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hortSkirtsandExplosions
The Bad Place
혹시 들어 본 적 있느냐? 귀 깊숙한 곳에서 들리는, 무엇인가 울리는 듯한 조그마한 소리 말이다. 쉬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는데,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변화하고, 끝내는 이 방의 벽과 타일 바닥까지 먼지 덮인 한 장 바닥처럼 만들어 버리는 그런 소리. 이동식 의료 선반을 밀며 다가오는, 간호사님의 우렁차게 질질 끄는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는 감쪽같이 사라지지. 의사 선생님이 예후를 보러 집에 잠깐 들르실 때는 한쪽 구석에 가 숨어 있다가, 의사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구렁이 담 넘듯 슬쩍 빠져나와 옆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귀울음 소리는 그걸 의식하든지 말든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점점 더 크게 울어댈 게다. 평생 동안 널 쫓아다니면서, 지금 널 괴롭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네 머리를 반으로 쪼개고 두 눈에서 눈물을 비틀어 짜낼 기세로 울어댈 테고. 내 장담하마. 제발 잠 좀 자자고 혼자서 악을 쓰고 소리치는 밤도 있었겠지. 그러면서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던 날들이 있었지?
음, 이 늙은이도 지금껏 그 소리를 들었으므로 안다. 아는 거라곤 이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밖에 없어. 이 소리가 숨기려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와서는 안 될 곳'이 어디인지를 안다는 뜻이지.
쉿. 숨소리 낮추거라. 우리도 소음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기억하거라. 병실 벽 너머에서도 들을 수 있을 게다. 누가 말하는 걸 듣는 귀는 절대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숨결과 심장 박동에 섞인 소음조차, 모든 산 것들이 탄생의 순간부터 타고난 소리에 섞인 소음조차 감지할 수 있어. 자, 가까이 붙어서 떨어지지 말거라. 우는 소리를 내서 소리를 죽일 게야. 지금부터 이야기를 하나 해 주마. 영원한 이야기라고 해둘까. 이 이야기는 계속해서 스스로 구전되어 온 것이란다. 천천히, 조용한 걸음처럼, 지금 내 입으로 전해지는 것처럼 언젠가 네 입으로도 전해질 날이 올 게다.
수십 년 전, 그러니까 이 늙은이가 너만한 어린애였을 때 일이다. 몸이 아주 안 좋았지. 클라우드데일의 안개를 헤치고 날아다니지도 못할 정도라는 게 판명되고 나서, 페가수스 요양병원에 입원당했단다. 지금 이 방만한 곳에서 종일 잠만 잤지. 그래도 혼자는 아니었단다. 다른 어린애들도 같이 있었으니까. 다들 하나같이 몸 어디가 약해서 입원하고 있었어. 솔직하게 말하면, 내 진단명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구나. 부모님께 여쭤 봐도,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 버리시기 일쑤여서 말이다. 두 분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만은 정확히 봤지. 마치 병원에서 보낸 시간들을 언급하게 되면 온갖 어두운 일들이 언급될 것 같더구나.
이야기로 돌아오자꾸나. 이 늙은이는 앞으로도 양반 되긴 글렀다. 애정 표현이라고 해둬야 할지, 내게는 '플러터샤이'란 이름이 주어졌단다.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해두어야겠지만, 그때까지의 삶은 항상 걱정스럽고, 수줍음도 많았지만 겁도 많았지. 입원실에서 보낸 기나긴 시간은 뼈가 약해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래 다른 친구들처럼 날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날개뼈가 약해져 있더구나. 입원실에 있던 다른 친구들, 더러는 나보다도 심각했던 친구들조차도 내 신세를 우스개 삼았지. 어린 나이부터 나는 평생 조롱거리로 살게 생겼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더니라. 그래 결국 침상 이불이라도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고, 그 안의 침묵과 그림자 속에 섞여 울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누구라도 내가 한밤중에 우는 소리를 들었을 테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 덕에 그 분과 만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클라우드데일에 무슨 전염병 같은 게 돌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 늙은이의 상상일지도 모르지. 언젠가부터, 갑작스레 병원에 환자들이 마구 몰리기 시작했더니라. 반대 방향 병동 건물에 격리 수용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노인 환자 몇몇이 우리 병동으로 이송되었단다. 간혹 한 침대에 둘 이상이 억지로 누워 잠을 청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지. 그 때는 잘 모르긴 했으되, 이미 그때부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터였는데 갑자기 그리 들이닥쳤으니 긴장증이 심각하게 도졌더니라.
헌데 이 늙은이와 같은 침상을 쓰게 된 노부인께서는 대단히 친절하고 점잖은 분이셨단다. 여러모로 이 늙은이의 조모님이 떠오르는 분이셨지. 병동의 다른 환자들보다는 몸상태도 괜찮으셨고, 내가 가만히 진정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도 했다. 그분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웃을 수 있었고, 흥얼거리는 소리로나마 들려 주신 감미로운 음악 소리는 마음의 양식이 되었느니라. 불이 꺼지고 나서 내가 기대어 울 수 있게 어깨를 내주신 분도 그분이었지. 한 주가 지나고 나서, 그분께만은 마음을 열고 내 이름을 말씀드렸다. 그러니 그분께서도 본인의 이름을 알려 주시더구나. 소프트 스텝이라는 분이셨니라.
소프트 스텝 부인과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단다. 그분께서는 많은 자손을 두셨더랬지. 이 넓은 세상을 둘러보시기도 했고, 세계 곳곳의 하늘을 돌아다닌 분이시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현명하고 차분해 보이시던 그 노부인을 볼 때마다, 주름진 피부 위로 매달려 달랑거리던 일종의 우울감이 느껴지곤 했어. 그분의 숨결은 두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만 같았지. 일종의 숨겨진 목소리 같기도 했다. 병동의 콘크리트 벽 사이를 메아리치는 그분의 목소리는, 그림자 속에 숨은 무엇인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기 위한 절박한 시도처럼 들렸어.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목소리는 다른 환자들이 일어나기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윽하고 낭랑했었다. 그분께서 왜 조용히 계시는 데 일종의 집착을 보이셨는지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누구라도 그러지 못했지. 어쩌면 내가 조용조용한 성격인 걸 알고 본인도 조용히 지내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노부인께서 곁에 계신 것만 해도 좋았으니까.
그렇기는 했으되, 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참으로 한없이 길었느니라. 어머님 아버님조차 지치셔서 더는 면회를 오지 않으실 지경이었지. 창문 바깥에서 태양을 바라볼 날이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 그곳을 내 죽을 자리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더니라. 그래 노부인을 볼 때마다 느끼는 그 석연치 못한 느낌을 가능한 숨기려고 하기는 했는데, 어쩌면 그분께서는 내 모든 감정들과 마음 가장 깊은 곳의 공포를 꿰뚫고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어린애란 세상에서 가장 속을 알기 쉬운 존재가 아니더냐.
그분께서 내 감정을 꿰뚫고 계셨다고 치면, 굳이 간을 보거나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는 게 되겠구나. 오히려 나를 즐겁게 해 주시려고 하실 수 있는 모든 걸 하셨으니까. 다른 병상을 차지하고 누운 포니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추측게임을 하기도 했고, 수수께끼를 내주시고는 실마리를 조금씩 놓아 주시기도 했었느니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가 되면 이불 밑 숨바꼭질을 했었지. 노부인께서는 항상 져주셨고, 덕분에 나는 일종의 승리감을 맛볼 수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노부인께서는 본인의 삶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 내 조모님의 웃음처럼 온기 가득한 즐거운 웃음을 웃으셨느니, 투명한 푸른 하늘로 첫 날갯짓을 쳐 날아가는 꼬마 페가수스가 있는 동부 지역의 청명하고 따뜻한 아침과도 같았느니라.
어느 날 밤, 노부인께서는 평소보다도 더 조용하게 계셨다. 나로 말하자면, 수심의 껍질에서 풀려난 지 석 주가 지나갔을 때쯤에는 딱 그 나이대 어린애처럼 변해 있었지. 번쩍 일어나서 노부인의 얼굴에 뺨을 비비며 어떻게든 웃겨 보려고, 어떻게든 수수께끼든 뭐든 이야기를 끌어내 보려고 애를 썼느니라. 나를 바라보는 노부인은 두 귀를 떨고 있었다.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저 그분의 얼굴을 보기만 했는데도, 무슨 소리인지는 대충 짐작이 되더구나. 노부인은 피로해 보였고, 얼굴에 진 주름살은 더 깊고 길게 패여 있었다.
그래,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하시더구나. 대뜸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 오면 뜬금없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 또래 애들에게는 더한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나 역시 심히 놀랐던 것 같구나. 그 이후 어떤 곤혹스러운 질문도 그보다는 덜 당황스러웠으니. 그저 노부인이 다시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행복하다, 고 대답했느니.
그러자 노부인께서는 웃음 대신 왈칵, 하고 눈물을 쏟으셨느니라. 그분께서 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니, 얼마나 속이 아팠는지 모른다. 그래 나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는데, 그러자마자 울지 말라고 쉿, 하는 소리를 내시고는 얼굴을 비벼주시더구나. 불안해할 것도 없고, 울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는 아직 남은 수많은 날들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시더니, 아직 너처럼 아름다운 빛이 잔혹하게 꺼지게 둘 수는 없겠다고 하셨느니라.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 봤지만, 노부인의 표정은 창 밖에서 달빛이 새어 들어와 그분만을 비추이는 것처럼 어두워질 뿐이었느니. 그리고는 내가 사랑한 그 웃음을 지어 보이며 놀이나 하지 않겠냐고 물으셨느니라. 숨바꼭질을 하기에는 좀 늦은 시간 같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그래도 그분을 즐겁게 해 드릴 수 있다면 상관없겠다 싶었다.
그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노부인께서는 씩 웃으시며 이불 밑으로 쓱 숨으셨느니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뻔했으니 그냥 나도 씩 웃었지. 이불이 주름진 곳에 계실 테니,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게야. 그래 사냥감을 천천히 추적해 들어가던 참이었다. 흡사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말이다. 다른 애들이 깨고도 남을 으르렁 소리도 곁들였느니라. 이제 슬슬 멈추시고 져주실 때가 됐는데 싶었는데도, 그러시질 않더구나. 그 때 이불이 만들어낸 검은 숲 속에서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느니라.
조그마한 페가수스 용사라도 된 양, 나도 꾸물꾸물 기어가서 노부인 쪽으로 향했느니라. 이불 밑을 헉헉대고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얼마 안 지나서 그분을 찾게 되었어야 옳았다. 그런데 몇 초는커녕 분 단위로 지났는데도 찾아지지가 않았다. 어린애들이 흔히 그렇듯, 혼자 신나면 시간 개념을 잃게 되지. 오 분이 넘게 지나고 나서야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던 게다. 이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하는 불안감이 천천히 닥쳐오더구나. 어깨와 날개가 축 늘어졌고, 이불은 더 무거워지고 그 안은 더욱 어두워졌느니. 그리되면 더워하는 게 옳지 않느냐. 땀을 뻘뻘 흘려야 옳지 않겠느냐. 그 안은 뜨겁기는커녕 한겨울에 간호사가 창분을 활짝 열어놓은 것마냥 찬기운만 엉겨 있었다. 그 와중에도 노부인의 속삭이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내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느니라. 이불 밑을 기어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라고 말이다. 그분의 음색은 한가운데에 금이 간 종처럼 공허해져만 갔지만, 여전히 고막을 때릴 정도는 되는 듯싶었느니. 그래 그분을 찾아 더욱 기어 들어가니 한기가 싹 가시더구나. 그분의 목소리에도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긴 했지만, 온기는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느니라.
이불 끝까지 기어가고 나니 침대 머리맡의 구리 골조에 발굽이 닿더구나. 절로 헉 소리가 나왔지. 처음 이불 밑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머리맡에서부터였고, 방향을 튼 적도 없었거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니, 전혀 다른 병동에 와 있었느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똑같은 병실이기는 했으되 거울에 비추어진 상처럼 뒤집어진 형상이었다. 그 거울상도 두 개의 거울을 세워놓은 것처럼 비춰지고 있었느니, 촛불 아래 안개 묻은 유리마냥 녹색 연기 같은 게 엉겨 있었느니라. 그 흐릿하고 창백한 형상들에 눈이 적응하고 나니, 그 방 안에서 움직이고 있던 건 나 하나밖에 없었느니, 다른 침대는 전부 비어 있었느니라.
몸이 절로 떨리더구나. 비명을 질렀어야 옳았겠지. 어머님과 아버님 생각을 했지만, 그 상황에서는 두 분 중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느니라. 대신, 노부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더니 그분도 응답을 하시더구나. 그분의 목소리는 태양빛처럼 투명했고, 다시 젊음을 되찾기라도 하신 것처럼 낭랑했느니라. 병실 문 앞을 쳐다보니 그곳에 노부인께서 서 계시더구나. 밝고 건강해 보이셨어. 왠지 전보다 작아진 것 같기도 했고, 차가운 방에서 올라오는 안개 같은 아지랑이 때문에 형상이 흐릿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분이 확실했느니라.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웃음, 똑같은 눈을 하고 계셨으니, 당연하지 않겠느냐.
그분은 내게 끊임없이 속삭이며 노래하셨느니라. 자신을 따라오라는 것 같았지. 어디로 따라가란 말이었을까? 침대 바깥이겠느냐? 아니면 병실 바깥이겠느냐? 몇 달이 지나도록 걸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느니라. 남의 도움 없이 걸어 본 일은 그의 두 배는 더 오래된 일이었을 게다. 그래 그분은 고개를 까딱까딱, 해 보이고는 그대로 병실 밖으로 달려 나가 버리시는 게 아니겠느냐. 거기에는 어떤 강한 자신감 같은 게 있었느니. 그분께서는 나를 믿고 계셨던 게다. 왜 나를 그리로 데려간 것인지, 거기가 어디었는지는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무모한 행동 같았지만, 침대 밖으로 꾸물거리며 기어나와 보니 바닥 타일이 얼음장마냥 차갑더구나. 그래도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사지에 별 느낌 없이 멍한 감각이 들었는데, 오히려 기력을 북돋는 저 세상의 단단하고 강건한 물질로 재건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지.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도 모자라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까지도 할 수 있었느니라. 그림자만 뒤엉긴 외로운 병실 안에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앉아 있느니 나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했다. 노부인을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분이라면 답, 온기, 지난 수 주 동안 나를 웃게 해 준 그 웃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시리라 생각했거든.
그분은 복도 모퉁이마다 나를 돌아보고 서 계셨느니라. 잿빛 꼬리가 창백한 그림자 속에서 무엇인가 알 수는 없어도 아름다운 빛을 뿌리고 있었느니. 사방에 백골처럼 흰 빛이 엉기어 벽과 문과 창문에 달라붙어 있었다. 복도에는 간호사도 잡역부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의사 연구실도 들러보긴 했으나 그곳에서도 잿빛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조금만 천천히 가 달라고, 애걸하듯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갈 수밖에 없었느니라. 병원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미궁과도 같았고, 그 감당할 수 없이 어두운 침묵은 내 목소리를 간단히 집어삼키고 말았지.
그래도 그분을 찾을 수는 있었다. 1층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2층 베란다 난간 앞에서였느니라. 그분은 나를 보시고는 날개를 흔들며 눈을 찡긋해 보이시더니 아래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켜 보이시더구나.
그분의 옆에 앉아 시선을 아래로 돌렸느니라. 숨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나는 그 숨소리도 밟아 죽여야만 한다는 일종의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 아래에는 포니들이 모여 있었느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성년 포니부터 시작해 어미와 아비가 된 자들, 형제와 자매들을 나는 보았다. 몇몇은 병원 가운을 입고 서 있었다. 다른 몇몇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 얼마 안 되는 자들은 발굽에 목발을 덧대어 기대고 서 있었고, 그보다도 적은 자들은 아예 서 있지도 못했다. 침대에 누워 있었지. 그 침대는 하나인지 둘인지 되는 자들이 밀고 있었느니라. 그럼 대체 왜 저들이 저러고 서 있는 것인가 생각했지. 확실하지 않았다. 흑백 체크무늬 타일 위로 그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든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린애였던 내 눈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듯 절로 피곤해지더구나. 그야말로 당혹스럽다고밖에 할 수 없었지.
그 때 노부인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목소리에 활기와 생기가 가득해서 오히려 더욱 놀랐지. 고개를 돌리자 그분께서 예전의 그 웃음과 그 눈길, 귀를 흔드는 특유의 몸짓을 하고 계시더구나. 조금 전에 봤을 때보다도 더욱 어려져 있었다. 거의 내 나이대 정도 되었으니 말이다. 모습이 바뀐 것보다도, 그분께서 말씀해 주신 것들이 더 놀랍고 무서운 것들이었어.
저 포니들이 저렇게 모여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을 떼시더구나. 좀 더 솔직하게 말해보면, 우리 모두 이유가 있어서 그곳에 모인 것이었단다. 오래 전, 그러니까 생사가 구분되고 서로 다른 것으로 나뉘기 전에는 오직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느니. 그 어둠의 성질 중에서 필멸하는 부분은 죽음으로 갈라져 나왔고, 불멸하는 부분은 빛으로 갈라져 나와 우주를 나누었느니라. 그런데 그게 누군가를 노하게 한 게다. 그분의 말씀으로는, 정확히는 그걸 '누군가'라고 표현하는 일은 적절치 않다는구나. 형체가 없으니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욕망도 두려움도 없는 무언가라고 하면 될 것이다. 아니지, 욕망도 두려움도 없었던 무언가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게다. 이제 온 세상을 집어삼켜 별과 햇빛과 숲, 그 외 모든 것들을 '존재했던'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와서는 안 될 곳'이 생겨난 것이라고 하시더구나. 그곳은 언어라는 개념이 없이 그저 소리만, 길고, 지치고, 쌕쌕거리는 듯한 소리만, 침묵의 입맞춤을 할 줄 모르는 방울뱀과 같은 곳이란다. 그곳은 틈새이고, 갈라진 사이이며, 빛의 웃음소리와 어둠의 공허한 비명소리 사이에 낀 빈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포니들처럼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 끌려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지. 우리 우주는 종말을 시작해야 할지, 시작의 종막을 고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마당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거든.
그분께서는 와서는 안 될 곳을 피해 달아나는 법을 익혔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자들이 그 몸뚱이를 이끌고 1층 로비로 꾸물대며 모여들고 있을 때, 그분께서는 나가는 길을 찾아내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러워하시기도 했고, 자신의 승리에 기뻐하시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와, 낮게 깔리는 불협화음이 계속해서 노부인을 어지럽히고 있었느니. 그분께서는 벽 너머에서도, 창문 아래에서도, 복도에 울리는 간호원들의 아득한 발굽 메아리 너머에서도 그 소리를 듣고 계셨을 게다. 그분은 그 자리에서 달아나시기는 했지만, 도주 생활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단다. 그분의 표현으로는, 어둠이 일종의 중력처럼 그분을 끌어당기고 있다고 하더구나. 언젠가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도 말이다. 그 모든 진실을 말해준 이유는, 내가 많이 고맙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분에게도 특별한 벗이었고, 그분을 미소짓게 하는 존재였고, 그분 자신의 온기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때껏 나만이 그분을 소중히 대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그 자리에서 달아날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셨지만, 나와 같이 지내면서, 나와 놀면서, 나의 눈물을 노래로 보내주던 매일 밤들을 보내면서,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그걸 잊고 지내실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때, 아래에서 차가운 돌풍이 불어왔다. 노부인께서 급한 숨소리를 내셨지. 내게도 그건 아주 무서운 소리였단다. 마치 내 심장 속에 유리가 들어가 깨지고, 그 소리가 내 목구멍 안에서 메아리치는 것만 같았지. 그래서, 힘겹게 흐느낄 수밖에 없었단다. 그분은 차분하게 난간 너머를 쳐다보고 계셨지. 나도 그리로 시선을 돌렸다.
로비에 모여 있던 포니들이 하나하나 줄을 서더니, 병원 출입구로 줄지어 걸어가고 있더구나. 출입구 유리문 너머는 어둠뿐이었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늙은이는 그 심연에 뒤엉킨 말 그대로의 암흑을 표현할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왠지 출입구를 너무 오래 들여다봤다가는 내 눈도 영영 멀어 버릴 것만 같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인께서 깜짝 놀란 듯 태도를 바꾸시더구나. 포니들은 더는 걸어가지 않았어. 밀려들고, 뛰어들고...... 아니다, 차라리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말이 옳겠다. 출입구 너머의 어둠이 그들을 말 그대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비명이나 고함 한 마디 없이 신속하게 유리문 너머의 공허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지. 로비가 텅 비었는데도, 비의 장막과도 같이 그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인의 귀가 쫑긋거리던 것처럼 내 귀도 움직이고 있더구나. 질질 끌리는 걸음으로 걸어 들어가던 이들이 있던 자리에, 체크무늬 바닥이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했어. 검은 타일들이 흰 타일을 잡아먹고, 출입구에서 비어져 나온 검은 촉수들이 그 위로 뻗어 나가더구나. 그리고는 꽃이 피듯이 우리를 향해 뻗어오기 시작했어. 그래, 새까만 꽃이 우리를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와서는 안 될 곳은 더욱 맹렬히 뻗어왔느니라. 그것의 소리가 형체를 이뤘고, 쉭쉭거리는 소리로 귓구멍 안에서 끝없이 울어댔지. 방금 전에 그렇게 집어삼겨 놓고도 말이다. 우리의 존재를 느끼고,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게다. 이제 우리가 그 안으로 끌려갈 차례라는 것이었지.
노부인께서 나를 쿡쿡 찌를 때까지 움직일 생각도 못 했느니. 그분의 목소리는 거의 악을 쓰듯이 새된 소리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 울려대는 소리가 그분이 말하는 소리를 거의 묻어버리기는 했으되, 나더러 도망치라고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느니라. 그래 그분과 함께 자리를 벗어나 타일 바닥 위를 미끄러져 가다시피 하면서 우리가 지났던 길을 되짚어 달려 달아났단다. 그 무시무시한 소음이 고막으로 집중해 들어오는 것만 같아서, 발굽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지. 우리 양쪽으로 나 있던 창문과 거울들은 이제 새까맣게 변해 흑요석처럼 바뀌고 있었다. 벽 너머에서 흘러나오던 창백한 빛도 떨어지고 말아서, 모퉁이마다 내려앉은 어둠과 그림자가 전보다 1000배는 짙어지고 말았단다. 잘 보이지도 않는 복도 모서리의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지. 처음부터 존재했던 공허가 이제 감당할 수 없이 주린 몸을 이끌고 쫓아오는 통에, 모든 것이 무너지며 부서지고 있었단다.
원래 있었던 병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노부인께서는 그렇지 않더구나. 그분께서는 나와 만나기도 전부터 이 거울 회랑에 자주 왔었다고 하셨지. 그래, 자신의 그림자를 피하는 것과 같은 장난질도 오래 하셨다고 말이다. 나는 우리가 썼던 병상에 주저앉아 그분을 끌어당겼다. 이제 더는 그분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더구나. 살펴보니, 그분은 병실 입구를 단단히 지키고 서 계셨느니라. 그분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지만, 돌아보시지 않더구나. 귀울음이 이제 거대한 천둥 소리처럼 변해 귀를 막아버린 게 틀림없었느니. 그렇지만, 부를 필요도 없었단다.
그분은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시며, 마지막으로 그 웃음을 지어 보이셨느니라. 이제는 딱 내 나잇대의 어린애가 되어 계셨지. 그렇지만서도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는 듯, 태산같이 서 계시더구나. 어둠이 빛을 완전히 범하지는 못하도록 싸우기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 이럴 날이 오리라는 건 짐작하고 계셨다고 말씀하시고는, 이제 '와서는 안 될 곳'이 자신을 잡아갈 것이지만 최대한 오래 저항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앞으로 몇 년, 어쩌면 평생 동안 나에 대해서 '와서는 안 될 곳'이 잊고 지낼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것이 그분의 선물이라고. 병상에 누워 있던 나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주고 싶었던 선물이라고. 아파 울면서 죽어가는 어린것에게 해주어야 했던 것이라고.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하고, 그분께서 해 주신 것을 받아 본 적 없노라고 대답하자, 그분은 '이제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시더구나.
그 때 몸을 돌려 침대로 몸을 던졌느니라. 꼴사납게도, 그 밑으로 바로 기어 들어가지 못하고 버둥거리기도 했느니. 그분께서 큰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대로, 그대로 침대 발치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느니라.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떨리는 사지를 겨우 놀려 그분의 지시대로 했느니라. 그분의 비명이 처음으로 들려왔을 때는 사지가 더욱 떨리웠단다. 그 비명은 처음에는 어떤 사이렌 소리처럼 들렸느니라.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지. 그 다음 침대 너머에서 유리 그릇이 깨지는 듯, 무언가가 깨져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느니라. 그 다음은 그분이 질러내는 소리였느니, 서서히, 아주 서서히 잦아들며 죽음의 강처럼 흘러가더구나. 그분의 울음이 끝없이 밀려오는 쉭쉭 소리에 파묻히는 순간까지, 침대 너머로 일종의 우주적인 기운이 넘실거리는 게 느껴지더니라.
내가 침대 반대편으로 나온 순간부터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단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병실 벽과 더불어 잠든 아이들로 가득한 병상이 늘어서 있더구나. 그렇지만 이명은 멈추지 않았어. 나는 그대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느니, 자던 아이들이 전부 깰 지경으로 울었는데도 귀가 멀 것 같은 그 귀울음은 멈추지 않았느니라. 급하게 달려온 당직 간호사들도 내 이명을 멈추지는 못했어. 진정제 주사를 맞고 잠드는 순간까지도 이명은 내 귀 속에 머물러 있었느니, 꿈에까지 따라오더니라. 어둠 속으로 몰려드는 포니들의 창백한 실루엣과, 그 한가운데 끼어 있는 누군가가 노부인 특유의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 꿈에 나오더구나.
일 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깨끗하게 나았단다. 의사들도 기적 같다고 하더구나. 회복이라기보다는, 밤 동안 병마의 구덩이에서 말 그대로 기어 올라왔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구나. 여기서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월말쯤에는 나를 말기환자로 분류할 뻔했다고 하더구나. 그러면서 나를 두고 아주 굳건한 친구라며,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고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니라.
그래 그 양반들이 잘 모르는 것 같더구나. 그때까지도 귀울음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노인병동 환자들이 여기로 옮겨왔을 때, 나를 자상하게 돌봐 주신 친절한 노부인 덕분이라고 대답했지. 그분이 무엇을 하셨고, 어떤 희생을 하셨으며, 내가 그곳에 끌려가지 않게 하려고 무엇을 하고 계신지까지, 전부 다.
저들은 혼란스러워하더구나. 내가 오랜 병증 때문에 정신마저 혼미해진 게 아닌가 하는 눈길을 하고 말이다. 상식적으로, 현대 종합병원은 병세부터 완전히 다른 두 병실을 억지로 합치려는 생각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러더라도 서로 다른 병을 앓는 환자 둘을 한 병상에 쑤셔넣을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하더구나. 그렇지만 그리폰 대역병이 발생해 격리수용이 이루어진 것 자체는 사실이라면서도, 치사율이 높은 병증이라 아동병동으로 그 어떤 환자도 옮겨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몇 주인가가 흐르고 나서 얘기다. 부모께서 나를 데리러 병원에 오셨지. 활짝 웃으시며 즐거운 것들을 말해주셨지만, 왠지 그분들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더구나. 노부인의 그 웃음이 없었으니, 그분들께서는 나를 구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나신 게 아니었으니.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 걸음걸이는 그야말로 우울해 보이는 것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내 안으로 침잠하고 있었던 게다.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는 소음이 들려왔고, 다른 이들이 모르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느니라. 가서는 안 될 자리의 존재와, 그곳으로 언젠가 우리 모두가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감당해야 했었느니. 자려 해도 잠들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귀울음 소리와 낮게 깔리는 쉬익 소리 너머에서, 노부인께서 나를 위해서, 나에게 약간의 시간이라도 더 벌어주기 위해서 싸우며 토해내는 피 엉긴 비명소리가 들려왔느니라. 그리하여 나는 그분의 끝없는 투쟁으로 일 년, 다시 일 년 귀한 시간을 살아갈 수 있었더니라. 언젠가 그 곳이 노부인을 완전히 집어삼키게 될 날이 올 것이었느니. 언제고 그 곳이 본래 집어삼키려 했던 어린애를 찾아낼 것이었느니. 그 자리가 언제고 나를 찾아낼 것이었느니.
그래서 내가 조용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게다. 그때부터 얼마 되지도 않는 내 친구들과도 속마음을 터놓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고. 너라면 연약한 두 날개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지켜야 할 비밀로 짊어지고 살아가면서 수다스럽고 기운 넘치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 내 삶에는 어떤 목적이 있었음을, 내 남은 삶을 모두 바쳐 이루어야 할 일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노부인께서 나를 조금이라도 오래 살려두기 위해 싸우고 계셨으니, 나 또한 얻은 삶을 귀하게 썼어야 했다는 게다.
그래 나는 내가 그리했다 믿는다. 자식들을 많이 낳아 길렀다. 다른 목숨들도 많이 거두어 길렀다. 몇 번인가는 친구들을 도와 이퀘스트리아를 구하기도 했었다. 나는 이 세계가 조화롭게, 따뜻한 빛 안에서 번영하고 번성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언젠가 빛이 꺼질 때가 오기는 할 것이고, 나는 세상 모든 목숨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너를 돕는 것밖에 없구나.
그러니 우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기침이든 가쁜 숨이든 오한이든 걱정할 것 없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지나갈 게다. 너도 귀울음을 듣게 될 게다. 평생 동안 듣게 될 게야. 이 병동 너머에서, 이 병원의 벽 너머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 몸을 떠는 네 방 속 어둠 너머에서조차 귀울음이 들릴 게다. 빛이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어둠에 맞서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라. 슬퍼할 일은 아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 가장 어두운 곳에 닿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힘을 얻는 것이니 되려 기뻐할 일이다.
너와 같이 보낸 시간은 참으로 즐거웠단다. 하지만 이제 가야만 한다. 심연으로 들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너를 생각하겠다. 너 또한 나를 생각할 날이 올 것을 안다. 다만 언젠가 그 너머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그분을 잃고서도 계속 걸어갔듯이. 이불 밑에서 나를 찾으려 해도, 늙은이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이불 밑에는 아무것도 없을 게다. 그래도 언젠가 귀울음 속에서 내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을 안다. 처음에는 비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울음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게 승리의 함성임을 알게 될 게다. 이 늙은이는 너를 응원할 거란다.
이제 이 늙은이는 너를 조금 더 오래 살려두려 한다. 네 앞에 놓인 수많은 날들과, 새로운 발견의 나날들과, 달콤한 기쁨과 옆에 와 앉는 슬픔의 나날들을 살아가거라. 이 땅에 생명을 가져오고, 영면하는 이들을 보살피거라. 그리고 그 나날의 끝에, 나이들고 생명이 말라 가는 것을 느낄 때, 그리고 너 자신의 힘겨운 숨소리 같은 귀울음이 들려올 때, 그 때 오늘을 기억하거라. 누군가를 찾고, 그를 아껴주거라. 그리고 그 대신 가서는 안 될 곳으로 떠나도록 해라. 내가 너를 구했듯 너 또한 그를 구하도록 해라.
역자후기
SS&E 선생의 초기 작품입니다. 대충 EoP, Background Pony 등 이 양반의 대표작이 마무리되고 난 뒤 나온 물건이죠.
요즘 이 아저씨가 뭘 쓰나 봤더니 왠지 플래시 센트리에 꽂혀서 뭔가 썸띵 으흫흫한 물건들도 쓰고, backrooms 같이 정줄 놓은 물건들도 쓰고, 라이라에게 크리살리스 여왕이 들러붙은 물건도 쓰고(이것도 캔슬) 다양하게 많이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전 초기 작품을 선호합니다. 특유의 매운맛이 일품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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