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에서 루나 제국군 룬 가드 대원들의 철제 편자 소리가 요란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어크는 중간 정도 높이로 뻗은 교차로 다리 바로 아래에 바싹 붙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사내에게서 멀어질수록 더욱 큰 소리로 명령을 하달하는 스텔라 대위의 목소리가 여전히 감지되고 있었다. 시선에 포착되지 않은 다른 추적부대원들이 최대한으로 산개하는 순간을 기다려야 했다. 풀 덮인 땅덩이 가장자리까지 올라가려면, 근처에 포진한 추적자들의 시선이 가장 적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았다.
사내가 매달려 있던 다리 기둥 바로 저편에서 룬 문자가 빛을 흘렸다. 미어크는 몸에 두르고 있던 갈색 망토와 짊어지고 있던 가방을 단단히 조여 몸에 밀착시켰다. 그는 헛기침을 해 목을 닦으며 다시 입을 벌렸고, 기관지를 진동시키며 고음의 소리를 내질렀다. 진동음이 깨지며 기둥 뒤까지 흩어졌지만, 다른 쪽에 새겨져 있던 룬 문양 하나만큼은 건드리지 않아서 미어크의 존재는 아직 감지되지 않았다. 메아리가 돌아왔을 때는, 기둥 바깥쪽이 그래도 지나갈 만은 한 크기로 갈라져 있었다. 그는 룬 가드 대원들 대부분이 아직 다리를 건너고 있을 것이며, 나머지 소수는 평원 아래쪽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갔으므로 동굴 속 어둠을 뚫고 자신을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메아리가 귓가를 스치는 순간, 그는 탈출할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사내는 이를 악물며 날개 근육을 단단히 긴장시켰다. 비행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무자비하기 짝이 없는 화력을 자랑하는 제국군 추격부대 장비들을 그들이 가져오지 않을 리 없고, 산전수전 다 겪은 백귀 부대원이라 해도 유니콘의 살상 마법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스텔라 대위가 머리 위 다리 너머 무엇인가를 향해 소리쳤다. 뒤따른 메아리가 파문을 남기면서 미어크의 귓가를 지나가며 스텔라 대위가 자기 뿔보다도 높이 발굽을 흔들어 부대원들에게 각자 수색 위치로 이동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미어크는 안도의 한숨을 토하고 싶은 충동을 견뎠다. 사내가 그림자 속에 숨어서 가슴을 진정시키는 동안 검은 눈동자 위로 눈꺼풀이 내려와 덮였다. 이내 숨결이 잦아들어서 머리 위에서 울리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대원 몇몇이 줄지어 서서, 자신들이 타고 온 마나 추진식 호버크래프트에 오르는 기척을 감지했다. 스텔라 대위가 라즈샐른 중위에게 다른 명령을 하달하는 것 같았지만, 그 둘의 대화는 곧 미어크의 예민한 청각으로도 잡아낼 수 없게 되었다. 호버크래프트의 증기기관이 예열되면서 시끄러운 소음이 대기를 채워, 병력이 이동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도 전에 구두명령 소리를 찢어 흩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몸을 움찔하며 소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송곳니가 도드라진 이빨을 북북 갈았다. 바로 그 때, 불협화음 속으로 다른 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사내가 두 눈을 번쩍 뜨며 아래쪽에 걸린 다리 위를 건너가던 그림자 몇 개를 급히 쳐다보았다.
덜그럭거리는 은제 갑옷을 걸친 젊은 병사 하나가 다리 바로 옆 평원에 서 있었다. 그는 제국 상류층 특유의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제국군 군용 편자를 끼운 발을 들어 숨어 있던 사로스 출신 백귀를 똑바로 가리켰다.
“저기다! 백귀다!” 그가 역겨움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찾았다—!”
미어크의 송곳니가 밝은 마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심장 박동이 다급해졌고, 반대쪽 기둥에 새겨져 있던 룬 문자 역시 미친 듯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사내가 날개를 확 펼치자 걸치고 있던 갈색 망토가 휘날렸고, 그와 동시에 급강하를 시작해 검은 혜성처럼 젊은 근위대원을 향해 돌진해 갔다.
“윽!” 유니콘 대윈이 반들거리는 바닥 위로 구르며 신음했다. 그가 팽개쳐진 유리 바닥 바로 아래부터 수많은 금이 지류를 형성하며 거미줄의 형상을 만들었고, 그와 동시에 시끄러운 경보음이 대기를 가득 채웠다.
미어크가 급히 어깨 위로 걸친 망토 너머를 홱 돌아보았다.
사로스 포니의 급격한 움직임을 감지한 룬 스톤이 작동하면서 섬광과 시끄러운 경보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위쪽 다리 가장자리에 피어스 스텔라 대위가 서 있었다. 훤칠한 유니콘은 자신의 보랏빛 눈동자에 비친 전직 백귀 대원의 모습을 얼이 빠진 채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다음 순간, 스텔라가 노기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병력들에게 소리를 쳤다. “저기다! 추방자를 찾았다! 발포!” 스텔라의 어깨 갑옷에 박힌 마나 구체가 밝은 푸른빛으로 번쩍거렸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유니콘 룬 가드 대원들이 스텔라의 양 옆에 도열해 서서 자신의 앞다리를 휙 움직였다. 그러자 어깨 보호구에서 수정 같은 총신이 튀어나왔다. 뜨겁게 달궈진 마나 탄환이 장전되어 있어서, 하나같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미어크는 숨을 멈추고, 순식간에 젊은 병사가 쓰고 있던 헬멧을 이로 붙잡아 벗겨냈다.
유니콘이 그를 올려다보며 딱딱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윽!” 미어크의 네 다리가 그를 짓밟으며 튕기듯 뛰어오르는 순간, 그는 숨쉬기조차 버거운 듯한 소리를 토해냈다.
미어크는 날개를 퍼덕이며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가 몸을 반대로 뒤집으며 바로 아래 평원을 향하여 헬멧을 힘껏 던졌다.
“서둘러! 놈을 사살해—!” 스텔라가 소리치며 명령을 내렸으나, 그 소리는 곧 병력 전원이 으르렁거리며 외친, 어깨 총신에 장전된 룬 탄환을 작동시키는 사악한 주문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H'rhnum!”
이글거리는 푸른 기운이 궤적을 남기며 미어크를 향해 밀어닥쳤다. 사내가 급강하하며 사선射線을 벗어남과 동시에, 걸치고 있던 망토 가장자리에 불이 붙었다. 다행스럽게도 날아온 탄환을 전부 피한 사내는 방금 내던진 헬멧의 궤적을 따라 날아갔다. 강철 투구가 병사 하나가 밟고 서 있던 유리 바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 이내 충돌했다. 한 장 반투명한 유리가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유니콘 병사는 피 맺힌 비명을 토하며 그 아래 거칠고 날카로운 달의 심연 속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미어크는 새카만 날개를 빠르게 움직이며 쏘아지듯 강하해 그를 지나치며 그 너머 굴 속을 향했다.
“안 돼! 이런 빌어먹을, 안 된다고!” 스텔라 대위가 다리의 난간을 한쪽 발굽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그는 대원들 중에서도 중무장을 한 네 명의 병력을 가리키고는 난간 너머로 뛰어내리며 외쳤다. “너, 너, 그리고 거기 둘! 따라와! 그리고 중위!”
“예-예, 중대장님?” 라즈샐른이 다리에서 큰 소리로 외쳐 대답했다.
스텔라가 새로 뚫린 구멍 속으로 달려 들어가며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위쪽 도로로 이동하도록! 정말 달 표면으로 나갈 생각이라면 분명 측면 우회로를 이용하려고 할 거다!”
“알겠습니다!” 증기를 뿜어내는 호버크래프트에 각자 탑승한 나머지 대원들을 향해 라즈샐른 중위가 발굽짓했다.
“준비!” 질주하던 스텔라가 고개를 홱 움직이자 헬멧에 내장되어 있던 고글이 빛을 튕겨내며 튀어나왔다. “뛰어라!” 스텔라가 소리치자 다른 네 유니콘들이 사내와 동시에 앞다리를 힘껏 움직였다. 어깨에 부착된 월진 병에서 월진이 분사되며 겁먹은 기색 없이 발 밑의 거대한 구멍 속으로 뛰어드는 무리 주변에 짙은 먼지구름을 형성했다.
살인적인 속도로 강하하던 미어크가 등 뒤를 돌아보았고, 추격해 오는 다섯 룬 가드를 포착한 두 눈이 가늘어졌다.
스텔라 대위와 유니콘 근위대원들이 먼지구름을 뚫으며 떨어져 내려왔다. 추격자들이 차례차례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쳐 룬 갑옷을 작동시켰다. “Y'mnym!” 무리의 주위로 밝은 마력 기운이 번졌다. 유니콘 각각의 뿔에서 에너지 볼트가 뿜어져 나와 월진 구름 속에서 회전하더니 반투명한 푸른색 글라이더의 형태를 갖췄다. 룬 가드들이 반짝이는 손잡이를 잡으며 마력을 주입하자 마법 글라이더가 빛을 튀기며 유니콘 각각의 앞다리에 손잡이를 밀착시켰다. 흐릿하고 낮은 소리가 사방을 채웠고, 그와 동시에 다섯 글라이더가 미어크의 뒤를 쫓아가자 글라이더에 찢긴 대기가 높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미어크가 이를 악물며 깃털 없는 날개를 몸에 더욱 단단히 붙였다. 거의 막혀 있다시피 한 흰 굴 속으로 달려가는 사내의 주변으로 달 협곡의 압축된 공기가 스치며 날 선 소리를 냈다.
스텔라 대위가 비행 소대를 이끌었다. 그는 맞바람을 받으며 빛 어린 고글의 조준선에 사로스의 사내이자 목표물을 맞추었다. 스텔라가 가장 먼저 룬 탄환을 작동시키는 주문을 내질렀다. “H'rhnum!” 다른 네 명 추격자들이 사격 지시에 따라 주문을 외치자 총신 달린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발키리1의 일제 사격처럼, 마나 탄환의 포화가 쏟아졌다.
미어크의 은색 줄 그어진 꼬리 바로 뒤로 한 줄기 에너지 폭풍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덮쳐 들어왔다. 사내는 숨을 참으며 왼쪽으로 몸을 틀어 회피기동을 해 푸른 마나 탄환을 흘려 보냈다. 파란 잔영이 남았다. 바로 다음 사격이 이어졌고, 그는 오른쪽으로 급히 움직이며 한 바퀴 돌아 탄을 피했다. 코앞의 들쭉날쭉한 회랑을 향한 위험천만한 질주는 그 와중에도 조금도 수그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엔트로파 님 맙소사!” 룬 가드 하나가 소리쳤다. “곧 굴에 도착할 겁니다!”
스텔라 대위가 포효했다. “계속 추격해!” 그의 뿔에서 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스텔라가 기합성을 내질렀다. “H'jem!” 투명한 포신 하나가 파란 섬광과 함께 글라이더 아래 부분에 실체화되었다. “W'nyhhm!” 대포가 좌우로 회전하며 마나 튀기는 소리를 토해냈고, 이내 멀찍이 떨어져 있는 미어크의 몸뚱이를 겨누었다. 스텔라가 눈글 가늘게 뜨며 으르렁거렸다. “L'jymnh…” 어깨 갑옷에 박혀 있던 마나 구체가 토해내는 빛이 더욱 강력해지며 좁은 굴을 살기등등한 푸른빛으로 가득 채웠다.
미어크는 독기 어린 섬광의 끄트머리를 감지하고 초조한 듯 검은 눈을 깜박거렸다. 사내는 위치를 바꿔 포격을 피할 마지막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날개를 한 번 움직였다.
스텔라의 시선 위로 사로스 사내의 모습이 홱 잡아당겨지듯 급히 떠올랐다. 그럼에도 룬 가드 중대장은 포가 버텨낼 수 있는 한계점까지는 포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나 구체에서 스파크가 튀자 스텔라가 이를 악물며 포격 주문을 외쳤다. “Y'hnyrr!”
정제되지 않아 살기 어린 마력 덩어리가 포신 밖으로 쏘아져 나오며 미어크를 향해 불타는 푸른빛 잔영을 남기며 날아갔다. 그러나 전 백귀 요원은 이미 포격에 대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에, 기다렸다는 듯 강하곡선을 강하나선 형태로 변화시키면서 에너지 포탄의 주변을 빙빙 도는 형태로 포격을 피했다. 마나 광선은 사내를 태워버리지 못하고 한바탕 월진 산사태를 일으키며 동굴 벽에 가 부딪혀 무너뜨려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굴 입구의 절반을 메워버렸다.
미어크는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숨을 참으며 날개를 접고 미끄러지듯 하강하며, 굴러 내려오는 돌덩이 바로 뒤까지 속도를 내 따라잡은 뒤 가운데 회랑이 메워지기 직전에 급강하해 들어가 진입했다.
“대장님—!” 룬 가드 하나가 소리쳤다.
“알고 있다!” 스텔라는 이미 손잡이를 잡아당겨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산개해서 놈을 앞지른다!”
“예, 알겠습니다!”
대장과 네 룬 가드들이 각자 다른 구멍으로 날아 들어가, 미어크가 빠져나간 길목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회랑으로 향했다. 추적자들의 글라이더가 질러대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오갈 곳 하나 없는 목표를 쫓아 들어가며 달의 조밀한 몸뚱이 속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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