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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Rated Ponystar] 떨어진 별과 남은 자들

17. Familiar : Peewee

by Mergo 2019. 12. 19.

패밀리어 : 피위 편

 

 

그는 비참했다. 나의 주인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나는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비통의 노래를 불렀다. 비통의 노래, 우리 불사조들이 가장 부르기 싫어하는 노래 중 하나로 당당히 꼽히는 노래지만 상황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이 불러야 하는 노래. 세상에서는 우리를 희망과 기쁨의 상징이라 여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정반대에 있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비통의 노래. 우리는 자신이나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 비탄에 잠겨 있을 때 이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로 우리는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고스란히 나누어 받는다.

 

나의 주인 스파이크는 몸과 혼으로 흐느끼고 있었고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나와는 아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고통은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다. 깃털 하나하나마다 주인을 쫓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부모님이 그러기를 원치 않으니까. 주인을 모시기에 나는 너무 어리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는 거다. 주인을 모시지 않으니까. 패밀리어가 아니니까. 나는 알에서 깨자마자 스파이크의 두 눈을 쳐다보았고, 그 때 나의 운명을 짐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스파이크는 내게 아버지이자 형제이자 벗이었고,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존재였다. 스파이크의 친구들 또한 나를 귀여워했다. 내게는 한참 어른이시고, 만나뵙는 것조차 영광으로 여겨야 할 만큼 나이를 먹은 불사조인 필로미나 역시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집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내 부모님과 형제들을 다시 만나 기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주인은 내가 훌륭한 불사조로 자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주인과 함께 있었어야 했다. 나는 주인의 말에 따랐다. 불사조의 노래를 익히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부활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우리 불사조가 지나온 역사를 가르침받았다. 그러한 나날의 가운데에서도 나는 내 주인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내 주인이 행복해할 때, 슬퍼할 때, 화가 났을 때, 비감에 젖어 있을 때. 나는 모두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바를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부모님은 내가 패밀리어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스파이크의 패밀리어였다. 그 사실은 내게 기쁨과 자부심을 심어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내 주인을 찾아가야 한다는 욕구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나를 막았다. 내가 패밀리어라는 것을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한 것은 같았지만, 우리 사이의 특수한 유대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관계가 미성숙했으므로, 나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체로는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적어도 이것 때문에 다시 발목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찾아왔다. 너무나 거대한 슬픔이 느껴졌다. 나는 멈추지 않는 울음을 울면서 밤낮으로 비통의 노래를 불러댔다. 그 이유는 나조차도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죽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내 주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나 또한 그와 동시에 죽었어야 옳았다. 패밀리어가 된다는 것은 그런 어둠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생명 자체를 주인의 생명에 종속시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 주인이 죽은 게 아니었지만, 주인은 자신의 죽음으로 죽은 자의 죽음을 대신하고 싶어했다. 주인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끌어안고 식음을 전폐한 채 며칠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노래하고, 우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비통의 노래를 그치고 슬픔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며칠 내내 슬픔의 노래를 불렀고, 그 때마다 내 주인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은 강해져만 갔다. 나는 우리 가족이 둥지를 튼 나무 쪽을 돌아보았다. 부모님은 저녁거리를 찾아 나가셨고, 내 형제들은 부모님을 기다리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더는 거기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음을 알았다. 나는 가야 했다. 그리고 주인을 찾아가는 행위에 그 어떤 후회도 느끼지 못했다. 가족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스파이크는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하나로 엮였고, 내 주인은 내가 필요했다. 주인은 혼자 남았고 내가 필요했다. 나는 조용히 작별의 노래를 부르고, 내 느낌이 부르는 방향을 향하여 날개를 펼쳤다.

 


 

나는 적게 먹고 적게 자며 며칠 동안을 멀리 갔다. 몸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져 갔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에는 생애주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나는 중간에 몸을 관리하는 동안에도 스파이크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느끼려고 했다. 나는 얼마 뒤 포니빌 방향이라 짐작되는 곳을 향하여 날기 시작했지만, 나중에 보니 정반대 방향이었고 그 때문에 나는 다른 동네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마을이었다.

 

내 주인은 둥지를 버리고 달아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운이 좋아서, 나는 주인이 떠난 지 두 시간 정도밖에 안 된 자리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너무나 지쳐 있어서 결국 조금 자두기 위해 적당한 나무를 찾아 앉아야 했다. 평생 피곤하다는 생각은 해 본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두 날개는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아팠고, 공허한 위장은 속을 비틀며 나를 고문하고 있었다. 떠나온 그 날 아침을 먹은 뒤 아무것도 먹지 않았었다. 사냥을 해야 했지만, 그럴 기운도 없었다. 아버지가 항상 내가 너무 당장 코앞의 것만 생각해서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고 지적하셨는데.

 

나는 눈을 감은 채 울지 않으려 용을 썼다. 가족들이 걱정할 텐데, 어쩌면 나를 충동질해 집을 나서게 한 내 주인을 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가족을 몰래 등지고 나온 죄책감에 젖어 있기는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언제고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 아마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주인을 사랑한다. 주인이 내가 깨고 나온 알을 부화시켰을 때, 나는 그 때 우리 인연이 특별하리라고 짐작했다.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은 그대로였고, 나는 자리에 앉아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 때 한 줄기 노래가, 불사조의 노래가 들려왔다. 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다. 하늘로 고개를 드니 어르신 불사조, 필로미나 님이 내가 앉아 있던 나무 쪽으로 날아오고 계셨다. 나는 그 때, 필로미나 님이 나를 꾸짖고 집으로 돌려보내시려나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필로미나 님은 과일과 빵, 곤충을 가득 채운 바구니 하나를 들고 계셨다.

 

마땅히 그 자리에서 절하고 인사의 노래를 나누어야 했다. 특히 필로미나 님과 같은 어르신이 상대라면 더욱 그랬다. 나는 그 대신 바구니로 뛰어들어 음식을 마구 집어먹기 시작했다.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면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부리 안이 가득차 그러지 못했다.

 

필로미나 님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아무 표정 없이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바구니에 담긴 음식 절반을 끝장내놓고 나서야, 어르신, 그것도 공주의 불사조께 무례를 범했다는 생각을 해내고 뒤로 물러나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섰다. 내가 감사 인사를 하려고 하자, 어르신은 날개 한쪽을 들어 보이며 그만두라고 몸짓했다. "신경 쓰지 말거라. 시간이 많지 않으니. 너 또한 그러하리라."

 

"어르신께서 여기에는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나는 긴장한 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영혼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계셨으니, 어쩔 수 없다.

 

"본디 포니빌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네가 다른 곳으로 향하더구나. 언제고 네가 스파이크를 찾아 나오리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지."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러 오셨는지요?"

 

"그렇지 않다. 네 운명을 쟁취하도록 도우러 왔느니." 어르신의 대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하며 되물었다. "운명이라뇨?"

 

필로미나 님은 고개를 끄덕이시고 저물어가는 태양을 향해 돌아앉으며 물으셨다. "부모가 사슴에 대하여 말해 준 바 있느냐?"

 

"세상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자들입니다. 저 멀리 바다를 여러 개 건넌 곳, 그리폰 산맥을 지난 곳에 있다는 삼버 대삼림에 은거하지요. 들리는 말로는 그네들이 천문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성역이 있다고도 합니다." 나는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주워섬겼다. 문득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혹시 사슴을 만나셨습니까? 그자들은 자기들이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 누구도 불러들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오래 전부터 사슴들과는 가까이 지내고 있느니. 내 무엇인가 중요한 말을 들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기에 갔더니, 너에게 꼭 전해주어야 하는 말이 있다고 했었더니라."

 

"사슴이...... 제 운명을 읽었다는 말씀이신지요?"

 

"네 운명이 아니다. 스파이크의 운명이었지." 필로미나 님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스파이크의 의모인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가 암살당했다. 몇 달 전 일이지. 부디 혼이나마 영겁토록 영원의 노래를 부르기를."

 

그 말을 들으니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이제 그 때 느꼈던 고통이 설명되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트와일라잇 스파클을 위하여 비탄의 노래를 불렀다. 필로미나 님도 비탄의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른 노래가 사방으로 퍼졌고, 근처를 돌아다니던 작은 동물들은 그 자리에 멈추어 하나둘씩 눈물을 떨어뜨렸다. 트와일라잇은 나를 소중히 대해 주었고, 반려조였던 아울리시어스는 내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죽음과 남겨진 자들, 스파이크와 아울리시어스, 그리고 트와일라잇 스파클을 사랑한 모든 이를 위하여 나는 울었다. "부디 혼이나마 영겁토록 영원의 노래를 부르기를." 나는 마지막 눈물방울을 문질러 닦고, 주인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하여 돌아앉았다. "스파이크를 찾아야겠습니다. 찾아내야만 하겠습니다. 스파이크는 제가 필요합니다."

 

"그럴 게다. 너로서도 그게 최선이겠지. 스파이크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감과 상실감에 차 있느니, 마땅히 보살펴 줄 자가 있어야 하리라. 이제 그 녀석 본인의 친구들과 유족들조차 물리치고 홀로 서 있으니 더욱 그러하리라. 의모 없이는 세상과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겠지. 그러니 네가 스파이크를 그 수렁에서 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파이크는 자신을 파괴하고 말 테니. 그 아이는 앞날을 감당하기에 너무 여리다." 필로미나 님이 말씀하셨다.

 

"사슴들이 천문을 읽고 무엇을 봤다고 하더이까?" 나는 집중하고 물었다.

 

"본래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가 전세계를 황금기로 인도하리라는 것이 최초의 운명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트와일라잇 공주의 별이 떨어졌으니, 그 운명 또한 실현될 수 없게 되었지. 미래는 다시 불확실성과 모호성의 구름에 가리워 보이지 않느니, 사슴들은 그 가운데에서 거대한 재난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말하기를......" 필로미나 님이 마른침을 삼켰다. "......검은 별을 보았다고 하더구나."

 

"검은 별이라니요?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습니까?" 나는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천문 지식 그 어디에서도 그런 존재를 들어 본 바 없었다. "검은 별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드물기는 하나 분명히 있다. 검은 별은 오직 어두운 운명을 거느린 자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만 나타나지.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괴물들이 태어날 때마다 떠오른 것도 검은 별이었지만, 지금 떠오른 검은 별은 날이 갈수록 그 기세가 갈수록 커져 간다고 하더구나. 이번에 나타난 검은 별을 본 사슴이 말하기를, 이 별을 안고 태어난 자는 죽음과 전쟁의 노래를 이끌고 세상을 파괴하리라고 했느니. 그 자를 막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암흑시대로 돌아가게 되느니."

 

그 때, 나는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해도 몸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한기를 몰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단 한 명 때문에 그런 파괴와 재앙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게 나와 스파이크와 어떻게 엮여 있다는 것인가? "그 미래가......  정녕 막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자가 몰고 올 어두운 운명은 분명히 회피할 수 있으니. 아직 그 어떤 운명도 정해지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희망이 있다." 필로미나 님이 대답했다. "검은 별이 커져가는 것을 막아선 별들이 있다. 이 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면 검은 별을 물리칠 수 있으리니. 스파이크의 별이 그 중 하나니라. 스파이크가 훗날 우리가 대면해야 할 악을 패퇴시킬 수 있는 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필로미나 님이 내 쪽으로 다가와 두 날개로 내 어깨를 잡고 말씀하셨다. "너는 스파이크의 패밀리어로 스파이크를 지켜야 한다. 스파이크의 영혼을 치유해 주어야 한다. 스파이크가 언젠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운명의 때가 되었을 때 선택은 오로지 스파이크 스스로 해야 하느니. 스파이크가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희망도 사라질 것이다."

 

"제 주인이 그리 중요한 것인지요?" 나는 물었다.

 

"가장 중한 변수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앞으로 닥쳐올 어둠의 시대와 맞서기 위해서는 스파이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는 눈을 감고 내가 들은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스파이크를 찾아 돕는 것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보니 스파이크가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의 순간이 올 때까지 스파이크를 준비시키고 보호해야만 하는 의무로 바뀐 모양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친구를 도울 것이다. 스파이크를 더 강하게 성장시키고, 그 슬픔을 나누어 받을 것이다.

 

내 목숨을 다해 스파이크를 지킬 것이다.

 

"창조의 노래가 있으신 후에 우리의 선조들께서 세상에 부르셨던 모든 노래의 이름으로, 그리하겠습니다." 나는 맹세했다.

 

필로미나 님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제 나도 가봐야겠구나. 스파이크가 달아난 뒤로 내 주인께서도 그 녀석을 좀 찾아 달라고 부탁하셨지만, 이제는 거짓을 고해도 되겠어. 별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필로미나 님이 날개를 펼쳐 펄럭이기 시작하셨다. 나는 필로미나 님이 멀리 날아가시기 직전에 큰 소리로 물었다. "한 가지 여쭐 것이 더 있습니다! 검은 별을 안고 태어난 자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필로미나 님은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다시 돌아와 말씀하셨다. "사슴들이 알았다 해도 내게는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 이름이 왕실 권위와 엮여 있거든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구나."

 

그렇게만 일러두시고, 필로미나 님은 날아가셨다.

 


 

밤이 되고 나서야 나는 주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의 주인. 스파이크는 피워놓은 모닥불 옆에 혼자 두 무릎을 가슴에 안고 쪼그려앉아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급강하해 주인의 뺨에 내 얼굴을 비볐다. 주인은 깜짝 놀라 펄쩍 뛰더니, 나를 보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파이크는 나를 잡아들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피위? 왜 여기 있어? 난 또 어떻게 찾았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주인의 뺨에 내 얼굴을 비볐다. 내가 주인 때문에 왔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도 주인 곁에 있을 것임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운명의 실로 엮여 있음을, 그리고 주인의 목숨이 곧 나의 목숨임을, 주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며 주인의 비감이 나의 비감임을, 그리하여 우리의 운명이 하나로 묶였고 나는 죽는 날까지 주인을 섬길 것임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인지는 몰랐지만, 노래를 들은 주인은 나를 가슴에 안았다. 주인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내가 와주어서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내 주인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나는 있었고, 주인의 공허한 마음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다시 사람 구실하게 만들려면 할 일이 많겠다.

 

그래도 지금은, 그냥 이렇게 있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게 좋겠지.

 


 

숭고한 어린 용이 집을 떠나 방랑길을 떠났을 때, 인도하는 불꽃이 그 옆을 따랐다

 

둘은 바다를 건너 용들의 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운명의 인도를 따라갔다

 

저 너머에서 재앙이 서서히 그 덩치를 키우고 있다는 운명의 경고를 들으며

 

 

 


 

역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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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p 재번역하다가 힐링 겸 잡았습니다. 전편에서 얼굴에 점 찍은 인격 생기겠다, 이따위로 글을 쓰면 역자도 조커가 되는 거야 운운하면서 까긴 했는데, 이번 편은 그냥저냥 쏘쏘해서 따로 불평은 안 하려고요. 무엇보다도 쉽게 옮길 수 있는 글은 저처럼 피곤한 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감사히 받아먹어야 하는 쁘라스 요소입니다.

 

힐링도 좀 했으니 다시 Eop 재번역 작업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렇게 쓰면 며칠 걸린 거 같은데 이거 옮기는 데 1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타이머 켜놓고 해서 정확합니다. 이 양반은 다 좋으니 폰트 색깔 장난질, 뜬금포로 역자 정신 안드로메다 강제이주시키기 같은 것만 안 했으면 좋겠군요.

 

그러고 보니까 플리팅 라이트 씨리즈는 통계를 보니 그닥 인기가 없드라고요. 우선순위 맨 뒤로 넘기겠습니다.

 

근처 방 사는 머저리들이 밤만 되면 시끄럽게 떠들더니 결국 근처 방 아저씨들이 와서 한바탕 빈 방 문 두들기면서 쇼맨십을 과시하고 가는군요. 니들도 시끄럽다고 디스하고 싶지만 피차 피곤해지는 대신 이어폰을 끼면 세상이 편안해집니다. 박완서 선생님도 이렇게 쓰셨지요. 약간의 위선이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고. 위선이 아니라도 사람이 내지 않는 소리를 무시하면 세상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니 다들 이어폰이든 헤드폰이든 끼고 미치신 분들을 쌩까십시오. 그러고 보니까 세탁하러 가야 하는데 복도 막고 저러면 못 가는군요? 홀-리 지져스.

 

하지만 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라기보다는 그냥 달관? 저런 풍경 원투데이 보는 것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고 왜 지금 비번인 총무 자는 방이 왜 하필 근처고 왜 하필 그 동안 쌓인 것들을 자는 총무에게 쏟아놓는다고 방문 앞을 막는 것일까요? 야만인들 같으니...... 자는 사람은 걍 자게 냅둬야지 않을까요? 본인들은 군대에서 불침번 안 서 본 것처럼 구는군요. 하긴 저 시절에는 방위가 절반이었으니 상관없을까?

 

아무튼 이번 달의 보너스 목표는 달성했으니 이제 주 목표 달성을 위해 떠납니다. 세탁할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