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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 Ponyvile

Chapter 02.

by Mergo 2022. 5. 23.

"여기 있네." 핑키 파이가 포니빌 지도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지도를 찾으러 도서관으로 돌아온 참이었고, 마침 그녀에겐 필요한 물건을 본능적으로 찾아내는 신기한 능력 비슷한 것도 있었다. 빨간 펜을 입에 문 핑키가 낭떠러지로 끊어진 길 위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리고, 그 위에 가위표를 쳤다. 그 다음, 다른 사람이 있나 찾아보러 들렀던 몇 군데 집에도 조그마한 가위표를 쳤다. 포니빌은 버려진 마을처럼 비어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람?" 핑키의 시선이 지도 위에 쳐놓은 가위표 위에 머물렀다. 지금까지 살펴본 곳은 포니빌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길목은 물론 각자의 집까지 텅 비어 있는 것은 이상했다. 날씨가 정말 좋지 않다고 해도 보통은 각자의 집에서 나오지 않거나, 시 차원에서 소개령 같은 것이라도 떨어졌어야 마땅했다. 게다가, 마을 외곽에 밑바닥을 모를 절벽이 생겨난 건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슈가큐브코너로 가야겠어. 열기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페가수스 누구라도 마주칠지 모르지. 그렇기만 하면 이 안개 다 뭐냐고 물어 볼 수도 있을 테고." 핑키는 중얼거리며 머릿속으로 자신의 계획을 정리했다. 잇몸이가 잘 있는지도 걱정되었다. 괜찮기를 바랄 수밖에. 그녀는 지도를 보며 경로를 점검한 뒤, 지도와 펜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가는 길에 혹시라도 이상 현상이 나타난 곳을 더 보게 되면, 지도에 표시해 둘 생각이었다.

 

핑키가 싸늘한 바깥으로 걸어나왔을 때, 무엇인가 차갑고 축축한 것이 코끝에 닿았다.

 

"엥?" 핑키의 시선이 코 끝으로 향했다. 살짝 도리질친 핑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작은 눈송이가 하늘에서부터 쏟아져 내려, 조용히 땅 위로 흩어지고 있었다.

 

"눈이 내려? 지금... 여름인데..." 흰 눈송이를 멍하니 쳐다보던 핑키가 중얼거렸다. 밖으로 뿜어낸 숨이 뿌옇게 엉기는 걸 보기는 했지만, 눈이 올 정도로 추운 날인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날씨를 관리하는 건 페가수스니, 분명 여기 어딘가엔 있을 터! 핑키는 전속력으로 슈가큐브코너를 향해 달렸다.

 

갑자기 가방 속에서 칙칙대는 잡음이 들려왔다. 소형 축음기가 또 말썽을 부리는 것이었을까? 하는 걸 보니 앞으로도 뜬금없이 이럴 게 뻔해 보였다.

 

안개 속에서 흐릿한 사람의 형상을 보자마자 핑키가 하던 생각들은 모조리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오! 누가 있는 모양이야!" 핑키는 기대에 차 사람의 실루엣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헌데, 그 형상에 가까워질수록 소형 축음기가 토해내는 잡음은 더더욱 커져 갔고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고 본능이 경종을 울려댔다.

 

"저기요,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래요?" 핑키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도 못할 거리에서 말부터 꺼냈다. 상대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그아아아아아...그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형체를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솜털과 갈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썩어 문드러져 가는 살이 구물텅거리며 맥동하고 있었다. 앞다리 두 개 중 하나는 뜯겨나가기라도 한 양 없어져 있었는데, 그 없어진 다리는 다름아닌 그것의 등짝에 돋아나 있었다.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무언가로 도려내기라도 한 듯 텅 비어 있었으며, 이빨조차 다 있지 않아서 이빨이 있어야 할 자리 몇 곳에 구멍만이 남아 피가 뚝뚝 떨어졌다. 게다가 나머지 육신 곳곳을 자상이 뒤덮고 있었다.

 

"괘, 괜찮아요?" 핑키가 한 걸음 물러서며 물었다. 그 최초의 반응은 마땅히 상대방의 상태를 묻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지만, 정작 그녀의 본능은 도망가야 한다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것'이 핑키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 또한 너무나 분명했다. 가방에 넣어 둔 소형 축음기는 잠시도 멈출 새 없이 잡음을 토해냈다.

 

"그르르르르럭!" 살덩이라고나 해야 할 '그것'이 핑키를 향해 달려들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핑키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하자마자, 그것의 아가리가 조금 전까지 핑키가 서 있던 바닥의 흙에 처박혔다. 핑키가 몇 걸음 더 뒷걸음쳤고, 그것은 아가리에 흙을 잔뜩 묻힌 채 고개를 들어 핑키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아가리에서 피와 뒤섞인 흙이 진흙이 되어 뚝뚝 떨어졌고, 지표가 피로 젖었다. 그것이 핑키의 냄새를 쫓아 움직이기라도 하는 양,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핑키를 향해 다가갔다.

 

"저, 저리 가! 저리 가라고!" 핑키가 뒷걸음치며 소리쳤다. 그 괴물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신음과 위협이 뒤섞인 소리를 흘리며 핑키를 쫓아 움직이고 있었고, 그 흔적이 땅에 떨어진 핏자국으로 남았다. 죽었으되 죽지 못하고 산 채로 썩어가는 듯한 그것의 모습은 핑키를 두렵게 했다. 그것은 핑키를 잡아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게 확실했다. 세포 하나하나가 도망쳐야 한다고, 최대한 빨리 달아나 어디 먼 곳에 숨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저리 안 가!" 핑키의 마지막 비명을 신호로 그녀의 네 다리가 마침내 줄행랑을 놓기 시작해, 빠른 속도로 그것에게서 멀어져 갔다. 괴물이 다시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지만, 핑키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달아나는 통에 주둥이는 다시 흙바닥에 처박힐 뿐이었다. 핑키가 괴물에게서 멀리 달아날수록 축음기에서 나는 소리도 서서히 잦아들어 가, 마침내 다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 즈음이었다.

 

핑키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이 목구멍 바로 너머까지 숨을 몰아댔다. 대체 그건 뭐였을까. 왜 핑키를 공격한 것일까. 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보이고... 그 괴물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슈가... 큐브... 코너..." 핑키가 헐떡이며 곤두선 신경을 애써 달랬다. 그녀는 앞다리를 깨물어 보았다. 날카로운 아픔에 몸이 움찔했다. 절대로 꿈이 아니었다. 자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분명 좀 전에 본 괴물에게서도 잘 달아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더더욱 꿈일 리 없었다. 핑키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렸다.

 

 

 

슈가큐브코너에 마련된 핑키 파이의 방. 핑키가 조심스레 방문을 밀자 경첩이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녀의 방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문턱 너머의 모습이 조금도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핑키가 조심스레 가방을 열어 랜턴을 꺼내 입에 물었고, 발굽으로 점화장치를 작동시켰다. 불이 붙음과 동시에 빛이 퍼졌다. 핑키는 불빛에 기대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거의 몇 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벽지는 다 썩어서 벗겨지고 있었고, 마룻바닥을 댄 목재는 다 깨지고 부서져서 흩어졌으며 좀먹힌 커튼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곳곳에 먼지가 켜켜이 쌓였고, 공기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핑키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휙 둘러본 뒤, 테이블에 랜턴을 가만히 올려두었다. 등불이 방 곳곳을 비추었다.

 

"내가... 어디 오랫동안 날려가 있다가 돌아오기라도 한 건가?" 핑키가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겨 방을 둘러보았다. 마룻바닥이 끽끽대며 핑키의 체중을 겨우 견뎠다. "아니지. 날 도와 주겠다고 말한 건 트와일라잇인데......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닌 이상 나를 머나먼 미래로 날려보낼 필요는 없잖아." 이제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좀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그랬었지...... 그럼 이게 그 부작용일 수도 있겠어."

 

축음기가 나직하게 잡음을 내기 시작했다. 잡음이 귓가에 스치는 순간 핑키가 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축음기가 작동한 건 그 괴물이 근처에 있을 때였고, 거리가 좁혀질수록 축음기 소리가 커졌었다. 그녀는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괴물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진정하자, 핑키 파이...... 굳이 벌써부터 걱정할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야. 일단 잇몸이가 여기 있는지부터 보고... 풍선 몇 개 찾아서 몸에 매달고...... 하늘로 날아서 이 동네를 뜨면 그만이야." 말을 마친 핑키가 입으로 랜턴을 물고, 급히 욕실 문을 홱 열었다.

 

"잇몸아?" 랜턴 문 입이 다급하게 꼬마 악어를 찾았다. 욕실 내부의 모습에 핑키는 거의 랜턴을 떨어뜨릴 뻔했다.

 

벽은 온통 피칠갑이 되어 있었는데, 피 묻은 발자국과 더불어 피로 급히 갈겨쓴 듯한 문장 몇 개가 남아 있었다. 커튼은 갈기갈기 찢겨 조각이 나 있었고, 그나마 남은 찌꺼기는 커튼 구멍에 매달려 달랑거리고 있었다. 욕조 바깥에는 피가 시커멓게 말라붙어 있었다. 욕실은 말 그대로 살육의 현장처럼 보였다.

 

"이, 잇몸아? 여, 여기 있어?" 핑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어쨌든 욕실을 확인해 봐야 했고, 직접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달아나고 싶어 돌아 버릴 지경이었지만, 잇몸이가 여기 있는지 확실히 해야만 했다. 핑키가 조심스레 욕실 내부로 들어섰다. 타일 바닥과 발굽이 부딪칠 때마다 시끄러운 메아리가 울렸다. 그나마 욕실에 들어온 이후 축음기에서 나는 잡음 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핑키가 세면대 위에 랜턴을 올려두고 마른침을 삼켰다. 욕실은 곰팡이의 퀴퀴한 냄새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핑키는 조심스럽게 욕조와 목욕 커튼 쪽을 살펴보았다. 있는 거라고는 피뿐이었다. 벽면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피를 묻혀 급하게 휘갈겨 쓴 듯한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도와 줘

 

아파

 

배고파해

 

 

핑키의 등골이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이게 다 무슨 말이란 말인가? 배고파하다니? 그 말이 핑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건...... 잇몸이 이야기인가? 잇몸이는 이빨이 없어서 잇몸이인데. 잇몸이가 먹을 수 있는 거라고는 악어용으로 만든 유동식이 전부였다. 대체 욕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왜 이런 일이 내 욕실에서 벌어져야 했단 말인가? 핑키의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이 떠오르며 뒤엉켰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느끼는 그 편안한 느낌이 너무나 그리웠다.

 

핑키가 벽에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살펴보아야 할 곳은 욕조 단 하나뿐이었다. 핑키가 조심스럽게 욕조 가장자리에서부터 목을 뻗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욕조 안에는 이미 절반 이상이 썩어 문드러진 작은 녹색 악어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핑키의 두 발굽이 입가를 가림과 동시에 두 눈에서 눈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잇몸이의 몸뚱이였다. 부패 상태를 보아하니, 오랫동안 거기에서 혼자 썩었던 모양이었다. 부패해 가는 시체를 쳐다보고 있자니 다시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외의 생각은 도저히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문득, 새빨간 리본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잇몸이의 주둥이를 단단히 묶어 결박한 채, 그 위로 멋들어진 매듭까지 지어 놓은 그 리본이었다. 핑키는 그게 대체 무슨 뜻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매듭을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킬 뿐이었다. 리본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은 품이...... 잇몸이가 핑키를 위해 준비해 둔 선물처럼 보일 정도였다.

 

핑키가 조심스레 발굽을 뻗어 잇몸이의 주둥이를 묶어 둔 리본을 잡아당겼다. 리본 끝에 달려 있던 무언가가 함께 미끄러지듯 딸려나왔다. 가까이서 보니 열쇠였다. 그 위로 별 모양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다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지만, 잇몸이는 분명 최후의 순간까지 그 열쇠를 핑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받아야 했다. 핑키가 조심스레 가방을 열고 열쇠를 그 안에 집어넣었다. 축음기는 그때까지도 조용한 잡음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핑키가 조심스레 등잔을 입으로 물어 들고 욕실을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그녀는 자리에 등잔을 내려놓고 흐느끼며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미안해... 잇몸아..." 치솟는 울음을 억지로 밟아 누르면서도 그녀는 발굽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언젠가... 꼭 좋은 데 묻어 줄게..." 다시 울음이 솟았다.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용서해 주렴..." 울음에 흔들리는 어깨를 붙잡고 그녀는 말했다. 울음을 가라앉히려는 그녀의 노력은 무의미했다. 울음은 끝도 없이, 더욱 세차게 밀려나왔다.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소리가 커지다 못해 높은 소리로 울어대며 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핑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뭔지는 몰라도 결코 호의적인 존재는 아닌 것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즉, 자리에 주저앉아 느긋하게 뱃속에 있는 것까지 울음과 함께 몸 밖으로 흘려보낼 정도로 울어제낄 시간은 없다는 뜻이었다. 잇몸이를 집어삼킨 잔혹한 운명이 그녀 자신까지 옭아매기 전에 당장 달아나야 했다.

 

그녀는 급히 랜턴을 물어 들고 풍선을 보관하는 벽장 쪽으로 내달렸다. 축음기 소리가 더욱 커졌다.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댔다. 핑키가 벽장 문을 붙들고 뜯어내듯이 홱 잡아당겼다.

 

째지는 고음과 함께 허연 무언가가 달려들어 핑키의 얼굴을 붙잡았다. 얼굴 전체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핑키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다가, 벽 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친 듯이 머리를 벽에 박아댔다. 허연 무언가가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는 고개를 홱 젖히고,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것을 방 저편으로 거칠게 내던졌다. 헐떡이는 숨이 빠져나오는 얼굴 위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려 그 허연 무언가를 쳐다보았을 때, 핑키는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쉬끼야아아아아아아아......" 바닥에 팽개쳐져 신음하고 있는 그것의 모습은, 몸에서 모든 모발을 제거한 어린 여자아이를 상반신만 남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창백한 가죽 아래로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살점이 비쳤다. 땅을 딛지 못한 두 다리가 마구 버둥거리고 있었고, 두 눈은 흰 반다나로 가리워 보이지 않았다. 벌어진 아가리는 나락처럼 검었으며, 긴 혓바닥이 날름거리며 징징대는 울음을 뱉어냈다. 그것이 질러대는 비명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라, 축음기가 토해내는 소리는 이제 들리지도 않았다.

 

핑키 파이는 그 꼬락서니를 한 괴물을 보고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린애를 닮은 괴물이라니...... 속이 뒤집혔다. 적어도 좀 전의 그 괴물은 반토막이 나 있지는 않았었다.

 

버둥거리던 괴물이 균형을 잡고 일어섰다. 징징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혀를 낼름거리는 꼬라지가, 공기 맛이라도 보는 모양이었다. 핑키는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뒤는 벽밖에 없었다. 괴물이 고개를 홱 돌려 핑키 파이가 있는 방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비명을 내지르며 미친 듯한 속도로 핑키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핑키가 급히 옆쪽으로 훌쩍 뛰어 피했고, 그 다음 순간 그것은 벽에 제 대가리를 거세게 박았다. 괴물은 고통에 대가리를 숙이고 째지는 비명을 토해냈다.

 

그것을 보는 핑키의 가슴 속에서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튀어나갈 듯 뛰어대고 있었다. 그것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조금 전의 충돌로 인해 벽에는 커다란 핏자국이 하나 더 생겼으며 그것의 대가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기까지 했다. 그것의 아픔을 달래주고 싶었고, 다 괜찮다고 달래주고 싶었다. 핑키는 그것에게 다가가 그것을 돕고 싶었다.

 

괴물은 피가 얼어붙을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핑키를 향해 내달렸고, 아가리로 핑키의 다리를 꽉 물어 버렸다. 핑키 또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다리를 미친 듯 휘둘러 그것을 떼어내려 용을 썼지만, 괴물은 더 힘을 주어 물고 늘어질 뿐이었다. 핑키는 아예 뛰어다니며 괴물을 떨어뜨려 보려고 했는데, 무는 힘만 더 강해졌다. 그녀는 이제 자기 자신의 비명과, 빨라지는 심장 박동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벽 옆에 멈추어 서서, 괴물을 벽에 대고 내팽개치듯 다리를 휘둘렀다. 괴물이 놓아주지 않았으므로, 핑키는 다시 한 번 휘둘렀다. 핑키는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였다. 뜨뜻미지근한 피가 벽면과 핑키의 솜털에 튀었다. 핑키는 온 힘을 쥐어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괴물을 벽에 처박았다.

 

그것은 목숨이 끊어지고 나서야 핑키를 놓아주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몸뚱이가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아드레날린으로 달달 떨리는 몸 속으로 빨려들어간 숨이 불기운으로 변해 허파를 가득 채웠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다리와, 자기가 직접 쳐죽인 그것의 몸뚱이 사이에서 그녀의 시선이 흔들렸다.

 

"아, 안 돼... 아냐, 아냐, 아냐......" 핑키가 죽은 몸뚱이에서 몇 발짝 뒷걸음치며 떨리는 숨으로 중얼거렸다. 죽여 버리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꼭 죽여야만 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물론 저 괴물이 먼저 공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죽이는 것 또한 온당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헐떡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몸이 떨렸고, 머리는 멍했다. 문득 내려다본 자신의 몸뚱이와 그 위로 튄 핏방울 몇 개. 속을 뒤집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창자를 토해내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핑키는 질식할 것 같은 숨을 겨우 들이마시며 터져 버릴 듯한 허파를 달랬다. "이렇게 끝낼 필요는 없었잖아?" 그녀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결과를 바란 적은 추호도 없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이것은 어느 순간 깨어나면 그만인 꿈이 아니었다. 철저한 현실이었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떨리는 다리로 다시 일어섰다.

 

"레인보우 대쉬... 래리티... 플러터샤이... 애플잭... 트와일라잇... 제발 아무나... 나 좀 살려 줘..." 그녀는 비틀거리며 벽장 쪽으로 다가갔다. 랜턴을 입으로 물어 잡은 얼굴이 어둠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풍선은 그 안에 있었다. 바람을 빼 둔 풍선은 거기에 보관하니까. 마음 한켠에서 작은 희망이 솟았다. 핑키는 랜턴을 내려놓고 천천히 벽장 안 바구니에 곱게 개어 넣어 둔 풍선을 잡아당겼다.

 

풍선에는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뚫린 지 오래였다. 핑키를 태우고 날아가기는 불가능했다.

 

핑키는 흐느껴 울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쓸모를 다한 풍선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축음기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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