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밖의 양반들 중에서 다 자란 성인 남자를 어린애마냥 엉엉 울게 만들고, 거기 대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할 수 있는 양반이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그 양반들도 자기들이 뭘 놓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건 확실해.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불 보듯 뻔하지. "세상에, 저거 완전 괴물 새끼 아닌가!" 글쎄, 누구나 자기 내면에 괴물을 품고 살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괴물을 내 의지로, 아무 거리낌없이 풀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어쨌든, 날 악한이라고 생각하겠지? 포니나 체인질링, 그리폰, 용 가운데서도 나 이상으로 사악한 놈들은 차고 넘쳐.
그리고 아무리 괴물이라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한계는 있는 법이야. 아무리 괴물이라도 할 수 없는 게 있는 법이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뭐 개인차가 있는 거니까.
어쨌든, 뉴비 그루피의 이름도 알아냈겠다, 우리는 조용히 그 양반, 코스모 경이 수감된 감방으로 향했어. 하나는 바보고, 하나는 천치인 등신 근위대 둘이 있었는데, 내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자기네들 애들을 잡아먹을 것처럼 슬금슬금 보더군. 나는 멀쩡히 거기 있고, 그럴 생각은 좆도 없는데 말이지. 이브닝 글로리는 좀 달랐어. 전에 비하면 날 혐오하는 낯빛은 확실히 줄었고, 아이보리 경을 갖고 노는 걸 보면서 일말의 존경심까지 갖게 된 것처럼 굴더군. 재판도 아주 볼만하겠어. 셀레스티아 공주는 전쟁을 선포하다시피 하며 뭐라도 잘못한 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있는데 말이지. 심지어 내가 일하던 지하세계에도 지장이 생길 지경이었으니 말야. 듣도 보도 못 하던 걸 해내더구만.
아무리 똑똑한 범죄자나 조직폭력배나 청부업자라도 셀레스티아 공주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데, 안 무서워하고 배기겠어. 뭐, 나는 자유이용권이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 상관없지만.
셀레스티아 공주가 지하세계까지 신경 쓰는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더구만. 사업상 만났던 양반들은 하나같이 트와일라잇 공주의 개혁안을 지지하는 쪽이었으니 말이야. 적대국과 관계가 개선되면 이쪽에서도 사업을 국제적으로 벌이기 정말 좋아지거든. 다른 '다국적기업'과 협조하면 수입, 수출도 더 쉬워지고 말이야. 듣기로는 동쪽을 향해 한없이 나아가다 보면 나오는 신대륙에서는 더 돈이 되는 것들이 나온다는 모양이고.
아, 물론 이게 '만인을 위한 우정'인가 뭔가 하는 그거겠지. 트와일라잇 공주가 추구하던 거 말이야. 나도 동의해.
자, 뭐 어쨌든 코스모 경이 갇힌 감방 앞에도 무사히 도착했어. 그 양반은 벽에 사슬로 묶여 있더구만. 캔틀롯 귀족으로 페가수스가 편입되는 일은 상당히 드물었는데 신기하지. 그 양반은 긴 금발과 녹발이 섞인 갈기를 하고 있었고, 솜털로 말하자면 녹색에 숱이 많았어. 큐티마크는 노란 별똥별이었고 말이야. 슬픈 점은 내가 이 양반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다는 점이었지. 그래서 우리 뻣뻣이 아가씨한테 물어 보는 수밖에 없었어.
"음, 저자는 어떤 자입니까? 제 생각엔 하급 귀족 같습니다마는."
이브닝 글로리가 고개를 까딱해 보이더군. "코스모 경은 스타윙 가문의 차남이다. 본래 클라우드데일 출신이지만, 장남이 결투에서 목숨을 잃은 뒤 캔틀롯으로 이주해 왔지. 십오 년 전이다. 스타윙 가문은 달의 의회에 참여했고, 천문학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 가문 쪽에서는 차남을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다만, 코스모 경은 자신이 폭군의 손에서 이퀘스트리아를 구한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며 아주 흡족해하고 있어서 말이야."
"보아하니 머지않아 또 하나 화장하거나 매장하거나 어쨌거나 하겠군요. 페가수스들은 그렇게 장례를 치르니까 말입죠." 그러고는 덧붙였어.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서 저 친구를 좀 봐야겠는데요."
"호위는?" 대장이 묻더군.
씩 웃으며 대답했다네. "호위요? 제가 다칠까 염려해 주시는 겁니까, 박쥐 대장? 감동입니다."
"지랄 마라, 벌레." 대장은 고개를 젓고는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어.
나는 낄낄 웃고는 근위대원 하나로 변신해서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네. 코스모 경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내 표정을 관리해야 했지. 저기 있는 반푼이들처럼 감정 하나 없는 무표정을 연기해야 했거든. 그 양반은 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내가 그 양반 바로 앞까지 다가가 걸음을 멈추고, 움직임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는 와중에도 말이야.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은데도 숨을 헐떡이거나 하지는 않더군. 겁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야. 두 눈알이 날 쳐다보고 있었으니,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맞았고. 심지어 자기를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조차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네. 거기에 한 가지 상념조차 없는 듯 말이야.
이건 또 부수는 재미가 있지.
"거기, 병사......" 코스모 경이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어.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이미 안다. 내 자백을 바라고 온 것이겠지, 아닌가?" 그러고는 씩 웃더군. "그럼 잘 듣거라. 나, 코스모 경은 내 동지들과 어울려 음모를 꾸미고 계획을 설계해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를 암살했노라. 그 년이 영겁토록 타르타로스에서 불타기를. 그 거짓 공주는 이퀘스트리아의 수뇌부를 절단할 칼날에 지나지 않았다. 더 오래 살려뒀다간 분명 그렇게 했겠지. 이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을 거란 말이다!"
나는 눈썹을 치켜 보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얘기는 자고로 다 들어봐야지.
"우리의 마법에 기초한 생활을 '기술'에 기반한 생활로 바꿔놓으려고 했지. 그 기술이란 것은 그리폰들이 전쟁을 벌이려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더냐. 결국 죽음밖에 불러오지 못할 것이란 말이다. 우리는 그런 불의하고, 어둠에 물든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가 말했더냐?! 마법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발전시키든지 어쨌든지, 나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 결국은 우리를 중독시키고, 파멸시킬 테니 말이다. 역사는 우리를 영웅으로 기억할 것이다!"
아하, 이 논쟁거리도 전에 들은 적이 있지. 이퀘스트리아는 '마법에 의해 기초되고, 마법에 의해 건국되고, 마법에 의해 살아간다'고 했던가. 몇몇 극단주의자들이 기술 도입에 반대하면서 그와 관련된 모든 걸 사보타주하며 '신성 모독'이라고 외쳤다더니. 마지막으로 생활을 좀 개선시킨 게 벌써 백 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솔직히, 이 작자들은 백이십 년 전만 해도 화장실이나 냉장고 개념도 없이 살고 있었다.
"그 창녀가 우리 암살단의 칼날을 살 깊이 받아들였을 때, 그 고통과 함께 죽어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정말 신이 나더구나." 코스모 경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 년의 새끼용도 거기 있어서 같이 죽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눈이 휘둥그레 떠지더군. "......그랬으면 그 년이 뒈지기 전에 눈앞에서 새끼용을 잡아 죽이는 진귀한 구경을 시켜 줄 수 있었을 텐데."
새끼용이라니.
"사실입니까?" 나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물었다. 잠시 뒤, 나는 몸을 돌려 감옥을 나갔다. "잠시 실례하죠."
나는 문을 닫고 변신을 푼 뒤, 이브닝 글로리를 쳐다보고 물었네. "저게 사실입니까?"
대장은 눈썹을 조금만 치킬 뿐이었어. 왜 그런지는 나도 알지. 나는 평소에는 그리 심각하게 굴지 않는데, 갑자기 진지하게 구니까 당혹스러웠겠지. 나는 딱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심각해지지 않아. 첫째는 밴후버 레니게이드가 결승전에 올라갔을 때, 둘째는 내가 꼭지가 돌았을 때. 그리고 대장의 답변에 따라, 나는 얼마든지 더, 더 심각하게 화가 날 수 있었어.
"사실이야. 트와일라잇 공주께서는 아들 하나를 입양해서 기르셨어. 스파이크 스파클이라는 녀석인데, 공주께서 어렸을 적 부화시켜 평생 동안 키워 온 용이지."
"그 친구는 몇 살입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물었어.
"내가 듣기로는 열한 살에서 열두 살 정도 되었다고 하더군. 왜 그러나?"
어린애잖아. 어린애라도 잡아 죽일 생각이었나. 세상에는 이제 내 꼭지를 돌려 놓을 만한 것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부터 얘기할까. 크리살리스란 이름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 뭐 물론 그 년도 뒈졌다는 얘기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 즐거워지긴 하지만 말이야. 밴후버 레니게이드가 축구 경기에서 졌다는 얘기를 들어도 짜증이 나. 그래도 괜찮아. 일상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어떤 얘기 하나만큼은 듣는 순간 엄청나게 화가 나. 그런 짓을 한 것들은 의자에 묶어두고 머리 위에 사흘 밤낮을 굶긴 쥐떼를 가둔 우리를 매달아 놓고 고문을 하지. 내가 듣고 싶은 얘기를 안 한다? 그럼 바로 우리 문 여는 거야. 사석에서 이럴진대 공적인 자리라고 멀쩡히 끝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속 편할걸. 그게 무엇인고 하니,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애를 해쳤다는 말이야.
내가 괴물 새끼일 수는 있어. 다른 사람 고문해서 먹고 사는 게 내 직업이야. 솔직히, 난 내 일이 너무 좋아. 그래도, 나 같은 괴물이라도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 법이야. 공주를 죽여? 뭐 상관없어. 캔틀롯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니까. 애초에,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쿠데타나 살인청부업자 손으로 거의 죽을 뻔하거나 진짜 죽거나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런데,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애를 잡아 죽이고 싶었다?
그러니 나 같은 전문 고문기술자가 화를 내는 꼴은 절대 봐선 안 되는 거야. 우린 냉정을 잃지 않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심판대에 세우기 전에 자비를 구걸하게 만드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 일인데, 이건 도를 넘었어. 저 다섯 놈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 말인가? 저 달콤한 망각이 손짓하는 곳으로 보내 버리기 전에, 어린애를 해치겠다는 그 못된 생각을 품었던 것만은 확실히 머리 속에 박아 놓아야 해. 자기들이 저지른 것보다도 더 큰, 비교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르려 했던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 아주 꼭지가 돌았지. 뭐, 그쯤 되니 좀 더 달달한 방식으로 고문을 즐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만.
"아닙니다. 잠깐만 실례하죠." 그렇게 해두고, 천천히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가 코스모 경 앞으로 걸어 들어갔지.
"이건 또 뭔 지랄 같은 체인질......"
그 자는 자기가 하던 말도 끝맺지 못했어. 내가 얼굴을 갈겨서 그 자리에서 기절시켜 놨거든. 사지에 묶인 사슬이 달그랑거리는 꼴을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어. "급한데요. 혹시 커다란 욕조 같은 거 있습니까?"
"욕조는 왜?" 이브닝 글로리가 걸어 들어오며 묻대.
나는 씩 웃으며, 환희와 기대감이 뒤섞인 눈으로 대답했어. "코스모 경께서 좀 많이 더러우셔서요. 목욕을 좀 시켜 드려야겠습니다."
필요한 설비를 설치하는 데는 대충 삼십 분 정도가 걸렸어. 공주들이 고문실을 별도로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지. 한 수백 년은 안 쓰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장비들도 하나같이 다 케케묵은 것들이더군. 아이언 메이든이나 고문대 같은 거 말이야. 낡은 길로틴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말이야. 아, 나는 너무 늦게 태어났어. 그 피로 얼룩진 혼돈의 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는데 말이야. 형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발악하는 죄수들의 꼬리를 붙잡아 끌고 들어오고, 더러는 자비를 구걸하거나 신에게 기도를 드리거나, 아니면 마음의 준비를 하는 모습을 생각해 봐.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기 전, 칼날은 허공에 매달려 미동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겠지. 침묵의 시간이 찾아오면...... 싹둑! 하는 거야. 아, 물론 나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주는 걸 선호하니까, 바퀴에 묶어서 굴리는 게 더 좋아. 뭐, 그건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고.
나는 접이식 의자에 앉아 갖다 달라고 부탁한 견과류 간식을 씹으며 코스모 경이 일어나기를 기다렸어. 깨어나 보니 자기가 도르래에 연결된 밧줄에 매여 천장에 매달려 있다시피 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참 볼 만한 표정이 나오게 되지. 당연하지만, 그 친구는 매듭을 풀어보려고 발버둥쳤어. 사지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날개도 펼치려고 발광을 했지. 어림도 없는 일. 내가 얼마나 깔끔하고 단단하게 묶어 놨는데.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구경하다가, 휘파람을 불며 조롱했어. "이리 내려오지 그래, 친구."
그자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으르렁거리며 대답했고 말야. "나를 어디로 끌고 온 거냐, 체인질링?"
"글쎄요, 나리. 솔직히 까고 말씀드리면, 나리는 아직 왕궁 지하감옥에 갇혀 계신 게 맞습니다요. 그게 옛날에 만들어둔 고문실이라 그렇지. 나리께서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를 암살한 근위대원들의 이름을 불게 만들려고 제가 잠시 빌렸소이다."
"나를 고문하겠다고 저 지체 높은 공주님들께서 너 같은 눈동자도 없는 괴물을 고용했단 말이냐?!" 코스모 경은 그렇게 말하더군. "이럴수록 제정신이 아니신 걸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왜 모르시는 것인가!"
그 말을 되풀이해서 물어보다니, 얼마나 멍청해 보였을까. "미안한데, 내가 뭐라고? 눈동자도 없는 괴물?" 나는 반은 깔깔대고 웃으면서, 왠지 등신같아 보이는 웃음을 만면에 지으며 물었어.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니야, 이 등신아. 뭐, 네놈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있는 바로 그 양반이 네놈을 땅바닥에 처박을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두고 너 꼴리는 대로 하라고." 나는 몸을 뒤로 기울이며 두 앞다리를 뒤통수로 가져가 팔베개를 하듯 하고 덧붙였지. "자, 그럼 이제 좀 편안하게 해 드리겄습니다. 아, 그 전에. 입이 방정이라고 선생 주둥이에서 어떤 정보가 튀어나왔는데, 제가 그것 땜시 아주 불쾌해져서 말입죠. 선생이 자존심도 뭣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선생을 최선을 다해 괴롭힐 생각입니다."
"체인질링, 네놈은 날 굴복시킬 수 없다! 나는 내 신념을 절대로 굽히지 않—"
"아하, 레퍼토리 좀 바꾸시죠." 그리고는 땅콩 하나를 골라 입에 집어넣고 씹었지. "널 괴롭히는 데는 네 그 미친 소리를 중간에 막 끊어대는 것도 괜찮은 생각 같아. 아주 사람 신경을 박박 긁네. 아, 하나 말해둬야겠는데 이 욕조에 들어찬 건 다 표백제다."
이야, 그 때 떠오른 표정이란, 아래를 노려보더니 헉 하던 그 표정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그래, 그 녀석 밑에는 셀레스티아 공주도 들어가고 남을 커다란 나무 욕조가 하나 놓여 있었어. 그리고 거기에는 찌든때도 싹 씻어주는 마법의 액체가 들어 있었지. 마법을 써서 그 자식을 묶어두고 있던 밧줄을 천천히 풀기 시작함과 동시에, 파멸을 향한 그 느릿느릿한 하강도 시작되었어. 작업하면서 듣게 라디오를 하나 갖다 달라고 했던 게 마침 옆에 있어서, 땅콩을 씹으면서 라디오를 틀었어. 그 와중에도 그 자식은 열심히 지랄 발광을 했고.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없는 고문을 하는데 라디오라도 들어야지 어떻게 해. 고문실 안에 차분한 음악이 메아리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빙긋이 웃음을 지어 보였어.
코스모 경은 계속해서 도와 달라고 비명을 질러댔다네. 그것도 아니면 한창 음악 잘 듣고 있는 사람 신경을 박박 긁어대서 빨리 아래로 처넣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겠지. "선생, 쓰잘데없는 소릴랑 그만두시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잖아. 누구 하나 갖다 박살내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고, 알아?"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덧붙였어. "슬슬 공모자들 이름을 불고 싶어지지 않아?"
"지랄 마라, 체인질링!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자는 반항하듯 소리쳤다네.
"이러든 저러든 나랑은 상관없지. 가능한 끔찍한 방법으로 뒈지든지 불든지 빨리 골라." 그자가 꿈틀거리는 꼬라지를 감상하면서, 한창 즐기고 있던 가벼운 휴식을 계속했지 뭐. 이렇게 좋은 일을 왜 그리들 싫어하는지 모르겠단 말야?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그자가 천천히 죽음을 향하여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감상했다네. 이건 내 일이기도 하고, 내 취미생활이기도 하며, 내 여흥이기도 한 것이지. 물론 그냥 취미삼아 낄낄대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어떤 위대한 선지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잘하는 게 있으면 절대 공짜로는 해 주지 마라."
아, 그러고 있자니 그자가 다리를 빌빌 꼬면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더군. 꼬랑지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말이야. 절로 웃음이 나더군. 포니에 대해서 잘은 모르긴 몰라도, 꼬랑지 때문에 포커페이스고 뭐고 다 망치는 족속들이 이것들이야. 그러니까, 꼬랑지 움직이는 꼴을 보면 저놈 속마음이 어떤지 다 눈치챌 수 있다 이거지. 저 친구 꼬랑지가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저건 방광을 좀 비워야겠다는 표시야.
당장 말이지.
"슬슬 감각이 오는 모양이구만." 나는 차분하게 툭 던지며 땅콩 껍질을 뱉어냈어. 탄산음료도 있었으면 좋았을걸. 다음에는 꼭 챙겨야겠어. "오줌 마렵나?"
"그게 네놈과 무슨 상관이냐?" 코스모 경은 마른침을 삼키며 되물었어.
"그야 내가 경비병 나리들께 부탁해서 자네 몸뚱이에 정맥주사로 이뇨제를 좀 주사했던 게 효과가 나오나 봐야 하니까 말이지. 신호가 오는 모양이니 잠깐 화학 강의를 좀 해 줘야겠다 싶군." 말이 절로 즐거이 나오더군. "자, 너도 알다시피 표백제에는 염소Cl가 들어 있지. 그리고 소변에는...... 아, 그게 뭐더라?" 그 물질의 이름을 생각하드라 뺨을 절로 부비적거리게 되더군. 저 가엾은 똥덩어리에게 선생 노릇을 하려고 하는데, 벌써 수업 내용을 다 까먹고 있으니 이거야 원. 비소As던가? 아닌데... 아하! 암모니아NH3지! 그렇지, 그거야!"
여기부터가 재밌는 부분이야. 그 친구 참, 내심 걱정은 되는지 날 쳐다보는 눈길이 참 볼만하더군. "자, 그럼 암모니아와 염소를 반응시키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아주 특별한 가스가 발생한다네. 염화암모늄이라는 물질인데, 그리폰 친구들이 이퀘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일 때 사용했던 화학 무기지. 그리폰 녀석들이 염화암모늄을 생산한 공정도 이것과 크게 다르진 않아. 그렇게 만든 가스를 적에게 직빵으로 살포하는 식으로 사용했을 뿐이지. 수백, 수천이 이 가스 때문에 죽어나갔어. 듣지하니 요즘은 이걸로 사형을 집행한다더군. 가스실에 처넣고 이 가스를 주입한다지 뭔가. 역사란 참 재미있다니까. 자네도 언제 기회가 되면 읽어보라고."
코스모 경의 온 몸에서 식은땀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더군. 그리고는 다리를 더 꽉 조이듯이 모으지 뭔가. 그 꼴을 보려고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말이야. 녀석은 삼도천을 보는 양 표백제 통을 들여다보더군. 그 와중에도 천천히 거기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말일세. 쫄아가지고는 덜덜 떠는 저 불쌍한 영혼을 구경하는 걸로 충분했으니, 딱 그쯤에서 멈추었을 것 같나? 이건 지나치다고 내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자그마한 양심의 목소리가 있었을 것 같나? 자넨 어떻게 생각해?
하, 그딴 거 없어.
"혹시 염화암모늄 가스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음, 우선 눈부터 시작할까. 눈물이 줄줄 나다가 새빨갛게 충혈된다네. 그리고 피부가 자극을 받아 붉게 변하면서 물집이 잡히기 시작할 거야. 심각한 동상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라고들 하던데. 구강 내부나 인후, 비강 등에 살짝 타는 듯한 감각이 오다가, 나중에는 미칠 듯 아파 오기 시작할 거고. 공기가 폐로 잘 흡수되지 않으면서 폐 안에 체액이 차오르기 때문에 가슴이 엄청나게 답답해지고 숨도 쉬기 어려워지겠지. 거기에 구역질도 날 거야. 과민성 대장증후군 나부랭이는 비교도 안 되는 변의가 치솟으면서 네 창자 안에 고여 있던 쓰레기들이 말 그대로 질질 새나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군. 이 모든 걸 골고루 겪은 다음에는 그대로 질식해 쓰러져 뒈질 거야. 그래, 네놈의 비참한 삶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이란 고통은 하나씩 다 맛보고 난 다음에야 평화로이 잠들 수 있게 된다 이거지." 증상 하나하나를 읊을 때마다 그자의 눈이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질려 휘둥그레지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는 듯 말했다네. 그자는 머지않아 사지를 뒤틀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 자비를 구걸하면서 말이지.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자신을 살려주기만 하면 자기가 내놓을 것들을 하나하나 주워섬기기 시작하는 그 꼬락서니를 감상했다네. 처음에는 돈, 다음은 시종들, 저택, 영지, 심지어 자신의 아내까지 들이밀더군. 그 여자가 가진 사랑이란 사랑은 전부 빨아먹고 내 성노예로 삼아 가져가라고 말일세. 저런 찐따새끼랑 결혼한 머저리를 내가 왜 원하겠나.
나는 그만 닥치라는 듯 발굽을 슬쩍 들고 말했다네. "이봐...... 자네가 뭘 갖다 들이밀든 나는 좆도 신경 안 써. 뇌가 들어찰 자리에 기름덩어리가 대신 들어차기라도 한 건가? 이 살아있는 똥자루야. 내가 원하는 건 이름이야. 공모자의 이름. 마침 자네가 거기 매달려 있기도 하고, 슬슬 앞다리도 찢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내 두 가지 선지를 주지. 첫째. 그대로 매달려 있으면서 표백제로 가득한 욕조에 천천히 빠져 들어가 익사. 그래도 장례 치를 땐 사지 멀쩡히 깔끔하게 보이긴 할걸. 그리도 둘째. 거기 매달려서 오줌을 질질 지리고 이 방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독가스로 가득 채운다. 쪽팔리고, 아주 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걸세. 그러고 나면 경비병들이 자네 시체에 불을 싸지르고 남은 뼛가루를 자네 와이프에게 갖다 주겠지. 그럼 그 썩어 문드러진 자네 궁둥짝에 자네 와이프가 굿바이 키스를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자네가 이름을 불지 않으면 자네는 이 둘 중 한 가지 방법으로 뒈지게 될 걸세. 뭐 적어도 자네 같은 개새끼가 뒈져 나자빠지기 직전까지 바둥대는 꼬락서니를 바로 앞에서 구경할 수 있으니 나는 상관없어. 이른바 윈윈 시나리오라는 것일세."
"네놈은 어쩔 테냐? 가스가 퍼지면 네놈도 뒈질 거다! 왕성 안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렇게는 못 할걸?" 코스모 경은 입술을 깨물며 나름대로 정곡을 찔러 말했다네. 씹은 입술에서 피가 줄줄 흐르더군.
"좋은 질문이야. 이 고문실에는 봉인 마법이 걸려 있다네. 가스가 빠져나갈 만한 구멍이란 구멍은 마법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 그러니 가스가 밖으로 새나갈 일은 없어. 내 목숨은 어쩔 건가 묻겠지. 나 체인질링이야. 신경작용제든 혈액작용제든 수포작용제든 독가스든 나한테는 소용없어. 체인질링이 너희보다 우등한 이유 중 하나지." 나는 낄낄대며 덧붙여 말했어. "자, 그러므로 나는 여기 가만히 앉아서 음악이나 듣고 있을 생각이네. 자네가 오줌을 지리고 뒈지거나 지릴 새도 없이 뒈지는 구경을 해야 하거든. 자네 포니들이나 말들은 오줌도 참 오랫동안 갈기던데, 그 정도면 이 방의 절반 정도는 독가스로 채울 만한 암모니아가 나올 것 같단 말야."
"이 개새끼야!" 가엾은 돌대가리 자식은 매듭을 풀려고 발버둥치면서 나를 향해 온갖 모욕을 퍼부었다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단 말야. 그래봤자 가죽이나 더 쓸리는데.
한숨 자고 나서 저 녀석을 빠뜨릴 생각이야. 빠지기 전이나 빠지고 나서나 이름은 불게 될 거고.
좋아, 사십오 분 정도가 지났는데도 그 친구 용케 아직도 참고 있더군. 인정. 대단한 놈이야. 뒷다리가 표백제에 닿기까지는 앞으로 밧줄의 1/3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 그 친구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더군. 아주 듣기 좋은 소리로 징징거리면서, 허약한 댐처럼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자기 방광을 간신히 붙잡고 있더군.
그래도 배짱은 있는 놈이야. 칭찬을 해줘야겠지만, 슬슬 이 짓거리도 끝낼 때가 됐어. "자네도 더는 못 버틴다는 거 알잖아? 그냥 그 친구들 이름만 불어. 그럼 살려주지. 그렇지, 화장실까지 데려다 주는 건 보너스."
"더...는..... 안 돼...... 제발...... 이건...... 아냐......" 그 친구, 또 어린애마냥 징징거리기 시작하더군. 워, 워, 워. "우린...... 그 여자를...... 막으려고 한 것뿐이야...... 모든 걸 파괴하려 했다고....... 파우스트 맙소사, 제발 살려줘!"
"살려 달라, 라." 나는 그자가 한 말을 차분하게 되풀이해 보였다네. "젊은 여자와 그 아들을 죽이려고 한 자네 같은 자를 굳이 살려 둘 필요를 잘 모르겠군. 자네 때문에 몇 명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고 가슴을 치는지도 알 수 없는데, 내가 굳이 자네를 살려 둬야 할까 싶다 이걸세. 자네들이 암살음모를 꾸미고 제거한 사람은 이 나라의 영웅이었는데, 그 사람을 살려둘 생각은 안 해 봤는가도 궁금하군. 이제 와서 신의 이름을 주워섬기는 건 또 뭔가?" 나는 메마른 소리로 껄껄 웃으며 그자를 향해 살포시 날아가 그 앞에 섰어.
그자의 얼굴을 쏘아보면서, 나는 팔짱을 끼고 눈을 부라렸네. "혹시 기억하나? 자네들이 성서로 모시는 <조화기>에 나오는 구절인데. 나도 좋아하는 구절이야." 나는 헛기침을 해 목을 닦아내고, 천천히 그자의 상판 앞으로 내 얼굴을 들이밀면서 씩 웃었어. 그자의 두려움이 코앞에 나타난 것처럼, 내 이빨도 반들반들하게 빛났을 테지. "진정으로 조화로운 자들의 길이란 독재도, 이기심도 아닌 내가 내린 온화함과 지혜로 타인을 이끄는 길이다. 혼돈이 이 땅을 지배하는 심판의 시대가 왔을 때 나의 어린양들을 보살피는 자들을, 그들이 포니든 아니든 나는 축복하리라. 내가 이끈 이 길을 걷는 자들이 분노와 증오, 공포로 길을 잃지 않게 하라. 만인이 하나되어 서로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길을 잃고 헤매지도 말아야 하리라. 내 어린양들을 해하거나 죽이려는 모든 자들은 그만큼의 분노와 정의 앞에 무릎 꿇고 고통받으리니. 천상의 분노가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이요 그 누구도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나 파우스트, 포니의 신이 그자들의 손에 쏟아진 내 어린양들의 피의 이름으로 그자들에게 천벌을 내릴 것임을 알게 할지어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그자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어. "자네는 죄 없는 자의 피를 쏟았네. 자네의 신께서 가져온 정의로운 분노로 나는 여기 와 있지. 이제 자네 앞에 기다리는 건 그분의 복수밖에 없군 그려. 글쎄, 자네가 그 자들의 이름을... 분다면 혹시 또 모를까."
코스모 경은 울먹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네. "태양근위대의 크로싱 병장. 태양근위대의 라이트스텝 일병. 태음근위대의 문블레이드 하사. 태양근위대의 밸리안트 윈드 소위. 태양근위대의 갤런트 하트 중위."
옳지.
"감사합니다요 나리. 그럼 목욕이나 하실까요." 나는 씩 웃으며 밧줄을 전부 풀어 버렸어.
그자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던 그 표정을 봤지. "잠깐, 기다려!" 너무 늦었소 나리. 밧줄이 전부 풀어지면서, 코스모 경은 그대로 욕조에 떨어지고 말았어. "안 돼에에에에에!"
그자는 욕조에 첨벙 하고 떨어지고는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어. 정신줄을 놓고 사지를 막 움직여대는 꼬라지란. 나로 말하자면 가볍게 날아서 그자를 구경하고 있었지. 내가 죽을 자리로 밀어넣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까지 말일세. 그 발광을 하다가 천천히 눈을 뜨고는, 서서히 진정하기 시작하더라고. 그자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그 '표백제' 냄새를 킁킁 맡고는 얼굴에 묻은 걸 조금 핥아 맛을 보았어. 그제야 깨달았는지, 멍하니 중얼거리더구만. "그냥... 물이잖아."
나는 깔깔 웃다가 고문실 곳곳에 숨어 있던 유니콘 근위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네. "좋습니다, 선생들! 쇼는 여기까집니다. 이제 세트는 치워주시죠."
유니콘들이 각자 자리로 나와 환각 마법을 지우기 시작했지. 표백제를 가득 담고 있던 욕조는 그냥 물만 채워 둔 욕조로 바뀌었어. 표백제 냄새까지도 환각 마법으로 만든 것이었지. 진짜 저 환각 마법은 꼭 좀 배워야겠어. 그리고, 코스모 경은 이게 전부 다 장난질이었고 실제로 위험한 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이해하시더군. "너...... 나......"
"불어 주신 이름은 감사히 쓰겠습니다. 제 일도 여기까지군요. 그럼 그 실패한 쓸모없는 인생에 남은 찌꺼기들이나 열심히 즐기고 계십시오, 나리."
그자는 천천히 욕조 속으로 몸을 담궈 머리까지 물 속에 집어넣었다네. 그리고는 작은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지. 아, 물론 나에게 들릴 정도는 되었다네. 결국 오줌을 지렸는지 오줌 지린내가 아주 진동을 하더군. 그러니 더 세차게 울어제끼더라고. 아하, 지린 오줌 냄새와 눈물 냄새에 치욕을 버무린 이 냄새란 정말 각별하다니까. 최고야.
나는 그대로 문 밖으로 나왔는데, 밖에 있던 이브닝 글로리가...... 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 나도 놀랐어. "믿을 수가 없군." 대장 나리가 말씀하셨어. "갤런트 하트...... 그 갤런트 하트 말인가. 그 녀석은 항상 충성스러웠어. 근위대가 창설되었을 때부터 대를 이어 복무한 집안 출신이라고. 샤이닝 아머가 콕 집어 본인 결혼식 경비를 맡긴 녀석인데! 그 녀석 동생도 지금 사관학교에 있고......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음, 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차분하게 대꾸하며 고문실을 나와 출구로 향했다네. 이브닝 글로리가 곧 내 뒤를 따랐지. "자,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자들을 찾아내 잡아들이시겠죠?"
"그, 그래야겠지." 이브닝 글로리가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어. 아, 그걸 놀려 줄까 생각도 했는데, 그냥 그 때 한 번만은 착한 사람 노릇을 해 볼까 싶더라고.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느 심문 기술과도 같은 점이 없더군. 디스코드가 와도 그런 끔찍한 짓은 못 할 거다."
"흠, 입에 발린 말은 안 통한답니다. 그래도 감사는 드리죠."
"스태그. 딱 하나만, 묻겠네." 나는 눈썹을 치키며 그 자리에 멈췄어.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 된 건가?"
한숨 푹. "뭐, 일단 저란 놈이 처음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건 알아두셔야 합니다. 저는 누굴 다치게 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 행위 자체가 좋았다는 말입니다. 제가 사랑과 정보를 물어다가 체인질링 왕국에 갖다 바치던 시절에도, 몇 번인가 사람들을 다치게 해서 법정에 선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그것들을 긁어들이는 솜씨가 워낙 좋다 보니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풀어주더군요. 그러던 중에 그 일이 터진 겁니다......"
"무엇 말인가?" 대장이 물었어.
"... 대숙청이지요. 체인질링 다수가 죽어나간 대숙청 말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대부분이었죠. 크리살리스는 어린이들이 제국에 위협이 된다면서 전부 죽여 없앨 것을 명령했습니다." 나는 바닥에 침을 뱉고 말했네. "하, 본인에게나 위협이었겠죠..."
"...개중에 자네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군. 아닌가?" 이브닝 글로리가 말했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 그렇더라도 내 눈앞에 펼쳐지던 내 인생 최악의 날의 기억은 싫어도 떠오르더군. 두 팔로 내 조카 넥타를 안고 있던 그 때, 그 아이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잠자리에 들 때마다 불러 주던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어. 그 아이의 엄마이자, 내 여동생이었던 여자는 사지를 뜯기고 참수당한 뒤, 창에 꿰여 길거리에 내걸렸어. 어른들부터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시체 더미에 내던져져 불에 타올랐지.
우리 위대하신 전 여왕 크리살리스께서는 그 꼴을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바라보고 있었다네.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자들을 모조리 처치했으니 말이야. 나는 그 날 이후 울어 본 적이 없었어. 그 날 이후 그 어떤 감정도 나를 흔들지 못했고. 그 날 나는 내 마지막 도덕성도 내던졌다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괴물의 우리를 열어 나 자신을 먹어치우게 한 게 그 날이었어. 그 때부터 체인질링 스태그는 존재하지 않았지. 오직 고문기술자 스태그만 있을 뿐.
"크리살리스를 끝장낸 건 이퀘스트리아의 왕족들이었습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그 년을 죽인 데 일조한 건 확실하죠. 제가 이 일을 받아들인 건, 그 빚을 갚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게 전부고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마저 옮겼네. "메스모리아께서 크리살리스를 다시 되살려 주시면 정말 좋겠군요. 그러면 그 년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며 끝없이 고통받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이브닝 글로리를 남겨두고 지하감옥을 나왔네. 내 일은 끝났으니까.
그렇더라도 나는 끝난 게 아니지. 평생 그럴 수 없을 거야.
고문기술자란 결국 누군가를 해칠 수밖에 없거든.
희생양도...... 자기 자신도.
고문기술자는 밴후버에서 여생을 보냈다.
가끔, 그는 며칠씩 집을 비우고 사라졌다.
그가 집을 나와 어디론가 가기 전, 어디로 가냐는 이웃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이 좀 있어서요."
일러두기
스태그가 말한 그 선지자가 이분이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Etc. > [Rated Ponystar] 떨어진 별과 남은 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The Returning Student : Sunset Shimmer (0) | 2019.10.22 |
---|---|
11. Change is Coming : Fancy Pants (0) | 2019.10.19 |
09. Torturer : Stag Part I (0) | 2019.10.07 |
08. I am A Big Sister : Maud Pie (0) | 2019.10.07 |
07. Till Death Do us part : Flash Sentry (0) | 2019.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