절로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그 때 셀레스티아는 나쁜 꿈을 꾸거나, 가족이 그리워 우는 어린아이를 달래며 어머니 같은 역할을 했었다. 이제 그 때 데려온 어리고 철없는 아이는 아니지만, 셀레스티아는 제자가 안아 달라는 말을 한 번 물리친 적 없었다.
트와일라잇이 셀레스티아에게 안겨 있던 머리를 천천히 떼어내고 나서야 둘은 안고 있던 다리를 놓았다. "제가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질 않아요. 제가 그분들 비위를 맞추려고 해 봐도 절 쳐다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더군요. 저는 공주님만큼 믿음직하지 않나 봐요. 집무실을 주시고 나서는 더 심해졌어요. 제 뒤에서, 더러는 앞에서 험담이 들려요."
"트와일라잇 스파클." 셀레스티아가 트와일라잇의 얼굴에 뺨을 비볐다. "나라고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랑받는 지도자는 아니란다. 나에게도 내 뒷말을 하는 정적쯤은 있지. 그런 애들 수작은 신경 쓰지 말거라. 시간이 지나면 같이 지나간단다."
"알고는 있어요. 그래도......" 트와일라잇이 몸을 일으켜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껏 지켜 온 땅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곳이 트와일라잇의 집이었고, 재앙의 전조를 읽어낸 곳이었다. 이제 트와일라잇은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온 이퀘스트리아를, 다른 두 알리콘과 함께 통치하고 있었다. "제가 주제넘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게 제 운명이란 건 알아요. 공주님께서도 제가 훌륭한 일을 해낼 거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저도 공주님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이퀘스트리아를 위해 제 모든 걸 바치려면 그래야만 해요." 그리고는 난간에 얼굴을 올려놓고 두 눈을 감았다. "그분들이 제 마음에 공감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공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런 말들을 무시하려 하지는 않아요. 제 생각의 좋은 점을 그분들도 알게 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죠. 그 누구보다도 제가 적격하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정말 그런 줄만 알았어요. 가끔은 제가 정말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요. 제가 정말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셀레스티아도 자리에서 내려와 트와일라잇의 옆에 다가섰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셀레스티아 자신의 목숨도 내어줄 수 있는 사랑하는 백성들로 가득 찬 도시를 같이 내려다보았다. "네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야. 루나와 내가 힘을 받은 것은 우리 부모님께서 소천하신 뒤 디스코드를 봉인하는 데 성공한 다음이었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로 불신의 눈총을 받았지. 아주 오랫동안,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어." 트와일라잇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스승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내게는 루나가 있었고 루나에게는 내가 있었단다. 서로가 서로의 친구가 되었지. 그렇게 견디다 보니 백성들도 우리를 믿어 주더구나. 루나도 나도, 너에게 그렇게 할 거란다. 네가 이퀘스트리아를 몇 번이나 구해냈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들이 네게 더 큰 힘이 되어 줄 거야. 네게는 나도 있고, 네 친구들도 있고, 네 가족이 있단다. 우리가 항상 네 뒤를 지켜 주마, 트와일라잇. 내가 널 지켜 주마."
트와일라잇이 젖은 눈으로 스승을 껴안았다. "고맙습니다......"
셀레스티아는 웃음지으며 제자의 정수리에 뺨을 비볐다. 물론, 쓰고 있던 티아라는 조심해야 했다. "언제 우리 셋이 포니빌로 놀러 가는 건 어떠니? 다른 누구도 말고, 우리 셋만."
"고맙습니다, 셀레스티아 공주님." 트와일라잇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두 공주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내일은 뭘 할지 이야기했다. 정치의 세계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셀레스티아가 옷장으로 걸어가 그 위에 올려두었던 액자 하나를 들어올렸다. 루나는 눈물을 닦았다. 갓 알리콘이 된 트와일라잇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대관식 피로연을 즐기며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행복하고 생기가 넘쳤다. 이제 그들은 하나같이 그 정반대로 추락하고 말았지만.
"약속을 했어, 루나. 내가 지켜 줄 테니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사진 위로 눈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져 뒹굴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저 괴물들이 내 코앞에서 트와일라잇을 죽이도록 내버려두고 말았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 평생 동안 여기 틀어박혀 있을 심산이야?" 루나가 쏘아붙였다. "당신 아직 공주야, 셀레스티아. 지난 세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떠나보냈잖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제 마음 굳게 먹고 다시 나아가야 해.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거야. 나도 그 상실감을 알......"
"알긴 뭘 알아?!" 셀레스티아가 쩌렁쩌렁한 소리로 소리쳤다. 그나마 남아 있던 창문들이 부서져 떨어졌다. "루나 넌 내 심정을 털끝만큼도 이해 못 해! 트와일라잇은 제자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었어. 내 딸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셀레스티아가 왕관을 벗어 최대한 힘을 실어 벽에 내팽개쳤다. 그 정도 힘으로 처박혔는데도 왕관에는 흠집 하나 없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다. "그 백성이라는 작자들이나 공주란 개같은 이름이나 죄다 꺼지라고 그래! 아무나 하나 붙잡고 해 띄우라고 시켜! 자기네들이 바라던 끔찍한 미래로 기어 들어가는데 아무나 공주 노릇 하면 어때? 누구라도 그런 멍청한 짓거리는 할 줄 알잖아? 저 같잖은 왕관 때문에 지금껏 무슨 꼴로 살았는데! 나한테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공주 노릇을 계속 해야 하나? 루나, 난 이제 지쳤어. 저 의무라는 것들이 내 삶을 짓밟아 놓는 꼬락서니를 더는 못 견디겠어. 날 그냥......"
그 순간 셀레스티아의 뺨을 무언가가 갈기고 지나가며 날카로운 짝 소리를 일으켰다. 루나가 자신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거의 1분이 지나갔다. 셀레스티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루나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차가운 시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딜 감히 그런 말을." 루나가 말했다. "내가 당신이랑 똑같은 고통을 공유하지 못한다니 어디서 그딴 헛소리를 해.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내 친구 정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천 년 동안 고립된 끝에 처음으로 얻은 친구가 걔야. 다른 녀석들이 전부 나만 보면 겁먹고 슬금슬금 달아나려 들었을 때, 걔만 날 믿어 줬고, 날 도와 줬어. 지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그래서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도와 준 것도 그 애야. 걔는 날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어. 내가 뭘 두려워하는지,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꿈꾸는지, 전부 다 들어 줬어. 셀레스티아 당신에게는 딸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자매나 다름없었어!"
셀레스티아는 생애 처음으로, 루나 앞에서 자신이 시시하고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셀레스티아는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루나가 셀레스티아 앞까지 다가와 버티고 섰다. "이퀘스트리아를 보살펴야 하는 우리의 의무를 두고 같잖다고 말하다니, 제정신이긴 해? 지금 상황에서 같잖은 존재는 언니 하나밖에 없어." 루나가 이를 악물었다. "우리 코앞에서 서서히 생명을 잃어 가시는 부모님 앞에서 세운 약속은 잊어버리기로 작정한 모양이야? 나도 의무가 얼마나 무겁고 고단한지는 알아, 셀레스티아! 이퀘스트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더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 그런데 이제 의무를 저버리겠다면 우리 가족의 얼굴에만 먹칠하는 게 아냐. 우리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먹칠하는 짓이지. 항상 당신을 믿고 따르던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얼굴에도 먹칠하게 되겠군." 루나가 셀레스티아의 왕관을 주워 들이밀었다. "계속 방에 처박혀서 트와일라잇을 모욕하면서, 삶이 엉망이라고 징징대고만 있을 참이야? 아니면 다시 왕관을 쓰고 모두가 경애하고 존경하는 공주, 내 사랑하는 자매가 될 참이야?"
셀레스티아는 가만히 왕관을 내려다보았다. 해와 달이 있는 곳으로 집어던져 영영 찾지 못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지만, 루나가 허약해진 몸으로 붙들고 있는 왕관 위로 눈물이 떨어져 부서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루나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이나, 트와일라잇이 여기서 셀레스티아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분명히 구역질나는 짓거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셀레스티아는 왕관을 집어 머리에 올렸다. 그리고 한 마디 한숨과 함께 말했다. "미안해, 루나."
"사과할 필요는 없어, 티아." 루나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는 발굽을 뻗어 셀레스티아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불사신이 아니야. 그저 힘든 시기를 견뎌내며 슬퍼하는 가련한 포니들일 뿐이지.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으니까."
"그럼 이제 어쩌지, 루나?" 셀레스티아가 루나의 두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루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트와일라잇에게 가 봐야지. 가서 네 달 전에 했어야 할 작별 인사를 해, 티아."
"그......" 셀레스티아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게. 잠깐만...... 잠깐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어."
셀레스티아아는 문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다 말고, 스타스월의 책을 집어 가져갔다. 그녀는 루나가 왜 그건 가져가냐고 묻지 않기를 바랐다. 셀레스티아는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 회랑을 따라 걸어가는 사이, 루나의 울음이 귓가에 스쳤다.
작가의 말
원래 단편으로 구상하고 있었는데, 쓰다 보니까 스토리가 좀 복잡해지드라고요. 그래서 4개 챕터로 쪼갰음. 일단 다 쓰고 나서도 업로드하는 데는 조금 더 걸려요. 한 1~2주 있다가 다음 챕터가 나올 거 같은데, 재밌을 거에요. 따봉이랑 댓글 부탁!
역자의 말
저는 읽어보고 번역하지 않습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죠. 짧으니까.
그래도 트와일리를 알리콘으로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는 저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거 보고 벙쪘거든요.
아, 이거 시퀄도 있어요. 그것까지 할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