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강 저편에서 건너오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쥐고 있던 노를 놓칠 뻔하였다.
.정신을 추스르고, 노를 저어 배를 끌고 끊어질 듯 가느다란 울음이 솟는 곳으로 향한다.
.창백한 강변을 휘몰아 가는 새까만 강물 위로 바위가 곳곳에 솟고, 눈에 닿는 곳마다 고통과 비탄에 절여져 강변을 애써 기어오르려는 자들의 무리가 득실거려서 여자를 찾기란 어려웠다.
.끝없는 고문에 흐느끼고 비명을 질러대는 자들의 목구멍 너머에서 소리는 나오지 않으니, 한없이 여린 날개를 달고 막막한 검은 구 위를 살랑거리며 날아오는 한 줄기 울음만이 유일한 소리였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찾기는 찾았다. 끝내 자신의 색을 놓지 못하는 만큼이나 단단히 강변에 달라붙어 두려워하는 자였는데, 그 위로 노란 광채를 두르고 있었다.
.그녀보다 먼저 죽은 다른 수많은 이들처럼 창백하고 길 잃은 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노를 저어 배를 밀고 석회화한 강변의 한 물가에서 오도가도 못 하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배를 끌고 다가서자 죽은 자들이 물 속에서도 소리를 듣고 강변으로 몰려와, 각자 쥔 쇳조각을 흔들어 내보이며 수백 개의 혓바닥으로 소리 없는 울음을 울어댔다.
.눈 앞에 명멸하는 음침한 얼굴들은 각자가 흔드는 동전만큼이나 다양한 것으로, 몇몇은 아주 생생하게 번들거리지만 다른 몇몇은 억겁의 세월 동안 흐려지고 무너져서 녹이 슬어 있다.
.저들에게는 용무가 없었으므로, 백골만 널린 모래톱에 노를 쿵쿵 내리찍어 망자 사이로 길을 내자 죽음의 장막 너머에 묻히고 잊힌 보물처럼 샛노란 형체가 드러났다.
.갑작스러운 침묵에 놀라기라도 한 것인지, 전율하는 망자의 무리를 쳐다보더니 이쪽으로 눈물에 젖은 얼굴을 돌렸다.
.덮어쓴 망토 자락 너머로 천천히 발굽을 내밀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심연에 찾아온 한 떨기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로 훌쩍이며 말했다.
.저... 전 돈이 없는걸요.
.나는 발굽을 거두지 않았다. 그 여자 앞에 정박해 있는 내내, 나는 가만히 발굽을 내밀고 서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일어나 차게 출렁이는 강가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여자는 순순히 배에 오르는 쪽의 사람인 모양이었는데, 강에서 기어나온 것들이 하나같이 그녀의 길을 가로막으며 알아먹을 수 없는 저마다의 울분과 울음으로 들끓는 몸짓으로 여자를 막아세우려 안달했다.
.여자가 배 위로 뛰어오를 만한 공간을 만들어 주려고 노를 가로로 한 번 휘둘러 떨쳤다. 망령들이 뒤로 물러섰다.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치워 버릴 힘은 없지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있는 여자임은 알고 있었다.
.여자의 발굽을 잡아 배 위로 끌어올리고, 배 가운데를 가리켰다.
.여자는 달달 떨면서도 내가 가리킨 자리에 가 앉았다. 뱃머리에 매달아 둔 등잔에서 창백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모습이 여자의 새파란 눈동자에 비쳤다.
.얕은 물에 노를 담그고 힘껏 밀기를 반복하자 지옥의 한복판과도 같았던 강변이 멀어져 갔다.
.강 위를 떠가는 동안에도 죽은 자들의 울음은 그칠 줄 모르고 그 세력을 더해갔다. 내가 저들 중 하나를 데리러 오기까지 앞으로 며칠, 몇 달, 몇 년, 몇백 년이 남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시커먼 강 위로 나아가는 동안, 그 울음도 사그라졌음은 물론이다.
.이제 우리, 사공과 길손 둘뿐이었다.
.여자는 침묵이 불편한지 배 모서리를 붙들고 앉아 좀 전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눈물을 몸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짓을 했어요. 나 혼자 에버프리 숲에 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그랬어요. 제가 아니라 친구들이라도 방심하면 어떻게 되는지 봤으면서도. 맨티코어가 아프다는 얘길 듣고 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직접 그 아이를 돌봐 주러 갔어요. 치사율이 얼마나 높은지 그 디스코드마저도 그것만큼은 못 고친다는 변이 인플루엔자에 걸린 거라고 트와일라잇이 그랬지요. 믿고 싶지 않았어요. 아주 약간의 친절과 애정을 담아 간호하면 못 나을 병이 없다고 믿고 싶었지요. 결국 그 바보 같은 짓 때문에 죽게 되었어요. 병으로 힘들어하고 있던 그 불쌍한 것 코앞에 스스로 걸어갔으니...... 죽을 수밖에 없었겠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강 위로 퍼져나가는 잔물결처럼 조용히 노만 저었다.
.여자는 몸을 떨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여자가 한 번 흐느낄 때마다 울음이 밀려나오며 몸을 뒤흔들었고, 몸이 흔들려 배가 같이 출렁거렸다. 머지않아 망각의 품에 안기게 될 몸에 저런 울음이 남아 있었구나 싶었다.
.너무 일찍 죽었어요. 친구들을 버린 거에요. 바보같은 실수 때문에 친구들은 평생 제 빈자리를 봐야 해요. 왜 내 생각밖에 안 했나 후회돼요. 친구들 곁에 있어야 하는데. 이미 가진 것이라도 필요없는 것은 아닌데. 잃어버린 것이라면 더더욱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인데. 아직도 울음소리가 들려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퍼하고 있어요. 제가 한 것이라곤 그 슬픔에 기름을 붓는 것뿐이죠. 아, 전 정말 나쁜 친구였어요. 한 번만 친구들에게 말을 전할 수만 있다면, 내가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또 너무 일찍 떠나 미안하다고 해주고 싶어요.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여 물 위를 쳐다보았다. 여자의 색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노란 솜털과 분홍색 갈기에서 서서히 색이 빠져나와 형체 없는 아지랑이로 변해갔다.
.그리하여, 나는 영겁의 세월 끝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저들을 저버린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비롯해 언제 어디서든 네 말은 저들에게 분명히 닿을 것이니 심려치 마라.
.여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여자의 떨리는 새파란 눈동자 위로, 머리에 눌러쓴 검은 두건 아래로 삐죽이 튀어나온 창백한 입가가 비치고 있었다.
.무슨 뜻인가요? 친구들도 여기 있는 건가요? 지금 여기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다만, 그리될 것이다.
.언제요?.
.그리 멀지 않은 때에 각자의 생명과 색을 거느리고 있던 자들 모두, 여기 모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제 목소리가 닿는다는 거죠?.
.망자들을 사자의 강 저편으로 건네 준 세월이 짧지 않아, 죽은 자가 생전에 이룩한 덕성과 흠결이 어느 정도인지 나름대로 판단할 정도는 된다. 네 흠결은 크지 않다.
.정말인가요?.
.너는 친절한 사람이었군. 죽음의 장막 너머에서도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는 덕성은 결코 사소한 성취가 아니다. 삶에서 그 어떤 고난을 만나더라도 지금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살아서 너를 만난 자들은 네가 이제 없음을 알더라도 누가 너를 빼앗아 갔다는 억하심정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저들의 머릿속에 네가 보여준 온기와 자애가 분명히 남아, 꺼지지 않는 불처럼 타오를 터이니.
.여자는 입술을 떨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솜털에서 색이 빠져나가던 것이 멈추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다고 알고 있다. 죽은 자들이 강을 건네게 도와 주는 것이 내 일이지, 그것을 판단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니까.
.여자가 차분히 숨을 내쉬었다.
.그 숨결에서 선두에 매단 등잔보다도 밝고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와 여자의 얼굴을 적셨다. 얼굴에 다시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고,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말라 없어졌다.
.친구들이 저를 따뜻한 추억으로 간직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어요.
.친절한 마음은 기억보다도 오래 남는다. 친절이란 생리적으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향해 주어지고 옮겨다니며 수를 불리지. 네가 베푼 친절은 대를 이어 전해질 것이다. 네가 평생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이라도 말이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홀로 동떨어진 작은 섬이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마찬가지로 작은 샘 하나가 있어 끝이 없는 심연처럼 칙칙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러면 저도 언젠가는 그 사람들이랑, 제 친구들을 다시 만날 날이 오겠죠?.
.우리 모두 언젠가 어둠과 하나 될 운명일지니, 그것은 천지창조의 때부터 예비된 종착지다. 각자에게 주어진 덧없는 시간 동안 타인을 향해 품은 측은지심과 연민을 통해서만 사람은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네가 남긴 흔적은 그 누구보다도 깊이 남을 것이며, 영겁 너머 가장 어두운 구덩이 속에서도 네 벗들을 네게 인도해줄 것이다.
.여자는 빙긋 웃었다.
.마지막 한 방울 눈물이 굴러 떨어짐과 동시에, 섬의 새까만 끄트머리에 뱃머리가 닿았다.
.이제 슬프지 않아요. 고맙습니다.
.감사는 접어두거라. 만물이 스러진 뒤 다시 일어날 불꽃을 기다려라.
.여자는 가녀린 다리로 배에서 내려 섬 한가운데의 작은 샘을 향하여 걸어갔다.
.걸어가는 여자의 등 뒤로 색이 번지며 흔적을 남겼다. 여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시커먼 웅덩이로 다가가 몸을 담갔다. 여자가 남긴 색은 물에 젖어 가라앉는 화려한 이불 조각처럼, 그렇게 가라앉았다.
.눈 깜박할 사이에 여자는 한 줄기 한숨과 함께 무無로 녹아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수표면이 잠시 반짝이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그 여자의 목숨이라는 촛불을, 훅 불어 끄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것이 잠잠해지고 고요해졌다.
.다시 노를 잡고 배를 돌려, 아득한 저편을 향해 다시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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