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터샤이의 오두막집 거실에는 벨벳처럼 매끄러운 질감의 소파가 놓여 있었고, 하모니는 가녀린 페가수스를 그 위에 내려주었다. 잠든 암말의 자기처럼 아름다운 입술 사이로 염소자리를 걱정하는 듯한 잠꼬대가 새어나왔다. 그녀는 몸을 거의 뒤척이지 않았다. 아마 근처에서 소닉 레인붐이 터져도 플러터샤이는 지금처럼 깊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 포니는 생각했다.
"키울 때 재우는 거 하나는 쉬웠을 것 같네." 하모니는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엔트로파 공주의 몸을 움직여 불면증 환자의 걸음걸이와 같은 걸음으로 두 이중창 옆에 놓여 있던 안락의자로 다가갔다. 그녀가 뻗은 발굽은 부드럽고 가볍게 창문의 판유리를 한 번 두드렸다. 끼익 하고 경첩이 우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활짝 열려 영원히 흐를 것만 같은 귀뚜라미의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방을 담뿍 적셨다. 보라색 밤하늘 너머에는 별이 총총히 떠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마지막 포니의 두 호박색 눈이 가늘어졌다. 씻어내듯 흘러 들어오는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고 얼마 있지 않아, 그녀는 무언가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이상한 느낌에 그녀의 몸이 벌집이 된 것 같았다. 이 정적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모르는 어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령 같은 한 무리의 시시한 소음이 그녀의 귀를 타고 깜박이고 있었다. 하모니는 곧장 고개를 홱 돌려 창문 너머의 수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잎사귀들이 반짝이며 춤추고 있었다. 그 위로는 그 날 오후에 찾아온 뇌우와 그 위로 펼쳐진 회색 하늘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숨과 함께 편안한 안락의자에 깔린 부드러운 천을 내려다보았다. 부서지며 안개로 화하는 빗방울은 저 너머에서 일렁이는 연무에 굽어지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한 쌍의 오렌지색 발굽들이 손장난을 하고 있었다.
하모니는 씁 하는 숨과 함께 뒤로 몇 걸음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 통에 플러터샤이가 자고 있던 의자에 가 부딪힐 뻔했다. 하모니는 검은 갈기를 톡 치며 두려운 눈으로 다시 한 번 창문을 바라보았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와 있었다. 빗물자국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두막집은 빽빽하게 늘어선 에버프리 숲의 나무들을 감시하는 외로운 감시대와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모든 것이 과거의 색으로 칠해진 곳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는 과거가 아니었지만... 또 동시에 과거이기도 했다.
"언니, 정신 좀 차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하모니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부엌 쪽을 향해 시선을 잠시 돌렸다. 그녀의 고막을 난도질하던 잊혀지지 않는 수천만 번의 캠프파이어 이야기의 무게 너머 양동이 하나와 대걸레 한 자루가 놓인 자리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여기 이 오두막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부드러운 침대보처럼 서로를 감싸 안으며 쌓여 가던 행복한 기억의 자리였다. 괴로이 몸서리치던 순간에도, 심장이 멎어 버릴 것 같은 순간에도, 하모니는 여기의 평화를 찾으려 비틀거리며 나아갔었다. 그건 부정할 여지 없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괴물들로 득시글거리는 에버프리 가시숲의 뼈를 깎는 추위와 공허보다도 더욱 차갑게 그녀를 찌르기도 했다.
가시투성이의 가죽을 입은 미래가 이 무의미한 몸부림이 끝나자마자 다시 녹색 불꽃을 타고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그녀는 그걸 지금의 몸부림보다 더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일부는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새빨갛게 반짝이던 사과나무를 다시 보고 싶어하고 있었다. 그곳은 그녀의 어린 기억들에 낯선 황홀함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여기, 따뜻하고 훈훈한 어머니의 품 같은 플러터샤이의 오두막에선 똑바로 서 있기조차 버거웠다. 그녀의 몸이 모를 이유로 다시 어려진 것처럼 말이다.
하모니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황동색 어깨를 바라보았다. 시간여행자는 엄청나게 망설이며 과거로 돌아온 이래 처음으로 나무 계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 오렌지색 그림자가 천천히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내려오며 플러터샤이가 자고 있는 부드러운 녹색 의자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지금 헛것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스쿠틀루는 그녀의 심장이 당장이라도 차가운 얼음으로 변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포니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몸이 떨렸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하면 마지막 생존자의 떨리는 영혼이 다시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아이러니한 생각이라도 한 것인지, 그녀는 다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 반짝반짝 빛나는 우주가 끝없는 황혼으로 변해 버릴 거라고 생각하려 애쓰고 있었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하모니가 중얼거렸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녀는 지금 자기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두 페가수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온 어떤 염소자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말을 마칠 준비를 하며 왜 저 천공의 생명체가 쓸데없이 드물 것인지, 셀래야 셀 수 없는 무한한 이유를 떠올리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죽었을지도 모르겠네." 그녀는 끙 하는 소리로 덧붙였다. "그랬다면 우주의 개미들이 몰려와 수백만 조각으로 찢어 자기들 굴로 가져갔겠지."
그녀는 한숨을 쉬며 안락의자 위에 무너지듯 앉아 지금 쓰고 있는 엔트로파 공주의 몸을 쉬게 하면서도 아까보다도 더욱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별들을 쏘아보았다. 혹시 에포나 여신이 별로 돌아가며 남긴 흔적은 진작에 미래의 이퀘스트리아, 그 재 덮인 지평선을 지나가는 것을 포기했는지 모른다고, 마지막 포니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포니가 지금까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났던 것은 이제 겨우 세 번하고도 반 번뿐이었고, 왠지 여덟 여신 중 여섯이 별로 떠나간 세상은 나머지 두 여신조차 죽어 버린 세상처럼 차갑고 퀴퀴했다.
"아마 그 염소자리가 에포나가 기르던 애완동물일지도 모르겠는걸." 투영된 영혼 안에 살아 있던 냉소적인 이가 조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어디를 가도 못 찾지."
한 무리의 죄책감이 하모니를 감쌌다. 그날 오후, 더피 후브즈와 딩키 후브즈가 떠나고 난 뒤, 플러터샤이의 엄청난 분노 앞에서 작아지고 또 작아지던 한 '캔틀롯 왕궁비서관'이 떠올랐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 죽음 같은 숨을 들이마시며 플러터샤이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오감은 잠자는 페가수스 옆에 루비처럼 새빨간 한 클라우드데일의 고위공무원이 음흉하게 웃으며 면도날처럼 날이 선 말의 군단을,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말의 군단을 보내 천사 같은 포니를 찌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이마다 빈정대는 목소리와 한숨이 끼어 있었다. 그 작자가 누구든지, 플러터샤이를 닦달하며 그녀를 단순한 고깃덩어리 하나로밖에 치부하지 않는 그 뻔뻔함을 보일 작자가 있을지 하모니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부서장이란 작자가 그렇게 염소자리를 찾고 싶어서 몸이 달았으면, 당장 하늘로 날아가서 걔를 데리고 내려왔어야—" 하모니는 혼자 중얼거리다 말고 눈을 멀뚱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별들을 향해 흥미롭다는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우리한테 허락된 별빛만 조금 있었더라면..." 그녀는 좀 전에 플러터샤이가 했던 말을 다시 중얼거렸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모방할 생각은 없었다. "별빛이라..." 마지막 포니는 황동색 이마를 북북 긁었다. 순간 그녀의 가슴 속에서 엄청난 환희가 치솟아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룬스톤을 조각하고, 월석을 가공하고, 화염을 단지에 봉인하던 방랑자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좋은 생각 하나가 꽃피듯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지!"
그녀는 뜬금없이 '수행'을 하러 가던 아이처럼 까르르 웃었다. 하모니는 어느 샌가 레드게일이 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잔뜩 신이 나서 방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마법석 두 개랑 망원경 하나만 있으면 충분해. 그런데 그걸 어디서 구한다? 여긴 플러터샤이네 집이지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나... 래리티네 집이 아닌데 말이야."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 그녀는 황동색 발굽을 들어 자기의 뺨에 가볍게 갖다 댔다. 그녀는 그냥 주변을 쳐다보고, 둘러보고, 살펴보기만 하고 있었고, 한때 파란색 테이블이 놓였던 자리에 대신 놓인 조그맣고 간소한 책상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고개를 멈추었다. "아하!"
하모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잽싸게 움직여 책상 쪽으로 걸어갔고, 곧 책상을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두꺼운 종이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두루마리와 편지봉투,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클라우드데일의 장식품이 들어 있었다.
"흠... 어디 보자... 보자... 보자..."
마지막 포니는 입안 가장자리를 혀로 쓸며 작업에 착수했다. 그녀는 둘둘 말려 있던 두꺼운 종이 두루마리를 펼쳤고, 입으로 펜을 쥐고는 써 단정한 필치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꽤 오래 전에, 하모니 호의 외로운 선실에서 혼자 글씨 연습을 한 게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이내 편지를 다 썼고, 편지는 아주 정중하고 적절하게 쓰여져 있었다. 그녀는 편지를 붙잡고 눈을 가늘게 뜨고 쭉 읽어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흠... 뭔가 빠진 것 같은데. 좀 뜬금없긴 하지만, 묘책이 필요하니 별 수 있나."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밝게 반짝였다. 그녀는 옆구리에 그려진 큐티마크를 슬쩍 바라보았고, 이내 그녀의 발굽 하나를 들여다보았다. "좀 멍청해 보이긴 해도, 효과는 확실할 거야."
그녀는 싱긋 웃으며 방금 쓴 편지를 한쪽으로 밀쳐놓았고, 고개를 돌려 잠든 플러터샤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내 책상 뚜껑을 조용히 내려 닫았다. 그와 동시에, 잔뜩 찌푸린 흰 얼굴과 쫑긋 선 귀가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
하모니는 너무 놀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그녀는 눈썹을 치키며 영 못마땅해하는 토끼를 향해 슬며시 웃어 보였다. "봐봐, 난 도둑질하려고 한 게 아니야. 좋은 뜻에서 하려고 한 거라고. 또, 플러터샤이가 종이가 더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좀 더 사다 줄 수 있다니까... 음... 어, 어떻게든 말이야."
하얀 토끼가 팔짱을 꼈다. 토끼의 얼굴은 더욱 찌푸려지고 구겨지고 있었다.
"오, 너 그러니까 무슨 성인군자 같다." 하모니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녀는 잉크를 적셔 둔 종잇장과 써 둔 편지를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나중에 네 뼛가루를 찾으면, 스파이크한테 가져다 줄 거야. 그걸로 재채기나 해서 콧물이나 좀 빼라고 말이지."
엔젤은 오만불손한 태도로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페가수스를 향해 위협하듯 왼팔을 슬쩍 들어 보였다.
"그래... 어... 네가 나한테 하려는 그 짓을 하려면 다리가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가 달려야 할걸. 그럼 가 봐, 털뭉치 씨." 하모니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며 한쪽 발굽을 잉크 먹인 종잇장 위에 가볍에 올려놓았다. 그 다음,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잉크 묻은 발굽을 편지 맨 아래쪽에 가져가 눌렀다. 발굽이 부드럽게 눌린 자리에는 희미한 원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기품 있게 다시 펜을 물고는 원 한가운데에 선명한 '무한대' 기호를 새겨 넣었다. 그녀는 만족스럽게 씩 웃으며 발굽 도장 주변에 '왕족 같은' 구불구불한 선을 몇 개 그려 편지를 완성했다.
"어머, 이건 저, 저, 저, 저, 정말로 왕실 봉인이랑 똑같아 보이는데요!" 더피 후브즈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녀의 두 노란 눈동자는 눈앞에 붙잡고 있는 편지에서 아주 멀찍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모니가 투덜거리듯 입을 열었다. 지금은 아침이었다. 태양이 빛나는 아침이었다. 그녀는 우편배달부가 붙잡고 있던 편지를 낚아채듯 다시 가져갔다. "진짜 왕실 봉인이니까 당연하죠, 후브즈 씨!" 그녀는 플러터샤이의 오두막집, 잔디 깔린 앞마당에 서서 이슬을 맞으며 떠오르는 태양 아래 서 있었다. "지금 즉시 이 편지를 배달해 주셔야겠어요. 캔틀롯 왕궁 일이에요.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캔틀롯 왕궁에서 포니빌 주택가 잡화상에 편지를 보내려고 한다는 건가요?" 사시 페가수스는 슬쩍 웃더니 다시 하모니가 쥐고 있던 두루마리를 낚아채듯 가져갔고, 지금까지 배달했던 편지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손놀림으로 뒤죽박죽인 편지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뭐, 제가 뭐라고 공주님 직속 비서관한테 그런 걸 묻겠어요?"
"정말요?" 하모니의 호박색 눈동자는 가짜 웃음 위에서 터지듯 번쩍이고 있었다.
"전 당신이랑 플러터샤이가 여, 여, 여, 염산자리를 찾은 줄 알았는데요."
"염소자리에요, 후브즈. 그리고, 아직 못 찾았어요." 하모니가 황동색 발굽으로 손짓하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이 편지를 통해 요청한 물건들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포니빌에서 플러터샤이가 잘 사는 걸 바라고, 또 최고 동물 훈련사로서 재직하게 해 주고 싶다면, 최대한 빨리 제가 요청한 물건들을 가져다 주셨으면 하는데요."
"나한테 맡겨요!" 더피는 뒤뚱거리며 뒷다리로 일어섰고, 거수경례를 붙이려는지 한쪽 발굽을 들어올렸다. 경례는 그녀의 이마에서 오십 센티미터는 되는 곳에 붙여졌다. "플러터샤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에요! 저 때문에 플러터샤이가 실업자가 되면 딩키는 영원토록 절 미워할 테니까요!"
"서로 눈을 보고 이야기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하모니가 짓던 웃음은 갑자기 구겨지는 얼굴 때문에 사라졌고, 그녀의 얼굴은 말 그대로 부서진 기차의 잔해를 보는 것 같았다. "음... 어... 제가 무슨 말 하려고 했는지 아시리라 믿어요."
"잘 모르겠는걸요!" 더피가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행운을 빌어요, 다람쥐 아저씨!" 그녀는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고, 그 모습은 흐려져 가는 회색 얼룩처럼 보였다.
하모니는 눈을 깜박였다.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오두막의 창문 위로 비치는 그녀가 보였고, 그녀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비춰 보려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호박색 줄 그어진 꼬리를 한 번 휙 휘둘렀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호박색 눈동자를 굴렸고, 그 일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가볍게 걷는 정도의 속도로 오두막집의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고, 순간 부엌 한쪽에서 끓고 있는 채소 수프의 기분 좋은 향기에 비틀거렸다.
"혹시 제가 도와 드릴 거라도 있나요, 플러터샤이?" 딩키의 목소리가 오두막을 가로질러 들려왔다. 아이의 자그마한 몸보다 두 배는 더 큰 천문학 서적 위로 아이의 뿔 돋은 머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어머, 괜찮아!"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근처의 문틀 너머로 울리며 들려왔다. "부엌이 워낙 너저분해서 말이야!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우리 집 부엌에 들이고 싶지 않아!"
"꼬마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건 없어." 하모니가 악마 같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플러터샤이는 그냥 만들던 컵케익 반죽에 뭐가 들어가는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뿐이니까 말이야." 그녀는 잔뜩 과장된 손짓으로 두 발굽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구겨 괴물처럼 만들었고, 어린아이를 내려다보며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아니면 누가 들어가는지 말이야!"
딩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노란 눈을 들어 황동색 페가수스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언니 농담, 별로 재미없어요."
"그래, 뭐, 난 비서관이지 시인이 아니니까 말이야."
"하모니 언니, 혹시 농담을 더 하시려는 건가요, 아니면 좀 더 진지하게 말씀하시고 있는 건가요?"
"그렇기도 하고, 안 그렇기도 하지. 둘 다 말이야." 하모니는 다시 부엌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 어찌 됐든, 후브즈 씨가 출발했으니... 날아가시다가 중간에 새 둥지에 몇 번 부딪힐 것 같은데 말이지, 은 조각 스무 개 어때?"
"은 조각이라고요?" 딩키가 깜짝 놀라 시간여행자를 바라보며 외쳤다. "캔틀롯 포니들이 오우거톤의 경제 체제에도 익숙한 줄은 전혀 몰랐어요!"
시간여행자는 걸어가다가 문득 움찔하더니 대답했다. "어... 그래, 좋아. 너희 어머니를 두고 내기하진 않으마, 꼬마야. 그건 분명 엄청난 모욕일 테니까 말이야."
"아, 이걸 말씀드려야겠네요. 우리 엄마는 하나라도 새 둥지를 건드릴 일이 없을 정도로 높이 날아다녀요."
"아, 그래? 대체 언제부터?"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 중에, 이퀘스트리아 토착 매가 있어요. 어느 여름날이던가, 그 어린 매 다섯 마리가 엄마 이마에 상처를 심하게 냈었어요. 그래서 휴가를 내고 집에만 있어야 했었죠. 저희 집안 포니들은 대대로 이 갈기를 물려받는데, 그게 매가 보기에는 잡아먹을 새의 꼬리깃털로밖에 보이지 않거든요."
"네 갈기가 늘 바람에 날린 것 같은 이유가 이제 좀 이해가 될 것 같구나, 꼬마야." 하모니가 눈을 찡긋했다. "시속 사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다니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이퀘스트리아 토착 매들이 일 년에 고기를 얼마나 먹는지 아세요? 조사에 따르면, 일 년 동안 먹는 고기 무게만으로 따지면 들소 떼 하나에 육박한다고 하네요."
"달리 할 말 없는데."
"매의 위장 길이가 얼마나 긴지 말해 드릴게요. 사실, 열 마리만 잡아다가 위장을 꺼내 하나하나 연결하면 스탈리온그라드의 거대한 벽을 한 바퀴 두를 수 있다고 해요."
"내가 달리 할 말이 없다고 했니, 안 했니?"
플러터샤이가 부엌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앙증맞은 노란 머리 위에는 연기 나는 수프를 담은 그릇 몇 개가 쟁반에 올려져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브런치 준비됐어요! 아... 음... 저기... 토마토 수프가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다행이네요. 이제 이 꼬마 입에 통계 자료들 말고 다른 걸 물려 줄 시간이 된 것 같군요."
"플러터샤이 언니, 정말 고마워요." 딩키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냄새가 정말 좋아요."
"그러니? 나 스스로도 정말 자랑스럽구나. 어머, 너무 뽐내는 것 같다는 건 나도 알지만... 어쩔 수 없는걸. 왠지 모르게 오늘 아침에는 정말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야."
"헤헤..." 하모니는 방 구석에 앉아 있던 복슬복슬한 흰 털뭉치를 향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런지 정말 궁금한데요?" 그녀의 머리에 소파 쿠션이 날아와 부딪혀서 그녀의 머리가 흔들렸다. 그녀는 순간 얼굴을 잔뜩 찌푸려 보였다. 몇 마디 말보다는 그게 훨씬 나으리라.
"딩키, 저번에 엄마가 가져다 준 새 책은 재미있게 잘 읽고 있니?" 플러터샤이가 거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쟁반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그거 벌써 다 읽었어요."
하모니와 플러터샤이는 동시에 깜짝 놀랐다.
"정말이니?" 플러터샤이가 조그마한 유니콘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그거... 음... 그거 정말..."
"희한한 일이라고요?" 하모니가 플러터샤이의 말을 낚아채 끝냈다. 분홍색 꼬리가 조용히 있으라는 듯 하모니의 황동색 얼굴 앞에서 흔들렸다.
"너희 나이 또래의 아이가 그 정도의 분량을 이 정도의 시간 안에 독파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이례적인 일이란다." 플러터샤이가 다정하게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책을 보고 새로 배운 게 있다면 몇 가지 이야기해 주지 않겠니?"
시간여행자는 투덜거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딩키를 향해 가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에 나와 있던 것들 전부 다 스파클 언니가 알려 줬던 거 아니면 도서관에 있던 천문학 관련 장서들을 읽으면서 익힌 거였어요. 혹시 콘수스의 비극적인 끝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어머나, 그 옛날 이야기라면 다들 한 번쯤은 들어 보지 않았니, 딩키. 좋든 싫든, 현재의 포니 사회를 만들어 낸 사건 아니니."
"음, '청소년을 위한 천문학 개론'에 따르면, 지금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별자리들은 모두 에포나가 별로 돌아갈 때 만들어진 거라고 해요. 이별 직후 곧장 하늘로 날아 돌아갔을 때 말이에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이 세상에 처음으로 찾아온 죽음은 바로 콘수스의 죽음이었어. 그 때의 생명은 바로 그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으로 영원히 바뀌어 버렸단다. 그 위대한 여신조차도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어. 에포나의 슬픔은 너무나도 큰 것이어서, 더 이상 그분의 눈물로 젖을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단다. 그분은 모든 생명들이 자신의 눈물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을 걱정하셨고, 그래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거야. 에포나의 눈물은 우주의 먼지로 변해 흩어졌고, 그 먼지가 모여 밤에 반짝이는 별이 되었단다."
"여섯 알리콘 자매들을 버려두고 가 버리는 거라는 걸 몰랐던 걸까요?"
"다섯이란다."
"네에?"
"에포나께서 별로 올라가실 때, 그분 슬하에는 다섯 자매밖에 없었단다, 딩키. 그리고 그때부터 수많은 학자 포니들이 네가 방금 한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이퀘스트리아 문명사를 샅샅이 찾아보았단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콘수스와 에포나 사이에서 난 자매들은 콘수스가 죽음을 맞이할 때 벌써 백 살도 넘어 있었단다. 위대한 여신은 자신의 어린 딸들에게 창조의 무거운 짐을 내버려두고 가 버린 게 아니야. 다섯 알리콘 자매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잘 가르쳤고, 아이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 콘수스의 죽음은 그 자체로 비극적인 것이었지만 그 때문에 다섯 자매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 거였단다. 그래서 그 직후 발발한 혼돈 전쟁에서 조화의 원소를 만드는 등의 대비책을 세워 놓을 수 있었던 거야."
"플러터샤이 언니, 그게 언니가 믿는 사실인가요?" 딩키는 수프를 담은 접시를 향해 발을 질질 끌며 걸어오며 물었다. 아이는 토마토 수프의 깊은 향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정말로 그 슬픔 때문에 에포나가 이퀘스트리아를 떠난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에포나가 아주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단다." 플러터샤이가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몸으로 걸터앉았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방에 감도는 온기에 나직한 목소리가 섞였다.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한 법이지. 설령 어머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으시더라도 말이야. 에포나는 자신의 딸들을 사랑했어. 그래서 자기가 이 땅에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어하지 않았단다. 에포나는 콘수스의 영혼이 산산이 부서지던 것처럼 자신의 영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단다. 그래서 에포나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위해, 이 땅을 떠나 하늘로 올라간 거야. 어머니들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포기하실 수 있으신 분들이야. 에포나의 그 고결한 헌신의 마음은 세상을 빚어낸 여신의 위대한 정신으로, 지금까지 우리 포니들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단다."
딩키는 새빨간 수프를 한 입 홀짝여 먹었다. 아이는 수프가 맛있었는지 콧노래 비슷한 것을 흥얼거리며 '캔틀롯 왕궁비서관'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모니 언니는 어때요? 지금 저희가 이야기하던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모니는 순간 깜짝 놀라 외로운 생각의 거품을 내뱉듯이 대답했다. "음... 에헤헤... 솔직히, 꼬마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잖냐."
"부탁드릴게요, 하모니. 여기, 영리한 더피네 딸에게 있어서도, 저에게 그런 것처럼 당신은 귀한 손님이랍니다." 플러터샤이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말했다. "당신의 견해 역시 저희의 생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랍니다. 들려 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정말이지... 흠흠... 다, 달리 좀 전의 대화에 덧붙일 말은 없는걸요. 쓸데없는 거라면 모를까."
"그런 건 괜찮아요, 하모니 언니." 딩키가 알 것 같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웃음은 왠지 오싹했다. "요즘에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포니들도 많으니까요. 캔틀롯에서 왕궁비서관으로 일하시는 분이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불가지론(Agnosticism, 不可知論): 몇몇 명제(주로 신과 엮인다)들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철학적 관점이나 절대적인 진실(사물의 본질)은 알 수 없다(인간이 인식할 수 없다)는 관점을 취한다. 즉, 절대적인 진실은 부정확하다는 관점을 취한다. 이는 절대적이며 완전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교조주의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뭐라고—?" 하모니는 더피의 눈과 비슷한 눈을 하며 깜짝 놀랐다. "이런, 아냐! 난... 꼬마야, 혹시 이퀘스트리아 에너지 공사에 네 뿔을 발전기 대용으로 빌려 주는 건 어떠니? 네 뿔 하나만 갖고도 메인해튼에 한 달 동안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딩키, 대화의 초점은 그게 아니잖니." 플러터샤이가 점잖게 아이를 꾸짖으며 말했다. "모든 포니가 창조와 붕괴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 본 건 아니잖니. 그러니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불편할 수 있단다."
"그건 그런 게... 그냥..." 하모니는 혀가 꼬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한숨을 폭 내쉬더니 이내 엔트로파의 몸으로 쪼그리고 앉아 무심히 수프 그릇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영원할 것 같았다. 무관심의 회색 연무가 그녀의 황동 몸뚱이를 씻어내듯 감쌌고, 그녀는 피처럼 새빨간 수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끝없는 혼돈과 파괴의 미래가 그 위에 비춰지고 있었다.
"내 생각은 이래. 모든 것은 끝이 있는 법이야. 세상이 만들어지고,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하기 전부터 그랬어. 에포나와 콘수스도 그 둘의 만남이 언젠가는 자신들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불러들였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알고 있었을 거야. 모든 이들은 영혼의 분열을 이야기하지. 왜냐면 그건 이퀘스트리아의 창조 이후 처음으로 맞은 죽음의 원인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보는 진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차가워."
그녀는 이십오 년 전의 미래에서부터 쫓아온 한 보라색 드래곤의 깊고 낮은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삶을 감싸는 건 죽음이야." 하모니가 말했다. "첫 번째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부터, 에포나도, 콘수스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그들은 그런 걸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대담하기도 했고, 또 현명하기도 했으니까 말이야. 꼬마야, 가끔씩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떠나기도 해. 죽거나, 아니면 에포나처럼 떠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건 고결하기 때문이 아니야. 그건 본질이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 이 세계가 이 본능을 따라가더라도 놀라지 말렴. 불사의 창조주들조차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닥쳐오더라도 말이야. 태양과 달이 그 지치는 일주운동을 그만두는 날이 오더라도 말이야. 내 말은... 내 말은 우리네 삶이... ...을 기다리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그녀는 수프 그릇을 흘끗 보고 나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의 얼굴은 즉시 움츠러들었다.
치어릴리 선생님의 학생들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핼쑥해졌었다. 그 말은 그래서 창백한 것이었다. 애플 가족과의 저녁 식사 자리는 당혹감으로 얼어붙었었다. 그 말은 그래서 차갑고 흐릿한 어둠이었다. 하지만 오두막의 거실 안, 그녀의 바로 앞에서 불편한 듯 움찔대는 한 쌍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운 몸 안에 깃든 채 잘게 부스러지는 영혼을 담고 서서히 기가 죽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있어 익숙한 세상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 어떤 검은 가시숲보다도 더욱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하모니는 그래서 자신이 재앙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였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이 별 위를 비옥한 토양으로 덮고, 이 세계의 선한 것들을 다시 건져 올릴 수 있을 그들이었으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그녀는 단순히 그녀 자신이 되는 것만으로, 솔직해지는 것만으로, 마지막 포니가 되는 것만으로 그녀는 주변의 온 생명을 갉아먹는 존재였다.
스파이크가 했던 말이 무한한 시간의 소용돌이 주변을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황동색 피부를 뚫고 송곳니를 박아 넣으려 맴돌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현세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포악한 큰곰자리의 반짝이는 푸른 주둥이를 마주하는 것보다도, 그녀는 다시 스파이크의 보라색 비늘 덮인 얼굴을 보는 것이 더욱 두려웠다. 마지막 포니는 그녀 스스로 플러터샤이가 정기적으로 꺼내는 친절에 대한 이야기를 무시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티타늄 그물이 있어서 그녀의 영혼을 감싸고, 좋은 것들이 그녀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가 재앙 때문에 마지막 포니가 되긴 했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마지막 포니였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포니빌 근처, 그림자만 가득 찬 낡아 빠진 헛간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배를 곯으며 친구라고는 스쿠터 하나밖에 없이 살던 그 어린 날, 페가수스는 바로 그 시절이 문제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는 건조한 방 한쪽 구석을 향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수프 그릇을 향해 몸을 숙이고 한 모금 마셨다. 과거의 따스한 음식이 자기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숭고한 여행을 다시 시작하게 하길 빌면서 말이다. 하지만 토마토를 넣은 채소 수프가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방 한쪽에 유령 같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모니의 호박색 눈동자는 오두막 한구석의 나무 계단을 바라보며 두려운 듯 떨고 있었다. 자그마한 오렌지색 그림자 대신,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그녀를 향해 내려왔다.
"저, 수프가 맛이 없으신가요?"
하모니는 고개를 돌렸고...
...생생한 턱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눈을 깜박였다. "응?"
"너무 쓰거나 시지는 않았니?" 플러터샤이가 생각에 잠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플러터샤이는 창문 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오후의 회색 그림자에 선 어린 망아지를 지워냈다. "수프에 허브를 넣는 레시피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이야. 음식을 만들 때는 거의 내 동물들에게 줄 먹이만 만들어서, 요리에는 아직 서툴러. 하아... 퀴퀴한 맛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스쿠틀루의 위장은 포니빌 안의 야외 식당 근처의 풀밭 위에 버려진 음식물 조각들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너지고 부스러져 하나의 구덩이로 변해 있었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는 밤이면 밤마다 업무상 휴업을 시작한 슈가큐브코너의 불 꺼진 창문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 색은 그래서 바래지 않았다. 수많은 기막힌 식사들은 그녀의 영혼의 유리 벽에 무용(無用)하게 덜그럭대며 부딪혀 갔고, 아이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이는 떠돌이의 외로움으로 빗장을 걸어 거부한 세계로부터 건져 올린 맛대가리 없는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표현할 정도의 힘은 없었지만, 그 음식에 감사할 줄 아는 예의는 있었다. 그녀는 대답을 서둘렀다. 그러면 그녀의 뱃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눈에서 떨어지려는 눈물을 이겨낼 수 있을 터였다.
"지금까지 먹어 본 수프 중에 가장 맛있는데 뭐." 스쿠틀루가 초승달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 수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걸 부엌에서 하나하나 직접 봤어야 했는데!"
"어머, 그건 안 된단다. 저기 안은 정말로 지저분하니까 말이야. 내 친구들이라도 도저히 부끄러워서 못 보여 줄 모습이라 그래."
"왜 그런지 도통 모르겠는데. 회전목마 의상실의 욕실보다도 언니네 욕실이 훨씬 깨끗하던데. 칭찬받을만한 것 같은데 말이지."
"그건 그렇고, 수프가 너무 차갑진 않았니?"
"괜찮았어, 플러터샤이."
"채소가 너무 심각하게 뭉쳐 있지는 않았어?"
"좋았는데, 플러터샤이."
"허브는 어땠니? 너무 많이 뿌렸니, 아니면—"
"언니, 잠깐만 좀 있어 봐!" 스쿠틀루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깊은 바다로 잠수하는 다이버나 살아 잇는 대포알처럼, 배고픈 망아지는 그릇에 담긴 새빨간 수프를 한 번에 모두 마셔 버렸다. 그녀는 큰 소리로 수프를 삼키고는 수프가 뚝뚝 떨어지는 턱을 들어 싱긋 웃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잠깐이면 된다고 했지... 내 말은... 우리 둘이 먹을 것보다 좀 더 많이 수프를 만들었나 해서 그런 거야."
플러터샤이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즐거운 숨과 함께 신이 난 듯 까르르 웃으며 부엌으로 재빨리 달려 들어갔다. "잠시만 기다리려무나!" 그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반대쪽 방을 향해 종종거리며 뛰어갔다.
스쿠틀루는 빙긋 웃고 있었다. 하지만 노란 페가수스가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앞으로 기우뚱하며 초조한 듯 발굽으로 배를 두드렸다. 그녀는 뻔뻔스레 머금었던 맛있는 수프를 식도를 따라 넘겼다. 그 뻔뻔스러운 식사가 자랑스럽기라도 한 듯, 스쿠틀루는 느긋한 숨을 내쉬며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끝없는 비의 장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사는 것이 애플블룸과 스위티벨이 늘 영위하며 살던 삶이었는지 궁금해졌다. 비 오는 오후는 전의 깨끗하던 날의 절반도 못 미치고 있었다. 삶이란 쓸데없는 장식을 달지 않았고 섬광등 또한 달지 않고 있었다. 지붕과 마룻바닥이 있고 맛있는 수프가 있다는 것은 스쿠틀루에게 있어 이보다도 아늑한 안식처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사실이었다.
스쿠틀루는 다른 큐티마크 크루세이더 아이들과 다른 이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 때마다 평범한 망아지인 척 하려고 애를 쓰곤 했다. 그녀는 삶에 너무나 지쳐 있어서 그녀에게 주어진 축복 같은 물건들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라면, 조용하고 평온한 플러터샤이의 외롭게 선 오두막에서라면 시간은 명상에 익숙지 않은 이의 시간처럼 천천히 흘러가곤 했다. 그래서 스쿠틀루는 얼음 같은 세상에서 끌고 들어온 절망의 처절한 고통을 잊을 수 있었고, 그 자리에는 한 줄기 빛이 자리를 대신했다. 그래서 그녀는 투명하고 깨끗한 순수한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스쿠틀루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시사회라고 생각했다. 밝은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날, 그녀 스스로 굉장히 아름다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 모든 것이 찾아올 것이란 전조라고 생각했다. 우정이라는 낚싯대가 아니라 온 힘을 다한 노력 끝에 얻어질 바로 그 세계의 전조 말이다. 그녀의 자그마한 날개는 별 쓸모도 없이 따뜻한 공기 안에서 흔들렸다. 그녀를 짓누르는 대기의 무게를 다시 상기하면서, 그 일이 얼마나 걸릴지도 몇 년은 따라 올라가야 하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이었지만 미래는 그렇게 외로운 곳만은 아닌 듯싶었다. 스쿠틀루는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영원할 수 없이 잠시 들렀다 가야 할 지금 이 순간 때문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다. 그녀를 야단치지 않던 어떤 목소리로 채워진 바로 이 순간 때문이라고. 무언가 노랫소리 같은 것이 그녀의 변덕스러운 귀를 어루만졌고, 비단처럼 부드러운 발굽이 천천히 걸어왔다. 목소리의 끝에는 두 그릇의 수프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계피 가루를 조금 넣어 봤어. 핑키 파이의 말로는 배가 차는 것만큼 입으로도 단것을 충분히 즐겨야만 한다고 그러더구나. 걔가 지금까지 나한테 달리 나쁜 일을 한 적은 없으니..."
"언니도... 음... 언니도 이거 먹을 거지, 맞지? 플러터샤이."
"음... 물론이지. 내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 준다면야 내 음식을 내가 맛보지 않을 수는 없지 않니."
"좋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그거였거든!" 스쿠틀루는 눈을 찡긋하고는 기쁜 듯 새로 내온 수프 그릇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이내 자기 앞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포니빌 최고 동물훈련사가 자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겠는걸!"
플러터샤이의 얼굴은 장미꽃처럼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침묵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외치듯 말했다. "수프를 다 먹고 난 다음에 '고 필리'라고, 게임을 할 건데 같이 할래? 저번에 포니빌 주택가에 들렀을 때 장난감 가게에서 새 카드뭉치를 사 왔거든."
※ 고 필리(Go filly): 외국의 보드게임 고 피쉬(Go fish)의 변형으로 추정.
"음... 카드게임을 잘 하는 애라면 애플블룸이지... 난 잘 못 하는데." 스쿠틀루는 슬쩍 즐거운 듯한 플러터샤이의 모습을 흘끗 바라보았고, 이내 영원히 품고 있으려는 것인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지는 배울 생각이야! 다음에 만나서 놀 때 한두 가지의 페이크를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히히히... 나도 어쩔 수 없단다. 나도 페이크는 몇 가지밖에 모르거든..." 플러터샤이가 초조하게 살금살금 걸어와 그녀의 영혼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아는 기술 몇 가지는 가르쳐 줄 수 있어서 정말 기뻐. 새로 전략을 구상하고 테스트하기에 엔젤은 그렇게 괜찮은 상대가 아니거든."
"헤, 난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우앗!" 오렌지색 망아지는 고개를 홱 숙여 날아오는 물건들을 피하고는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하지 마! 너희 엄마가 수프를 만들어 줬는데 지금 이래야겠냐, 이 돌대가리야!"
"그럼 수프를 다 먹고 나면 놀이를 할 수 있겠—" 플러터샤이는 빙긋이 웃음지으며 말을 꺼내다 중간에 말을 멈췄다. 그녀의 노란 몸통은 엄청난 경악에 갑작스레 자리에 가라앉았다.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녀는 귀를 쫑긋거리며 어깨 너머로 보이는 오두막집 창문 바깥을 내다보았다. 빗줄기에 젖은 회색 대기가 보였다.
"음?" 스쿠틀루는 수프를 좀 더 홀짝이며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수프를 꿀꺽 삼키고는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았다. "플러터샤이? 무슨 일이야?"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들린 것 같아..." 발굽들이 한바탕 부산하게 움직였다. 플러터샤이가 창문 쪽으로 발을 끌며 걸어갔고, 결연해진 푸른 눈동자로 쏟아지는 빗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플러터샤이...?"
그녀의 목에서 헉 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은 순간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플러터샤이는 몸을 돌리더니 불현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쿠틀루, 집 안에 있어.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절대 나오지 마."
"왜? 대체 무슨 일이야?" 스쿠틀루는 재빨리 훌쩍 뛰어 네 발굽으로 몸을 받치고 섰다. 아이의 눈은 빠르게 깜박이고 있었다. "홍수라거나, 뭐 그런 거라도 온 거야? 토네이도가 온 거야?"
"아냐. 홍수도, 토네이도도 오지 않았어. 그냥... 그냥 창고에 좀 급히 찾으러 갈 물건이 있을 뿐이야."
"언니, 창고도 있었어?" 스쿠틀루가 막 앞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고...
"여기 그대로 있어, 스쿠틀루!" 플러터샤이는 반쯤 꾸짖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 뒤편으로'노려보기 마스터'의 그림자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난 지금 농담하는 거 아냐. 금방... 그, 금방 돌아올게.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플러터샤이..."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지." 플러터샤이는 문을 거칠게 밀어 열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다급한 걸음으로 어두워져 가는 오후의 젖은 속으로 파고들었다. 오두막 문은 괴상한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닫혔고, 흠뻑 젖은 저 너머의 세계는 언제부턴가 지옥의 불길이 타오르는 듯한 탁탁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플러터샤이가 갑자기 공포에 질려 급히 뛰어나간 뒤 몇 분이 지나 들려오던 그 소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울려 올 뿐이었다.
스쿠틀루는 순간 세상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요동치는 세상은 그저 그녀의 외로운 심장 박동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큼한 냄새는 마치 숲 속에서 홀로 썩어가고 있을 헛간의 그 냄새처럼 조용한 오두막을 채우고 있었다. 스쿠틀루의 쓸쓸한 시선은 얼굴이 그대로 비치는 창문 유리를 향해 조금씩 가까워져 갔고, 또 명확해져 가기도 했다. 작은 망아지는 바깥에서 물이 끓듯 일어나는 세상을 빤히 쳐다보며 잠시 그녀를 맡아 준 수호자의 금빛 그림자를 찾고 있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상이란 허무밖에 없었다. 비석을 구걸하는 대지 속 공허와 꼭 닮은 허무밖에 없었다.
"부탁해..." 여덟 살밖에 안 되었지만 팔천 년을 산 것 같은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떨리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날 떠나지 마." 아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언니만이라도 날 떠나지 말아 줘."
아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오두막집을 감싸던 대기는 엄청난 천둥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스쿠틀루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보라색 눈동자는 경련하고 있었다. 아이는 방금 천둥 소리처럼 들려온 소리가 사실은 천둥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떨고 있었다. 그 소리는 짐승의 포효였다.
그녀는 가냘픈 울음을 울었고, 가엾을 정도의 약점이 자신을 깊숙이 찌르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플, 플러터샤이?"
그녀가 몸을 돌렸다. "왜 그러세요, 하모니?" 그녀는 깜짝 놀라 자기 앞에 놓인 물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기... 이게 뭔가요?"
시간여행자는 씩 웃으며 망원경과 두 개의 수정 같은 돌을 쥐며 말했다. "플러터샤이, 이 녀석이 우리 염소자리에요!"
"음... 저... 전혀 염소자리와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은데요, 하모니."
하모니는 얼굴을 살짝 붉혔지만, 자랑스러운 듯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제 말은, 이 녀석이 염소자리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줄 거라는 거에요! 오늘 밤은 저번처럼 쓸데없이 체력만 허비하고 끝나진 않을 거에요, 플러터샤이. 약속할 수 있어요. 럿것 위원장한테도 똑같이 약속할 수 있어요. 뭐, 그 아줌마가 그 잘나신 권위에 취해 있느라 바쁘지만 않다면 말이에요."
"레드게일 부서장이에요." 플러터샤이는 하모니가 영원히 틀린 이름만을 말하더라도 계속해서 바로잡아 줄 것처럼 온화하게 말했다. "그, 그런데 언제 이것... 아니... 장비들을 다 가져오신 건가요? 오두막에서 나가시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데요."
"도움이 되어서 정말 기뻐요, 프, 프, 프, 플러터샤이!" 오후의 태양이 묻은 오두막집 안에 더피 후브즈의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렸다. 그녀는 몸을 멈추려고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빙긋 웃고 있었고, 플러터샤이는 텅 빈 편지가방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따로 기다릴 것도 없답니다! 봉봉한테 왕실에서 구출 칙명이 내려왔다고 말해 주니까 아주 좋아라 하면서 저한테 이것들을 넘겨 주었거든요!"
"구출 칙명이요?" 플러터샤이의 얼굴에 주름이 생겼고, 그 위에 주름이 생겼다. 그녀는 몸을 돌려 '왕궁비서관 겸' 보조자를 하릴없이 쳐다보았다. "봉봉네 가게에서 따로 물건을 주문한 기억은 없는데요. 캔틀롯 왕궁비서관께서 물건 값을 지불하시는 거 맞죠?"
"네, 물론이죠. 당연한 거 아니에요?" 하모니는 익숙한 발굽놀림으로 재빨리 망원경의 철제 몸통을 분해해서 조정해 주며 대답했다. 그녀는 분해했던 망원경을 다시 조립하고, 여기저기를 더듬어 본 다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오두막의 빈 귀퉁이에 망원경을 가져다 놓으면서도 입가를 핥았다. "이거 조정만 끝내면 돼요. 그러고 나면 그 어딜 가서 처박혔는지 모를, 포니 귀찮게 하는 별자리를 찾을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에요...... 아, 좀 빠져 봐라. 이 조그만 자식이 귀찮게..." 그녀는 조그마한 유리 렌즈가 거칠게 마룻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망원경을 두들겼다. "하! 진작에 빨리 나왔음 좋았잖아. 자, 그럼 이제 얘를 갖다가 여기 넣고..." 그녀는 수정 같은 돌 하나를 가져다가 빈 망원경의 렌즈가 있었을 자리에 밀어 넣었다.
플러터샤이는 반쯤 진땀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창백한 발굽 하나가 플러터샤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 고, 고, 고, 공주님께서 왕실비서관을 조수로 파견해 주시다니,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더피가 재잘대며 말했다. "그 왜 있잖아요, 만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캔틀롯 다람쥐 아저씨가 나한테도 있었으면 트로팅엄까지 가야 할 소포를 두 배는 빨리 옮길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네, 그렇죠... 우리 몇몇은 충분히 복 받은 삶을 살고 있긴 하죠, 그런데—" 플러터샤이가 말을 하다 말고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후브즈, 캔틀롯 뒤에 뭐라고 하셨어요?"
"머핀!" 더피가 불현듯 환하게 웃으며 아늑한 오두막집 안을 걸어갔다. 그녀는 도톰한 덮개가 깔린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조그마한 유니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왜 엄마가 우리 똑똑하고 예쁜 딸을 볼 때마다 우리 딸은 엄마가 아니라 채, 채, 채, 책에 얼굴을 박고 있누? 책에서 갑자기 꽃이 필 것만 같다니까! 히히히! 엄마가 또 농담 하나 했네!"
"네, 엄마." 딩키는 가늘어진 목소리로 나직이 대답했다. 아이의 시선에는 흐릿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아이는 한숨을 폭 내쉬더니 이제는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또 농담 하나 하셨네요."
"저기, 후브즈 어머님. 괜찮으시다면 잠깐 엔젤한테 맛있는 당근을 좀 먹이고 와도 될까요? 아이가 너무 변덕스러워서 좀 늦을 것 같아요." 플러터샤이는 사과하고 근처의 부엌으로 발을 끌며 걸어갔다. "최대한 빨리 올게요."
우편배달부의 두 눈이 플러터샤이를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었을지 몰라도, 방향을 잡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더피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락의자 옆에 물집 잡힌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딸의 어깨에 부드럽게 발굽을 얹어주었다. "오늘은 또 뭣 때문에 우리 머핀이 이렇게 축 처졌을까? 바로 어젯밤만 해도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준 새 책 덕에 굉장히 들떠 있었잖니. 대체 뭣 때문이니? 그 천문... 천무, 무... 그 우주 연구하는 그 책에 이미 아는 것밖에 나와 있지 않아서 그러니? 엄마는 늘 그런 실수를 하곤 하잖니. 네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도서관을 하나 사 줄 수도 있단다. 헤헤헤..."
"엄마, 나 그 책 좋아요." 딩키가 잠시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이는 다시 한 번 차가운 숨을 내쉬며 당장이라도 빗줄기가 쏟아져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 오후가 스러질 수도 있다는 것처럼 밖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 하늘 안의 모든 것의 역사가 그 안에 쓰여 있어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었어요. 천문학을 처음으로 공부하는 데는 정말 좋은 입문서였어요."
"그럼, 우리 머핀한테 열이 좀 있는 건가?" 더피는 딩키의 말은 무시하고 숨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녀의 두 눈은 창틀 양쪽 끝을 바라보고 있었고, 더피는 자리에 앉아 어린 유니콘의 뭉툭한 뿔에 발굽을 가져갔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듯 언제나처럼 멀쩡하구나! 혹시라도 나침반이 남쪽을 가리키는 듯한 느낌이 들거들랑 우유 한 잔 마시고 더피 선생님을 차, 차, 차, 찾으렴. 히히히!"
딩키의 입술이 약간 굽어졌다. 하지만 이내 어떤 육중한 무게에 눌리듯, 입술은 제자리로 내려갔다. "제 1시대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에포나가 처음으로 우주로 돌아갔죠. 그 때부터 몇 천 년 동안 에포나의 영혼이 이퀘스트리아 바깥의 태양계로 나가 빙빙 돌면서 남은 흔적이 지금의 별자리가 된 거래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난... 음... 어... 우와! 이번엔 그 뭔가가 이퀘스트리아가 아니라 엄마 머리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데!"
"몇몇 과학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삼백 년 동안 적어도 스무 개의 별이 죽어 버렸다고 해요. 몇몇 과학자들이 모여서 시작한 천문학 연구가 있어요. 참 용감한 연구이기도 하고요. 캔틀롯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북쪽 하늘에 남은 에포나의 흔적을 추적하는 걸로 별의 수명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해요. 역사가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포니 사회의 학자들이 여신의 죽음을 추적하려고 하고 있는 거죠."
"그거... 음... 어... 별이랑 행성에 대한 책에 넣기에는 정말 기, 기, 기, 기, 기운 빠지는 얘기구나. 트와일라잇이 너 읽으라고 준 책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는 얘기니?"
"과학계에 몸담은 포니 중 많은 이들은 몹시 화가 나서 그 연구자들의 말을 모두 없던 것으로 해 버렸어요. 아주 빨리 말이죠." 딩키는 학자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말했다. "참 놀랄 일이죠. 오늘날까지 에포나 여신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기는 게 포니들의 본성으로 남아 있다니 말이에요. 그분은 진작에 이 별을 떠났는데도요.우리 모두를 두고 떠나 버렸죠. 엄마,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이 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한 가족, 아빠가 떠나 버린 한 가족의 엄마가 된다는 건, 늘..." 아이의 떨리는 두 노란 눈동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아이 같은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가족들을 잘 돌봐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게 만드는 건가요?"
하모니는 발굽을 가지고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작업을 하고 있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고, 그와 동시에 불 같은 죄책감이 가슴 속에서 터지듯 피어올라 연기 같은 회색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냥 조용히 보고 있으라고...... 듣고 있으라고.
더피의 어딘가 아파 보이는 두 눈동자는 더욱 거리를 벌리며 멀어져 갔다. 창백한 회색의 암말은 입술을 깨물며 마른침을 삼켰고, 말을 꺼내며 웃어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머, 머핀, 그건 아, 아, 아, 아빠들한테만 그런 건 아니란다. 그건..." 그녀는 몸을 움찔하며 쓰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고, 곧 두 눈을 감았다. 한 줄기 불만스러운 듯한 소리가 그녀의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회색 페가수스는 불만스러운 듯 자신의 이마를 발굽으로 쿵 치고는 단호하게 몇 마디 지혜 섞인 말을 쥐어짰다. "딩키, 엄마는 네가 배우고, 똑똑해지라고... 똑똑한 포니가 되라고 책을 준 거란다. 그리고 엄마는 알아, 넌 분명 똑똑한 포니가 될 수 있단다, 머핀. 엄마는 절대 꾸, 꾸, 꾸, 꾸, 꿈도 못 꿀 정도로 여러 의미에서 말이야. 하지만... 으..." 소리를 지를 기미가 보였다. 우편배달부는 잠시 발굽으로 이마를 꽉 부여잡았고, 다음으로 할 말을 생각해 내느라 낑낑대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이내 차분하게 말을 잇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또, 또, 또, 똑똑한 포니들도 네 물음에는 대답을 해 줄 수 없단다. 이건 엄마도 알아......"
"엄마, 가끔씩 전 바보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해요. 이 물음의 답만 찾을 수 있다면 바보가 돼도 상관없어요." 딩키가 중얼거렸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니? 대체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게 했어?"
"아무도 안 그랬어요! 엄마, 난 그저......"
"오, 머핀... 우리 머핀..." 회색 페가수스는 다리를 굽혀 조그마한 유니콘을 안으며 아이의 등에 뺨을 비벼주었다. "이 세상에는 나쁜 포니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단다. 입만 열면 안 좋은 말을 하는 포니들 말이야. 왜냐 하면, 그들은 네가 누군지 모르거든.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할 포니일 줄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너한테 책을 사주는 거야. 그러면 네가, 우리가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나, 나, 나, 나, 나은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엄마, 그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넌 엄마한테 정말 소중하단다. 넌 엄마의 소중한 머, 머, 머, 머, 머핀이야. 네가 엄마만큼 나이를 먹고 나서 엄마처럼 되기를 엄마는 바라지 않아. 엄마는 네가 외롭고 쓸쓸한 바, 바, 바,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이 널 그렇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딩키, 넌 엄마한테 정말 소중한 아이란다. 엄마는 늘 딩키를 사, 사라... 사라, 라, 라..."
"사랑이에요, 엄마." 딩키가 부드럽지만 우울하기도 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이 말했다. 아이는 조그맣고 뭉툭한 뿔로 엄마의 눈 사이를 비벼 주며 말했다. "사랑해 주시는군요."
"음... 맞아." 더피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작은 유니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무한히 드리운 그림자를 바라보며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래, 사랑해..." 그녀의 시선은 아직도 비뚤어져 있었지만, 피어나는 한 쌍의 눈물은 땅을 향해 똑바로 떨어졌다.
두 포니들은 따뜻한 오두막 거실에 묻은 하트 모양의 회색 얼룩처럼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잿빛 구름이 들어온 모습 같았다. 하모니의 시선이 잠시 그 둘을 향해 움직였고, 더피가 기침을 해 피어오르는 침울의 안개를 걷어냄과 동시에 곧장 제자리를 찾아왔다. 그녀는 앞다리로 안아 올린 금발 유니콘을 들어 주었다.
"엄마랑 같이 슈가큐브코너에 갈래? 오늘 핑키 파이 언니가 무슨 빵을 구웠는지 보자꾸나! 책이 맛있는 과자를 만들어 주는 건 아니잖니. 머핀, 어떻게 생각하니?"
"히히히..." 딩키는 더피의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이름 없는 장례식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진혼곡처럼 부드러웠다. "알았어요, 엄마. 가요."
"히히..." 더피가 깊은 웃음소리를 내며 작은 망아지를 편지 가방에 넣어주었고, 기운찬 걸음걸이로 오두막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옆에는 유니콘이 매달려 있었다. "염소자리 말인데요, 행운을 빌어요, 다람쥐 아저씨!" 그녀는 마지막 포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일 아, 아, 아, 아, 아침 일찍 또 보자고요!"
"그래요." 하모니는 그들의 뒷모습에 대고 중얼거렸다. "물론이죠." 그녀는 쓸쓸히 오두막집 문 너머로 보이는 딩키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은 안개를 건너가는 회색 비행선에 달린 노란 헤드라이트처럼 보였고, 이내 울적한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잠시 동안, 그녀는 염소자리가 밤하늘에서 굴러 떨어진 유일한 별자리이진 않을까 생각했다.
플러터샤이의 얌전한 모습이 다시 한 번 빈 방에 온기를 가져왔다. "어라?" 그녀는 풀이 죽으며 숨을 내쉬었다. "그새 둘 다 가 버린 거에요? 아, 세상에. 작별 인사를 빼먹는 건 정말 싫어하는데요."
"앞으로 누군가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앞으로도 알 일 없는 포니들한테."
"하모니, 그건 대체 무슨 뜻인가요?"
"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잠깐... 잠깐 집중이 흐트러져서 말이죠." 하모니는 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녀는 다시 네 다리에 힘을 주어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고, 돌멩이와 망원경을 새로 조립해 만든 끔찍하게 생긴 물체를 향해 발짓하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이 녀석을 완성하도록 해 볼게요. 그럼 마지막 밤이 지나가기 전에는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에요."
"음... 네..." 플러터샤이가 침을 삼켰다. "저기, 대체 이건 어디다 쓰는 건지 여쭤 봐도 되나요? 그리고 이걸 최대한 빨리 만들면 염소자리를 찾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 건가요?"
"플러터샤이, 이건 저번에 해 주셨던 말을 듣고 나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만든 거에요."
플러터샤이의 푸른 눈동자가 깜짝 놀란 듯 흔들렸다. "정말요?"
"염소자리, 별빛 먹고 사는 거 맞죠, 그렇죠?"
"네, 지난번에 그렇게 말해 드린 것 같네요."
"그래서 이 녀석을 만드는 거에요. 별빛으로 그 녀석을 낚아 보려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플러터샤이가 문 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그렇다면 최대한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이제..."
"아뇨, 지금은 아니에요."
플러터샤이는 자신의 분홍 갈기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지금이 아니에요?"
"우린 기다려야 해요..." 하모니는 날카로운 호박색 눈동자로 흘끗 돌아보며 개조한 망원경을 마저 손보며 말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플러터샤이의 샛노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이를 딱딱 부딪히며 말했다. "바, 밤까지요?"
"왜요? 그럼, 지금 같은 한낮에 별이 나올 리는 없잖아요?" 하모니가 망원경을 어깨 위에 얹고는 네 다리로 땅을 디디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 참, 대체 어디서 살다 온 거에요?"
"저기... 그저... 그저 뭘 좀 점검해 보러 가야 해서 말이야." 플러터샤이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온통 빗물에 흠뻑 젖은 채 문간에 서 있었고, 물방울이 솜털을 타고 뚝뚝 떨어져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잠깐 널 그냥 놓아두고 가서 정말 미안해. 용서하렴."
"잠깐?" 스쿠틀루가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 아이의 보라색 눈동자는 밝게 빛나고 있었고, 아이는 온몸으로 못 믿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삼십 분 동안이나 나갔다 들어왔잖아! 언니가 빗물에 빠지기라도 했나, 무슨 일을 당하기라도 했나 걱정했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잖니!" 플러터샤이가 용케도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물에 빠지다니, 그럴 리가... 그, 그럴... 그럴... 리가..." 그녀는 물에 젖은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연약한 재채기를 했다. 그녀는 덜덜 떠는 듯한 숨결을 흘리며 코를 훌쩍거리더니 다시 한 번, 아까처럼 억지로 빙긋 웃어 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따뜻한 벽난로 쪽으로 조용히 걸어가더니 입을 열었다. "물에 빠지다니, 그럴 리가 없잖니, 스쿠틀루. 약속할게."
"그럼, 지금까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스쿠틀루가 급히 오두막을 건너가 플러터샤이의 옆에 붙으며 말했다. "언니가 저 폭풍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얼마 있지도 않아서, 뭔가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단 말이야. 언니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기상관리팀 포니들을 불러다가 당장 폭풍을 정리해야 할지 어떨지도 모르겠고! 당장이라도 포니빌에 연락해서 언니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몰랐어. 세상이 끝장나는 줄 알았단 말이야.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오, 스쿠틀루.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난 괜찮잖니." 플러터샤이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켜 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녀는 벽난로를 향해 두 발굽을 뻗으며 덥혀진 공기를 몸 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였다. "그냥 창고가 어떤지 좀 점검해야 했을 뿐이야. 그것뿐이야. 창고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뭐? 대체 그 창고가 뭐가 중요하길래 흠뻑 젖은 노새 꼴을 하면서까지 갔다 와야 하는 건데?"
"스쿠틀루, 무례한 행동들에는 이러저러한 것이 있다고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니?"
스쿠틀루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언니 때문에 걱정됐었어. 그것뿐이야, 플러터샤이. 적어도... 그 창고가 대체 어디가 중요한지는 설명해 줄 수는 없어? 들어도 이해는 못 하겠지만..."
노란 페가수스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눈 앞에서 타오르는 호박색 불꽃을 쓸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스쿠틀루, 내가 여기서 돌보는 동물들은 단순히 귀여운 동물들만 있는 건 아니란다. 사실, 클라우드데일의 수많은 동물훈련사들이 이퀘스트리아 대협곡의 다른 야생 동물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내가 지원하고 있거든. 그것 때문에 물건들을 보관할 만한 판잣집을 하나 만들어 두었단다. 귀리나 동물 사료, 얼린 물고기, 이것들 말고도 언제 다른 동물훈련사들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물건들도 구비해 두고 있어. 최근에... 음... 에버프리 숲 가장자리에서 무언가가... 아니면 어떤 것들이 튀어나오고 있는데, 그것들은 내 창고에 쌓아 둔 물건들에 잔인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어. 전혀 위험하지 않은 동물들이야, 정말이야. 그냥 다른 훈련사 분들이 당장 급히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해 드리지 못한다던가 하는 상황을 용납하기 싫을 뿐이야. 그것뿐이야."
"걔들이 전혀 위험하지 않은 동물이면, 무슨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두막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할 건 또 뭔데!"
"그냥 안전을 위해서야, 스쿠틀루.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동물 친구들을 보살펴 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오늘 언니가 한 일은 그것뿐이야?" 스쿠틀루는 순간 오만하고 건방진 눈길로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애들 돌보기 연습, 이거 하나?"
"음... 저기..." 플러터샤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요즘 몇 달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쪽 일을 하는 데 '연습'이 많이 부족했다고 말이야." 그녀의 눈이 순간 깜박였다. "어마!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때는 늦어 있었다. 이미 난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 스쿠틀루는 콧김을 뿜으며 비가 들이치는 오두막 문간으로 단호히 걸어갔다. 문간에는 스쿠터가 빗물에 젖어 반짝이며 누워 있었다. 다시 의지할 곳 없는 영혼의 앞다리가 손잡이를 잡아 줄 것을 기다리며 누워 있었다.
"괜찮아, 플러터샤이. 다 알아들었어. 난 어리고, 약해 빠졌어. 내 앞가림을 할 만한 힘도 없어. 날 수 있든 없든, 비가 쏟아지든 햇빛이 쏟아지든 상관없이, 내 또래 페가수스들보다 더 빨리 포니빌을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지!"
"스쿠틀루! 제발 가지 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
"아, 오해하지 마, 플러터샤이. 비 오는데 잠깐 들르게 해 준 것도 고맙고, 맛있는 수프 만들어 준 것도 고마워. 하지만 그게 내가 나 스스로 폭풍을 뚫고 집에 갈 수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 내가 언니한테 짐이 되게 하지 마. 언니의 그 친절한 마음씨를 내가 이용하게 하지 마."
"스쿠틀루, 넌 짐이 아니야!" 플러터샤이가 기분 좋은 온기가 감도는 난롯가에서 다급히 뛰어나와 흠뻑 젖어 가는 망아지의 뒤를 쫓았다. "제발 부탁해. 난 그저 네가 따뜻하고 기분 좋은 오후를 보내길 바랐을 뿐이야! 내 말은, 너희 부모님께서 주말 동안 어디 나가 계실 때만이라도 내가—"
오렌지색 망아지의 날개는 단단히 접혀 있었다. 스쿠틀루는 전혀 화를 내려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오두막집 앞쪽의 절반은 계속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몸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플러터샤이, 난 나 스스로도 충분히 알아서 할 수 있어! 우리 엄마랑 아빠도 분명 아실 거고! 언니도 알잖아, 모든 포니가 다들 나약하고 무력한 건 아니라는 걸!"
덜그럭대는 소리가 멈췄다. 그러자 다시 빗줄기가 포효하며 오두막집을 뒤흔들었다. 오두막집 안에는 망아지가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시커먼 그림자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안에 있었을 그림자가... 이제 플러터샤이의 얼굴을 집어삼켰다. 플러터샤이의 분홍 갈기는 푹 젖은 베일처럼 늘어져 버렸고, 그녀는 침울하게 몸을 돌려 불현듯 어둑해진 난롯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그래... 이해했어. 이해한 것 같아." 플러터샤이의 목소리는 왠지 그 노랫소리 같은 음색이 남아 있지 않았다. "네가 맞아, 스쿠틀루. 넌 약하고, 무력하지 않아. 넌 강한 아이야. 그리고... 네 질문 말인데... 좀 더 잘 생각했어야 했는데... 미... 미안해..."
스쿠틀루는 문 밖으로 나가다 말고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 차가움과 그 가난함... 익숙했다. 그녀는 떨리는 두 발굽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스쿠터의 핸들을 집어 들어올렸고, 그 발굽이 피로 젖어 있기라도 한 양 두 앞다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입술을 깨물며 빗물 젖은 스쿠터의 금속제 차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두려워 받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축축하던 어린 날의 검은 밤 동안 껴안자고, 스스로 허락한 스쿠터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이 바퀴 달린 물건을 접어 자신의 오렌지색 몸뚱이 안에 집어넣고 싶다고 바라기 시작했다. 강한 만큼이나 마음도 없는 기계가 되어 날지 못하는 날개를 휙 채어가고 싶다고, 매일 아침마다 떠올라 아이를 외롭고 굶주린 그림자로 물어뜯는 저 태양에서 자신의 날개를 가져가고 싶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강해진다는 것은 불현듯 아무런 이득이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부드럽고 연약한 영혼을 그만큼의 적막과 냉담에 바쳐야 할 세계가 아니라면 그럴 것 같았다.
플러터샤이의 연약한 몸은 벽난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조그마한 오렌지색 망아지가 천천히 걸어와 그녀의 옆에 주저앉을 때까지 서너 번의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고, 이상하다는 듯 푸른 눈동자로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쿠틀루...?"
"뭐..." 아이는 두 다리를 포개며 벽난로 한쪽에 재가 쌓이는 곳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바깥이 워낙 질척질척해서 말이지. 스쿠터에 진흙이 묻는 건 피하고 싶거든."
플러터샤이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듯한 미소를 지었다. "좀 전에도 진흙을 묻히고 들어왔잖니."
"그랬지, 뭐, 오늘밤에는 더 이상 몸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아침까지 여기 묵으면서 폭풍이 멈추기를 기다려도 되는데, 스쿠틀루."
"그럴 것 같았어, 플러터샤이." 스쿠틀루는 왠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아이는 그게 무엇인지 아는 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훌쩍이는 듯한 소리를 내며 플러터샤이에게서 시선을 멀찍이 떼어놓으며 말했다. "그럴 것 같았어."
플러터샤이가 빙긋 웃었다. 그녀는 몇 분 동안 스쿠틀루에게 뺨을 비벼주었다. 오렌지색 망아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플러터샤이는 그 순간만큼 아이가 고마웠던 적이 없었으리라.
"하모니,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플러터샤이는 하모니와 같이 에버프리 숲의 어둡고 여기저기 구부러진 길을 걸으며 밤이 내리는 숲의 하늘을 얌전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왜 절 도우시려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요?"
"어......" 시간여행자는 돌멩이를 끼운 망원경을 어깨 위에 얹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비뚤어진 미소를 지어 보이면 간단한 한 마디 대답을 꺼냈다.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 아닐까요?"
어두운 나뭇잎이 드리운 숲 속으로 그들은 계속해서 더욱 깊숙이 걸어 들어갔고, 플러터샤이의 발굽은 이제 땅을 파헤치듯 걷고 있었다. "왕궁에서 단순한 동물훈련사들에게 이 정도로 지원을 해 줄 줄은 전혀 몰랐거든요. 공주님께서 아주 자애로운 분이시란 건 알지만, 지금까지 당신께서 절 도와 주신 것만큼 국민 하나하나에게 신경을 써 주실 여유는 없으실 테니까요."
"그래요, 뭐, 지난번에 보니까 공주님께서는 여기 안 계시더라고요. 그 대신, 당신이랑 저는 지금 여기 있고요. 그리고, 여기 없는 게 또 하나 있는데, 뭔지 아시겠어요? 염소자리에요. 그래도 전 우리가 이 어려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보는데요."
"하모니......"
"나무 사이에 섞여 들어가기만 하면 돼요. 별빛이 필요하니까 말이에요!"
"하모니, 부탁이에요. 왜 절 이렇게까지 도와 주시는 건지 말해 주세요."
"저한테 어떤 말을 해 줬던 한 포니가 있었어요..." 하모니는 입안을 혀로 핥으며 흔들리는 호박색 눈동자로 숲의 지붕처럼 우거진 나뭇잎들을 훑으며 말했다. "돌고 도는, 어떤 정신이 있다고 했었죠......"
"어... 잠깐만요, 혹시...?"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하모니가 악마처럼 씩 웃더니 풀이 무성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위에는 별빛이 반짝이는 자주색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 밤에 녀석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한번 보자고요." 그녀는 목과 어깨로 지고 있던 망원경을 굴리더니 플러터샤이를 향해 휙 던져주었다. "여기요. 이거 좀 들고 계세요."
"어마!" 노란 페가수스는 쭈뼛쭈뼛 주춤하면서도 날아온 망원경을 받았고, 몇 번 불안하게 놓쳤다 받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떨리는 발굽으로 물건을 꽉 붙잡았다. 금속으로 외관을 마무리한 망원경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기도 전에 이미 수정 같은 돌멩이가 그녀의 얼굴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대쪽에도 그와 비슷한 돌멩이가 끼워져 있었다.
"전에 이런 거 보신 적 있으세요?" 하모니가 플러터샤이의 눈앞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슬쩍 흔들며 뭏었다.
"스타 프리즘(Star Prism)이네요." 플러터샤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승에 따르면, 에포나 여신의 눈물이 굳어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하던데요."
"맞아요." 하모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용감한 페가수스 탐험가들이 저 멀리 북극, 대기 중에서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지점 가까이에서 수집한 수정 먼지들을 이용해 만들어낸 물건이죠. 캔틀롯 양반들은 그 지점을 두고 '귀환의 장소'라고 부르더군요. 이건 콘수스의 죽음 이후 이퀘스트리아를, 이 세상을 떠날 때 이 세상에 남은 에포나의 정수라고 알려져 있는 물건이지요."
"후브즈 어머님께 부탁해서 봉봉의 가게에서 조달해 온 물건이 바로 이 스타 프리즘이었던 건가요?"
"네." 하모니의 고개가 끄덕였다. "전 당신이 누군지도 잘 몰라요. 단지 당신의 그 아름다울 정도로 어리석은 모습이 경이로울 뿐이죠. 지금 이 세상은 한때 우리와 같은 길을 걸었던 신들의 잔재와 파편으로 덮여 있어요." 그녀는 쥐고 있던 돌멩이를 한 바퀴 돌리며 말했다. "이 세상에 남아 있던 모든 신성한 것들이 사라지고 말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르겠어요."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니에요. 지금은 그 때가 아니에요...... 언젠가 당신이 창조의 마법의 한 토막을 쥐고 나와 빵 부스러기를 들고 다니듯 하는 때라면 또 모를까. 어떤 현명한 포니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그게 바로 삶의 놀라움이라고. 지금도 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고, 전 그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플러터샤이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돕는 일에 너무 열중하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플러터샤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행복해서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거든요."
"하모니, 혹시 지금 갖고 계신 게 스타 프리즘이라면 분명 이번 조사는 예전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인 것 같네요." 플러터샤이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빛나는 희망이 그녀의 노란 뺨에서 따뜻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제가 잘못 안 게 아니라면요."
"틀림없다니까요! 그럼 놀랄 준비나 하세요!"
미래로부터의 '청소부'가 에버프리 숲의 갈라진 나뭇잎 지붕 사이로 날아올랐다. 그녀는 하늘 너머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에포나의 흔적이 내뿜는 보랏빛 연무를 향해 보석을 들어올렸다. 수십 초가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했다. 그 순간, 보석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기운들이 한데 모여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마치 저 하늘 너머 아득한 곳에서 반짝이던 별들이 빛 덩어리를 쏘아 보내기라도 한 것 같았다. 페가수스가 꽉 잡고 있던 조그마한 보석 안에 별빛이 가득 고였다. 잠시 후, 보석은 흡사 살아 있는 전등이라도 되는 것처럼 에버프리 숲을 휘감고 있던 나무줄기와 잎사귀들 속으로 부드러운 섬광과 만화경처럼 휘황찬란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아름답네요." 플러터샤이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하모니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내려왔다. 그녀는 아직도 반짝이는 스타 프리즘을 들고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별빛을 한데 모으긴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모니가 가볍게 흐르듯 내려오더니 검은 갈기를 흔들며 말했다. "이제 저 망원경을 꽉 붙잡고 계세요."
플러터샤이는 군말 없이 자그마한 천체망원경을 똑바르게 세웠다.
"음... 그럼 이제...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하모니가 접안렌즈가 있는 쪽을 자기 쪽으로 돌렸고, 천천히... 천천히 아직도 약동하고 있는 스타 프리즘을 망원경으로 가져갔다. "음... 음... 됐고... 이제..."
스타 프리즘이 불현듯 깜박거리며 명멸하기 시작했다. 한 줄기의 빛이 망원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대물렌즈 대신 다른 스타 프리즘을 끼워 둔 곳으로 들어갔다. 망원경은 순간 조명등처럼 빛을 내더니 이내 시커먼 에버프리 숲을 향해 널찍한 별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자, 보세요!" 하모니가 자랑스러운 듯 싱긋 웃었다. "이제 별빛을 갖고 다닐 수 있죠!" 그녀는 여자 아이처럼 까르르 웃었다. "이야, 고맙습니다, 네뷸라 공주님. 별로 기대도 안 했는데, 이게 되네요!"
"정말... 정말 깜짝 놀랐어요." 플러터샤이가 나직이 말하며 홀린 듯한 푸른 눈동자로 어두운 숲 속에서 춤추는 별빛의 보라색 광휘를 바라보았다. 검은 숲은 밤과 낮을 가르는 우주의 아름다운 빛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염소자리를 달래서 밖으로 나오게 할 만큼 별빛이 집중되었을까요?"
"포니빌 동물훈련사 선생님, 이게 녀석을 찾을 유일한 방법이에요." 하모니가 자랑스러이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말했다.
플러터샤이가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녀는 풀이 죽거나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고, 기운이 빠져 낑낑거리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똑바로 서서 이 상황의 책임을 지기로 했다. 플러터샤이의 노란 얼굴 위 두 눈은 더욱 가늘어지며 찌푸려졌다. "따라와요."
하모니는 플러터샤이의 말대로 했다. 그녀는 아직도 빛나고 있던 망원경을 돌려 들었고, 플러터샤이는 다시 힘을 얻어 에버프리 숲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두 페가수스는 그들 바로 앞에 펼쳐진 숲을 별빛으로 비춰 가며 걸어갔고. 무언가 시커멓고 조그마한 것들이 찍찍대면서 종종거리며 달아났다. 그들은 플러터샤이의 잘 연마된 직관을 따라 숲 속으로 깊숙이, 더욱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어둡고 칙칙한 에버프리 숲을 향한 공포와 두려움은 스타 프리즘을 끼워 둔 망원경이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흔들림 없는 발걸음에 모두 녹아 없어져 있었다.
밤은 두 페가수스의 걸음 앞에 굴복했고, 이내 귀뚜라미의 노랫소리와 더불어 그들 앞에 있던 생명들은 모두 길을 비켜주었다. 플러터샤이의 인솔 하에, 두 페가수스는 에포나의 흔적이 남은 그림자 사이를 헤치고 손길 닿지 않은 황폐한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신의 숨결에 대답할 길은 망원경을 빌려 그녀의 숨결을 모방해 보내 주는 것밖에 없는 듯싶었다.
대략 삼십 분이 지났을까, 플러터샤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잠깐만요!"
하모니가 급히 황동색 발굽을 멈추었고, 그 덕에 그녀는 미끄러지듯 하며 멈추었다. 그녀는 그들이 쥐고 있던 반짝이는 기운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왜 그래요?"
"보... 보셨어요?" 플러터샤이가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봐요?"
"하모니, 우리 바로 앞에 있어요." 노란 페가수스가 구부러진 풀잎들과 발자국이 남아 생긴 길 한쪽 어두운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수풀이랑, 텅 빈 통나무 너머에 있어요."
"하지만... 플러터샤이, 저 길은 어제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지나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플러터샤이의 푸른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분홍 갈기를 흔들며 고개를 돌렸다. "하모니, 저쪽으로 별빛을 쏘아 주세요."
마지막 포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플러터샤이의 옆구리 뒤쪽에 망원경을 내려놓은 다음 스타 프리즘과 망원경의 접안렌즈를 조금 돌렸다.
플러터샤이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망원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한 바퀴 돌아 그녀의 왼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한 줄기 별빛이 흘러나온 자리의 풀들은 보라색으로 비춰졌다. 그 다음 순간, 우주 같은 기운이 대지에 비추어진 어두운 별빛 위에 자리했다. 녀석의 몸은 척 보기에도 떨리며 경련하고 있었다. 녀석은 흡사 해골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고, 또 겉과 속이 뒤집힌 인형 같기도 했다. 거품 끓는 듯한 붉은 빛이 녀석의 몸을 비추었고,그러자 녀석의 반투명한 살결이 부풀어 올랐다. 녀석은 그제서야 솜털과 비늘의 모습을 희미하게 비추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서는 끊임없이 우주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염소자리가 고통스러운 듯 매에 하고 울었고, 녀석의 얼굴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녀석의 이빨은 무지갯빛으로 빛나며 악물리고 있었고,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땅에 얼굴을 처박았다. 염소자리는 죽은 나뭇잎들을 걷어차 치웠고, 상아처럼 흰 한 쌍의 눈에 고독과 고통을 가득 담은 눈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망원경 양쪽에 넣어 놓은 스타 프리즘은 마법의 여파 때문에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그 안에 담겨 약동하던 별빛은 아무렇게나 누워 있던 굶주린 염소자리를 향해 총알처럼 날아갔다. 하모니는 초조한 듯 스타 프리즘의 잿가루와 조각들을 털어내고 있었고, 창백한 푸른 빛은 사라져 갔다.
하지만 플러터샤이는 얼이 빠진 채 멍하니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이런 이런 이런!"
그녀는 쏜살같이 앞으로 뛰어나가 무릎으로 미끄러지듯 하며 자리에 멈추어 섰고, 커다랗지만 기운이 쭉 빠진 염소자리의 떨리는 목을 안아 주었다. 염소자리는 신음을 흘리며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울음소리를 냈고, 플러터샤이는 녀석의 창백한 얼굴을 부드럽게 돌려 보았다. 그녀는 숙련된 솜씨로 염소자리의 잘려 나간 흰 가죽의 상처를 살폈고, 이마 위에 돋아난 두 개의 반짝이는 뿔들도 들여다보았다. 한 쌍의 갈라진 발굽들은 마치 혜성이 지나간 자리처럼 흰 피를 뚝뚝 흘리며 플러터샤이의 옆 땅을 고통스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플러터샤이가 녀석을 돌봐 주는 동안, 염소자리는 가엾을 정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상처가 심하구나! 가엾기도 하지! 오랫동안 너무 아팠지! 우리가 널 좀 더 빨리 찾아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걱정하지 마. 우리가 치료해 줄 테니까. 너한테 필요한 별빛이랑, 쉴 만한 곳도 마련해 줄게!"
염소자리는 다시 한 번 울음소리를 냈다. 녀석의 반짝이는 눈은 끓는 용암의 거품이 터지듯 천천히 깜박였다. 한 순간 한 순간마다 한 덩이의 에너지가 녀석의 두 반짝이는 뿔 사이에서 번개처럼 흔들릴 때마다 녀석의 이마는 고통스러운 듯 찌푸려지고 있었다. 염소자리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하반신을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비늘이 촘촘하게 돋아난 물고기 같은 꼬리로 부드러워진 땅을 힘껏 때리고 있었다.
플러터샤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눈은 젖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녀석의 주둥이 끝에 그녀의 이마를 가져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치던 염소자리는 순간 고통이 덜해진 것 같았다. 아마 입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더 마음이 편안해졌던 모양이었다. 플러터샤이는 단호해진 숨을 들이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밝아 오는 숲의 푸른 연무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하모니, 서둘러야 해요. 밤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염소자리를 에버프리 숲 바깥으로 옮겨야만 해요."
아무 말도 없었다.
플러터샤이는 깜짝 놀라 몸을 돌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하, 하모니?"
하모니는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염소자리를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예전에 염소자리를 본 적이 있었다. 마법으로 가득 차 별빛으로 반짝이는 이 우주의 생명을 본 적이 있었다. 상반신은 염소의 그것을 하고 있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적 있었다. 황무지의 가장 깊숙한 곳이자 가장 어두운 곳에서, 검은 덩굴들과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운 가시들이 돌 벽에 녀석을 매달아 놓은 것을... 본 적 있었다. 그 옆에는 플러터샤이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플러터샤이의 죽은 몸은 이 가엾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게 생긴 녀석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지금 시간여행자는 이 죄 없는 동물훈련사를 데려다가 에버프리 숲 한가운데로 데려오고야 말았다. 훌쩍이며 몸을 떠는 염소자리의 몸을 감싼 푸른 아우라는 주둥이를 쩍 벌리고 있던 거대한 푸른 곰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황무지의 유일한 생존자는 이 녀석만 피할 수 있다면 팀버울프의 게걸스러운 주둥이에 자신의 살을 내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불사조의 미친 화염에 기꺼이 몸을 태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모니!"
하모니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는 신경 긁는 한 망아지의 그것처럼 시커멓고 무서운 숲 한가운데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려보기 마스터의 유령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우며 애원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해요! 이 아이의 목숨을 구해야 해요!"
"이 녀석의... 이 녀석의 목숨을 구한다..." 하모니는 마른침을 삼키며 플러터샤이의 지시 하에 녀석의 한쪽 끝을 붙잡아 엔트로파의 힘을 빌어 남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운명이자 숙명이라면, 시간여행자는 차라리 울고 싶어졌다. "구해야 해... 모두를 구해야..." 마지막 포니는 노곤하게 중얼거렸다. 여자의 몸 위로 별빛 은은한 피가 흘러 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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