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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포니 최후의 날

Chapter 21. Everbriar

by Mergo 2019. 8. 25.

그녀는 에버프리 가시숲 속으로 그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가시덤불로 뒤덮여 버린 숲 위에서 바로 떨어져 내리는 건 가시덤불의 새카만 그림자 아래에서 도사리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괴물들을 감안하면 결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볼 수 없었다. 스쿠틀루는 자신의 떨리는 어깨 위로 장비들을 짊어지고 죽은 나무둥치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변은 탄 냄새를 풍기는 탄화된 나뭇잎과 부서진 퇴적암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한때 생명이 있었을 것들이었으나 이미 생명을 빼앗겨 그 조각 하나마저도 남지 않은 지금의 것들로 변한 것들이었고 영겁의 회색은 깊은 어둠에 길을 내주어 스쿠틀루는 눈을 감았다 떠도 눈이 멀었다.

 

하늘에 걸린 황혼의 연무는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텁텁해져 가는 공기를 통해 새어 들어왔고 시커먼 돌 조각과 바위 덩어리들이 끝도 없이 박혀 있는 깊숙한 구덩이와 질퍽해진 눈 덮인 고요한 언덕을 비추었다. 스쿠틀루는 말라 버린 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고 재앙이 가져온 충격파가 세상의 뼈대인 기반암까지 산산이 부수어 분쇄한 대지의 할퀴어진 속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창백하게 질린 흰 뿌리는 서로 얽히고 설켜 어둠을 파헤치며 하나의 둥그런 터널을 만들었다. 마지막 포니는 마치 한 마리 외로운 곤충처럼 느릿느릿, 자연이 만들어낸 하프파이프를 따라 내려가다가 순간 깨달았다. 자연계에는 백색 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실 버려진 거대한 뱀의 뱃속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그녀는 뒤틀린 뱀의 모가지에서 나와 등 뒤를 돌아보았다. 길고 긴 등뼈 위에는 한 쌍의 수염이 달린 두개골이 얹혀져 있었다. 수염 한쪽은 밝은 오렌지색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회색이 감도는 파란색이었다.

 

"어라. 뭐 어찌됐든 결국은 스위티벨 말이 맞았네, 애플블룸." 갈색 포니는 잠시 허공을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고 이내 입을 다물어 침묵이 찾아왔다. 말을 한다는 사치는 여기까지만 부리기로 했다. 거대한 두개골 바로 너머에는 에버프리 가시숲의 진정한 어둠이, 악몽 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녀는 어쨌든 그 안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죽고 싶어 환장한 이가 아니라면 저 너머에서부터는 그 어떤 소리조차 내지 않을 터였다.

 

스쿠틀루는 제자리에 걸터앉아 옆구리에 지고 있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녀는 곧 두꺼운 가죽 방호복을 꺼냈다. 방호복은 칠흑처럼 새카매 저 너머의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어두운 그림자와 잘 어울렸다. 방호복은 말 그대로 전차의 장갑판처럼 두꺼웠기 때문에 그녀의 한 쌍 날개도 완전히 보호해 줄 것이었다. 곧 저 너머로 들어갈 것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이런 예방 대책은 꼭 필요했다. 또 애당초 그녀 앞에서 떠오르고 있는 깊은 심연 속으로 굳이 무턱대고 날아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방호복 바깥 총집에 황동제 라이플을 집어넣었고 탄창 몇 개를 꺼내 매달았다. 둘 다 검은 방수포로 감싸 룬스톤 탄환에서 발하는 희미한 빛을 가리기에 충분했다. 스쿠틀루는 직접 만든 마우스피스를 장착한 검은 가죽제 마스크를 썼다. 숨소리를 가리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고, 엄청나게 차가운 공기를 따라 흐르는 미세먼지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눈앞의 그림자 속으로 매끄럽게 걸어 들어온 뒤, 스쿠틀루는 가방 멀찍한 곳 주머니를 뒤적거려 열었다. 그녀는 더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빛을, 에메랄드 빛을 보고자 했다. 그녀는 옆구리에 완충재를 댄 주머니에 잘 보관되어 있던 녹색 화염을 봉인한 룬 단지를 한 번 흘끗 바라보았다. 스파이크의 숨결은 시간여행자가 중얼거린 주문에 복종하여 그 안에서 끓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녹색 빛이 주머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가방을 꽉 닫아 조였다. 이 정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면 그 어떤 빛도 허용되지 않을 터였다. 그녀가 늘 가지고 다니던 랜턴 역시, 쓸 수 없었다.

 

스쿠틀루는 다른 쪽 주머니 깊숙한 곳을 뒤적거려 오랫동안 꺼내 쓰지 않았던 고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안경테는 널찍했고 깨끗했는데, 양쪽 안경알과 안경테 사이에는 자그마하고 가느다란 홈이 파여져 있었다. 양쪽 안경테의 네 귀퉁이에는 조그마한 룬스톤이 박혀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꽤나 익숙한 동작으로 가방 속에 발굽을 넣었고, 이내 아주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었고 곧장 그 주머니를 열어 고글에 패여 있던 홈 속으로 월진(月塵)의 고운 가루를 쏟아 부었다. 홈에 월진이 가득 찬 것을 확인한 마지막 포니는 이내 홈 위 덮개를 탁 하고 덮어 닫았고, 고글을 입가로 가져가 한 마디 주문을 중얼거렸다.

 

보라색 연무는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스쿠틀루는 유니콘 뿔 팔찌에도 검은 가죽으로 만든 밴드를 덮어 마법이 발()하며 발하는 섬광을 가리고 있었다. 고글의 두 안경알 쪽에서도 아주 잠깐, 바닐라 색 섬광이 번쩍하며 빛났고, 마지막 포니가 고글을 자기의 갈색 머리 위로 들어 진홍색 눈 위로 뒤집어씀과 동시에 고글 렌즈는 달을 매개로 한 마법에 잠시 떨렸다. 그녀의 시선은 흰 눈 위로 꿈틀대며 올라오는 검은 윤곽선의 흔적에 깜짝 놀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월안: 투시(月眼透視마법을 마지막으로 쓴 지 어언 수 개월에서 일 년쯤 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잠시 멈추어 서서 마법에 눈을 적응시켰다. 에버프리 가시숲 속에 숨은 온갖 윤곽들과 형체들은 상아색 뼈다귀 위로 박힌 시커먼 스키드 마크처럼 그녀의 눈앞에서 춤추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춤추며 부풀어 오르는 에버프리 가시숲 속의 온갖 윤곽선과 형체들은 마법 걸린 고글 너머로 비쳐졌고 스쿠틀루는 죽음으로 가득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검은 에너지 반응을 보이는 물체, 즉 방해물이 있는지 살폈다. 물질이 내뿜는 에너지는 룬으로 마법을 걸어 둔 렌즈를 통과해 나가며 굴절했고, 그 덕분에 사물을 대략이나마 구분할 수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준비를 끝냈다. 그녀는 가죽 방호복과 갈색 솜털 사이에 매달린 자그마한 드래곤 이빨의 무게를 느꼈다. 무게는 찌르는 듯 다가왔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입맞춤은 그녀를 깊어 가는 에버프리 숲의 주둥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있었다. 날지 않는 페가수스는 무거운 숨을 들이마셨고 소리 없는 전차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 속을 달의 투시경에 의지해 걸어 들어갔다. 그녀 앞까지 뻗친 거대한 가시덤불은 순백의 세상 속으로 마구 뻗친 시커먼 가시들 같았고, 그녀는 최대한 신중하게 대지의 찢어진 가슴 속으로 천천히... 커다랗고 시커먼 가시 덩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훌쩍훌쩍 뛰며 들어갔다.

 

 

 

스쿠틀루는 볼 수 있었으나, 볼 수 없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었다. 에버프리 가시숲은 산 이들이 들어가도록 만들어진 밀림이 아니었다. 그 곳에는 그것들이 있었다. 이상하고, 잽싼데다가 아무 생각도 없는 그것들의 소리가 사방에 고동치며 울리고 있었고 놈들은 영겁의 그림자 속에서 득시글거리고 있었고 마지막 포니가 내딛는 조용한 발걸음 소리를 한 번 낫질해 베어 내고 있었다. 스쿠틀루가 보는 고글 너머의 세상은 온통 흰색이었고 놈들은 단순한 시커먼 형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마스크 속에서 들려오는 그녀 자신의 숨소리와 그녀 귓속에서 들려오는 무언가의 울림밖에 없었다. 사방을 옥죄어 오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흡사 좀비의 발걸음을 보는 듯, 발을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갔고 날카로운 가시에 유린당한 이퀘스트리아의 깊은 품 속으로, 심장이 한 번 뛰고 다시 한 번 더 뛸 때마다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그녀가 걸어왔고 또 나아갈 길은 무서울 정도로 깎아지른 듯한 길이었고 온갖 짐을 묵직하게 지고 있는 페가수스는 두껍고 시커먼 가시덩굴에서 가시덩굴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도저히 날개를 펼칠 상황이 아니었고설사 다른 생각이 있었다 해도 별 수 없었을 것이었다마지막 포니는 매번 몸을 던질 때마다발을 끌며 걸어갈 때마다몸을 움직여 가시를 피할 때마다 계속 머릿속으로 되새기고 있었다땅 깊숙한 곳까지 파인 이 끔찍한 구멍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그녀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밖으로 나가는 데는 지금까지 들인 땀보다 네 배는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할 것이라는 것을.

 

그녀가 찾으러 온 것, 그것은 그녀의 가슴팍 위에 노란 줄로 매달려 단단히 고정된 채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찌르는 드래곤의 이빨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가 굵직굵직한 가시 덩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훌쩍훌쩍 몸을 날릴 때마다 그 기운이 서서히 강해진다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기운은 악몽을 관통하여 그녀를 달래는 조용한 노랫소리 같았다. 목소리는 서서히 시들어 갔지만 여전히 부드러웠고 아름다워서 가죽 마스크 안에서 천둥처럼 울리는 마지막 포니의 거칠어진 숨소리의 불협화음과 정반대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 훌쩍 뛰어 내려오자 땅은 안정되어 잠잠했다. 재앙이 모든 것을 앗아가기 전 에버프리 숲에 깔려 있던 흙들이 여기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도 굵직하고 단단한 가시들의 기분 나쁜 덩굴들이 가득 뿌리를 박고 있었고 그 가시는 날카로운 칼로 숲을 만든 모양이어서 새카만 소용돌이처럼 춤추고 있었다. 스쿠틀루의 월안에는 그렇게 보였다. 움직임 없는 백색의 바다를, 마지막 포니는 용감히 가죽 두른 몸뚱이를 움직여 걸어갔다. 그녀는 여기저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을 위협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낮게 뻗어 그녀의 목을 베어 버릴 수도 있을 만한 위치에 솟아난 가시를 조심스레 몸을 숙여 피하며 계속 걸어갔다. 기반암 위는 몇 군데가 갈라져 길게 틈이 남았고 이퀘스트리아의 피 흘리는 심장에서 올라온 유황 덩어리가 사방에 널려 특유의 냄새를 뿜어내 그녀는 순간 욕지기가 일었다.

 

그녀의 답답한 숨 너머의 침묵은 살의를 품은 듯했고 그래서 버려진 가시숲의 거대한 공허는 끝없이 이어지는 비명소리와 몸을 섞어 마지막 포니는 끝내 어리석게도 자기 스스로를 파묻은 말 그대로의 시커먼 석관에 굴복하여 마스크를 뜯어 벗어 버리고 싶어졌다. 스쿠틀루가 용기를 쥐어짜내 숨을 들이쉬는 순간, 깃털처럼 가벼운 드래곤 이빨은 다시 한 번 그녀를 앞으로 인도하는 듯 그녀를 찔렀다. 천상의 목소리의 꿈은 아직 머물고 있었고 그녀는 차가운 발걸음을 옮기며 에버프리 가시숲의 시커먼 어둠과 맞섰다.

 

무덤 속을 돌아다니는 그 한 시간 동안, 스쿠틀루의 앞에 드리우고 있던 검은 그림자는 두 배가 되고 세 배가 되었으며 네 배가 되었다. 처음에는 굵직한 가시들이 조금 더 굵어지는 정도여서 사방으로 구멍이 뚫린 강산(强酸)의 미궁을 이루었고 서서히 뒤틀리고 꺾이며 새로이 굴을 뚫어 마지막 포니는 잽싸게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하지만 그 순간 사방의 그림자는 살아 움직여 생명보다도 더욱 창백하고 차가운 무언가로 화했고 그녀가 가만히 서 있어도 그림자는 계속 살아 움직였다. 불길한 기운이 들이닥치고 있었고 스쿠틀루는 주변을 한 바퀴 발을 끌며 걸었고 재빨리 몇 줄기 두꺼운 덩굴의 나무 같은 몸뚱이 뒤로 움직였다.

 

그녀의 발걸음이 절뚝거리며 떨어졌던 곳에는 피가 조금씩 흘렀고 그녀는 고글 너머로 잽싸게 몸을 움직이는 수많은 그림자들을 조심스레 바라보며 거북보다도 한참 느린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 놈들의 그림자는 날씬했으며 공허했고 핏기 하나 없는 몸뚱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마치 종이조각으로 만든 나뭇잎 몇 개가 흐릿한 가시숲 위로 난 흰 흠 위로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놈들은 갑자기 수백 개의 꿈틀대는 손가락을 꺼내 광기의 그림자를 엄청난 속도로 쏘아 보내고 있었다. 장()을 말아 쥐는 듯한 그림자는 마치 그렇게 조용하기도 불가능할 것 같은 엄청나게 거대한 뱀들이 꾸물대며 바다를 이루는 모습과 같았고 그 그림자는 여전히 스쿠틀루의 마스크 쓴 얼굴 위에서 넘실대며 호리호리한 다리를 마구 떨어 대는 그림자 너머에 있었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났고, 스쿠틀루는 앞으로 나아가던 발걸음을 완전히 멈추어야 했다. 마지막 포니는 다 부서져 조각난 덩굴에 기대어 앉았고, 흔들리는 검은 얼룩들은 하나의 웅덩이를 이루어 그녀의 앞에서 다리를 절며 몸부림치고 있어 흡사 물 밖으로 꺼내 놓은 죽은 물고기 같았다. 그녀가 멈추어 기다리고 있는 까닭은 상처 입은 한 포니를 향해 털이 북슬북슬하게 나고 호리호리한 것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고 놈들의 발톱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 오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녀의 움직이지 않는 시야 한가운데서 놈들이 만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허우적대는 놈들의 몸뚱이 위로 자기의 몸뚱이를 거칠게 밀었고 놈들의 아래턱은 단검처럼 날카로웠으며 시커맸다. 놈들은 차가운 침묵으로 흔들리는 시커먼 덩굴을 찢었고 악몽의 옷깃 한 올 한 올마다 스며들었다. 스쿠틀루는 오랫동안 놈들을, 놈들의 외골격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놈들의 경련하는 수백, 수천의 영혼 없는 시커먼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고, 놈들의 몸은 꼬불거리는 촉수로 뒤덮여 있었다. 공기에는 재가 섞여 있지 않았으나 황동색의 습기로 공기는 갈수록 텁텁해져 갔고, 그림자들은 다시 월안의 흰 배경 속으로 서서히 녹아 들어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스쿠틀루는 움직이지 않았다. 놈들이 아직 거기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고, 놈들도 그녀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그녀의 답답한 숨결 속에 정반대의 흐름이 맥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쿠틀루, 그녀의 목표까지는 절반 정도 와 있었다. 그녀는 이 죽음 같은 순간 때문에 몸을 급히 움직이지 않았고, 멍청한 짓도 하지 않았으며 충동적인 짓 또한 하지 않았다. 불조차도 얼려 버릴 것 같은 차가움으로 그녀는 조용히 가방에 발굽을 가져가 검은 천으로 감싸 놓은 라이플을 잡아당겨 꺼냈다. 저 너머에서 약간의 흔들림이 보였다. 월안으로 보이는 저 너머에서 놈들이 잠시 다시 그 시커먼 형체를 드러냈고, 곧 다시 흰 배경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그녀는 저 이름 없는 놈들이 그녀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 척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놈들을 무시하는 척 했다. 그녀는 라이플의 황동제 총신을 길게 꺼내 마치 다섯 번째 다리라도 되는 양 쥐었고, 그녀의 입술은 언제라도 숨겨 놓은 룬스톤 탄창을 꺼내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까웠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었다.

 

심장이 한 번 뛰었다. 그녀는 순간 동굴의 한 구석에 가 웅크리고 있는 자기의 모습에서 버려진 황무지에서 울려 퍼지는 트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흐느낌에 갈라진 자장가를 부르던 어린 날의 그림자를 기억했다. 여기, 얼굴 없는 에버프리 가시숲의 수많은 괴물들의 날랜 발톱들과 대치하고 있는 어른 스쿠틀루는 조금도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죽임으로 얼룩지고 굳어진 그녀의 삶은 예전에 비하면 훨씬 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녀는 라이플에 매달렸고 라이플은 그녀에게 매달려서, 두 황동색 물체는 뒤틀린 가시투성이의 어둠 속에서 서로 맞물려 있었다.

 

그녀는 놈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놈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버려진 땅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침 흘리는 놈들이, 죽음 그 자체가 군침을 더 이상 흘리지 않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드래곤 이빨은 순간 유순한 친구로서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순간의 헌신적인 목격자로 달래고 있었다.

 

우주에서도 가장 짙은 어둠이 드리운 심연 안에서 스쿠틀루는 월안마법이 걸린 고글 너머의 두 눈을 감고 몸의 긴장을 풀었다. 다시 한 번 더 부드럽고 섬세한 그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기억의 두 방향을 한 번에 끌어당겼고, 대략 이십 년 하고도 오 년을 더 뒤로 돌렸다. 수많은 눈이 달린 놈들의 겉모습은 저 너머의 가시밭 속으로 발을 끌며 사라졌고, 마지막 포니는 시간을 반으로 쪼개 쓰기로 했다. 그녀의 마음은 순간 붕 떠 그녀가 한때 살았던 기억 속으로, 그 분별 없는 경계로 향했다.

 

 

 

 

"쟤들 말인데... 저기..." 오렌지색 망아지는 초조한 듯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쟤, 쟤들이 날 물지 않을까?"

 

플러터샤이는 가벼운 웃음소리로 까르르 웃으며 잔물결 이는 호수의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은 스쿠틀루의 옆에 가 앉더니 조그마한 페가수스 꼬마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설마 이 아이들이 그런다 그래도 네가 좋아서 가볍게 꼬집는 거니까."

 

"그, 그래. 알았어." 망아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망아지의 두 발굽은 한데 모여 빵 부스러기를 동그랗게 모아 담고 있었고, 아이는 이내 두 발굽을 뻗어 빵 부스러기를 내밀었다. "쟤들이 내 눈을 '꼬집기' 전에 말이나 해 줘."

 

한 쌍의 분홍 깃털을 한 플라멩코가 물가로 살금살금 걸어오더니 스쿠틀루를 의식하는 듯, 반짝거리는 눈으로 아이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새들은 목을 젖히더니 날개를 한 번 푸드덕거리고 부리를 뻗어 망아지가 모아 쥐고 있던 부드러운 빵 부스러기를 가볍게 톡톡 치듯 쪼아 먹고 그 길쭉한 목구멍 속으로 넘긴 뒤, 투명하고 푸른 호수 너머로 날개를 펼쳐 날아가 버렸다.

 

"봤지?" 플러터샤이가 빙긋 웃으며 부들 옆에 놓아두고 있던 고리버들 바구니 안에서 먹을 것을 좀 더 꺼내며 말했다. "충분한 인내심과 친절한 마음만 있다면 저 아이들을 기다리는 건 쉬워. 한 포니의 영혼에 깃든 고요한 마음씨는 야생의 충동적인 본능보다도 더욱 오래 가니까. 어떻게 보면 정말 아름다워. 우리 혼자서 온 세상을 돌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아, 정말?" 스쿠틀루는 오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뒤뚱뒤뚱 걸어와 그녀가 쥐고 있던 빵 부스러기를 제멋대로 쪼아 먹자 조금 몸을 떨었다. 오리는 잔잔하던 호수 위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마치 물수제비하듯 백조와 수달, 자라, 잠자리 사이로 부산히 날아가 사라졌다. "정말 인정해야겠는데, 플러터샤이. 언니는 진짜 요 조그마한 애들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다니까. 밥을 너무 많이 가져다 주는 거 아냐?"

 

"음... 글쎄..." 노란 포니의 뺨이 살짝 붉어졌고 그녀는 아삭한 녹색 상추 한 장 위로 거북 한 마리를 올려 주며 말했다. "나도 요 근처 동물들한테 내가 조금 지나치게 친절하게 군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는걸. 아이들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몰라. 또 이 아이들 주변에는 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아주 아름답고, 절로 기분 좋아지는 노랫소리랑 닮았다고 해 둘게. 내가 여기 단단한 땅 위에 내려앉았을 때부터 그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동물 친구들에게만 있는 일종의 분리된 평화라고나 할까. 그건 클라우드데일에서도, 포니빌 주택가에서도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거란다."

 

"그래, 알았어. 그건 그렇고, 지금 내 발굽 위에서 빵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이 새 한 마리만 마을로 데리고 가서 슈가큐브코너에 들어가면 케이크 아저씨랑 아줌마가 해수구제업체(害獸驅除業體포니들을 불러 올지도 모르겠는걸." 스쿠틀루는 빵 조각들을 좀 더 집고는 불현듯 호수 옆의 나무둥치 위에서 느릿느릿 내려와 눈을 멀뚱거리고 있는 다람쥐 두 마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씩 웃으며 다람쥐 앞에 빵 조각을 조금 던져 주었고, 다람쥐들은 은근히 교활해 보이는 새까만 눈을 하고는 좀 더 가까이 와 재빨리 빵 조각을 낚아챘다. 다람쥐의 복슬복슬한 꼬리는 즐거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기, 스위티벨이 그러는데 이퀘스트리아 저편 머나먼 곳에 사는 설치류 애들이 말을 할 수 있다지 뭐야. 그런 말 들어 본 적 있어?"

 

"오, 스쿠틀루, 세상은 아주 넓고 또 조금은 이상한 곳이란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궁금증이 아주 많이 남아 있으니까. 또... 어... 그, 그렇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문명을 이루기에 충분한 지능을 가진 다른 동물의 눈으로 보면, 우리도 저 아이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을 거란다. 누구든지 놀랄 만한 사고 능력을 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야. 너라도 정말 깜짝 놀라고 말 거야. 음... 예를 들어 볼게.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애완동물인 필로미나를 생각해 보자. 불사조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꿩이나 명금(鳴禽고운 소리로 우는 새)과 마찬가지로 별 생각이 없는 아이들처럼 보여. 하지만 불사조들은 아주 귀하고 영리한 아이들이란다. 우리의 말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고 말이야. 그저 우리 포니들이 그 아이들의 불 같기도 하고, 또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 후후훗..." 노란 페가수스는 숨소리가 섞인 웃음소리로 말을 마쳤다.

 

"불사조... 불사조... 불사조라..." 스쿠틀루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바람이 아이의 분홍 갈기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지나감과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구겨졌다. "뭣 좀 물어 볼게. 그 불사조란 게 닭 머리를 한 그 괴물을 얘기하는 거야?" 아이가 마른침을 삼켰다. "잘못 없는 포니들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그 괴물 말이야."

 

"어머, 아니야. 스쿠틀루." 플러터샤이가 부드럽게 고개를 흔들며 오도독거리는 소리를 내며 음식을 깨물어 먹고 있던 거북을 부드럽게 토닥거리더니 망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건 코카트리스야. 걔들은 불사조에 비하면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훨씬 풀풀한 녀석들이란다."

 

"훨씬 풀풀... 뭐?"

 

"걔들이 훨씬 더 성질이 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해서 화를 더 잘 낸다는 뜻이야." 플러터샤이가 수줍은 듯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불사조는 언뜻 보면 굉장히 무서워 보일 수 있어. 날개도 그렇고, 온 몸이 불에 휩싸여 있으니까. 하지만 그 아이들은 달리 못된 장난만 치지 않으면 굉장히 순하고 착한 아이들이란다." 플러터샤이가 까르르 웃더니 조금 쑥스러운 듯 겨우 알아볼 정도로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래도 음... 불사조를 화나게 하는 건 그렇게... 괜찮은 생각이 아니야."

 

"헤. 절대로 그런 짓은 안 할 거야." 스쿠틀루가 말했다.

 

갑자기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평화롭던 대지가 두 조각으로 찢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동물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몇몇 새들은 하늘을 향해 그들의 허둥거리는 날개를 펄럭거렸다. 플러터샤이도 마찬가지로 겁을 먹었고 여자아이 같은 높은 목소리로 꺅 하고 짧은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진정하고 동물들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무서워할 것 없어!" 그녀는 그러면서도 마른침을 삼켰고, 다시 한 번 믿음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냥 천둥소리란다! 폭풍은 아직 멀리 있어, 우리 귀염둥이들아!"

 

스쿠틀루는 지평선을 향해 눈을 돌렸고, 문제의 그 먹구름들은 갈수록 짙어지고 두꺼워지며 이퀘스트리아 대협곡의 서쪽 구석에 매달려 있었다.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오늘 하루 종일 오는 거야? 기상관리본부 포니들이 저번 주에도 폭풍우를 내린 걸로 기억하는데!"

 

"겨울 마무리를 한 지도 꽤 오래 지났잖니." 플러터샤이가 빵 조각을 호수 위에 던져 주며 말했다. 한 무리의 거위 떼가 플러터샤이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이제 슬슬 여름이 올 때도 됐지. 슬슬 더워지는 걸 생각하면 앞으로 꽤나 바쁘게 비를 뿌려야 할 거야. 어... 내가... 기상관리에 그렇게 박식하진 않지만 말이야. 언젠가 한 번 레인보우 대쉬가 나한테 그걸 설명해 주려고 한 적 있었거든. 대쉬가 그러는데, 미리미리 폭풍우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쌓이고 쌓였던 습도 때문에 7월 중순쯤에 거대한 사이클론이 될 거라고 했어. 누구도 그, 그런 끔찍한 게 오길 바라지는 않으니......"

 

"헤, 내가 보기엔 그런 재미있는 일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플러터샤이가 마른침을 삼켰다. "스쿠틀루, 사이클론 안에 들어가 본 적 있니?"

 

"아직까지는." 스쿠틀루는 어두워져 가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하품했다.

 

"음, 난 들어가 본 적 있거든. 그건 절대로 즐거운 경험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 모든 종류의 기상현상에 미리 손을 써 두지 않으면 이퀘스트리아는 아주 무서운 곳이 될 수도 있단다."

 

"하지만 언니들은 그 때 허리케인 파티를 하고 있었잖아!"

 

"어... 허리케인 파티라니?" 플러터샤이의 파란 눈동자는 둔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허리케인 파티(Hurricane party): 북미 메인 주(Maine)와 텍사스 주(Texas)를 양 끝으로 한 해안가 주들, 이른바 허리케인 밸리(Hurricane Valley)에 속하는 주들 특유의 파티 문화. 허리케인이 오기 전이나 허리케인이 닥쳐왔을 때 같이 모여서 하는 파티로,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라디오나 음식 등의 물건을 답례로 주최자에게 지급한다.

 

 

"그래, 그거!" 스쿠틀루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애플블룸이 다 말해 줬거든! 삼 년 전에 진짜 골치아픈 사이클론 하나가 포니빌을 강타했을 때 말이야! 겨울 마무리가 그 해 봄인가 언젠가, 아 몰라. 어쨌든 늦게 끝나서 그랬다며. 그 때 애플 집안 포니들이 파티 준비를 다 끝내 놓고서는 폭풍대피소 안에서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면서 음악도 틀어 놓고, 캐러멜 애플(사과를 액상 캐러멜에 살짝 담그고 캐러멜이 차가워져 다시 굳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는 후식 겸 간식) 먹으면서 무서운 얘기나 기타 등등 하면서 놀았다고 말이야."

 

"그거 굉장히 마음에 드는 얘기구나." 플러터샤이가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하지만 스쿠틀루, 그런 평온한 순간을 누리는 데 굳이 그런 끔찍한 폭풍이 필요하지는 않잖니."

 

"왜 안 그런데?" 스쿠틀루가 접어 포개 둔 발굽 위로 몸을 굽혔고, 잔물결이 이는 호수 얼굴 위로 비치는 자기의 얼굴을 향해 악마 같은 웃음을 히죽히죽 지어 보였다. "세상은 가끔 진짜 지독할 정도로 뻣뻣하고 지루한 곳이 될 수도 있어서 그래. 플러터샤이, 난 잘 모르겠는데, 언제 한 번 모든 게 죄다 멈추어 버리면 얼마나 세상이 고요해질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멈춘다니?"

 

"알잖아. 포니들이 매일 하던 일 말이야.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재미없는 얘기만 쓰여 있는 신문을 배달한다거나, 우편배달부 포니가 늘 다니던 길을 따라 날아간다거나 하는 거. 그것들이 그냥 멈추어 버린다는 말이야. 갑자기. 뭐, 그 날은 꽤나 재미있는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잖아. 내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네가 세상의 종말을 바라고 있다는 얘기처럼 들리는데, 스쿠틀루."

 

"피! 바보같이 굴지 마, 플러터샤이." 스쿠틀루가 다시 싱긋 웃어 보였다. "포니빌에서 돌아가는 일들이 정말... 정말 지루해서 그래."

 

"난... 음... 난 잘 모르겠어." 플러터샤이는 꼼지락거리는 몸으로 연한 분홍색 갈기를 가볍게 넘기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그렇게 자주 시, 시내로 내려가 보질 않아서... 음... 저... 래리티가 차를 마시자고 부르거나 뭐 그런 일로 부를 때는 빼고." 그녀는 희미한 웃음기만 겨우 띄워 보였다.

 

"플러터샤이, 언니도 그렇고 다른 포니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어디 출신인지는 알 거야. 내가 거기 철자를 똑바로 못 외운다고 해도 말이지." 스쿠틀루가 발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언니, 늘 동물들이랑 시간을 보내지, 그렇지? 우리 포니들이 그러는 것처럼 지루해하지도 않을 거고, 맞아? 내 말은, 얘들은 그냥 좋아서 왔다갔다한다는 말이야. 언니가 먹을 걸 건네주면 간만에 외식하러 나오는 거고, 안 주면 언니 바구니를 몰래 털고 도망가는 거고." 스쿠틀루는 말을 마치고 플러터샤이의 어깨를 향해 날카로이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음?" 노란 페가수스는 잠시 멍하니 데리고 있던 동물들을 바라보다가 한 쌍의 다람쥐가 빵 부스러기를 담아 둔 가방 안에 그들의 탐욕스러운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헉 하는 소리를 냈다. "어머,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제발 좀 얌전히 있으렴!" 그녀는 가방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두 다람쥐는 날카로운 소리로 짖듯이 그녀에게 끽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잔뜩 골이 나서는 멀찍이 떨어진 오크 나무 쪽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이런...... 이번 주만 해도 벌써 세 번째야, 쟤들!"

 

스쿠틀루가 깜짝 놀라 물었다. "다람쥐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 거야?"

 

"다람쥐만 그래." 플러터샤이가 중얼거리며 아주 익숙하다는 듯 나무줄기를 노려보자 그 위에 도망가 있던 두 꼬리 북슬북슬한 도둑 다람쥐들은 재빨리 도망가 버렸다. "믿어도 돼... 음... 얼마 안 되니까. 에헤헤... 으음..."

 

"어쩌면 언니랑 스위티벨이랑은 쟤들 먼 친척들이랑 만나게 되면 뼛속까지 개념을 똑똑히 심어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음... 그럼 아마 난 실업자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안 그러니?" 플러터샤이가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스쿠틀루가 빙그레 웃었다. 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쉬면서 앞다리에 얼굴을 포갰고, 의문 섞인 눈으로 더워져 가는 정오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멀리 보이는 뇌운(雷雲)의 시커먼 벽은 갈수록 두터워져 갔고, 가까이의 하늘에는 성긴 구름 두 개가 서서히 스러지며 떠 가고 있었다. 시커먼 땅덩이 위에 두 개의 흰 돌멩이를 던져 놓은 것 같았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 위로 흰 이름들이 깜박이며 떠 갔고 어제의 향수처럼 흐려져 가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갔다. 스쿠틀루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다가 이내 조금 더 크게 말했다. "플러터샤이?"

 

"음?" 플러터샤이가 놀란 듯 답했고, 빵 부스러기가 담긴 가방을 묶어 닫으면서 흘끗 눈길을 주었다. "왜 그러니, 스쿠틀루?"

 

"그냥... 그냥 궁금해서 물어 보는 건데." 스쿠틀루는 무기력하게 호숫가의 물 먹은 흙을 발굽으로 후비며 중얼거렸고, 마른 땅과 흔들리는 창공이 한데 모이는 지평선을 주무르듯 주물렀다. "언니가 추모공원 최고관리자라는 것까지는 알아. 하지만... 알던 포니 중에 누구라도, 내 말은, 거기서 목숨을 잃은... 음... 에버클리어 광산에서 목숨을 잃은 포니가 있었어?"

 

플러터샤이는 스쿠틀루의 말이 끝나자마자 침통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래도 광산 매몰사건 당시 사망자들의 유가족들과 몇 번 만나 봤고, 얘기도 해 봤어. 캐러멜이나 캐럿 탑, 핑키 파이..."

 

그녀의 오렌지색 귀는 괴로운 듯 흔들렸고, 스쿠틀루는 거의 발작에 가까운 속도로 자세를 바로잡으며 물었다. "핑키 파이도 에버클리어 광산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다고?!?"

 

플러터샤이는 수심에 잠겨 입술을 깨물었다. "음... 그, 그건 아니야. 하지만 핑키 파이네 고향, 그러니까 드레지메인(Dredgemane)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었거든. 포니빌 광부들을 중독시켰던 독진(毒塵)과 똑같은 독진, 흔히 인펠나이트로 알려져 있는 그 물질이 핑키네 고향에 있던 채석장이랑 농장들을 죄다 오염시켜 버렸어. 그 사건 때문에 수많은 고아들이 생겨났고, 인펠나이트 때문에 심각한 폐병으로 투병하면서 살려고 악전고투하고 있어. 그 아이들의 부모님의 생명을 거두어 간 그 인펠나이트 때문에 말이야."

 

"그거..." 스쿠틀루는 목 안에 고인 응어리를 꿀꺽 삼켰고, 그녀 자신의 떨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납득시키려고 하는 데서 죄책감을 느꼈다. "너무 끔찍한 일이네, 플러터샤이."

 

"그래. 맞아. 무서울 정도로 끔찍한 일이지." 플러터샤이가 슬픈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제코라가 드레지메인에 몇 번 간 적 있어. 얼룩말 전통 의술로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하지만 많은 포니들이 때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 그 오염된 광산은 진작에 다 정화 작업이 끝나서 괜찮은데 말이야. 피해가 너무 컸던 거지. 그리고 핑키네 어머님 말인데..." 노란 페가수스는 자기의 푸른 눈동자가 마지막 말의 질질 끌리는 흔적을 따라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풀이 죽었다.

 

스쿠틀루는 플러터샤이를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핑키 파이의 어머니가 뭐?"

 

플러터샤이는 헛기침을 하고는 구렁이 담 넘어가는 것과는 정반대로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에버클리어 광산에서는 더 이상 인펠나이트가 검출되지 않아. 벌써 수 년도 전에 캔틀롯에서 파견한 금속공학 전문 유니콘 팀이 와서 다 퍼 갔거든." 그녀는 차분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니, 추모공원 관리자들이 언제라도 인펠나이트에 중독될 가능성은 이제 없다고 해도 좋아." 그녀는 말을 마치고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게 꼭 필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플러터샤이, 난 그런 건 걱정 한 해. 난 그저..." 스쿠틀루는 그녀의 입 안에 고였던 말을 타는 듯한 뺨 밖으로 내쉬며 말했고, 쓸쓸한 뇌운을 다시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난 그냥... 대체 무엇 때문에 포니들이 그렇게 어둡고, 깊고, 위험한 곳에서 일하고 싶어했는지 궁금할 뿐이야."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택했어." 플러터샤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고, 그녀 옆을 지나쳐 가며 엄마를 따라 잔물결 이는 호수로 걸어 들어가는 한 무리의 오리 새끼들에게 얼굴을 비벼 주었다. "누군가는 그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 일을 택했고. 그들은 다른 경험 없는 포니들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미리 막을 수도 있을 정도로 숙련되고 능력이 있었거든."

 

"그럼 언니는... 언니는... 이렇게 생각해...?" 스쿠틀루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헛기침을 했고, 플러터샤이가 아닌 다른 먼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그 일을 택했을지 모른다고."

 

"오, 그건 틀림없어." 플러터샤이가 빙긋 웃어 보였고, 그녀의 목소리는 천상의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포니들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야.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일을 하는 거란다. 스쿠틀루, 너도 알잖니."

 

"하지만 자기 가족들을 위해 광산 안에 들어가서 작업을 했다고 해도, 그것도 이기적인 행동 아니야?"

 

"난... 음... 이해가 잘 안 돼. 스쿠틀루."

 

"수많은 포니들이 에버클리어 광산에서 목숨을 잃었어. 그들이 하고 있던 일은 틀림없이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망아지는 강철 같은 보랏빛 눈동자로 노란 페가수스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도 그 일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음... 내가 오늘 어쩌다 들른 추모공원에서 기리는 이들을 욕되게 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저 포니들이랑 그들의 가족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일종의 요구를 하고 있다는 걸 모르겠어? 플러터샤이."

 

"삶이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단다, 스쿠틀루." 플러터샤이는 놀랐던지 자기를 멀뚱히 쳐다보는 망아지에게 재빨리 답해 말했다. "하지만 우리 포니들은 자기 큐티마크의 요구에 용감히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단다. 자기가 타고난 재능에서 발을 뺀다는 건 우리 가족들한테는 훨씬 더 큰 모욕이 될 테니까... 음..." 그녀는 순간 희망이 묻어나는 숨을 내쉬었으나 그 숨은 따뜻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풀이 죽었다. 그녀는 잠깐 다른 곳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리며 창백한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음... 나, 난 언제나 이렇게 믿고 있어. 우리의 재능은 모두 다... 음... 우리 가족들의 명예를... 명예를 드높이는 거라고 말이야. 물론 스쿠틀루, 네 생각을 말해 줘도 되는데..."

 

스쿠틀루는 플러터샤이가 갑자기 딴소리를 하자 눈썹을 치켜 보였다. 그녀는 순간 노란 페가수스의 옆구리를 흘끗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세 마리의 분홍색 나비들이 플러터샤이의 아름답고 눈에 띄는 큐티마크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순간 불가해한 그림자로 순간 흐릿해졌다. 왠지 그녀의 큐티마크는 전보다도 외로워 보였다. 나비 사이를 채우는 노랑 솜털은 그 사이를 무한히 채우며 갈라놓고 있었다.

 

망아지는 웃어 보이며 플러터샤이의 옆구리를 향했던 시선을 떼어 냈다. "플러터샤이, 언니가 하는 일 말인데... 그래, 동물들을 돌봐 주고 추모공원과 언니네 집을 관리하는 거. 언니는 그게 언니네 가족한테 무언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거야?"

 

스쿠틀루의 웃음은 플러터샤이의 얼굴에 그리 쉽게 비치지 않았다. 적어도 당장 비치지는 않았다. 다 자란 페가수스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 "음... 스쿠틀루, 우리 가족들을 그리 자주 찾는 편은 아니라서 말이야." 마른침이 삼켜졌고 초조한 듯한 웃음이 피었다. "그래도 스케줄만 된다면 때때로 클라우드데일에 들러서 만나곤 해." 깊고 평온한 숨이 들이쉬어졌고, 산들바람이 불어 둘의 솜털과 깃털이 펄럭거리는 소리가 습해 오는 공기에 퍼졌다. "그 날부터 동물들이 내 가족이란다. 내 일은 동물들을 존중하는 일이야. 내 생각에는 그거야말로 모든 포니들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대자연을 감복시키기 위해 일하는 거야."

 

"헤... 내가 대자연을 감복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걸." 스쿠틀루가 끙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난 항상 대자연을 따라 난 흙길을 스쿠터로 헤집어 놓고 다니니까 말이야."

 

"어머, 그런 사소한 일로 불편해하지 말렴." 플러터샤이가 스쿠틀루의 분홍 갈기에 단아하게 얼굴을 비벼 주며 말했다. "스쿠틀루... 넌 행복해야 하고... 긍지를 가져야 해. 너에게 이 정도의 자유를 허락하실 정도로 널 신뢰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니까."

 

스쿠틀루는 웃고 싶었다. 부드럽게 닿아 오는 플러터샤이의 따뜻함을 마시며 웃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 때문에, 그녀는 웃지 못했다. 마지막 몇 마디의 말에 그녀는 웃지 못했다. 노란 페가수스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오렌지색 망아지의 뱃속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들어 올렸고, 그 때문에 스쿠틀루는 슬픔의 절벽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플러터샤이의 비단결 같은 목소리처럼 아름다웠던 기억의 장막 저편에서 남아 있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천둥이 쳤고, 이번에는 스쿠틀루가 헉 소리를 냈다. 자기가 헉 소리를 냈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구름이 잔뜩 드리운 하늘에서 단검 같은 빗방울이 마구 떨어져 그녀의 몸을 적시고 있었다.

 

"어머, 미안!" 플러터샤이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 말을 꺼냈다. 그녀는 가느다란 네 다리로 방방 뛰더니 떨리는 푸른 눈동자로 지평선 너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었어! 폭풍이 벌써 닥쳐오고 있었는데!" 그녀는 꼭 다문 이 사이로 끼잉거리더니 슬픈 듯 스쿠틀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동물들은 잔뜩 놀라 어딘가 마른 곳을 찾아 날아가 버리고 있었다. "정말, 정말 미안해, 스쿠틀루. 내가 너무 무책임했어! 날씨가 어떤지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어야 했는데... 난... 난..."

 

"괜찮아, 플러터샤이." 빗줄기가 숨이 막힐 정도로 거세지고 있었지만 스쿠틀루는 몸을 꼿꼿이 펴고 서더니 느릿느릿하게 사지를 쭉 폈다. "난 더 이상 꼬마가 아니니까!"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스쿠터를 차 올렸고, 순간 튀어나온 핸들을 꼭 잡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알아. 그렇게 많이 젖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약속할게."

 

"그런 생각은 그만두렴!" 플러터샤이가 야단치듯 말했고, 호의가 묻어나는 눈길로 스쿠틀루를 바라보았다. "너희 부모님이 여행 가신 동안에 너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플러터샤이가 숨이 막히는 듯 말을 이었다. "더 심할 수도 있어! 폐렴에 걸릴 수도 있단다! 나랑 같이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자! 우리 집이 바로 근처에 있으니 그리로 가자."

 

"어...... 에헤헤." 스쿠틀루는 마른침을 삼켰고, 이미 비가 엄청나게 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떨었고, 그녀의 네 다리는 그녀도 모르게 떨려 오고 있었고, 플러터샤이의 다리보다 일만 배는 더욱 약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녀 안에서 약동하는 붉은 심장은 그 사실을 강조하듯 더욱 뛰고 있었다. "플러터샤이, 난 괜찮아. 내가 좀 젖더라도 그게 그리 큰 일은 아니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내 일이 단지 추모공원을 관리하고 동물들을 돌봐 주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모든 생명을 돌보는 게 내 일인걸." 플러터샤이가 바구니를 집어 올리더니 옆구리에 얹었다. 그녀는 망아지를 애정 담긴 눈길로 바라보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노래하듯 흘러 나왔다. "스쿠틀루, 내 기준으로는 너도 내 가족이란다. 나랑 같이 우리 집으로 가자. 내가 너와 너희 부모님에게 예의를 갖추게 해 주렴."

 

스쿠틀루의 시선이 굽어졌고, 아이는 플러터샤이의 파란색 눈동자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았고 그 모습은 순간 노란 페가수스의 말과 어울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동공은 타는 것 같았다. 플러터샤이는 노려보고 있지 않았으나, 스쿠틀루는 "싫어." 라고 말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떨리는 혼은 배고픔을 겨우 감추며 플러터샤이의 초대에 "고마워." 라고 말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선명한 역설의 순간, 그 속으로 그녀를 걸어 들어가게 한 것은 힘이 아니라 영광이었다.

 

"하지만..." 스쿠틀루는 순간 닥쳐온 불안감에 나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저번에 언니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갔던 거 기억나지, 그렇지?"

 

"확실하게는 기억 안 나." 플러터샤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넌 기억하니?"

 

스쿠틀루가 입술을 깨물었다. "응. 이번에는 테이블 안 부술게. 약속해."

 

"그래?" 플러터샤이는 짐작이 간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오렌지색 망아지는 혼란스러운 듯 눈썹을 치켰다.

 

"그럼 됐어." 플러터샤이의 목소리는 은은한 기쁨으로 노래하듯 흘러 나왔다. 그녀가 처음으로 낳은 아이가 페가수스 유니콘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따라오렴. 집으로 가는 길은 알고 있단다."

 

"그렇겠지." 스쿠틀루는 반짝이는 스쿠터에 몸을 싣고 플러터샤이의 분홍 꼬리를 무감각하게 쫓아갔다. 빗방울은 열심히 그 둘을 쫓았다. "그럴 거야. 확실해..."

 

 

 

 

스쿠틀루는 드래곤 이빨의 부드러운 입맞춤을 따라 어둠 속을 비틀거리며 걸어갔고 그녀의 시선은 월안 마법으로 보이는 흰 시야 곳곳을 훑고 있었다. 에버프리 가시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가시 돋친 덩굴들이 거미줄처럼 서로 얽히며 그녀의 눈에 비치는 흰 세상을 검은 그림자로 덮었다. 산 것이 아닌 것들의 잽싼 그림자는 모두 사라져 있었고, 그녀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숨과 함께 몸을 웅크리고 가시 돋친 덩굴 사이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반대쪽의 널찍한 공허 속으로 파고 들어갔고, 가시덤불에 몸이 부딪힐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그녀의 월안은 엷어져 눈 덮인 암흑만이 보였고, 그녀는 잠시 동안 발굽 세 개로만 걸어가야만 했다. 그녀의 한쪽 다리는 앞으로 쭉 펼쳐져 앞에 무언가 갑자기 장애물이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체크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어깨 위에서 흔들리는 방호복의 가죽을 느낄 수 있었고, 마스크에 가려진 그녀의 떨리는 숨소리도 느낄 수 있었다. 공기는 단순히 차갑다기보다 훨씬 더 차가워졌고, 총집에 넣어 둔 황동제 라이플의 총신을 따라 물방울이 맺혀 똑똑 떨어졌다. 그녀는 감각이 없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의 먼 여정은 그 자체로 그녀에겐 불안감이었고, 그녀는 단지 갈수록 더욱 약동하는 드래곤 이빨 때문에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사실 스쿠틀루는 그것 때문에 지금처럼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었으니까. 가시숲 안에 이렇게 널찍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마치 좀 전에 그녀의 월안에 비쳤던 가느다랗고 시커먼데다가 날쌔기까지 했던 놈들보다도 더욱 커다란 녀석이 가시덩굴의 숲 안을 일부러 깎아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마지막 포니는 멀찍이 떨어진 작은 방에서 기웃거릴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찾으러 내려왔던 것만 찾아내고 나면, 스쿠틀루는 그녀가 따라 내려왔던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길을 다시 따라 전속력으로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이었다. 하모니 호의 선실에서 따뜻하게 비치는 빛은 유령처럼 아득한 모습이었고 약동하며 외로운 그녀의 마음 뒤에서 천국처럼 빛났다.

 

드래곤의 이빨은 분명히 타오르고 있었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폭죽처럼 그녀의 가슴팍 위로 흔들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은 그녀가 부드러운 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갈 때마다 빠른 속도로 약동하고 있었고 월안마법을 걸어 둔 고글 너머로 그녀 앞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갑자기 흔들렸다. 그녀는 조용히 헉 소리를 내며 답답한 숨과 함께 그 무언가를 흘끗 쳐다보았다.

 

눈을 돌리는 순간, 눈 앞은 말 그대로 새카맣게 변해 버렸다. 차라리 죽음이 훨씬 더 빛나 보일 정도로 그것은 엄청나게 시커맸고 가련해 보였다. 그것은 낮은 목소리로 무어라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마지막 포니는 고글에 걸어 둔 월안 룬 마법이 서서히 흐려져 가는 것을 깨달았다. 월안 마법의 지속 시간이 끝나 버린 것이다.

 

지금 상황이 충분히 두렵고 또 무서운 상황인 만큼, 스쿠틀루 역시 이 같은 상황을 미리 상정하고 대비해 둘 수 있었다. 그녀에게 이 정도의 선견지명이 없었다면, 그녀는 불모의 이퀘스트리아로의 수 년 간의 여정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으리라. 그녀는 차분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차가운 돌 바닥 위로 조용히 꿇어앉았고, 눈먼 발굽은 옆구리에 지고 있던 가방을 향해 뻗어졌다. 월진이 담긴 조그마한 가죽 주머니가 가방에서 꺼내져 나왔고 그녀는 그것을 자기 바로 앞, 견고한 대지에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그녀는 가죽 마스크를 벗었고, 그와 동시에 엄청나게 차가운 대기가 그녀의 콧구멍을 타고 들어가 그녀는 몸을 떨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고글을 밀어 벗었고,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려 자신에게 속삭였다. 나안(裸眼)으로는 그녀가 놈에게 발각되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말이다. 그녀는 꽤나 익숙한 솜씨로 무감각하게 월진을 고글에 채웠다. 흡사 불이 꺼져 어두운 수술실 안에서 아기를 수술하는 외과의사와 같아 보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드래곤 이빨은 계속해서 약동하고, 또 약동하며 그녀의 영혼을 그녀 앞에 있는 불가해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높게 서 있는 벽으로 물 흐르듯 인도하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목표물이 바로 코앞에 있음을 알았고, 지금 당장 그녀에게 필요한 거라곤 지금 그녀의 바로 앞에 무엇이 버티고 서 있는지 알아볼 수단뿐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고글에 월진을 다 채웠다. 그녀는 고글의 프레임을 탁 쳐 닫으며 마스크 벗은 얼굴에 고글을 가져다 댔고, 눈 앞에 고글을 똑바로 고정하려 꽉 죄었다. 그리고 대담하게 그녀가 이 최악의 심연으로 통하는 엄청난 깊이의 공허 속으로 뛰어들 때, 그녀가 처음으로 중얼거렸고 그 이후로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던 그 주문을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생명이 떠난 세계는 백색의 월안으로 터져 나왔다. 눈이 쌓여 가는 바닥 한가운데에 이리저리 들쭉날쭉하게 튀어나온 몇 가닥의 뼛조각이 검게 드러났다. 천사의 날개처럼 생긴 뼛조각이었다. 입 다문 비명이 스쿠틀루의 입을 떠나 달아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이빨은 부드럽게 첨벙거리는 고통과 위안으로 동시에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커다란 돌덩어리의 벽에 기대어 뻗어 있는 그것, 그것은 텅 빈 십자가상과 같아 보였고 또 페가수스의 유골이기도 했다. 유골은 수백, 수천의 가느다란 가시덩굴로 몸이 묶여 있었고 오래 전에 죽었을 페가수스의 갈비뼈부터 척추까지 가시가 뻗어 가득 차 있었다. 플러터샤이의 두개골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분홍색 갈기는 모두 사라져 있었고 한 쌍의 가느다란 날개는 그녀의 몸을 떠받치기라도 하듯 날카롭게 펼쳐져 있었으며 솜털처럼 부드러웠던 그녀의 인상은 마치 후광처럼 그녀 뒤에 남아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마치 그 누구도 열 수 없는 유리벽 너머에 보관된 연약한 나비의 표본처럼 보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스쿠틀루는 플러터샤이가 기대어 있는 단단한 검은 벽에 박힌 몇 개의 다른 해골들을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았다. 사슴, 명금(鳴禽), 뱀, 부엉이, 그리고 에버프리 숲, 그 깊숙한 곳에 열리던 맛있는 과일 몇 종류의 연약한 몸뚱이가 플러터샤이의 옆에 있었다. 이 시신들을 목 매달아 죽인 짐승이 누구건, 그건 결코 품위 있는 짐승은 아닐 것이었다. 벽은 사방이 갈라져 있었고 몇 군데가 엄청나게 깊게 패여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발자국이 그 위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쿠틀루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동물들의 해골들이 플러터샤이의 해골 가까이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물들의 해골들은 죽은 페가수스의 유골 아주 가까운 곳에 처박혀 있었고, 단지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 버리기에는 상당히 고의성이 다분해 보였다. 그 짐승을 단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대가리가 엄청나게 크고 플러터샤이의 두 배는 될 정도로 크지만 가느다란 주둥이를 한 짐승 하나의 모습이 가시덤불 너머에서 어른거리더니 이내 수십 년은 계속 메아리가 칠 것 같은 굉장한 소리와 함께 가시덤불을 후려쳐 엉킨 덩굴을 헤쳤다. 한 쌍의 염소 뿔이 허우적거리며 선 짐승의 주둥이에서 툭 떨어졌다. 두 개의 커다랗게 쪼개진 발굽 비슷한 것이 짐승의 튼튼한 앞다리에서 뻗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 바로 아래, 짐승의 몸통 바로 아래는 잔인할 정도로 산산조각이 난 커다란 척추 비슷한 뼈대가 있는 몸으로 변했고, 그 끝에는 꼬리지느러미가 달려 있었다. 놈의 두개골은 포유동물에 가까웠으나 그 아래 나머지 반은 수중생물의 것이었고,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거대한 민물고기의 그것에 가까웠다. 그보다 더한 것이 있었다. 낡을 대로 낡아 대롱거리는 이 짐승의 몸뚱이 주변에는 상당한 양의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분명히 마나 번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스쿠틀루는 에버프리 가시숲의 차가운 무덤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용감하지만, 동시에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덜덜 떨며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괴상하게 생긴 짐승을 쳐다보았다. "언니, 재앙이 오고 있을 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이 괴물 애들이랑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데?"

 

스쿠틀루는 흥미롭다는 듯 나직이 무언가를 흥얼거리고 있었으나, 사실은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시 찾아온 비애와 함께, 그녀는 몸을 떨듯이 옛 친구의 십자가에 못박힌 듯한 시신을 쳐다보았다. 잔뜩 풀이 죽은 숨과 함께, 그녀는 월안 너머로 비치는 어둠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고, 플러터샤이의 못박힌 시신을 안듯, 두 발굽으로 단단한 돌 벽을 꽉 붙잡고 섰다.

 

"평화롭기만을 바랬는데." 그녀는 스스로 중얼거리는 거라고, 자신을 속여 말했다. "언니의 삶이 그랬듯이 말이야."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일부, 스파이크의 희미한 그림자로 색을 칠한 그녀의 일부는 좀 더 오랫동안 멈추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똑같은 폐허의 청소부일 뿐이었다. 다 부서진 폭풍대피소 지하실에서 예의고 나발이고 없이 애플잭의 유골을 낚아채 간 포니와 그녀는 같아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여기서 잠시도 지체함이 없이 최대한 빨리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의 왼발에 신겨졌던 신발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고, 스쿠틀루는 황동으로 만들어 둔 신발에서 굽어진 칼날을 꺼내 플러터샤이의 차가운 뼈대를 붙잡아 벽에 매달고 있는 고대의 가시덩굴을 겨냥했다. "언니가 쉴 곳을 찾아 줄게. 애플잭처럼 말이야. 약속해."

 

그녀는 그녀의 말을 관통하여 들려온 대답을 들었다. 월안 마법이 걸린 고글 너머의 말 그대로 새하얗던 시야에서 무언가 갑자기 번쩍 하고 나타난 것이다. 척 봐도 눈에 띄는 그림자는 상아빛 같은 불쾌한 기운으로 흐려졌다. 스쿠틀루는 투덜거리며 씩씩대기 시작했다. 월안 마법을 부여한 룬의 효력이 다시 다 떨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달랐다. 그 어떤 것도 검은색으로 흐려지지 않았으니까. 월안이 단순히 그녀를 배반한 것일지도 몰랐다. 혹시 왜곡된 공간을 출력하기 거부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거기에 무엇이 있었던지, 이미 자신의 발굽으로 다 만져 보아 알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무기력하게 매달려 있는 플러터샤이의 유골을 향해 칼을 뻗었다.

 

그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투덜거리며 다시 한 번 더 주문을 외웠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문이 한 번 더 외워졌다. 이번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아까와 같은 무한한 창백함만이 월안의 흑백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스쿠틀루는 월안은 집어치우기로 하고, 버릇처럼 고글을 완전히 밀어 올렸다.

 

그녀의 진홍 눈동자를 불태우며 닥쳐온 고통은 극심했다. 그녀는 잠깐 동안 어두운 지하에서 돌아다니던 날짐승이 말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찌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스쿠틀루는 그저 자기가 운이 좋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포니의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고, 시커먼 세상은 악몽 같은 시야의 초점으로 서서히 스며 들어왔다. 가시숲을 월안에 기대어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고, 스쿠틀루는 가시숲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말 그대로의 '빛'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가방이 떨어져 열렸을지 모른다고, 스파이크의 녹색 불꽃을 담은 단지가 떨어져서 월안을 흐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의 고통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스쿠틀루는 그 이상한 빛의 색깔을 겨우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녹색이 아니었다. 그건 파란색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아주 낮은 소리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돌 투성이인 땅 속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쿠틀루는 최대한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가시덤불 너머로 별빛이 보였고 마지막 포니는 당혹스러워졌다. 그녀는 눈을 깜박였고... 다시 한 번 깜박여 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여전히 반짝이며 타오르는 푸른 우주의 카펫이 덮여 있었다. 아니, 그건 카펫이 아니라 털이었다. 솜털이었고, 그 마법처럼 반짝이던 살덩어리의 옆구리에서 4미터는 족히 넘을 만한 거대한 발톱이 튀어나왔다. 스쿠틀루의 움츠러든 진홍 눈동자는 쭉 펴지며 끝없이 늘어나는 놈의 사지를 따라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갔고 그녀는 엄청나게 커다란 짐승 하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놈은 반짝이는 푸른 대가리부터 시작해서 놈의 꼬리까지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별자리였고 거미줄처럼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킨 굵직한 가시덤불 너머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번쩍이는 한 쌍의 송곳니와 이마를 뒤덮고 있는 짧고 빳빳한 푸른 털, 그리고 여덟 개의 사파이어처럼 빛나는 별들로 장식된 놈의 이마를 볼 수 있었다.

 

스쿠틀루는 마른침을 삼켰고, 여전히 별빛 비치는 땅굴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놈이 잡아먹었던 동물들을 돌벽에 처박아 둔 놈이 누구인지... 그리고 발자국을 남긴 놈이 누구인지... 이제야 완벽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뭐, 그렇군. 난 이제 죽었다."

 

귀가 찢어질 듯한 괴성과 함께 푸르고 검은 줄이 그어진 가시 돋친 만화경이 돌 투성이 바닥을 가로지르며 빛을 발했다. 두 발로 우뚝 선 큰곰자리는 엄청나게 컸고, 근육질의 발을 들어 두껍게 쌓인 가시덤불의 벽을 힘껏 후려쳤고, 다시 엎드려 네 발로 서더니 전속력으로 작은 포니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맨 밑바닥은 서슬 퍼렇게 날이 선 나무 낫처럼 날카로운 가시들이 사방으로 우박처럼 흩어져 날림과 동시에 흔들렸다. 날지 못하는 페가수스는 헉 소리와 함께 우르릉거리는 돌 바닥 한쪽으로 비틀거리며 몸을 날려 미친 듯 달려오는 놈의 몸뚱이를 피하려고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덮쳐오는 큰곰자리의 진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큰곰자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잔뜩 굶주려 있었고, 은은한 별빛이 비치는 곰의 거대한 두 앞발은 거대한 소리를 내며 불행한 운명의 포니를 힘껏 내리쳤다.

 

스쿠틀루는 한 마디 툴툴거리는 소리를 내뱉으며 급히 몸을 일으켜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거대한 짐승의 엄청난 무게는 그녀에게서 오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빗맞았고 그녀는 큰곰자리의 집 한쪽 구석에 쌓여 있던 잔뜩 먼지가 쌓여 있던 뼈다귀 더미와 다 말라붙은 배설물 위로 내려앉았다. 지독히도 더러운 푸른 먼지가 엷게 퍼지며 연무를 펼쳤고, 그녀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번들거리는 발톱이 숲을 이루어 그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용기를 내어 숨을 들이마신 뒤, 곧장 몸을 앞으로 날려 큰곰자리의 털 많은 발목 위로 뛰어올랐고, 곧장 놈의 커다란 덩치 뒤로 뛰어내렸다. 어둠보다도 더욱 어두운 세계는 짐승의 발톱이 말라붙은 대지를 갈퀴질하며 지나감과 같이 다시 한 번 더 흔들렸다. 짐승은 조그마한 포니의 그림자를 쫓아가느라 몸을 휘청거리고 있었고 스쿠틀루는 거의 자살특공대와 같이 놈의 다리 사이를 전속력으로 왕복하며 큰곰자리가 휘두르는 나무 줄기처럼 굵직한 꼬리를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이이이익!" 스쿠틀루는 이리저리 뛰어들며, 굴러 떨어지며, 미끄러지며 플러터샤이의 해골 바로 아래의 벽으로 쿵 하고 쓰러졌다. 그녀의 고글은 여기저기 휘었고 금이 가 있었고,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옛 친구의 잔해와 큰곰자리를 재빨리 번갈아 쳐다보았다. 큰곰자리는 살의가 가득 묻어나는 몸뚱이를 돌리더니 천사처럼 펼쳐진 날개를 가진 해골 쪽으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젠장젠장젠장젠장! 언니, 미안해!" 그녀는 높이 훌쩍 뛰어 네 발굽으로 플러터샤이의 목을 힘껏 쥐어 잡고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밀어냈다. "아윽!"

 

큰곰자리가 커다란 포효를 뿜어냈다. 노란 눈자위에 붉은 눈동자를 한 눈은 증오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천공의 짐승은 천둥처럼 맹진(猛進)해 들어왔다.

 

"쓰으으읍... 망할!" 스쿠틀루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고 또 동시에 아팠다. 죽은 페가수스의 척추가 서서히 굽어지기 시작했고, 또 여기저기 깨지기 시작했다.

 

재앙과 같은 천둥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곰의 톱날처럼 날카로운 발이 온 힘을 다해 날아오고 있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스쿠틀루는 몸통을 최대한 뒤로 당겼다. "으아!" 플러터샤이의 두개골은 똑 하고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굴복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스쿠틀루는 큰곰자리의 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로 그 다음 순간 날아온 큰곰자리의 주먹은 플러터샤이의 머리 잃은 유골을 분쇄하여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돌벽은 수천 조각으로 금이 가 땅을 따라 뻗어 있는 강줄기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고 수십 개의 뼈다귀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 스쿠틀루의 머리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땀이 흐르는 앞다리로 플러터샤이의 두개골을 꽉 붇잡고 다리를 절듯 세 다리로 재빨리 달려갔다. 그녀는 몸을 떠는 수천 가시들로 가득 뒤덮인 벽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울부짖는 큰곰자리는 빙빙 돌더니 아내 마지막 포니의 분홍 꼬리털을 보고 잽싸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죽음은 쿵쿵거리는 소리를 터뜨리며 갈수록 가까워져 갔다. 스쿠틀루는 말 그대로 다리를 절고 있었다. 일단 걸으려면 네 다리를 모두 써야 했으니까. 그녀는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플러터샤이의 두개골을 가시덤불 사이 어딘가로 휙 하고 던져 버리고는 온 힘을 다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훌쩍 뛰어 찢어진 가시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녀가 반대편에서 그녀의 갈색 몸을 일으킬 때, 톱날 같은 나무의 송곳니는 그녀의 몸을 때렸다.

 

그녀 뒤의 가시덤불은 말 그대로 폭발했다. 스쿠틀루가 소리를 질렀고, 그녀는 그 충격에 멀찍이 날아갔다. 나무 조각과 가시 파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백 년 같은 순간 뒤, 그녀는 튀어나와 있던 돌덩이에 몸을 부딪혔고 온통 먼지가 앉은 굴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녀는 몸을 움찔하며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완전히 전전긍긍하며 플러터샤이의 두개골이 가시덤불의 파편과 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진 곳 그 어디로 떨어졌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숨결은 밝은 푸른색의 공포로 빛나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헉 하는 숨과 함께 재빨리 눈을 돌리며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놈의 발을 피해 몸을 던졌다. 놈은 다시 발을 휘둘렀고, 곧장 다음 공격을 휘둘렀다. 큰곰자리는 맹렬하게 사방으로 팔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 통에 에버프리 숲의 죽은 심연 안에 거대한 구멍들이 파였다. 거대한 곰은 잔뜩 화가 난 듯 한 차례 울부짖더니 아무 말도 않고 배를 깔고 엎드려 미끄러져 덮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놈의 그 몸뚱이와 그 무게라면, 소중한 유골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리기에는 충분할 터였다.

 

천운으로, 날지 못하는 페가수스는 반짝이는 짐승의 팔꿈치 너머로 미끄러져 들어가 놈의 겨드랑이 쪽으로 다가갔다. 큰곰자리의 엄청난 무게가 그녀를 다시 시커먼 지하 동굴 한쪽으로 날려 버렸고, 그녀는 무언가를 향해 굴러 들어갔다. 그녀의 이마에 고운 먼지가 묻은 무언가가 부드럽게 입맞춤하듯 다가왔다.

 

"우와아아아..." 스쿠틀루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정신병적인 행복감에 젖어 숨이 막혔다. "찾았다!" 그녀는 기적적으로 멀쩡하게 남아 있던 그녀의 옛 친구의 두개골을 꽉 붙잡고는 그 창백한 표면에 입을 맞추었다. "언니, 고마워!"

 

깊은 땅굴 속에 드리우던 뒤틀린 그림자는 큰곰자리가 천천히, 그 거대한 몸뚱이를 세우며 다가옴과 동시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스쿠틀루의 떨리는 눈동자는 사방으로 꼬인 덩굴들을 따라 바로 올라갈 만한 길을, 자유로의 길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지독하기 짝이 없는 시퍼렇고 거대한 짐승 한 마리가 버티고 서 있었다. 생존자의 닳고 닳은 신경 안쪽에서 무언가 똑 하는 소리를 냈고, 그녀는 커진 눈동자로 일어나 땅에 발굽을 비볐다. 플러터샤이의 턱뼈 위로 그녀의 이가 악물렸고 뼈는 입에 물려 더욱 강하게 안겼다. 흉포하기도 하고, 또 자살 행위와도 같은 포효 소리가 플러터샤이의 코끝에 닿았고, 스쿠틀루는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는 큰곰자리의 궁둥이 쪽으로 갑작스레 몸을 날렸다.

 

큰곰자리는 놀라 잠깐 주춤했고, 그와 동시에 날쌔게 달려든 페가수스가 놈의 꼬리뼈를 거칠게 밀치며 튀어 올라가 놈의 엉덩이 위로 뛰어올랐고, 이내 등에 닿았으며 끝내 큰곰자리의 별이 총총히 새겨진 이마를 용감하게 걷어찼다. 스쿠틀루는 곧장 그 밖으로 몸을 날려 가시덩굴 다리로 향했다. 그녀는 승리감이 묻어나는 발굽 소리를 울리며 마구 뒤틀린 덩굴 위로 잽싸게 달려갔다. 발굽 소리가 벽에 부딪혀 울렸다.

 

마지막 포니가 이 위태위태한 질주를 시작하자마자 큰곰자리가 살의를 가득 품은 광란을 부리며 사방에 놈의 발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통에 스쿠틀루가 딛고 선 강철 같은 가시덩굴들은 그녀의 말총을 따라 갈수록 짧아져만 갔다. 스쿠틀루는 숨을 헐떡이며 플러터샤이의 머리뼈를 문 입으로 쌕쌕대는 숨을 토해냈다. 지금까지도 그녀를 비추고 있는 저 푸른 기운은 두렵기도 했지만 그 반대로 기운이 나기도 했다. 피에 잔뜩 굶주린 큰곰자리는 에버프리 가시숲 가장 깊숙한 곳을 그 자신의 시퍼런 살기로 비추고 있었고, 놈은 여전히 잔뜩 화가 나 포니 하나를 뒤쫓고 있었다. 스쿠틀루의 흥분된 마음은 순간 다가온 죽음의 순간을 비웃고 있었다. 그녀는 저 큰곰자리의 뱃속을 다 채워 주지도 못할 것이었고 플러터샤이의 메마른 살덩이도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수 년 전, 저 무지막지하게 큰 곰은 분명 새끼가 하나 있었을 것이었다. 대체 왜, 이 괴물이 온 이퀘스트리아에서도 가장 어두운데다 버려지기까지 한 이 곳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던 걸까? 왜 이렇게 잔뜩 화가 나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천둥 같은 충격파가 대략 시속 20킬로미터 정도로 달려가고 있던 스쿠틀루의 몸을 뒤흔들었다. 소리 죽인 비명과 함께, 그녀는 바로 아래에서 터져 올라오는 가시덩굴의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녀는 큰곰자리가 마지막으로 주먹을 날렸던 바로 그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지만 바로 거기 위에 매달려 있던 가시덩굴에 몸을 부딪혀 버렸다. 그녀의 몸은 그 덩굴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으으으..." 스쿠틀루는 자기가 입에 물고 있던 플러터샤이의 유골을 뱉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헉 소리를 냈다. 그녀는 옛 친구의 잔해가 그녀 아래, 시커먼 돌 바닥 위로 떨어지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포니의 사지는 매달려 있던 그 덩굴에서 힘없이 미끄러져 떨어졌고, 그녀는 힘없이 그녀의 두꺼운 방호복을 가운데 두고 조여 오는 가시덩굴 사이에 끼어 버렸다. "서둘러야 돼, 서둘러야 된다고!" 그녀는 몸을 더욱 조여 오는 가방을 벗어 던져 버리려고 날개를 펼치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갈색 솜털 덮인 몸뚱이에 채워진 기어는 너무 단단하게 조여져 있었다. 갑자기 가시숲 천장이 맹렬히 흔들렸고 푸른색 연무의 기운은 갈수록 밝아지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깜짝 놀랐고, 이내 그녀의 폐에 고여 있던 마지막 공기의 한 조각까지 토해내 버렸다.

 

그녀의 몸에는 힘이 빠져 있었고, 그녀의 갈비뼈는 갈수록 조여 왔다. 그녀는 조여 오는 가시덩굴 사이에서 어찌어찌 몸을 빼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그 다음 순간 큰곰자리의 주둥이가 그녀 위에 나타났다. 세계는 뜨거운 어둠으로 변해 버렸고, 스쿠틀루의 네 발굽은 무언가 스펀지 같은 물웅덩이 위에서 철벅거리고 있었다. 사태를 파악하는 데 굳이 시각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지막 포니는 숨쉴 겨를도 없이 잽싸게 큰곰자리의 혀 위에서 밖으로 몸을 날렸고, 몸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놈의 이빨이 서로의 몸에 부딪쳤다. 놈의 이빨은 여전히 딱딱거리며 부딪치고 있었고, 그 상태로 그녀를 향해 미사일처럼 날아들었다. 그녀는 흡사 새카만 호수 위로 날아가는 물수제비와 같이 돌 바닥 위로 튕겨져 나뒹굴었다. 그녀의 가방이 찢어져 열렸고, 그녀의 멍든 얼굴은 에메랄드 빛 섬광에 순간 움찔했다. 그녀의 숨은 여전히 헐떡이고 있었고 스파이크의 녹색 불꽃을 담은 약해 빠진 유리 단지가 절벽 끄트머리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끙 소리를 내며 몸을 날렸고, 두 발굽으로 룬식(봉인 단지가 아래의 깊숙한 암흑 속으로 굴러 떨어지기 전에 가까스로 잡아낼 수 있었다.

 

큰곰자리의 시퍼런 면상이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거대한 곰은 한 줄기 포효를 내지르며 절벽을 아래에서 위로 힘껏 올려 쳤다. 멀쩡히 잘 있던 절벽은 두 조각으로 찢어졌고 페가수스가 밟고 서 있었던 조각은 순간 거꾸로 뒤집어졌다. 그녀는 다시 뒤틀린 가시덩굴이 있는 곳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녀는 좀 전의 그 곳으로 폭포처럼 굴러 떨어졌고, 연약한 흰 유골 하나가 평행선을 그리며 깊어 나갈 수 없을 틈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는 광경에 숨이 턱 막혔다.

 

스쿠틀루는 쌕쌕거리는 숨을 내쉬며 무너지는 땅덩어리를 힘껏 걷어차 유골을 향해 재주를 넘으며 미끄러져 갔고, 두 발굽으로 쥐고 있던 녹색 불꽃을 담은 단지와 유골을 마치 곡예를 하듯 잡은 지 얼마 안 있어 미끄러짐은 끝났다. 그녀는 거꾸로 몸이 뒤집힌 채 돌 깔린 바닥 위에 마치 인형처럼 쓰러져 있었다.

 

몸을 조여 오는 듯한 공허를 덮은 것은 가시가 촘촘히 돋아난 덩굴이었고 그 공허는 살기로 가득 찬 푸른 발자국이 덩굴 너머에서 가까워져 올 때마다 흔들렸고 전율했다. 스쿠틀루는 유골과 단지를 꼭 껴안았고, 지금 당장 주위를 둘러싼 톱니 같은 가시가 돋친 가시덩굴 밖으로 나갈 만한 길이 있는지, 떨리는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갈 방도라고는 단 하나, 그녀가 바위처럼 굴러 들어온 방법밖에 없었고 나간다 해도 저 미친 큰곰이 입을 쩍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스쿠틀루에게는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고 도망칠 곳이 없었으며 달아날 곳이 없었다... 과거를 제외한다면. 그녀의 진홍 눈동자는 그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자유의 길을 향해 깜박이고 있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침통한 듯 큰곰자리의 거대한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흔들리는 플러터샤이의 유골을 쳐다보고 있었다.

 

큰곰자리가 포효를 내지르며 공허의 문턱 사이로 놈의 대가리를 불쑥 내밀었다. 별이 빛나는 놈의 반투명한 가죽 아래 약동하는 동맥은 피에 굶주린 별자리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으며 놈은 이제 구석에 몰린 페가수스를 향해 날카로운 주둥이를 들이대고 있었다. 으르렁대는 소리에는 이빨이 서 있었고 그 소리는 서서히 가까워져만 갔다.

 

스쿠틀루의 등은 덩굴로 뒤덮인 벽에 곧장 눌렸다. 그녀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태어난 용기는 오히려 놈에게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마지막 포니는 두 눈을 감았다. 그녀는 두 발굽으로 꽉 잡고 있던 플러터샤이의 유골을 들어 온 힘을 다해 이마에 부딪쳤다. 플러터샤이의 유골은 한 줌 먼지로 부서져 버렸고, 스쿠틀루의 코 끝부터 온 몸통까지 흰 눈처럼 덮었다. 시약에 몸을 담근 것과 다름없이 된 스쿠틀루는 큰곰자리의 침이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를 앞에 두고 단지를 들었다. 그녀는 룬으로 봉인해 둔 뚜껑에 대고 비명을 지르듯 한 마디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목소리는 곰의 포효 소리에 파묻혀 사라졌다.

 

단지의 봉인이 풀렸다. 단지를 막고 있던 뚜껑은 마치 총알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스파이크의 에메랄드 빛 숨결이 시간의 열기를 내뿜어 그녀를 감쌌다.

 

큰곰자리의 입은 날아가듯 좁혀져 그녀 바로 위에서 닫혔다.

 

스쿠틀루는 비명을 질렀다. 플러터샤이의 잿가루가 그녀의 멍들고 경련하는 몸을 단단한 올가미처럼 감아 오고 있었다. 무언가 극히 난해한 이끌림에 이끌려, 그녀는 부드러운 실처럼 뒤로 몸을 날리며 큰곰자리의 턱을 강하게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놈의 으르렁거리는 상판은 초당 백만 킬로미터쯤 되는 속도로 멀어져 갔다. 마지막 포니의 시야에는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에메랄드 빛 터널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터널은 그녀를 억지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녀의 진홍색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고, 그 자리에 녹색 불꽃이 타오르자 눈동자는 호박색으로 변했다. 그녀의 까칠하게 자란 분홍 갈기는 연의 꼬리처럼 길게 자라나며 검은색으로 바뀌었고, 그녀의 몸에 플러터샤이의 잿가루가 덮였다. 그녀의 몸은 나선형을 그리며 시간의 틈새 사이로 나 춤추듯 흔들리는 회랑을 따라 날아가고 있었다. 부드럽게 깔린 잔디밭과 그 옆으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 그리고 익숙한 플러터샤이의 조용한 오두막집이 녹색 연기 사이로 서서히 꽃피듯 보이기 시작하자 스쿠틀루는 본능적으로 날개를 활짝 펴 공기저항을 최대로 늘렸다.

 

침묵이 찾아왔다.

 

 

그 다음으로는 깜짝 놀라 헉 하고 숨을 들이쉬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 망아지일 것이었고 스쿠틀루와도 겨우 몇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여행자는 당혹감으로 움찔하고 놀라며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는 잔디 덮인 마당 위로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녀는 눈을 살짝 가늘게 떴고, 조그마한 회색 솜털의 유니콘이 커다래진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와 그녀 사이에는 조그마한 티 테이블과 반짝이는 찻주전자, 찻잔받침, 찻잔이 놓여 있었다. 아이의 옆에는 분홍색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배가 부른 동물들이 그 위에 앉아 있었다.

 

눈만 깜박이고 있는 금발의 망아지와 스쿠틀루 사이에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마지막 포니는 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웃고 있는 입술은 아직 조금 남은 녹색 연기로 반짝였다. "호, 혹시 괜찮으면 조, 조금 마셔도 되겠니...?"

 

큐티마크 없는 망아지는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이고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조그마한 테이블 아래 놓은 두 다리를 흔들며 페퍼민트 차를 몇 모금 삼켰고,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찻주전자를 밀어 주었다.

 

스쿠틀루는 휘청거리며 아이에게 다가가 떨리는 발굽으로 찻주전자를 잡고는 마셨다. 삶의 이유를 이어 가려 마셨다. 톡 쏘는 페퍼민트 차가 그녀의 목구멍 속으로 굴러 떨어졌고, 그 맛은 짜릿하여 가시숲에서 들어 온 멍의 무서운 그림자도 흔들어 떨쳐 버렸다. 반짝이는 정오의 태양 아래 오두막집에 가늘어진 스쿠틀루의 눈이 가 닿았다. 그녀는 숨을 깊게 내쉬며 외쳤다. "여보세요오오오." 마지막 포니는 찻주전자를 다시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고, 찻주전자는 툭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를 찾았다. 그녀는 몇 초의 숨막히는 순간을 참아내었고, 마침내... 마침내 네 다리로 꼿꼿이 섰다.

 

"방금 하늘에서 떨어지신 건가요, 그런데 성함이...?" 아직 어린 유니콘 꼬마는 이상하게 총기 있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아이는 네 살쯤 되어 보였고, 어쩌면 다섯 살쯤 되어 보이기도 했다. 말투에서 풍기는 느낌은 적어도 열두 살쯤 되어 보였지만 말이다.

 

"하모니란다." 시간여행자는 의무감에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래, 맞아. 난 하늘에서 떨어졌단다, 꼬마야."그녀는 황동색 날개를 접으며 어질어질한 듯 중얼거렸다. "그 분은 어디 계시..."

 

"전 딩키라고 해요." 아이는 지극히 무미건조하게 조그마한 회색 뿔이 돋아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 나중에 크면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그렇구나. 귀엽기도 하지. 그 분은 어디 계시니...?" 스쿠틀루가 지친 황동색 눈동자로 지평선을 다시 살피며 물었다.

 

"제 베이비시터를 찾고 계신 건가요?"

 

"난..." 스쿠틀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호수의 향기는 그녀의 코를 따라 몸 속까지 난 길을 따라 흘러 들어왔고, 비가 쏟아지던 그 날 오후,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그 때의 느낌과 같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포니처럼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네 베이비시터는 어디 계시니, 딩키?"

 

유니콘 아이는 자그마한 발굽을 빙빙 돌리더니 오두막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는 저기 있어요. 뻣뻣이 아줌마랑 얘기하고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방금 클라우드데일 동물관리위원회에서 날아온 성격 나쁜 아줌마랑 얘기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 두 분을 귀찮게 하실 생각은 아니신 것 같은데요."

 

"그래, 좋아. 그런 짓은 안 할 거니까 걱정 말렴."

 

"평균적으로, 평생 동안 포니들은 자는 도중 살아 있는 거미 네 마리를 삼킨다고 해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우와. 그것 참 재미있네. 잠깐만, 네 베이비시터한테... 음... 말씀을 좀 드려야겠구나." 스쿠틀루는 멍하니 플러터샤이의 오두막집 앞마당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름다운 꽃들이 사방에 피어 있었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가벼운 말투로 어깨 너머로 말했다. "어쨌든, 너희 어머니께도 말씀을 좀 드려야겠고 말이야."

 

"왜요?" 아이는 차분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꼬마야, 처음 보는 포니들이랑은 함부로 말 하면 안 돼."

 

회색 망아지는 뿔 난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안 무서운걸요."

 

"무서워해야 한단다. 세상이 워낙 위험해서 말이지."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내가 여기 있으니까." 스쿠틀루는 목에 걸린 응어리를 삼키고는 자그마한 다리로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천천히, 오래 전에 죽어 버린 그녀의 친구를 향한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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