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크Myrk?" 코랄Choral이 속삭였다. 여자는 남자에게 부드럽게 기대고는 둘이 반씩 나눠 가진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맞췄다 떼어내기를 반복하다 물었다.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해?"
미어크의 두 눈이 열려 뜨였다. 윤을 낸 흑요석처럼 검은 눈이었다. 사내의 눈이 밤의 어둠을 뚫고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하늘파도의 빛나는 물줄기가 밀려가며 반짝이고 있었다. 두 젊은이들은 거대한 지하 바다의 해안가에 앉아 있었다. 하늘파도의 은빛 수평선 위로 몇 척 배가 천천히 미끄러져 갔고, 헤아릴 수도 없이 거대한 동굴의 아득한 천정에 줄지어 선 생체발광체 막에서 흘러나오는 거짓 별빛이 창백한 흰색으로 어른거렸다.
"여기서 만났었지." 사내가 아득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어크는 잎새 같은 귀를 한 번 쫑긋하더니, 돌 같은 회색을 띤 두 앞다리로 코랄을 단단히 감싸서 안으며 인공 해안의 창백하게 반짝이는 모래사장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며 말했다. "스스로의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더랬지. 자긴 어땠더라? 내 기억상으론, 아버님께서 또 다른 설교를 하시려고 들자 도망나와서 여기 와 있던 것 같은데."
코랄의 크림색 솜털 위로 엷은 홍조가 비쳤고, 여자는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그 얘기를 그렇게 하면 좀 그렇지. 꼬마도 아니고, 그 일이 그렇게 별 거 아닌 것도 아니었고." 그녀의 두 발굽이 다시 한 번 두 목걸이를 맞춰 하나로 만들었다. 날아다니는 올빼미와 내리꽂듯 강하하는 박쥐의 형상이 또 다른 자신들의 형상과 춤을 추었고, 여자는 이내 맞춰둔 목걸이를 다시 떼어놓았다. "서로 반했을 때 우리 둘 다 어린애였던 것처럼."
"흠......" 사내가 말을 꺼냄과 동시에, 코랄의 허파와 미어크의 허파가 공명했다. "실제로도 그렇긴 했지. 여전히 여러모로 그렇지만."
"오 제발......" 여자는 자신의 뿔이 남자의 입가를 찌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고개를 들어 사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안 변하는 건 없어. 그 어린애가 이번에 포니모니움 대학 달 에너지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는데, 자기는 어땠더라?" 코랄은 까르르 웃으며 다시 한 번 사내의 입가에 자기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우리 사랑하는 작고 귀여운 미어크는, '야행백귀夜行百鬼(Night Wraiths)'의 새 지도자가 되셨고......"
(포니모니움: Ponymonium. 복마전, 대혼란 등을 뜻하는 Pandemonium의 변형)
단색 바닷가에 와 부딪히는 파도에 미어크의 몸이 비쳐서 밝게 빛났다. "내가 자기보다 작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말이지......"
"아, 물론 그랬지." 코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자의 푸른 눈꺼풀이 가늘게 내려앉자 사내의 머리 왼편에 아이보리색 기운이 어렸다. 염동력으로 사내의 귀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자긴 너무 외로워 보였어. 또 무서워 보였지. 하늘파도의 빛나는 물결처럼 밝은 빛을 본 적도 없어서, 거기서 눈을 떼고 있지도 못했고. 그 때 자긴 가엾었어. 모두가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자기는......"
사내는 움찔하더니 염력으로 잡혀 있던 귀를 떼어내며 머리를 휙 당겨 여자의 반대편으로 밀어냈다. "코랄, 그만." 남자가 신음하며 말했다. 미어크는 곧 자책하는 듯한 소리로 한숨을 토해내고 말을 꺼냈다. "가끔은 두려움도 약이 되거든."
코랄은 가엾다는 듯 나직한 울음소리를 내며 시무룩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런 말을 꼭 늘 믿으면서 살아야겠어?" 여자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속삭여 말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자기 참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다음으로 자길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간절하게. 하지만 말이야, 지금까지 미어크, 당신을 지킨 건 자기 자신이었어. 언제쯤에야 내가 자길 돌보게 해 줄 거야?"
"코랄,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 우리가 생각하고 믿는 모든 것들에......" 미어크는 침을 삼키고는 쭉 째진 검은 눈을 닫으며 말했다. "뭔가 완전히 잘못된 게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난 몇 달 동안만 야행백귀의 우두머리였을 뿐이야. 우리의 구원자와 여왕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사내는 고통스럽기라도 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천천히 눈을 열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싫어져.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하니까, 걱정스러운 건 당연한 일이지. 자기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으니까, 내가 무서운 건......"
"이만하면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거 아니야?" 여자가 물었다. 푸른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제국이 가져다 준 기쁨과 행복을 그냥 받아들이고, 누리면 안 되는 거야?"
사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숙여 연인의 목에 얼굴을 비벼주다가 가볍게 입을 맞출 뿐이었다.
여자는 여전히 신경 쓰이는 듯 몸을 떨고 있었지만, 사내의 애정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코랄이 붙잡아 맞추고 있던 목걸이에서 발굽을 뗐다. 부엉이와 박쥐의 형상이 각각 그들 각자의 목에 느슨하게 걸렸다. "미어크?" 여자는 말을 더듬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미어크, 제발. 대체 무슨 생각이야, 말해 봐......"
사내의 얼굴이 위쪽을 향했다. 남자는 하늘파도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았다. 명멸하는 물결이 사내의 눈을 찔렀지만, 사내는 눈부심을 참고 숨을 한 번 들이마시면서 하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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