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 : 선셋 시머 편
삼 년 전 트와일라잇 스파클에게서 마법의 원소를 훔치려 한 뒤 처음으로 마셔 보는 이퀘스트리아의 공기를 나는 깊이 들이마셨다. 내가 나고 자랐지만, 내가 저지르고야 만 일 때문에 머무를 수는 없었던 세상에 나는 다시 돌아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내게 어머니와 같았던 분께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세상에서 사귄 친구들은 같이 가 줄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나 홀로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사양했다. 애초에 레인보우 대쉬나 플러터샤이, 애플잭, 래리티가 하나씩 더 있어서 복수형으로 호칭해야 한다면 기분이 정말 이상할 것이다. 핑키 파이가 둘이나 있는 세상이 과연 존속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다시 네 다리로 걷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긴 했지만, 사족보행도 곧 익숙해졌다. 내가 도착한 곳은 지난번에 왔었던 이상한 크리스털 궁전이 아니라, 다름아닌 캔틀롯 왕실이 사용하는 왕궁이었다. 이제 뭘 어째야 좋을지 스스로도 확실치 않아서, 혼자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것은 확실하고, 셀레스티아 공주님이나 트와일라잇이 내가 올 줄 예상이나 하고 있었을까? 거울로 이어진 차원문도 닫혀서, 앞으로 며칠 동안은 돌아가지도 못한다.
왕실 근위대 하나가 내 존재를 눈치채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치는 통에, 한창 하고 있던 생각이 싹 잊혔다. "정지! 거기 누구요!"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도망가고 싶다는 내 본능을 억눌렀다. 애초에 여기서 범죄 행위를 저질렀었으니까. 트와일라잇이 나를 용서하기는 했어도, 셀레스티아 공주님도 나를 용서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저, 저는 선셋 시머라고 하는데요. 그, 그러니까 저 거울에서 나왔는데......"
근위대원은 납득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오시리란 언질을 받은 참이었습니다.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선셋 시머 양이 다른 세상에서 막 돌아오셨다고 보고드리겠으니,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근위대원이 떠나고 나서 혼자 남아 기다리는 방 안,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방에는 그리 많은 물건은 없었다. 방은 좁았고, 조금 어두웠으며 이곳저곳에 그림 몇 점이 걸려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근위대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와 말했다. "여기, 셸 이병을 따라가십시오.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숙사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오자마자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체인질링 근위대라니. 체인질링이 어떤 존재인지는 옛 신화를 읽었던 기억과 오래 전 잠깐 돌아왔을 때 체인질링 군단의 습격을 겪어 보아서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체인질링이 제복을 입고 여기 서 있다니,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체인질링은 사수에게 경례를 붙이고는 따라오라는 듯 몸짓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헤벌어져 있던 입을 닫았다. 그렇지만 내심 포니들에게서 사랑을 빼앗아 간다는 저 생명체를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씩 웃어 보이더니 홀 쪽으로 안내했다. "그대가 한동안 이퀘스트리아 바깥 세상으로 나가 있었다는 언질은 들었지요. 체인질링 하나가 변신을 하지도 않고 백주대낮에 이러고 다니고 있으니 이거 뭔가 이상하다 생각은 드실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나는 대답했다. 어린 시절 한때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녔던 바로 그 홀을 걷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많이 바뀐 건 없었다. 따뜻한 햇빛에 몸을 적시고 있는 듯한 온기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왠지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이 왕궁에서 무엇인가가 행복이라는 개념을 쏙 빼서 달아나서는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은 느낌이었다.
"저희 동족들 몇몇이 이퀘스트리아 국군에 몸담고 있죠. 체인질링 사회가 포니 사회와 동맹 관계가 되고 난 다음의 일이지만요. 상당한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저희도 슬슬 운수가 트이는 모양입니다. 전우들 중에는 그리폰이나 원숭이 친구들도 몇몇 끼어 있지요." 셸 이병이 말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미안하게 됐다. 순화된 표현을 써야 했는데, 인간 사회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다 보니 그쪽 표현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슬슬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트와일라잇은 이퀘스트리아를 바꿔놓고 싶다고 말한 적 있었다. 인간 세상에서 우리가 봤던 것에 기초해서 말이다.
"흠, 그 녀석이 정말 해냈잖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옛 스승의 침소 앞 익숙한 문 앞에 서 있었다. 병사는 복귀하기 전에 내게 경례를 붙였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망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느라 바빴으니.
도망을 친다라.
그것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었나? 당신이 증오스럽다는 말만 남기고 나는 도망쳤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그 세월이 지나고서도 여전히 나에게 애정이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천천히 발굽을 뻗어 손잡이를 돌리고 밀어 열었다. 셀레스티아 공주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내 사랑스러운 제자야."
그 순간,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시선과 차분한 목소리, 나를 향해 짓는 애정 어린 웃음, 모두 나를 볼 때마다 지어 보이던 것들이었다. 저분은 나를 아직 사랑하시는구나. 나는 달려가 그분의 품에 안겨 한없이 흐느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품에 안겼을 때, 나는 흡사 따뜻한 햇살 같은 온기를 느꼈다. 나의 스승, 나의 벗, 나의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내 오만함과 탐욕 때문에 상처를 입어야만 했던 모든 포니들과 인간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한없는 죄책감으로, 나는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스승님을 미워하지 않아요! 제가 저지른 모든 잘못들은 죄송해요! 저는 스승님을 사랑해요!"
"안다, 선셋." 스승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나는 널 용서했단다. 그 누구도 전에 실수하지 않은 이는 없고,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을 이도 없는 법이지."
"그래도...... 스승님 가슴에 못을 박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대신 속죄하려고 하지 않았니?" 스승님은 웃으며 물으셨다.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어려운...... 일이긴 했어요... 그래도 대부분은...... 아니 모두가 절 용서하고... 친구가 되어 주었어요."
"그러면 됐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너도 알겠구나. 알리콘이나 공주가 된다고 해서 마법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니며, 친구들과 함께 마음 속에 키워나간 그 보물이 마법의 본질이라는 걸."
"네. 트와일라잇이 가르쳐 주었어요. 그런데, 걘 어디로 갔나요? 그 친구도 제가...... 저......"
나는 그 때 내 평생 동안 잊지 못할 모습을 보았다. 울고 있었다. 내 스승이 울고 있었다. 그것은 자부심이나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다만 슬픔과 상실의 눈물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나는 스승님의 어깨를 잡았다.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대답하셨다. "미안하구나, 선셋.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이 년 전에 암살당했단다."
트와일라잇의 시신을 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념공원에 옛 제자들의 무덤을 마련해 두고 계신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 트와일라잇이 정말 죽었다면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았다. 유리 관 안에 누워 두 눈을 꼭 감은 채 가만히 미소짓고 있는 녀석을 보고 나서야, 나는 그게 현실임을 뼈저리게 지각할 수 있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 이 세계의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죽었다. 얼마나 울어야 할지, 얼마나 저 관을 붙잡고 늘어져야 저 유리가 깨지고 내게 길을 열어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제정신이 돌아왔고, 온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늘에 해가 중천에 떠서 거의 정오에 가까워져 있었다.
트와일라잇의 차가운 시신을 볼 때, 나는 내 세계의 트와일라잇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세상 말이다. 이 또한 그 녀석의 운명이라면? 두 세계의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맞이할 운명이 꼭 같은 것이라면? 트와일라잇 스파클, 인간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어느 날 죽어 지금 내 앞에 있는 포니 트와일라잇 스파클처럼 관 속에 누워 있다면?
"이건 잘못됐어......"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못된 짓을 벌인 나도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저 녀석처럼 착한 사람은 죽어서 누워 있다니. 죽었어야 할 건 나인데.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해 온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 많은데 대체 왜..."
셀레스티아 공주께서 내 목에 뺨을 기대며 가만히 날개로 내 몸을 감쌌다. "그런 말 하지 말거라. 트와일라잇이 살았던 시간이 비록 짧을지라도 그 또한 훌륭한 삶이었으니. 네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 걸 봤다면 그 아이도 분명 기뻐했을 게다."
"트와일라잇에겐 빚이 있어요...... 둘 모두에게." 나는 유리 위로 가만히 발굽을 올려놓았다. 다시 한 번 더 저 녀석의 발굽을 잡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니까...... 인간 세상의 트와일라잇과 교류가 있다는 거니?"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 이러시는 게 무리도 아니기는 하다. 그러니까, 당신의 제자이자 딸이었던 사람이 당신 앞에 죽어 누워 있는데, 다른 세상에서는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 녀석 이야기를 안 듣고 싶어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친하니?"
"네......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에요." 대답하는 사이, 거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몸이 움찔했다.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나를 돌아보며 염려와, 한편으로는 열망이 담긴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선셋, 왜 그러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이미 짐작은 하고 계시면서, 굳이 내 입으로 듣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저지른 일이 자랑스러울 리가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부끄러운 과거로 남아 있는데. 하지만 그 때만큼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 평소에 알고 싶어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트와일라잇이 전에 조화의 원소의 힘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혹시 말씀드린 적 있나요?" 스승님께서 아시는지 모르시는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물었다.
"그렇지 않단다. 디스코드와 루나에게 조화의 원소로 정화되는 게 어떤 느낌인지 물어 보기는 했지만, 대답해주지 않더구나. 내가 그걸 알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았지."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대답했다.
글쎄, 기억하고 싶지 않아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조화의 원소는...... 그 사람이 다치게 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한없이 되풀이하며 겪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제 평생 동안 괴롭힌 사람들이 흘렸던 눈물과 겪었던 고통과 마음의 상처와 한없는 슬픔을 고스란히 되돌려받았죠. 스승님께 끼친 해악도 마찬가지였죠." 스승님이 놀라서 바라보고 계셨던 내 뺨 위로 눈물이 하나 떨어져 굴렀다. "일단 한 번 거기 당하면......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일 초, 다시 일 초가 흐르기는 하지만 그 한순간이 한평생의 천 배는 되는 시간처럼 느껴지죠. 사람들에게 끼친 패악이 커질수록 심해지기도 해요. 자신이 저지른 해악이 수십 번에 걸쳐 자신에게 돌아오는 느낌이 상상이 되시나요. 저는 그 때, 제가 더 큰 힘을 갈구하던 시간 동안 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생겨났는지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부서져 버렸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더 끔찍한 사실이 남아 있었어요. 전교생이 저를 미워했다는 거에요. 제 본성이 드러나자, 그들은 혐오로 화답했어요. 가장 살만했던 날은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제 뒤에서 험담을 늘어놓는 날이었고...... 가장 끔찍했던 날에는 양호실로 실려가기도 했죠."
"트와일라잇과 친교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니? 그 아이들이 도와주지 않았니?"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물었다.
"도와 주려고 했죠. 그걸 밀어낸 건 저였어요. 그 친하던 다섯이 서로 다투게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우정 나부랭이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죠. 심지어 한번은 목숨을 빼앗으려고까지 했어요. 그런 패악을 부려 놓고 어떻게 용서를 구할 수 있겠어요?" 과거의 차갑고 외로운 날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도 나는 말했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와 보면 옷이 없어져 있었고, 사물함은 부서져 있었으며 교과서는 갈가리 찢겨 흩어져 있는 모습이 생각났다. 학생들은 나에게 '선셋 사탄'이라는 별명을 붙여 놀려댔다. 나는 굳이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그래주기를 바랐다. 나에게 더 큰 상처를 입혀주길 바랐다. 내가 저지른 죄값을 치르는 느낌을 주기를 바랐다. 나는 괴물이었고, 저들이 나를 쓰러뜨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주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누구도 저를 생각하지 않을 거라 여겼죠. 그래서 도심으로 통하는 다리 위로 올라가...... 뛰어내릴... 채비를 했어요." 스승님의 답변은 따귀 한 대였다. 붉게 달아오른 뺨을 붙잡은 채 바라본 스승님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애정, 눈물이 뒤섞여 있었다. "공주님......"
"어떻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내가 너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그만두었던 게냐?!" 그리고는 나를 끌어안고 내 이마 위에 머리를 얹고 말씀하셨다. "네가 떠난 이후 내가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지 않고 있으리란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느냐? 네가 언제고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 거울 옆에 주저앉아 밤낮을 보내지 않았으리라 여겼느냐? 내 평생 동안 딸로 여겼던 게 트와일라잇 하나만 있던 건 아니다. 너 또한 내게는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선셋 시머,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미 나는 딸을 잃었다. 다른 딸조차 잃고 싶지 않다!"
"저... 저도 사랑해요, 공주님!" 나는 그분의 품에 안겨 울며 외쳤다. "그게... 그게 너무 아파서 그랬어요! 그 고통이 멈추기를 바라서 그랬어요! 저는 그저...... 공주님이 저를......"
"안다...... 알고말고..." 우리는 한동안 가만히 서로를 안고 있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만 같았다. 우리는 여전히 스승과 제자...... 아니, 어머니와 딸이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언제고 내 자리를 빼앗지는 않을까 항상 두려웠는데, 내가 틀렸다. 스승님은 우리 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같이 안고 갈 수 있는 분이셨다. 내가 아직도 놓아주지 못한 과거의 잘못들이 사라져가며,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걱정과 후회도 같이 사라졌다. 영원히 관짝에 들어가 있어야 할 트와일라잇이 아니라, 살아 있는 트와일라잇이 여기 같이 있어주기를 바랐다.
어쩌면 이 녀석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신이 됐든 뭐가 됐든, 이 세상 너머 어디엔가 그런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간의 신이 됐든, 아니면 파우스트가 됐든 말이다. 알 게 뭔가. 그렇더라도, 그 날 내가 받은 구원은 운명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만두었니?"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물었다.
나는 거울 밖으로 나온 이래 처음으로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 녀석...... 저희 트와일라잇이에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스승님의 시선을 마주보고 나는 말을 이었다. "인간 세상의 트와일라잇이요. 그 애가 저를 보았고, 저를 말렸죠. 저희는 대화를 했고...... 트와일라잇은 자기가 도울 수 있다고 말했어요. 생판 남이었는데도 저를 도와 주고 싶어하더군요."
나는 한숨지으며 저쪽 세상의 트와일라잇을 만났던 때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걔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다른 다섯을 받아들인 것도 전부 트와일라잇 덕분이었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군요. 근처 도시로 전학을 갔고, 다른 친구들을 사귀었어요. 트와일라잇과 저는 금방 친해졌고, 반에서도 쌍벽을 이루다시피 하며 좋은 성적을 받았죠. 저희는 지금 졸업해서 대학에 갔어요. 순수과학 전공이에요. 트와일라잇은 이쪽 트와일라잇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바꿔놓고 싶어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나의 스승은 눈에 맺힌 눈물을 문질러 닦고, 태양보다도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잘 되었구나. 진실로...... 진실로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단다."
나는 마주보고 웃은 뒤, 영원한 잠에 빠져 누운 트와일라잇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친구도 할 수 있었을 일이 많았을 텐데요."
"그랬을 게다."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트와일라잇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이 아이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중이란다. 전에 말하기를, 인간 세상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고 돌아왔다고 하더구나. 네가 사는 곳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인종차별과 온갖 편견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에 맞서 싸우는 자들이 있다고 했다. 마법보다는 발명과 과학으로 작동하는 세상이었다고도 했지. 심지어는 자국 정부의 수장은 국민의 대표라는 사상 하에 자신의 지도자를 고를 수도 있다고 하더구나."
"트와일라잇이 이퀘스트리아에 민주정부를 수립하려고 했었나요?"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이 세상에서 그런 개념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내가 인간 세상에 처음 갔을 때도 왕이나 여왕 없이,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고 엄청나게 놀랐었다.
"그래, 그렇게 표현하더구나. 나나 루나나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단다. 우리의 국민들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언젠가는 자라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지난 수백 년 동안 정치 체계는 거의 바뀌지 않았지." 공주님이 한숨지었다. "불행하게도, 트와일라잇이 없는 지금 나 혼자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길을 닦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닌지 두렵구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가능성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희망이 조금씩 보이는 듯싶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제가 관련 자료를 찾아다 드리면 어떨까요? 어쨌든 제가 주로 사는 곳은 인간 세상이고, 그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니까요! 서적이나 데이터를 모아다가, 다음에 거울 속 차원문이 열리고 나면 가져다 드릴 수 있을 거에요. 그러면... 트와일라잇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내가 케이크를 만들어 내는 주문을 개발해서 보여 드렸을 때처럼 환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면 되겠구나! 좋은... 아주 좋은 생각이야! 트와일라잇이 설계한 체계를 어떻게 구체화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는데, 이제야 트와일라잇의 생각을 알 수 있겠구나. 네가...... 네가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구나. 정말 고맙다."
"별 거 아니에요.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간 내 죄값을 치르고 용서를 구하려고 얼마나 노력해 왔던가. 이제 트와일라잇이 죽어 두 번 다시 그럴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아니다. 이 녀석의 꿈을 대신 이루고 말겠다. 그리고 이퀘스트리아에 근대화가 태동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게 주어질 구원일지도 모를 일.
"돌아가자마자 바로 작업을 시작해야겠는걸요. 다만 그 전에......" 나는 배를 문질렀다. 꼬르륵 소리가 나 얼굴이 붉어졌다. "점심부터 먹어야겠군요."
"아직 건초 튀김이 입에 맞으면 좋겠구나."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웃었다. 우리는 묘지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입에 맞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감자튀김이라는 게 있는데, 일단 한번 드셔보시면 건초 대신에 그것만 찾으실걸요......"
남은 시간은 내 스승과 함께 보냈다. 캔틀롯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내가 없는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 직접 보았다. 루나 공주님을 만날 기회도 있었다. 내 과거의 잘못들은 묻지 않고,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포니빌에 한번 들러 보기를 권하셨다. 트와일라잇의 친구들은 잘 견뎌내고 있다고 말이다. 사양했다. 돌아가야 했다. 내 친구들에게, 나의 트와일라잇에게.
그리고 나는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익숙한 강아지가 뛰어나와 얼굴을 핥아대며 반가워했다. "안녕, 스파이크." 나는 강아지를 안으며 말했다. 이퀘스트리아의 스파이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기 때문에, 우리 집 스파이크가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내가 꼭 지키겠다고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도망가지 마. 알아들어? 절대 가면 안 돼!"
강아지는 왈왈 짖고는 다시 내 얼굴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강아지를 떼어놓고 나자 어딘가로 뽈뽈대고 달려갔다.
"선셋, 너야?" 그 목소리를 들으니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유리관 안에 누워 영원히 보존될 또 다른 트와일라잇의 시신을 보고 온 지 달랑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몸을 돌리자 거기 있었다. 나의 트와일라잇. 살아 있는 트와일라잇. 오래 전 내 심장을 다시 덥힌 그 천사 같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물었다. "친구들 만나고 온다며, 어땠어? 이렇게 금방 올 줄은 몰랐지. 어디로 가는지도 얘기 안 해주면 어떡해?"
물론 트와일라잇은 모르겠지. 캔틀롯 고등학교의 그 누구도 진실을 모른다. 물론, 얼마 안 되는 낭설이 퍼지기는 했다.
나는 트와일라잇에게 다가가, 한쪽 손으로 뺨을 감싸며 말했다. "살아... 있구나."
"음, 마지막으로 체크한 바에 의하면, 그렇지?" 트와일라잇이 깔깔 웃었다. 내가 입을 맞추었을 때 정적이 흘렀다.
처음에는 당황한 듯싶더니, 이내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나의 트와일라잇, 내 사랑. 나의 트와일라잇은 아직 존재한다. 항상 옆에 둘 것이다.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
나를 구원했으니까.
그리고 사랑하니까.
입맞추던 입술을 떼고 눈을 감았다. 입술에 묻은 립스틱의 맛이 느껴졌다. 트와일라잇은 한쪽 눈썹을 치키며 살짝 불안한 듯 웃었다. "불평하는 건 아닌데, 뭐 문제 있어?"
"아냐... 그냥... 급하게 전화 한 통... 아니다, 다섯 통인가..." 나는 휴대전화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트와일라잇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나는 애플잭에게 우선 전화를 걸었다.
"애플잭...... 나야. 어, 전에 얘기했지. 갔다 온다고. 있잖아......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다른 애들, 플래시 센트리도 포함해서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는데......"
다음 날 아침, 캔틀롯 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깥에 세워져 있던 조각상 옆에 꽃다발 일곱 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해가 바뀔 때마다, 그 날이 되면 다시 일곱 개 꽃다발이 나타났다.
그 누구도, 그 꽃이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놓여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역자후기
책 몇 권이랑 데이터 쪼가리 몇 장으로 정치체제를 바꾸겠다고요.
아, 저길 보세요. 제 어처구니가 발을 달고 지옥으로 뛰어들고 있어요.
'Etc. > [Rated Ponystar] 떨어진 별과 남은 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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