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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포니 최후의 날

Chapter 23. Eversoft

by Mergo 2019. 8. 25.

"뭐, 좋아. 저 녀석에게 손님들한테 물건을 던지지 말라는 훈련을 시키는 게 어때?" 어린 스쿠틀루가 중얼거리며 보라색 갈기에 묻은 베갯속을 털어내며 말했다. 깃털 몇 개가 흔들리며 떨어졌다.

 

"아, 물론 나도 노력해 보고, 애도 써 보고,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어." 플러터샤이가 먹이통에 먹이를 가득 담던 손길을 잠깐 멈추었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여덟 살 난 망아지의 부스스해진 갈기에서 엔젤의 짜증의 흔적을 마저 지워 주었다. 수많은 작은 동물들이 건초 깔린 방 한가운데에 선 두 페가수스를 둥글게 둘러싸고 서 있었다. 세차게 내리는 오후의 폭우는 목제 지붕을 세차게 때리고 있었고, 녹슨 홈통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물은 폭포처럼 정원에 떨어졌다. "있지, 내가 엔젤을 데려온 집에서는 엔젤을 돌보지도 않고 항상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고 있었단다. 전 주인들은 동물들한테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대는 것과 제때 밥 안 주는 걸로 참 유명한 포니들이었지."

 

"언니가 저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다음 독재자님께서 왕위에 오르실 수 있게 변명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래." 스쿠틀루가 혀를 슬며시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플러터샤이, 내 생각에는 쟤 좀 두들겨 패 줘야 할 것 같은데."

 

"두들겨 팬다고?!" 플러터샤이의 얼굴은 흡사 전염병이 맹위를 떨치며 다니는 것처럼 핼쑥해졌다.

 

"그래! 말 그대로야. 이퀘스트리아 데일리를 한 부 주워다가 돌돌 말아서 엔젤의 엉덩이에 나이틀리 라운드업을 새겨 주는 거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만 한다면 말이야." 그녀는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짓궂기도 한 미소를 빙긋 띄웠다.

 

(역주: 웹사이트 이퀘스트리아 데일리의 패러디, Nightly Roundup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스쿠틀루, 혹시 그게 너희 부모님께서 널 벌주는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 네 말에 뭐라 토를 달지는 않을게." 플러터샤이는 자기의 분홍 갈기를 톡 쳐 쓸고는 다시 여물통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고, 먹이 가방을 들어 여물통을 채웠다. 다섯 마리의 돼지들이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잰 걸음으로 잽싸게 달려왔다. "하지만 난 엔젤 같은 동물들을 훈련시킬 때는 *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를 통해 훈련시키는 게 더 좋아. 엔젤이 무언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면, 상으로 당근을 하나 주는 거지. 엔젤이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잠시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엔젤이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게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설명해 주는 거야."

  

"지금 우리 대화 주제가 대체 뭐야, 어딘가의 토끼 씨야, 아니면 시장 선거 후보자야?" 스쿠틀루가 얼굴을 구겼다. "플러터샤이, 쟤는 진짜 사고뭉치라니까! 언니가 동물들이랑 잘 지내고, 걔들을 잘 안다는 것도 잘 아는데, 그래도 세상에는 언니처럼 착하고 친절한 포니들한테서 무언가 뜯어낼 수도 있을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들이 있다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헛간 벽에 기대어 있던 자리에서 조금 발을 끌어 움직였다. "언니한테 그런 식으로 구는 놈들은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단 말이야."

 

"어머......" 노란 페가수스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고, 그녀는 우유 단지를 들어 접시에 부어주었다. 몇 마리 고양이가 비에 젖은 헛간 멀찍한 구석에서 재빨리 달려오며 일종의 경주를 시작했고, 녀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즐거이 가르랑거리고 있었다.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해 주니 정말 기뻐, 스쿠틀루.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나도 엔젤이 조금 다루기 힘든 아이라는 건 알아. 저기, 예전에는 훨씬 더 까칠한 아이들도 돌봐 본 적 있었거든. 예를 들면... 래리티네... 음... 오팔레센스 같은 아이들이 완벽한 표본일 것 같네. 내가 그 아이를 처음으로 집에 데려왔던 날, 그 아이가 내 갈기를 죄다 잘라 버릴 뻔했거든. 하지만 충분히 끈기를 가지고 부드럽게 대해 주다 보면, 그냥 평범한 수준보다도 순하게 만들 수 있단다."

 

"언니가 써 봤던 모든 수단이 실패했으면, 걔 노려볼 거였지, 맞지?" 스쿠틀루가 왼쪽 눈을 커다랗게 뜨며 초승달 같은 미소를 띄웠다.

"어머! 아니야!" 플러터샤이는 차분하게 서서 메에 하고 울고 있던 염소들에게 상추를 밀어 주다가 거의 넘어질 뻔하며 말했다. "오팔레센스를 노려볼 생각은 전혀 없단다! 엔젤도!"

 

"그래도 그건 진짜 끝내준단 말이야!" 스쿠틀루가 씩 웃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비에 젖은 에버프리 숲 가장자리를 흔드는 아득한 천둥소리 너머로 재잘거리듯 울려 퍼졌다. "왜 그걸 잘 안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그거 하나면 일은 다 끝나잖아, 안 그래?"

 

"난... 아이들을 노려본다는 것 자체가 정말 부끄럽단다." 플러터샤이가 헛간 한쪽으로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고, 풀이 죽어 분홍 갈기 뒤에 얼굴을 숨겼다. "정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차라리 그 능력을 찾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닭들한테는 매번 쓰잖아."

 

"그래. 하지만 닭장에 아이들을 몰아넣기가 정말 어려워서 말이야."

 

"언니, 뭣 좀 얘기해 주라." 스쿠틀루가 둥근 나무기둥에 몸을 기대었고, 하늘은 널따란 바다가 되어 끊임없이 빗줄기의 파도를 흘려 보내 예스러운 오두막집 주변에 자라난 잔디가 몸을 숙였고 한데 모인 수풀들은 빗물에 반짝이고 있었다. 세계는 굴절된 빗줄기의 연무 사이로 춤추듯 흔들렸고, 시원한 물안개는 포니들의 숨을 가쁘게 만들었으나 또 세례의 성수가 되어 세계를 씻어내고 있었다. 오렌지색 망아지는 젖은 갈기 위로 다리 하나를 들어올렸고, 그대로 몸을 멈추어 그녀의 발굽만 멀뚱히 쳐다보고 서서 바로 몇 분 전, 그곳에 얼룩지듯 묻었던 진흙을 떠올렸다. 죄책감의 물결이 순간 밀려와 그녀의 마음을 씻어내듯 지나갔고,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한 번 깜박이고 지나가자 오두막집의 안마당부터 늘어선 비석들, 그리고 별빛만이 굽어보는 버려진 헛간이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플러터샤이?" 망아지의 말은 훌쩍이는 것 같았다.

 

"음? 말해 보렴, 스쿠틀루."

 

"언니가 큐티마크를 얻었을 때 말인데..." 스쿠틀루는 침을 삼켰다. "혼자... 였어?"

 

"혼자였냐고?" 플러터샤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새 둥지들은 한데 모여 꽤나 널찍한 하나의 둥지처럼 보였고, 비를 피하기 충분한 설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커다란 모이 자루를 들어 모이를 주던 참이었다. "음, 아니야, 혼자 있지는 않았어.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나랑 같이 있어 주었으니까. 그 아이들이 아니었더라면 동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내 재능은 절대 찾지 못했을 거야."

 

"모든 동물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거야?"

 

플러터샤이가 빙긋이 웃음을 띄우자 가벼운 숨결이 그 아래 깔렸다. "전부는 아니고, 대부분의 동물들과는 가능하단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사실, 모든 동물들은 천상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 내 생각에는, 종을 막론하고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에게 길토핀 공주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동물들을 만나면 일단 멈추고, 차분하게 천천히 다가가 보렴. 그러면 대개 그 아이들과 이어질 수 있단다. 새들과도, 나비들과도, 부엉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거야. 어쩌면 맨티코어나 큰곰자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는—"

 

"언니, 큰곰자리랑 대화할 수 있는 거야?!" 스쿠틀루가 멈칫하며 물었다.

 

"흠..." 플러터샤이가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대화를 시도할 생각은 안 해 봤어. 동물학적 소통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

 

"언니도 벌써 갖고 있지 않아?" 스쿠틀루가 눈을 찡긋했다.

 

"아직 거기까지 학위를 따진 못했어."

 

"그래도, 언니 재능은 진짜 뛰어나잖아. 안 그래? 플러터샤이." 스쿠틀루가 싱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천천히 스러져 흐려져 갔다. "자신감을 가져. 진심이야. 진짜로."

 

플러터샤이가 한쪽 눈썹을 치켰다. 그녀는 웃으며 씨앗을 담은 자루를 내려놓았고, 천천히 걸음을 떼어 망아지 앞에 가 섰다. "네 큐티마크가 널 찾아올 때, 너 역시도 분명 자랑스러워질 거야. 확신한단다."

 

"난 잘 모르겠는데." 스쿠틀루는 뒷다리를 진흙탕 속에 집어넣더니 헛간 안에 깔려 있던 건초를 흩으며 말했다. "혼자인 포니에게도 큐티마크가 찾아올까?"

 

"스쿠틀루, 왜 네가 외롭다고 생각하는 거니?"

 

"결국 모두는 혼자일 뿐이라고, 전에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

 

플러터샤이는 흥미롭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니? 아까도 얘기했지만, 내가 재능을 찾았을 때는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단다. 그게 외롭다... 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니, 스쿠틀루."

 

"하지만... 하지만..." 스쿠틀루가 한숨을 내쉬자 두 눈은 서서히 감겨 닫혀 갔다.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플러터샤이를 슬픈 듯 올려다보며 말을 꺼냈다. "플러터샤이, 마지막으로 집에 다른 포니를 초대해 보거나, 초대 받아 본 게 언제야?"

 

"음, 바로 어제지. 같이 동업해서 하던 일이 끝나서—"

 

"내 말은, 언니가 아는 포니 말이야. 언니 친구랑 어울린 게 언제냐고."

 

플러터샤이는 그 말에 놀란 듯 했다. "음... 저기... 이 주일쯤 전에 트와일라잇이랑 차를 마시러 놀러 간 적이..."

 

"이 주일이라고?!" 스쿠틀루가 얼굴을 구겼다. "플러터샤이, 진짜 친구도 좀 만나고 그래!"

 

"나... 나도 친구들을 만나러 가긴 하는데..." 플러터샤이가 갑자기 초조한 듯 몸을 떨며 스쿠틀루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저기... 때때로 시간이 나면... 그 때 만나러 가서..."

 

"플러터샤이, 이런 말 한 게, 내가 처음이야?" 망아지가 목구멍 어딘가에 걸린 응어리를 삼키며 나직이 말했다. "언니는 진짜, 정말 재능 있는 포니야. 아, 그래. 물론 애플잭도 사과나 뭐 그런 걸 기르는 데 뛰어나기는 해. 근데, 그건 집안 내력이야. 래리티도 항상 드레스나, 뭐 주름장식 많은 옷을 만들곤 하지, 하지만 래리티는 스위티벨이랑 같이 그 예쁘장한 의상실에서 살고 있잖아.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마법 능력도 정말 특출하지. 하지만 공주님의 직속 제자였으니까, 허구한 날 만나 보았을 거 아니—"

 

"도대체... 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스쿠틀루?"

 

"언니도 분명 재능 있는 포니야. 하지만... 언니는 늘 혼자야." 스쿠틀루의 이빨이 입술 가장자리를 씹었다. "내가 언니를 볼 때마다, 언니는 늘 혼자였어. 그리고 그걸 볼 때마다 정말 궁금했지... 내가 큐티마크를 얻은 재능이, 정말로 뛰어난 거라면 나도 언니처럼 혼자가 되지 않을까 말이야."

 

"어머, 스쿠틀루." 플러터샤이가 과장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숙여 스쿠틀루의 얼굴에 얼굴을 비볐다. "너무 걱정하는 거—"

 

"난 진심이야, 플러터샤이!" 스쿠틀루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홱 잡아당겨 얼굴을 떼었다. 비단에서 얼굴을 찢어 내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그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요새 그것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단 말이야! 나... 난..."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더니 사방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의 여운에 몸을 떨었다. "내가 큐티마크를 얻기를 원하는 게 아닐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어."

 

스쿠틀루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플러터샤이의 푸른 눈동자가 떨렸다. "정말이니? 그녀의 눈이 다시 한 번 깜박였다. "정말이야?"

 

"그래, 맞아." 스쿠틀루가 툴툴대듯 답하며 치기 어린 얼굴을 찌푸려 헛간 멀찍한 가장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두 앞다리를 접으며 말했다. "나, 큐티마크 크루세이더이자 포니빌 전교 장기자랑대회에서 리드싱어를 맡은 스쿠틀루는 나 스스로 큐티마크를 원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거... 그거 참 흥미롭구나." 플러터샤이가 가늘어진 눈으로 스쿠틀루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더니 나직이 말했다. "전에... 저기, 이 얘기 말인데... 네, 그, 저... 그... 다른 아이들에게도..."

 

"크루세이더 말이야?" 스쿠틀루가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아니... 아직이야, 플러터샤이. 하지만... 뭐..."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헛간 주변을 서성거렸다. 발굽이 바닥에 끌렸다. "요즘에... 걔들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말이야. 이건 단순히 애플블룸이 아파서 앓아 눕는다거나, 스위티벨이 래리티에게 과외수업을 받는다는 것, 그 이상의 일이야. 크루세이더가... 예전 같지 않아. 우리 셋이 예전보다 더 똑똑해졌을 수는 있어, 그리고 애플블룸이나 스위티벨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 우린 이제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있던 클럽하우스에 잘 모이지도 않아."

 

"음, 내가 보기에 약간은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 플러터샤이가 말문을 열었다.

 

스쿠틀루가 갑자기 외치듯 말하며 몸을 돌렸다. "그게 우리들이 우리 자신을 깨닫기를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야! 여전히 우리 셋이 모이면 즐거운 건 똑같으니까! 우린 아직도 슈가큐브코너나 뭐 그런 비슷한 데에서 모이고 있어! 하지만... 하지만..."

 

"뭐가 문제니, 스쿠틀루?"

 

망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한데 모아 접어 놓은 발굽 위로 아이의 고개가 다시 한 번 떨어졌다. 아이는 주둥이로 땅을 파기라도 하려는 듯 머리를 깊이 수그렸고, 나직이 몇 마디 말을 토해냈다. "애플블룸이랑 스위티벨이 이걸 알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우린 결국 우리 큐티마크를 찾을 수 없을 거야. 혼자가 아니니까."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왜냐 하면..." 스쿠틀루가 몸을 떨었다. "큐티마크는 한 포니의 재능을 상징하는 아주 특별한 거야. 재능이란, 남들과 나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뜻하고. 난 큐티마크를 얻으려면 우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온 세계를 거울삼아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고, 거울에서 무언가 배워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 여럿이 있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자기 자신이 누군지, 진정으로 자각하는 때는 오직 하나, 혼자 있을 때밖에 없어."

 

"스쿠틀루, 네 말이 사실이라면 왜 큐티마크 크루세이더에 가입한 건지 물어 봐도 될까?"

 

"난..." 망아지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이는 무기력한 시선으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자기의 온 몸을 적셔주기를, 다음 순간에게서 자기의 온 몸을 감싸 숨겨주기를 소망하듯 비의 장막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훌쩍임은 억눌러져 돌파구를 찾았다. "나, 난 혼자가 되는 게 싫어, 플러터샤이." 아이는 들렸던 고개를 거두어 천공은 아이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했고, 플러터샤이도 볼 수 없었다. 빗줄기 너머의 회색의 세상이 사방으로 구부러져 아이의 물기 어린 시선을 에워쌌다. "정말 싫어." 마른침을 넘기는 건조한 소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알아... 나 자신을 찾고 싶으면, 혼자가 되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알아. 정말이야." 아이의 어린 심장은 사방으로 흘려 주었던 피를 모두 한데 모아 헛간의 무거운 대기 속으로 흐르려 하는 한 줄기 훌쩍임을 눌러 죽였다.

 

부드럽고 조용히 걷는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비단결 같은 온기가 작은 망아지 옆으로 다가왔고, 아름다워 잊혀지지 않을 목소리가 그 뒤를 따라 아이의 떨리는 귀 안으로 스며들었다. "스쿠틀루, 정말... 정말 어른스럽구나."

 

아이는 숨이 턱 막혔다. 아이는 가까스로 떨리는 눈을 들어 플러터샤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깊은 상처와 자부심이 한데 모여 있었다. "내가?"

 

"그래." 플러터샤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스쿠틀루의 젖은 눈에는 그녀의 얼굴 뒤로 백금의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빙긋 웃음지으며 말했다. "항상 그렇다고 생각했단다. 너희 셋을 볼 때마다 항상 그랬어. 래리티네 집에 있을 때나, 우리 집에 있을 때나."

 

"그래도..." 스쿠틀루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의 마음에 부서진 파란 테이블과 진흙 범벅이 된 마룻바닥이 비쳤다. "난 언제나 짓궂은 장난이나 치고 물건이나 부수는걸. 플러터샤이, 내 기분 때문에 그런 말 하는 거면 난 괜찮으니까—"

 

"난 내가 진정으로 믿는 사실만을 이야기한단다." 플러터샤이는 얼굴 한쪽을 가리고 있던 분홍 갈기를 한쪽으로 쓸어 넘겼고, 어린 망아지의 얼굴은 좀 더 명확하게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네가 가끔 하곤 하는 그 장난도 다른 크루세이더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하는 거라는 걸 안단다. 어떻게 내가 그 사실을 아는 걸까, 스쿠틀루? 말해 줄게. 네가 큐티마크 크루세이더의 대장이기 때문이란다."

 

아이가 놀라 물었다. "내가?" 플러터샤이는 몇 마디 귀여운 웃음으로 답했다.

 

"히히히..." 플러터샤이가 까르르 웃다가 잠시 두 눈을 감았다. "음... 맞아.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말렴. 애플블룸이나 스위티벨은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너희 셋이 슈가큐브코너에서 다이아몬드 티아라가 열었던 파티에서 만난 이후부터 항상 네가 아이들을 이끌었잖니. 네가 수레에 네 두 친구들을 태우고 온 포니빌과 스위트 애플 에이커를 쏘다니는 건 마을 포니들이 다 안단다. 만일 네가 없었더라면 기운을 북돋아 주는 아이도, 즐겁게 해 주는 아이도 없었을 테니까 지금의 큐티마크 크루세이더도 없었을 거라고 확신해."

 

"하지만... 하지만 우리 모임 이름은 애플블룸이 지은 이름인걸!"

 

"이름은 그냥 이름일 뿐이야. 하지만 본질이란 건 그 모든 걸 포괄하는 것이란다." 스쿠틀루의 접은 발굽 위에 플러터샤이가 부드럽게 발굽을 올려주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아이들은 큐티마크 크루세이더를 단순히 목적을 위한 수단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넌 크루세이더를 특별한 무언가로, 정말로 특별한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지. 스쿠틀루, 네가 보는 크루세이더는 아이들이 찾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모임이겠지. 애플블룸은 항상 애플잭에게 의지하고, 스위티벨도 마찬가지로 래리티에게 기대지. 아이들은 의지할 수도 있고, 그와 동시에 즐겁게 해 줄 수도 있는 아이를 찾았던 거야. 네가 그 자리에 들어간 게, 아이들에게는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을 거야."

 

"플러터샤이..." 스쿠틀루는 불안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의지해야 할 포니는 누구야?"

 

"답이 너무 당연한 거 아니니?"

 

대답을 듣기에 스쿠틀루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아이는 몸 깊숙한 곳에 깃든 영혼을 불태울 거대한 스포트라이트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조금 처져 있었다. 플러터샤이의 웃음이 전처럼 부드럽고 순수해서 아이는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한숨을 꺼내며 순간의 흠뻑 젖은 무게를 떨쳤고, 헛간 한쪽 구석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애플블룸이나 스위티벨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걸 찾는 날이... 나는 별로 기다려지지가 않아. 더 이상 큐티마크 크루세이더가 아니게 되는 것이..."

 

"각자의 재능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나도 동의한단다." 플러터샤이가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 말은 모두가 완전히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그녀는 부드럽게 머리를 한쪽으로 기대었고, 푸른 눈동자는 가늘어졌다. "포니 노릇을 하는 데는 재능만 필요한 게 아니란다, 스쿠틀루. 기쁨과 우정, 그리고 마법 역시도 필요하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얼굴에 천사 같은 미소가 퍼졌다. "친절을 베푸는 게 중요하단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친절함이 네 안에 있어. 애플블룸과 스위티벨의 삶에 축복을 내려 준 건 바로 너야. 설령 네가 큐티마크 크루세이더에서 나가더라도, 그 아이들의 삶에는 여전히 축복이 남아 있을 거야."

 

"언니가 큐티마크를 얻고 난 다음에, 바로 클라우드데일을 떠났지, 맞지? 플러터샤이."

 

"음... 뭐, 어떤 면으로는 맞아."

 

스쿠틀루의 두 눈이 굽어졌다. "축복, 받은 것 같았어?"

 

플러터샤이는 머뭇거렸다. 그녀는 스쿠틀루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 뒤를 바라보더니, 끝내 한 마디 말을 꺼내 그것에 의존했다. "스쿠틀루,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혼자인 건 아니야."

 

"하지만 플러터샤이, 난 언니가 항상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나도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알고 있단다." 노란 페가수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림자 한쪽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어떤지도 알아." 부드러운 웃음이 꽃이 피듯 아주 천천히, 천천히 피어났다. "하지만...... 그래도 내 삶을 순식간에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하듯 흐르는 시냇물의 소리와 같아서, 스쿠틀루의 귓가에 잔물결을 남겼다. "나는 정말... 정말 행복하단다. 정말로 행복해. 포니들, 우리들은 서로, 모두 달라.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걸으며 각자의 재능으로 다른 이의 행복을 기원하지. 네 재능으로 크루세이더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나는 나의 재능을 내 동물 친구들의 행복을 위해 쓰고 있는 거고."

 

스쿠틀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좀 전에 연못에서 들은 바로는, 재능을 쓰는 건 궁극적으로 가족들을 위한 거라고 한 것 같은데."

플러터샤이는 응수타진을 받아들이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눈을 깜박이며 곧장 그만두었다. "음... 오...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렇지?" 그녀는 바닥에 깔린 현기증 나는 연무를 바라보았다. "저기......"

 

두 페가수스는 고요한 적막 속에 앉아 있었고 주변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어 불현듯 둘의 겹쳐진 그림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침묵은 스쿠틀루가 플러터샤이에게 걸어가 얼굴을 비빔으로서 깨뜨려졌다. 그 행위에 온기가 묻어났기에, 다 자란 페가수스는 깜짝 놀랐다.

 

"플러터샤이, 내가 언니에게 올게." 스쿠틀루는 플러터샤이의 부드러운 솜털 속으로 나직이 말했다. "설령 언니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더라도, 언제나 언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줄게." 아이는 반짝이는 보라색 눈을 들었다. "그러니까... 허락해 줄래?"

 

근래 플러터샤이의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던 온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그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그 대신, 그녀는 지그시 웃으며 연약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아이의 등에 얼굴을 비비며 속삭였다. "정말 고마워, 스쿠틀루. 진심으로 고마워."

 

"흠..." 스쿠틀루는 플러터샤이의 목소리가 끌고 온 아늑한 온기를 가득 받아들였다. 그 다음, 그녀가 말했다. "어쨌든, 이 망할 놈의 비가 우릴 쫓아내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히히히... 그래."

 

스쿠틀루는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헛간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몸을 돌렸고......

 

 

......의아하다고 말하는 듯한 가늘어진 눈으로 작은 회색 유니콘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대체 무슨 일이 났길래 이리 시끄럽게 구는 거냐, 꼬마야?" 하모니의 호박색 눈동자 위로 덮인 눈썹은 궁금하다는 듯 치켜졌다.

 

"아이보리 네마 두꺼비에요." 딩키가 재잘거렸다. 아이는 헛간 옆에 누워 있던 나무 기둥에 앉아 있었고, 플러터샤이와 하모니는 부지런히 이고 진 먹이 포대를 들어 근처에 놓였던 여물통에 먹이를 붓고 있었다. "밝은 빛에 굉장히 민감한 것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은 축축한 흙무더기 안에서만 살아요. 대부분의 포니들은 에버프리 숲 근처에서 일어나는 유사 현상(Quicksand, 流沙)이 바로 이 녀석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뭐, 사실은 땅이 그렇게 된 건 커다란 양서류 동물들이 여기저기로 땅굴을 너무 많이 파서 지반이 약해졌기 때문이지만 말이에요."

 

유사 현상: 일종의 모래 늪. 모래층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물의 흐름이 있을 때 모래가 볼록하게 솟아올라 불안정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지진 발생 시 큰 건물을 삼킬 수도 있는 현상으로, 이 경우에는 지진에 의해 지반이 내려가며 지하수에 압력을 가해 발생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로, 유사에 빠졌을 시 발을 사용하여 모래에 물이 스미게 하면 참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한다.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플러터샤이가 부드럽게 웃으며 꼬꼬 우는 닭들에게 씨앗을 조금 뿌려주었다. "몇몇 네마 두꺼비는 빛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답니다. 그 녀석들의 피부에는 멜라닌 색소가 거의 들어 있지 않아서 햇빛에 쉽게 상하기 때문에 나오지 않을 뿐이에요."

"스테레오로 생물학 수업을 들으니 참 좋군요......" 하모니는 호박색 줄 그어진 검은 갈기를 톡 쳐 뒤로 넘기고, 먹이 자루를 좀 더 흔들어 여물통에 먹이를 더 채워 넣었다. 한 무리의 돼지 떼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으... 흠흠... 플러터샤이, 전 당신의 직무에 대해 더 배우려고 온 거랍니다. 지금 저... 백과사전 꼬마의 말은 잠깐 접어 둬도 될 것 같고요."

 

"하지만, 지난 십 년 동안 거대 아이보리 네마 두꺼비에 대한 기록이 무려 열한 건이나 남아 있는걸요!" 딩키는 금발 갈기가 덮이고 뿔이 돋아난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기댔고, 학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을 꺼냈다. 아이의 다리가 달랑거렸다. "그리고 그 기록 중 두 건은 그 생명체의 점액 분비선에 직접 접촉한 이들이 녀석의 피부독에 중독된 사건을—"

 

"꼬마야, 혹시 우리 포니 문명에서는 지식들과 일반론적인 사실들을 종이에 기록해 남기기 위해 책이라는 것을 발명했단다. 혹시 알고 있니?"

 

"하모니, 제 기대를 저버리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맞이한 이유는 여기, 딩키한테 좋은 자극제가 되어 주시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에요. 딩키는 포니빌 내에서도 영재로 유명한 아이랍니다."

 

"어머, 전혀 몰랐네요."

 

"치어릴리네 학교에 다니고 있었더라면 그 어떤 아이들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았을 거에요."

 

플러터샤이의 말에 하모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늘어진 눈은 작은 유니콘을 향했고, 비스듬히 기울어 아이를 살피고 있었다. "그 말은, 아직도 학교에 안 간다는 말씀인가요?"

 

"전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았어요." 딩키가 불현듯 얼굴을 찌푸렸고, 그 통에 눈썹에 주름이 져 아이의 자그마한 뿔은 멀찍이 보이는 단검의 모습처럼 보였다. "엄마가 그랬어요. 제 3자 앞에서 다른 포니 얘기 하는 거, 좋은 거 아니라고. 세상에는 못 듣는 포니보다 앞이 안 보이는 포니가 훨씬 더 많다고 말이에요."

 

"휴우, 악의는 전혀 없었어!" 하모니의 호박색 눈이 굴려졌고, 그녀는 이내 플러터샤이를 도와 다른 여물통에 먹이를 채워 넣었다. 꼬꼬 우는 소리와 끽끽대는 소리가 어울려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었다. "그냥 네가 학교 다닐 만한 나이로 보인다는 뜻이었지, 네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지능이 떨어진다고 말할 뜻은 전혀 없었단다."

 

"저는 교육과정 계획표를 보고 공부했어요." 금발 갈기 망아지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 양 낮은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엄마는 제가 플러터샤이 언니네에 와 있지 않을 때나,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지 않을 때마다 절 도서관에 데려다 주세요. 저처럼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포니빌 교육 센터에서 운영하는 문학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앞으로 두 레벨만 더 들으면 그것도 끝나요."

"너희 어머니, 너무 교육열이 과하신 거 아니니?"

 

"아뇨. 그냥 심심해서 그런 거에요. 그래서 좀 더 수준 높은 책을 읽는 거고요." 딩키는 웃으며 눈을 깜박여 보였다. "저 멀리 드레지메인이란 곳에서는 지금까지 온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은 석화(石化) 원소석(Elemental Stone)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그곳의 채석장에서 캐낸 돌 백 킬로그램마다 열 개에서 열다섯 개 정도, 마법의 정수가 섞인 돌이 나온다고 해요. 지금까지 밝혀진 곳 중에, 그렇게 마법의 정수가 집중된 곳은 단 한 군데, 달밖에 없어요."

 

"헤......" 하모니는 힘 빠진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요즘 애들이 이 정도로 홈스쿨링을 받는구나. 스위티벨이 그렇게 박학다식한 것도 당연하네."

 

플러터샤이가 그녀를 죽 훑어보며 말했다. "어머? 래리티네 가족들이랑 아는 사이셨어요?"

 

하모니는 당황해 눈만 깜박였다. 그녀의 황동색 뺨 위로 홍조가 서서히 떠올랐고, 뇌리에는 과거의 녹색 세상이 떠올랐으나 그 자리에서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저... 저기... 한두 번 회전목마 의상실(Carousel Boutique, 캐러셀 부티크)에 화물을 가져다 준 적 있어서요."

 

"언제 가져다 주신 건가요?" 플러터샤이가 일어나 하모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래리티, 잘 지내고 있었나요?"

 

하모니의 두 눈이 떨렸다. "전... 어...... 한동안 캔틀롯에서 물건 전달 업무를 받아 보지 못했답니다. 그렇게 최근에 만나 봤다고는 할 수 없네요." 그녀는 헛기침을 했다. 호박색 눈동자에도 진심이 담겨 거기 비친 노란 페가수스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포니빌 최고의 의상 디자이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플러터샤이는 그림자가 묻은 한숨을 내쉬며 풀이 죽었고, 다시 몸을 돌려 메에 하고 우는 두 마리 염소에게 밥을 주었다. "며칠 동안 걔 소식을 못 들었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바로는, 마차를 타고 이퀘스트리아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어요. 아나스타샤던가, 꽤나 조용한 포니가 마차를 끈다고 하더군요. 일 주일 동안이나 래리티가 안 보인다니 너무 이상해요. 일 년 내내 모든 걸 같이 했는데... 걘, 제 최고의 친구랍니다." 한 줄기 행복한 추억이 그녀의 얼굴 위로 장미 같은 홍조를 데려와 앉혔고, 홍조는 곧 떠나가 그녀의 노란 얼굴은 다시 창백해졌다. "그래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려서..."

 

"그 말씀은, 포니빌에 들르실 때마다 래리티란 분을 못 보셨다는 말씀인가요?"

 

"음, 그런 건 아니에요." 플러터샤이는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사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는 게 어떠냐고 처음으로 말을 꺼낸 게 래리티랍니다. 그냥... 저기... 늘 놀러만 오고, 놀러 오라고 안 한 지가 너무 오래 돼서..."

 

"그러면 그분을 찾아가서 이제 역할을 바꿔 보자고 제안하시는 게 어때요, 플러터샤이?" 시간여행자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래리티란 분도 당신이 놀러 오겠다고 하면 분명 기뻐하실 거에요."

 

"아, 아니에요. 그렇게는 못 해요."

 

"피! 대체 왜요?"

 

"함부로 막 쳐들어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친구가 아닐 때나 그렇죠! 그게 친구가 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 아니겠어요, 플러터샤이?"

 

"제 3시대 말기에 있었던 조사, 그러니까 꽤 최근 조사 결과인데요." 딩키가 말했다. "가장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이퀘스트리아의 포니들은 약 넷 정도의 전혀 모르는 포니들과 면식이 있다고 조사되었어요. 캔틀롯 상류층 엘리트들보다 낮은 수치래요."

 

하모니는 눈을 굴리며 꼬마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나직했지만 좀 더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구나 바쁜 삶을 살아요. 설령 그 행동 자체가 거슬리더라도 가끔씩 다른 포니들을 만나는 건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고요. 예상 밖에 있던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는 게 재미있는 건데, 그런 일 하나 없으면 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요?"

 

"그건, 저도 그 방문을 원했을 때의 이야기에요." 플러터샤이의 말은 풀 죽은 숨소리 아래에 깔려 있었다. "레드게일 부서장님이 저희 집에 찾아오시기 전까지만 해도, 오늘 꼭 해야 하는 일 외에도 다른 일들 때문에 정말 바빴거든요." 그녀는 헛간 뒤에 앉은 작은 유니콘을 슬쩍 보았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황동색 페가수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다정한 웃음이 번졌다. "그래도, 바쁜 만큼 기분 좋은 일들도 있답니다."

 

"그래요. 그렇군요." 하모니가 나직이 말하며 동물 훈련사의 옆구리 쪽에서 서성거렸다. "지금 제가 참관하는 건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보고서를 올리기 위함임을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이퀘스트리아에서 언제나 우정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포니들 중에는 항상 공주님께서 서 계시다는 걸 잊지 마세요."

 

"하모니, 전에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알현한 적 있나요?"

 

"전... 어..." 하모니는 눈을 깜박이기만 했다. 흔들리는 조명 아래 반짝이던 황금 잉크와 그 잉크로 쓰여진 달필, 그 달필이 품은 수천, 수만의 말들과 그 말을 품었던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그녀의 어두운 마음 속에 스치듯 지나갔다. 비록 그 글은 읽었으나 공주의 고결한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 알현한 적 있습니다." 플러터샤이가 말을 받아 끝내주었다. "그래요. 공주님께서는 항상 우정을 굳게 신뢰하시죠. 하지만 다른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며 우정을 잠시 접어두신다면, 저는 더 이상 밖에 나오지 않을 거에요. 그 말은 나이트메어 문이나 그만큼 두려운 존재들이 나타나 공주님께 사악한 마법을 걸었다는 뜻일 테니까요."

 

"레드게일 부서장이 얼마나 심하게 쪼아댔는지 대충 짐작은 가는군요." 하모니는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음을 띄우며 플러터샤이를 바라보았다. "플러터샤이,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긴 합니다만... 시무룩해져 계시니까 되게 귀엽네요."

 

"어머, 그런 말씀에는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플러터샤이는 수심에 잠겨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고, 이내 우유가 가득 담긴 유리 단지에 닿았다. 그녀는 힘 없는 다리로 뚜껑을 비틀어 열려고 애쓰고 있었다. "으으... 흐윽... 휴우... 단지가 또 말썽이네요!"

 

"이리 주세요. 제가 하죠." 하모니가 말했다. 과거에 투영된 엔트로파의 몸뚱이는 떨리는 발걸음을 내디뎠고, 플러터샤이에게서 단지를 가져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지마자 야옹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얼어붙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갈수록 커져 갔다.

 

"하모니, 누구한테 줘야 하는지는 아세요?"

 

"네." 방문자의 두 눈이 깜박였고 검은 갈기는 그 위에 그어진 호박색 줄에 매달려 흘러내렸다. "알 것 같아요." 하모니의 발걸음은 무덤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시체처럼 질질 끌리며 흘러갔고, 몸이 멈춘 곳에는 자그마한 접시가 하나 있어 단지를 기울여 흰 우유를 가득 부어주었다. 한 무리의 집고양이가 접시를 둘러싸고 하나의 원을 그렸고, 흔들리는 꼬리는 털이 복슬복슬한 몸통과 어울려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듯싶었다. 고양이는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며 게걸스레 우유를 핥아먹고 있었다. 복슬복슬한 원, 하모니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녹색 불꽃이 한 번 깜박하면 교차하는 세계의 안개 덮인 정경이 보였다. 저 멀리에서 터지는 천둥소리는 오후의 세계를 흠뻑 적시며 쏟아지는 비 안에 메아리로 울리는 한 오렌지색 망아지의 목소리처럼 아득했다. 불현듯 부드러운 온기가 가까이 다가왔다......

 

하모니는 거칠게 그 온기를 밀어냈다. 떨리는 두 눈은 커다래져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비록 놀라기는 했지만, 그녀는 차분하게 마른침을 삼키고 나직이 말했다. "하모니, 괜찮으세요? 좀 전에 부엌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의식을 잃으신 것 같아서요."

 

"저... 전..." 하모니가 떨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웃으려 했지만 얼굴에 떠오르는 건 찌푸려진 주름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반쯤 비워진 우유병과 떨리는 발굽에 차례로 향했고, 곧 플러터샤이를 향했다.

 

플러터샤이의 고개가 부드럽게 끄덕였다.

 

기침 한 번이 터져 나왔고 고개가 한 번 끄덕여졌다. 하모니는 급히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녀는 우유를 넘기며 거친 숨을 들이마셨다. 떨리던 무릎은 구부정하게 굽어져 당밀(糖蜜) 통에 기댔고, 곧 안정을 찾았다. "휴...저기, 이게 몸에 그렇게 좋대요."

 

"하모니,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절 도와 주신다는 거 말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아직 하셔야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도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또 다른 일을 맡기신 것 같아요. 레드게일 부서장님은 기껏해야 제 능력 하나 때문에 절 쓰시지만요."

 

"어머, 플러터샤이..." 하모니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번졌고, 발굽은 근처의 나무기둥에 우유병을 잘 올려놓았다. 네 다리로 버티고 선 그녀에게선 짙은 자신감이 엿보였다. "이번 주 동안 당신을 충실히 보좌하는 데는 전혀 문제 없어요!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면, 네뷸라 공주님께서 천벌을 내리실 거에요!"

 

"디, 디, 디, 디, 딩키, 엄마 왔다!" 아래쪽에서 말을 더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모니는 하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 엥?" 그녀의 목소리는 먹음직한 음식이 가득 올려진 식탁보를 갑자기 거칠게 잡아 빼 사방으로 날아가는 요리처럼 입을 떠났다. 눈 깜짝할 사이, 회색 날개를 한 페가수스 하나가 그녀를 향해 날아와 거세게 부딪혔다. 둘의 몸은 건초 더미 두 개를 뚫고 날아갔고, 그 통에 귀리가 가득 담겼던 자루가 쓰러지며 사방에 귀리를 뿌렸다. 쌓였던 먼지가 일어나며 코를 간질였다. 하모니는 몸을 움찔하며 일어서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무게가, 산 것의 무게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이 검은 갈기 덮인 목을 길게 뺐다. 대체 누군지 알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건 거품과 회색 솜털, 그리고 또 다른 거품뿐이었다.

"으음..." 낮지만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내가 알던 모습보다 훨씬 지저분했구나!"

 

"엄마, 안녕!" 한쪽에 앉아 있던 딩키의 모습은 위아래가 뒤집어져 있었다. "색소결핍 네마 두꺼비랑 우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정말? 재미있구나. 엄마는 그 두, 두, 두, 두 가지에 대해선 전혀 모르거든! 이리 오렴, 우리 머핀!"

 

"히~" 딩키가 행복한 듯 훌쩍 몸을 날렸고, 하모니를 짓누르는 하중은 두 배가 되었다. 황동색 페가수스의 숨은 이제 쌕쌕거리고 있었고, 호박색 눈동자는 슬슬 불거지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 일은 좀 어떠셨어요?"

 

"오늘 하룻동안 배달한 편지만 해도 온 이퀘스트리아를 도배하고도 남을 것 같더구나! 적어도 엄마는 그래. 엄마 가방이 텅 비었어!"

 

"아으... 여보세요? 저 좀 보시죠?" 하모니가 쌕쌕거리며 꿈틀거렸다. "아주 납작하게 눌려서 포가 될 것 같은데요. 좀 도와 주실래요?"

 

"우앗! 머핀, 들었니! 귀리가 마, 마, 마, 마, 말을 했어!"

 

"저기..." 플러터샤이의 부드러운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뒤집어진 채로 말이다. "저기, 후브즈 어머님? 저기, 괜찮으시다면...... 지금 제 손님을 깔고 앉아 계시거든요. 캔틀롯 왕궁에서 파견된 분이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의자가 아니랍니다."

 

"어맛!" 하모니의 몸을 깔고 앉았던 몸뚱이는 급한 숨과 함께 비켜주었다. 하모니의 눈 앞에 어른거리던 방울이 사라졌고, 시간여행자의 숨통이 다시 트였다. "제 잘못이에요! 미안합니다, 다람쥐 아저씨!"

 

"다람쥐요?" 시간여행자는 검은 꼬리를 털며 자리에 앉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은 더욱 찌푸려졌다. "아저씨요?"

 

"엄마, 제 3시대 후반에 보고된 동물학 논문에 따르면, 열대 지방의 섬에 서식하는 *카피바라들이 설치류 중에서 가장 큰 동물이래요. 그리고 *상트페테르브리틀의 지식인들과 우리 사이는 지리적으로 너무 멀대요."

 

카피바라(Capybara): 멸종위기등급 <관심 필요> 등급에 랭크된 동물. 카피바라는 파라과이의 투피족이 사용하는 과라니어로 '초원의 지배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딩키의 말대로 현재 설치류 중에서 가장 큰 생물이며, 수컷은 35~63Kg, 암컷은 36~65Kg정도로 성장한다. 티벳여우를 연상케 하는 묘한 눈망울을 지녔고, 또한 묘하게도 물갈퀴가 있어 수영에 능하다. 묘하게도 잠수에는 별 소질이 없어 코만 수면 위로 내놓고 숨을 쉬는 묘한 잠수법을 자랑한다. 야생 상태에서 8~10년, 동물원에서 12년 정도 살 수 있다.

 

St. Petersbrittle. St. Petersburg (상트페테르부르크, 제정 러시아의 수도.)의 변형.

 

"아하! 상트페테르브리틀! 거기 내 동생이 있단다!"

 

"아니에요, 엄마. 딧치블링카 이모님께선 *메어스크바에 사시는걸요."

 

Marescow. Moscow (모스크바, 현재 러시아의 수도)의 변형.

 

"아, 그랬지! 헤헤... 맞아, 그랬어." 회색 발굽이 어린 유니콘의 금발 갈기를 쓰다듬었다. "내가 네 뿔 달린 머, 머, 머, 머리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해 준 적 있었니?"

 

"늘 말씀하시잖아요, 엄마. 히히히!" 딩키의 얼굴은 따뜻한 기쁨에 불현듯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하모니는 여전히 어질어질해서 네 다리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플러터샤이가 천천히 걸어와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하모니, 제 좋은 친구를 소개할게요. 후브즈 어머님이세요."

 

"네, 네. 저기, 생일날에 그 이름을 받은 건가요, 아니면 깔아뭉개기 대회에서 우승해서 받은 건가요?" 하모니가 고개를 흔들었고, 흔들리는 귀에 걸렸을 거미줄을 떨어냈다. 그녀의 숨은 여전히 괴로워 보였다. 그녀는 최대한 정중하려고 애쓰며 낯선 이에게 차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어쨌든. 플러터샤이의 친구 분을 만나서 정말로 기쁘네요.... 으악!" 하모니의 이빨 사이로 날카로운 숨이 뿜어졌고, 그녀는 움찔했다.

 

회색 페가수스가 딩키를 부드럽게 안아 들고 그녀의 옆구리 위쪽에 어색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사시였다. 그녀는 하모니를 보고 있지 않았다. 위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아래를 보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하늘을 보고 있을지 몰랐다... 아니면 땅을 보고 있었던 걸까... 대체... 뭘...

 

하모니의 눈꺼풀은 널찍해진 눈 위로 깜박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한쪽으로 젖히고는 회색 페가수스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그 가운데에 가져다 두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순간 여기저기를 허우적거리더니 뒤로 자빠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어......"

 

"걱정하지 마세요. 눈이 빠, 빠, 빠, 빠지지는 않으니까요." 페가수스는 활짝 웃으면서 온 방을 헤집고 다니며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그 통에 방 안은 온통 그녀의 웃음이 보이는 듯했다. "가끔씩 비행 경로를 잘못 잡긴 하지만, 괜찮아요. 다시 사과드릴게요, 다람쥐 아저씨." 그녀는 하모니에게서 일 미터쯤 떨어진 자리에 내려앉았다.

 

하모니의 눈이 가늘어졌고, 이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회색 페가수스와 악수를 하려는 듯 천천히, 하지만 어색하게 한쪽 발굽을 내밀었다. "뭐, 아무도 안 다쳤으니 됐어요. 다음 번에는 부딪히기 전에 좀 더 적절한 경고를......"

 

"아 참! 딩키, 방금 생각난 건데 말이야!" 후브즈가 갑자기 숨을 들이키고는 급히 발굽을 뻗었다. 그 통에 하모니는 다시 한 번 더 엉덩방아를 찧었다. 회색 페가수스는 여전히 딩키를 안아 올리고 있었고, 득의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재잘거렸다. "스파클 양이 네가 좋아할 만한 책이라며 책을 한 권 주지 뭐니!"

 

"정말요?"

 

"그렇단다! 마음껏 읽으렴!" 페가수스는 한 꾸러미의 건초 위에 딩키를 앉혔고, 옆구리에 차고 있던 가죽 우편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녀가 꺼내든 것은 가죽 장정이 된 아주 두꺼운 책이었다. 책은 거꾸로 뒤집어져 있었다. "짜잔! 우리 귀염둥이 머핀, 책이 온통 별투성이네!"

 

"엄마도 참." 딩키는 웃으며 눈을 굴렸다. 아이는 앉아 있던 자리에 등을 대고 누웠고,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 금발 갈기가 흔들렸다. 책 제목을 읽는 아이의 눈은 즐거운 듯 반짝이고 있었다. "우와! '청소년을 위한 천문학 개론' 이네요!"

 

"스, 스, 스, 스파클 양이 그러는데, 너희 또래가 읽을 만한 책은 아니라고 하더구나! 좀 더 크고, 좀 저 많이 배운 아이들이 읽도록 쓴 책이래! 그 뭐냐...... 주, 주, 주, 주... 주, 주, 주, 주, 주... 그... 주......"

 

"'중급반'이에요, 엄마." 딩키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완전 좋아요! 천체(Heavenly body)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고 싶었는데. 고마워요."

"너도 천재잖니, 우리 머핀!" 더피의 두 눈이 지그시 감겼고, 아직도 거꾸로 들고 있는 책 뒤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히히히...... 엄마 농담 어때!"

 

원문은 Heavenly body. 딩키는 천체라는 뜻으로 꺼낸 말이지만 더피는 귀염둥이라는 뜻으로 꺼낸 말입니다. 대체할 만한 적절한 말장난이 있을까 고민하다 발음할 때 입 모양도 비슷하다 싶어서 천체-천재로 바꾸었습니다. 댓글로 피드백을 남겨 주시면 이후 개정할 때 수정하겠습니다.

 

"진짜 재밌어요! 히히히!" 딩키가 방긋 웃으며 누웠던 자리에서 재주를 넘듯 벌떡 일어났고, 엄마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정말 고마워요, 엄마. 곧 읽을게요."

 

플러터샤이가 다정하게 발굽을 뻗어주었고, 하모니는 발굽을 붙잡고 일어섰다. "아, 젠장. 저 둘, 만날 때마다 늘 다른 포니한테 뇌진탕을 선물로 주고 그러나요?"

 

"음......" 플러터샤이는 어린 회색 포니와 어른 회색 포니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그걸 뭐라고 부르시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정말로 소중한 일인걸요."

 

"플러터샤이, 소중한 것들이 참 많네요." 하모니는 네 발굽으로 균형을 잡으며 툴툴거렸다. "그 절반이 제 머리를 박살내 버릴 뻔 하지 않았나요?"

 

"엔젤은 제 강점과 약점이 섞여서 만들어진 산물이에요." 플러터샤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이내 두 포니를 향해 발짓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에요. 그냥 방관자일 뿐이죠."

 

"잠깐만요......" 하모니가 놀라며 말했다. 그녀의 호박색 눈은 가늘어지며 딩키의 뿔을 향했고, 이내 더피 후브즈의 날개로, 아무것도 없는 이마로, 다시 딩키의 뿔로 움직였다. "저기, 혹시 딩키가 저 분을 '엄마'라고 불렀나요? 제 말은, 딱 지금처럼 예전에도 그랬냐는 말이에요."

"으음...... 네. 엄마라고 불러요."

 

하모니의 두 눈이 우편배달부 포니의 눈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돌아갔다. "제 머릿속 무언가가 방금 망가진 것 같은데요."

 

"어머, 정말이세요? 레드하트 간호사님을 불러 드릴까요?"

 

"농담이에요, 플러터샤이. 그건 그렇고, 저 둘 아직 있어요. 알죠?"

 

"플러터샤이, 딩키를 도, 도, 도, 도, 돌봐 줘서 정말 고마워요." 우편배달부가 천천히 다가왔다. 조그마한 망아지가 그녀의 등 위에 앉아 있었고, 아이는 벌써 천문학 책을 펼쳐 들고 열심히 읽고 있었다.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아이의 커다래진 호박색 눈은 책장 위에서 까닥이는 머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도통 마음이 놓이질 않아요. 이 아이의 소... 소... 소... 뭐더라... 그걸 모르면 정말 불안해요."

 

"'소재'에요, 엄마. '행방'이라고도 하죠."

 

"그래. 그거 말이야. 히히히... 다른 포니들이 다들 당신처럼 친절했으면 정말 좋겠어요."

 

플러터샤이가 빙긋 웃었다. 더피의 왔다 갔다 하는 두 눈동자 사이에 웃음이 번져 가는 플러터샤이의 얼굴이 놓였다. "더피, 친절함은 돌고 도는 거랍니다. 딩키는 그 선순환에 들기를 좋아하고요. 그 누구를 돌봐 주더라도 딩키만큼 좋은 아이를 만나긴 어려울 거에요."

 

"잠깐만요." 하모니가 떨리는 발굽을 들어 더피를 가리켰다. "이 분이 더피라고요? 포니빌 우편배달부로 일하고 계신 그 분이라고요?"

 

"제 이야기를 들으신 적 있나요?" 더피의 눈은 하모니 주변의 천장과 방바닥에 웃어 보이고 있었다.

 

시간여행자는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저...... 저기...... 치어릴리 선생님께서 재직하고 계신 학교에 구멍을 몇 번 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어... 음... 에헤헤......" 더피는 금발 갈기 덮인 고개를 푹 숙이더니 부끄러운 듯 발굽으로 건초 덮인 바닥을 팠다. "그랬죠. 그 일이라면 정말 미안해 죽겠어요. 혹시 캔틀롯 대법원 쪽에서 인정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실을 메워 드리려고 몇 년 동안 열심히 사회봉사를 했답니다."

 

하모니는 건조하게 웃으며 무어라 몇 마디 말을 하려고 했고, 시간여행자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나아가던 길에 플러터샤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끼어들어 그 길을 막았다. "더피, 당신이 그 동안 해 오신 봉사활동에 대해서라면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거에요." 노란 페가수스는 분홍 갈기 너머로 보이는 하모니의 시선을 향해 눈길을 잠깐 보내며 말을 이었다. "특히, 오랫동안 학교 건물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오셨으니 더욱 그렇죠."

 

하모니가 한쪽 눈썹을 치켰다. 그녀는 플러터샤이를 한 번 보고는 다시 한 번 더 딩키와 더피를 바라보았다. 회색 솜털과 노란 눈동자가 똑같이 닮았다. 그 둘은 완벽하게 다른 몸이었으나 그 둘은 거의 차이가 없어서 한 몸이었다. 어린 유니콘의 뿔과 어른 페가수스의 날개가 달랐고, 아이의 두 눈과 우편배달부의 두 눈이 달랐음에도.

 

"우리가 살면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계속 배우면서 똑똑해지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니, 우리 귀염둥이 머핀?"

 

"엄마, 이 책에 따르면......" 딩키는 벌써 책 한가운데에 적힌 글을 인용하려던 참이었다. "포니모니움이 바로 달 속의 암말 모양을 만든 어두운 그림자를 만든 원인이래요. 수백 년 전에 월석을 이용한 금지된 마법, 룬 조각술을 이용해 요새를 세우는 통에 그렇게 된 거래요!"

 

"히히히..." 더피의 회색 뺨은 그녀가 딩키를 바라봤다가 뒤를 돌아보고, 플러터샤이 주변을 바라봄과 동시에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내가 자라고만 안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다 읽을 거에요."

 

"후브즈 어머니, 제가 전에도 그랬지만......" 플러터샤이가 빙긋 웃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더욱 건강해지고, 돈도 잘 벌리고, 더 똑똑해지죠!" 더피가 환하게 웃었다. "제가 벤자민 프랭크리스를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프랭클린이에요, 엄마."

 

"히히히...... 또 시작이네요! 플러터샤이, 내일도 같은 시간에 오면 되나요?"

 

"물론이죠, 후브즈 어머님."

 

"방해가 안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친구분이랑 같이 계신 것 같던데......"

 

"괜찮아요. 저희 일은 밤 동안 하면 되니까요." 플러터샤이가 웃어 보였다. "어머님, 이 사랑스런 따님을 돌보는 일인데, 바쁠 리가 있나요."

하모니는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 그녀는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억누른 채 무어라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플러터샤이의 분홍 꼬리가 여전히 말길을 막고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더피가 몸을 돌렸고, 아이를 향해 비스듬히 눈을 찡긋해 보였다. "좋아, 머핀! 이제 집에 가, 가, 가, 가, 가자. 플러터샤이 언니한테 인사해야지!"

 

"안녕, 플러터샤이! 오늘 돌봐 줘서 고마웠어요!"

 

"잘 가렴, 딩키." 플러터샤이가 총총히 걸어가 뿔 난 망아지에게 얼굴을 비벼주었다. "세상을 친절히 대하렴. 그러면 세상도 널 친절히 대할 거야."

 

"약속할게요!"

 

"자리로 들어가렴, 머핀!"

 

망아지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훌쩍 뛰어 더피 후브즈의 우편 가방 맨 왼쪽 주머니에 쏙 들어갔다. 아이는 다른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헬멧 하나를 꺼내더니 머리에 쓰고 턱끈을 조였다. 헬멧 위쪽에 뚫어 둔 구멍으로 아이의 자그마한 뿔이 볼록 튀어나왔다. 아이는 열린 주머니를 단단히 조여 몸을 고정시켰고, 작은 발굽으로 엄마의 옆구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이륙 준비 완료!"

 

"여, 여, 여기는 조종사. 항해사, 항로를 요청합니다!"

 

"알겠습니다!"

 

"고도 상승. 고도를 더욱 높이겠습니다. 우앗! 흠흠, 천장 씨, 안녕하세요. 가자! 우후!" 더피는 옆구리에 헬멧 쓴 망아지를 태우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히히히! 잘 있어요!"

 

"안녕히 가세요, 후브즈 어머님!"

 

"좋은 저녁 보내세요, 플러터샤이. 다람쥐 아저씨도요!"

 

둘이 떠난 빈자리에 남은 것은 아직도 둥근 잔물결을 그리는 공허함이었다. 하모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휘청거리며 일어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아득한 동쪽으로 날아가는 두 포니의 회색 그림자와...... 그 너머의 다채로운 포니빌의 그림자를 향해...... 그녀의 두 눈은 가늘어졌다.

 

"저 둘이 다른 다람쥐한테 부딪히지 않고 멀쩡하게 집으로 갈 수 있을까요?"

 

"딩키가 옆에 타고 있으면 최대한 조심해서 비행하시니, 괜찮을 거에요."

 

하모니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럼 대체 왜 저한테는 맛이 간 채로 달려든 걸까요?"

 

"그건 중요한 내용이 아닌 것 같네요." 플러터샤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회색 페가수스가 넘어뜨린 귀리 자루를 똑바로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귀리는 쏟아져 있었다. "제 생각으로는, 그 어떤 비행사에게도 모성애만큼 훌륭한 계기판이 되어 주는 건 없을 거에요."

 

"헤헤, 뭐 그렇다면야 그렇겠죠." 마지막 포니의 눈앞에 순간 하모니 호의 외로운 계기판이 깜박였다 사라졌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고, 지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딩키 말인데, 몇 살 때 입양된 건가요?"

 

"아, 딩키는 입양아가 아니에요."

 

하모니의 시선은 단단한 돌처럼 굳어졌다. 그녀의 눈꺼풀은 무기력하게 한 번, 두 번 깜박였다. "아니였어요?"

 

"네, 아니에요." 플러터샤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친어머니고, 친딸이 맞아요."

 

"하지만......" 하모니의 시선은 다시 가늘어지며 동쪽을 향했다. "페가수스가...... 그, 유니콘을 낳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뭐, 어쩌면 꽤나 희한한 일이기도 하죠." 플러터샤이가 마지막 귀리 자루를 일으켜 세웠다. 자루들은 탑처럼 단정하게 층층이 쌓여 있었다. "생명에 불가능이란 없답니다. 딩키처럼 소중한 생명을 빚어낼 때면 더욱 그렇죠."

 

"아하, 알겠어요." 하모니가 무관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반쪽 날개밖에 없으니."

 

재앙이 다시 한 번 닥쳐왔다. 아니면 마지막 포니만의 생각일 수도 있었다. 세계가 터져 나가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기로 폭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단단히 화가 난 플러터샤이의 새빨갛게 상기된 채 잔뜩 찌푸려진 얼굴 앞에서 떨고 있었다. 플러터샤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죠? 딩키 후브즈는 그런 인정머리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말은 갖다 붙일 수도 없을 만큼 착한 아이라고요! 좀 부끄러운 줄 아세요. 어떻게 왕실비서관이란 분이 그런 안 좋은 말을 함부로 하는 거냐고요!"

 

하모니는 엔트로파 공주의 몸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언제라도 온몸이 바스러져 녹색 불꽃에 녹아 들어갈 수도 있었다. 플러터샤이의 당연한 분노는 눈에 담겨 그녀를 노려보았고, 그 아래 놓인 몸은 비틀거렸으며 그 안에 고인 영혼은 고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 위로 떨어지는 노여운 숨 한 줄기 한 줄기는 뜨겁게 달군 석탄 조각이었고, 부드럽게 반짝이던 금빛 솜털은 신의 분노를 담아 내리는 뜨거운 유황비로 변해 버렸다.

 

"죄, 죄, 죄송해요, 프, 플러터샤이!" 황동색 페가수스는 창백하게 질렸고, 아이처럼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다 나무 기둥에 기대었다. 마른침이 삼켜졌고, 말은 겨우겨우 떨어졌다. "아, 안 좋은 뜻은 전혀 없었어요! 제가 자랐던 곳에서는......" 그녀는 꺼낸 말이 품은 회색의 진창에 질려 잠시 말을 쉬었고, 곧 풀이 잔뜩 죽어서는 미안한 듯 말을 이었다. "망아지들을 보고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해서......"

 

"바로 그런 식으로 포니들을 모욕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 주변의 포니들이 그런 식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게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해도 된다는 근거가 되어 주지도 않는다고요! 남들이 다 한다고 해도 나쁜 건 나쁜 거에요! 전혀 친절한 말이 아니라고요!" 플러터샤이가 콧김을 뿜었다. 그녀의 숨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으나 또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기도 했다. 분홍 갈기는 잔뜩 화가 난 입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김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잔인함은 오랫동안 포니 사회를 좀먹어 왔어요. 아니, 악성종양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네요. 그게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왕실비서관에게까지 뻗치다니, 정말 끔찍해요." 플러터샤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억누르며 부드러운 머리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딩키는 보물 같은 아이에요. 갈기부터 발굽까지, 온 생명에 대한 경의와 기쁨으로 가득 찬 천재 어린이죠. 딩키 어머님은 가는 곳마다 행복을 뿌리고 다니는 천사 같은 분이시죠. 또 언제나 딩키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라고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하모니를 쳐다보았다. 좀 전에 얼굴을 구기던 분노는 이제 슬픔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피가 마음을 채우는 사랑보다 더 중한 건가요?"

 

"플러터샤이, 전 절대로 그 둘이 특별한 포니가 아니라고 말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전 그저... 저, 저기......" 하모니의 무감각한 몸 안의 스쿠틀루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는 갑자기 우울해져서 고개를 늘어뜨렸고, 몸은 여전히 나무기둥에 기대고 있었다. "그 어떤 뜻도 없었어요. 그래도 그 둘이 제가 한 말을 들었다면 분명 상처를 입혔겠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음을 아프게 했겠죠."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잠시 열려 뜨였다. 건초 줄기와 톱밥 너머에서 마지막 포니가 본 것은 황무지, 시체 널린 황무지였다. 덜 상해서 아직 쓸만한 뿔들과 털어먹을 만한 시신들...... 그 중 누구라도 살아남은 자의 굳어진 분노와 슬픔을 들어 줄 수 없었다. 미래는 재투성이일 뿐, *한 쌍의 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은 이들은 자리를 비켜주었고, 그 자리는 따뜻한 미래가 채워주었다. 플러터샤이의 푸른 눈동자가 채워주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제가 생각이 없었어요. 부디... 부디 용서해 주세요."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말, "그에게 있어 친구란 한 쌍의 귀를 의미한다."

 

플러터샤이가 깊고 긴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불현듯 솟아난 힘으로 하모니를 콕콕 찔렀다. 놀란 페가수스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노란 페가수스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지막 포니의 기억 속, 부드러운 노랫소리와 닮았다. "반쪽 날개밖에 없다는 말은 아무것도 모르고 쓰신 말인 것 같네요. 하모니. 사과를 받아들일게요. 어떤 말씀을 잘못하신 건지, 아실 거라고 믿어요."

 

"저... 전..." 하모니가 입술을 깨물었고, 그녀 앞에 선 플러터샤이의 희미한 모습 앞에 불현듯 드리운 아이 같은 그림자에 가두어졌다. 그녀는 그게 싫었다. 플러터샤이의 노기가 향하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피 흘리며 살아온 삶의 아주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그게 싫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고동하며 자기회의(自己懷疑, Self doubt)의 깊숙한 바닥에서 무언가를 건져내기 전까지, 그녀는 어떻게든 잘못을 보상하려고 필사적이었기에 플러터샤이가 남긴 교훈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 모욕은 생명이 생명을 사랑으로 돌보게 하지 않죠. 그 대신 서로를 멀어지게 할 뿐." 찰나의 생각은 칼끝이 되어 그녀의 영혼을 유린했다. 외로운 생존자로서 행했던 그 모든 행위들을. 그녀는 생명을 죽여 그 살점을 취했고 도둑질했다. 그랬기에 그 모든 행위는 지금 나누는 대화와 정반대인 이단적인 행위가 되어 그녀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기적이게도 자신의 죄를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어떤 근거 없는 믿음은 다른 포니의 참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바로 그것 때문에 딩키가 재택교육을 받은 거랍니다."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울했고, 단어 하나하나를 꺼낼 때마다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치어릴리가 딩키를 입학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던 게 아니랍니다. 오히려 딩키를 입학시켜 주려고 무진 애를 썼죠. 하지만 모두가 알았어요. 그 가엾은 어린아이는 또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지나가던 이들에게도 한 마디 비웃음을 들어 본 적 없으니까요. 그런 일이 닥칠 수도 있었고, 딩키는 그 모든 상황과 마주하기엔 너무 어렸어요. 그래서 더피가 개인지도 교사를 붙여 주기로 한 거에요. 치어릴리나 트와일라잇 스파클, 그 외에도 많은 포니빌 교육위원회 포니들이 딩키를 위한 교육과정을 짜 주었—"

 

"그래서 딩키를 돌봐 주는 데 시간을 할애해 주셨던 거군요." 하모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해가 좀 되는 것 같네요. 온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친절한 포니한테 연민의 짐을 죄다 넘겨 두고, 자기들은 아이를 냉대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연민이 아니에요." 플러터샤이의 눈빛이 순간 꾸짖듯 번쩍였다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사랑이죠. 단순한 연민으로 촉발되는 무언가가 아닌, 헌신에서 비롯된 그 무언가 말이에요. 요즘 우리 또래의 많은 포니들이 안 좋은 것에 눈이 멀어 바로 눈앞의 소중한 것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그렇군요......" 하모니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희미한 토의(吐意)를 느꼈다. 회색 미래가 조금 덜 회색으로 보였다. 그녀는 그 생각을 멀리 쫓아 버렸고, 이내 호기심에서 물었다. "혹시 누구라도... 혹시 누구라도 딩키 아버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분 계신가요?"

 

플러터샤이는 죽은 듯한 침묵을 지켰다.

 

하모니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시면 과연 뭐라고 하실까요?"

 

"편지를 쓰실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하모니.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기대를... 하지 말라뇨?"

 

"공주님께서는 위대한 여신이시죠." 플러터샤이의 눈이 잠깐 반짝 빛나며 말을 시작했다. "공주님께서 갖고 계신 그 힘은 제 1시대의 잊혀진 영광에 필적할 만한 힘이에요. 그 힘으로 태양을 띄우시는 거고요. 하지만, 단 한 분의 여신께서 온 세상에 드리운 무지의 구름을 모두 걷어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요. 단순한 공포가 아닌 우리, 당신과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해야만 하지요." 플러터샤이는 침울해진 숨을 내쉬었고, 하모니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 모든 일은 태양이 졌다가 다시 떠오르는 그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없는 일이에요. 하모니, 이제 가요. 염소자리를 찾아야죠. 어떻게 끝날지 우리 모두 아는 대화를 할 시간이 없어요."

 

마지막 포니는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목구멍에 무언가 응어리져 있었다. 심장은 갈수록 세차게 뛰었으나 더 이상 거기에 죄의식은 없었다. 이십오 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플러터샤이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는 여전히 놀라운 목소리였다. 세계가 폭발하며 파멸을 맞이하던 날은 그녀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달래는 훌쩍이는 울음소리처럼 느껴졌다. 지금 눈앞에서 저 연약한 날개를 조심스레 퍼덕이며 숲을 향해 날아가는 저 노란 페가수스보다 더욱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이는 없을 거였다.

 

스승을 따르는 제자처럼, 마지막 포니는 닳고 닳은 과거의 잘못을 뒤로 하고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두 페가수스의 눈앞에까지 뻗은 에버프리 숲은 제멋대로 자란 재앙의 생명들로 가득한 버려진 정원 같은 모습이었다. 이 자리까지 온갖 것들이 아무렇게나 자라나며 둥근 모습을 그렸고, 지금 그것들은 한데 모여 녹색 이파리로, 갈색 색조로, 구릿빛 덩굴로, 붉은 모래로 아름다운 모자이크화(畵)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여기는 녹슨 것처럼 부식했으나 썩지는 않았고, 오히려 캔틀롯과 클라우드데일에 세워져 있었으나 부서져 가치 잃은 대리석 조각들을 품어 장엄하기까지 했다.

 

"냄새를 맡는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조차 잊고 있었네." 하모니가 나직이 중얼거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흐릿해진 길 위에는 잡초가 자라 대지의 미궁 한가운데로 향하는 길을 인도하고 있었고, 그 위로는 에메랄드 빛의 잎새가 덮여 조용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지막 포니가 걸어가는 길 양쪽으로 우뚝 솟은 나무들이 섰고, 귀한 꽃들의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물을 주는 키 큰 보라색 드래곤과 마법 불꽃으로 빛을 밝히는 거울이 보일 듯도 싶었다. 가볍게 걸어가고 있음에도 저 아득한 앞에는 얼어붙은 가시덤불과 가시덩굴이 엉긴 철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데서 피트네 할망구가 살진 않겠지? 내가 그 할멈 찾으면 돌아가자마자 내 신발 벗어서 먹는다. 진짜."

 

하모니의 머릿속에 반짝 하고 현실이 다시 들어왔다. 검은 심연과 부서진 고글, 수십 개의 꾸물대는 그림자, 그리고 잔뜩 약이 오른 큰곰자리의 모습이 현실을 둘러싸고 들어왔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 순간의 떨림을 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그녀를 둘러싸고 약동하는 따뜻한 지금 이 순간을 잡기로 했다.

 

"좋~아요." 그녀는 두 앞발굽을 들어 탁 하고 내리쳐 박수를 치고 쓱쓱 비비며 말했다. "지금 우리의 최우선 과제, 염소자리 수색 말인데요. 이대로 숲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가서 시계 방향대로 돌면서 수색하는 건 어때요? 아, 물론 저번에 염소자리가 포착되었다던 북동쪽으로 가면서 말이에요. 그 다음, 우리는 둘이니까 분명 하나보다 이점이 있어요. 운만 조금 따라 준다면 말이죠. 하나는 그대로 땅 위에 있고, 나머지 하나가 하늘로 올라가는 거죠. 서로 시야가 다르니까, 둘 다 땅 위에 있을 때보다는 세 배 더 넓은 면적을 수색할 수 있을 거에요. 금방 그 녀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니까요! 플러터샤이, 제 생각이 어때요?"

 

죽은 듯한 침묵뿐이었다. 말 그대로의 죽은 듯한 침묵뿐.

 

하모니는 심장이 순간 멈추어 버린 줄 알았다. 그녀는 순간 이 따뜻한 세계가 한 줄기 녹색 화염에 휩싸여 사라질 거라고, 큰곰자리의 그 탐욕스러운 주둥이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프, 플러터샤이?!" 그녀는 헐떡이며 급히 온 사방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바위 뒤에서 튀어나온 분홍색 꼬리가 눈길에 닿았고, 그녀는 순간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눈썹 한쪽을 치키며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 돌덩이 한쪽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기요... 이봐요?"

 

"어마!" 쪼그리고 앉았던 페가수스가 깜짝 놀라 뛰어올랐다. 낮은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아... 네, 하모니."

 

"안녕하세요. 요즘 어때요? 저기, 오늘 염소자리를 찾으러 가기로 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음... 네."

 

"그리고...... 걔가 에버프리 숲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맞아요?"

 

"네......"

 

"또, 에버프리 숲이라면 바로 저기부터인 걸로 알고 있는데. 제 말이 맞죠?"

 

플러터샤이가 덜덜 떨리는 발굽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몸도 떨리고 있었다. "생각하기 싫어요!"

 

"하아......" 하모니가 발굽을 얼굴에 갖다 댔다. 순간 그녀의 어린 날의 기억 위를 스치고 날아가는 한 줄기, 작은 기억이 있었다. "지금 장난하시는 거 같은데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쉬었는데도 무지개빛깔이 묻어나고 있었다.

 

"네? 잘 못 들었어요."

 

"플러터샤이, 지금 저랑 장난하고 계시냐고요! 에버프리 숲 바로 근처에서 사시잖아요.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명을 받들려고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 안으로 못 들어가겠다고요?"

 

"아... 몇 번... 들어가 본 적 있어요." 플러터샤이가 초조한 듯 웃으며 말했고, 이내 더욱 떨기 시작했다. 눈 앞에 벽처럼 선 숲에 푸른 눈동자를 갖다 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거의 친구들이랑 같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잠깐만 있어 봐요!" 하모니가 몸을 기울여 플러터샤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부서장인지 뭔지 하는 할망구가 시켜서 에버프리 숲을 조사하러 다닌다고, 그 할망구가 그러지 않았어요?"

 

"정말로 다녀왔어요!"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죄책감을 느낄 차례였는지,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시선을 돌렸다. "일단은."

 

"그 '일단은' 이란 말은 무슨 뜻이죠?"

 

"음, 저... 저기...... 숲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몇 군데 얼굴만 살짝 넣어 보곤 해요. 염소자리를 부르려고도 몇 번 해 봤어요. 아, 물론 그 아이는 제가 한 말을 들었을 거에요. 저기, 염소자리는 아주 민감한 청각을 갖고 있거—"

 

"하아...... 플러터샤이, 플러터샤이, 플러터샤이." 하모니가 엉덩방아를 찧듯 앉으며 끙 소리를 냈다. "개가 숲 속으로 어디까지 뛰어가던가요?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어......"

 

"지금 제 질문은 말이죠, 개가 숲 '속' 어디까지 뛰어가냐고 묻는 거잖아요! 플러터샤이, 제가 잘못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그 일이 엄청 급하단 말이에요! 레드게일 부서장은 당신 머리를 산산이 부숴서 은 접시에 담아 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염소자리한테 갖다 주고도 남는다고요. 그런데, 그 찾기도 힘든 녀석을 '제대로' 찾으러 돌아다닌 적도 없다는 건가요?"

 

"저도 돌아다녀 봤어요! 제 방식대로......"

 

"플러터샤이, '당신 방식'은 동물들한테 먹이를 주러 돌아다닐 때나 쓸만한 방식이라고요. 그래요, 친구의 아이를 돌봐 주기에도 더없이 적절하죠. 또, 제가 천하의 바보 천치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는 데도 정말 쓸만했죠. 그래도 당신 오두막을 비우고 싶지 않으면 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봐야 한다고요. 당신 방식으로 좋은 일을 계속 해 나가고 싶으면 들어가야 한단 말이에요! 포니빌 최고 동물훈련사의 업무를 참관하면서 공주님께 올릴 보고서도 써야 하는데, 돌아다녀야 할 곳은 정작 못 돌아다니고 있으면 전 어떡해요?"

 

"전......" 플러터샤이가 몸을 떨며 슬픈 듯 낑낑거렸다. 돌 뒤에 쪼그린 페가수스의 몸은 더욱 둥글게 말렸다. "전 한 번도 멀리까지 가 본 적이 없어요. 하모니, 당신처럼 용감하지도 못하고요. 당신이 한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게 저인걸요."

 

"당신이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하모니가 플러터샤이의 옆에 무릎을 꿇으며 발굽을 포개고 앉았다. 애정 어린 부드러운 말이 흘러 나왔다. "플러터샤이, 파견 나오기 전에 추가 보고서를 한 부 더 읽었어요. 잔뜩 화난 맨티코어를 다스린데다 불 뿜는 드래곤을 잘 달래서 보냈죠. 거기에 미쳐 날뛰는 히드라한테서 도망쳐 나오기도 하셨고......" 플러터샤이가 자랑스러운 망아지는 깊은 숨을 한 번 마시고 엔트로파 공주의 입을 빌려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백해무익한 코카트리스를 제압하기도 하셨죠. 혼자서 큐티마크도 없는 망아지 여럿을 지키셨다고요."

 

플러터샤이의 입술은 충격에 벌어졌다. 그녀는 떨리는 푸른 눈동자를 들며 말했다. "어떻게 그걸 다 아세요?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라면 전에 얘기해 준 적 있지만, 걔 빼고는 아무도 모를 텐데."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궁전 벽이 얇다고 하셨......"

 

"그냥, 어떤 포니가 용감하고 숭고한 행동을 하면 소문이 더 빨리 퍼지기 마련이라고만 해 두죠." 하모니가 빙긋 웃었다. "그런 것처럼, 당신 친구들도 당신에게 용기를 주지 않았나요?"

 

"음... 제가 고소공포증을 이겨내는 데 핑키 파이가 많이 도와 줬어요."

 

황동색 페가수스는 그 말에 깜짝 놀랐고, 그녀의 눈은 플러터샤이의 접힌 날개 위에서 요동쳤다. "무슨 공포증이라고요?"

 

"걔가 그랬어요. 깡충 뛰고, 폴짝폴짝 뛴 다음에 훌쩍 뛰라고. 그러니까 극복이 되더라고요."

 

"지금 저기, 멍청한 숲은 어때요?" 하모니가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플러터샤이는 황동색 발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돌 뒤에 더욱 바짝 붙어 몸을 웅크렸다. 끼잉끼잉...... 끼잉끼잉......

 

하모니는 심호흡을 했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플러터샤이, 당신은 친절의 원소잖아요. 제가 한 말이 틀렸다고 잡아뗄 생각은 마세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친절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용기가 될 수 있어요. 특히......"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몸을 떨었다. 말이 이어져 완성되었다. "공포와 반신반의로 눈먼 세상에 살고 있을 때 그렇죠. 그 암흑 속에서 친절을 베푸는 것과, 무신경하기 짝이 없어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을 돌볼 때, 그 때 용기가 필요해요. 당신의 성품을 존중하세요. 죽기 직전의 염소자리를 구해냈다, 는 좀 더 큰 자랑거리가 되어 줄 자랑거리니까요."

 

"전... 전 못 해요......" 플러터샤이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녀는 숲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레드게일 부서장님이 절 가만두지 않으리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전 저 혼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하모니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는 어느 한낮에 내리던 빗줄기처럼 머리로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포니는 좀 더 가까이 가 페가수스의 부드러운 솜털에 얼굴을 비벼주었다. "말했잖아요. 당신이 친절을 가져간다면, 저는 용기를 가져갈게요. 그리고 어쩌면, 아, 그냥 가정이에요, 플러터샤이. 우리 둘 다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잘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당신한테서 무언가 배울 게 있을 거에요. 적어도 제가 그러려고만 한다면 말이에요. 허락해 주시겠어요?"

 

플러터샤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플러터샤이는 마른침을 삼켰고, 앙증맞은 두 날개는 순간 찾아온 희망에 이완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자, 그럼..." 하모니가 플러터샤이의 어깨를 붙잡고 일어났고, 덜덜 떠는 페가수스를 질질 끌고 걸어갔다. "그냥 간단해요. 깡충 뛰고, 폴짝 뛴 다음에 훌쩍 뛰면 돼요. 아, 눈 한번 찡긋해 주시는 걸 넣어도 좋겠네요." 그녀는 웃으며 말을 마쳤다.

 

"좋아... 좋아... 좋아... 할 수 있어..." 플러터샤이가 덜덜 떨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염소자리를 위해서야."

 

"막상 들어가고 나면 무언가 다른 주제로 얘기를 나눌 수도 있겠네요! 동물이라거나! 흠흠. 아니면근처의식물군이나동물군이이상하게바뀌었는데그걸이제서야알지도모르죠. 그리고 또, 잡담을 좀 더 할 수도 있겠네요. 아, 뭐라 그러지. 잘 빠진 미남이라거나! 뭐, 예를 들어서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어떤 미남을 얘기해 볼까요. 심성은 천사 같은데 몸은 완전 근육질인데다가 새빨간 솜털—"

 

"어마! 악마에요! 악마를 봤어요!"

 

"플러터샤이? 저기... 그냥 잡촌데요."

 

"오... 오. 음... 정말 그렇네요. 저기... 그 새빨간 솜털이 뭐가 어쨌는데요?"

 

"하아... 관두죠. 그냥 귀리 얘기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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