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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포니 최후의 날

Chapter 07. Immutable / 재번역 필요

by Mergo 2019. 8. 25.

겨울 어느 밤이었거나아니면 초봄 어느 밤이었던 때 일이다보라색 별빛에 젖은 언덕 꼭대기로 몇몇 이름 모를 포니들이 모여들었다그 날 밤에 정말 끝내주는 유성우나 뭐 그런 비슷한 류의 장관이 펼쳐진다는 말이 온 마을에 퍼졌기 때문이었다다만 스쿠틀루는 유성우가 어떻다거나 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오직 한 명 포니였고그 한 명 포니 하나뿐이었다.

 

"이야트와일라잇!" 레인보우 대쉬가 소풍 바구니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 가더니 씩 웃으면서 말을 꺼내고는 한 입 베어물었다. "이런 조수를 두다니 너도 참 운이 좋다니까나도 뭐 시키기만 하면 바로 해 갖고 오는 애 하나 있었음 좋겠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쪽에서 오렌지색 망아지가 쪼르르 걸어오더니그 말을 꺼낸 파란 페가수스의 앞에 서서 기쁜 듯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내가 할래!" 아이가 웃음지었다. "레인보우 대쉬 언니가 하라는 거라면 뭐든지 다 할게!"

 

"그러니꼬마?" 화려한 갈기를 한 포니가 아이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쓰레기 좀 버려 줄 수 있어?" 레인보우가 심지만 남은 사과를 잔디 위로 툭 던지며 물었다.

 

스쿠틀루는 그 사과 심지가 금으로 만든 것이기라도 한 양 조심스레 주웠다. "!" 아이는 공원 모퉁이쯤에 놓여 있던 쓰레기통까지 날듯 뛰어가서 사과 심지를 버리고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왔다.

 

스쿠틀루가 레인보우 대쉬의 그림자 아래서 즐거이 콧노래를 부르던 몇 분의 시간은 이내 한 시간까지 연장되었다유성우가 시작되어 보라색 하늘이 흰색과 금색의 가느다란 실로 수놓아지자한데 모여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포니빌 주민들 사이에서 조용한 웅성거림이 일었다앞뒤로 흔들리며 오가던 말들은 레이디 래리티가 떠올린 '별자리 장식 가장행렬용 의복'의 착상에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몇 가지 사소한 천문학적 사실들을 익숙한 솜씨로 쏟아내는 말들에 묻혀 사라져 갔다스쿠틀루는 그런 말들에 관심이 없었고아이가 주의를 기울이는 말은 오직 한 페가수스가 신이 나 열심히 늘어놓고 있던 지난 원더볼트 에어쇼 이야기 하나뿐이었다.

 

오렌지색 망아지도 대화에 끼어들려고 했지만이미 예상했던 대로 아이의 말은 대화에 끼어들기는커녕 대화에 떠내려가 버렸다하지만두 날개를 달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 자신의 날개를 움츠러들게 하는 누군가의 푸른 몸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기에아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깊이 숨을 들이마시던 아이의 눈에 근처에 놓여 있던 소풍 바구니 근처에 있던 작은 보라색 형체가 자신의 비늘 덮인 지친 몸을 웅크리고 빈 펀치 그릇 안에 기어들어가는 모습이 어렴풋이 비쳤고......

 

이내 아기처럼 잠자기 시작했다.

 

 

"시간 역행이라는 거야." 이제 십 미터까지 자란 스파이크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하자널찍한 동굴 안에 소리가 메아리치며 울렸다. "목표 대상을 과거로 돌려보내 주는 마법이지널 치어릴리 선생님께서 계신 학교로 돌려보냈던 것도 이거였어오직 이것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온갖 위험한 실험들과 깊은 성찰그리고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나날들을 견뎠던 거고지금까지 말이야." 그의 입가가 굽어지며 미소를 띄웠다. "내 연구실에 온 걸 환영해스쿠틀루."

 

마지막 포니의 두 귀는 나이든 드래곤의 말들을 경청하고 있었지만정작 두 눈은 사방의 놀라운 광경들을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커다란 동굴 같은 방의 한가운데에는 이제 다 자란 드래곤이 서 있었고그 옆에 커다란 화강암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어서 여자는 그리고 가 지친 몸을 쉬었다예전에는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나무집이자 도서관이었던 나무의 뒤틀린 뿌리 아래에서지하실은 이제 다 자란 드래곤이 들어와 쉴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게 확장되어 있었다.

 

다양한 색의 보석들이 반짝거리며 내뿜는 빛 위로는 연금술 테이블의 정교한 장치들이 놓여 있었고마법 재료를 담은 유리 단지들을 올려둔 선반들이 끝 모르고 설치되어 있었다빛나는 수정 구슬 몇 개와 전력장치에 연결된 테슬라코일 몇 개놋쇠로 정교하게 만들어 별들이 각자 궤도를 회전하는 이퀘스트리아 태양계의太陽系儀그리고 온갖 모양과 다양한 크기를 한 수많은 시계들 위로 다시 놓인 다른 시계들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발생하는 소리가 사방을 메웠는데이 각양각색의 황동 기계들이 저마다 째깍거리고 철커덕거리며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정밀성을 뽐내며 빛나는 동굴을 채우고 돌아가고 있었다.

 

포니빌 중심부 아래에 건설된 동굴의 흙 묻은 내부를 짙은 보라색 아지랑이 같은 것이 일렁여 적시며 대기 중으로 되살아난 이퀘스트리아 마법학의 정수를 내비치는 광경에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던 페가수스의 심장은 마치 오늘의 다사다난했던 오후 내내 뛰어 이번으로 백만 번째로 뛴 것만 같았다.

 

"이퀘스트리아에 절멸의 그림자가 드리웠을 때 난그 때 네가 먹었던 나이보다 겨우 몇 년 더 살았던 조그마한 꼬마 드래곤에 지나지 않았었어." 보랏빛 비늘로 덮인 나이든 드래곤이슈가큐브코너에서 보여 주었던 놀라운 치료 주문에도 불구하고 스쿠틀루의 갈색 솜털 위로 여전히 남아 붉게 화끈거리던 상처를 꿰매 주고 붕대를 감아 주며 말했다. "네가 그랬듯세상 모든 것들과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을 빼앗긴 이 세상에서 살아야 했지포니빌은 황무지가 되어 있었고캔틀롯은 유령의 도시가 된 지 오래더군셀레스티아 공주님과 루나 공주님 역시 당신들의 태양과 달이 추락해 사라진 망각 속으로 떨어져 버렸고철저히 혼자가 된 거였어도움이 필요했고가르침이 필요했고지혜가 필요했기에 그 이름을 소리쳐 불러 봤지만 결국 끝없는 슬픔의 늪 속으로 빠져들 뿐대답은 들리지 않았어내 사랑하는 스승이던 트와일라잇 스파클 역시 죽음을 맞이한 거야."

 

스파이크가 내쉰 숨이 거의 다 밀려나오자 지하 은신처로 녹색 연기가 뿜어져 퍼졌다스파이크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는 빙빙 돌던 보라색 펜던트가 황무지에서 건져 온 수백수천 개의 시계에 비치며 희미하게 반짝거리던 마나의 빛을 튕겨내는 모습에 약간 흐려져 있었다수없이 쌓인 옛 시간의 수호자들이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소리에 그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마지막 포니를 향해 다시 한 번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여자를 화강암 테이블 아래로 천천히 내려주었다.

 

"살아가야 할 유일한 이유 하나마저 사라졌을 수도 있었지만트와일라잇을 죽게 내버려 두느니 차라리 저주를 받는 게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그 절박했던 심정 때문인지재앙이 닥치기 전 딱 여섯 달 전에 트와일라잇과 같이 했었던 실험이 갑자기 생각이 나더라고그 어린 천재는 우리가 예전에 트와일라잇이 쓴 편지들을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보내 드릴 때처럼내 녹색 불꽃을 이용해서 물건을 과거로 보내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시간에 개입해 조작하려던 우리의 시도는 불발로 돌아갔지만과학자들이 생각하듯이이 실험을 다시 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어렸던 나는 그때부터 일종의 성전을 벌이기 시작했는데시간을 거슬러 재앙이 일어나기 전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그것이 가능하다면 혹시 나 자신을 과거로 보내는 것 또한 가능한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어그때부터 캔틀롯 산악지대의 동굴 깊숙한 곳에 틀어박힌 채 몇 년 동안이나 기껏해야 드래곤 뇌밖에 들어 있지 않은 내 머리를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많은 수학공식과 마법이론으로 혹사시켰지."

 

스쿠틀루가 기운 없는 걸음으로 한쪽으로 비켜 성년 드래곤이 마지막 포니를 지나쳐 널찍한 화강암 벽 쪽으로 지나갈 만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스파이크는 신속하고 정밀하게 자신의 손톱 위로 뜨거운 녹색 불꽃을 뿜고는 벽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채우며 문자 같은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그림을 대충 다 그린 늙은 드래곤은 검댕으로 그린 그림을 향해 몸짓했다그 자리에는 "구 포니 문명"이라고 쓰인 수평 직선이 하나 그려져 있었고바로 오른쪽에는 거칠게 쓴 "X" 자가 연결되어 있었는데그 바로 아래에는 "절멸"이라고 쓰여 있었다또 그 오른쪽에는 위아래로 지그재그로 그은 선이 뻗어 있었고스파이크는 간단히 "황무지 4시대라고만 써 놓았다.

 

"절멸 이후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끝에드디어 돌파구를 찾아냈지해변의 파도와 같이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의 속도 자체에는 간섭하지 않되 방향을 틀어 뒤로 흐르게 만드는 방법인시간 역행 마법을 발견한 거야그 사실이 얼마나 흥분되고 기뻤던지곧장 용기를 내어 재앙이 세상을 덮치기 전으로 내 첫 번째 시간 여행을 떠났어."

 

스파이크가 지그재그 선으로 그려 놓은 미래의 선 한 지점에서 왼쪽을 향하는 곡선 하나를 그렸는데그 선은 "X"자를 향하고 있었다그는 그 자리에서 불 붙은 손가락을 멈추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간 역행을 해 봤자내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한계점이 절멸 바로 다음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 크나큰 실망감은 말할 수가 없어루나 공주님과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목숨을 앗아간 그 날이 이제는 침투 불가능한 방어막처럼 되어 버린 거야마법이 불타 사라지면서 소멸 바로 직전의 순간드래곤의 몸으로는 돌파 불가능한 단단한 벽처럼 흔적을 남긴 거였는데내가 얼마나 녹색 불꽃을 사용하든지 효과가 없었어그랬지만내 실험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

 

스파이크의 손가락이 다시 곡선을 그리며 위아래로 삐죽거리게 그려 놓은 오른쪽 선 위 시간역행을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재앙"과 시간역행 시작 지점을 잇는 타원 같은 것이 그려졌다.

 

"이미 지나갔을 캔틀롯 산악지대에서 보내던 그 날들로 돌아간 뒤로는 그 안 깊은 동굴로 다시 들어가 전에 그 안에서 보내던 날들처럼 마법 설계와 계산을 하며 몇 년을 보냈어그 다음 다시 시간역행 마법으로 과거로의 길을 떠나려고 했는데또다시 그 벽이 막아서더군."

 

스쿠틀루의 시선은 스파이크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돌고 도는 궤도를 그려서 무한대 기호를 만드는 모습을 어지러이 쳐다보고 있었는데그 궤도는 항상 미래에서 출발해서 도표 위로 냉엄히 그어져 "재앙"이라 쓰인"X"자에 가로막혀 더 그려지지 못했다.

 

"이 발악 같은 시도를 몇 번씩이나 끊임없이 반복하고 다시 반복했지만......" 스파이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반복할 때마다 더 지혜로워지긴 했어하지만 그 때마다 몸이 자랐고이 끝없는 윤회에 대한 실의도 커져만 갔지과거로 돌아가려던 시도가 열다섯 번을 넘기고 나서야내가 사랑하던 이들에게 그들 모두를 절멸시킬 거대한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잔혹한 진실을 받아들였지." 그는 "재앙각주가 달린 "X자에 뚜렷한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하고는 쓰디쓴 뒷맛을 남기며 뜨거운 손가락을 내리고 말했다. "이퀘스트리아는 영원한 파멸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열다섯 번이라고?" 스쿠틀루가 말을 더듬으면서 겨우 말했다. "스파이크대체 지금 몇 살이야?"

 

스파이크가 지친 숨을 들이마시고 대답했다. "성장 속도를 계산에 넣고오래 전에 직접 만든 달력과 교차분석을 해 보면 대강 답이 나오는데삼백 년 하고도 칠십이 년을 더 살았다고 보면 될 거야."

 

"스파이크!" 스쿠틀루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나 오래......"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세상의 운명이 달린 일이었으니까......" 그는 여자를 깊이 들여다보며 덧붙였다. "그렇게 긴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 스파이크의 비통한 얼굴이 비치자몸을 기대고 앉아 있던 그의 모습을 비추던 시계들의 파노라마 위로 비친 상이 늙어 보였다. "재밌지...... 꼬마 드래곤으로 보냈던 9년 동안의 날들에는 친한 친구들과 같이 이퀘스트리아의 싱그러운 풀밭에서 즐겁게 보내곤 했지만그 정도 시간으로는 부족했어그리고 삼백 년의 절반 이상은 내 고단한 삶 속에서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 부록이나 만들면서 보냈지하지만 그 동안의 삶에서 그나마 가치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록 하나밖에 없었어트와일라잇이 도서관 저편에 있던 깃펜과 잉크를 가져다 달라고 부르는 소리를 생각나게 하고일을 잘 도와 줬을 때 쓰다듬어 주던 손길을 기억하게 하고밤이면 어린 드래곤이 그렇듯 잠에 빠져들어 밤 뒤에 찾아올 빛나는 아침을 꿈꾸고 있으면 이불을 덮어 주던 때를 되살려내 다시 심장이 뛰게 하니까."

 

스파이크가 수심에 잠겨 한숨짓자 녹색 연기가 뿜어져 나와 공기를 발길질해 밀어내며저마다의 궤도를 운행하던 황동 태양계의를 쓸고 지나갔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을 더 꺼내지 않다가이내 마지막 포니를 돌아보며 웃고 말했다.

 

"동쪽 산악지대 깊은 곳까지 들어가 실험을 한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구금했던 진짜 이유도 사실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어어떻게든 내 손으로 다시 한 번 태양을 되돌려놓은 걸 보기 전까지는 저 회색 하늘을 보길 거부하기도 했고삼백 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아직도 트와일라잇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찬란한 새벽의 꿈을 꾸지."

 

스쿠틀루가 마른침을 삼켰다. "스파이크?" 여자는 비틀거리며 탑처럼 높은 스파이크의 몸 쪽으로 다가서며 쓸쓸한 눈으로 그의 두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 몇 살인지 혹시 짐작할 수 있어?"

 

그는 그녀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 녹색 가시가 박힌 목을 기댔다. "내 기억력이 아직 멀쩡하다는 가정 하에 계산해 보면넌 재앙 당시 여덟 살이었어그리고 재앙 이후 시간을 추정해 보면포니 문명을 절멸시킨 일종의 혁명인 재앙이 발생한 이후 대략 이십오 년 하고도 반 년이 지났고이걸 토대로 생각해 보면—"

 

"서른세 살이네." 스쿠틀루가 숨을 내쉬었다여자는 안개 어린 한숨에 섞인 말들을 꺼내며 눈을 깜박였다. "난 서른세 살이었구나."

 

여자는 시선이 시계바늘로 가지 않도록 눈길을 돌리며 풀 죽은 소리로 말했다그녀는 동굴 반대편 천정을 비집고 나온 죽은 나무뿌리 쪽으로 눈 먼 유령처럼 절룩거리며 걸어갔다.

 

"아직 어어렸던 꼬마였던 때가 생각나는데치어릴리 선생님께서 한 번 당신 나이를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어그 분께서도 서른세 살이셨는데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나이의 세 배보다도 많은 나이를 먹고삼십 년을 살아가며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참 이상해."

 

여자는 잠시 세월에 씻겨나가며 곳곳이 떨어지고 파인 자국이 남은 발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 있지그 세월 전부가 눈 깜박할 새 회색에 뒤덮여 사사라져 버렸고."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얼굴을 붉히고는 어렴풋이 보이는 보라색 드래곤을 향해 미안해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미안스파이크그 동안이면 삼백 년에 비길 생각조차 못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놀랄 만도 하지."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백 년도 마찬가지로 찰나에 지나갔어."

 

"그런데 그 시간 동안그 삼백 년 전부를 지내면서 말인데," 되돌아올 대답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에스쿠틀루는 그의 시선 또한 피하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다른 포니를 찾아본 적은 한 번도 없어나와 같은 이를 찾아볼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던 거야?"

 

늙은 드래곤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그의 대답은 장례식의 장송곡처럼 흘러나왔다. "시간 역행이나 관련 실험을 하지 않을 때면 항상 너희를 찾아다니고 있었어스쿠틀루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위해서루나 공주님을 위해서그리고...... 트와일라잇을 위해서밖에 나가 이 황량한 세상의 차가운 하늘을 혼자 날아가며 포니 문명의 정수를 찾아 돌아다닐 때널 만나기 전까지 내가 찾아낸 것이라고는 오직 죽은 정수들밖에는 없었어네가 살아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지만세상을 산산이 부수어 버린 것은 재앙의 물리적 측면이 아니라마법적 측면이었다는 데서 보면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해포니들어스 포니들과 유니콘그리고 페가수스 모두 먼지가 되어 버린 건 자신들의 정수가 완전히 소멸되었기 때문이야너무나 비극적인 일이지만너와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스쿠틀루네가 죽기 전까지 포니들의 종말은 오지 않을 거야."

 

마지막 포니의 몸이 떨렸다여자는 두 진홍 눈을 단단히 닫아 감고지나간 세월들이 거머리로 변해 자신의 몸에 들러붙어서 자신의 빛을 전부 빨아먹어 당장이라도 부서져 버리기라도 할 듯바닥을 향해 몸을 굽혔다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어느 순간 뻗어 내려온 스파이크의 손이 여자의 밀려 버린 갈기를 천천히 쓸어 주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여자는 자신을 달래는 스파이크의 그림자 아래서 짧고 조용히 흐느끼다가다시 말할 기운을 내었다.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알고 있었어나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만을 안고 혼자 살아온 지난날 내내진실은 이미 알고 있었어죽음의 세상이영원히 몰아칠 냉혹한 회색 눈들로 날 똑바로 쳐다보며 마말해 주고 있었으니까이젠뭘 위해 나아가야 하는지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조차 생각할 수 없어이런 순간이 오기를 바라서그 어떤 포니라도정말 그 누구라도설령 그게 죽은 친구여도 다시 만나고 싶어서온갖 경우를 다 생각했었는데그래서 스파이크 너도 살아서 별 탈 없이 지내는 걸 알면서도기뻐해야 하는데도그럴 수가 없어나도 우리의 해후를 깊게 받아들이고 싶어무언가 바랄 수 있게 된 다음부터 언제나 바라 왔던 것이면서삶에서 거의 만날 수 없는 순간이니까그런데도그 어떤 느낌도 들지가 아않아전부 다야스파이크여기 불모의 땅이 우리 모든 것을 빼앗아 갔기에더는 무언가를 느낄 수가 없어이러는 내가 싫어증오스러울 정도로."

 

"나도 그래." 스파이크가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그가 고개를 숙여 애정 어린 눈으로 스쿠틀루를 바라보자 목에 걸린 보라색 펜던트가 달랑거렸다. "몇 번씩 시간 역행을 거듭해도 여전히 불가능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게 해 주는내가 끌어안고 살아가는 생각이 하나 있는데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항상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거야살다 보면 그래야 할 때가 가끔 오거든."

 

그녀는 눈물 맺힌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날카로운 숨을 들이마셨다. "바로 그거야스파이크그게 내 딜레마야내가 마지막 포니이기에내가 앞으로 할 일은 살아 있는 것인데언젠가 나에게도 끝이 찾아올 거라는 거지."

 

스파이크는 의연하면서도 그런 말 할 줄 알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를 가늘어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넌 단순한 마지막 포니 이상의 존재잖아내 짐작이 정확하다면넌 황무지의 청소부이자 사냥꾼이고궁극적으로는 보존자 역할을 하고 있었거든네가 동쪽 하늘에서 서쪽 하늘로 건너가며 여행했듯이나 역시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이백 년 하고도 반백 년 동안을 여행했었어그리고 나도 보존에 대하여 한두 가지를 배울 수 있었고시간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다룰 줄만 알게 된다면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게 그거야선택권이 없어지는 일이긴 하지만그렇게 되면 영원히 살아 있을 수 있게 되는데스쿠틀루너에게도 해당할 수 있는 말이야."

 

드래곤은 그렇게 말하며 손톱 돋은 손을 움직여 연구실 먼 쪽 한 구석을 가리켜 보였다동굴 너머를 분명하게 인지한 스쿠틀루의 두 붉은 눈이 이내 말랐다여자는 다리를 절며 일어나늘어선 유리 단지 안에 각각 담긴 것들이 아름다운 모양과 빛나는 얼굴을 자랑하는 모습을 감탄하듯 들여다보았다.

 

"꽃이잖아."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리며 한쪽 발굽을 뻗어 바로 앞에서 피어나 황금색으로 빛나는 노란 꽃잎을 만개한 꽃을 천천히 쓸어 보았다건드리자 치어릴리 선생님이 재직하던 학교의 운동장으로 잠시 떠났을 때 보았던 그 나비의 두 날개와 같은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이걸도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야분명 전부 다 죽었을 텐데!"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이야." 스파이크가 여자 옆에 쌓여서 저희끼리 덜그럭거리던 보석 더미로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걸어왔다그러고는 날개를 접음과 동시에 자신의 보라색 몸 또한 굽히며 옥좌에 앉듯 앉고 덧붙였다. "그럼에도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그것이 이미 죽어 흩어져 사라졌더라도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지그렇기 때문에 과거가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고생각해 보면 역사도 사실 영원의 기억들이 쌓여 더미를 이룬 것에 지나지 않아시간 역행의 흐름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간단히 말하면 기억 밖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그 기억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거라 할 수 있어."

 

"하지만 넌 과거로 돌아갈 수 없잖아스파이크." 스쿠틀루는 데이지가 담겨 있던 유리 단지를 부드럽게 안아 보며 큰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적어도재앙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너도 그렇게 말했고......"  여자의 목소리는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끊겼다그녀가 안고 있던 단지 위로 커다랗게 뜨인 한 쌍 붉은 눈이 비쳤다여자는 몸을 돌리며 꽃 단지를 거의 떨어뜨리듯 내려놓고는 당황한 채 스파이크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도 나는 보내 줄 수 있다고스파이크어떻게 된 거야?!" 초조해하는 여자의 시선이 동굴 벽에 검댕으로 그려진 도표에 가 박혔다. "재앙"에 스칠 뿐건너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순환의 고리가 그녀의 혼에 스치는 듯했다. "어떻게  네가 갈 수 없었던 곳으로치어릴리 선생님이 있던 곳으로 갈 수 있던 거야?"

 

"나도 물어 볼까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해도 달도 없는 세상에서의 삶을 견뎠던 거야?" 스파이크는 자신의 질문으로 답을 찾게 하려는 듯 반문했다. "어떻게 포니 문명의 유산을 향한 끝없는 분노로 가득한 채살아 있는 마지막 포니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녀석들로 가득한 이 어둡고 우울한 세상에서 살아남았던 거지?" 그는 부드럽게 웃고는 스스로 대답했다. "내가 알을 깨고 태어난 그 날부터 너희들에게 푹 빠진 이유와 같은 이유야바로 너희의 정신이지."

 

"정신......" 스쿠틀루는 자신의 차가운 그림자 속에서 흔들리는 꽃들을 지친 듯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정말 나한테 그 정신이 있다는 거야스파이크?"

 

그는 웃으며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고 대답했다. "보여 줄게."

 

 

 

본래 건물에 딸린 널찍한 창고였던 곳이었던 포니빌 인라인스케이트장에는 주말마다 포니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타원형 경기장을 빙빙 돌며 벗들과 서로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이제 보라색 드래곤의 조심스러운 인도를 따라재앙 이후의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 걸어가자 그곳은 완전히 바뀐아름다운 곳으로 변해 있었다.

 

스쿠틀루는 너무나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고그녀의 두 눈에 여기저기 매달려 늘어진 식물들과 꽃밭꽃 피는 덩굴향기로운 화환들과 가지가 굽다시피 한 과일 나무들이 비쳤다싱그러운 식물들이 자연처럼 개조된 창고 내부에 떨어진 생명 위로 즐거이 자라고 있었다끝없이 돌고 도는 인라인스케이트 경기장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화강암을 깎아 그릇처럼 만들어 둔 것이 놓여 수백 종 식물들이 번성하기 좋도록 충분하고 촉촉한 흙을 품고 있었다.

 

이슬 내린 싱그러운 낙원(Eden)은 녹색과 부드러운 색들로 반짝이고 있었고그 빛은 모두 한 곳 광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는데창고 천장에 걸어 둔 사슬들로 고정해 둔 커다란 거울이 바로 그것이었다세로로 세워진 커다란 거울은 금으로 된 테를 두르고 있었는데그 위로는 태양의 형상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었다마지막 포니는 캔틀롯 왕궁에서 회수해 온 책 한 권에 실려 있던 바로 그 거울임을 즉시 알아차렸고놀라움에 말조차 쉽게 꺼내지 못했다이 거울은 바로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침전에 있던 거울이야." 스파이크는 힘있는 발걸음으로 스쿠틀루를 지나쳐 걸어가 상체를 들어 천장에 매달린 물건 옆에 늘어서 있던 마나 횃불에 다시 불을 붙이며 말했다. "셀 수도 없는 시간 동안내성적이셨던 공주님의 얼굴을 직접 마주볼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어오랫동안 태양의 인도자셨던 공주님의 기운을 받았던 물건이기 때문에그 분의 광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거기다 적절히 손만 좀 봐 주면 바다의 심연 속에 갇힌 깨끗한 조개 껍질처럼 계속해서 공주님의 위대한 빛을 영원히 간직할 수도 있지."

 

드래곤은 몸을 숙이며 심호흡을 하고는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거울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금빛 광채에 젖은 실내 식물들이 자랑스럽다는 듯한 눈길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놀라워스파이크." 여자는 숨을 죽이고 중얼거렸다그녀가 녹색 땅과 붉은 뿌리 위를 건너가자 색들이 각자 비명을 지르며 여자를 완전히 휩쌌고그 통에 갈색 솜털과 붉은 눈동자는 한낱 창백한 그림자 한 줄기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것들 중 절반은 벌써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이고." 여자는 거칠게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신을 지나쳐 날아간 이상한 곤충을 눈을 가늘게 뜨고 들여다보았다벌레가 장미의 붉은 꽃잎 위에 내려앉을 때까지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며 오래열심히 녀석을 쳐다보았다. "벌이네." 여자는 웃음소리가 섞인 어지러운 숨을 내쉬고 말했다. "벌들에 대해서도 잊어버리고 있었고......"

 

"그 녀석들을 놀라게 하지 마그럼 녀석들이 널 잊지 않았다는 걸 자연히 알게 될 테니.” 스파이크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무언가를 급히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런망할마나 프리즘을 가져오는 걸 잊었나요즘에는 정신을 대체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람?” 늙은 용이 순간 몸을 꿈틀댔다그러고는 쥐어짜는 듯한 동작으로 한 줄기 녹색 연기를 토해냈는데거기 뒤섞였던 불꽃에서 한 개 유리 상자가 튀어나와 그의 손으로 마법처럼 떨어졌다. “하하역시 난 끔찍이도 생각이 깊단 말이지.”

 

스쿠틀루는 유리 용기를 보고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

 

 “널 이리로 데려온 건뭔가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어.” 그는 비늘 덮인 손으로 작은 단지를 들고 여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슈가큐브코너에서 갑작스레 널 과거로 보냈던 것 그 자체로 필요한 시험은 다 끝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바라던 만큼의 명확성과…… 그리고 또…… 뭐 그런 것들로 우리의 상황을 밝혀 줄 것으로 기대하는 실험 하나를 더 해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는 자신의 벗이자 마지막 포니를 돌아보고 물었다. “스쿠틀루뭐 재미있는 거라도 찾은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진짜 재미있어 보이는 걸 찾았지.” 황무지의 방랑자는 깨끗한 샘 밖으로 튀어나와 있던 무언가 쪽으로 저축거리며 다가갔다한때 인라인 스케이트장이었던 건물 가운데에는 이제 은 받침대 위에 세워진 일 미터 높이의 모래시계가 놓여 있었다이제 보니 모래시계 상단과 하단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어느 순간에는 하단부에는 푸른 빛이 도는 보라색의 꽃들이 찬란한 꽃잎을 펼치고 피어 있었는데눈 깜짝할 사이 시들어 재로 변해 사라져 갔고그 동안 상단에 담겨 있던 잿더미가 합쳐지며 보라색 꽃다발로 변했다바로 다음 순간에는 위쪽에 있던 꽃다발이 사그라지며 생명 없는 물질로 변했는데아래쪽에 있던 재들은 다시 합쳐지며 흡사 테이프를 앞으로 감듯 빠르게 꽃다발로 변했다어느 한쪽에서 꽃이 피면 다른 한쪽은 시들어 죽기를 반복하도록 만들어진 모래시계 안에서 반복되는 순환은 영원히 진행될 것 같았다.

 

 “마음에 들어?” 스파이크가 어느새 다가와 여자 위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시선은 돌고 도는 모래시계에 고정한 채제자리에서 조금 뛰며 답했다. “저게 뭘까 생각하느니 차라리 맛이 가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이해만 시켜 주면 은 조각 십만 개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파이크는 웃고 말했다. “저 유리는 녹색 불꽃으로 녹여서 만든 건데위쪽과 아래쪽을 번갈아 가면서 만들었어그렇게 하니까 어느 한쪽에서 시간이 그대로 흘러가면 다른 한쪽은 시간 역행을 해서마치 시계추가 진자 운동을 하듯이 움직이며 균형을 맞추더라고.” 용은 반들거리는 손톱으로 기민하게 모래시계 안 꽃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양쪽 끝부분에 들어 있는 꽃들은 시간을 그대로 따라가다가도 이내 역행하며 반대쪽에 들어 있는 자매화姉妹花와 함께 같은 양의 에너지를 보존하도록 빠른 변환을 반복하고 있어처음으로 실험을 시작했을 땐 이런 걸 만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지아홉 번째로 재앙 직후로 돌아갔던 시간 역행 때에야 내 연구 성과가 어디까지 도달한 것인지 예술적으로 표현할 만한 것임을 알았지만 말이야솔직히 이걸 누군가에게 보여 주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스파이크가 따뜻하게 웃고 말했다. “바로 그 때 네가 내게 와 주었지.”

 

그럼그 말은 네 정원이 마음에 찰 정도로 예술적인 건 아니라는 거네?” 그녀는 계속해서 피었다 재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꽃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신경 쓰이는 듯 소리 내어 웃었다한 줄기 한숨이 빠져나왔다. “저거…… 저거 참 예쁘다스파이크……” 여자는 부끄러운지 입술을 깨물었다. “저거 뭐야저기 꼬꽃 말이야.”

 

라벤더야.” 스파이크가 대답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한 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향기로운 꽃이지.”

 

여기 있는 것들 전부 다 아름다운데왜 하필 라벤더를 쓴 거야스파이크라벤더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거야?”

 

……” 드래곤의 커다란 주둥이가 굽어지며 부드럽지만 확연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지내던 포니들 중에서도정말 멋진 포니가 가장 좋아하던 꽃이었거든아주 오래 전 어떤 꼬맹이 용의 마음을 뒤흔든온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우아했고가장 빛났던 여인이었어.” 사내의 나이든 두 눈동자가 피었다 시들기를 반복하며 그의 비늘 위로 희미한 푸른빛을 흘리는 두 개 꽃다발을 향했다. “저런 연옥 같은 곳에라도 저것들을 가져다 놓은 건그들을 영원히 기리며또한 그녀를 영원히 생각하겠단 뜻이었어그리고 언젠가 나도 죽어 사라지면 남은 몸뚱이도 곧 흩어져 사라지겠지만저 꽃들만은 나보다도 오래 살아 그녀를 생각하겠지.”

 

이제 쇳덩이가 된 여자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무언가에 순간 균열이 일어서그녀는 한 줄기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 나서여자는 의연히 그를 보며 웃어 보이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되게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

 

무엇이든 아름다운 것만 보면 늘 열심히 뜯어보곤 했었는데.” 사내는 긴 숨을 토해내고는 곧 포니를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분명  봤으면 왜 그렇게 하고 돌아다니냐고영혼까지 완전히 털면서 혼냈을걸?”

 

내가 뭐?” 스쿠틀루는 잠시 눈만 깜박거리다가 이내 얼굴을 붉혔다. “.” 여자는 한쪽 앞다리를 들어 보라색 갈기가 수염처럼 짧게 돋아난 뒷목을 쓸었다. “어릴 때부터 예쁘게 꾸미고 다니는 건 상상도 안 해 보긴 했는데세상 어차피 개판인데 예쁘게 꾸미고 돌아다녀 봐야 미인 대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소용이겠어뭐 그건 그렇고……” 그녀는 한숨짓고 말했다. “내 갈기라면 단열재 같은 걸 만들거나 룬 조각할 때나 쓰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고.”

 

나도 이해해.” 스파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덕에 널 데리고 하려던 시험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말이야.” 그는 연기 찬 목을 헛기침을 해 씻고는 정중히 웃으며 물었다. “혹시 속눈썹 한 올만 뽑아 가도 괜찮을까?”

 

잠깐뭐라고?” 스쿠틀루가 얼굴을 구겼다.

 

아프게 안 할게약속.” 늙은 용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가뜩이나 얼마 전에 혈액 샘플을 채취해도 되겠냐고 물어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피 쏟았었잖아.”

 

속눈썹이면 괜찮아.” 스쿠틀루가 일어서서 사내 쪽으로 다가가 조용히 눈을 감고 말했다. “잘못해서 손톱으로 어디 찌르지 않게 조심하기만 하면 돼.”

 

조심이라면 늘 하고 있는걸.”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옴과 동시에 녹색 숨결에 젖은 한 쌍 손톱이 다가왔다친절한 용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쉽게 한 올 속눈썹을 뽑아 유리 단지 속에 떨어뜨렸다.

 

스쿠틀루는 떨리는 두 눈을 열어 뜨고는 용이 유리 용기 안에 한 줄기 에메랄드 빛 불꽃을 뿜어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스파이크는 녹색 혀처럼 날름거리는 밝은 불길이 어디 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속눈썹에 옮겨 붙자마자 용기를 재빨리 닫고 뚜껑을 비틀어 잠그고는 불빛을 뿌리는 유리 그릇을 셀레스티아 공주의 거울 중앙부와 마주보도록 들어올렸다천장 가장 높은 곳에 매달려 있던 거울에서 한 줄기 빛이 쏘아져 나와 드래곤의 정수와 포니의 그것이 뒤섞여 빛을 뿌리던 단지 안을 비추자프리즘 반대쪽으로 마법의 녹색 파장이 방출되며 그 위로 반짝이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포니는 지나온 삶의 몇몇 단편들이 자신 바로 앞에서 빙빙 도는 이미지의 배열로 변하여 재생되는 모습을 믿지 못하면서도 넋이 빠진 채 쳐다보았다황무지로 추방되어 보낸 이십오 년 동안의 거대하고 칙칙한 만화경이 두 친구 앞에서 깜박이고 있었다술 취한 오우거 하나가 M.O.D.D. 내부 그것도 피트의 앞에서 자신을 귀찮게 구는 모습이 보였고고글 낀 쥐 하나가 자신의 매캐한 비행선 안에서 웃어 보이는 모습이 보였고그리고 전등 빛 아래 흔들리는 그물침대에 누워 셀레스티아 공주의 일기를 읽는 외로운 포니의 모습이 보였다.

 

내 생각이 맞았구나!” 스파이크가 갑자기 싱글벙글 웃으며 다른 한쪽 팔 손가락으로 한 포니가 무지개 발생장치를 밝히는 모습을 가리켜 보였다. “무지개를 띄운 게 바로 너였어실험을 멈출 겨를이 없어서 가까이 가서는 못 보고 누가 띄웠을까 몇 년 동안 생각만 했었는데 말이야…… 포니 말고 누가 황무지가 된 이 땅에 저렇게 아름다운 걸 띄울 수 있을까…… 하고.” 그는 웃고는 여자를 보고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이제 너도 알겠지만포니빌 위로 가끔씩 녹색 불꽃을 뿜어낸 건 네가 돌아오도록 하려고 했던 거였어.”

 

 “결국 그렇게 되긴 했지 젠장……” 스쿠틀루는 자기 앞에서 회전하는 기억의 만화경에 여전히 압도된 채 무감각하게 중얼거렸다기억의 순간들은 다양했는데부랑자로서 물건을 찾아 돌아다니던 수많은 때들과 황량함 속으로 외로운 여정을 떠나던 때들이 있었고겨우 목숨만 건져서 달아났던 때들도 있었는데이제 보니 그 기억들은 모두 죽음의 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점에서 달라 보이지 않았다여자의 목에 천천히 응어리가 졌다.

 

 “어이……” 스파이크의 두 눈이 낄낄 웃는 길리엄의 얼굴을 향했다철판 덧댄 대가리가 반투명한 형체를 드리우고 두 친구 사이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이 잘생긴 친구는 누구야?”

 

 “잘생긴 친구라기보다는잘생겼던 친구는 누구냐고 묻는 게 더 맞는 말이야.” 스쿠틀루는 침을 탁 뱉고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스파이크혹시 기분 나빴어저것들을 다시…… 보는 게 반가운 일은 아니라서 말이야.”

 

 “난 상관없어.”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단지를 살짝 흔들며 위에 있던 셀레스티아 공주의 거울의 희미하게 빛나는 표면에서 약간 떨어뜨렸다.

 

형상은 이제 거의 이십 년쯤 전의 기억의 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지금보다 밝은 솜털과 훨씬 부드러운 눈매를 한 포니가 하모니 호의 잔해를 모아 수리하는 모습과월석을 조각하는 모습무지개 발생장치를 만드는 모습그리고 갈기와 말총 전부를 면도해 버리는 모습이 비쳐졌다스파이크가 다시 한 번 용기를 흔들며 거울 속 햇빛에서 조금 더 떨어뜨리자회전하던 기억의 형상들이 깜박이기를 반복하더니 스쿠틀루의 정수가 절멸의 장벽을 건너뜀과 동시에 포효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붉은 불꽃으로 변했다.

 

 “좋아이제 됐어.” 기억의 형상 전부가 불현듯 찬란한 색들로 빛나기 시작했다밝은 보라색 눈을 한 오렌지색 망아지가 스쿠터 하나에 기대어 등 뒤로 희미해져 가는 포니빌 길목을 쏘다니는 모습이 보였다큐티마크 크루세이더의 얼굴과언니 오빠들의 얼굴그리고 낯설지만 친절한 이들의 얼굴들이 모여 밝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강들이 흘렀고 그 위로 산들이 일어섰으며 그 위로 구름이 떠갔는데그 위로는 하늘이푸른 하늘이 있었다그리고 이제 그 자리로 더러는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더러는 활짝 웃기도 하는숲 속 클럽하우스에 모여 노는 빈 엉덩이 아이들의 얼굴이 비쳤다가 푸른 깃털과 무지갯빛 갈기를 한 이의 얼굴이

 

눈 깜박할 사이눈 앞에 비치던 빛들이 사라졌다스쿠틀루는 그 뒤로 남은 공허를 날카롭게 들이마시고는 고개를 돌려 건물 너머 바깥에 흔들리며 앉은 명확한 현실이자 회색의 세상을 살짝 묻힌녹색 정원을 젖은 눈을 떨면서 바라보았다스파이크가 꺼낸 말들을 이해하기에여자는 너무나 멍해 있었다.

 

 “예상한 대로야네 정수를 통해서라면 절멸 전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었어아니조금이라도 보는 정도가 아니라 포니빌에서 보낸 네 유년기까지 전부 다 볼 수 있었지앞으로 더 많은 실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인데아무래도 다른 것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보니 말이야……”

 

스쿠틀루는 침을 삼키며 앞다리로 얼굴을 비비고는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다른 거라니스파이크말하는 거야?”

 

 샘플 같은 거야옛날에 죽어 버린 포니들의 시신에서 얻어 온 것들이 있었거든.” 스파이크가 대답했다그러고는 아직도 프리즘 속에서 연기를 피워내는 자신의 속눈썹만 들여다보고 있던 스쿠틀루에게 유리 그릇을 건네주었다. “재앙 전으로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녹색 불꽃을 망원경 삼아 그 전을 들여다본 거야이걸 하는 데 죽은 포니들의 정수와 잿가루 같은 걸 시약 삼아서 써야 했었어하지만 네 정수즉 살아 있는 포니의 정수를 이용하면늘 똑같은 것만 보여 주던 다른 것들과 달리 재앙이 막아 버린 시간의 벽 너머를 볼 수 있지치어릴리 선생님이 계시던 학교 운동장에 잠시나마 다녀올 수 있었던 것 또한 그걸 증명해 주고이제 더 이상의 의문은 없는 셈이야.”

 

스쿠틀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정원 너머로 걸어가는 스파이크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의문을 말하는 건데스파이크?”

 

 “내가 갈 수 없는 곳을넌 갈 수 있단 뜻이지.” 스파이크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하며 원예도구를 비롯한 다른 물건들로 가득 찬 상자를 지나쳐 가 창고의 한쪽 벽으로 걸어갔다. “네가 바로 포니들의 마지막 생존자이기 때문에네 영혼 자체를 재앙 이전의 과거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다른 포니들이 모두지금 너처럼 살아 있는 과거로 널 보내 줄 수 있다는 거야하지만여기에도 한계는 있어.” 그는 굵직한 팔로 커다란 상자를 가볍게 열고는 그 안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네가 태어난 이후의 과거로밖에 보낼 수가 없는데그나마도 나와 자주 만났던 이들의 주변으로 시간역행이 제한된다는 등의 한계지치어릴리 선생님으로 예를 들어 보자넌 지금 살아 있고그분도 그 땐 살아 계셨는데이렇게 되면 포니의 정수가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루나 공주님의 생명마저 파괴한 재앙이 빚어낸 마법의 간극을 넘어가 서로 접촉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그는 상자에서 익숙한 유리 그릇을 하나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였다그러고는 한 줌 뜨거운 숨을 뿜어내 프리즘을 녹색 불꽃으로 감싸 오 분 전으로 보냈다. “스쿠틀루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너만은 갈 수 있어.”

 

마지막 포니는 자신이 들고 있던 유리 그릇을 흘끗 보았다그러고는 그것이 전염병 균이라도 되는 것처럼 갑자기 흠칫하면서 프리즘을 정원 바닥에 떨어뜨리고 눈앞의 드래곤을 떨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만스파이크난 자잘 모르겠어이건 너무…… 너무…… 아아아아아악!” 여자는 두 발굽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치솟는 급한 숨을 억누르면서이를 악물고 말했다. “내 말은이게 대체 뭐냐고스파이크?! 뜬금없이 내가 과거로 갈 수 있다니 뭐야?! 이렇게 갑자기?”

 

 “이것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된 게 아니야스쿠틀루.” 그는 차분한 눈길로 여자를 바라보며 늙어 가는 두 다리로 걸음을 옮기고 말했다.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마법 공식과 수학 계산을 반복하고 나서야 이 결론에 도달한 거라고이 여정을 완성하는 데 필요했지만찾을 수 없었던 열쇠가 바로 너였을 뿐이야마지막 포니가 퍼즐 마지막 조각이라니이것도 참 아이러니 아니야?”

 

 “아이러니?” 스쿠틀루가 쏘아붙였다. “한테는 완벽하게 다 맞아떨어지게 된 거잖아그 긴 시간 동안 네가 한 거라곤 동굴이나 연구실에 처박혀서 여기 널린 것들이나 주워 모으는 것밖에 없었잖아내가 사랑했던 이들 전부가 죽어 버렸다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하면서내가 할 수 있는 염병할 짓거리는 하나도 없다는 걸 알면서 겨우 살았다고!” 여자는 무거운 한숨을 토해내고는 한 쌍 발굽을 그의 한쪽 팔에 올려두며 물었다. “스파이크너 진짜 나한테 이러면 안 돼아직도 짊어져야 할 게 부족하다는 거야?”

 

네가 해 주길 바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침을 삼키고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인 공허한 표정을 지으며 스파이크를 쳐다보았다. “과거로 돌아가서…… 이 모든 일을어떻게든 일어나지 않게바꾸는 거 아니야?”

 

마지막 포니는 스파이크가 빠르지만 무겁게 고개를 젓는 모습에 당혹스러워했다. “내 오랜 친구잘못 짚었어그걸 바라는 게 아니야.”

 

 “아니야?”

 

 과거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야스쿠틀루가공할 만한 공포와 두려움을 앞세우고 들이닥친 그 재앙은 너나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반드시 일어나야만 해.”

 

정원의 분위기가 순간 무너져 내렸다곤충 한 마리조차도 윙윙대지 않았다셀레스티아 공주의 거울에서 흐르는 빛도 정원 안을 초점 없는 눈으로 둘러보는 스쿠틀루의 지친 두 진홍 눈동자에는 훨씬 미약해져 있었다여자는 오래지 않아 어린아이처럼 울먹이며 스파이크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고 물었다. “어째서?”

 

"시간은 불변하니까."

 

"불변하다니무슨 뜻이야?"

 

스파이크가 숨을 깊게 들이켰다그러고는 천천히 내쉬며 한쪽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잡고 말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다시 한 번 황무지의 부드러운 눈가루와 잿가루가 뒤섞여 스쿠틀루의 솜털 위로 세례를 주듯 차갑게 떨어져 내렸다그녀는 스파이크의 널찍한 등 위쪽에 앉아그가 느긋하게 부스러져 가는 폐허들과 상처투성이가 된 포니빌의 정경을 지나 걸어가는 동안 자신의 붕대 감은 몸을 쉬었다보라색 드래곤이 외로운 포니를 데리고 지난날의 화석 너머로 건너가자 부서진 건물 파편과 조각난 나무들이 조용히 날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저 하늘 위를 떠돌아다니며 글을 읽던 지난 세월 동안 얻은 지혜가 있을 거야스쿠틀루그걸로 대답해 줘여섯 알리콘 자매들이 누군지 아니?"

 

"진지하게 하는 소리야?" 여자는 우습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키며 스파이크의 녹색 목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유치원에서 배웠던 것들을 다시 말해 달라는 거야?"

 

"괜찮다면한 번 어울려 줘." 스파이크가 반쯤 웃으며 대답했다.

 

갈색 몸을 한 여자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그녀는 보이지 않는 책을 다시 훑기라도 하듯 진홍 눈을 움직이면서무표정한 얼굴로 잿빛 공기를 향해 말했다. "여섯 알리콘 자매란다른 포니들도 알다시피자신의 남편이자 천마天馬였던 콘수스Consus의 죽음으로 인해 제 1시대가 종말을 고한 뒤 있었던 우주로의 대이동 때 별들로 승천한 에포나Epona 여신이 낳은신성한 혈통을 물려받은 여섯 딸들이야."

 

"그 여섯 알리콘 자매란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지......?"

 

스쿠틀루는 잠깐 동요하더니곧 흔들리는 스파이크의 어깨 위에 엎드려서는 단조로운 어조로 계속 읊어 나갔다. "번영을 관장하는 두 여신께서는 각각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루나 공주님으로대지에 남아 이퀘스트리아의 땅 위로 해와 달을 띄우고 지우는 역할을 하셨어다른 네 분 공주님께서는 제 2시대 중까지는 남아 계셨지만곧 자신들의 위대한 어머니이자 지도자였던 에포나 여신의 뒤를 따라 떠나가셨지하지만 그 네 분의 정수는 여전히 이 세계에 남아 있었어원소를 관장하는 두 여신은 대지의 공주인 엘렉트라Elektra 공주님과 천공의 공주인 네뷸라Nebula 공주님이시고남은 두 공주님들께서는 법칙을 관장하시는 분들이셨어길토핀Gultophine 공주님은 생명을 다스리셨고......"

 

"다른 한 분은?"

 

마지막 포니는 눈을 깜박이며 자신이 중얼거려 답한 말에 불현듯 호기심이 생겨 두 갈색 귀를 쫑긋거렸다. "엔트로파Entropa 공주님시간의 여신."

 

"이야그 분 역시 기억하고 있었구나." 가리워 보이지 않는 웃음이 지어져 입가를 구부렸다. "아직까지도 그 때 배웠던 걸 전부 기억하고 있다니 기쁜걸에버프리 숲 위를 가로지르는 집라인Zip line을 타고 집에 가겠다고 도서관에 발길을 끊다시피 했던 건방진 꼬마와는 완전히 달라졌는데."

 

스쿠틀루는 한쪽 뺨을 가만히 스파이크의 등에 기대면서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스파이크너 혼자서만 변한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것 역시 중요하긴 하지만네가 엔트로파 공주님께서 시간의 구조를 관장하셨다는 걸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 또한 중요해." 드래곤은 여자를 태우고 부서진 포니빌 중심부를 지나며 말했다. "비록 자신의 어머니인 에포나 여왕처럼 우리 모두를 두고 영원히 떠난 여신이기는 하지만우리와 완전히 떨어져 계신 것도 아니야그분의 정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며 마치 법칙처럼그것도 단순한 법칙이 아닌 불변의 법칙으로 작동하고 있거든지나간 시간은 바뀌지 않아물론 대양을 건너가는 항해사들처럼 그것을 건너가는 것은 가능해하지만 그 대양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도 같은 이치지나처럼 시간역행의 흐름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통달한다 해도시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어결과적으로는 시간의 지배하에 놓인 인과법칙을 바꿀 수 있는 방법 또한 없는 것이지시간을 뒤로 돌려 돌아간다 해도재앙의 원인부터 차단하는 것은 결국은 시간역행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인 재앙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야절멸 사건에 개입해서 조작을 가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엔트로파 공주님의 정수와도 같은 그분의 신성한 법칙을 괴악하게 뒤틀어 버리는 일이란 뜻이야이미 일어난 일이 아무리 비극적이라도그 사실은 반드시 불변의 사실로 남아 있어야 해."

 

 “엔트로파 공주님의 법칙이 그렇게 신성하다 치자그러면 엔트로파 공주님은 대체 왜 자신의 자매들과 다른 모든 포니들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걸 알면서도 그냥 둔 건데?!” 스쿠틀루가 갑작스레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를테면 우리같이 살아 있는 것들이 멸망할 운명이었던 이퀘스트리아를 대신해 시간에 간섭해서 절멸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걸 원하는 게 정상 아냐?”

 

 “아주 훌륭한 질문이야.” 스파이크가 머리를 숙여 보였다흔들리던 어깨가 걸음을 옮기던 몸이 멈춤과 동시에 요동을 멈추었다. “스쿠틀루앞을 한번 봐우리가 어디 와 있는지 알겠어?”

 

스쿠틀루는 별 걸 다 시킨다는 듯 눈을 깜박이며 네 발굽을 딛고 일어나 그의 목을 따라 몇 미터 종종걸음으로 올라갔다여자의 시선이 스파이크의 머리 위로 돋은 녹색 가시와 포개지자마자그녀는 얼어붙었다여자가 본 것은 둘 앞으로 펼쳐진 칙칙한 흰 비석들이포니빌 중앙부 지표면이 뒤집히며 드러난 짙고 검은 흙 위로 얼룩처럼 곳곳에 박힌 모습이었다재앙이 몰고 온 공포가 고향 땅을 기반부터 뒤흔들었는데도어릴 적에도 몇 번 가 보지 않았던 공동묘지가 놀라울 정도로 잘 보전되어 있는 모습이 여자는 슬프기도 했고또 놀랍기도 했다.

 

 “이퀘스트리아도 언제나 죽음이란 게 있었지.” 그녀는 안개 섞인 공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이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스파이크엔트로파 공주는 왜 죽음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거야?”

 

 “어쩌면 영혼들이 저 너머로 나아가는 일을 관리감독하는 일은 길토핀 공주님의 역할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스파이크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엔트로파 공주 자신은 질서의 여신이기도 하지만동시에 중립의 여신으로도 서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이유야 뭐가 어쨌건우리는 엔트로파 공주님의 진의……라 해도 결국 우리가 가진 죽음의 운명밖에 강조하는 게 되지 않는 그게대체 뭔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지약학적 재능을 타고난 어스 포니들과 온갖 신비한 마법을 부릴 수 있던 유니콘들이 수백만 년 동안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분투했지만그 누구도 죽음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어그런데 말이야저 비석들은 불멸의 운명을 타고나 지금까지도 여기 서 있지.” 그는 몸을 돌리며 시선을 돌려 흐릿해진 녹색 눈동자로 어깨에 앉아 있던 스쿠틀루를 바라보았다. “나도 옛날의 그들처럼 삼백 년 동안 가능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연구를 거듭하며 시간의 흐름을 바꿀 방법을 찾아봤지만그들과 그들의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실패하고 말았지.”

 

 “적어도 스파이크 넌 시도라도 해 볼 수는 있었잖아?” 스쿠틀루가 스파이크를 마주보며 말했다. “네가 재앙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좋아인정해하지만 지금은제 4시대인 지금이라면 넌 역사를 바꾸려고 해 봤어야 한다고!”

 

 짚어 볼 건 다 짚어 보는구나.” 스파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는 공동묘지를 바라보던 몸 방향을 돌려 등 위에 포니를 얹은 채 포니빌 깊은 곳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스쿠틀루난 실험을 했어여섯 번째일곱 번째 시간 역행을 하면서시간 역행 전에 내가 했던 것들을 전부 다 부수는 것으로과거의 나의 개입이 현재의 내 상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지알아낸 거라곤 내가 벌인 일들과과거의 내가 살던 바로 그 자리와의 아이러니한 연결 같은 것까지 전부 우연의 형태로 없던 일이 되어서과거의 내가 보았던 대로 돌아갔다는 것뿐이었지.”

 

 “그 실험 말인데소통 같은 건 없이 한 거였어?” 스쿠틀루는 슬슬 아파 오는 머리를 문지르며 되물었다. “그러니까머리 아파과거의 너와 대화를 해 보려는 시도 같은 거 한 적 없어?”

 

사실을 이야기하자면해 봤지.”

 

포니는 놀란 눈치였다여자는 다급히 물었다. “어땠어?”

 

 “물었던 말들과 되돌아온 답 전부를 기억하고 있긴 하지만지루한 이야기야시간을 거슬러 온 다른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 봤자오늘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이 망할 불변의 진실을 거스를 방법은 찾을 수 없었어그래도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그가 웃자 지난날의 어렸던 스파이크의 그림자가 그의 보라색 비늘 위로 잠깐 비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네 나이의 두 배가 된 다른 너와 숨바꼭질을 해 볼 때까진 오래 살았다는 말은 하면 안 돼정말.”

 

그래서그걸로 끝이야?” 스쿠틀루가 풀이 죽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똑같은 실험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도달한 결론이우리가 해야 할 일이 이거란 말이야그럼…………그 재앙을 약간이나마 바꾸는 게 가능할까스파이크아니면 내가 조금이라도 바뀌는 게 가능할까내가 가진 포니의 정수가 너보다도 훨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랬잖아시간이 나 자신까지 바꿀 수 없다는 법은 없잖아어쩌면—“ 여자는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 스파이크의 모습에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계산한 것들과 시험한 것들그리고 실험한 것들은 설명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함께 겪을 수는 없는 일이야스쿠틀루적어도 직접적으로는 말이지.” 스파이크가 나직이 말하며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건 나조차도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진실이라고 하면 충분하겠지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고과거를 지켜볼 수도 있으며 심지어 과거의 일들을 돕는 것도 가능해하지만과거를 바꿀 수는 없어죽은 것들은 죽어 있어야 하고산 것들은 살아 있어야 해제 1시대가 열리기 전황혼뿐이었던 세상에 창조의 날이 꽃피며 본래 하나였던 세상이 조화의 힘과 불화의 힘으로 갈렸을 때부터 둘로 나뉜 세상이그때부터 항상 그 상태로 있어 왔어야 했기 때문이야.”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갈색 몸을 한 여자가 힘없이 말했다스파이크의 걸음이 인도한 곳은 완전히 쓸려나간 레스토랑 뒤편에 있었던이제는 뼈만 남은 오래된 정원이었다그는 스쿠틀루가 내려올 수 있도록 천천히 한쪽 팔을 내려주었고그녀는 쓸쓸한 걸음걸이로 거대한 버섯들을 지나쳐 가며 뛰어노는 망아지 몇몇을 조각한 상象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올라올 수 있는데바꾸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산 것들에게 끝내 들이닥칠 종국의 운명은 결국 죽음인데도어째서 꿈꾸고 욕망하며 사는 것일지 생각해 봤어?” 스파이크는 문답법식으로 되물으며 한때는 아주 크게 자랐었지만 이제는 타 버린 나무들이 이룬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게 바로 필멸자들이 짊어진 시험이지우리 역시 그러하기에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묻는 거야.”

 

말한 대로잖아.” 여자는 한숨지으며 부서진 대리석 벤치에 주저앉고 말했다. “확실히 불공평해.” 그녀의 진홍 눈동자가 눈 덮인 땅을 쓸었고코에서는 콧김이 뿜어졌다. “스파이크내가 과거에서 얻어 온 거라고는 행복했던 기억들과 후회가 전부야한때 살아 있던 세상에서 나 또한 살아 있었다는 걸 생각나게 하니까 그 기억은 행복한 거지그럼에도 후회스럽다는 건기억은 단지 기억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야이제 다시 만났는데지금 나보고 하는 말이라는 게 그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다는 거야대체 왜 내가 그러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한 건데적어도 내가 마지막 포니가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이나마 있었다면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을 거야내게 닥칠 미래는 똑같고전부 죽어 있을 거라는 것 또한 똑같아과거는 아무 의미도 없어이제.”

 

그런 대답이 나올 정도의 질문을 하진 않았는데 말이지.” 스파이크는 여자를 보고 천천히 웃어 보였다웃는 얼굴과 밖으로 흐르는 숨결에 알 수 없는 자부심과 감탄이 뒤섞여서그녀의 심지까지 흔들어놓고 있었다. “과거에 수많은 답이 있으니무의미한 것은 아니야.”

 

그 답이란 게 뭔데?”

 

그것들이 답이 될 수 있는 질문들은내가 생각하며 보낸 삼백 년과 네가 꿋꿋이 살아 나간 이십오 년 동안 잊혀진 것들이야.” 그는 눈을 가늘게 하며 깊은 저음의 목소리로 물었다. “절멸은 왜 일어났을까무엇이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루나 공주님의 생명을 앗아갔을까누구라도 다가오는 재앙을 예감한 이는 없었을까포니 종족 전체가 사멸했는데도어떻게 산 것들이 아직까지 살아 이퀘스트리아 왕국의 그림자 속을 떠도는 걸까?”

 

넌 생각 같은 거 잘 하잖아스파이크.” 스쿠틀루가 나직이 말했다. “그 뭔가가 포니의 정수를 직접 공격하면그 포니가 재가 된다고 치자그런데 그러면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걸 설명할 수 없어.”

 

설명할 순 없어도답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 스파이크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모두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하지만 그러려면 내가 할 수 없는 여정을 떠나는 용감한 시도를 거쳐야 하지넌 할 수 있어스쿠틀루과거엔 단지 기억과 후회만 있는 게 아냐내가 할 말인진 모르겠지만거기엔 답 또한 있어하지만 무엇보다도치유가 될 거야.”

 

치유?” 스쿠틀루가 한쪽 눈썹을 치켰다여자는 씁쓸하게 혀를 한 번 차며 고개를 흔들고는 고개를 들어 고대의 유령처럼 죽은 세상 위를 떠도는 희미한 황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내가 치유사나 뭐 그런 것처럼 보이는 건가?”

 

무엇이든 시작점이 있는 법.” 스파이크가 말했다. “널 치유하는 게 아니라이퀘스트리아를 치유하는 거야.”

 

여자의 귀가 쫑긋 섰다그녀가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이퀘스트리아를 치유하다니그게 무슨 뜻이야스파이크?”

 

무엇이번영의 여신들의 생명마저 앗아간 재앙을 일으켰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그러면 세상에 남은 상처를 다시 고칠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할지 몰라포니 문명은 영원히 사라지겠지만적어도 내가 좀 전에 네 혼을 빼놓았던 멋진 정원을 만들 수 있었듯이 죽음과 어둠만이 드리운 이 세상에 다시 빛을 인도할 방도를 찾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해와 달을 다시 띄울 방법이 분명히 있다는 말이지.” 스쿠틀루가 큰 소리로 중얼거리며 멍한 눈으로 주변 정원을 둘러보았다. “이퀘스트리아의 원주민들이 없어진…… 찬란한 이퀘스트리아가 되겠군.” 여자가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 우리 둘만으로 정말 가능한 일인 것 같아스파이크?”

 

좀 전에 말했지만너도 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어.” 그가 웃으며 말햇다.

 

여자는 신음했다. “스파이크이건 아냐내가 낄 판이 아니라고.” 그녀는 대리석 벤치 위로 엎어지며 한숨지었다. “지금도나중에도앞으로도.”

 

 “아니라니?” 그는 고개를 여자 쪽으로 돌려 그녀를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넌 똑똑하고 영리한데다 책임감도 있고 마음씨도 상냥해스쿠틀루비록 거칠게 살아오며 갈기에 꼬리까지 죄다 밀어 버렸지만그와 동시에 시대에 걸쳐 사랑 받았던 너희 종족의 전부라고이십오 년 동안의 비극과 고통 때문에 가능성을 포기하지 마넌 마지막 포니뿐만 아닌포니의 전형이기도 하니까.” 스파이크는 우울하게 고개를 돌리며 긴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널 과거로 돌려보내면 이퀘스트리아의 잔해에서 낮과 밤까지 앗아간 저주를 물리칠 힘이 생길 거라 진심으로 믿는 것 같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스쿠틀루그럴 거라 믿지 않아하지만네가 마지막 포니라는 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어너 역시 너희 친구들과 네 선조들친척들이 그랬듯 언젠가 죽음의 운명을 맞을 것이기 때문에네가 죽기 전에 네게 생명을 주고목적을 주고후회가 아닌 희망의 기억을 주어 지금 너처럼 강인한 이를 만들어 준 바로 그곳으로 돌아갈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냐?”

 

"나로선 뭐라 할 수가 없어스파이크." 답을 쥐어짜내던 여자의 목소리는 거의 질식한 소리와 같았다. "내가 추도문을 써야 하더라도한 줄 추도문 없이 빈곤한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네 부탁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수가 없어내가 무엇을 하든지결국 내 최후와 함께 종말은 오고 말 테니."

 

"그렇게 답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대신 다른 충고를 해주지." 그는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나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포니빌을 떠나."

 

여자는 몹시 당황해 눈만 깜박여댔다. "?"

 

"떠나." 그는 고개를 돌려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계류해뒀던 네 멋진 비행선하모니 호를 다시 띄우고네가 늘 해 왔던 것처럼 죽음의 땅 위로 떠다니는 구름 위보다도 높은 곳을 다니다 오라고지난 이십 년 동안 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다 오란 말이야하지만적어도 다음 폭풍이 완전히 지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마폭풍이 지나고 나면...... 네가 돌아오고 싶을 때언제든 다시 돌아와서 내 불꽃을 타고 세상에 죽음이 내리기 전 날들로 거슬러 올라간 뒤라면함께 그 날들을 위한 추도문을 쓸 수도 있을 거야스쿠틀루." 그는 따뜻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할래......?"

 

마지막 포니는 자기 앞에 선 오랜 친구이자과거의 보라색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선 꿈 속의 망령을 되쏘아봤다그리고 아주 잠깐시야에 눈발이 흩날리지 않던 시간 동안그녀가 바라보던 그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닌 밝은 보라색 눈동자와 분홍 갈기를 흩날리는 작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쿠틀루의 얼굴에 아이 같은 미소 같은 것이 띄워졌고이내 그녀가 대답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