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틀루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에 거의 귀가 멀 것만 같았다. 아홉 살 난 망아지는 이퀘스트리아의 깊숙한 곳까지 찢으며 뚫고 들어간 동굴의 공허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폐허에서 방금 찾아 온 잡동사니 몇 무더기가 잔뜩 겁에 질린 채 마구잡이로 한쪽에 던져졌다. 잡동사니 무더기는 아무렇게나 던져져 쌓였고, 그 어떤 규칙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최대한 빨리, 절망적으로 던져질 뿐이었다. 아이는 말 그대로 시간과 경주하고 있었다. 아이는 마지막 순간에 너무 급히 움직이다 그만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명멸하는 횃불 빛 아래, 스쿠틀루는 추락한 클라우드데일의 교외에 있던 추락한 왕실 비행선에서 찾아낸 잡동사니의 마지막 것을 끌어당겼다.
살짝 갈라진 바위틈 너머로 보이는 회색의 세계는 자욱하게 부풀어 오르며 포효하고 있었다.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는 마치 백색소음(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나는 소음) 같았고, 보이지 않는 악몽의 지저분한 목 위에 겹쳐졌다. 작은 아이가 바깥의 굶주린 황무지를 피해 숨어 있는 곳으로, 악몽은 가까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웅얼거리는 듯한 숨과 함께 들고 있던 잡동사니를 앞에 있던 다섯 더미의 시커먼 바리케이드 중 하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새카맣게 그슬린 비밀저장고의 벽으로 쌓은 바리케이드였다.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고, 아이는 검은 금속질의 단단한 벽을 잡아당겨 닫았다. 저 위로 흰 눈과 검댕이 내려 입구를 잘 가려 주었기를 바라며... 아이의 애처로울 정도로 작은 피신처를 잘 감추어 주었기를 바라며.
작은 마지막 포니는 급한 숨을 헐떡이며 잔뜩 지친 발걸음으로 재빨리 동굴 뒤편으로 향해 가까워 오는 소리로부터 멀어졌다. 아이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고, 숨은 급했다. 아이의 밝은 오렌지색 솜털은 여기저기 울혈이 드러났고 먼지와 마른 핏자국으로 얼룩이 져 있었다. 아이의 밝은 분홍색 머리털은 뒤집어쓴 넝마 조각 바깥을 똑바로 쳐다보는 맥동하는 보라색 눈동자 위로 내려져 걸렸다. 아이의 눈은 저 너머의 괴물들과 자기 사이를 갈라놓는 유일한 벽인 비밀저장고의 벽으로 쌓아올린 바리케이드만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발톱과 땅이 부딪히는 소리가 갈수록 커져 갔다. 대기는 놈들의 썩은 숨에 녹아들었다. 때때로 저 영원한 혼돈의 포효소리 안에 놈들의 피에 굶주린 주둥이에서 터져 나오는 다른 비명소리나 함성, 고함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스쿠틀루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횃불을 움켜잡았다. 그녀는 타오르는 횃불을 녹은 눈의 물구덩이에 집어넣었고, 엄청나게 추웠던 동굴을 죽음의 어둠 속으로 밀어넣었다. 페가수스는 어둠 속에 자기를 숨기려 했다. 아이는 다음 순간에 닥쳐올 공포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동굴 속에 있던 모든 빛이 꺼지고 나자, 흐릿한 회색 연무가 바깥에서 새어 들어왔다. 그리고 수십 개의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몸이 굳어 버렸다. 끔찍한 것들의 그림자가, 무서운 것들의 그림자가, 가죽질의 피부에 굶주린 창백한 눈동자를 한 것들의 그림자가 비밀저장고 벽 위에서 반짝이는 황혼의 빛 위로 수많은 뇌운(雷雲)처럼 흘러갔다. 저 짐승들은 온 황무지를 뒤덮고 있었고 마지막 포니는 혼자였다. 놈들의 굶주림의 바다 위에서 혼자뿐이었다.
스쿠틀루는 훌쩍이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어머니 뱃속의 아기처럼 몸을 웅크렸고, 그녀 자신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과거의 향수를 숨쉬었다. 그녀가 한때 알았던, 아름다운 목소리를 찾는 아이의 몸이 떨렸다. 오래 전, 부드럽고 애정 담긴 목소리로 비단결처럼 그녀를 어루만지던 그 목소리를. 오래 전의 악몽들도 안아 주던 그 목소리를 찾으려 아이는 애쓰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이를 달래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숨이 있었다. 아이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신, 다른 포니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 아름다운 목소리와 충분히 닮았고, 충분히 부드러웠으며, 애정도 담겼던 목소리였다.
말을 더듬는 숨소리는 스쿠틀루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죽어가는 새의 끼익대는 소리처럼 그 목소리를 따라갔다. 아이는 자기 마음 속에서 몸서리쳤고 아이의 숨은 흐느낌과 공포에 잘 내쉬어지지 못했다.
“Hush now, quiet n-now, it's time to lay your sl-sleepy head. H-Hush now, quiet now, it's time to go to bed...”
스쿠틀루의 목소리는 차가운 동굴 벽에 느릿느릿 가 부딪쳐 울렸다. 노랫소리는 황무지에서 들려오는 공포의 불협화음을 흘려보내려 몸부림치고 있었고, 놈들은 감춰 놓은 동굴 입구로 성기지만 천천히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는 흐느끼며 나머지 노래를 마저 불렀다.
“Drift, drift off to sleep. Leave the exciting day b-behind you. Drift, drift off t-to sleep. Let the golden dreams find y-you...”
그 때부터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 황무지 서편에는 아주 깊고 바람이 강한 협곡이 하나 있었다. 협곡을 둘러싼 높디 높은 돌 산의 그림자 아래로 거대한 버섯 줄기들이 숲을 이루어 꾸물대고 있었다. 창백한 버섯들의 뿌리가 박혔을 부드럽고 푹신한 대지 위에 눈이 담요처럼 덮여 있었다. 한 무더기의 그림자가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 소리가 영겁의 침묵을 깨뜨렸다.
그림자 하나가 지나가면 다음 그림자가 뒤를 따랐고, 그것들이 뿜어내는 녹색 숨결과 무겁게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틀린 나무로 짜인 몸뚱이가 먼지 낀 대지를 짓이기며 지나갔다. 살아 움직이는 나무의 발이 삐걱거리며 신음할 때마다 쌩 하며 엄청나게 쌓인 눈 위로 수많은 발톱 자국이 남았다. 날카롭게 짖어대는 소리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나무 발들은 더욱 빨리 달려가기 시작했고, 쿵쿵대는 소리가 들려와 스펀지 같은 버섯들은 몸을 떨며 산 나무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멀리 아득한 곳에서 흩어져 오는 한 불운한 동물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무 몸뚱이를 한 포식자들의 발톱 아래, 피로 얼룩진 최후를 맞았으리라. 몇 초 뒤, 잘려진 흙 판이 움직였다.
조그마한 흙 판에서 재와 먼지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판은 가로세로 일 미터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 포니는 자기가 숨어 있던 흙 판 아래 덮어 놓았던 삼베 자루 밑에서 마스크 쓴 얼굴을 들어올렸다. 스쿠틀루는 바로 앞, 녹색 빛이 어른거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좀 전에 나무 괴물들이 달려간 바로 그 곳이었다.
스쿠틀루는 지겨울 정도로 오래 쪼그리고 앉아 있던 관절들을 딱딱 꺾으며 몸을 마저 일으켰고, 곧 들어가 숨어 있던 땅 아래서 폴짝 뛰어나왔다. 그녀는 중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두꺼운 갈색 가죽옷이 몸통과 날개를 가려 주고 있었다. 그녀는 구덩이 안에 발굽을 집어넣어 황동제 라이플을 잡아당겨 꺼내고는 조용히 룬스톤 탄창을 향해 몇 마디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녀는 월석 탄환에서 빛이 새나오기 전에 재빨리 자루로 라이플을 감싸고는 놈들이 남긴 빛을 쫓아 소리 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포니를 집어삼킨 협곡은 황혼 지는 구름 낀 하늘보다 두 배는 더 시커맸고 가팔랐으며 미궁 같았다. 그래도, 마지막 포니는 그냥 냄새만 맡으며 달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녀의 목표물이 풍기는 악취는 정말 참을 수도 없는 그런 냄새였으니까. 그녀는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공기를 가득 들이마셨다. 속이 뒤집히면 뒤집힐수록 목표물에 더욱 가까워진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녀 스스로를 '포식자'라 칭하는 건 지금 상황에선 약간의 어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쿠틀루는 자신의 자만심보다도 자신의 능력을 더욱 믿고 있었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소리를 내지 않게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며 협곡 한쪽에 몸을 딱 붙이고 협곡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녹색 아우라가 가장 밝게 일렁이는 곳을 향하여.
그녀는 협곡 안쪽의 귀퉁이를 들여다보기도 전에 목표물이 그녀의 바로 앞에 있으리란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오직 놈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가 문제일 뿐이었다. 그 순간 스쿠틀루는 여섯 개의 그림자를 보았고, 재빨리 돌덩이 뒤에 몸을 숨기며 낮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토해냈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녹색 빛을 뿌리는 여섯 형체가 고글에 비쳤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스쿠틀루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팀버울프들은 예상보다 컸다. 아니, 예상한 것보다 두 배는 더 컸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었다. 놈들의 머릿속에선 바로 근처에 말 고기가 있다는 생각은 뒷전인 것 같았다. 여섯 놈 전부가 으르렁거리며 몸을 낮추더니 똑같은 고깃덩어리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거의 누더기가 된 그리즐리 곰의 남은 고기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놈들은 괜찮은 사냥꾼이었다. 여섯 팀버울프가 죽은 곰의 사지를 물어뜯어 고깃덩어리로 만드는 동안에도 곰의 몸뚱이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나와 흰 먼지 가득한 협곡 바닥에 고였을 거였다.
스쿠틀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때 그리즐리 곰이 바깥 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동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재앙이 그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먹이사슬은 훨씬 단순해지고 거대해졌다. 쓸데없이 장엄하기까지 했던 그 폭발은 세계를 흔들어 놓았고, 타르타로스의 문까지 열어 버려 굳이 말할 것도 없이 흉악하고 거대한 괴물들을 이 땅 위에 풀어놓았다.
하지만 대지 위에 과거 이퀘스트리아를 활보했던 괴물들이 다시 돌아온 이래 괴상한 축복이 그 뒤를 따랐다. 포니들이 없는 세상에서 '괴상하다'는 것은 '돈이 된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기 때문이다.
스쿠틀루는 발굽을 들어 고글 렌즈를 조정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글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팀버울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메랄드 빛 안광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놈들은 마법 섞인 숨결을 뿜어내며 시뻘겋게 흠뻑 젖은 고깃덩어리 속으로 주둥이를 밀어 넣었다. 한 놈이 달 없는 하늘 위로 울부짖었고, 놈의 쩍 벌린 주둥이 안에는 찌르르한 갈색 에너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콧김을 뿜었다. 놈은 거의 다 처먹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리 오래 여기 머무르지도 않을 터였다. 스쿠틀루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남은 건 단 하나, 방아쇠를 당기는 것뿐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방금 그렇게 했다. 그녀는 총을 싸고 있던 자루를 휙 풀어헤쳐 집어 던지며 탄창에서 배어 나오는 룬스톤의 빛을 공기에 뿌렸고, 뒷다리 두 개로 버티고 서서 불쑥 튀어나온 돌덩이에 등을 기댄 채 가장 멀찍이 있던 팀버울프를 향해 라이플을 겨누었다. 그녀가 놈을 노린 이유는 간단했다. 놈의 다리가 가장 굵직한 걸로 보아 저들 무리에서 가장 빠른 놈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그녀가 놈들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한 이상 할 일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하압!"
스쿠틀루의 기합소리는 총구에서 터져나간 탄환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에 흩어졌다. 반짝이는 룬스톤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머지 다섯 팀버울프를 지나 목표물의 목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었다. 놈의 녹색 눈이 부서진 두개골과 함께 휙 돌아가며 바로 뒤에 있던 절벽에 날아가 부딪혀 산산이 조각났다. 살점이 다섯 팀버울프에게 튀었다. 아주 잠시, 죽은 듯한 침묵이 찾아왔고 놈의 몸뚱이는 그대로 쓰러져 잔가지와 나무 토막으로 부서졌다. 갈색 재가 구름을 만들며 피어났고, 반짝이며 제자리에 고였다.
나머지 다섯 팀버울프들이 순식간에 몸을 돌려 스쿠틀루가 있던 쪽을 향해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스쿠틀루는 벌써 협곡 바깥쪽을 향해 달아나고 있었다. 굳이 그녀가 자기가 벌인 참극의 여파가 어떤지 구경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섯 팀버울프들의 발톱 돋친 사지가 그녀의 뒤를 쫓아 맹진하고 있었고, 그녀는 자기 솜털이 잔뜩 곤두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좀 전에 총을 맞은 팀버울프가 멀리서 다른 녀석들과 합류했다. 다른 놈들보다 두 배는 더 격노한 채였다.
스쿠틀루는 고른 숨을 내쉬며 여기저기 뒤틀리고 꼬인 바람 부는 협곡을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연습으로 이 좁아터진 길목을 달려 본 덕에 그녀는 어떻게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그저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에만 집중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협곡 입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가까워지는 팀버울프들의 쉬어 터진 고약한 숨은 무시했다.
그녀의 양 옆구리를 따라 뒤로 흘러가는 거대한 버섯들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쌩 하는 소리를 내며 사라져 가자 그녀의 두 귀가 쫑긋거렸다. 스쿠틀루는 입고 있던 두꺼운 가죽옷이 땀과 덥혀진 몸뚱이로 뜨거워져 가는 걸 느꼈다. 나무 늑대들의 지독한 입 냄새 때문에 당장이라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녀가 예상한 대로 전부 들어맞아 가고 있었다. 빗방울처럼 후두둑 하고 발톱 돋친 사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바로 위에서였다.
스쿠틀루가 진홍 눈동자를 슬며시 치켰고, 그녀의 두 눈은 이내 떨려오기 시작했다. 웬 커다란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협곡 위에서 뛰어내려 그녀를 덮쳐오고 있었다. 바로 다음 순간, 길 하나를 완전히 막아 버릴 만큼 덩치가 큰 팀버울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놈의 온 몸은 새빨간 나뭇잎으로 덮여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꾸짖었다. 저놈들 말고도 협곡 위에 대장 팀버울프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분명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그 자리에 있었을 터였다. 스쿠틀루는 멍청하게도 이걸 계산에 넣지 않았던 거다.
바로 그 다음 찰나의 순간 동안, 가장 중한 건 그녀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었다. 벌써 놈은 그 굵직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그녀를 물어뜯어 버리려고 달려들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뒷다리로 오른쪽으로 도는 척하며 왼쪽으로 훌쩍 뛰어 놈의 커다란 주둥이를 피했다. 마지막 포니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한쪽으로 훌쩍 뛰어 협곡 한 쪽을 차내며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그녀의 몸은 거대한 팀버울프의 뒤틀린 꼬리 뒷쪽에 내려앉았다.
놈은 뒷다리로 그녀를 걷어차려 했고, 그녀는 그걸 피할 만큼 몸이 빠르지 못했다. 가죽 찢어지는 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웠고, 스쿠틀루의 눈앞에서 협곡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녀는 등부터 떨어졌고, 이내 몇 번 구르다가 다시 네 다리로 일어났다. 어지러웠다. 말 그대로 세 번은 빙빙 돌았으니 당연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랐다. 대장 팀버울프가 그녀를 걷어차는 걸 본 팀버울프들은 더욱 박차를 가해 달려오고 있었고, 스쿠틀루는 바로 눈앞에 있는 굽어진 길을 향해 달아났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은신처로 달려갔다. 추격전을 끝내기로 정해 놓은 장소였다. 버섯으로 벽을 쌓은 듯한 좁은 틈 사이를 지난 그녀는 계류된 하모니 호에 닿았다. 비행선은 강철 못을 엮어 둔 로프 하나에 매여 있었다.
스쿠틀루가 공터로 들어온 지 이 초도 되지 않아 팀버울프 일곱 마리가 협곡 바깥으로 달려나왔다. 놈들이 마주한 것은 둥둥 떠 있는 비행선 한 척이었는데, 놈들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이 계속 달려왔다. 놈들이 멈춘 건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스쿠틀루가 미끄러지며 몸을 돌렸고, 유니콘 뿔 팔찌를 입가까지 들어올리며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하모니 호 뱃머리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스피커는 룬스톤으로 만든 고리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조금 전 스쿠틀루가 외친 주문에 반응한 월석들이 번쩍이며 빛을 뿜더니 스피커에 동력을 넣어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큰 사이렌 소리가 터져 나오며 근처의 재 덮인 협곡을 가득 채웠다.
팀버울프들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사이렌 소리에 놈들은 발을 질질 끌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놈들의 녹색 눈은 고통스러운 듯 깜박이고 있었고, 놈들은 겁에 잔뜩 질려 얽히고 설킨 놈들의 사지와 꼬리를 한데 모으며 꾸물댔다. 놈들은 그야말로 완전히 수세에 몰려 한쪽으로 몰렸다.
스쿠틀루는 고글을 올리며 심호흡했다. 그녀는 완전히 갇혀 버린 팀버울프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놈들 양쪽에 쌓여 있던 돌덩이에 딱 붙여 놓은 폭약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앞다리에 차고 있던 반짝이는 뿔 팔찌를 들어올렸고, 다시 한 번 유니콘의 잔해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폭약은 월석으로 만든 뚜껑으로 봉해져 있었다. 월석 뚜껑이 불타는 퓨즈처럼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미리 준비해 둔 유리병들이 즉시 화염을 토해내며 터져 나갔다. 스쿠틀루는 날아오는 돌조각과 나무 조각들을 피해 숨었다. 그녀는 걷혀져 가는 연기 속을 가늘어진 눈으로 노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재가 가라앉은 자리에 좀 전까지 있던 팀버울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잔가지와 나뭇가지 몇 개만 쌓여 있을 뿐이었다. 좀 전의 갈색 에너지 덩어리가 희미하게 반짝이는 아우라로 변했다. 그녀는 차분한 숨을 들이마시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게 그녀의 목표였다. 스쿠틀루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미끄러지듯 재빨리 달려가 팀버울프의 잔해 한가운데 쪼그리고 앉았다. 스쿠틀루는 가죽옷에서 좀 전에 폭약을 담았던 유리병과 똑같은 유리병을 여러 개 꺼냈다. 모두 월석 마개로 막혀 있었다. 그녀는 섬뜩한 갈색 아우라 아래 유리병을 늘어놓았고, 주문을 여러 번 반복하며 외웠다.
유리병을 막고 있던 마개들이 하나하나 푸른 빛을 내며 반짝이기 시작했고, 이내 갈색 에너지를 조금씩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반짝이던 에너지는 꺼내 놓은 유리병 안으로 끌려 들어가며 농축되고 있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유리병은 모두 규칙적으로 고동하는 갈색 불꽃으로 가득 찼다.
스쿠틀루는 이를 악물었다. 일이 되어 가고 있긴 한데, 마음에 찰 만큼 빨리 되어 가고 있지 않아서였다. 문득 그녀는 다시 뒷목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잔가지들과 나뭇가지들이 그녀 주변에서 꿈틀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하나하나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갈색 에너지는 서서히 좀 전의 녹색 기운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빨리... 빨리 좀 되라..."
그녀 주변에서 서로 얽혀 가는 나뭇가지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녀의 왼편에선 벌써 팀버울프의 앞다리가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다. 등 뒤에서는 주둥이가 다시 생겨났고, 이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빨리 좀 되라... 적어도 이따위로 느리게 만들진 않았단 말이다..."
그림자는 갈수록 커져 가며 세 배까지 불어났고, 커다란 늑대의 형상을 갖춰 가는 나뭇가지들에 다시 생명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 다음 순간, 갈색 불꽃을 다 모은 유리병 하나에서 호박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 스쿠틀루가 재빨리 유리병을 가죽옷 안에 쑤셔 넣으며 외쳤다. "자, 다음! 더 빨리 해야 한다니까! 빨리 좀!"
두 번째 유리병이 거세게 흔들리며 갈색 섬광을 뿜어냈다. 스쿠틀루는 재빨리 병을 낚아챘다. 침을 뚝뚝 흘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그녀를 둘러싸며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쿠틀루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팀버울프의 숲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제발 좀... 두 개만 더! 달랑 두 개로는 충분히 돈을 못 번단 말이다..."
세 번째 유리병이 깜박이며 빛을 뿜었다. 스쿠틀루가 병을 집어 옷 안에 집어넣었다. 바로 뒤에서 팀버울프 한 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헉 소리와 함께 오른쪽으로 몸을 굴렸고 재빨리 일어나 놈을 흘끗 바라보았다.
팀버울프는 휘청거리고 있었고, 새로 구축된 두개골에 얽힌 거미줄을 흔들어 털어 내고 있었다. 놈은 잔뜩 약이 올라 스쿠틀루를 노려보았고, 그 와중에 옆에서 팀버울프 한 마리가 더 재구축되어 일어나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이를 꽉 악물었다. 바로 뒤에서 역겨운 숨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그녀는 하모니 호를 올려다보았고, 머리를 물어 뜯길 뻔했다. 그녀는 세 번째로 재구축된 팀버울프의 발톱을 몸을 굴려 피했다.
스쿠틀루는 미끄러지며 몸을 멈추었고, 방금 전에 다 채워진 유리병을 주머니에 넣은 뒤 황동 라이플을 잡아당겨 꺼냈다. 그녀는 몸을 눕히며 소리쳤다. "하앗!"
총알이 발사되어 날아갔고, 돌 바닥에 맞고 튀어나가 팀버울프 한 놈의 다리 두 쪽을 잘라내며 날아갔다. 반쯤 사지가 날아간 팀버울프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고, 그 통에 에너지를 흡수하던 유리병 하나가 넘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하나는 바닥을 굴러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유리병이 임무를 다했다는 듯, 밝은 갈색 섬광을 뿜어냈다.
스쿠틀루는 숨이 막히는 듯 헉 소리를 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자신의 소리도 듣지 못했다. 팀버울프가 전부 살아난 것이다. 더 심각한 건, 놈들이 하나같이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송곳니와 발톱을 드러낸 채 다가오는 나무 몸뚱이들밖에 없었다.
"이얍!" 스쿠틀루는 어리석게도 놈들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놈들의 날카로운 사지를 하나하나 피하며 쭉 앞으로 달려나갔다. 스쿠틀루는 계속해서 훌쩍 뛰었다가 구르기도 하며 놈들의 다리를 피해 유리병을 잡으러 달려갔고, 곧 입으로 병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잽싸게 하모니 호를 묶어 둔 밧줄을 향해 뛰어올랐다. 하나... 둘... 세 개의 주둥이가 그녀를 물어뜯으려 덤벼들었고, 그녀는 요리조리 피하며 계속 달려갔다. 스쿠틀루는 기적적으로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반대편까지 무사히 달려왔고, 로프를 잡으며 발굽을 둥글게 말아 입에 물고 있던 유리병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뿔 팔찌를 치켜들고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하모니 호의 입구 쪽에서 보라색 불빛이 희미하게 빛났다. 비행선은 그 상태로 꿈틀대는 회색 구름 속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도, 팀버울프들이 몇 번 더 스쿠틀루의 몸을 반으로 쪼개 버리려고 풀쩍풀쩍 뛰고 있었고, 그녀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순간 아주 약간의 차로 그녀를 물지 못했다. 그녀는 그대로 으르렁대는 팀버울프 떼를 떠나 계속 높은 곳으로 날아갔다. 뒤틀린 협곡이 서서히 시야에서 흐려져 갔다.
스쿠틀루는 안간힘을 쓰며 로프를 타고 비행선 하단의 조리개문 앞까지 기어 올라왔다.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계속해서 숨을 헐떡였다. 고생스럽던 숨결은 그녀가 두꺼운 가죽옷을 벗고 갈색 날개를 펼침과 동시에 괴짜 같은 웃음으로 변했다. 그녀는 그 다음으로 고글과 모자를 벗었다. 짧은 보라색 앞머리가 눈 섞인 바람에 흔들렸고,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 갈색 빛으로 반짝이는 유리병을 내려다보았다. 웃음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진홍 눈동자가 그녀 바로 옆에 놓인 가죽옷을 향해 떨어졌다. 그녀의 웃음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가죽옷은 깨끗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세 개의 발톱이 깊숙이 파고들어와 가죽옷을 가르며 나갔고, 그 사이로 반대쪽 가죽이 보일 정도였다. 분명 팀버울프 대장이 스쿠틀루를 버섯 돋은 길가 한쪽으로 걷어찼을 때 생긴 상처였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가죽옷이 그렇게 되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는 걸 느끼며 한쪽 발굽을 들어 등부터 시작해서 날개, 엉덩이까지 천천히 만져보았다. 다행히 베인 곳은 고사하고 멍든 곳도 하나 없었다. 가죽옷이 팀버울프의 발톱을 전부 다 막아 준 모양이었다. 간신히 말이다.
스쿠틀루는 추워서 몸을 떨며 둥둥 떠가는 비행선에 몸을 기댔다. 그녀의 품 안에는 불꽃을 담은 네 개의 조잡한 유리병이 안겨 있었다. 유리병은 따뜻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삼촌이라고 불러 봐!" 피트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네가 진작에 포기했을 거라 생각했지!"
"흐음..." 스쿠틀루의 코에서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연기 낀 M.O.D.D.의 바에 기대며 앉았다. 스쿠틀루는 유리병 네 개를 품에서 꺼내 원숭이의 털 난 손에 쥐어주었다.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건데?" 그녀가 툴툴대며 말했다.
"네가 나한테 물건을 가져다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렇지, 기 센 아가씨." 피트가 말하며 유리병 하나를 집어 눈 가까이에 대고 들여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다른 애들이랑 거래하는 것도 처음인 것 같은데."
"네가 네 동생들한테서 이렇게 오랫동안 눈을 떼고 있다는 게 놀라운데 그래." 그녀가 중얼거렸다. "뭐, 그건 나도 잘 모르겠고. 요즘은 걔들 냄새도 잘 못 맡겠더라고." 피트가 히죽히죽 웃으며 카운터 뒤로 유리병을 끌어다 놓고는 팔짱을 꼈다. "똥 색 한 것 치고는 꽤 괜찮은데. 뭐, 너도 알다시피 그것들이 원래 똥 색깔을 하고 있긴 하잖냐."
"그러냐..."
"갈색 불꽃이 저 증기기관에 낀 그을음을 닦는 데 진짜 끝내주거든. 뭐, 너도 보다시피, 이 물건은 참 좋은 물건이란 말이야... 불순물만 좀 뺀다면 말이지."
"그렇지 뭐..."
"그리고... 음... 내가 가끔씩 토요일마다 분홍색 발레복을 입고 원숭이 공주 시나몬 스월스 랜드처럼 꾸미고 그래."
"그래..." 스쿠틀루는 바 먼 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고블린과 다이아몬드 독, 코모도 드래곤이 그녀를 되쏘아보고 있었다.
피트는 지저분한 눈썹을 치키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하모니, 지금 솔직히 내 말 듣고 있기나 한 거냐?"
"뭐?" 스쿠틀루는 멍하니 있다가 피트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딱딱거리며 얼굴을 구겼다. "하모니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다른 포니들만 날 그렇게 부를 수 있다고."
"음... 좀 오싹한 얘기를 해서 미안하게 됐지만, 대체 그 다른 포니들은 무슨 말이야?"
스쿠틀루는 떨리는 입을 열고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녀는 꼭 편두통이 온 포니처럼 발굽을 이마에 갖다댔다.
피트의 둥글납작한 코에서 흥흥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몸을 뒤로 기울이더니 생각에 잠겨 뺨을 문질렀다. 피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됐어. 한 병당 은괴 열 개 하고 반 개 더. 어때?"
"어쩌면 내 정신머리는 지금 여기 없는지도 모르겠다, 피트. 다만 내 머리통은 확실히 여기 있단 말이다." 스쿠틀루가 투덜대며 말했다. "한 병당 은괴 이백 개는 가뿐히 넘는다고. 너도 알잖아."
"요새 너무 쪼들린단 말이야, 포니 아가씨." 피트가 유리병 안에 고인 불꽃보다도 더욱 짙은 갈색을 한 헝겊으로 잔을 닦으며 말했다. "부엌에 불만 두 번 났다고. 거기다 오우거 놈들이 자꾸 안 좋은 일을 시키려고 한단 말이야. 윌리스는 남은 신장 한 쪽까지 망가져 버렸고.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이거야, 지금 당장 은괴를 구할 수가 없단 말이지. 좀 봐 줘. 봐 줄 거지?"
"피트, 네놈은 진짜 다리 달린 하피 똥 덩어리에다가 썩을 데까지 썩은 추잡한 거짓말쟁이에..."
"알았어! 병당 20개!" 피트가 신음했다. "윌리스 신장은 튼튼하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다른 계집애만도 못한 애들 대신 발전기를 맡고 있는 거지. 걔들이 그걸 돌렸다간 아마 녹이 슬어 버릴 거야." 피트가 벗겨져 가는 머리를 문지르며 순진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어떻게 너한테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안 할 수가 있겠어?"
스쿠틀루는 질렸다는 눈길로 피트를 바라보았다. "아마 내 포니성에 끌렸기 때문이겠지. 네 속 뒤집어지는 술 한 잔 먹겠다고 꾸역꾸역 모여든 저 놈들보다는 내가 더 나으니까."
바로 그 때, 강철 의족을 한 라쿤 한 마리가 훌쩍 뛰어 스쿠틀루의 등에 앉았다. 그러고는 약해 빠진 주먹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오! 이 지긋지긋한 년아! 네 년은 그냥 포니, 포니, 포니 귀신들에 쓰인 미친년이야!" 라쿤은 침을 질질 흘리며 스쿠틀루의 가죽 모자를 물어뜯었다. "너네 엄마네 뱃속으로 도로 기어 들어가라고! 칵, 퉤! 귀찮은 년아!"
스쿠틀루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바 카운터에 기대 놓은 황동 라이플을 향해 발굽을 뻗었다. 마지막 포니는 라이플을 조금 흔들어 보이더니 곧장 온 힘을 실어서 라쿤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아읍!" 조그맣고 지저분한 라쿤의 몸뚱이는 테이블 몇 개 위를 훌쩍 날아 벽에 장식해 놓은 사슴 두개골에 부딪혔다. 몇몇 술 취한 손님들이 호나호하며 꼬불꼬불한 꼬리를 한 부랑자에게 몇 조각 은을 던져주었고, 침 흘리던 라쿤은 다급히 은 조각을 주웠다. 뭐라도 좀 마셔야 할 정도로 침을 흘려댔으니, 당연했다.
"내가 뭐랬어." 스쿠틀루가 조용히 말하며 라이플을 다시 기대놓았다.
"다른 것들보다도 그게 마음에 들었지." 피트가 눈을 찡긋하고는 카운터 안쪽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앞치마를 걸친 여우원숭이 한 마리가 재빨리 달려나왔다. "다음 폭풍이 올 때까지 이 병들 잘 보관해 놔. 테리한테 말해서 다음 번에 우리 선샤인 양께서 다시 오시면 은괴 팔백 개 갖다 주라고 하고."
뼈만 앙상한 원숭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병을 집어 재빨리 카운터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왕 간 김에 머리도 좀 자르고!" 피트가 소리쳤다. 그는 다시 안 닦은 술잔을 닦으며 마지막 포니에게 슬쩍 웃어 보였다. "하여튼, 여우원숭이들이란. 쟤들은 늘 보고 있으면 짜증이 다 난단 말이지. 살만 뒤룩뒤룩 찌고 말이야."
"피트..." 스쿠틀루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두 눈은 지저분한 카운터 위에서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나무로 마감한 카운터 위에서 그녀는 그녀를 찢어 죽이려고 날아오던 뒤틀린 발톱들을 생각했다. 이십사 년 만에 처음으로, 놈들이 달리는 소리를 들었다. 외로이 떨던 오렌지색 망아지의 모습이 그녀와 겹쳐졌다. "뭣 좀 물어 보자."
"하모니, 은괴 팔백 개짜리 외상 얘기하는 거면 내 끝내주는 고객이랑 오우거식 풋볼을 하기 전에 물어 보는 게 좋을 거야." 피트가 술잔을 정리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 양반이 얼마나 냄새가 지독한지는 논외로 하자고."
스쿠틀루는 전보다 부드러워진 진홍색 눈을 들었다. "왜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걸까?"
피트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스쿠틀루는 눈을 굴리며 한숨짓고는 발굽으로 뺨을 꾹꾹 눌렀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냐." 스쿠틀루가 나직이 말했다.
피트가 코를 흥흥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질문이 좀 괴상하긴 하지만 그리 멍청한 질문은 아닌데 그래." 그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독한 암말에게서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은 손님에게 술 따른 잔을 밀어주었다. "내 말은... '왜' 살아 있냐고 묻는 거지? 때려죽여도 대답 못 할 질문이야. 차라리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고 묻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지."
"헤..." 스쿠틀루가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카운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대답을 듣고 안 듣고는 상관없는데."
"최근에 뭐 기분 안 좋은 일이라거나 그런 거 있었나 봐?" 피트가 물었다. "아, 이건 알아둬. 딱히 네가 걱정되어서 이러는 건 아냐. 헤, 이 망한 세상에서 갈색 불꽃 좀 얻겠다고 팀버울프를 찢어 죽일 만한 바보 천치는 너밖에 없어서 그런 거니까 말이야. 네가 뭘 어떻게 했는지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쉽지는 않았어." 스쿠틀루가 말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킨 뒤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죽을 뻔했거든. 대장 놈한테 한 대 맞았는데, 가죽옷을 안 입고 있었으면 그 자리에서 두 동강이 났을 거야."
"진짜 운이 좋았구만. 뭐, 그리 널 따라 주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말이야." 피트는 만들던 샌드위치 위에 빵을 탁 하고 덮으며 히죽히죽 웃었다. "헤... 적어도 네가 싸지르고 다니는 똥 덩어리를 제 때 치우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지." 그는 재채기를 하고는 코를 문질러 닦으며 쟁반 위에 접시를 하나 올려놓았다. "오 번 테이블에 계란 샐러드 샌드위치 하나!"
"바로 그거야, 피트." 마지막 포니가 중얼거리며 몸을 기울였다. 조그마한 원숭이 웨이터가 그녀의 옆으로 잽싸게 달려와 쟁반을 집더니 테이블을 향해 달려갔다. "이번뿐만이 아니야, 내 인생 전부가 그 미친 짓거리들로 가득 차 있었지...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어. 히드라와 싸웠고, 불사조와 싸웠어, 심지어 이빨이랑 손톱 세운 트롤 놈들과도 싸웠어. 그런데도 난 아직 살아 있지. 왤까?"
"네 신세 한탄 들어 줄 물건들은 많잖냐. 왜 하필 나한테 묻는 건데?"
그녀는 피트의 말은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저 작자들 한번 보라고." 그녀는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쟤들이 날 어떻게 쳐다보는지 보이지 않아?"
"야, 그럼 누가 널 안 쳐다보고 배기겠어? 망한 세상에서 가장 쭉빵한 애가 바로 넌데."
"피트..."
"아, 물론 침팬지들을 제외하면 말이지. 후..." 피트의 몸뚱이가 붉어짐과 동시에 그가 콧김을 내뿜었다. "정말 그리워. 침팬지 여성과 결혼하세요, 하고 신청자를 받고 나서 돈만 받으면 보내 주는 침팬지 여자들이 가득 탄 비행선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한번 보라고. 역사상 가장 쭉빵한 수소 폭발이었을 거야."
스쿠틀루는 발굽으로 카운터를 쾅 하고 내려치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피트, 저놈들은 아무렇지 않게 날 찢어 죽이고 싶어하는 놈들이란 말이야!"
"쳇. 내가 뭐 놓치고 있는 게 있다면 말해 봐."
피트의 얼굴은 혼란스럽다는 듯 당겨졌다. "그럼 왜 지금 당장 널 해치우지 않는 건데?"
"좀 전에 라쿤 하나 날려 버렸잖아."
"피트, 나 지금 심각하다니까. 좀 전에 주위를 한 번 둘러봤는데..." 스쿠틀루가 입술을 깨물며 전등 빛 비치는 연기 자욱한 술집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나랑 말을 섞으려고 하지를 않아. 내가 무섭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내가 황무지 속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눈은 지친 듯 가늘어졌다. "그 괴물들이 두려운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나도 괴물 취급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피트는 비뚤어진 눈길로 오래도록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은 뭔가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고 있었다.
스쿠틀루의 눈길이 닿았다. "뭐."
"어... 에헤헤헤..." 피트가 털 돋은 턱을 쓸며 말했다. "네가 괴물이라고는 못 하겠는데 말이야. 이렇게 수다나 떨면서 색다른 짓을 하는 걸 보면, 괴물은 아니야."
"수다?"
"평소엔 그냥 돈 나올 때까지 입 다물고 앉아 있기만 했잖아. 그러다가 돈주머니가 나오면 그걸 집고, 그냥 나가 버렸지."
"아니... 아니 그저 요즘 마음에 걸리는 일이 많아서..."
"그래, 그렇구만. 그래서, 그게 뭔데? 사업 얘긴가?"
스쿠틀루는 입술을 씹으며 시선을 돌렸다. 벽에 줄지어 매달린 전등들은 새빨간 사과처럼 깜박이며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불러도 괜찮고..."
"아, 그래..." 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불쑥 바 바깥으로 상체를 내밀며 말했다. "저들이 하모니, 널 두려워한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야. 그렇다고 네가 괴물이라거나 뭐 그 비슷한 거라는 뜻은 아니지. 하, 젠장. 사실, 다른 이유 때문에 저것들이 널 무서워하는 거야."
그녀는 피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피트는 몇 초 뒤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저 녀석들도 네가 마지막 포니란 사실을 알아. 말 그대로 지긋지긋하게 붙어서 안 떨어지는 존재가 바로 너지. 지난 기나긴 세월 동안 대가리에 뭐라도 찬 녀석들은 전부 다 네가 어떻게든 그냥 죽어 버리기만 바래 왔거든. 근데, 넌 딱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줬지. 온갖 기괴한 것들과 가능성을 버텨내고 살아난 거야. 그게 정말 무서운 거거든... 그것 때문에 아가씨가 나한테 한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 못 해.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건대, 그러고 싶어할 녀석도 없을 거야."
"그게 운명이라면 어때, 피트?" 스쿠틀루가 물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게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면 어떠냐고. 뭔가... 뭐, 뭔가 절대불변의 법칙이 지금 여기까지... 지금까지... 나로서 살아남게 만들어 놓은 거라면...?"
"어딘가의 포니 씨가 지금 자기 목표가 무엇인지도 잊고 있는 것 같은데." 피트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넌 그냥 그 갈색 똥 덩어리 같은 불꽃만 가져오면 돼."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거든. 모든 건 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고, 그에 맞는 다른 일이 우연히 또 일어나는 거라고." 스쿠틀루가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다 의미가 있는 거라면 우리 스스로 그 조각들을 짜맞추는 게 우리 일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 그녀는 몸을 떨었다. "연약하거나, 또 소중했던 모든 것들이 철갑으로 둘러싼 듯 단단한 거였다면 좋았을 거라고,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흠... 옛날에 일어났던 온갖 쓰레기 같은 일들을 변명하기에는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스쿠틀루는 한숨을 쉬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옛날 일을 변명하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평생 동안 그러기만 하면서 살아왔다고. 이제는 그러지 않아. 앞으로 다가올 앞날에 불을 밝히고, 미래에 빛을 비추고 말 거야."
피트는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안한데, 잘 못 들었거든. 그 헛소리 좀 다시 한 번 해 주겠어?"
바로 그 때, 여우원숭이가 쟁반 네 개에 은 조각을 가득 담은 채 덜그럭거리며 달려왔다.
"이야! 이것 좀 보라고!" 피트가 환하게 웃으며 낄낄댔다. 그의 털 돋은 손바닥이 금고를 탕탕 치고 있었다.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는 대화를 끝내는 데는 역시 돈이 잘그락대는 소리가 최고라니까."
"좋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스쿠틀루가 툴툴대며 말했다. 그녀는 가죽을 덧댄 가방에 은괴를 쓸어 담으러 걸어갔다. "설령 그게 누군가를 벗겨 먹은 냄새 나는 돈이라 해도 말이야."
"뭐, 적어도 지금까지는 너도 누군가를 좀 벗겨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피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수다 즐거웠다. 좀 자주 이래 봐라 좀."
"트롤 젖 치즈나 왕창 드시지."
"그럼 또 보자고..."
"잘 있어라, 피트." 스쿠틀루가 조용히 말하며 돈과 라이플, 한숨을 짊어졌다. "사업 즐거웠어. 다른 것도 고맙고..."
"그래! 다시 손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진심이야!" 피트가 바를 나서는 스쿠틀루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 불꽃을 구해오는 게 좀 무섭거들랑 길다한테 얘기 좀 해 봐. 안 부를 이유가 없잖아? 골든 갱이랑 같이 있으면 황무지 어디를 가든지 안전할 거라고. 운 좋은 얼간이 씨!"
"길다는 나한테 전혀 관심 없어!" 스쿠틀루가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술집 문을 열고 나와 재 섞인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단 하나의 영혼만이 날 돌봐 왔다고..."
하모니 호 아래로 천둥 치는 폭풍이 꿈틀대고 있었다. 비행선은 황혼과 고도를 같이하며 날아가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천둥번개와 혼돈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비행선은 자동 조종 모드로 맞추어진 채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작업대 앞에 혼자 앉아 가죽옷에 남은 팀버울프의 발톱 자국을 꼼꼼히 기우고 있었다. 그녀는 쪼개진 두꺼운 가죽옷 안에 쿠거 가죽을 끼워 넣고 한 땀, 한 땀씩 꿰매고 있었다.
대략 한 시간 후,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발굽에 끼우고 있던 맥가이버 팔찌를 벗고는 아파 오는 앞다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살짝 움찔하며 보일러 불빛이 비치는 선실 안을 죽 훑어보았다.
그녀의 진홍 눈동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철로 향했다. 그녀는 눈길을 내려 스위트 애플 에이커 외곽에 있던 클럽하우스에서 꺼내 온 스쿠터를 빤히 쳐다보았다. 지난 이 주 동안 그녀는 그 물건을 고치러 다녔다. 부품 하나하나 말이다. 그 덕분인지 스쿠터는 이제 새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좀 망설였지만 이내 세월 묻은 다리를 들고 일어섰다. 그녀는 그대로 천천히 걸어가 스쿠터를 들어 보았다. 스쿠터는 작았고, 그녀의 다 자란 몸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녀는 이걸 탔다간 이 조그마한 스쿠터가 반으로 쪼개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건 여기 있었다. 그녀의 품 안에 있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떨어져 있던 물건이었고, 어딜 나가 돌아다닐 때면 꼭 타고 돌아다니던 물건이었으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되기로 예정되어 있던 것 같았다. 그녀가 스쿠터를 처음으로 잃어버린 그 장소에서 다시 찾아낸 것도 예비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깨어진 와중에도, 그것들 중 조금은 녹색 화염에 엮여 다시 제 모습을 찾아 가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한숨을 쉬었다. 철제 스쿠터의 표면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그녀는 보았다. 보라색 갈기는 지난 시간 동안에도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스파이크를 만나고 나서부터 갈기를 자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스쿠터 위에 비친 채 그녀를 쳐다보는 그림자는 한층 더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황무지에 어울리는 칙칙한 갈색 솜털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마법이 존재하던 이퀘스트리아를 무너뜨린 재앙 이래부터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의 색도 서서히 칙칙해지긴 했지만.
스쿠틀루의 다리가 떨려 오고 있었다. 그녀는 스쿠터를 돌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갈색 솜털 위 빈 엉덩이가 어땠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졌다는 듯한 숨을 내쉬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아이를 안는 어머니처럼 스쿠터를 안고 핸들에 뺨을 비볐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녀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몸을 떨며 촛불 비치는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따뜻하고, 행복한 곳이었다. 그곳은 이내 사라졌다. 눈 앞에 보이던 다른 세상이 사라지기 전에, 그녀는 확실히 보았다. 녹색 쿠션 위에 누운 황금빛 몸통을. 그리고 타닥이며 타오르던 벽난로의 불꽃을, 계단을 따라 내려오던 밝은 색의 무언가를...
스쿠틀루는 헉 소리를 내며 눈을 열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스쿠터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스쿠터의 핸들을 내려다보았다.
스쿠틀루는 재빠르지만 부드럽게 스쿠터를 내려놓으며 작업대 아래 벽에 기대놓았다. 그녀는 발을 질질 끌며 그물 침대로 걸어갔고, 폭풍이 가기 전까지는 그냥 엎어져 있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자리에 멈추었다. 스쿠틀루는 입술을 씹으며 오른쪽에 놓아둔 레코드 플레이어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그녀 뒤 가까운 곳에 있던 캐비닛과 보일러로 시선을 옮겼다.
스쿠틀루는 바이닐의 음반을 대략 사십 장 정도 가지고 있었다. 모두 무너진 포니 사회의 머나먼 구석에서 주워 온 것들이었다. 그것들 중 두세 개가 전등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곤돌라 뒤쪽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오른쪽 캐비닛 안쪽 깊숙한 곳을 뒤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줄지어 늘어놓은 책 밑에, 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관해 놓은 루나와 셀레스티아의 일기 밑에서 무언가를 잡아냈다. 그녀가 부드러운 색감의 레코드 판 커버를 꺼내자 먼지가 자욱하게 퍼졌다. 흐릿한 앨범 사진은 활기차게 걸어가는 여자 아이들과 웃는 사내아이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 위 구름에는 암말이 하나 앉아 방금 태어난 망아지를 안아 들고 있었다. 나머지 부분은 곰팡이가 슬고 썩어 들어가 알아볼 수 없었다.
스쿠틀루는 균형을 잡으려고 갈색 날개를 펼쳤고, 오래된 판을 떨어뜨릴까 조심스레 선실을 건너갔다. 그녀는 맨질맨질한 판을 꺼내며 감정 없는 시선을 던졌고, 이내 레코드 플레이어의 바늘 아래에 올려놓았다. 축음기는 몇 번 삐걱대고 나더니 바늘을 제자리에 올려놓았고, 강철로 격벽을 두른 선실 안에 부드러운 멜로디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자장가가 하모니 호 선실을 가득 채웠다. 스쿠틀루의 두 귀는 순간 아래로 늘어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는 레코드를 빼려고 발굽을 뻗었다. 그녀는 다리를 뻗다가 그만두었고, 그 대신 그 자리에 서서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부드러운 음악이 계속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음반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지만 스쿠틀루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잠시 뒤, 스쿠틀루는 그물 침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달랑거리는 갈색 담요를 덮는 와중에도 몸을 떨고 있었다. 음악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리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끽끽대는 하피들의 소리보다도 더욱 잊혀지지 않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자장가를 들으며 늘 그랬듯 아기 같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그녀는 작은 망아지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하모니 호 바깥에선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잠은 쏟아지지 않았다. 그 대신 눈물만이 계속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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