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Torturer : Stag Part I
고문기술자 : 스태그 편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들 하지, 안 그런가? 그러면 일상적인 업무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지지 않을 거고, 힘은 반만 들이고도 손쉽게 일을 마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그게 아니라도 살면서 뭐라도 득 보는 게 있을 거 아니냐 이거지. 그래서 내가 포니라는 족속들과 그 큐티마크를 부러워하는 거야. 적어도 평생 동안 뭘 하면서 먹고 살지 방향 정도는 제시해 주는 것 같거든. 아, 물론 그게 항상 들어맞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지. 고문기술자로 밥벌이를 하면서 왕국의 그림자 아래를 살금살금 숨어다니며 보아하니 으레 그렇더라고. 이퀘스트리아 사회는 참 이상하지. 아무리 그쪽으로 재주가 있어도 큐티마크가 전혀 다른 걸 상징하고 있다면 그쪽에서는 직장을 구할 수가 없으니 말이야.
예를 들어볼까. 목소리가 기막히게 예쁜 점을 살려 청중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은 녀석이 있다고 하자. 근데 복숭아 모양 큐티마크가 떡하니 박혔다? 안됐군. 그 친군 짤없이 평생 복숭아나 만지며 살아야 해.
격투기 가르치는 걸 좋아하고 언젠가 자기 도장 하나 차리고 싶은 놈이 있다고 쳐 볼까? 그 녀석 큐티마크가 드릴 모양이면 그냥 건설회사 현장직이나 해먹고 살아야지 방법 없어.
농부가 되고 싶은데 구름 모양 큐티마크가 박혔다고? 저런, 평생 날씨나 관리하면서 살아야지.
물론 대부분은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살려 본인이 알아서 그쪽으로 진로를 정해. 괜찮지. 그러나 '숙명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아닌 다른 쪽 일을 하고 싶어하는 녀석들은 아주 비참한 꼬라지가 돼. 아, 뭐 물론 돈이 많거나 정계 쪽에 빽이 든든하다면 그런 것 정도는 무시하고 살 수 있어. 하지만 큐티마크에 맞게 취업하라고 강제하는 법을 만든 게 다름아닌 그 자식들인걸. 그치들은 모두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만인이 행복할 수 있다고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만인을 자기네들 관리감독하에 집어넣겠다는 같잖은 수작이야. 어스 포니들은 땅이나 파먹고 온갖 고된 일이나 시키고, 페가수스들은 군바리로 굴려먹거나 날씨 관리를 맡기면 끝이지. 정치나 행정 같은 우아한 일은 유니콘들이 하고 말이야. 여기서 더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게 포니 외 종족들이야. 뭐 누가 써 주기라도 할 때 말이지만. 아, 이걸 깜빡했군. 귀족 가문 열 놈 중 여섯 놈은 공주들 가는 길에 그냥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면서도 봉급을 받아먹는다는 거 아나? 그리고 그 법을 자기네들의 무궁무진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만든 것도? 그래, 그런 짓거리는 차라리 당나귀들이 더 능수능란하게 잘 하는데 말이야.
그래, 그런 분들이 누구겠나? 유니콘이지.
정말이지, 우리 체인질링들이 써먹던 케케묵은 계급제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아, 몰랐나? 몰랐으면 지금이라도 알아둬. 난 체인질링이야. 스태그는 우리 어머니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고. 체인질링 제국, 더러는 '군락'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만, 사천 년 전 온갖 군벌들이 난립해서 싸움박질을 벌이던 시대도 있었지. 지금은 뒈지고 안 계신 크리살리스 여왕께서 통일하신 이래 계속 통일 군락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니 일단 그렇게 알아두고...... 나는 체인질링 제국의 수확 계급 출신이야.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왕족 계급들이 싸그리 죽어 없어진 덕분에 가장 높은 계급이 되겠구만.
내 고향이 이랬다 저랬다 같은 소리는 하지 않을 거야. 애초에 오래 전에 고향을 뜨기도 했고 말이야. 듣기로는 전제군주정을 버리고 공화정 체제를 수립하는 중이라고 하더군. 고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의 안배에 따라 말이야. 글쎄, 전체 계급의 절반을 설득해야 공화정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텐데, 뭐 잘해보라고. 아마 피의 숙청이 머지않아 뒤따를 텐데, 그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게 생겼으니 참 유감이야.
본론으로 슬슬 돌아가 보자고. 내가 밥벌이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주지. 나도 내 나름대로 재능이 있다네. 나도 처음에는 제국 충성파였어. 그래 이퀘스트리아에서 '수확'을 하고 돌아다녔지. 수확자들은 포니 사회에 침투하고, 관찰하다가 그 중 하나로 변신해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가 사랑이나 정보를 뽑아낸 뒤 고향으로 돌아가 조국을 먹여 살리는 게 임무였어. 그러다 보니 포니라는 자들의 정신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대강은 알겠더군. 그 정신을 산산이 부숴놓는 방법도 같이 배웠지. 정보를 얻으려거든...... 가끔 설득을 해야 할 때가 있었으니 말이야.
그 설득이란 게 고문이란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육신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야. 그건 뒤처리가 귀찮거든. 물론 아주 안 한 건 아니다만.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게 더 나은 방법이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지만서도 아주 효과적으로 사람 하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거든. 보다 창의적인 방법도 많고 말이야. 내가 고문을 마치고 나면 대개 희생자들의 정신은 붕괴되기 마련이었지. 몇 번은 차라리 죽이는 게 더 자비롭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래도 그게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내 역할인 걸 어쩌겠나? 나는 그냥 더러운 일을 하는 쪽에 배치된 것 뿐이야.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는 나를 두고 '청부 싸이코'라고도 부르더군.
고향을 떠나고 난 뒤, 나는 내게 꼭 맞는 틈새로 파고 들어갔어. 그러지 않으면 꼬리를 내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테니 말이야. 형태를 바꾸는 능력과 고문 기술을 살려서...... 좀 어두운 쪽에서 일하는 사업가들 사이에서 돈벌이를 할 수 있겠다 싶더군. 솔직히, 이 짓을 먼저 하고 있던 체인질링이 있기는 했어. 그래도 나는 지하 세계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지. 수많은 가명을 써 가면서 말이야. 몇몇은 내가 체인질링인 줄 알고 있었고, 다른 몇몇은 유니콘이나 페가수스, 그리폰, 얼룩말 기타 등등으로 알고 있었어. 심지어는 날 어린애로 알고 있던 녀석들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설마 루나 공주도 나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지. 뭐, 처음에는 아니었어. 우리 동족들이 이퀘스트리아를 정복하려 시도한 사건 이후 이퀘스트리아에는 이른바 '벌레잡이'가 시작되었어. 체인질링이란 체인질링은 모조리 잡아 죽이겠다는 거야. 특히 간첩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말이 나와서 말인데, 캔틀롯 침공은 정말 등신같은 짓이었어. 뭐, 크리살리스도 침공 시도 일주일 후에 뒈져 버리기는 했으니 아주 선한 게 안 나는 건 아닌 모양이지만. 어쨌든, 벌레잡이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적은 없었어. 거의 들킨 적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경비병 몇몇을 중상만 입혀놓고 달아난 건 잘못이었어. 그것 때문에 꼬리가 길어졌으니까.
체인질링 제국이 한없는 내전 끝에 서로 찢어져 죽어가던 찰나, 이퀘스트리아 왕국군이 거기 '침범'해 상황을 종료한 지 한 달이 지난 뒤,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는 이퀘스트리아가 체인질링들을 위한 안전한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어. 트와일라잇 공주는 이퀘스트리아가 우리 체인질링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평등하게 대우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지.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으로 짐을 싸들고 들어오는 다른 종족들과 마찬가지 대접을 받도록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모습을 바꾸지 않고 밖으로 나다닐 때면 지나가던 녀석들은 나를 두고 '벌레'라고 부르더군. 벌레라니. 너무한 거 아냐? 그게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인가? 그렇다면 내 머릿속에도 저치들을 표현할 좋은 어휘들이 많이 있지. 뿔쟁이, 잡종, 진흙탕 성애자, 비역꾼 같은 거 있잖아. 이건 시작도 안 한 거야. 뭐 그래도 상관은 없었지. 나는 '벌레'란 멸칭을 일종의 명예훈장처럼 여겼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왜 그 비역꾼들처럼 하고 다닐 필요를 느낄 이유가 없잖아? 우리 체인질링이 최상위 포식자인 걸 잊어버리고 사는 양반들이 많은데, 다른 그 어떤 종족보다도 우리 종족의 역사가 길다는 건 왜 모르나 몰라. 아, 용은 빼고. 우리 동족 중에는 포니 놈들이란 근본적으로 가축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 자기네들 스스로 법을 만들고, 알아서 한 군데에 모여 우리가 사랑을 뽑아먹는 도축장을 만들어 주니 보다 개량된 가축인 건 분명하지. 안됐지만 사실이야. 메스모리아께 맹세하지. 그건 도덕적이지도 않고, 그것들도 우리처럼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얘기하고 싶겠지만 어지간하면 참아.
우리가 지하로 들어가면서 경비병들을 봤는데 말이야, 상당히 그것도 인상적이더군. 아직도 어깨에 계급장을 매달고 있지 뭔가? 세상에, 모집병 주제에 체인질링 징집병 떼거리들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그 무능함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데도 말이야. 뻔뻔하지 않아? 풉, 약골 자식들.
잠깐, 얘기가 왜 여기로 샜어? 그렇지, 루나 공주부터 얘기하면 되겠군.
음, 루나 공주는 나를 신속하게 잡아들였어. 처음에는 이제 해놓은 짓이 있으니 못해도 철창이고 잘못되면 즉결심판으로 죽겠구나 싶었지. 그런데, 나와 거래를 제안하더라고. 왕가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해주겠다고 서약하면, 지금까지 내가 저지른 모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거야. 새출발하게 해 주겠다 이거지.
글쎄...... 난 도서관 사서가 꿈이었는데. 포니빌에 자리가 하나 났다고 들었어. 아닌가?
아하, 그래. 취소, 취소하지. 지금 얘기하기엔 적절치 않긴 해. 미안하게 됐어. 그래도 이런 일을 하려면 좀 음습한 유머 센스도 있어야 해. 안 그러면 밤에 잠 못 자. 그것도 아니면 알코올 중독자로 인생 끝나겠지. 둘 다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쪽도 대략 짐작은 하겠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 내가 할 일은 내 탁월한 '협상 솜씨'를 통해 누가 트와일라잇 공주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는지 캐내는 것이었지. 다행히도 귀족 나으리들과 블루블러드 도련님 사이에 오간 대화를 엿들은 얼룩말 시종 하나가 내부고발을 해 왔더군. 그러니 이제는 그 양반들을 엮어 들어올 근위대원들이 나설 차례라는 거지. 암살 음모가 다른 계급에서 꾸며진 것이었다면 잡아들이기는 이것보다 훨씬 어려웠을 거야. 귀족이라 그나마 편했던 거라고. 돈 좀 만진다 하는 작자들은 화장실에서 똥을 싸지르고 난 다음 시종들에게 자기 뒤를 닦게 시키는 법이니까.
농담 아냐. 진지하게 하는 얘긴데, 몇 놈들은 실제로 그래.
내가 이 짓을 하고 있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어. 개인적인 거긴 한데, 나중에 얘기해 주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근위대 총지휘관이라는 양반이랑 얼굴 보고 얘기하게 됐어. 박쥐 날개를 한 새까만 여자였지. 이름은 이브닝 글로리라고 하더군. 다른 박쥐 포니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새까만 털을 하고 날카로운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었는데 갈기는 어두운 녹색이었어. 입고 있는 갑옷은 전 근위대장인 샤이닝 아머의 것과 비슷했는데, 그 등신같은 금색에 보라색을 섞은 게 아니라 검은색과 흰색으로 되어 있었고. 척 봐도 그 양반들이 마주해야 할 '심연'을 다분히 의식한 스타일이었어. 내 생각이 맞다면, 그 양반들은 상대를 겁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고 다니는 걸 거야. 그것보다 겁나는 차림새가 없긴 했지만서도.
대장 나으리는 날 별로 안 좋아하더군. 시험삼아 말이라도 걸어 볼까 했는데, 그냥 관뒀어. 날 보자마자 대뜸 내뱉은 말만 해도 충분했거든.
"이것만은 확실히 해두지, 벌레여. 나는 너도 그렇고 너희 족속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독방에 갇혀 있는 저 다섯 자들보다는 너희가 낫다. 그러니 다행으로 여겨라. 루나 공주님의 명령이다. 저들을 죽이거나,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야기하는 것만 아니라면 저자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셀레스티아 공주께서는 저자들이 사지 멀쩡히 재판장에 들어오길 바라신다." 대장 양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노려보았어. 무섭게 보이려는 것처럼 말이야. 귀엽기도 하지. "그러니 그런 짓은 하지 말아라, 벌레야."
그냥 좀 곯려 줄까 싶어서, 대장이란 분이 나를 두고 뭐라뭐라 말하는 내내 내 발굽이나 쳐다보며 별반 흥미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어. 그리고는 중얼중얼 대답했지. "예, 예. 그러믄요." 그리고는 그 여자보다 더 화가 난 얼굴로 거꾸로 노려보며 말했지. "그러니 이제 슬슬 일이나 하러 갑지요. 이래뵈도 저도 바쁜 몸이란 말입니다. 아, 가기 전에 이거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잉." 그리고 내 두 뺨을 톡톡 두드려 보였다네. "사람 겁주려고 하지 말고, 겁나는 사람이 되십쇼. 포니 나으리들께서는 누굴 겁나게 할 그릇이 안 된다는 것도 인지하시고요. 뺨에 살이 너무 붙었지 않습니까." 그래,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지만 나라고 재미 좀 못 볼 건 없잖아.
대장 나으리는 조소하더니, 데려온 병사들에게 고개를 까딱해 신호를 보냈어. 그러자 병사들이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데려가더군. "내 보기엔 블루블러드를 가장 먼저 작업하고 싶어할 것 같은데."
나는 완전 멍청이를 보는 듯한 얼굴로 대장 양반을 쳐다보았다네. "예? 아뇨, 그건 머저리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놈은 하등 쓸모가 없거든요." 그러면서 세상 진지한 표정을 하고 대장 나리를 지나쳐 걸어가 보이니까 그 양반이 눈썹을 치키더군. "블루블러드는 암살 모의를 진두지휘할 그릇이 못 되거든요. 가까이에 참모들을 두고 그자들에게나 명령했을 겁니다. 아마 일만 제대로 되면 상관없으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했겠죠. 그만큼 믿었을 겁니다. 그러니 블루블러드란 자가 암살모의에 관여할 게 있었겠습니까? 암살자들 이름이나 알고 있을지 의심스럽군요. 글쎄, 그 양반들 이름을 들었다 쳐도 외우거나 할 인물도 안 되겠지만요. 암살자들을 끌어들인 건 트와일라잇 공주를 죽이려는 생각 하나뿐이었을 겁니다. 그것밖에 머릿속에 없었겠지요. 호부견자라더니 딱 그 짝 아닙니까. 아버지에 비하면 고양이 새끼만큼이나 게을러 터진 자식놈이죠."
"아마데우스 블루블러드 경을 아나?" 이브닝 글로리가 묻더군.
"존경하는 박쥐 포니 나으리, 쇤네는 그 양반과도 일을 했었답니다."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네. "그 양반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죠. 그래도 엄청나게 영리한 부류였답니다. 그런 양반 아들내미가 이렇게 돌대가리라는 게 안 믿길 정도니까요."
그러니 블루블러드는 내 작업에 필요한 작자는 아니었다. 그러니, 암살단에 가장 마지막으로 가입한 녀석을 잡아내야 했어. 몰래 뒤로 재미 보는 동아리에 껴서 제 역할을 하려거든, 배워야 할 것들을 열심히 익혀야 하니 말이지. 공주를 시해한 동아리라 해도 동아리인 건 마찬가지 아닌가. 아, 이랬으면 웃기겠군. "트와일라잇 암살 동아리에 드세요! 정기총회 끝나면 뒤풀이로 과자와 우유도 드려요!" 하고 말이야. 자, 어쨌든 암살조직의 신입이자... 아직 신선한 고깃덩어리일 녀석을 잡아야 했어. 그리폰의 한 끼 식사로 내주려거든 그 편이 다지기도 쉽고 양념도 잘 먹거든.
문제는, 그게 누구냐는 거야.
나는 실실 웃으면서 근위대장을 향해 몸을 돌리고 물었다네. "저치들도 나름대로는 애국자였겠지요. 특히 셀레스티아 공주께는 그야말로 광신적이었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이브닝 글로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어. "아이보리 셸 경은 항상 셀레스티아 공주께 트와일라잇 공주가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고 참언했다. 루나 공주께서 돌아오셨을 때와, 케이던스 공주님을 공주로 승격시켰을 때도 그랬지. 그 사람은 공주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그 공주가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쫓아내고 국가를 전복할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당장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자리를 비우면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이지."
아이보리 경이라. 그 소똥 무더기 같은 등신과도 여러 번 같이 일했었지. 그러게, 이쪽으로 줄을 대길 정말 잘했다.
"좋습니다. 그자의 감방으로 데려다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알아서 하지요."
"아무렴 그래야 할 거다, 벌레야."
"아, 다른 것도 하나 말씀드릴까요?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절 벌레라고 부르는 게 모욕할 의도인 건 알겠는데 그닥 모욕적이지 않다는 거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더 독한 게 있다 이거죠. 그러니까,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제가 여러분을 갈보년의 불경한 자식새끼나 시궁창 쥐새끼라고 불렀다고 합시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했다고 치자는 것이죠. 그랬다간 대장님께서는 돌로 제 머리를 박살내 버리시겠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 돌로 머리를 맞지는 않았다. 얼굴에 주먹을 맞았을 뿐이지.
감방으로 가는 길이 아주 멀지는 않았어. 작은 창으로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니, 세상에, 그 양반을 아주 박살을 내 놨더구만. 오렌지색 솜털 위로 피멍이 든 게 아주 선명하게 보였고, 사방에 상처가 나 있었어. 노란색가 붉은색이 섞인 갈기는 마구잡이로 뒤엉켜 있었고 말이야. 발굽도 마찬가지로 깨져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어. 나를 안내한 근위대 둘을 돌아보고 이렇게 부탁했다네. "이제부터 변신할 겁니다. 제 신호를 따라 저를 가장 위대한 지도자처럼 대해 주십시오."
나는 곧장 셀레스티아 공주로 모습을 바꿨어. 알리콘으로 변신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야. 겉모습은 따라할 수 있긴 한데, 그걸 유지하려면 기술도 필요하지만 충분한 기력도 필요하지.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좀 걸어다니는 거랑 말 좀 하는 거 정도라서, 그 이상을 했다간 변신이 풀린다는 것도 중요했고.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그리 길게 버틸 수는 없으니까 가능한 빨리 일을 끝내야 했지. 이브닝 글로리는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근위대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내가 시킨 대로 하라고 지시했어. 병사들이 감옥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정말로 태양의 통치자가 된 듯 당당한 걸음으로 감방 안으로 들어섰다네. 내 옆으로는 병사들이 하나씩 붙어서 내 연기를 도왔고 말이야. 아이보리 셸은 날 보더니 헉 하고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더군. "고, 공주님!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압니다. 제가 비열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도 압니다. 그럴지라도 전부 공주님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왕위 찬탈을 꾀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공주님!"
"알고 있었다, 아이보리 셸." 나는 가능한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그러자 그치가 고개를 들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더군.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그리고는 몸을 돌려 벽 쪽을 쳐다보며 몸을 꼿꼿이 세우고 대답했지. 자, 그럼 거짓말을 좀 해볼까. "아이보리 셸.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너와 다른 이들이 해준 일에 나는 아주 감사하고 있다."
"그렇...... 그렇습니까?" 되묻는 목소리에 희망이 묻어나더군. 좋지, 희망은 마약 같은 것이니. 계속 주다 보면 아는 건 전부 다 불어버리거든.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공주로 승격시킨 다음이겠구나. 트와일라잇 스파클, 한때는 내 신실한 제자였던 아이가 반역 음모를 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느니라. 아무도 몰래 반역 음모를 저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던 차에, 너희가 해낸 것이다. 그래, 블루블러드 대공을 도와 반역자를 처단한 자가 또 누가 있느냐?" 슬픈 척 표정을 바꾸고 말을 이었다. "한때 딸이라 부르던 아이가, 내가 만들어낸 모든 것과 나마저도 죽여 없앨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생각하니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었다. 자기 혼자 잘난 줄 아는 자가 이퀘스트리아를 혼돈의 손아귀에 쥐여 주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지 않느냐. 그대 말이 맞았다, 아이보리 경. 처음부터 공주로 승격시키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그... 그렇습니다. 그겁니다!" 아이보리가 웃으며 소리쳤다. "바로 그렇습니다! 저희가 이 일에 참여한 것도 전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공주님! 저희는 그렇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는데, 역시 그랬었군요! 트와일라잇은 항상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지요! 그 변혁이라는 것도 이퀘스트리아를 파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귀족도 아닌 것들에게 발언권을 주자는 말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땅을 저 멍청한 개새끼들이나 얼룩말이나, 추악한 체인질링들에게 내주겠다는 것도 그렇고요! 그것들의 탐욕스러운 배를 불려 주겠다는 약속은 다름아닌 반역을 위한 자신의 군대를 꾸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저희는 그것이 실로 두려웠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더라도 반역의 뿌리는 전부 뽑아낼 것이다." 마력이 서서히 몸을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 "트와일라잇 암살을 꾀한 자들이 아직 남아 있는 줄 안다. 짐이 그대 다섯을 투옥한 것은 그 때문이니라. 미안하구나."
녀석이 또 절을 하더구만. "공주님, 저는 공주님을 섬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공주님과 우리 나라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죽을 수 있습니다."
"글쎄 모르겠구나, 그렇게 될 것이기는 하거든. 나는 너희 다섯의 죽음을 위장할 생각이다. 진짜 반역자들의 뿌리를 캐내는 동안 너희를 비밀리에 숨기려거든 그래야 한다. 그럴지라도 말이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너희가 블루블러드의 동아리에 가담한 순서를 알아야겠구나. 그래야 너희가 나를 위해 충성한 기간에 맞추어 보답을 할 게 아니냐."
그자의 눈가에서 순간 탐욕이 번쩍 빛났다. 저치같은 자들은 이런 말이 떨어지면 실제 순서가 아니라 보상의 크기 순서대로 이름을 대기 마련이지. 저자가 사실은 세 번째라고 한다면, 앞의 두 명은 거짓말이 되겠지만 뒤의 두 명은 진실이 된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셀레스티아 공주님." 그자는 기뻐하면서 대답했다네. "블루블러드 대공의 동아리에 가장 먼저 합류한 것은 저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그린그래스 경, 바이스 경, 코스모 경이었습니다."
"저기, 이건 인정해야겠구나, 아이보리. 너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내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목소리가 조금씩 뒤틀려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어.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지. "난 자네가 그냥 등신인 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이제 보니 구제불능 저능아였구먼."
나는 씩 웃으며 몸을 돌렸다네. 내 모습이 완전히 체인질링의 몸으로 변해 가는 걸 보면서 그 자식의 실실대던 상판이 한없는 공포와 절망감으로 나락에 처박히는 꼬라지를 놓칠 수는 없잖나.
"아냐... 아냐......"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눈물은 그렁그렁 매달고 딸꾹질을 해대면서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막 저어대는 꼬라지란. "아냐, 아냐! 안 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작은 소리로 낄낄대며 고개를 천천히 흔들어 보였다네. "하, 아니긴. 돌대가리, 나일세." 그리고는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가 불편할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말했지. "자네도 기억하겠지. 내 얼굴을 가까이서 보며 입을 놀릴 만한 강단은 자네한테 없을 거라고 내 그러지 않았는가. 이제 보니 정말 없군. 뭐 없겠지. 하긴 처음 내 얼굴 봤을 때 얼마나 지랄 발광을 했었는지는 말할 것도 없으니."
"스......" 늙은이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도 못 하더구만. 그래도 얼마 안 가 개구리 숨 넘어가는 소리나마 말을 하긴 했어. "스태그." 그 양반도 참, 입술은 부들부들 떨고, 눈물은 또 얼마나 쏟아내는지 뺨이 다 축축해질 지경이었지. 흡사 평생 동안 주인에게서 학대만 받은 강아지를 데려다가 보살피다 보면 그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 "스태그. 자네도 내가 자네나 자네 동족들을 얼마나 존중해 왔는지 알잖나......"
"아닐세, 아이보리... 아니지, 아니야, 아니고말고......" 나는 내 발끝으로 그자의 뺨을 거칠게 만지작거리다가, 가능한 멍청해 보이는 모양이 나오도록 그대로 쭉 눌러 버렸다네. 우리의 두 눈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고, 나는 자식의 실수를 질책하는 부모가 된 듯한 투로 조용조용하게 말했어. "지랄은 그만둬. 아이보리, 현실을 직시하시지. 자넨 좆됐어. 자네 가문 전체가 좆된 거야. 자네는 선택을 했고, 이게 그 결과라네." 나는 그대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근위대원들에게 몸짓해 보였다. "여기 우리, 우리가 바로 결과라 이거지. 이제 공주님께서 하사하실 타르타로스행 특급열차 일등석 표나 즐겁게 기대하고 있으라고. 아마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거야. 그렇지, 자네의 영지는 체인질링 이민자 수십 가구가 정착해 살아갈 새로운 고향으로 새로 태어날 걸세. 아마 여기서도 번성해서 세대에 세대를 거쳐 수백 명씩 후손을 남기겠지." 나는 그의 뺨을 부드럽게 톡톡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럼, 좋은 하루 보내게."
그자는 날 멍하니 쳐다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지. 나와 병사들이 감방에서 나가는 데 시선이 박혀서 움직이질 않더군. 나는 감방 문을 걸어잠그다 말고 그 자리에서 잠시 기다렸어.......
"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하, 비탄에 잠긴 저 달콤한 울음이란. 게다가 다음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나. 코스모 경이라.
역시 난 내 일이 좋아.
역자후기
체인질링 시점으로 쓴 건 처음으로 옮겨 보네요. 어차피 정치 쓰릴러 파트지 체인질링의 생태 같은 건 아니니 상관없겠죠.
그리고 의외로 스태그가 묘사한 귀족들의 행태는 인류 역사에 실제로 있던 것들입니다. 유럽 쪽 귀족 어르신네들이 흔히 그랬다네요. 프랑스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