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자랐구나. 스쿠틀루."
마지막 포니는 에메랄드 같은 잔디로 덮인 정원에 앉아 있다가 놀라 돌아보았다. 그녀의 몸에는 가방이 메어져 있었고, 목에는 고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지난날의 파편을 막 다 떨쳐낸 참이었다. 그녀의 진홍색 눈동자는 그녀 위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키 큰 보랏빛 형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파이크, 다시 말해 줄래?"
"네 갈기 말이야." 드래곤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콧김을 뿜으며 팔을 쭉 높이 뻗어 희미하게 빛나는 셀레스티아 공주의 거울 주변에 매달려 있던 마법 횃불을 다시 밝혔고, 불이 다시 피자마자 곧장 물러나 근처에 있던 과일나무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갈기가 좀 길어진 것 같은데."
"아... 아, 그거." 페가수스는 살짝 홍조를 비치더니 곧장 앞다리 하나를 들어 뒷목을 쓸었다. 뻣뻣하고 까칠까칠한 갈기가 목가에서 자라나며 얇은 덮개처럼 목을 덮고 있는 느낌은 조금 어색했다. "그런 것 같네.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평소에 하던 게 아니라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네." 그녀는 헛기침을 하더니 옛 포니빌의 스케이트장이었던 건물 안을 우울한 한숨을 내쉬며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다시 한 번 더 먼 생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네가 하려던 말대로야, 스파이크. 최근에 좀... 음... 심란해서."
"말을 절제해서 하는 건 너한테 참 잘 어울려. 갤로핑 갈라의 맞춤 드레스처럼 어울린다니까." 나이든 드래곤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같이 목에 걸려 있던 보라색 펜던트가 희미하게 일렁이며 달랑거렸다. 그는 근처에 놓여 있던 나무 상자에 손을 뻗더니 그의 손에도 딱 맞을 정도로 커다란 두발 기중기를 꺼냈다. 스파이크는 오렌지 나무에 가지치기를 하며 나직이 말했다. "있잖아, 너만 원한다면 나도 거기서 널 도와 줄 수 있어. 시간을 조작해서 되돌리는 그 능력을 이용하면 시간을 좀 더 빠르게 가게 할 수도 있지. 자연회복 속도를 가속해 준다는 거지. 뭐, 네 갈기를 열 배로 빨리 자라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야. 너만 원한다면, 하룻밤만에 디바로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스파이크, 시간이 멈추기 전에 하려고 생각해 둔 건 참 많은데 말이야." 스쿠틀루가 비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죽어 가기, 죽기, 먼지 되기. 디바가 될 일은 앞으로도 절대 없을 거야."
"내가 네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려고 하잖아."
"스파이크, 그냥 호기심에서 묻는 건데, 우리가 처음으로 다시 만났을 때도 그 자연회복 가속 마법을 쓴 거였어?"
"그러니까, 지금 네가 말하는 게 네가 트롤한테 당한 상처를 낫게 했던 그 때 얘기하는 거 맞지?"
"그래, 잘 아네. 그 끝내주는 마법 말이야."
"맞아." 스파이크가 몇 개의 상태 안 좋은 잎사귀를 더 쳐냈고, 나뭇가지 하나를 살짝 비틀어 한두 개의 달콤한 오렌지를 좀 더 잘 보이게 했다. 가공원(架空園)은 거울에 남아 있던 셀레스티아의 광휘를 받아 드래곤을 둘러싸고 반짝이고 있었다. "본질적으로만 말하자면, 네 몸에 작용하는 시간이 일반적인 시간보다 훨씬 빨리 더 지나가는 것처럼 네 몸을 '속인' 거야. 일반적으로라면 네 몸이 그 부상을 치유하는 데 몇 주는 걸렸을 테지만, 그 덕에 네 몸의 자연치유가 단 몇 초 만에 끝난 거고."
"그것 참... 어... 정말 놀라운데, 스파이크." 스쿠틀루가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것도 정도껏 썼을 때나 그런 얘기야, 친구."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말은, 네가 그 마법을 지나치게 썼을 때, 네 몸은 네 몸이 지나갔다고 인식한 시간만큼 빨리 늙어 버릴 거라는 이야기야. 말 그대로 노약자가 되어 버린다는 말이지." 스파이크가 말하다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기침을 했다. 그 통에 녹색 연기가 퍼졌다. 그는 비늘 덮인 손을 몇 번 휘저어 연기를 흩어 버리고는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그게 마법의 재미있는 점이지. 그 어떤 치료 마법이라도 대가는 따르는 법이야. 어떤 산 생명을 고친다는 건 그게 죽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밥을 너무 많이 먹이는 거랑 마찬가지야. 한 백만 년 있으면 온 이퀘스트리아의 바위들과 해안가는 재로 반짝거릴 거야. 그때쯤이면 어떤 학자가 금붕어를 이용해 어떤 합리적이고 양식 있는 지론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는걸."
"스파이크, 넌 완전 구식 책을 너무 오랫동안 읽었어." 싱긋 웃고 잇는 스쿠틀루가 대답할 말은 그게 다였다.
"비웃으려거든 비웃어, 스쿠틀루. 하지만 여기서 썼던 간단한 시간 분화(分化) 마법은 그렇게 위험한 마법이 아니야. 왜냐 하면, 내가 어릴 적에 그 주문을 내 입맛대로 쓸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 있었으니까."
"왜? 날개를 좀 더 일찍 달고 싶어서?" 스쿠틀루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사실, 콧수염 때문에 그랬지."
"푸하하하하, 스파이크, 뭐라고?" 그녀의 새빨간 눈동자가 눈에 뜨일 정도로 튀어나왔다.
"뭐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콧수염이 레이디들한테 진짜 매력적으로 어필할 것 같았거든. 음, '레이디' 라고 하는 게 낫겠다." 스파이크가 부드럽게 웃으며 나뭇가지 사이로 손을 뻗더니 매달린 오렌지를 그 커다란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전에 그랬었지, 스쿠틀루. 네 과거는 그저 추억과 후회로밖에 차 있지 않다고. 이번에는 그게 다시 한 번 더 과거를 뒤돌아보고 몇 가지 간단한 것들을 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 터무니없는 변덕 뒤로 따라온 그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치유인지도 알게 될 거야."
페가수스는 잠시 한쪽을 흘끗 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차가운 공포에 대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헤헤!" 드래곤이 순간 낄낄 웃었다. 보라색 펜던트가 달랑거렸다. "이거, 뭐라도 좀 해야겠는걸!"
스쿠틀루가 한숨지었다. "재촉하지 마, 스파이크. 내 일이랑 그거랑 좀 조율을—"
"아냐, 요 조그마한 오렌지 얘기였어!" 스파이크가 나뭇가지에서 오렌지 하나를 톡 잡아당겨 따며 대답했다. "이렇게 오래 매달려 있기에는 너무 잘 익은 놈이라서 그래. 떨어져야 하는데. 흐으으음... 왜 이렇게 얘가 눈에 익지? 아, 맞다!" 스파이크는 빙긋 웃더니 오렌지를 입가에 가져갔고, 한 줄기 녹색 불꽃을 뿜어냈다. 오렌지는 몇 조각의 재만 남기고 사라졌고, 그 잔해에선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드래곤은 느긋하게 손을 몇 번 탁탁 털어 재를 떨어냈다. "어제 아침에 간식을 하나 먹었거든. 이야, 돌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헤헤헤."
"스파이크, 있잖아..." 스쿠틀루가 자리에서 일어서 스파이크의 옆으로 조심스레 걸어가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어."
"흠?"
"포니빌에서 수도 없는 세월을 레이디 래리티를 그리며 보냈잖아. 콧수염에, 보석에, 라벤더에, 기타 등등 해서. 근데, 그 동안 한 번이라도 갈아탄 적 있어?"
"갈아탄다고? 스쿠틀루, 네가 지금 어른이랑 얘기하고 있다는 걸 좀 자각했으면 좋겠는데!"
"히히히, 아냐, 스파이크." 그녀는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 "내 말은, 다른 드래곤 여자애들이 생각난 적이 있냐는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내가 다른 드래곤 아가씨들이랑 연애하면서 결혼 직전까지 간 적 있냐고 묻는 거지?" 스파이크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장미 덤불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더니 녹슨 물주전자를 들어 물을 주었다. "스쿠틀루, 사실 재앙이 닥치기 전에 내가 그럴 만한 나이는 아니었잖아. 난 그냥 모든 의미에서 그냥 어린애였어. 레이디 래리티를 향한 나의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잘못된 마음이었지. 그래도 난 앞으로도 사랑을 담아 래리티를 추억할 거야. 어릴 때의 그 좀 터무니없는 것들이야말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이지. 자, 왜 그런지 한 번 맞춰 볼래?"
"그냥 멍청한 짓이라서 그런 거 아냐?"
"아니, 그것들이 단순하기 때문이야." 스파이크는 말하며 눈을 한 번 찡긋했다. "네가 앞으로의 여정에서 그런 단순성을 찾아내거나, 아니면 그 단순성이 널 찾아오길 바래. 그럼 이제 널 치유해 줄 두 번째 재회의 시간을 가질 시간이야." 그는 혼자서 웃었다.
"뭐, 좋아." 스쿠틀루는 헛기침을 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침울함이 섞여 온실 정원의 에메랄드 빛 공기로 섞여 들어갔다. "내 다음 여정 말이구나..."
"오! 그렇고말고!" 그는 화원에 물을 주던 걸 멈추더니 그의 커다란 비늘 덮인 몸뚱이를 돌려 그녀를 향했다. "내가 꼭 가져다 달라고 했던 건 가져왔니?"
"가져왔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녀는 가방의 주머니 하나를 끌어당겨 열더니 룬 문양이 새겨진 뚜껑으로 봉인된 유리 단지 하나를 꺼냈다. "짜잔... 진짜 이게 네가 필요하다고 한 거의 전부 맞지?"
"스쿠틀루, 내 꿈은 친구들의 얼굴로만 가득 찼어. 난 내 머릿속에 걔들을 생각할 자리는 항상 남겨 놓고 있지."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유리 단지를 받아 들고는 에메랄드 빛 눈동자 앞으로 가져가 들여다보았다. "흐으으음... 그래, 제 2시대 후반기 루나 리퍼블릭 쪽의 룬 조각술이로군. 이건 예술인데 그래. 이 정도까지 만들어 낼 줄은 몰랐어. 정말 놀라운걸. 자랑스러워해도 돼. 굳이 네 손재주를 자랑스러워하고 싶지 않으면, 네 대담함을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그러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완전히 불타 버리면 이단적(異端的)이 되는 건 쉬운 일이지. 이 이퀘스트리아에서 이런 신성모독적인 월석 마법부여술에 저항할 만한 놈들은 딱 한 종류밖에 없어. 바퀴벌레야. 내가 연금술 실험도구로 불을 밝게 비출 때마다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걔들." 그녀는 말을 마치더니 스파이크가 쥐고 있는 룬이 조각된 단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단지 뚜껑은 공간왜곡 주문을 품고 있어. 그래서 무언가 열에너지만 품고 있는 것들이라면 주문 한 마디만 외워서 바로 마법으로 가두어 버릴 수 있지. 그게 내가 불안정한 것들, 그러니까 붉은 불꽃이나 주황 불꽃, 노랑 불꽃 같은 것들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던 이유야."
"그러면 이제 황무지의 위대하신 '청소부'께서는 이제 내 덕에 녹색 불꽃도 손에 쥘 수 있게 됐군. 흠흠. 그렇게 해 줄까?" 그는 단지에서 룬 문양이 새겨진 뚜껑을 비틀어 열며 그녀를 명랑하게 한 번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다리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마음대로 하세요, 바람둥이 아저씨. 그거야 아저씨 일이고, 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랍니다."
"독보적일 정도로 진부한 말이군 그래." 그는 그녀를 보며 히죽히죽 웃더니 단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이든 드래곤이 화염분비선을 통해 큰 숨을 뿜어냄과 같이 그의 목에서 높은 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의 상체는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증기에 가려졌다. 낮고 깊은 포효소리가 한 번 울렸고, 근처의 풀 잎사귀는 스파이크가 날카로운 이빨 돋친 주둥이를 조그마한 유리 단지에 겨눔과 동시에 상승하는 뜨거운 숨에 흔들렸다. 스파이크의 숨과 함께 몰아치는 회오리바람처럼 뿜어진 에메랄드 빛 불꽃은 자그마한 유리 단지를 넘치기 직전까지 가득 채웠다. 몇 초가 지난 뒤, 그가 토해 낸 불꽃은 건조하게 들썩거리며 흔들렸고, 스파이크는 잽싸게 김이 피어오르는 단지의 뚜껑을 꽉 막아 닫았다.
때맞추어 스쿠틀루가 달려왔다. 스파이크가 끓어오르는 유리 단지를 내리는 순간 마지막 포니가 대담하게 부글부글 끓는 단지를 향해 입술을 기울였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단호한 어투로 딱딱하게 주문을 외웠다. 룬 문양은 보라색으로 번쩍 하고 빛났다. 녹색 단지는 순간 만 개의 소용돌이가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것처럼 흔들리며 요란하게 떨리더니 달그락거리며 잦아들어 스파이크의 손 안에서 고요했다. 단지 안에는 영원할 것 같은 에메랄드 불꽃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 그럼 녹색 불꽃도 네 손 안에 들어갔군." 드래곤은 셀레스티아의 광휘가 비쳐 만들어낸 반그림자 안에서 씩 웃으며 말했다. "시간을 병 안에 담아서 말이야."
"헤, 허세 부리기는." 스쿠틀루가 단조로운 말투로 말했다. 그녀가 드래곤의 손에서 단지를 받아들고 몇 번 돌려 보자 그녀의 진홍색 눈동자가 녹색으로 반짝거려 만화경 같았다. "유리에 담은 녹색 불꽃이라. 이 불모의 땅에서 이걸 내다 팔면 은괴 몇 조각이나 받을 수 있을지, 짐작이나 되니?"
"스쿠틀루..."
"그냥 생각해 본 거야, 스파이크." 그녀는 성의 없이 웃었다. 그녀의 얼굴이 시간역행의 불꽃 너머를 바라보자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연무가 그녀의 얼굴을 씻었다. "그 어떤 것도 이걸 살 순 없어. 과거를 살 수 있을 만큼, 태양과 달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 돈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입술은 순간 말라 건조해졌다. "그 모든 대가는 잿가루지. 한 번에 죽은 친구 하나씩."
"온 세상의 재를 가지고 와도, 생명을 살 수는 없어, 스쿠틀루. 명심해. 넌 과거의 방문자일 뿐이지, 주인은 아니야."
"그래... 헤." 스쿠틀루는 발굽 가장자리로 녹색 단지를 빙글빙글 돌리며 숨죽여 웃었다. "이거, 노상강도라도 된 기분인걸. 이렇게든, 저렇게든 말이야."
스파이크의 손톱 두 개가 갑자기 단지를 잡아 회전을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내려 깜박이는 스쿠틀루의 진홍색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스쿠틀루, 내가 유일하게 노상강도 짓이라고 보는 건 딱 하나, 우리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야 하는 일을 버려두는 거야." 스파이크는 단지를 집어 들고서 스쿠틀루가 순순히 가방의 주머니를 열 때까지 기다렸다. 스쿠틀루가 주머니를 열자 스파이크는 단지를 가방 안에 안전하게 넣어 주며 말했다. "그 녹색 불꽃 말인데, 조심해서 다루어 줬으면 좋겠어. 단순히 그걸 만들어 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물건이니까. 앞으로 족히 며칠은 있어야 다시 불꽃을 뿜어 낼 수 있을 거기도 하고."
스쿠틀루는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며 주머니를 단단히 조여 닫았다. "그렇게 강력한 거야? 전혀 몰랐네."
"뭐, 이제 네가 해야 할 일 말인데." 스파이크가 무기력하게 온실 한쪽으로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나이든 드래곤은 몇 곳의 꽃밭을 살피면서 그의 비늘 덮인 어깨 너머로 말했다. 꽃들은 여신의 빛 가장자리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네가 다음으로 널 고정해 줄 포니를 누구로 고르던 간에, 일단 심사숙고를 한 다음에 결정해 주길 바래. 내 녹색 불꽃이 한 데 모여 집중하고, 네가 단지의 봉인을 풀어 불꽃을 두 배로 만든다면 내가 단순히 뿜어내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효율적으로 시간역행을 할 수 있을 거야. 시간역행을 하는 데 마법진을 그릴 필요도 없어질 거야. 화염을 너 하나한테만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다면 말이지."
"아직... 그래도... 내가 다시 돌아가려면 네... 우리 친구들의 재가 필요한 건 맞지?"
"물론이야. 이제 네 좋은 비행선을 타고 먼 거리를 왔다갔다하느라 시간과 물자를 들일 필요는 없을 거야." 스파이크가 피곤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그래서, 기본적으로 내가 일단 시간 역행에 있어 이득을 좀 본다는 건 맞지?"
스파이크는 늘어선 민들레를 따라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적어도 한 삼백 년쯤 나이차가 나는 걸로는 모자란 거야? 이렇게 자꾸 말로 내 정신을 어지럽혀 놓아야겠어?"
"에이, 참아 봐, 스파이크." 스쿠틀루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엄청 심심했을 거 아냐. 안 그래?"
"네가 아는 애들 중에, 유일하게 아마 나만 냄비 물이 거꾸로 끓는 걸 보면서 그럭저럭 혼자 잘 노는 애일걸." 스파이크는 잠깐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녀가 메고 있는 가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전에 줬던 아기 드래곤 이빨은 아직 갖고 있지?"
"당연하지." 그녀는 강조하듯 불룩 튀어나온 호주머니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의 여행을 진정으로 네 것으로 만들어 줄 것들은 다 준비된 거야.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 네 것이 되도록 할 것들이 말이지." 그는 피곤한 듯 에메랄드 빛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그 비늘 덮인 몸뚱이 아래 가득 찼을 세월이 내뱉는 하품을 억눌렀다. "자, 그럼 이제 좀 봐 주라. 그 정도로 많은 녹색 화염을 뿜어내는 건 진짜 기운 쪽 빠지는 일이거든. 잠깐 부드러운 수정 침대 위에 좀 뻗어 있어야 할 것 같아."
"스파이크." 스쿠틀루가 말을 꺼냈고, 그녀가 입술 한구석을 깨물자 조금 흔들렸다. "어, 네가 지금 자러 들어가는 건 알겠는데, 그게..."
"거기야말로 드래곤이 잠들 곳이야. 죽어서도 그 위에서 잠들 거고. 대지보다도 우리가 더욱 오래 영속할 수는 없으니까." 그는 스쿠틀루를 보며 평온하게 웃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얘기해 봐."
"있잖아... 있잖아, 재앙이 닥쳤을 때 너 캔틀롯에 있었지, 그렇지? 이건 지금까지 네가 나한테 해 줬던 모든 말이나 행동에서 유추한 말이야."
"맞았어. 세상에 죽음이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때 난 캔틀롯 언덕 위에 있었으니까. 세상을 부검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한 곳도, 캔틀롯 지하 깊숙한 곳이었어."
"동굴 안에서 보냈던 그 오랜 세월 동안... 너한테 친구라곤 과학적 공식이랑... 끓는 물밖에 없었구나. 그 시간이 똑바르게 흐르는 시간이든, 시간역행으로 되돌린 시간이든..." 그녀는 신경질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끝냈다. 그녀가 스파이크에게 나직이 말함과 같이 그녀의 눈빛이 우울하게 빛났다. "스파이크, 네 고독은 내가 도저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 같다. 내가 보낸 우울한 시간을 다 해도 말이야."
"음... '고독'이라, 그 아이러니한 외로움, 그것도 누구나 다 겪는 괴로움이지." 드래곤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가벼운 기침을 했고, 연무가 뿜어져 나와 이내 사라졌다. 그는 강한 어조로 나직이 말했다. "모든 생명은 혼자야,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냐. 포니들이 다 죽어 버린 어두운 세상에 산다 해도, 우리를 감싸는 무언가는 있는 법이야, 스쿠틀루. 난 그게 순진해 빠진 낙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너도 느낄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어쩌면 허리가 굽을 때에야 비로소 널 둘러싸고 전율하던 세상이 가라앉아 잠잠해질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 때, 우리를 둘러싼 저 알 수 없는 막 너머의 신비한 것들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우리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걸 뛰어넘을 수 있기도 하지. 그곳의 한가운데, 그 어딘가에 연결고리가 있을 거고, 목적이 있을 거야. 진실이 뭐가 되었든 간에, 진실은 입을 열지 않아. 하지만 '고독'과는 영원히 거리를 두고 있지. 왜 그런지 아니? 응?"
"난 잘 모르겠는걸, 스파이크." 스쿠틀루가 부드러이 숨을 내쉬며 정원의 녹색 저편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지난 25년 동안, 비행선의 둥그런 창 너머로 죽음을 바라보며 지냈어. 내가 바라본 죽음은, 적(敵)이었어. 그와 동시에 나의 형제이기도 했지. 하지만 스파이크, 우리 친구들은..."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은 공허했다. "애플잭, 애플블룸, 빅 매킨토시, 스미스 할머니, 어쩌면 위노나까지도, 그 누구도 죽음이 다가오는 걸 보지 못했어. 그들이 그걸 바라볼 수 있도록, 내가 도와 준 건 하나도 없어. 솔직히, 친구들한테 다가오는 죽음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 안 해. 정말, 진짜로 그게 나랑 그들을 이어 줄 연결고리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신비로운 장막보다도 더욱 깊고, 더욱 가까운 것이 바로 네 연결고리가 될 거야. 스쿠틀루." 스쿠틀루는 피로한 웃음을 지었다. "너희 포니들 사이에는 조화만이 있을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스쿠틀루는 그 말을 듣고 건조하게 웃었다.
스파이크가 에메랄드 빛 눈을 들며 말했다. "친구, 내가 정곡을 찔렀나?"
"어쩌면 우리 둘 다 찔렀을지도 모르지, 스파이크." 스쿠틀루가 깔깔대며 웃는 소리는 둘 위로 매달려 반짝거리는 거울에 눈길이 닿자 일어나는 한숨으로 변해 스러졌다. "진짜, 산다는 건 무릎을 엄청 큰 소리로 후려치는 거랑 똑같다니까."
"바로 그게 내가 몇 시간쯤 자다가 일어나야 하는 이유기도 하지." 스파이크가 다시 하품을 토해냈다. "네가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처럼, 나도 진짜 자러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스파이크, 언제가 됐든, 조만간 둘이서 같이 여행이라도 가야겠다." 스쿠틀루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하모니 호 증기기관에 연료를 때려박고, 예쁘장한 드래곤 아가씨들을 찾아 북쪽 산맥지대로 여행을 가는 거야. 너랑 같이 물 끓는 걸 보면서 좋아할 아가씨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흠, 내 장담하건대,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스파이크는 단조롭지만 장난스러운 투로 말했다. "이퀘스트리아, 이 불모의 땅을 포니들을 찾아 샅샅이 뒤졌어. 피 한 방울이라도 찾겠다는 각오로 그렇게 뒤졌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네가 마지막 포니야. 그러니 너랑 마찬가지로, 나도 마지막 드래곤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갈색 솜털을 한 포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 얼굴이 핼쑥해졌고, 입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팔다리를 쭉 뻗었고, 긴 목을 따라 씰룩거리던 목 근육을 몇 번 두들겼다. "내 꿈 속 익숙한 얼굴들 중에서 몇 개는 내가 지어낸 거야. 나처럼 나이가 들면, 그건 이해하기에 너무나 끔찍한 현실로서 다가오지 않지. 두 번 다시 그 웃기지도 않는 콧수염을 자랑삼아 만들어 붙일 일이 없어서 다행이야." 그는 잠시 빙긋 웃었으나 순간 따뜻한 다리 네 개가 그의 허벅지를 감싸며 매달리는 느낌에 놀라 눈을 깜박였다.
스쿠틀루가 갑자기, 부끄럽지도 않은 듯 그에게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꽉 감긴 눈은 물기로 축축했다.
드래곤은 싱긋 웃더니 손가락 하나를 천천히 내려 까칠까칠한 분홍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삼 주 동안 서로 충분히 안아 주지 않았어, 친구?"
"부족해." 스쿠틀루가 나직이 말하며 젖은 뺨을 그의 무릎에 비볐다. 반짝이는 진홍 눈동자가 위를 바라보았다. "그 때마다 네가 날 안았잖아. 그냥, 스파이크 널 한 번 안아 보고 싶어서 그래."
"좋은 표현인데 그래." 스파이크가 고개를 숙여 뺨의 녹색 비늘 끝으로 그녀의 머리를 살살 밀더니 몇 번 등을 두드리고 산책하듯 멀어져 갔다. "내 삶을 아름답게 해 주는 내 소중한 친구들한테 해 줄 일을 다 했으니, 이제 그만 자러 들어가야겠다. 그럼, 잘 다녀와."
그녀는 그의 깊은 그림자 속에 서서 스파이크가 홀로 온실의 한쪽으로 걸어가 포니빌의 차갑고 칙칙한 폐허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스파이크가 없는 매 순간순간은 순간 그녀의 피부가 또 한 겹 벗겨져 나가는 기분으로 다가왔다. 그 상처를 감쌀 수 있는 것은 추방당한 여신의 살, 그 하나뿐이었다.
마지막 포니는 안장가방에서 가장 가까운 가방을 열어 각기 다른 실로 묶여 달랑대는 드래곤 이빨 몇 개를 꺼냈다. 스쿠틀루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조심스레 하나하나 건드려 보았다. 칼슘질의 조각 하나하나와 그녀의 발굽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감각은 서로 다른 느낌으로 끓어올랐다. 이빨 하나를 만지고 다음 이빨로 넘어가는 사이마다 그녀의 마음은 시신을 모호하게 가리키는 방향 하나하나에 집중하려 애썼고 머리는 그 방향을 생각하느라 핑핑 돌았다.
그러던 중, 그녀의 심장이 멈추었다. 그녀 앞에서 차가운 이빨 하나가 파란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그 작고 하얀 물체를 향해 시속 칠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질주하는 듯 했다. 그녀의 정맥을 타고 흐르던 피는 순간 끓었고, 그녀의 오장육부는 누군가 그녀를 대기권에 돌입하는 혜성과 같은 속도로 땅에 던져 버리기라도 한 양 쏠리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사방에 무지개가 드리운 널따란 지평선이 보였다. 무지개는 그녀를 향해 날아오며 세 개의 원을 그렸고, 다가온 무지개는 번개 문양의 뾰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투덜거리는 소리는 차가워 귀가 절로 일어섰다. 스쿠틀루는 강하게 고동하며 자기를 바라보는 이빨을 바라보는 자기의 갈색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헐떡이고 있었고, 그녀의 심장은 비밀저장고의 벽을 발굽으로 긁어 대던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마구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계속해서 움찔했고, 그녀의 다리 아래에 대지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에야 진정되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갈색 날개를 다시 접은 뒤,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파란 줄에 매달린 이빨을 다른 이빨들 사이로 거칠게 치웠다.
한 줄기 나직한 말소리가 마지막 포니의 입술을 떠났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다음 이빨을 찾았다. 좀 전의 그 이빨만 아니라면, 그 어떤 이빨이든 상관없었다. 다음 이빨은 놀랍게도 그녀 아주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 노란 줄에 매달린 이빨은 유혹하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비단 같은 노래가 그녀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어루만짐과 같이, 그녀는 몸을 떨었다. 회색 혼란의 베일을 뒤로 하고 그녀는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운 곳으로 빠져 들어갔다. 부드럽고 따뜻한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소중히 감싸 안으며, 그녀의 지친 몸을 누일 잠자리로 인도하던 그 품으로, 부드러운 잎사귀에 놀라 몸을 떨며 날아가는 새처럼 그녀는 빠져 들어갔다.
"아... 신이시여..." 스쿠틀루는 거의 흐느끼고 있었다. "이번엔 이 포니를 만나야겠어."
25년의 귀 멀어 가는 세월을 보냈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천상의 목소리로 들렸다.
마지막 포니가 하모니 호를 조종하여 포니빌 서쪽 너머로 나아가자 아래에 줄지어 늘어선 죽은 나무들은 시커먼 바다거품처럼 끓어오르며 밀려들었다. 스쿠틀루는 고글 쓴 얼굴을 길게 뻗어 아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앞으로 기울인 조종석의 맨 끄트머리에 간당간당하게 앉아 비행선의 굽어진 창문을 씻으며 지나가는 죽은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한쪽 발굽은 레버에 닿았고 나머지 한쪽은 체인링크 핸들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썩어 가는 지평선을 쓱 훑어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 앞으로 회색 재가 가득 쌓인 나무둥치들이 한때 에버프리 숲에만 드리웠었던 시커먼 공허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녹색 나뭇잎과 연무 낀 둔덕이 있던 자리에는 뒤틀린 나뭇가지들로 가득한 칠흑 같은 수렁이 밑도 끝도 없는 암 덩어리처럼 퍼져 있었다. 시커먼 나무의 이리저리 뒤틀린 거대한 덩굴이었다. 비정상적으로 변해 버린 들장미 덩굴에서 이리저리 튀어나온 뾰족한 가시들은 파괴된 대지의 가장 어두운 곳을 깎아 만들어 절대 부서지지 않을 번득이는 단검 같았다. 초록이 가득했던 시절이 죽어 버린 자리에는 훨씬 더 어둡고 사악한 것들이 곪아 터진 대지의 구덩이 속에서 자라 올라오며 주제넘게 지난날의 온기를 모방하려 하는 모든 것의 육즙과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이십 년 하고도 오 년이 지나 버린 지금, 화려했던 에버프리 숲은 완전히 가시덤불로 뒤덮여 혼돈의 미궁으로 변해 버렸고, 이 지옥의 미궁 아래 드리운 시커먼 그림자 아래 도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자기보다 자그마한 괴물을 잡아먹는 커다란 괴물일 것이었다.
이빨은 그녀를 바로 이 곳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날카로운 숨을 들이마셨다. 노란 줄로 매어 황동 격벽에 매달아 놓았던 조그마한 이빨 조각에 그녀의 고글 쓴 눈이 잠시 닿았다. 단지 들이마신 숨만으로도, 하모니 호 조종사는 그녀의 영혼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달래며 비단결의 분홍 수건으로 쓸어 저 악몽 같은 가시덤불 속 시커먼 정수 속으로 깊이, 더 깊이, 더욱 깊이 날아 들어오라고 권하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포니가 정신을 더욱 집중했고, 방향이 더욱 명확해졌으나 그만큼 절망감도 깊어져 갔다. 방향은 시커먼 검은딸기나무들로 가득해 칠흑 수렁 같은 곳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만큼, 그녀는 두려워졌다. 흔들리는 선실의 전등 빛이 순간 깜박였고, 마구 뛰는 심장은 순간 다시 안정을 찾았다.
"후... 스파이크, 잘 자고 있냐?" 스쿠틀루가 잠시 투덜대는 투로 말했다.
조종석 창문 밖 풍경이 에버프리 가시덤불 숲에 서서히 먹혀 들어감과 같이 지평선은 갈수록 검어지고, 어두워졌다. 이퀘스트리아의 한가운데 박힌 커다란 종양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는 순간 떠올렸다. 마지막 생존자의 굳어진 마음이 흔들렸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막 시작하려는 급강하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는 뭐라도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다. 무엇이든 좋았다. 잠깐, 아주 잠깐일 급강하를 조금 미룰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하모니 호의 속도를 낮추어 내려가야만 할 이유는 그보다 훨씬 더 위중한 것이었다. 그녀가 불모지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 끄트머리에서 무언가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이퀘스트리아 곳곳에 널린 수백만의 황량한 얼룩과 똑같은 사력토(沙礫土) 밭이었다. 대체 어떤 애처로운 이유에서인지, 여기와 저기만 따로 떨어져 나와 마지막 포니의 떨리는 나이 먹은 눈 안에 가득 차 그녀는 공기만으로도 여기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쿠틀루가 제동 레버를 당김과 동시에 하모니 호의 온 선실이 뒤흔들렸고 비행선은 완전히 멈출 때까지 계속 움직였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는 체인링크 핸들을 꽉 붙잡고는 순간 가벼운 자신의 체중을 실어 매달리듯이 핸들을 당겨 비행선의 고도를 낮출 준비를 했다. 그녀는 너무나 초조한 나머지 뱃속에 구멍이 하나 뻥 뚫린 것 같았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격벽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하얀 이빨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흐릿한 흰 형체 너머로 보이는 시커먼 정경으로 향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무언가가 깃털처럼 자기를 조심스레 건드리며 애정 담긴 손길로 조종석 창문 너머로 손을 뻗치는 가시덤불의 지옥 속, 그 검은 공허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며 좀 전의 그 차분한 마음을, 좀 전의 그 부드러운 어루만짐과 눈 앞에 펼쳐진 광기의 경계선에 매달린 익숙한 땅뙈기에 지친 그녀의 마음을 달래 주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스쿠틀루는 지금의 정지가 망설임이 아니라고, 연옥으로 떨어지기 전의 전조일 뿐이라고, 어린 그녀가 외로워할 때마다 이 세계, 이퀘스트리아가 그녀에게 주었던 모든 것을 다시 주고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 납득했다.
마지막 숨, 그 숨은 마음을 가라앉힐 만큼 강하지 않았으나 마지막 포니는 끝내 굴복했다. 그녀는 체인링크 핸들을 쥔 발굽에 체중을 실어 당겼다. 하모니 호의 고도는 수많은 황폐한 땅덩이 위 조그마한 땅덩이 위로 빠르게 떨어졌고, 그녀는 다 죽은 나무들 사이에서 하모니 호를 묶어두기에 적합할 정도로 괜찮은 나무를 찾아냈고 방호복을 걸치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걸어 나갔다.
그녀는 이빨을 뒤로하고 나갔다.
철선으로 장식된 신발 신은 발굽이 터벅터벅, 죽은 돌덩이 사이로 걸어갔다. 깔려 있던 잔디는 말 그대로 증발해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흙은 시커먼 유리를 누렇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걸어갔고 그녀의 몸은 하늘에 걸린 황혼을 받아 그녀와 똑같이 생긴 검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검은 가시덤불의 바다의 맨 끄트머리, 그 곳은 잿가루가 땅에 닿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한 곳이었다.
스쿠틀루는 자기의 갈색 날개를 접은 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강철 신발은 밖으로 드러난 대지의 속살 속으로 자갈 몇 개를 차 넣었다. 그녀는 늘어선 돌덩어리들 앞에 서 있었다. 대충 육십 개는 족히 넘을 비석들이 늘어서 있었다. 창백하고 흰 비석들은 신마저 저버린 지난 세월 동안 녹색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빽빽하지만 단정하게 늘어선 비석 너머에는 어딘가로 통하는 입구가 드러나 있었다. 입구는 완전히 구겨지듯 변해 있었고 몇 개의 육중한 바위 덩어리가 크게 갈라진 입구를 무심하게 막고 있었다. 대충 삼 미터쯤 되는 돌덩이로 막힌 입구는 깔쭉깔쭉한 나뭇조각이 튀어나와 있었고 그 위로는 삼십 년쯤 묵은 말발굽 자국이 남았다. 조잡한 바리케이드는 세월이 지나며 산산조각이 나고 이리저리 뒤틀렸으며 여기저기 부스러져 지난 세월 동안 입구 안쪽을 용감히 막아 온 돌덩이를 겨우겨우 제자리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스쿠틀루의 시선은 화강암질의 벽에 되는 대로 뚫린 구멍 한 곳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녀 앞에 늘어선 오륙십 개의 흰 비석에 관심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그녀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무기력하게 발을 질질 끌며 그녀 앞에 선 키 큰 회색의 기념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념비는 그녀의 두 배는 되었고 거기 서린 칙칙한 망령은 한때는 영광을 말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눈과 산성비를 맞아 가며 부식한 기념비는 여기저기 녹아 구멍이 났지만 그 앞면의 무언가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쓰고 있던 고글을 올렸다. 콧김이 뿜어져 나왔고 그녀는 한쪽 발굽을 들어올려 기념비를 쓸어 앉았던 한 겹 먼지를 떨어냈고 그 아래로 드러난 아름다운 글씨로 씌어져 새겨진 몇 마디 단어에 가늘어진 그녀의 진홍 눈동자가 향했다.
<에버클리어 70인>
커다란 돌기둥에 새겨진 말들은 정오의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에버클리어 매몰사건 당시 광산 최심부에서 헌신해 구호작업을 실행하다 숨진 70 영령을 기리며 이 비를 세운다>
적힌 말이 시야에 새어 들어왔다 다시 새어 나가자 스쿠틀루의 오렌지색 얼굴은 매끈하게 윤이 나는 비석 위로 숙여졌다. 두 보랏빛 눈동자가 고통스레 깜박여 형제를 잃어버린 쌍둥이와 같았다. 그 시선은 타는 듯 고통스러워 그녀는 순간 몸을 떨며 기념비에 박혔던 시선을 비틀어 떼었고, 숨을 헐떡이며 상반신을 스쿠터 위에 기대었다. 여덟 살 먹은 망아지는 부드러운 풀잎과 흔들리는 꽃잎 사이에 수도 없이 늘어선 흰 비석들이 보이자 깜짝 놀라 눈을 깜박였다.
기념비는 잔디밭 위로 기품 있게 뻗어 있었고 비석들은 짧지만 단정한 줄을 지어 늘어섰고 그 간격은 넓어 두 추모객이 나란히 서서 걸어가며 조용한 추모를 올리기에 좋았다. 그날따라 평소의 두 배는 더 조용했다. 스쿠틀루는 말 그대로 혼자였으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거기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구멍으로 침을 넘기는 모습은 애처로웠고 아이는 헬멧을 벗어 그 안에 뉘어졌던 분홍 갈기를 드러내어 달래는 듯한 따뜻한 바람에 흩날렸다. 아이는 외로이 태양과 싸우며 떨리는 아픔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의 눈은 천천히, 용감하게 기념비 너머의 화강암 덩어리 위로... 올라갔다. 버려진 광산의 죽음의 입구가 있는 곳이었다. 갓 만들었는지 생생한 백합 화환이 광산 입구를 막고 있는 나무 바리케이드 위에 씌워져 있어 거대한 뱀의 주둥이에 재갈을 물리기 전 그 뱀이 화환을 물어뜯기라도 한 듯 했다. 스쿠틀루의 어린아이 같은 눈은 몇 번 깜박였고 그 아래 광산 갱도로 통하는 자리는 여전히 막혀 있었다. 순수했으나 불운했던 모든 이들이 삼켜진 갱도는 막혀 있었다.
아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외로운 밤은 눈물로 얼룩진 별들이 떠올랐고 그 밤 동안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꿈꾸었다. 그녀는 수심에 잠긴 채 헬멧을 꽉 끌어안았고 아이는 더욱 세게 헬멧을 끌어안아 거의 부수기 직전까지 껴안았다. 아이는 다시 용기를 내 보라색 눈동자를 다시 앞으로 해 윤기 있는 검은 기념비로 시선을 옮겼다. 이름 아래 이름이 새겨지고 그 아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 아래로 아이의 시선이 움직였다.
많은 이름이 어스 포니의 이름이었다. 사실 거의 전부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었다. 이름 옆에 새겨진 나무 그림은 은연중에 그 이름의 주인이 어스 포니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별빛 어린 뿔이 그려진 이름들도 몇 개 있었고, 그보다도 훨씬 적어 다섯이 채 안 되는 이름 옆에는 상아색 날개가 새겨져 있었다. 이름의 맨 아랫줄 한가운데에 그들이 살았었다는 듯 두 포니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 선더 던(Thunder Dawn) ~^~~ ~~~^~ 클라우드스킵(Cloudskip) ~^~~~
스쿠틀루의 눈에 두 이름은 특별하여 빛이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 한쪽 윤기 없던 구석에 무언가가 고였고 허기진 매 순간순간마다 뜨겁게 흘러나와 떨어졌다. 그녀는 떨리는 발굽 하나를 들어 흰 날개가 새겨진 이름에 갖다 댔고, 그 순간 다른 이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스쿠틀루의 귀가 쫑긋했다. 매일 밤마다 잎사귀를 밟으며 그 다른 이의 뒤를 따르길 원했던 꿈처럼, 아이가 절대로 저버릴 수 없었던 꿈처럼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들었던 목소리가 천상의 목소리에 닿지 않을지라도 그 목소리는 여성스러운 비단결 같은 숨결과 애정이 담겨 연약하여 그 목소리와 닮았다. 그 작은 차이는 칼날처럼 아이의 머리를 헤집어 놓았고, 근처에서 들려오는 페가수스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안녕, 스쿠틀루."
아이는 기념비를 향하던 발을 급히 내렸다. 아이는 헛기침을 했고, 기념비 위에 비치던 오렌지색 얼굴이 꼿꼿이 섰다. 아이는 건조한 눈동자로 등 뒤에서 갑자기 내려앉은 노란 그림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흠흠, 아, 플러터샤이. 음..." 스쿠틀루는 용감히 싱긋 웃어 보이며 몸을 돌려 아무 생각 없이 스쿠터에 몸을 기댔다.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나도 그 질문을 하려던 참이었어." 돌아온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의 산들바람에 섞여 노래하는 것 같았다. 분홍색 갈기와 부드러운 푸른 눈동자를 한 페가수스가 옆구리에 하나씩 고리버들 바구니를 지고 서 있었다. 몇 개의 흰 꽃이 그녀 양쪽에서 춤추듯 흔들렸고 플러터샤이는 천천히 걸어오며 비석 앞에 백합 한 송이씩을 놓아 두고 있었다. "네가 여기 있다고 누군가 알려 줬단다."
오렌지색 망아지는 어색하게 눈만 깜박였다. "진짜?" 차가운 구름 하나가 갑자기 내려왔고 아이의 이빨은 딱딱 부딪혔다. "무슨 곤란한 일 생긴 건 아니지?"
"히히히... 다행스럽게도 아니란다." 플러터샤이가 까르르 웃었다. 그 소리는 굉장히 가벼워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흐음... 사실, 그 반대야."
스쿠틀루는 순간 기뻐져 플러터샤이를 약간 놀란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고, 두 눈은 가늘어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녀는 비록 잠깐에 불과했지만 무력한 웃음을 싱긋 지어 보이며 말했다.
"어......" 플러터샤이는 잠시 꽃을 집어다 비석 앞에 놓아두던 손길을 멈추고 태양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한낮의 산들바람은 사랑하는 아이를 데리고 장난치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그녀의 갈기를 흔들었다. "포니들 가운데의 포니들을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곤 해. 친절이란 마치 춤 같은 건데, 우리도 다들 서로와 같은 곳에서 춤을 추고 있지... 음... 우리가 그걸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없이 말이야." 노란 페가수스의 얼굴이 조금 홍조를 띠었다. 플러터샤이는 따뜻한 숨결과 같이 망아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하는 스쿠틀루, 너랑 만나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이란다."
스쿠틀루의 뺨은 불이 붙은 듯 붉어졌다. 불편한 따뜻함에 몸을 떨며, 아이는 날개를 몇 번 펄럭거리더니 이내 날개를 접어 몸에 붙이며 몇 마디 중얼거리듯 말했다. "꽃 향기를 너무 많이 맡았나 보네. 플러터샤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히히히... 아마도." 플러터샤이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플러터샤이는 다시 몸을 추스리고는 다시 묘비 앞에 백합을 놓아 두며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녀의 입에서는 좀 전보다는 슬픈 듯한 목소리가 중얼거리듯 나직이 새어 나왔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혹시 알고 있니?"
"난 잘 모르겠는걸." 스쿠틀루는 앞다리 안쪽을 거칠게 비비고는 방첨탑과 비석, 그리고 그 너머 버려진 광산 갱도를 향해 선머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냥, 내가 보기에는 돌을 한 무더기 가져다 놓은 것 같은걸. 누구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멍청한 생각이야. 저 돌탱이들 때문에 누가 발이라도 걸려 넘어지면 어쩌라고 이렇게 해 놨는지 모르겠어."
스쿠틀루의 마지막 말에 플러터샤이는 헉 소리를 냈다. "어머, 이건 그냥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란다, 스쿠틀루. 이 기념비는 바로 여기에서 십 년쯤 전에 있었던 끔찍한 사고 때 숨진 포니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란다."
"에이, 거짓말 하는 거지?" 스쿠틀루가 슬쩍 웃어 보였다. 그녀의 입술 깊숙한 곳은 떨리고 있었으나 그녀는 능숙하게 그것을 숨기며 말했다. "뭔가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기에는 정말 끔찍할 정도로 평화로운 곳처럼 보이는데."
"포니빌 시민들이 지반을 굳건히 다지고 유지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놓았기에 이렇게 평화로운 장소가 된 거란다." 플러터샤이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흰 비석 앞에 이를 악문 채 다음 백합을 내려놓았다. "근처에 사는 많은 포니들이 광산 매몰사건 때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단다. 그게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어. 그들에게는 이들을 추모하러 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란다. 그러니까 이 땅을 항상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건 여기서 죽어간 이들을 기리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말이야."
"그 뜻은... 어... 플러터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스쿠틀루는 조용히 그녀를 지나쳐 가며 꽃을 놓아두는 노란 페가수스를 향해 분홍 눈동자를 깜박이며 물었다. "지금 이들을 애도하고 있는 거야?"
"음...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야." 플러터샤이는 가볍고 아름답지만, 연약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일어섰다. "난... 음... 에버클리어 추모공원의 최고 관리인이란다."
스쿠틀루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몇 초간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언니가?" 아이가 마른침을 삼켰다. "언제부터?"
"내가 자원한 지, 몇 년쯤 됐을 거야." 플러터샤이가 잠시 일을 멈추고는 비석의 바다 한가운데 섰다. 셀레스티아 공주의 태양은 황금빛 빛살을 쏟아내고 있어 산 자와 죽은 자를 같이 껴안아 주고 있었다. "내가 큐티마크를 어떻게 얻었는지 이야기해 줬었는데, 혹시 기억하고 있니?"
"아아, 응." 스쿠틀루는 진이 빠진 발굽을 들어 잠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언니가 그 때 불렀던 노래를 지금 다시 부른다 그러면, 내가 물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있어도 그 노랫소리, 다 들릴 거야."
젊은 페가수스의 얼굴이 순간 장밋빛으로 물들었고, 그녀는 분홍 갈기 뒤에 홍조를 띄운 얼굴을 숨긴 채 옛 기억을 되살려 말하기 시작했다. "음, 내가 땅에 내려온 날, 그러니까 동물들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한 그 날 밤에, 여기 기념비 아래에서 잠들었었어. 기념비는 막 세워진 참이었고 난 아무것도 몰랐지. 아침이 되고 나서, 농부 포니 가족들이 추모공원을 찾았어. 처음에는 기념비를 무슨 침대처럼 쓰고 있던 날 보고 화를 냈었지.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닿았는지 설명을 하고 나니까 바로 날 용서해 주었어. 그리고 우리 엄마랑 아빠가 클라우드데일에서 내려와 날 데려갈 때까지 그분들 집에서 머무를 수 있게 해 줬어. 그분들 농장에서 처음으로 머무르던 그 때가 나랑 애플잭네 가족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였단다."
"엣." 스쿠틀루는 묘한 자부심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싱긋 웃었다. "탁 트인 장소에서 잠잘 곳을 찾을 거라면, 몇 가지 개념 정도는 익혀 둬야겠는데."
플러터샤이는 순진한 말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때 정말 무서웠단다. 그 아름다운 세상, 그 대지에서 처음으로 보낸 날, 어스 포니들에게 아주 특별한 장소를 망쳐 놓고 만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 순간부터 결심했단다. 다시 여기로 돌아와 추모공원의 관리를 도울 거라고. 몇 년이 지나고 나니까 포니빌 야생동물 관리부에서 내가 동물들을 돌보는 데 뛰어나다는 걸 알고 에버프리 숲 근처에 기꺼이 내가 살 곳을 마련해 주었어."
"아, 그렇게 해서 언니네 집을 얻은 거야?"
"음... 그래. 너무 다행스러웠고, 축복받은 기분이었어. 또 이 아름다운 땅에 내가 경의를 표할 기회도 놓치지 않았단다."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그녀는 비석 너머 비석이 늘어선 모습을 슬픈 듯 바라보며 침울한 한숨을 내쉬며 시들어 갔다. "이런 아름다운 땅에도, 끔찍한 비극은 있는 법이야. 헌신하다 저 비석 뒤에 잠든 그 모든 영혼들에 나는 항상 마음이 쓰인단다."
"왜?" 스쿠틀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들 중에 누구 하나라도 아는 포니가 없잖아, 플러터샤이."
"그게 무슨 상관이니?" 플러터샤이는 망아지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숨쉬는 생명이나, 숨쉬지 않는 생명이나, 모든 생명은 소중한 거란다. 어떤 면에서는 이 세상도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날부터 우리와 같은 숨을 쉬고 있을지 모른단다. 지금 우리 앞에 잠들어 있는 저 포니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지금을 닦은 거란다. 저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니?"
"난..." 자그마한 오렌지색 페가수스는 스쿠터 위에 기대서서 몸을 꿈지럭댔다. 플러터샤이가 자기에게 눈길을 주고 있지 않을 때, 아이는 몰래 기념비의 단단한 얼굴 맨 아래, 흰 날개가 새겨진 두 개의 이름을 씁쓸한 듯 바라보았다. "플러터샤이, 난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척도 못 할 것 같은데."
"스쿠틀루, 생각해 본 척을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란다." 플러터샤이는 몇 송이의 꽃을 더 놓아 둔 다음 스쿠틀루를 향해 쉽게 웃어 보이더니, 생기 넘치는 바람 속에 재잘거리듯 말했다. "네가 충분히 차분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릴 줄 알고, 또 정중하게 굴기만 하면 온 세상은 분명하게 너에게 다가올 거야. 삶이란 때때로 안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항상 좋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어. 설령 내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 쳐도, 한 번 고통이 휩쓸고 지나갔던 자리가 지금 이 순간처럼, 지금 이 자리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설명할 수 없지 않겠니?"
스쿠틀루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그녀 자신의 어린 마음도 깜짝 놀랄 정도로 재빨리 맞받아쳤다. "플러터샤이, 그럼 슬픔이란 건 뭐야?"
"슬픔도 그 자체로 괜찮은 것이란다." 노란 페가수스가 부드럽게 말하며 기념비 앞으로 소리 없는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발굽을 접으며 몸을 굽혔다. "슬픔은 이 세상에 우리가 최대한 오래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들이, 간직하는 순간순간이 소중한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니."
"피!" 스쿠틀루는 애처로운 야유를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어린 아이같은 얼굴은 빙긋 웃고 있었다. "플러터샤이, 하지만—!"
"스쿠틀루, 조용히 하렴. 너만 괜찮다면 부탁할게." 분홍 갈기 포니가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주의를 주었다.
스쿠틀루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부지깽이에 찔리기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아이는 냉담하게 플러터샤이의 날개 접은 등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렌지색 망아지의 입술은 포니빌 애완동물 훈련사가 두 눈을 감고 자기의 노란 얼굴이 비치는 기념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따뜻한 한낮의 산들바람 속으로 제문을 읽듯 조용히 몇 마디 기도의 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을 바라봄에서 오는 혼란과 호기심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산들바람은 플러터샤이의 목소리를 아로새기기라도 한 듯 했고 그녀의 목소리에 맞춰 불어갈 준비를 하다 불어갔기에 자연의 성가였다. 플러터샤이의 기도는 신성한 것이었고 스쿠틀루는 최대한 들을 수 있을 만큼 그녀의 기도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그녀는 순간 그 기도소리를 들으려 한 적 없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비석들은 플러터샤이의 진심 어린 기도소리를 받아들여 그 소리에 울렸고,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구절은 길토핀 공주의 신성한 이름뿐이었다. 길토핀의 이름은 숨이 한 번 들이쉬어지고 내쉬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졌다. 기도의 끝에서, 스쿠틀루는 방첨탑에 새겨진 한 흰색 글씨에서 순간 샛노란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것에 놀랐으나 이내 플러터샤이의 얼굴이 비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심장이 한 번 뛰는 그 잠깐의 이해의 순간에, 기념비는 플러터샤이의 목소리를 닮아 황금빛의 광택으로 반짝였다. 그건 거의......
"고마워, 스쿠틀루." 플러터샤이가 다시 일어나자 무언가 방울방울 맺혀 떨어졌다. 그녀의 바구니는 비어 있었다. "한참 생각하던 중에 방해가 되었다면 정말 미안해. 여기, 이 장소는 다른 많은 포니들에게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장소야. 네가 스쿠터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열심히 운동하는 걸 보면 정말 기분 좋아질 것 같지만, 그걸 타고 다닐 때는 꼭 조심해 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네 나이 때 했던 실수를 네가 다시 반복하는 걸 보는 건 분명 싫을 테니까."
"저기." 스쿠틀루가 빙긋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래서 플러터샤이 같은 언니들이 있는 거잖아. 플러터샤이, 안 그래?"
"후후훗..." 그녀는 닫힌 입술 아래로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고 망아지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지금 너 혼자밖에 없니?"
"응?"
"오! 저... 나, 난 참견할 생각 같은 건 없었어. 단지 네가 다른 친구들이랑 떨어져서 다니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어서 그랬어, 스쿠틀루."
"아, 그래. 애플블룸은 요새 한파 때문에 감기로 고생하고 있고." 스쿠틀루가 입을 열었고, 이내 눈을 굴리며 덧붙였다. "스위티벨은 늘 그렇듯 산더미처럼 쌓인 과외 수업을 받느라 허우적거리고 있어. 내 맹세하는데, 래리티는 자기가 죽기 직전까지도 스위티벨한테 과외 수업을 하느라 정신 없을걸."
"그런 말 하면 못 써!" 플러터샤이는 방금 스쿠틀루가 내뱉은 말에 전염병이라도 묻어 있어서 온 세상으로 병이 다 퍼져나간 양 창백한 공포에 질린 눈으로 숨이 막힌 채 스쿠틀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 어린 푸른 눈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고, 눈동자는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래리티는 스위티벨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뿐이란다. 너도 잘 알다시피, 그 아이는 여기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있는 트로팅엄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잖니. 설령 치어릴리의 교육과정에 조금 어긋나더라도 그 사이사이마다 그 정도 수업을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데!"
"알았어, 알았다고! 알아들었어. 휴우!" 스쿠틀루는 눈을 굴리더니 이내 히죽히죽 웃었다. "언니는 동물들 다루는 데나 능숙하지, 교육에 있어서 능숙한 건 아니잖아!"
"오... 어... 미안. 나... 난 주제넘게 굴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플러터샤이는 조금 풀이 죽은 채 긴장한 듯 한쪽 발굽으로 반대쪽 다리를 쓸며 말했다. "난 너희 셋을 정말 좋아한단다. 그래도 스위티벨이 모종의 이유로 계속 바쁜 건 이해해 줬으면 해서 말했던 거야. 걔가 계속 받고 있는 필수 수업을 받는다고 그 아이를 비난하고 욕하는 무서운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래서 그랬어. 어... 네가 별 생각 없이 산다거나 그런 안 좋은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어, 스쿠틀루. 난... 저기... 이런..."
"히히히. 플러터샤이, 괜찮아, 괜찮아." 스쿠틀루가 스쿠터에 기대었던 몸을 다시 기울여 플러터샤이의 앞다리 하나에 부드럽게 포갰다. 부드럽기가 벨벳보다도 더욱 부드러웠다. "내 친구들한테 화 난 거 절대 아냐. 애플블룸한테는 슈가큐브코너에서 병문안 카드를 사다 줬고, 스위티벨을 잠깐 놀려 주러 들르기밖에 안 했어. 큐티마크 크루세이더가 항상 같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쯤은 아니까. 난 그저... 아, 모르겠다. 그냥... 심심했던 것 같은데."
"너희 부모님은?" 플러터샤이가 물었다.
"우리 부모님?" 스쿠틀루가 용감히 숨쉬듯 말했다. 잠시 동안, 그녀의 두 눈은 늘어선 비석들을 재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가셨지 뭐..." 그녀는 깜짝 놀라 플러터샤이를 재빨리 바라보며 말했다. "휴가." 아이가 싱긋 웃었다. "믿어져? 필리델피아에서 일 년에 한 번 있는 원더볼트 공연에 가는데 나는 집이나 보라고 하고 두 분만 가셨다니까. 엄마랑 아빠가 스핏파이어랑 소어린이 곡예비행을 하는 걸 보는 동안 나는 저 화분에 물이나 줘야 한다는 거지. '필리델피아 사이다' 때문에 나는 못 간다고 하고 두 분만 가신 거야. 이런 ...통에 빠져 죽을. 뭐, 빈 말은 언니도 알 거고. 한 글자야. 내가 그걸 마시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 내가 지금까지 마셨던 것 중에 가장 끔찍했던 음료수는 자두 주스였어. 애플블룸이 먹이더라고. 내 맹세하는데, 어떻게 스미스 할머니가 그런 걸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거 장에 좋은 음료수야." 플러터샤이가 싱긋 웃었다.
"어... 뭐가?"
"자두 주스. 포니도 그렇고, 다른 동물들도 그렇고, 그... 음... 그..." 플러터샤이는 순간 사탕무처럼 얼굴이 새빨개졌다.
"오오오오오— 알았다." 스쿠틀루가 눈을 찡긋했다. "말 그대로 언니도 알 그 '...통에 빠져 죽을' 안에 들어갈 단어... 라고 하면 되려나. 그 한 글자."
"어머나!" 플러터샤이가 몸을 움찔했다. "스쿠틀루, 내가 네 나이 때는 그런 농은 입에 담지도 않았단다!"
"언니가 백 살까지 살아도 그런 농은 입에도 안 담을 것 같은데 뭐." 스쿠틀루가 히죽히죽 웃으며 다시 머리에 헬멧을 뒤집어쓰며 말했다. "뭐, 플러터샤이 언니랑 같이 바람 쏘이는 것도 진짜 끝내줬어. 그래도 이제 슬슬 가야겠는걸. 엄마 화분들이 멀쩡하신가 확인하기 전에도 해 둬야 할 심부름이 아직 조금 남아서."
"어머, 그래? 난... 어... 그게... 흐으으음." 플러터샤이가 활짝 웃다가, 이내 풀이 죽더니 흐느적거리며 땅을 몇 번 찼다.
스쿠틀루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보랏빛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문제라도?"
"아, 아니야." 노란 페가수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숨죽여 웃었다. "문제될 건 하나도 없어. 그냥 잠깐 생각을 좀... 음... 네가 여길 나가고 나서도 일 몇 개를 더 해야 하거든. 스쿠틀루, 근처 연못에 가서 작은 동물들에게 밥을 주려고 하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물론 이건 네가 그... 저기... 같이 있을 포니가 필요하다면... 말이야."
스쿠틀루가 까르르 웃었다. "플러터샤이, 악의는 없지만, 언니는 조그마하고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들을 돌보는 일로 즐거운 오후를 보낼 수 있겠지만... 호수 근처에 앉아서 오리들한테 밥이나 주고 앉아 있는 건... 내가 생각하는 즐거운 오후가... 아니거든..." 오렌지색 망아지의 목소리는 스러져 가는 아이의 웃음처럼 다리를 끌며 멀어져 갔다. 아이는 그저 자기 앞만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자신을 깨달았다.
플러터샤이, 항상 친절하고 또 참을성있는 포니는 소리 없이, 최대한 웃어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스쿠틀루가 웅얼거리듯 말한 변명은 어른 페가수스의 기운을 꺾어 놓기에 충분했고 꽃피듯 반짝이던 두 푸른 눈동자는 땅 위에서 고통스러이 구르고 있었다. 어린 페가수스는 순간 그 표현이 끔찍한 외로움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천둥 치는 적란운과 같이, 스쿠틀루의 폐가 요동쳤고 그녀는 밝은 웃음을 띄우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 근데 있지. 나 오리를 되게 좋아하거든. 하나도 겁내지 않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용감한 갈매기랑 닮은 게 너무 좋아!"
"응?"
아이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스쿠터의 핸들을 다시 움켜잡았다. "오후에 뭘 할지 정했어. 엄마의 그 멍청한 화분들은 나 없이도 적어도 몇 시간은 더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같이 연못 가자. 경주라도 할까?"
"오, 그거 좋은 생각이야!" 플러터샤이는 반쯤 까르르 웃으며 몸을 떨었다. 그녀의 노란 솜털은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황금빛 광채를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저기... 다른 포니들이랑 경주할 때 이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이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어."
"에이, 그냥 장난친 거야!" 스쿠틀루가 보라색 눈동자를 굴리며 헬멧을 더욱 단단히 조였다. "길만 알려 줘, 플러터샤이. 저번에 연못에 갔을 때, 악어랑 레슬링을 벌이는 큐티마크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굳이 말할 것도 없이, 그랬다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 그만뒀어."
"정동쪽이야." 플러터샤이가 숨을 들이마시며 가볍게 날개를 펼치며 방긋 웃었다.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미끄러져 가는 망아지의 귀 높이를 벗어나지 않는 낮은 높이로 날아가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 가면 오리들이랑 근처 물새들이랑 차이점을 조금 알려 주지 않을래?"
"이것 보셔." 스쿠틀루가 놀란 듯 어깨를 흔들었고, 아이의 작은 날개는 아이를 풀 덮인 평원 너머로 밀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노려보기 마스터를 어떻게 이겨?"
"히히히."
몇 시간의 무용한 고민 끝에, 마지막 포니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유압식 지지대 한 쌍과 네 개의 쇠사슬 전부를 사용해 가파른 화강암질의 낭떠러지에 하모니 호를 계류해 두었다. 하모니 호는 시커먼 에버프리 가시숲 끄트머리 상공 수백 피트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유압식 죔쇠를 낭떠러지에 똑바로 고정시키느라 진땀을 흘렸고, 비행선을 완벽히 고정시키느라 쇠사슬을 가지고 오십 분이 넘게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꼭 해 두어야만 할 일이었다. 하모니 호를 저 시커먼 가시로 뒤덮여 버린 에버프리 숲 근처에, 그것도 해발고도로 계류해 두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었다. 저 안에 살고 있을 듣도 보도 못 한 온갖 괴물들이 스쿠틀루가 애지중지하는 비행선을 간단히 찢어발겨 구리 채를 썰 수 있었으니까.
"적어도 어디다 매달아 두었는지 잊어버리진 않겠지." 그녀는 무의미한 미소를 띄우며 중얼거렸다.
망령 같은 황혼의 입에서 불어오는 고고도(高高度)의 바람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순간의 안식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절벽 높은 곳 아래로 검은 윤곽을 그리며 어렴풋이 떠오르는 검은 가시덤불의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쓸쓸했다. 비행선 격납고갑판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그녀의 뒷다리는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었고 그녀는 물통에 담은 물을 오래도록 홀짝이며 풀 죽은 한숨을 내쉬어 몸이 떨렸다. 그녀의 떨리는 옆구리 양쪽은 장비로 가득한 키 큰 가방을 매달고 있었고 그 크기는 평소에 돌아다닐 때보다 세 배는 더 컸다.
캔틀롯의 공허한 묘지를 향한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포니빌의 버려지고 무너진 건물 안을 뒤적이러 들어가는 발걸음 역시 아니었다. 이는 파괴된 대자연 깊숙한 곳으로, 혼돈과 불안의 사지가 난무하여 날뛰는 황무지 속으로, 셀레스티아의 신휘(神輝)의 쓰라린 부재와 대지를 찢으며 닥쳐온 재앙이 대지 위로 끄집어낸 어둡고 뒤틀린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그 깊숙이 가라앉은 곳 깊은 곳에서 여기 구불구불 헝클어진 새카만 가시덩굴들은 잠들지 않을 것이었고 순전히 여기 존재하겠다는 뻔뻔함으로 영원할 회색 황혼을 영원히 앞질러 갈 것이었다.
스쿠틀루는 다시 퀭한 진홍색 눈동자 앞으로 노란 줄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드래곤 이빨을 집어 꺼내들었고 천상의 목소리가 내민 덩굴손이 그녀를 그녀 아래 구불거리는 시커먼 구덩이 속 깊은 곳으로, 더욱 깊은 곳으로, 더더욱 깊은 곳으로 그녀를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모든 것이 끝나던 날, 왜 여기서 죽어 버린 거야?" 그녀는 주정뱅이와 같은 뭉개진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적어도 그녀는 자기가 취해 있기를 바랬다. 그녀가 막 하려 하는 그 멍청한 짓거리에 대한 핑계로는 차라리 취해 있었다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어울렸으니 말이다. 스쿠틀루는 신음을 내뱉으며 똑바로 일어서서 어깨 위로 평소보다 세 배는 더 커다란 장비를 끌어당겨 지고는 두 마디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녀가 뒤로한 조리개식 문이 스르르 닫혔고 보호 주문이 발동된 룬스톤은 보라색 빛을 뿜어냈다. 그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아래로 몸을 던졌고, 그녀의 몸은 갈색 혜성과도 같이 고각도로 아래로 떨어져 내려 아래에 넘실대는 에버프리 숲의 가시 돋친 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하모니 호는 황동으로 만든 달처럼 뒤에 둥둥 떠 있었고 자기에 비하면 한없이 유약한 날개 달린 포니를 갈망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이런 짧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으레 그러하듯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이 그녀의 '집'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이런 생각이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남은 여행길을 똑바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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