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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Flashgen] 어둠 속 희미한 희망

A Glimmer Hope in the Black : Part II - Sweet Apple Acres Crop Rotation/Spring '83

by Mergo 2019. 10. 20.

 

 

이하의 내용은 스윗 애플 에이커 외곽 지하 저장고에서 발견된 일지에 기록된 내용을 복사한 것이다. 발견된 일지는 하드커버 장정이 된 두꺼운 노트로, 겉표지에는 "스윗 애플 에이커 윤작 기록 : 83년 봄 ~          " 이라 적혀 있다. 책등과 뒷표지에 몇 군데 말라붙은 핏자국이 얼룩져 있지만, 일지 내부는 깨끗했다.

 

수사팀이 최초 진입했을 때 스윗 애플 에이커 내부 농가주택과 헛간 주위로 전등 몇 개가 설치된 것이 식별되었다. 절반 가량은 부서져 있었고, 나머지는 방전되어 쓸 수 없었다. 농가주택과 헛간 내부에는 트와일라잇 스파클 양의 일지가 발견되었을 때 함께 발견되었던 보급품과 유사한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농가주택 뒤편에서 트와일라잇 스파클 양의 일지에 기록되어 있던 만든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무덤으로 보이는 흙무더기 세 개가 발견되었으나, 발굴 결과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묻혀 있지 않았다.

 

일지 앞 287페이지 가량은 일지 표지에 기록된 내용과 마찬가지로, 지난 몇 해 동안 스윗 애플 에이커에 딸린 경작지를 얼마나 어떻게 무엇을 재배하는 데 사용했는지 기록되어 있었다. 농지 사용기록은 극도로 세밀하게 적혀 있었고, 여기에 중요한 메모나 단서를 남겨두었을 것으로 추측되어 정밀 조사했으나 따로 덧붙인 기록은 없었다.

 

그 다음 다섯 장 정도는 비어 있었고, 이후부터는 스윗 애플 에이커에 거주했던 애플 가의 장녀인 애플잭이 일기장처럼 쓰고 있다. 스파클 양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여기 기록된 사건의 신빙성은 낮다. 또한, 마을 도서관에서 발견된 일지의 내용과 충돌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4월 18일

 

일단 쓰기는 하겠다만, 솔직히 뭘 써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네.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일기를 쓰면 그래도 마음이 좀 진정되기도 하고 어디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기도 해서 일단 일기를 쓰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니. 애플블룸은 스위티벨과 스쿠틀루는 잘 있을지 걱정하느라 덜덜 떨고 있다. 애플블룸을 진정시키려고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슬슬 우리도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니 스미스는 사진 앨범과 뜨개질 세트, 요리책 여러 권을 꺼냈고, 빅 맥은...... 음... 평소보다 말이 많아졌다.

 

어쨌든, 이 모든 게 괴담 속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 좀 말이 되는 상황이긴 하다. 촛불 불빛이 닿는 곳 밖은 찬기운이 감돈다니 말이 되나. 이 어둠은 뭔가 부자연스럽다. 하늘에는 빛 한 점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거라고는 멀리서 반짝거리는 불빛 몇 개만 어른거리는 우리 동네뿐이라니. 친구들이 무사해야 할 텐데. 대쉬만 트와일라잇네 도서관으로 피신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녀석은 제 앞가림 정도는 하는 녀석이니까. 나머지 친구들이라면,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편이 낫다.

 

생필품이라면 당장 필요한 건 다 갖고 있긴 하지만, 머지않아 전부 써 버리고 말 것이다. 뭐, 트와일라잇이라면 지금쯤 적어도 책 다섯 권 정도에는 코를 박았다 뗐을 거다. 답을 찾고 있겠지. 누구라도 답을 찾을 수 있다면 트와일라잇도 할 수 있다.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이 페이지의 빈 공간은 전부 몇 가지 숫자로 채워져 있다. 숫자는 6에서 15 사이의 숫자로, 몇 가지는 가위표가 그어져 있고 옆에 물음표 표시가 되어 있다. 12, 10, 13만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다.)

 

 

4월 19일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적겠다. 오늘은 아주 놀라운 일이 있었다. 오후, 그러니까 시계를 보면 대충 오후라고나 해둬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일이다. 빅 맥과 함께 헛간에서 물건 몇 가지를 옮겨놓고 있었는데, 마을 쪽에서 불빛 몇 개가 우리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 땐 정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문을 걸어잠궜고, 그래니 스미스는 애플블룸을 창가에서 떼어놓았다.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각자 등잔을 밝히고, 가방을 짊어지고 우리 농장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심지어 등잔 중 두 개는 캔틀롯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 눈을 의심하기는 했지만, 곧 빅 매킨토시와 함께 나가 사람들을 맞아들였다. 몇몇은 우리 동네 사람이었고, 다른 몇몇은 캔틀롯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가 변을 당한 사람이었다. 사람들 맨 뒤에는 레인보우 대쉬도 있었다. 그 녀석이 괜찮은 걸 보니 마음이 여간 놓이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 사내는 자신을 스패너라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 포니빌로 파견된 수사관 중 하나라고 밝혔다.

 

스패너는 자신들이 포니빌 근교 호텔에 피신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소한 이야기를 하더니, 우리 가족이 이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만한 잠자리와 생필품을 갖고 있는지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물건을 가득 쟁여놓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니 스미스, 빅 맥, 심지어 애플블룸과도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우리가 한 줌 부스러기밖에 가진 게 없다 해도, 저 사람들을 그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났다.

 

우리는 다음 몇 시간 동안 사람들이 가져온 조명을 매달고, 물건을 정리하고 헛간에 자리를 마련한다고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다 정리하고 보니 우리 모두가 몇 주 정도는 견딜 만한 식량과 음료가 나왔다. 게다가 주택 근처에 심은 사과나무도 있으니, 음식이 필요하다면 가서 따다 먹어도 될 것이다.

 

대쉬는 우리 집 안의 공간을 비워주고 거기에 묵게 했다. 헛간에도 여유 공간이 생겼다. 스패너 수사관의 제안에 따라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결정했다. 빅 맥과 나, 대쉬가 다시 자원했다. 저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 줄 수 있어서 기쁘다. 내가 도울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는다면 분명 벌을 받을 것이다.

 


 

4월 20일

 

오늘 하루는 일종의 평범한 날이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새로 들어온 손님들에게 헛간을 비워 잠자리도 마련해 주었고, 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의 요리를 나눠 먹었다. 애플블룸네 반 친구가 하나 끼어 있었다. 스쿠틀루나 스위티벨은 아니었지만, 애플블룸은 기뻐하며 같이 잘 놀았다. 대쉬는 헛간 주변을 빙빙 도는 것 정도로는 날개로 기지개 펴는 것만 못하다고 툴툴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따뜻하고 안전한 잠자리에서 잠들기를 기도하거나 잡담을 나누는 것 정도라도 같이 모여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서 도서관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망원경이나 뭐 그런 거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불은 켜저 있는 것 같다.

 

스패너 수사관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스패너 수사관은 동료 수사관인 슈가케인과 세 명의 근위대를 데리고 과수원으로 왔다. 다른 일행들은 전부 시청에 진을 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스패너 수사관은 그 친구들이라면 터프하기 짝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며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짐작가는 게 있는지, 해결책을 찾고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최선이긴 하겠지.

 

일단 지금은 좀 자 둬야겠다. 내일 새벽부터 불침번을 서야 하니, 번쩍 일어나서 보려거든 일찍 자야지.

 


 

4월 21일

 

악몽을 꿨는데, 보통 기분 더러운 게 아니다. 속삭임 소리와 수도 없는 그림자가 검은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흡사 괴담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어젯밤에 꾼 꿈이 지금은 십 년 전 기억이나 안개처럼 흐릿해서 기억도 나질 않는다. 꿈 때문에 놀라 잠에서 깼는데, 한순간이나마 내 목숨과 우리 가족이 너무나 걱정될 정도로 무서웠다. 일 마일을 일 분에 주파한 것처럼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래도 지금은 지난 일이니까.

 

설득력 없는 얘기인 건 아는데, 다른 사람들도 악몽을 꿨다고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무슨 꿈이었는지 물어 보았는데, 그 사람들도 명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신경과민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빅 맥이나 대쉬는 그런 내색 하나 없고, 애플블룸은 심지어 요 며칠 사이 가장 팔팔하게 날아다닌다. 어쨌든 그 꿈 때문에 잠도 충분히 못 잤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지키려거든 굳건하게 견뎌야 한다.

 

아, 또 하나 내 신경을 긁는 게 있긴 하다. 좀 전에 스패너 수사관과 근위대원 하나가 이야기하는 걸 엿들었는데, 앉아서 허송세월하느니 뭐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내 보기에는 다른 마을까지 이동해서 그곳도 여기처럼 되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다. 수사관님이 그렇게 허락해 줄 리 없다는 것쯤은 짐작이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양반들이 그 계획을 실행했다간 여기 앉아 있는 양반들이 차분하게 아, 그렇소 하고 반응할 리 없다. 내가 옳기를 바란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4월 22일

 

우리 가족은 생필품 상자 몇 개를 헛간 뒤편에 보관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거기서 뭐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빅 맥과 근위대원들이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동안 스패너 수사관과 슈가케인 수사관과 내가 달려나가 대체 무슨 소리인지 보러 갔다. 보자마자 정말 놀랐다. 우리는 헛간과 집을 둘러싸는 형태로 등잔을 매달아 두었는데, 그 중 세 개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나 있었다. 다행히 불은 나지 않았다. 상자 두 개가 부서져서 나무 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졌는데,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은 죄다 털려 텅 비어 있었다.

 

흙바닥 위에는 그 어떤 발자국이나 발톱 자국 등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보다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기괴해서 죽기 직전이었는데다가, 날이 춥지도 않았고 등잔 불빛 안에 있었는데도 뼛속까지 추위가 느껴졌다. 사방에서 누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해두면 적절할 것 같다. 그 느낌이 몇 시간 동안이나 들러붙어 있었다. 나중에 대쉬에게 슬쩍 얘기하긴 했는데, 걔를 빼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기분이 이상해서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이런 소식을 들고 돌아가는 마당이라 좀 조심스러운 마당이었는데 그건 스패너와 슈가케인도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돌아가서 물건 상자가 너무 대강 쌓여 있다 보니 뭐가 하나 잘못 미끄러져서 전부 박살나 버렸다고 둘러댔다. 그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진정했다. 그 근위대원 중 하나가 어제부터 발작을 해서 그렇지.

 

그 양반은 파수를 볼 때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구석진 데서 보냈는데, 이 양반이 스패너 수사관에게 당당히 걸어가 뭐라도 해야 하는데 우리 발목을 잡고 뭐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러 버린 것이다. 그러니 다른 셋도 펄쩍 뛰고는 똑같은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전체가 이 문제로 항의하며 소란을 피웠다. 그래니 스미스가 겨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시민의식으로 가득한 토론 과정이었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결론은 났다. 두 명이 내일 출발할 것이다. 북쪽, 트로팅엄 방향으로 향할 예정이다. 트로팅엄까지는 걸어서 하루도 걸리지 않는 거리니까, 그 양반들이 뭘 찾아내든 쪽박을 차든 길어도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이 사달을 낸 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거야. 떠나던 때의 자기 자신은 아니겠지만.


 

(이 페이지와 다음 페이지에는 꽤 많은 투명 문자가 씌여 있다)

 

4월 23일

 

근위대 둘이 아침 일찍 떠났다. 그때부터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앞으로 짧으면 이틀 안에 돌아오겠지만, 다시 볼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것이겠지. 잠시 대쉬를 불러내 요즘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녀석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팔팔하고 든든하지만, 온 밤낮을 농장에 죽치고 있으면서 게으름 피우는 것보다는 답을 찾아보는 게 더 낫지 않은지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답을 구하고는 싶다. 스패너 수사관과 슈가케인 수사관은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대쉬와 둘이서 뭔가를 찾아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근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항상 지켜본다.

 

 

사실, 헛간 뒤에 쌓아놓았던 그 박살난 상자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다. 뭐가 정말 저 밖에 있고,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라면 그것들이 등잔 세 개를 박살내고 생필품 상자 두 개를 털어놓은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인데, 우리가 놈을 찾을 수 있을까? 놈을 막을 수 있기는 할까? 그렇다면 그것이 상궤에 있을 수 없는 리 없다는 것인데, 그럼 우리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항상 기다린다.

 

 

트와일라잇이 계획을 세워서 정답을 들고 과수원으로 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기대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게 해가 다시 떠오른 다음일 수도 있지. 내심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이라는 것의 성질을 따라 잠시 이 답 없는 상황에서 눈을 돌리게 된다.

 

다음 기회가 오는 때를.

 

 

또 악몽을 꾸었다. 한없이 새까만 어둠 속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농장에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출입문, 창문, 심지어는 마룻바닥까지 긁어대고 할퀴어 대는 소리가 말이다. 누군가 가까이 있었는데 누구인지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한결같이 "왜?" 라는 질문만 한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들을 진정시키려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전부 사라졌다. 비명 소리는 없었다. 마룻바닥이 삐걱대는 소리도 없었다. 그 무엇도 그들을 붙잡지 못했다. 그냥 사라져 버렸다. 한기가 더 지독해지며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항을 멈추라고 말했다. 그 때 잠에서 깨었다.

 

 

다음 포식의 때를.

 

 

다른 악몽 같았으면 기억하지 못했을 텐데, 이번만큼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를 않는다. 잠을 자 보려고 했지만,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다시 들리고 냉기가 다시 몸을 감싼다. 누구를 깨우고 싶지는 않지만, 아침에 꼭 누구에게 얘기를 해 봐야겠다. 그러고 나서 잊힌다면 참 운이 좋은 것일 게다.

 

 

그 즐거운 순간을.


 

4월 24일

 

이제 뭘 더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다.

 

그건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지

 

정오가 될 때까지 농장은 조용했다. 이틀 전 농장을 떠났던 근위대원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북쪽, 트로팅엄 방향이 아니라 남쪽에서 거슬러 왔다.

 

보이지 않는다고 바늘이 천을 뚫고 지나다니지 않은 것은 아니잖아

 

그들은 뛰쳐 들어오며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소리치고 내질러댔다. 그 때, 희미한 빛을 뿌려대는 등잔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쁜 숨을 토해내고 있었고, 걸치고 있던 장구류는 걸레짝이 되었으며 갈기는 더러워져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그림자와 나무들과 미궁에 관한 이야기를 더듬거리며 주워섬겼다.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이 정도였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뱉어낸 말은 '일 주일'이었다. 그들은 말을 마치고 순식간에 까무룩 잠들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는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선발대 중 하나가 깨어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선발대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집 안으로 옮겨 놓았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기로 자원했고, 막 깨어난 사람이 고개를 흔드는 걸 보자마자 스패너 수사관을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다시 횡설수설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조금이나마 알아먹기 쉬웠다.

 

그는 처음 방향을 잡은 것은 북쪽이 맞았다고 말했다. 숲 속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는데, 숲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숲이 한없이 이어지더라는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난 뒤 급히 길을 되짚어 달려왔는데, 길이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시선 구석에서 무엇인가 그들을 지켜보는 형체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적어도 일 주일을 조금도 쉬지 않고 도망쳤다고 했는데, 불가능하다. 저 사람들이 출발한 건 48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스패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열이 올라서 헛소리를 하는 걸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염려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호기심이 도져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얘기를 대쉬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여기 오기 전부터 하늘이 새까맣게 변했는데, 그게 언제쯤인지 기억하냐고 물었다. 여기 오기 전부터 세서 말이다.

 

대쉬는 닷새라고 대답했다.

 

 

그냥 관점의 차이일 뿐이야. 넌 네 관점조차 믿지 못하는 것뿐이고.

 

 


 

4월 25일

 

악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눈을 감을 때마다, 내가 자거나 말거나 그 발톱 소리가 들려오고, 그들의 눈이 보이는 것 같다. 왠지 공허해 보인다. 칠해 놓은 듯 새까맣지만, 그것들이 거기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돌아온 근위대원들을 걱정하느라 서로 그 얘기밖에 할 줄 모른다. 확실히 진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는 건 남아 있다.

 

도서관은 여전히 여기서도 볼 수 있지만, 쟤들이 우리보다도 더 오래 도서관에 박혀 있었으면 어떡하지? 쟤네들도 없어졌으면 어떡하지?

 

내가 들은 바에 대해서는 아직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스패너 수사관도 그렇게 냅둘 리 없겠지. 저 사람들 정신 건강을 위해서야 그게 최선이겠지만, 내 정신 건강은 어쩌고?

 


 

4월 26일

 

선발대로 나갔다 돌아온 근위대원들이 조금이나마 기력을 회복했다. 스패너 수사관은 그냥 더 쉬라고 말했다. 그 사람도 그게 최선이라는 건 알고 있는 것일 테지만, 그 동안에는 파수를 볼 사람들을 더 뽑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저 사람들도 의지는 있지만, 파수를 볼 상태가 될지 걱정된다.

 

지난 며칠보다는 잠을 잘 잔 것 같다. 다른 악몽은 기억나는데, 어젯밤 꾼 악몽은 또 기억나지 않는다. 사소한 일이지만 고마운 일이다. 사실, 지난날 포니빌에서 보내던 일상처럼 느껴지는 꿈이었다. 대쉬는 새 곡예 비행 기술을 연습하고, 래리티는 새로 만든 드레스를 보여 주러 나오고, 트와일라잇은 캔틀롯에 요청한 아주 희귀한 고서적을 이제 받아봤다며 한없이 장광설을 늘어놓는 꿈 말이다.

 

지금 이 모든 일이, 잠에서 깨고 나면 사라져 버릴 개꿈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곧 다 해결될 것이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게 될 거야.

 

너희의 비명과 함께.

 

너희의 굴복과 함께.

 

어쩌면, 둘 다일지도.

 


 

(이 페이지에는 물이 튄 얼룩이 남아 있다)

 

4월 27일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어젯밤 조금 늦은 시각에, 대쉬와 내가 다른 둘과 함께 파수를 보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헛간에 들어가 잠을 자거나 휴식하고 있었는데, 그 때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집 건너편에서 들렸는데, 분명 다른 사람들이 순찰을 도는 구역이었다. 빅 매킨토시는 헛간에 있던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았고, 우리는 급하게 그리로 달려갔다.

 

그 사람의 등잔이 부서져 버려서, 우리는 그 사람의 윤곽선으로밖에 존재를 식별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무엇인가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인 양, 하염없이 땅바닥을 파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뭔가 시커먼 게 튀어나와 그 사람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 사람을 구하려고, 아니면 적어도 어떤 놈이 이 사달을 내고 있는지라도 보려고 앞으로 달려나가 봤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으로 땅을 파헤친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 때 스패너 수사관이 우리와 합류했다. 헛간에서 또 다른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 그 시커먼 놈이 또 일을 벌였겠구나 생각하고 헛간으로 되돌아갔더니, 빅 맥이 사람 하나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그 사람의 솜털 위로 그 시커먼 검댕 같은 뭔가가 물들어 있었는데, 그 얼룩은 서서히 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은 다 포기하고 이 모든 걸 끝내자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다른 몇몇은 부상자를 돌보느라 몸을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스패너 수사관이 나보다 빨랐다. 수사관은 그대로 달려가 빅 맥이 잡고 있던 사내의 머리를 걷어차 기절시켰다. 우리는 곧장 그자를 꽁꽁 묶고 구석진 자리에 던져두었고, 다친 사람의 응급처치를 도와주었다. 그 다음 우리는 집 건너편에서 보았던 순찰조 하나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수사관에게 보고했다. 헛간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집 안으로 대피시키고, 가능한 보급품을 실어와야 한다고 수사관이 얘기했을 땐 당연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 미친놈을 묶어서 헛간 구석에 처박았을 때 다 해둔 일이었으니.

 

지금으로서는 밝은 곳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하의 문장들이 여백에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왜 나는 더 크게 말하지 않았나?

 

왜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나?

 

무서웠던 것인가?

 

알고는 있었나?

 

그 사람이 최악의 운명을 맞아도 되는가?

 

나는 이미 굴복했나?

 


 

4월 28일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내몰려 있다. 하나같이 스패너 수사관에게 뭔가 묻고 답변을 요구하지만, 수사관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수사관은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을 안전하게 지킬 것이라고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제 수사팀 인력은 다섯밖에 남지 않았다. 둘은 위층에서 쉬고 있지만. 그래도 스패너 수사관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려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하루 종일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실외에 밝혀놓고 들어온 불빛은 여전히 밝게 비추고 있다. 그러니 그것들이 전등을 때려부수려 해 봐야 자신의 위치만 노출시킬 뿐이다. 그러면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라. 어쩌면 이것이 그것들에게 보내는 경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대쉬는 전보다도 더 긴장해 있다. 거실 위를 세 바퀴 빙빙 돌던 거를 겨우 멈췄다. 대쉬는 여기 들어온 이래 가장 불안해하고 있다. 이제 불안감만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을에 밝혀져 있던 불빛 하나가 사그라들었다. 여기서는 아주 희미하게밖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보았다. 도서관에 밝혀진 불빛은 아니긴 한데

 

 

한 번에 하나씩

 

불빛과 생명이

 

꺼져간다

 

빨리 이 모든 게 끝나길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시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미 그러고 있다.

 


(이 페이지의 문체는 다른 페이지에 적힌 문체와 사뭇 다르다. 좌상단에 "RD"라고 쓰여 있다.)

 

4월 30일

 

어제보다 상황이 나쁘다. 그것들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집 안에서였다.

 

나는 애플잭과 빅 맥, 근위대원인 타지와 함께 파수를 보고 있었다. 근무 교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일이다. 요며칠 쉬고 있던 근위대 둘이 이제 제 발로 걸어다닐 만하니 근무 복귀시키겠다고 스패너가 말했는데, 정말 팔팔해 보였다. 스패너는 슈가케인과 함께 그 둘을 데리고 내려왔는데, 과수원 근처에 식별되는 수상한 건 없었다고 근무 상황을 인계한 뒤 잘 자라고 인사하고 돌아갔다. 애플잭과 나는 잘 준비를 했다. 빙빙 돌며 날아다니지 말라고 핀잔을 들었다. 애플잭은 일기를 쓴다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나는 항의했다. 그 때 아래층에서 뭔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가능한 빨리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아니지, 애플잭이 가능한 정도라고 해야 맞나. 어쨌든 내려가서 보니 계단 밑바닥에 근위대원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가까이 가 보려고 했는데, 애플잭이 저거 피라면서 못 가게 했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게 피랑 비슷해 보이긴 했는데 훨씬 끈적하고 시커맸단 말이지. 그래 그러더니 막 꿈틀꿈틀거리면서 온몸을 비틀며 일어나겠다는 양 바닥을 막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다고 보기도 어려운 게, 그 몸뚱이는 여전히 축 늘어진 상태였다는 거다. 애플잭은 엄청 놀란 것 같았다. 아마 나도 놀랐던 것 같다. 그래도 재빨리 그걸 밀쳐내고 달려갈 틈을 만든 건 나다.

 

애플잭이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간 동안, 나는 그걸 감시하고 있었다. 몸뚱이가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온몸이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막 뒷걸음질을 치는데, 애플잭이 돌아와 아직 부엌에 진을 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 우리는 곧장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사람 수가 어째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적었다. 우리를 잘 달래 주던 근위대원 하나도 없어졌다. 그 친구도 변했다고 스패너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몸을 뺀 호텔을 소유하고 있던 부부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거기 가만히 엎드려 숨어 있었다. 그리고 변해 버린 근위대에게 물린 남자애를 간호했다. 지난번에 헛간에서 다쳤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는 듯싶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고, 그 다음 순간 벌어진 일이 뭘지 알았다면 그 때 마음을 놓진 않았을 거다. 그 자식의 솜털 색도 변해가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게다. 그 자식이 바닥에 굴러다니던 칼을 집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 자식이 애플블룸을 붙잡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그 자식을 진정시키려고 온갖 애를 썼고, 애플잭은 그 자식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새끼 왈, 전부 소용없다나 뭐라나.

 

그 자식 처음에는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하더니, 애플블룸을 한 번 베고는 다리 한쪽을 물어뜯어 버렸다. 빅 맥이 그 자식을 붙든 순간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다. 애플잭, 그래니 스미스가 애플블룸에게 응급처치를 하는 새, 슈가케인과 스패너가 옆으로 다가갔다.

 

물린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물린 다리가 검게 물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그것들이 물어뜯는 등 상처를 입거나, 단순 접촉만 해도 저렇게 변한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절단해야 한다고 그들은 말했다. 아직 물들어 가는 중이기 때문에 충분히 절단할 수 있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는 잘 몰랐지만, 아주 미친 생각은 아닌 듯싶었다. 적어도 그 양반들 말에 반박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플잭은 그 반대였지만.

 

우리는 남아 있는 물건들을 전부 긁어모아 위층으로 올려보내고, 전 인원이 위층으로 올라온 뒤에는 층계를 봉쇄했다. 몇 시간 동안은 조용했지만, 애플블룸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열이 났고, 검은 얼룩은 느릿느릿한 속도나마 계속 번져가고 있었다. 미쳐 날뛰는 애플잭에게 뭐라 말을 건네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애플잭은 계속 안 된다고만 말했지만, 그래니 스미스가 애플잭 옆에 붙어 있겠다고 했다.

 

그래니 스미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플잭이 돌아왔을 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스패너가 의료키트와 칼을 가져왔다. 끔찍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자 애플블룸은 굉장히 편안해진 듯 보였다. 애플잭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고 말하면서도, 혹시 누가 이 일지를 찾아내 읽을지 모르니 전부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내 가족에게 그런 일이 닥쳤더다면, 나 또한 똑같이 반응했을 테니.

 


 

(이 페이지 한쪽 귀퉁이에 "AJ"라고 적혀 있다)

 

5월 1일

 

보름 동안이나 농장에서 농성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상황이 더 안 좋아져만 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위층으로 올라온 이후 지금까지 쉬고 있지만, 조만간 파수 임무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악몽을 꾸는 일은 없지만, 여전히 잠자기는 힘들다. 아래층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그 아래에는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를 않는다. 아직 침실 창문 밖을 내다보지는 않았지만, 내일쯤 한번 볼까 생각 중이다.

 

레인보우 대쉬가 자러 가기 전 잠시 얘기나 하자고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고 한다. 대쉬는 별로 내색은 안 했지만, 내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냥 피곤할 뿐인데.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안 괜찮다면 어쩌겠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건 내게 걔한테 할 말은 아니지. 애플블룸도 괜찮아질 것이다. 애플블룸도 안전하고, 우리 모두가 안전하다. 나는 안다.

 

오래는 아닐 거야

 

할머니를 도와 드리려면 밤에 일어나야 한다. 애플블룸의 붕대를 갈아 줘야 하니까. 애플블룸은 자기는 괜찮다고 말한다. 열도 다 내렸고, 감염증 증세도 보이지 않는다. 영락없는 군바리 체질이다. 다리를 절단할 때도 눈 하나 깜짝하는 게 없었다. 자기 스스로 거동은 아직 못 하지만, 정신력만은 여전히 굳건하다. 자랑스러운 동생이다.

 


May 2nd

5월 2일

 

하룻밤 내내 꿈을 꾸었고, 그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어둠 속, 저 벽 뒤와 아래층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안 되지만 왠지 화가 난 듯싶다. 아주 조용하게 속삭이고 있긴 한데, 못 들은 척 할 수가 없다. 짙은 어둠만이 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림자가 보인다. 비명 소리가 들린 듯하다. 비명 소리가 속삭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사라져 줄 생각은 없겠지만, 내가 없애 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일어나 보니 일기장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쓴 적은 없는데.

 

일어나기 전에 잠이 깬 기억도 없고, 누가 일기를 적을 사람도 없다. 핑키나 대쉬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고 나면 기분은 훨씬 나아지긴 한다. 그러나 그게 거기서 끝나지를 않는다. 내 차례가 되어 불와크와 교대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대쉬가 자러 가라고 인사하기 전까지의 기억이 없다.

 

그냥 멍하게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서관도 말이다. 저 멀리 보이는 어둠 앞에 거리와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듯싶었다. 정말 몇 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막상 방으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몇 시간이 지났다. 대쉬에게 혹시 누가 나한테 말 시키러 온 적 있냐고 물었다. 대쉬는 그건 아닐 것이라고 대답했고, 나도 그런 기억은 없다. 대쉬 녀석, 내가 미쳤나 생각하겠군.

 

내가 내 생각만큼 제정신이 아닐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냥 엎어져서 다른 사람들이 날 돌보게 할 수는 없지. 계속 밀어붙여야만 한다. 그래야 한다.

 

적어도 악몽을 더 꾸진 않으니까.

 


 

5월 3일

 

"조용한데."

 

대쉬는 이렇게 말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잠자고 불침번을 서는 것만으로 시간은 잘 간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수많은 그림자가 어둠 속을 드나들고, 속삭임 소리는 침묵 속에 숨어든다. 놈들은 항상 여기에 있다. 내가 보거나 듣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렇다. 대쉬와 빅 맥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둘은 내가 농담을 하는 것이거나, 너무 예민해져 가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뭘 보고, 뭘 들었는지는 확실히 안다. 조용한 건 그것들이 기다리며 우리를 지켜보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바람 소리가 갈수록 날카로워지며 울부짖는 소리로 바뀌어 간다. 문간에 와 부딪치는 소리가 발굽으로 두들기는 소리처럼 들린다. 마룻바닥이 끽끽대는 소리는 등 뒤로 조용히 접근하는 발자국 소리처럼 들린다. 어떻게 내가 그것들에 이렇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준비해야 한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애플블룸이 또 다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이 페이지에 적힌 글씨는 떨림이 심하고, 아무 자리에나 적혀 있으며 어휘 곳곳에 공백을 두고 있다. 이하 내용은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원본 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5월 3일 5일 4일?

 

기억나지 않는다. 끄적여놓은 내용들은 기억이 나는데, 그것들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얼마나 되는가? 내 기억에 그것들은 항상 수가 많았다. 나

 

내가 계속 쓴다면 계속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어딘가를 지켜봐야 한다. 대쉬는 알 것이고, 스패너 수사관은? 지원이 오기는 할까? 트와일라잇이나, 다른 사람들이 아직 버티고는 있을까? 트와일라잇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 보겠다고 계속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트와일라잇이 이걸 해결할 수 있게 냅둬라.

 

우리가 받아들인 사람들이 얼마였지? 13명인가? 7명? 지금은 우리 가족이랑 7명이 남아 있다. 나머지는 어떻게 됐지? 변했던가? 우리 모두에게 남은 운명이 그것인가? 그래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지?

 

그 소리와 그림자들은 멈추지를 않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눈치채기 전부터도 그랬을까? 그것들이 이제 그만두고 꺼져주기 바란다. 계속 뭔가 해 보고는 있다. 내가 그러기를 바라나? 내가. 내가.

 

밤이다. 항상 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는 해야겠다. 이게 전부 내 신경 과민증이나

 

이제 끝내줘.

 


 

(이 페이지는 선혈과 잉크 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젖은 양피지가 들러붙은 자국도 있다. 농가주택 내부에서 아주 약간의 핏자국이 발견되었는데, 본 페이지에 남겨진 흔적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5월 5일

 

악몽을 꿔서 잠에서 깼다. 명확히 기억난다. 전에는 흐릿했는데. 나는 홀로 아래층에 있었다. 어두웠지만 따뜻했다. 그림자 같지는 않았고, 오히려 한기에 가까웠지만 빛은 없었다. 속삭임 소리가 들렸다. 그것들은 이제 그만두라고 사정하다시피 하며 큰 소리로, 더욱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도 들었다. 두 분은 슬퍼하시면서도 화를 내고 계셨다. 걸음을 떼 보려고, 어디로라도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창문이 산산이 조각났다. 내 뒤에 선 무언가가 느껴졌고, 그대로 잠에서 깼다.

 

이걸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인지, 무시하려고 애쓴 것인지는 모르나 그 자리에 앉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비명이 들렸다. 애플블룸이었다. 듣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알았다. 자리에서 뛰어올라 복도로 달려나갔다. 문 밖은 어두웠고 쌓아올린 바리케이드는 사라졌으며 다른 방의 문들은 전부 부서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았다. 아래층에서 올라온 그것들을 보았다. 전보다도 더 새까맸다. 그것들은 빛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세 놈이 있었다. 방 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애플블룸과 다른 사람들을 소리쳐 불렀다. 돌아온 것은 비명 소리 하나뿐이었다. 아마 거기 속삭임 소리도 여럿 끼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찾아 달려갔다. 그들을 도와야 했다. 도와야만 했다. 그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미친 야생마처럼 싸워 가며 달렸다. 대쉬가 나를 밀쳐내고 나서야 나는 그 짓을 멈출 수 있었다.

 

바리케이드는 멀쩡히 있었다.

 

문도 부서지지 않았다.

 

밝기까지 했다.

 

비명 소리도 멈추었다.

 

할머니. 빅 맥. 애플블룸. 그들도 있었다.

 

 

내가 왜 그런 거지? 왜 보이지 않았을까? 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빙빙 돈다. 무섭다. 대체 왜.

 

대쉬에게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가능한 한 물건을 챙겨 떠나라고 말했다. 트와일라잇을 찾으라고. 나는 소리를 쳐 대쉬를 보냈다. 대쉬는 사람들과 함께 창문을 깨고 벗어나 달아났다. 여섯 시간 전의 일이다.

 

나는 그들을 묻었다. 몇 마디 말을 남겼다. 용서를 구걸했다. 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 그걸 멈추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엄마. 아빠. 그리고 그들. 두 번 다시 그들을 보지 못하겠지.

 

어둠 속에서 나는 다만 기다릴 뿐이다. 나는 그래야 한다.

 

속삭임 소리가 들린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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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후기

 

에... 폴른스타를 먼저 하려고 했는데, 전에도 몇 번 말했지만 저는 호러를 좋아합니다. 호러가 있는데 번역을 안 할 순 없잖아요.

 

마지막에 나오는 저 알 수 없는 문구에 관하여 몇 마디 남깁니다. 첫째로, 저건 '어둠걸이'들이 남긴 말로 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몇 번 나왔지만, 충분히 영어를 잘 구사하고 있습니다. 굳이 독자들에게 그로테스크한 기분을 남겨주겠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남겨주는 게 더 낫습니다. 크툴루라면 또 모르겠지만......

 

둘째로, 저게 어둠걸이들이 남긴 말이라면 왜 굳이 남겨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겼는데 뭐하러 패배자의 일기장을 들추고 거기에 조롱하는 말을 남기겠어요.

 

그러나 핌픽션의 한 독자가 저 문구는 그냥 알파벳을 각각 다른 알파벳으로 치환해서 만드는 암호문이라고 지적합니다. A를 J 자리에 갖다두고 B는 H에 대응하게 하고 하는 식으로요. 아주 기초적인 암호문입니다. 이걸 더 단순화하면 카이사르 사이퍼, 즉 아예 몇 글자씩만 뒤로 밀어서 만드는 암호문이 됩니다. A는 B, C, D, E에 각각 대응된다고 하면 B는 C, D, E, F에 각각 대응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암호문은 카이사르 사이퍼처럼 단순한 게 아닙니다. 이 사실을 지적한 독자는 이런 암호문을 해독해 주는 웹사이트 하나(https://www.mygeocachingprofile.com/codebreaker.vigenerecipher.aspx)를 찾아내 댓글로 달았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위 암호문을 해독할 경우, 아래 내용이 나옵니다. 원문도 하얗게 처리해 놓은 거, 여기서도 걍 하얗게 칠해놓겠습니다.

 

 

i’m still here. still alive at least. i hope this is alive. i was so foolish to give in, but it didn't last forever. i feel clarity now. i found out how to break free. i found out how to move, quietly and unseen. 

 

i found out how to speak, to you, whoever you are, without them knowing. it's like static to them.i'm trying to find the others, to save them. to snap them out of it. 

 

maybe together, we can fix it, or at least make sure it doesn't happen again.they're preparing for something. i don't have much time.

 

wish me luck, but you'll need it more.

 

 

암호 키는 hope입니다. 아하, 대놓고 뿌리네요 아주.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 적어도 아직 살아 있다. 이게 살아 있는 것이길 바란다. 굴복하다니 멍청한 짓을 했지만, 이 또한 영원하지는 않으리라. 이제 확실히 알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풀려날 수 있는지 알아냈다. 조용히,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방법도 알아냈다.

 

당신이 누구건 간에,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말을 거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들에게는 그냥 잡읍으로 들릴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구해야 하니까, 찾아보고 있다. 그들을 꺼내 주려고 말이다.

 

함께라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이런 일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이 뭔가를 대비하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내게 행운을 빌어달라. 당신에게는 더 큰 행운이 따라야 하겠지만.

 

 

하지만 놀랍게도 다음 후속작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원래 1절만 할 때 가장 무서운 겁니다. 이건 1편에서 이미 떡밥을 뿌려놓은 거라 어쩔 수 없지만, 이것 다음에는 스토리를 전개할 동력이 없어요. 스쿠틀루랑 스위티벨이요? 턱도 없죠.

 

......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나 더 있더군요. 더 길어진, 시퀄의 시퀄이 있었습니다. 어지간한 장편소설급으로 길어졌으니, 카테고리 새로 파서 이관했습니다. 시퀄의 시퀄은... 폴른스타 1챕터만 옮기고 옮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