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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Flashgen] 바람과 희망, 그리고 방랑

Session 03 - Gilded Cage - April 27th

by Mergo 2019. 10. 28.

세션 03 녹취록 : 순찰대 총괄 길디드 케이지

일자 : 4월 27일

시각 : 오후 5:56

 

과거 상담을 진행한 다른 근위대원들과 비교해 볼 때, 길디드 케이지의 기록은 다분히 평범하다.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바인스 수사관의 평가도 좋으면 좋았지 나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케이지는 상담실에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 서 있으려고 들어서, 녹취하려면 앉아서 말하는 편이 낫다고 설득해 겨우 앉혔다. 녹취 중 지속적으로 들리는 딱딱 소리는 케이지가 책상을 발굽으로 툭툭 치는 바람에 생긴 것으로, 녹취록을 작성할 때는 그 부분을 삭제하였다.

 

블루 스카이(BS) : 테스팅, 테스팅. 좋아요. 성함과 직책을 말씀해 주시겠...

 

길디드 케이지(GC) : 이름은 케이지. 직책은 수사보조 및 경비로 지금은 순찰대 관리를 담당합니다.

 

BS : 성까지 붙여서요.

 

GC : 음? 아 그렇지, 그렇지...... 공문서니까. 길디드 케이지.

 

BS : 고마워요. 성을 떼고 부르는 데 어떤 이유라도...

 

GC : 선생님, 전 이 성씨가 싫습니다. 우리 집안이 어떻든, 보다시피 내 직업과는 하등 관계가 없으니까요.

※ Gilded : 금을 입힌, 금도금한, 부유한, 상류층의

 

BS : 미안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물어 버렸네요.

 

GC : 뭐, 괜찮습니다. 자, 그럼 이게 다 어쩐 일인지 얘기나 해 주시죠?

 

BS : 뭐, 그냥 현장 인력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 간략히 훑어보고 오라는 지시죠. 수사팀이 아직 멀쩡하게 있나 확인하러 온 거에요.

 

GC : 그럼 나는 괜찮으니 이건 그만둬도 되겠군요. 이것보다 더 쓸모 있는 일이 많으니까요.

 

BS : 그래도 질문 몇 가지는 해야 해서요.

 

케이지는 미적지근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GC : 그래도 한번 질러 보기라도 해서 다행이군요.

 

BS : 미안해요. 그래도 그쪽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거니까요. 이것부터 시작하죠. 근무하신 지는 얼마나...

 

GC : 삼 년 반 정도 됐죠. 일단 수사보조 및 경비직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딱히 더 승진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달빛 아래를 거니는 것도 꽤 괜찮더군요.

 

케이지는 내 질문을 슬쩍 비틀어 대답하며 약간의 자부심을 내비쳤다. 정신 건강은 양호한 것 같다.

 

BS : 케이지 씬 상담이 그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봐요?

 

GC : 네... 뭐 이것보다야 순찰이나 나가는 게 낫죠. 안 그러면 트러플이 평소 두 배 거리를 돌아야 할 테니.

 

BS :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서요. 그냥 간단한 질문 몇 가지 하고, 대략 몇 마디 나눈 다음 뭔가 문제가 있으면 얘기하면 끝이에요.

 

GC : 그럼 시작하시죠.

 

BS : 파일을 보니 근무 중 문제가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으시던데, 맞나요?

 

GC : 네.

 

BS : 여기 오시고 나서부터는요?

 

GC : 한 번도 없습니다.

 

BS :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계시죠?

 

GC : 대충은요.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소문이라는 게 도니까요. 그리고 그걸 읽은 양반들이 선생님 생각보다도 더 입이 가벼운 경우도 있고.

 

BS : 그럼 혹시...

 

GC : 그런 건 관심 없습니다. 별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를 써놓은 일기 몇 권이나, 목소리가 들린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사건 수사에 별로 도움 안 되는 것들이죠.

 

BS : 후발대로 16일에 도착하셨죠. 그 때 포니빌은 텅 비어 있었다던데.

 

케이지는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지었다.

 

GC : 선생님. 사흘은 긴 시간이라, 아주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남이 봤을 때 엄청나게 방대한 기록도 남길 수 있죠. 게다가, 아직 확실한 증거도 얼마 없습니다.

 

BS : 그럼 마을 주민들은 이러저러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은 있나요?

 

GC : 당장 저기 에버프리 숲으로 갔을 수도 있죠. 사실 어딜 갔을지는 그 사람들밖에 모르겠지만요. 이퀘스트리아는 대단히 넓으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을 수색하라는 지시를 받지도 않았고요.

 

BS : 그래요. 그러면 잠이 잘 안 온다거나, 졸린데 못 자겠다거나, 이상한 꿈을 꿨다거나 한 적은 없으신 거죠?

 

GC : 한 번도 없습니다. 제 평생 그런 미신스러운 건 생각도 해 본 적 없지요. 아, 트러플이나 아이기스가 '그런 적 없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 양반들은 그래요. 그 둘은 쓸데없이 고집만 세서 저한테 그런 얘기는 한 마디도 안 했지만, 그 둘이 얘기하다가 요즘 잠을 못 자겠다거나, 컴컴한 어둠 속에 갇히는 악몽을 꿨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더군요.

 

케이지는 평범한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자기 보호를 위해 슬쩍 화제를 돌려놓는 것일 수도 있다.

 

BS : 일단 메모해놓긴 하겠습니다만, 상담은 케이지 씨에 대한 걸 묻는 거라서요.

 

GC :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확실히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BS : 케이지 씨를 취조하거나 일상 생활을 캐물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트러플 씨랑 아이기스 씨는 각자 상담 시간에 맞춰서 저희 팀원들이 얘기를 들어 볼 겁니다.

 

GC : 그래요, 그렇다면야. 알아두셔야 할 것 같은데, 트러플은 여름마다 포니빌에 산다는 삼촌을 만나러 오곤 했습니다. 약속 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그분을 다시 볼 수 있겠다면서 좋아했죠. 어쩌면 저랑 같이 올 수도 있겠다면서 말이죠. 이제 그 기회는 순식간에 날아갔지만.

 

BS : 내심 걱정이 되시나 보네요?

 

GC : 조금은요. 자기 지인이 피해...... 잠재적 피해자일 수 있는 사건을 맡아서 내려온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일이니까.

 

BS : 그럼 케이지 씨 가족들은 요 근처 분들이 아니신가요?

 

케이지는 잠시 내게서 시선을 떼어놓았다. 가족 문제를 찌르지는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본인 생각에는 그게 아닌 듯했다.

 

GC : 아뇨, 아니에요. 집안 사람들은 메인해튼에 삽니다. 큰 동네죠. 제 꼬락서니를 보면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그 동네에서도 상류층이에요. 제 여동생은 여행을 엄청나게 다니죠.

 

BS : 여동생 분과도 관계가 소원한가요?

 

GC : 아뇨. 남매 관계는 괜찮습니다. 가족 문제 대부분은 부모님 때문이지만, 그것도 직업 때문은 아니에요.

 

BS : 그렇군요. 혹시 말씀하시기 곤란하거나 싫은 것들이 있으시면 굳이 대답하려고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기본 질문들을 죽 해 봤는데, 몇 가지 더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요. 혹시 여기서 괜찮은지 좀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나요?

 

GC : 그러니까, 누구나 자기만의 문제가 있죠. 하지만 그게 전부 사건과 엮여 있는 건 아닙니다. 즉슨, 온갖 소문을 비롯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숨겨진 문장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나, 스윗 애플 에이커에서 랜턴이 이상한 행동을 했다거나, 지나치게 풍부한 상상력 같은 것들이 사람들을 좀 쫄게 만드는 그런 게 있다는 거죠.

 

BS : 케이지 씬 괜찮고요?

 

GC : 당연하죠. 전 그... 음, 그런 것에 빠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 포니빌 진입로 쪽을 지키면서 여기 들어오려는 한두 명을 돌려보내거나, 바쁜 날이라면 마을 내부를 순찰하고 돌아와 바인스 수사관님과 경계근무 시간표를 짜는 것 정도죠. 수사 내용에 관여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BS :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는 솜씨가 대단한데요.

 

케이지는 박장대소했다.

 

GC : 그러니까...... 설득력이 없다 이거죠.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수사관님들이 뭔가 확실한 증거를 발견해서 그 증거능력을 입증한다면야 그건 수용 가능한 것이죠. 일기 몇 권을 갖다 들이밀어 봐야 그냥 몇 글자 대충 갈겨놓은 종이뭉치밖에 안 되고요. 누가 무언가를 써 놨다고 해서 그게 실제로 발생한 일임을 입증하는 충분조건은 못 된다는 것이죠.

 

케이지는 상당히 회의주의적인 사람이다. 물리적으로 발생한 범죄 사건이나 순찰조에 투입될 때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성격이다. 이 시점부터 대화가 상당히 짧아졌는데, 그에 따라 케이지가 딱딱 두들기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BS : 케이지 씨, 혹시 취미 같은 건 있나요?

 

케이지가 두드리는 소리가 느려졌다.

 

GC : 장신구. 만드는 게 취미입니다.

 

BS : 진짜요?

 

내 반응이 비전문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케이지는 상당히 불만이 있는 듯했다.

 

GC : 왜요?

 

BS : 미안해요. 직업병 같은 거라. 가족들께서 하셨던 일인가 봐요?

 

GC : 네. 할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죠.

 

BS : 조부님 이야기를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GC : 할아버지 함자는 필리그리입니다. 대체로 조용하게 보내셨죠. 그 일을 하시는 것도 좋아하셨지만,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메인해튼에서 제일가는 세공인이셨던 모양이에요. 제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일은 그만두셨지만, 저랑 여동생에게는 보석 세공을 계속 가르쳐 주셨지요. 반지나 목걸이를 만들거나, 단순한 크기 조절을 하시는 데에도 몇 시간씩은 기본으로 쓰셨어요. 항상 보석 만지기를 즐겨 하셨던 기억이 나는군요.

 

어느 순간부터 케이지가 두드리던 소리가 멈춰 있었다.

 

BS : 왜 그러셨을까요?

 

GC : 그분은 금속을 다루는 재능이 있었어요. 금속으로 형태를 빚고 굳히는 방법을 자주 말씀해 주시곤 했죠. 금속으로 뭔가를 만들 때는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요. 강철을 이용해 도구나 연장 같은 것도 만드셨지만, 금 다루는 걸 더 좋아하셨습니다. 금은 사람과 같아서,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려거든 항상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고 하셨지요.

 

BS : 조부께선 돌아가셨나요?

 

GC : 네.

 

케이지가 다시 책상을 치기 시작했다. 더 빨라진 채였다.

 

GC : 어... 앞으로 몇 번 더 남은 거 맞나요?

 

BS : 가급적이면, 그 편이 낫죠.

 

GC : 그럼 내일 끝낼 수 있습니까?

 

케이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자리에 앉히려고 얼마나 기를 썼는지 생각하자, 순순히 그래 주고 싶어졌다.

 

BS : 확실히 많이 남은 건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고, 내일 바로 상담 일정을 잡고 싶어하시니까...... 순찰이 몇 시쯤 끝나죠?

 

GC : 다섯 시 반에 끝납니다.

 

BS : 그럼 여섯 시에 뵙죠.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케이지는 자기를 잘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 밤에 정말 케이지에게 다음 상담이 필요할지 여부를 두고 바인스 수사관과 면담을 가질 예정이다. 그렇더라도 자기 발로 오겠다면야 돌려보낼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