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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포니 최후의 날 프리퀄 : 사로스

Chapter 05 : The Temple of Nebula

by Mergo 2019. 9. 22.

"우리 모두를 위해서였어." 미어크가 말했다. 네뷸라 사원의 차가운 돌벽 위로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를 울렸다. 그는 코랄 앞에 밝혀져 있던 푸른 촛불 위로 걸음을 옮기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적어도, 우리 둘을 위한 것이라는 건 확실해." 그는 깊은 수심에 잠긴 채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여전히 지휘관이었어.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그는 혼혈 유니콘을 향해 피로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차와 펄세이드는 내 가장 가까운 전우였어. 그와 동시에 내 부하들이기도 했지. 우리가 함께 루나 공주님의 깃발 아래로 비행했을 때, 그 둘은 나에게 목숨도 바치겠다고 맹세했어. 최후의 순간까지 내 명령을 따르겠다고 말이지." 사내의 검은 눈이 가늘게 뜨였다. "며칠 전에야 그 둘의 맹세가 얼마나 진실하고 진지했는지 알게 되었지."

 

코랄이 걸치고 있던 비단 망토를 부여잡으며 근심 어린 시선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왜 들켰어?"

 

"모든 계획이 완벽했어." 미어크가 말했다. "몇 주 동안, 우리는 제국 저장고의 내부 경비를 조사해 왔어. 여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는 입장이니, 그 신성하신 보관 시설을 언제, 어디서 습격할지 계산할 수 있었지. 그렇게 신중하고 철저하게 계획했지만, 우리가 마주한 건...... 루나 제국 룬 가드 일개 대대가 군도와 마나 소총으로 무장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광경이었지. 첫 번째 일제사격에 맞고 핏물이 되어 버리지 않은 게 기적이야. 우리는 잠시나마 맞서 싸웠지만, 전황이 끔찍하게 불리하다는 걸 금방 깨달았어. 그래서 도망을 택한 거야. 나 혼자서 여기 도착한 게 며칠 전인데, 그제서야 그 둘이 맞이한 끔찍한 최후를 알게 되었지. 그때부터는 납작 엎드려 숨어 지냈어."

 

코랄이 낙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피어스 스텔라 대위." 미어크가 끙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 납득이 돼. 그자는 내가 진정한 제국주의자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지 않다고 늘 의심해 왔었지. 선수를 쳐서 여황제에게 뭔가 어필을 했을 거야, 뻔해. 나이트메어 문은 그 보고를 듣고 기습 병력을 지휘할 전권을 위임했을 거고. 황제 근위대는 우리 머리 위로 완벽한 함정을 파놓고는, 그것도 모자라 알리콘 마나를 봉인한 수정까지 숨겨놓았어. 저장고 그 어디에서도 루나 공주님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고."

 

"그건...... 그건 이관해 놓아서 그래." 코랄이 불안한 듯 발을 바닥에 비비며 말했다. "아버지가 그랬어. 한 며칠 됐다고. 과학위원회 위원장이니까, 맞을 거야. 지금 생각해 보니 이해가 돼. 황제가 굳이 아버지에게 수정 관리 책임까지 떠안기고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던 게 그것 때문이었어." 그녀는 자신이 하는 말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코랄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미어크를 슬픈 눈길로 바라보았다. "마나 수정이 이관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끔찍한 일이 생길 거란 생각은 했는데. 알고 있었는데...... 그러면 네가 지금까지 하려고 했던, 내가 말리려고 했던 그 일을 저지르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는데." 코랄이 입술을 깨물며 몸을 떨었다. 여자의 시선은 사내의 얼굴을 피해 네뷸라 석상 주위에 밝혀진 푸른 촉광에 향해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 현상수배지가 나붙었지. 온 포니모니움 소식통이 너와 차, 펄세이드를 반역자로 선전하고 있고......"

 

"제국의회는 항상 야행백귀에 대한 뿌리깊은 의심을 품고 있었지." 미어크가 말했다. "몇 년 동안 스텔라 대위는 나이트메어 문이 참모진들의 말에 동의하도록 애써 왔어. 그러니 얼마 전에 루나 가드에 복무하던 사로스 포니들을 강제 퇴역시키는 짓이 가능했지. 전환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코랄, 설령 우리 셋이 제국 저장고를 공격하지 않았더라도 몇 달 안에 강등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을 건 뻔한 일......"

 

"그래서 처음부터 저장고를 습격하려고 했니?!" 코랄이 화내며 외쳤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분노로 찌푸려지고 있었다. "그저 네가 사로스 포니들 중 가장 높은 계급이고, 그걸 뺏길까 두려워서?"

 

미어크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넌 내가 그런 오만하고 쓸데없기 짝이 없는 것에 나와 내 부하들의 목숨을 걸 놈으로 보여?"

 

"자기네들만 올바르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야!" 코랄이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소리쳤다. "대체 뭘 얻으려고 했던 거야?! 황제의 마나를 담은 수정을 탈취하고 나선 그걸로 뭘 할 수 있는데?! 그건 제국령 지하도시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용도로 만든 거지, 너희 날개 아래에 숨겨 다니라고 만든 게 아니란 말야!"

 

미어크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사내의 두 날개가 펼쳐졌다가 접히기를 반복했다. "신호가 되지, 코랄." 사내의 어조는 부드러웠다. "우주에 계신 황제의 네 자매들*께 메시지를 보낼 생각이었어."

 

* Saros는 End of Ponies의 프리퀄입니다. EoP 세계관의 창세신화가 Outline 5번에서 언급되니 자세한 것은 그쪽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s://mergosarchive.tistory.com/17)

 

코랄이 숨을 내보냈다. "아 미어크......" 그녀는 다시 낙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아 두르고 있던 망토로 몸을 더 단단히 감쌌다. "지금까지 이 문제로 다투고, 싸웠는데도, 그 짓을 계속해 왔는데도..." 여자는 울면서 사내를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직도 별들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 거야?"

 

"지금보다 확신이 선 적은 없지." 미어크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코랄을 지나쳐 가 촉광이 비추는 네뷸라 공주의 석상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천 년이 거의 다 되었어, 코랄. 루나 공주께서 나이트메어 문으로 변모하고 여기, 콘수스의 심장으로 추방된 지 천 년이 지났다고. 그럼 그 천 년에 가까워지는 수백 년 세월 동안 황제가 조금이라도 폭정을 그만둔 적이 있었니? '황제'란 악마의 그림자를 조금이라도 벗고 조화의 품에 안기려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 준 적이 있었니?"

 

"미어크, 황제께선 완벽한 사회를 만드신 거야!" 코랄이 외쳤다. "무자비한 추방과 유형의 세월을 궁극의 과학과 산업의 세월로 바꿔 놓으신 거라고." 코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화를 내며 앞발을 탕탕 굴러댔다. "루나 제국이야말로 온 포니 문명의 정점에 있는 거라고!"

 

"그래, 참된 제국주의자의 표상이군." 미어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칙칙한 회색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사내의 시선은 무감정하게 코랄을 향하고 있었다. "이 '과학적이고 사회적으로 완벽한' 사회, 네가 이렇게 열렬히 변호하는 그 사회는 단지 수백 년 동안 만들어 온 전쟁 수단에 불과해." 그는 몸을 돌려 냉랭한 얼굴로 코랄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수십 년만 더 지나면 나이트메어 문은 조화의 원소로 주박된 봉인을 해체할 수단을 만들어 낼 테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이트메어 문이 뭘 할 것 같아? 다시 이퀘스트리아로 돌아가 자신의 자매인 셀레스티아를 안아 주기라도 할까? 악마로 변모해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침략 전쟁을 개전하겠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코랄이 노기로 헐떡거리는 숨을 가누며 얼굴을 찌푸렸다. "10년 내내 그분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주제에 아직도 신성을 모독하는 거야? 네가 백귀든 아니든 다른 포니들이랑 다를 게 하나 없어, 언젠간 죽어! 어떻게 그분의 심중을 함부로 넘겨짚을 수 있어?!"

 

"천 년째 되는 해, 해가 가장 긴 날, 별들이 그녀의 탈출을 도우리라." 미어크가 대답했다.

 

코랄이 눈을 감고 한숨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미어크." 여자는 기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방금 읊은 성서의 구절이라면, 나 또한 지겹도록 들었어. 네가 사로스의 서를 내 앞에서 큰 소리로 읽어댄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

 

"그렇다면." 사내가 여자를 지나쳐 신전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이것도 기억하겠지. '우리 사랑하는 아버지의 그림자 여식께서 우리에게 밤을 내려주셨노라. 우리는 어둠 속에서 태어나 기만자의 주구로 살아가느니. 여식께서는 한없는 광명과 자비로 우리의 두려움에 맞서 이룩해야 할 일을 비추어 주셨느니라.'"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코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발굽 소리가 부딪쳤다. "코랄, 넌 유니콘의 피만 받은 게 아니야. 나에게 흐르는 피가 네 안에서도 흐르지. 네가 포니모니움 사회에서 어느 정도나 올라갈 수 있을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네 아버지가 네 혈통을 숨기려고 얼마나 동분서주할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아. 너도 밤의 피조물이니까......"

 

여자가 한숨지으며 한쪽 발굽으로 얼굴을 비볐다. "미어크......"

 

"너와 나의 선조들은 생물 병기에 지나지 않았어. 디스코드의 전쟁 도구였지." 미어크가 말했다. "기만자는 죽은 페가수스의 살과 타르타로스 가장 깊은 곳에서 빚어낸 골격을 섞어 우리를 만들었어. 우리는 처음부터 악마로 창조되었던 거야. 루나 공주님, 자비의 화신이자 그분의 아버지 콘수스의 무덤을 지키는 외로운 묘지기인 그분께서 우리를 한없는 광기에서 구원하셨을 뿐이야. 나도 깨닫는 데 오래 걸렸어. 하지만 그게 루나 공주님의 뜻이야. 나이트메어 문에게서는 찾아볼 수조차 없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형제들은 그분을 섬겨야만 하는 운명이야."

 

"미어크, 이것 때문에 더는 트랭퀼리티에 머무를 수 없었던 거야!" 코랄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여자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그림자와 푸른 불꽃,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차가운 눈길에서 도망쳐야만 했어. 내 아버지도, 에너지 협의회에서 쌓아 가던 경력도 아니라, 네 그 도저히 충족되지 않는 갈망......" 여자가 말했다. "예언을 향한 그 갈망 때문이었다고! 미어크,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 사로스의 서나 조화의 원소에 관한 고문서를 듣는 걸 사랑하는 게 아냐! 난 내 삶의 주도권을 찾고 싶어, 미어크. 달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우리 문명이 언젠가 한없는 영광과 자부심을 안고 대지로 돌아가는 날을 보고 싶다고. 그런데 네 말은 항상 달라지는 게 없더라. 늘 똑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야. 그건 네 꿈이 아니야, 미어크! 그건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살다가 죽어간 수많은 사로스 포니들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일 뿐이야! 예언에 미쳐 살더니 이제 네 꼴을 좀 봐!" 여자는 몸을 떨고는 뒷걸음치며 흐느꼈다. "그게... 널 망가뜨렸어, 미어크." 여자가 훌쩍였다. "그것 때문에 너와, 네 전우들과 네 삶이 전부 망가졌어...... 대체...... 대체 뭣 때문이야?"

 

일순간 온 사원이 침묵에 빠졌다. 오직 코랄의 무거운 숨소리만 산발적으로 터져 나올 뿐이었다.

 

미어크는 여자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손 놓고 주저앉아 아무것도 안 했다면, 우리의 선조들이 했던 맹세대로 나이트메어 문이 계속 그 짓을 하게 냅뒀다면, 나이트메어 문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고 말았을 거야, 코랄. 군대를 꾸리고, 이퀘스트리아를 침략해 포니 문명의 마지막 남은 한 조각까지 절멸시켰을 테지. 한 시대 동안 그분을 조종하는 사악한 생각 하나 때문에 말이야." 사내는 코랄을 향해 다가와 여자의 어깨에 가만히 발굽을 얹으며 말했다. "맞아. 나는 그 예언을 믿고 있어. 그렇더라도, 그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만 제시해 주는 지침 정도에 불과해. 네 분의 공주가 다시 돌아온다면, 루나 공주께서 저주를 벗어던지실 수만 있다면, 나는 그 예언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 그렇게만 된다면 루나 공주께서, 그분의 아버지이신 콘수스가 그랬던 것처럼 순수한 악으로 추락할 일은 영영 없을 테니."

 

코랄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눈물이 천천히 뺨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아직도 모르겠니?" 미어크가 코랄의 턱을 가만히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우리의 미래를 지키려는 것뿐이야."

 

코랄이 눈물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푸른 촉광이 반짝 빛났다. 여자는 사내의 목에 매달려 달랑거리던 부엉이 팬던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창백한 발굽으로 팬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자긴 항상 미래를 꿈꾸긴 했지. 그 미래에 희망이라는 게 남아 있기는 해?"

 

미어크는 이상하다는 듯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내를 빤히 쳐다보며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자긴 저장고에 침입했어. 나이트메어 문의 힘이 담긴 수정을 훔치려고 했지. 무엇 때문이야?" 여자가 다시 훌쩍이며 더듬는 말로 물었다. "자긴 이제 현상 수배범이야. 온 병력이 자길 찾고 있어. 스텔라 대위를 비롯해 분기탱천한 유니콘들이 찾아올 거야. 그러면 자기와는 영영 만날 수 없게 되겠지. 그러면...... 그러면 우리에게 무슨 미래가 남아 있다는 거야?"

 

미어크는 죽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검은 두 눈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코랄이 되물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뭘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