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이 흘렀다. 뭉게뭉게 피어 떠다니는 회색 구름 어딘가, 하모니 호 내부에는 우울한 곡조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옥타비아의 곡이었다. 스쿠틀루의 등 뒤로는 가끔씩 탁탁거리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놓여져 있었고, 그녀는 작업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두 발굽이 긴 총신 위로 휘감겼다. 포니빌 시청 깊숙한 곳에서 찾아 온 라이플은 여기저기 망가져 있었다. 라이플을 조금 어설프게나마 고쳐 볼 심산이었다.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아름다운 선율이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라이플을 고치다 말고 선반에 매달린 흐릿한 거울을 올려다보았다. 선반에는 다양한 색의 보석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거울은 왼쪽 윗부분만 닦여 그 부분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거울을 뒤덮고 있는 칙칙한 안개 같은 얼룩 너머로, 33살이 된 암말이, 갈색 솜털과 지친 보랏빛 눈을 한 암말이 수줍은 듯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눈을 찡긋하자 거울에 비친 그녀도 눈을 찡긋했다. 눈 아래로 마구 그어진 상처 자국들은 그녀의 멍든 얼굴을 따라 귀까지 그어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곁눈질로 자신의 목을 바라보았다. 전등 빛이 비치는 선실의 공기에 입맞춤하듯 연보랏빛 갈기가 거칠게 자라 있었다. 연장 달린 팔찌를 찬 발굽을 갈기 위로 슥 훑어 보았다. 어느 정도 자랐는지 결이 느껴졌다. 마치 진분홍으로 빛나며 우아하게 흔들리는 죽음의 장막이 자기의 호리호리한 몸에서 태어나고 있는 것 같다, 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거울 위에 비치던 스쿠틀루의 모습 위로 어린 시절의 스쿠틀루의 모습이 겹쳐지며 사라졌다. 오렌지색 솜털은 투박한 갈색의 뻣뻣한 털로 바뀌어 버렸고, 보랏빛으로 빛나던 눈동자는 어두운 붉은색으로 퇴색해 버렸다. 텁텁한 공기는 말라비틀어진 나비의 몸뚱이를 담은 표본진열대처럼, 그렇게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한숨지었고, 그 순간 잘 돌아가던 음반은 탁탁거리면서 곡의 최후반부로 넘어갔다. 그녀는 도로 반쯤 고쳐 놓은 라이플 위로 고개를 숙였지만,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그 모습이 맴돌고 있었다.
일지 번호 2,352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스쿠틀루는 이를 악물어 도끼 자루를 잡고 큰 기합을 내지르며 휘둘렀다. 뭔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2미터까지 자란 버섯이 쓰러졌다. 고운 잿가루가 흩날렸다. 그녀는 이 쓸데없이 크기만 한 버섯에서 먹을 만한 부분을 뜯어내려고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그 새까만 버섯 안에서 시커먼 벌레 떼가 떨어져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 발굽을 마구 휘저었다. 마치 한 무리의 트롤들과 싸우는 것처럼.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내 눈을 다시 떴다. 눈 앞에는 그저 수많은 버섯들이 베어지기를 기다리며 서 있을 뿐, 트롤은 없었다. 벌레들이 모두 흩어지고 나서,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혼자가 되었다... 아니, 영원히 혼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버섯을 쳐다보았다. 버섯의 껍질을 벗기자 벌레들이 다 망쳐 놓은 안쪽이 드러났고, 그녀는 정말 짜증이 난다는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옆에 있던 버섯에 다가가 짜증난다는 듯 끙 소리를 내며 도끼를 휘둘렀다. 묶어 놓은 하모니 호의 그림자 밑으로, 다른 버섯을 자르러 종종걸음으로 가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제안을 하나 받았다. 말 그대로 과거로 돌려보내 줄 수 있다고 했다. 내 정신만은 아직 그곳을 기억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오랜 고단한 세월 속에 그곳을 잊은 지 오래다. 그래, 그 따뜻하고 아름답던 그 세계 말이다. 그리고 아직까진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자신이 없다. 말 그대로 과거로 간단 말이다. 오래 전에 죽어 버린 그 빌어먹을 과거로.
이 제안에서 가장 좋은 점은 내가 과거로 돌아가면 저 빌어먹을 놈의 황혼, 이 세계를 가득 메운 저 황혼을 더 안 봐도 된다는 것이다. 가장 안 좋은 건, 그 제안 그 자체다. 내 마음 속 깊숙히 나 곪아터진 상처들과 다시 대면해야 한다는 거니까. 잠깐만 생각해도 곧장 온 몸이 떨려오는 그 상처들과...
플러터샤이를 다시 만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애플잭은? 스위티벨이나 애플블룸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 아니면... 레인보우 대쉬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대절멸 이후에 나는 내 목숨을 두 번 빚졌다. 한 번은 레인보우 대쉬에게, 나머지 한 번은 스파이크에게. 스파이크가 고맙게도 포니빌에서 날 급습한 트롤 놈들을 짓밟아 한 줌의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리고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폐허에서 보낸 내 삶, 이제서야 알았지만 25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어렸던 나의 목숨을 구해 준, 한 푸르른 페가수스를 위해 살았던 것 같다. 내가 항상 믿고 따랐던 한 포니를 위해서. 이 말이 내가 스파이크한테도 똑같은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일까? 스파이크가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스파이크가 해 줄 수 있는 것에 비교해 볼 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얼마나 될까? 물론 그냥 해 본 얘기다. 나도 뭐든지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어느 날, 스쿠틀루는 마구 갈라진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위니페그 시내 안에서 쭉 뻗어 있는 버려진 아파트 단지들 중 하나를 골라잡아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새하얀 곰팡이가 핀 창문 너머로 회색의 빛이 새어 들어오자 몇몇 포니들의 시신이 거실 한가운데에 둥그렇게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그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가 발굽으로 그들의 뼈를 쿡쿡 찔러댔다. 이윽고 그녀는 필요한 물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유니콘 뿔 말이다.
그녀는 뼈 무더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신발에 내장된 칼날을 꺼내 두개골 깊숙한 곳, 유니콘 뿔 뿌리에 쑤셔 넣었다. 약 반 분이 지났을까, 스쿠틀루는 그제야 아직도 뿔을 뽑아내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창백한 황혼의 빛이 그녀를 비출 때, 그녀는 그제서야 목에 걸린 응어리를 삼킬 수 있었다.
떨리는 한숨과 함께, 쓰고 있던 고글이 제껴졌다. 그녀의 발굽은 눈물로 얼룩져 가는 눈으로 향했다. 그녀는 안쓰러운 눈길로 뼈 무더기를 바라보았다. 헐거워져 빠진 뼈 무더기를,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그 뼈 무더기를. 마구 널브러진 가정 용품들과 장난감들, 학용품들, 그리고 색 바랜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에는 영원할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이, 웃음과 생기로 가득한 그들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때 그들이었을 뼈 무더기와 가죽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나에게 남겨진 포니 문명의 마지막 유산들, 수십 년 동안 내가 잘 써먹던 그 유산들. 이제 그 유산을 도로 돌려줄 방법을 찾았지만, 안 그래도 별 지장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찬란하고 빛나던 이퀘스트리아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 해도, 포니들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난 그저 살아남기만을 바랬다. 아마 또 다른 생존자 포니들이 있다면 그들과 다시 만나길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스파이크 덕에 알았다. 내가 유일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포니라는 걸,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지금은 안다. 이 세상에 다시 빛을 가져오는 일을 한다고 치자. 살아남아 그 모습을 봐 줄 포니가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숲에서 나무 한 그루 빼는 거랑 똑같은 짓이다. 하지만, 그 '주제넘음' 이라는 건 그저 내 입장에서만 바라본 이기심이 아닐까?
스파이크나 내가 이 세계를 어떻게 추모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가졌다는 건, 거기서 뭔가 더 뜯어낼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우리만 이 세상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스쿠틀루가 레버를 홱 잡아당기자 무지개가 아름다운 광채를 뿜으며 돌 투성이 고원 위로 뻗어올랐다. 무지개가 지나는 자리는 마치 낫을 휘둘러 베어낸 들판처럼 갈라져 무지개에게 길을 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서 빛나는 황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여전히 잿가루와 눈이 흩날리며 내리고 있었고, 안개는 여전히 녹이 슬 대로 슨 철제 바리케이드를 휘감고 있었다. 하모니 호의 그림자 아래에서, 품고 있던 환상마저도 깨진 스쿠틀루의 모습이 보였다. 스쿠틀루는 무지개를 향해 걸어가더니 라이플에 등을 대고 앉아 왼발굽을 무지개에 가져다 대 보았다.
하늘은 그녀의 발굽이 붉은색에서 녹색으로, 남색으로 느릿느릿 갔다가 다시 붉은색으로 움직일 때마다 번쩍거렸다. 그녀는 순간 이 빛들이 서로 부딪치며 떨리다가도 화염석이 내뿜는 빛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순간 지루해져서 고개를 쳐들고 한때는 소중히 여겼던, 반짝이는 무지개를 올려다보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랬다. 죽은 포니들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무지개 안에 담긴 희망의 의미를 읽을 존재가 딱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스쿠틀루 자신조차도 죽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이 무지개가 어디서 뜨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맨눈으로도 저 황혼 너머에서 무지개가 끝나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적 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과거를 맛볼 수 있었다. 무지개를 보았다. 진짜 무지개를. 무지개가 떠오른 곳이 어딘지, 그 마지막은 어디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상관없었다. 내가 알던 것처럼 무지개는 내게 희망을 주었으니. 나는 이제서야 희망이 어디서 나타나는지 정말로 알 것 같다.
모든 산 것들에게 희망은 고통이고 질병이다. 우리 포니들처럼 지성을 가진 생명체들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희망에 매달리곤 한다. 아마 공주님들이 살아 이퀘스트리아의 대지에 그 발걸음을 옮겨놓던 그 시절에는 희망은 쓸모있는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셀레스티아 공주의 불멸의 생명도 꺼져 버리지 않았는가? 셀레스티아와 루나 공주의 생명이 사라진 이 세상에 남은 거라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그림자 속에서 곪아 터지는 죽음의 땅뿐이다.
아마 그것도 순리였을 거다. 천체의 순환을 관장하던 공주의 죽음을 가져온 그 거대한 재앙도 이유모를 저주가 아닌 순리였을 거다. 스파이크가 말했던 것처럼. 공주님들은 그 재앙을 막기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을 때, 그제서야 그 절망스런 사실을 깨달으셨을 거다. 언제나 그렇듯, 생명이란 앞뒤가 안 맞는 존재였다. 설령 공주님들에게라도 생명은 그런 존재였다.
"마운틴 오우거들한테 또 안 좋은 일이 생겼나 보던데." 코모도 드래곤이 에일 담은 술잔 위로 말했다. 그가 쓴 고글에M.O.D.D.의 전등 빛이 튕겨져 나갔다. 그는 맥주를 한 모금 삼키고는 이내 트림하며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밸리 오브 주얼 동쪽에, 걔들 화약 창고가 있지 않던가. 거기에 불이 났다는군. 터지는 소리가 아마 저기 북쪽 산맥지대까지 퍼졌을 거야. 듣기로는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지른 것 같다는데 말이지."
"파이어 오우거 놈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지." 다이아몬드 독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 전쟁에선 그 무자비이이이한 개새끼들이 승리할 거야! 그 개새끼들은 자비가 없으니까 말이지!"
"오우거톤 산을 차지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하!" 테이블에 앉아 있던 고블린이 툴툴대며 입을 열었다. 그는 조그마한 손에 들린 술잔을 휘휘 돌려 보고 있었다. 그의 구겨진 얼굴은 독기를 품고 있었다. "파이어 오우거나... 마운틴 오우거나... 거기서 거기인 놈들이잖아! 인정머리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어미도 없는 노예상인 아니냐고......"
"하하!" 코모도 드래곤이 히죽히죽 웃었다. "자네 얘기가 좀 통하는데 그래!"
"그렇지 뭐. 그리고, 네놈은 프로펠러 속으로 던져서 갈아 버려야 할 자식이고!" 고블린이 으르렁대며 코모도 드래곤의 머리를 향해 술잔을 거칠게 던졌다.
"아악!" 도마뱀은 피를 흘리며 꼬리를 둥글게 말더니 스프링처럼 쭉 펼치며 뛰어올라 고블린을 덮쳤다. 둘은 이내 테이블을 박살내며 대판 싸우기 시작했고, 다이아몬드 독은 의자에 기대 앉으며 술잔을 들고 껄껄 웃었다.
M.O.D.D. 건너편에선 마지막 포니가 바에 힘없이 걸터앉아 있었다. 스쿠틀루의 지친 진홍 눈동자가 체크무늬 카운터 위 얼룩들을 훑으며 지나갔고, 피트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그는 멀찍이서 대판 싸우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저 세 놈 중 하나가 얼른 좀 뒈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원숭이 신께 기도라도 드려야겠는데... 도무지 한 놈을 고를 수가 없단 말이야. 고르기만 하면 참 행복할 것 같은데 말이지." 피트는 잔에 거품 이는 음료를 가득 따르더니 스쿠틀루를 보며 히죽히죽 웃어 보였다. "내가 저 바깥 황무지에 나가 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평화롭게 조용히 살겠다고 꿈틀대는 것들도 다 죽여 버렸을 테니까."
"그 대신 네 술집에 오는 작자들을 술로 죽이잖아." 스쿠틀루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아직 네가 안 죽은 걸걸?" 피트는 스쿠틀루의 옆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술잔을 밀어 주며 말했다. "한 잔도 안 마셨으니 말이지." 그는 넝마 조각 같은 헝겊에 털 난 손바닥을 닦으며 다 빠져 가는 눈썹을 치켰다. "그건 그렇고 하모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아직도 여기 처박혀 있는 거야? 연료 값은 다 치르지 않았어? 평소 같았으면 벌써 네 털털대는 고물 비행선 안으로 휙 들어가서 진작에 여길 떴을 텐데."
스쿠틀루는 길고 짙은 한숨을 뿜어냈다. "사실, 갈 곳이 없어졌어, 피트."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좀 전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을 쳐다보았다. "찾으러 다닐 것도 이제 없고..."
"신경을 긁는 것 같아서 미안하게 됐지만 하나 묻지, 네가 어디 갈 곳이라도 있었나?"
스쿠틀루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로 피트를 쏘아보았다.
피트가 실실 웃었다. "완전히 개판이 된 세상이지만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은 있어. 네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말이지. 아, 내 말은 이거야. 하모니, 이제 정말 네가 빙빙 돌면서 쫓아다닐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냐고 묻는 거지. 내가 잘 못 들었으면 좀 고쳐 주고."
그녀가 콧김을 뿜었다. "피트, 얘기 좀 해 봐..." 그녀가 바에 기대며 가늘게 뜬 눈 사이 진홍 눈동자로 피트를 바라보았다. "동생이 열한 놈 있다고 했지?"
"슬프게도 말이지."
"너한테 어딘가로 날아갈 만한 비행선이 한 척 있다고 하고,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 동족이 열하나 있다고 하자. 그럼 행운이라고 생각하냐?"
"천박한 만큼이나 흥미로운 말인데 그래. 그래, 네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거기야?"
그녀는 침을 삼키고 말했다. "피트, 네가 마지막 남은 원숭이라고 하자, 그럼 어떻게 할 거야?"
피트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자 그의 코가 파도처럼 움직였다. 슬슬 머리가 벗겨져 가는 원숭이는 헝겊을 내려놓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스쿠틀루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죽어 버릴 거야, 하모니." 피트가 중얼거렸다. "나 혼자서, 내가 죽고 싶은 방식으로 죽을 거야.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말이지." 그의 짝눈이 술집 안을 느릿하게 둘러보며 술 취한 중생들과 비참한 얼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바깥에서 스며 들어오는 거대한 회색 안개로 향했다. "봐, 저게 어디 살 가치가 있는 모습이라 생각해?" 그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며 말했다. "언젠가 우리 모두 다 죽어 버릴 거야. 마지막에 웃는 자는 저 잿가루가 되겠지."
피트는 빈 잔을 올려둔 쟁반을 하나 들고 바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요령은 이거야..." 피트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과 함께, 모든 걸 끝내는 거지."
그리고 내가 모든 일이 무의미하다고, 어두운 폐허 속을 뒤지면서 내가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더 암울하고 절망적인 모습을 봤을 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했을 때, 왜 난 내 머릿속에 그 무지개를 그리지 못했을까?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본 그 무지개를, 왜?
만일 희망이 질병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나를 고통과 나 스스로의 파괴로 몰고 간다고 하면, 나는 왜 아직도 희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왜 희망은 나를 배고픈 흥분 속으로 데려가는 걸까? 왜 그 빌어먹을 희망이란 놈은 날'기쁨'과의 경계로 몰아가는 걸까?
"하모니 아가씨, 우째 그리 축 말어져 계슈?"
(역주: 늘어지다+말(馬)을 합성.)
스쿠틀루의 두 진홍색 눈동자는 귀찮은 듯 녹색 연기 안을 향했다. 두 눈동자는 흔들림없이 똑바로 그 안을 향하고 있었다. 옆쪽에서 뭔가 발을 질질 끌며 걸어왔고, 이윽고 털이 복슬복슬하게 난 자그마한 손이 그녀의 얼굴 앞에서 흔들렸다.
"저기유? 아가씨? 아가씨는 언제나 환영이어유. 아까 그건 그냥 오래된 이퀘스트리아식 농담인디, 아닌가 봐유? 우째 그리 축 늘어져 계신 거유, 포니 아가씨?"
그녀는 억지로 기운을 냈다. 그녀는 장사치의 비행선 안을 쭉 곁눈질하다가 그 다람쥐를 향해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 미안, 브루스. 그냥 생각할 게 좀 많아서 말야.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제안하시려고?"
"포니 아가씨는 그냥 생각할 게 많으신가 봐유. 브루스는 아주 그냥 배가 다 아플 정도여유. 아주 그냥 속이 통째로 뒤집히는 것 같다니께유. 이쯤 됐으믄 담배 정도는 그냥 넘기실 수 있쥬? 아녀유?" 브루스는 쓰고 있던 녹색 고글 아래로 낄낄대며 웃더니 시가를 하나 물고 불을 댕겼다. 그들의 비행선들이 서서히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브루스는 계속해서 가죽 몇 장을 보여 주며 말했다. "장당 40조각여유. 이게 뭐냐믄, 이중으로 강화된 드래곤 가죽여유! 얼룩말 양반들이 살던 데에 괜찮은 게 몇 장 남았더라구유."
"아냐, 그건 필요 없어!" 그녀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창고 너머로 건너갔다. "브루스, 제안은 고마워. 나도 슬슬 새 방호복을 만들 때도 되긴 했는데... 너만 괜찮으면 드래곤 가죽 말고 다른 건 없나 해서."
"아가씨, 그 이유라도 말씀 좀 해 주시쥬. 아가씬 드래곤들이랑 데이트라도 할 생각이셔유? 설마유!" 브루스는 두 손을 부딪혀 딱 소리를 내면서 두꺼운 가죽들을 한 무더기의 조그마한 철제 장식품 너머로 던져 버렸다. 브루스는 이내 비행선 벽을 한 번 걷어찼다. 그러자 방호복들이 쓱 미끄러져 그의 손에 쥐어졌다. 브루스는 투덜대면서도 덜덜 떨리는 두 팔로 방호복을 들어 보여 주며 말했다. "아으, 무겁기도 하구만. 산양 제품 중에서도 최고급이유! 제련된 티타늄으로 만든 거유! 브루스가 약속하는데 말유, 헥헥, 그 불 뿜는 날개 달린 비암 애들이 아무리 불 뿜어봤자 이건 못 뚫을 거유. 아이고! 아녀유. 아가씨, 이거 녹이 너무 많이 슬었슈. 어우! 헛수고만 했네유. 아가씨 갈기마냥 강철 같으면서도 이쁘장한 물건이 어디 있을 거여유."
"진짜 날 위해서 최선을 다해 주는 건 고마운데, 브루스. 솔직히 말하면 난 그냥 잠깐만 물건을 보러 돌아다니기만 하면 돼. 그럼 아마... 내가 찾는 물건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은 다시 한 번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브루스의 선반들로 향했다.
녹색 고글을 쓴 다람쥐도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마를 벅벅 긁더니 강철 선반 위로 올라가 척 앉더니 말했다. "아가씨가 필요한 그 물건은 브루스가 보기엔 천금을 갖고 와도 못 구할 물건일 게 틀림없어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뺨을 몇 번 쓱쓱 비비더니 씩 웃었다. "혹시 폭풍 때문에 그러시는 거유?" 브루스는 헤헤 웃더니 근처의 창문 바깥을 태연히 가리켰다. 회색 구름은 갈수록 어두워져 갔고, 성긴 구름들은 슬슬 모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폭풍 주기를 맞추고 있었다. 몇 줄기 번개의 섬광이 구름 사이로 번쩍거리며 빛났다. "그러시다면 아가씨는 그냥 돈 걱정만 하시면 되셔유. 브루스가 브루스 고향에서 끝내주는 피뢰침을 구해 왔거든유. 그 어떤 폭풍이 와도 번개는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이 말여유. 아, 값이 쌀 거란 생각은 하지 마셔유!"
"그 문제가 아냐, 브루스. 난..."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불편한 듯 괜히 자세를 고쳤다. 그녀는 브루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맨눈이 담배 연기로 가득한 고글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브루스, 파일럿 대 파일럿으로 뭐 좀 물어 봐도 될까."
"포니 아가씨가 물어 보시면 브루스는 아마도 그 답을 드릴 수 있을 거여유. 아마도. 하모니 아가씨만 원하신다면 말여유."
그녀는 호칭은 무시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지금, 만족하고 있나 해서."
"아하. 아가씨랑 거래하는 거 말여유? 어유, 당연하쥬! 브루스는 항상—"
"아니, 아냐. 내 말은, 네가 지금 뭘 하는가가 아냐." 스쿠틀루가 진짜 뜻을 밝혔다. "네 삶 말야, 브루스. 네가... 이런 삶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지, 그걸 묻는 거야. 만일 네가... 네 삶을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밝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럴 능력도 있다면, 어떻게 할 건지 묻고 싶어."
"흐으음..." 앞니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자란 장사치는 그의 뺨을 비비며 담배만 쭉쭉 빨아댈 뿐이었다. "그런 철학적인 문제는 브루스가 대답하기 어려워유. 은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괜히 머리만 아프잖아유. 안 그려유?" 브루스는 우거지상을 하고 낄낄거리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브루스 인생이 아주 끔찍하다고 하면유, 아마도 그게 브루스가 늘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이유일지도 몰라유? 헛헛헛!"
그녀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만일 네가 모든 걸, 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 자신이 있어?"
"산다는 건 사는 거유. 가끔 삶이란 지나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는 법이유." 그는 녹색 연기로 가득한 비행선의 조종석에 앉아 다리를 꼬며 편하게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그래도 브루스는 말여유, 이 모든 게 바뀔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유. 브루스는 그저 있는 그대로가 좋구유, 있는 그대로라는 데 항상 감사하고 싶어유. 브루스는 그러고 싶어유." 브루스의 에메랄드 빛 렌즈 밑으로 따뜻한 웃음이 어렸다. "우리 포니 아가씨처럼 말여유! 브루스 삶이 바뀌면 브루스가 아가씨랑 못 만나지 않겠어유?"
그녀는 슬픈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거야. 브루스. 삶에서 없어선 안 될 게 바로 친구지."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이걸 물어 본 이유도 그거야. 이 세상의 너무 많은 마법이 사라져 버렸어. 끝내는 모든 마법이 사라지고 말겠지."
"흠..." 브루스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담배를 피웠다. "차라리 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새 친구를 사귀시거나..."
"...아니면 옛날 친구랑 보내거나." 그녀는 낮은 숨을 내쉬며 말을 더했다.
"그건 또 무신 소리여유, 하모니 아가씨?"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엄청난 소리가 천공을 가득 채웠다. 두 비행선이 마구 흔들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어유, 폭풍이 갈수록 거세지는구먼유!" 그는 조종석에서 거의 튀어나가듯 내려와 창문으로 달려갔다. 창문 밖을 바라보는 브루스의 얼굴은 잔뜩 우거지상이 되어 있었다.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구유! 아가씨 비행선이 얼마나 더 버틸지 몰라유!"
"아마도 난 가능할걸." 그녀는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한쪽 구석에 쌓인 갈색 가죽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거, 다섯 개만 가져갈게."
"장당 20개유."
"좋아."
"거래 성사된 거여유, 하모니 아가씨!"
물건과 은을 교환한 뒤, 그녀는 재빨리 두 비행선을 잇고 있는 철제 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바람이 불어오는 출입문 근처에 서서 말했다. "아, 브루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내 이름은 하모니가 아냐."
"알어유, 안다구유! 그 얘기는 진작에 했잖아유! 이름도 안 알려 줬잖유! 그럼서 뭘 그걸 또 따지고 계신 거여유—!"
"스쿠틀루."
그는 휙 돌아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또 뭐여유?"
"내 이름이 스쿠틀루라고."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그리고...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브루스."
다람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철자를 하나하나 다 외운 뒤, 그는 웃으며 피우던 담배를 잘라 비행선 벽에 휙 던졌다. "삶이란 꽤 살 만한 것 같아유. 안 그려유?"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잘 가셔유, 스쿠틀루 아가씨! 황혼의 폭풍은 친구가 없으니께 조심하시구유!"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뺨에 남은 온기가 서서히 스러짐과 동시에, 그녀는 하모니 호 안쪽에 닿았다. "나도 알아..."
마지막으로 스파이크를 보고 나서, 나는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회색의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이상할 정도로 정겨운 포니빌의 폐허를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난 아직도 스파이크의 제안에 대답할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게 포니빌은 또 하나의 안식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포니빌의 폐허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여전히 고통스럽다. 브루스가 나에게 던진 몇 마디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뭐 별로 깊은 뜻을 담아 한 이야기는 아니었겠지만. 삶이란 때로는 '지나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다, 고 했었지. 하지만 내가 창문 밖을 내다볼 때마다 보이는 건 황량하고 고독한 죽음의 땅뿐이다. 그 때마다 이런 애매모호한 말을 곰곰이 곱씹는 존재는 나뿐이라는 걸 깨닫곤 한다. 그저 내 마음을 좀 달래려고, 그래서 곱씹을 뿐. 바깥의 생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재뿐.
진실을 말하자면, 이퀘스트리아가 폭발해서 산산이 부서질 때, 그건 포니들의 잘못이 되었어야 했다. 어느 정도라도 포니들의 잘못이 되었어야 했고 어떻게든 포니들의 잘못이 되었어야 했다. 길다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과M.O.D.D.의 취객 대부분이 알고 있는 그것들, 최소한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것이다.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루나 공주님에게 닥친 그 끔찍한 일만 없었다면, 해와 달은 여전히 저 하늘 위에 떠 있었을 테니까. 이퀘스트리아는 오직 포니들만을 위한 땅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남은 유일한 페가수스란 사실은 어쩌면 이 세계에 다시 한 번 빛을 가져와야 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저 순진한 생명들을 억누르고 있는 영원의 그림자도 더 이상 '삶'이 부족하거나 지나칠 수 있는 산술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요할 수는 없을 테니.
지금부터 한 달 전, 이 일지를 기록하던 나는 이 엉망이 된 세계를 어떻게 할지, 전혀 재고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전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전에 보았던 이 세계, 무덤 같은 이 세계에 조금이라도 생기를 돌려놓을 수 있다는 걸. 내가 어쩌면 따뜻하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의 흔적을 이 하늘 위로 다시 드리울 수도 있다는 걸. 그 동안 나는 살아남은 포니들이 없다는 걸 은연중에 알면서도 살아 있는 포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희망을 담아 무지개를 띄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제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고, 브루스나 길다, 심지어 피트 같은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이게 이퀘스트리아를 좀 더 살기 좋게 바꿔 줄 수 있을까? 설령 헛된 희망이라도 지금의 추악한 모습을 딛고 좀 더 아름다운 새로운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스파이크나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그 모습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사회에서도 계속 찬란히 빛날 수 있을까?
마지막 포니가 된다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지금은 훨씬 더 힘들다. 지금 다가온 폭풍이 날 죽이지만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어수선한 내 머릿속을 정리할 생각이다. 이 일지에 또다른 일지가 적힌다면 그건 아마 다른 포니의 기록이 될 것이다. 스파이크가 시간을 초월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시간을 초월한 다른 포니일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바란다.
-기록 종료ㅛㅛㅛㅛㅛㅛㅛ
스쿠틀루의 펜이 일지 위로 지나가자 펜글씨가 일지 위로 서서히 번져 갔다. 하모니 호는 다시 한 번 덜커덕거렸다. 방 뒤쪽의 보일러는 비행선에 갑자기 닥쳐온 난기류를 버텨내며 오토파일럿 모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동력을 만들기 위해 계속 깜박거렸다. 선실 좌측에 설치해 둔 테슬러코일에서 스파크가 튐과 동시에 경보 벨이 미친 듯이 울어댔다.
스쿠틀루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일지를 탁 쳐 닫고는 작업대에서 재빨리 뛰쳐나와 비행선 안을 달려 조종석으로 뛰어들었다. 너무 서두른 나머지 엉덩방아를 찧으며 앉긴 했지만.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 부풀어오른 구름과 낙뢰의 거대한 파노라마가 유리창을 통해 비쳐졌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세계는 검은 구름의 그물로 스스로를 옭아맸고, 주기에 맞춰 온 폭풍은 이퀘스트리아의 천공 위를 거대한 소음으로 가득 채웠다.
스쿠틀루는 레버 몇 개를 홱 잡아당겨 마구 흔들리는 비행선의 방향을 바꾸면서도 번쩍이는 계기판을 화난 듯 째려보고 있었다. 조그마한 증기 파이프 하나에 문제가 생겼는지 붉은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경보음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비행선의 정교한 경보 시스템은 비행선 후방의 임시지지대가 위험할 정도로 느슨해져 있다고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폭풍 같으니. 요즘에는 원더볼트가 술 퍼먹고 공연하는 것마냥 하지 않으면 폭풍 하나도 제대로 못 견딘다니까." 그녀는 투덜대면서도 대롱대롱 매달린 체인핸들을 물어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체인핸들을 힘껏 잡아당기자 보일러가 부풀어 오르며 비행선 위 기낭에 증기를 마구 뿜어 주기 시작했다. 하모니 호는 느릿느릿 떠올라 바로 앞까지 다가온 폭풍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모니 호는 최대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아래로는 번개 치는 폭풍이 내려다보였다. 한 무리의 구름이 스쿠틀루의 눈앞에서 번개를 쏘아대고 있었다. 그녀는 으르렁거리며 맞받아쳤다. "아, 그래. 더럽게 퉁퉁하고 추잡스럽기까지 하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하모니 호는 마구 몰아치는 폭풍 위로 안전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하모니 호 위쪽, 페가수스 하나가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투덜대며 비행선 오른쪽의 다 헐거워진 리벳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불모의 땅 위를 뒤덮은 새까만 하늘은 그녀를 향해 마구 으르렁거리며 은빛 섬광을 마구 내쏘고 있었다. 흰 번개가 그녀의 빈 엉덩이를 비추고 지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리벳을 조여 놓으려고 열심히 돌리고 있었지만, 반대로 돌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심코 왼쪽 발굽으로 리벳을 꽉 잡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던 신음 소리는 격분으로 꽉 깨문 이빨에 가려 사라졌다. 그녀는 오른쪽 발굽으로 리벳을 강하게 한 대 후려쳤다. 리벳은 한 번 덜그럭거리더니 도로 느슨하게 풀어지고 말았다.
기운 빠진 한숨을 푹 내쉰 스쿠틀루는 고개를 비행선의 황동제 철판에 파묻고 그대로 있었다. 잠시 불어온 바람 속에 갈색 날개가 펄럭였고, 벼락을 칠 듯한 세상은 그녀에게 양칫물을 끼얹을 뿐이었다. 그녀는 하모니 호 중앙부에 매달려 조용하고 외롭게 흔들렸다. 차라리 그러고 있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녀의 진홍 눈이 열리자 영겁의 황혼이 머리 위로 걸려 있었다. 저 멀리 외로운 별빛들이 그녀를 향해 반짝거렸다. 살아 있는 것도 없고, 죽어 가는 것도 없었다. 이 세계에는 이제 진짜 빛이라는 게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밝음의 모방일 뿐이었다. 그래, 스파이크의 정원에 있던 셀레스티아의 거울 같은 것 말이다. 그건 거의 아름다움에 근접한 듯싶었다. 하지만 진짜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스쿠틀루는 멍하니 바라보는 것에도 지쳐 있었다. 이상한 평화가 그녀 안에서 격렬히 퍼져갔다. 저 한참 아래에서 마구 뒤끓는 폭풍처럼.
스쿠틀루는 렌치와 기타 공구들을 챙겨 비행선의 측면으로 향했다. 그녀는 날개를 펼쳐 하모니 호 아래로 수십 미터를 내려갔다. 어렸을 적에는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작정이었다. 그녀는 네 발굽을 성긴 구름 위에 디뎠다. 다리가 구름에 닿았다. 그녀는 새까만 구름을 디디고 섰다. 지난 25년 동안, 이 검은 구름들은 그저 구역질나는 시커먼 안개에 지나지 않았었다. 포니빌을 뒤덮고 있던 그 새까만 그림자와 다를 바 없었다. 황혼 빛이 비친 하늘은 어린 시절의 그 하늘같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고요하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스쿠틀루는 새까만 구름 위를 걸어갔다. 발굽을 질질 끌며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아래에서 번개 빛이 어두운 구름에 비쳐 구름을 밝혔다. 구름은 현란하게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며 스쿠틀루가 걷는 동안 스쿠틀루를 비추었다. 그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 눈을 꽉 감고 있었고, 얼굴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두 갈색 날개는 묵상하듯 펼쳐져 있었고, 몇 번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제 3의 눈을 떴다.
치어릴리 선생님의 학교 건물이 보였다. 적어도 그 새빨간 그림자는 볼 수 있었다. 학교 건물 너머로 상아빛 산들이 보였고, 물안개 낀 푸르고 투명한 호수에 그 모습이 비쳤다. 세계는 아름다운 풀빛으로 꽃피고 있었다. 그 동안 갈기를 거의 밀다시피 하고 지냈지만, 갈기가 다시 자라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윽고 갈기와 꼬리가 꽃피듯이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럽게 입맞춤하듯 자라났다. 흐릿하지만 꿈만 같은 정경에는 산 것들이 있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손을 더럽히는 것 대신에 부드러운 산들바람 속에서 팔짝거리며 춤추고 있었다. 그리고 꼬마들, 한 무리의 어린 망아지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와 같이 놀자고 말하고 있었다. 스위티벨의 뿔은 아침 안개에 반짝였고 애플블룸의 느릿한 웃음소리가 고요한 흥분과 함께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마치 폭포의 맨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아니면 에버프리 숲의 가장자리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길거리 음악가들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길거리에서 슈가큐브코너의 매끈한 나무 벽에 붙어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천둥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리며 그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탁 트인 황혼의 밑자락에서 그 시커먼 이빨로 잽싸게, 두려움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스쿠틀루의 진홍색 눈이 뜨였다. 두 눈은 눈물로 그렁그렁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언가 다른 걸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뿜어내던 뜨거운 증기보다도 더욱 뜨거운 증기가 하모니 호의 보일러에서 뿜어져 나오며 피가 터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로 그녀를 위협한다 해도 소용없었다. 25년의 세월 동안 그녀를 가두어 둔 날아다니는 감옥은 외로운 포니의 굳어져 버린 마음을 포악하게 때려 벼리고 있었다. 이 별의 썩어 문드러진 회색의 대지를 아무 목적도 없이 돌아다녀야만 했던 그녀의 마음을 날카롭게 벼리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모든 증오와 고통, 그리고 후회를 그 비명에 섞어 저 너머에서 너울거리는 회색의 지평선으로 소리쳐 보냈다. 그녀의 울부짖음은 이내 번쩍이는 번개로 구름마저도 겁주며 들려온 거대한 천둥 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그 소리에 온 이퀘스트리아가, 이 죽음의 땅이 마침내 그녀한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깨닫는 듯 했다. 그녀는 시간의 역사에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가능성을 품은 유일한 산 생명이었다.
비명이 그치고 난 뒤에도, 그녀가 옥죄여 오는 구름 속에서 비틀거리며 서 있는 동안에도, 그녀의 날개는 여전히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울음이 아니었다. 자조의 웃음도 아니었다. 그녀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스파이크의 연구실 천장에서 트와일라잇의 도서관으로 난 낙하문이 활짝 열렸다. 스파이크는 화학 실험대 위로 늘어선 비커 몇 개를 가지고 열심히 뭔가에 열중해 있던 참이었다. 페가수스 하나가 숨쉴 틈도 없이 홱 내려와 스파이크의 눈 앞에서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커져 있었다.
"스파이크. 과거로 가겠어!" 스쿠틀루가 말했다. "날 옛날로 보내 줘."
"스쿠틀루." 스파이크가 손가락을 들어 스쿠틀루를 가리켰다. "충분히 생각해 보기는 한-"
"생각할 필요도 없어." 스쿠틀루가 스파이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 그리고 난 이 미친 세상에 아주 학을 뗐다고."
스파이크는 조용히 스쿠틀루를 바라볼 뿐이었다.
스쿠틀루는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난 준비됐어, 스파이크. 난 준비됐다고. 날 과거로 보내 줘."
스파이크는 천천히 빙그레 웃었다. 스파이크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원한다면. 좋아. 보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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