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아버지의 환영 여식께서 우리에게 밤을 주셨느니라. 어둠은 우리가 태어난 자리이자 기만자의 주구였을진저. 여식께서는 숭고한 은총과 자비로, 우리 스스로 두려움에 맞서 이루어야 할 사명을 내리셨느니. 그분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피조물들은 영혼을 얻었느니라. 그분의 정의로운 분노로서 우리 피조물들은 힘을 얻느니라. 새로운 밤이 스러지는 날, 그분의 은총을 거부한 모든 자들이 전율하고 또 전율할 것이니. 우리는 영원히, 그 이후 도래할 다음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그림자로 서리라."
(사로스의 서 3권 11:13)
미어크가 다시 들이마신 숨은 평소보다 훨씬 길었고, 그 자신의 걸음처럼 차갑고 소리가 없었다. 사내는 떠가는 검은 구름처럼 지하 평원의 황량한 정경 위를 미끄러져 갔다. 기하학적 무늬를 그리며 아로새겨진 마력선이 희미한 푸른 빛을 흘리면서, 광활하게 펼쳐진 매끄러운 검은 돌 회랑의 양 끝까지 뻗어 있었다.
루나 제국의 기반시설들이 교차하는 수많은 지점들이 중간 정도 높이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사내의 망토 쓴 몸 위아래로 지나가고 있었다. 사내는 매 오십 미터를 떨어질 때마다 나타나는 반투명 변형 유리들을 뚫고 지나가며 말 그대로 수직 낙하하고 있었다. 사내는 구멍 뚫린 땅의 검은 살결이 자신의 회색 몸뚱이를 감춰 주기를 바라며 깊은 동굴 벽을 단단히 붙잡았다.
동굴 벽을 길게 베어내며 내려간 한 줄기 틈이 눈에 들어오자, 사내는 고양이처럼 몸을 놀려 틈새 안으로 들어가 기척 죽인 걸음을 재촉했다. 육안으로만 보아도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저 위편에서는, 반짝이는 마나 스톤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움직이는 마법부여 비행 수송기 여러 대가 건너가고 건너오기를 반복하는 사이를 이어주는 반투명 유리 다리의 지지대로서 틈은 기능하고 있었다. 미어크는 그 수송기를 쓰지 못했다. 미어크는 교차 지점들이 내린 뿌리의 끝부분까지 틈새 깊은 곳으로 몸을 옮겼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백귀야행 부대원으로서, 더 깊이 내려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틈새 바깥으로 머리를 슬쩍 내밀고는 더 깊이 뻗어 내려가는 새카만 바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내는 심호흡하며 요동치는 걸음을 내디뎠고, 그의 입은 자신의 검은 눈동자를 둘러싸고 있는 흰자만큼 벌어져 있었다. 입김이 일그러지며 피어올라 잠시 동안 대기를 비추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는 깊은 곳에서 뿜어낸 날숨을 전부 밀어냈다. 지금 이런 곳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깊은 틈새 바깥으로 나가 저 너머로 갈 방법이 필요했다.
사내는 고개를 뒤로 기울이며 두 뾰족한 귀를 쫑긋 세워 귓가의 연골을 풀어주었다. 가능한 한 귀를 넓게 열어주기 위함이었다. 남자는 검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뇌 속으로 밀려드는 귀중한 정보들의 파도와도 같은 감각이, 마침내 느껴졌다. 저 너머에 뻗어 있는 빈 굴들의 분포도가 미어크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머리 위로 펼쳐진 도시의 정경을 만들 만한 설계도가 함께 떠올랐다.
조금이라면 여기서 지체해도 괜찮을 듯싶었다. 미어크는 두 다리를 움직여 몸에 덮인 긴 갈색 망토를 만져서 어깨부터 꼬리까지 완전히 덮도록 만들었다. 달 비단에서 흐르는 빛이 희미한 가방 모양으로 순간 반짝하고 지나갔고, 사내는 다시 벽에 바짝 붙어 한 마리 거미처럼 평평하고 어두운 돌 바닥 위를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며 다시 그림자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윤기 도는 바닥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동안, 사내의 머리 위로 또 다른 유리 다리에서 떨어진 그림자가 지나갔다. 회색 기둥으로 받쳐둔 다리는 사내와 백 미터가 채 안 되게 떨어져 있었다. 빛을 뿌리는 마력 구슬 몇 개가 사내를 지나쳐 날아가더니 마력선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어가 위쪽에 떠다니던 플랫폼 가장자리에 줄지어 늘어서며 룬 문양으로 합쳐졌다.
지하를 건너가기 전부터, 미어크는 자신의 걸음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 사내는 룬 가까운 곳을 지나갈 때마다 자신의 심장 박동과 호흡 수를 천천히 줄여 가면서 마음 속으로 묵상 상태를 유지했다. 탐지용 룬이기 때문이었다. 걸음 하나를 내디딜 때마다 둥근 빛이 반짝거려서, 빛나는 수면 위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입안에서 옅은 녹슨 쇠 맛이 퍼짐과 동시에, 사내의 은색 줄 그어진 갈기 위로 찬 기운이 움직이지 않는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미어크는 걸음을 더욱 늦추었다. 바로 앞에 자르고 지나가야 할, 평원의 유리 같은 표면이 있는 것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저 아래 좁은 수로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 느껴졌다.
몇 시간 안에 이곳을 탈출할 방도는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가까이 있었다. 사내는 망토 아래에서 흔들리는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다리 아래를 천천히, 룬에 땀방울 하나조차도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기어갔다. 닿는 순간, 탐지 룬은 온 기반시설구역을 엮으며 뻗어나간 마력선 연결망을 통해 경보 신호를 전송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어크가 다리 반대편에 막 도착했을 때, 거대한 충격이 신경망을 타고 흘러갔다. 사내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두 눈을 닫았다. 그들이 오고 있다는 걸 감지하기에 굳이 눈까지 뜰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이를 악물며 기둥 하나를 골라 그쪽으로 몸을 피한 뒤, 바로 옆 오십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탐지 룬이 희미한 빛을 뿌리는 자리에 있던 흑요석 버팀대에 용감히 몸을 딱 붙였다. 유스리 다리 위로 마나 운용선이 둥둥 떠 와 멈춰 서서는 환풍 시스템을 작동시켜 지하의 대기 속으로 거칠게 김을 뿜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염동력이 동작하는 은은한 소리와 함께 유리판 하나가 살짝 밀려 열렸다. 그 순간, 남자는 월석 갑옷을 걸친 삼십 명의 몸뚱이가 운용선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에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듯했다.
"산개 수색 준비!" 끔찍할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가 명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어크는 이미 키 크고 딱딱한 모습의 루나 제국군 룬 가드 지휘관의 기척을 감지하고 있었다. 지휘관이 제국군 투구와 두꺼운 어깨 갑옷을 걸치고 근육질의 관절 부분에는 두 개의 마나 구체를 단 채 자신의 호버크래프트에서 내렸다. 뿔을 갖고 있었다. "목표물은 세 시간 전, 메어폴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그리고 달 표면으로 가려면 이 중위 교차로 구역을 지나가야 한다! 나이트메어 문 여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외층을 돌파하려는 추방자의 계획을 저지해야 한다! 놈을 찾아 끌고 와라. 살리고 죽이는 것은 관계없지만, 놈이 가진 물건을 전부 찾아 압수하는 일은 절대로 게을리하면 안 된다! 루나 제국의 안전이 거기에 달려 있다!"
"알겠습니다!"
"수색 개시!" 머리 바로 위에서 지휘관이 느릿느릿 걷는 발걸음 소리가 무겁게 들려왔다. 다른 유니콘 병력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질주하며 다리를 건너가는 소리 때문에,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라즈샐른 중위!" 사내가 걸음을 멈추며 외친 딱딱하고 고압적인 목소리의 메아리가 들려왔다. "유령 부대에서 연락은?"
"작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좀더 젊지만 힘이 없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좋아. 대신 빨리 말하게."
"유령 부대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목표물은 거의 십 년 가까이 여왕 폐하를 섬겨 왔습니다. 미어크 지휘관께서 그러시는 것도 분명히 이유가 있을—"
"전 지휘관 미어크를 말하는 거겠지, 중위. 그자처럼 사로스 출신에다 조직에 반항하는 성정을 타고난 자들은 그 자신의 진짜 모습, 반동분자의 색을 드러내는 순간 모든 직위와 그에 따른 특권을 박탈당하는 게 당연하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스텔라 대위님, 제가 그의 변호인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위, 이건 알고 있나. 사로스 출신 전사들은 우리가 여왕으로 모시는 분이자 구원자이신 분께 충성하기에는 너무 형편없는 자들이야. 우리를 인도하시는 여신의 찬란한 축복이 우리에겐 있지만, 그자는 그저 땅 냄새를 맡고 싶어 환장한 머저리 하나에 지나지 않아. 적어도 샤인 소령이 당한 일에 걸맞은 정의를 집행할 기회를 날리는 일은 이제 그만하지."
"저 역시 대위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유령 부대의 작전 진행률을 계속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스텔라는 말을 마치고 미어크의 머리 바로 윗부분을 긁으며 제자리에서 몸을 돌렸다. "샅샅이 뒤져라, 제군들! 놈의 못생긴 날갯죽지라도 포착하면 즉시 신호탄을 쏘아 알리도록! 살아서 여기를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바로 그 때, 미어크는 숨을 진정시키려 갖은 애를 다 쓰고 있었다. 자신의 맥박 박동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고, 그랬기에 바로 옆에서 반짝이는 룬스톤이 언제 날카로운 경보신호를 내보낼지도 알 수 없었다. 유니콘 병사들이 다리에서 내려와 사내의 주변에 도열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져서, 그는 돌 같은 회색을 한 두 다리를 자신의 가슴에 가져갔다. 망토를 만지작거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짊어진 가방의 끈을 단단히 조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사내는 그 대신 목에서 달랑거리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 잡았다. 자그마한 올빼미 조각이 발굽에 닿는 순간, 사내는 진정됨을 느꼈고, 차분하게 진정된 느린 숨을 내쉬며 추적자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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