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자리는 플러터샤이의 오두막 근처에 마련해 놓은 조그마한 헛간 안에 침대 대신 깔아 놓은 흐트러진 건초 더미 위에서 몸을 떨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두 포니가 접시 몇 개에 각각 다른 음식을 담아 녀석의 입가에 가져다 주었지만 염소자리는 단 한 입도 음식을 먹지 않았다. 녀석의 흰 눈은 밤하늘을 향해 경련하며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위에서 반짝거리며 매달려 있던 별빛은 녀석의 커다란 몸뚱이에 다시 힘을 불어넣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고통스러워하는 염소자리의 몸을 한 쌍의 냉정한 푸른 눈동자가 살폈다. 그리고 서서히 세어 가는 진홍 갈기가 툭 하고 흔들림과 동시에 레드게일 부서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드게일이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나직한 한 마디 말을 뱉어냈다. "죽어 가고 있군요."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고 있었어요." 하모니는 나이든 페가수스의 뒤편에 있던 목제 헛간에 기대어 서 있었고, 레드게일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렇게밖에 생각하실 수 없나 보죠?"
"글쎄, 여기 있는 플러터샤이 양이 훨씬 더 나은 의견을 들려 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달리 틀린 구석 하나 없는 말을 말입니다." 흐려져 가는 루비의 색을 닮은 페가수스가 반쯤 코웃음치며 말했다. "안 그래요, 아가씨?"
"알겠습니다. 레드게일 부서장님." 플러터샤이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그녀는 신음하는 염소자리 옆에 앉아 두 발굽을 포개고 있었다. "심각할 정도의 탈수 증세가 관찰됩니다. 너무 오랫동안 별빛을 보지 못했어요. 글쎄... 음... 이 정도로 증세가 심각하다면... 염소자리가 아침까지 버텨 주기만 해도 오래 버틴 거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십 년 전인가, 필리델피아 최상부에서 발견된 전갈자리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케이스입니다. 그 때 녀석이 거기로 떨어지기도 했고요." 레드게일은 염소자리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녀석의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전갈자리를 발견한 아파트 주민들은 녀석을 괴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녀석에게 큰 상처를 입혔고, 그대로 필리델피아의 어둡고 깊은 골목길 안에 처박아 두었죠. 하, 나 참, 미친 짓에도 정도가 있지. 시의회에서 전갈자리를 발견했을 때는 살리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습니다. 휴, 이 얘기를 다시 꺼내게 되다니,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이거 참, 이것 보세요!" 하모니가 레드게일을 향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치듯 말했다. "그 구질구질한데다 괴상한 공포증까지 있는 한 무리 구더기들이랑 포니빌 최고 동물훈련사랑 비교하지 마세요! 여기, 플러터샤이는 지금까지 이 녀석을 찾으려고 몇 날 며칠을 생고생을 했다고요. 당신 도움도 없이, 그 망할 시의회의 지원도 없이 말이죠!"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말이죠, 공주님께서 직접 파견하신 비서관이신 하모니 양께서 플러터샤이 양을 아주 오랫동안 설득하신 끝에야 본격적으로 수색을 시작했다는 겁니다. 필리델피아 뒷골목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또 얼마나 꼬여 있는지 아십니까? 여기 플러터샤이 양은 몇 년 동안이나 에버프리 숲 근처에 살면서 적응한 포니고요. 이 일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런 겁니다. 플러터샤이 양의 뒷마당이자 모든 포니들의 뒷마당에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 하나가 떨어졌는데, 플러터샤이 양이 할 수 있었던 거라곤 녀석의 무덤을 파 주는 것밖에 없었다는 거라고요!"
"그래요, 그것 참 놀랄 만한 사실이군요." 하모니가 독기 품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확실히, 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도 아시고, 관련 자료들도 갖고 계신 것 같군요. 뭐 그럼 얘기가 이렇게 되나요? 전에 필리델피아에 별자리 하나가 떨어졌고, 이내 죽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 시의회 양반들이 별자리를 찾으려거든 별빛을 한데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아내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고 내 장담하죠. 안 그래요?"
레드게일 부서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동색 페가수스가 대담하게 계속 던지는 질문은 서서히 열이 오르고 있었고, 레드게일의 입술은 갈수록 더욱 단단히 닫혀 가기만 했다.
"안 그래요?" 시간여행자가 힐난했다. "그 얘기를 플러터샤이한테 해 줄 생각이라도 하긴 해 봤어요? 그럴 생각도 안 했으면, 그냥 플러터샤이가 이 일을 완전히 망치기를 바랐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요!"
"하모니..." 플러터샤이가 나직이 말했다.
"내 말이 틀려요?" 하모니의 서슬이 더욱 푸르러졌다.
"클라우드데일 위원회가 소유하고 있던 장비들 대부분이 이미 처분되어 지원이 불가능했습니다." 레드게일 부서장이 전등 빛 비치는 헛간 건너편에 서 있던 '캔틀롯 왕궁비서관'을 서늘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모니, 포니빌 동물훈련사의 자질은 충분히 검증되었습니다. 제가 이미 충분히 확인했으니, 나중에 공주님께 참관 보고서를 제출하실 때 참고하세요."
"아하, 그러시겠죠." 하모니가 쓴웃음을 띄우며 비웃는 투로 말했다. "그 잘난 검증 때문에 좀 있으면 멸종할지도 모르는 동물 하나가 또 죽어나갔군요."
"하모니, 살아 있는 것들은 결국엔 죽기 마련입니다." 부서장이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의 본분은 생명과 죽음의 평형을 맞추는 일입니다. 그걸 바꾸는 건 저희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오만하고, 거만한데다 비정하게까지 구는 건데요!" 마지막 포니는 나이든 페가수스를 향해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플러터샤이가 하모니를 노려보며 그녀를 가로막았다. "하모니, 도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어요."
하모니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고,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 하지만 플러터샤이..."
플러터샤이는 제자리에서 빙글 돌아 고통스러운 눈길로 나이든 페가수스를 바라보았다. 비단결 같은 분홍 갈기가 휙 하고 돌아갔다. "부서장님, 늘 그래 왔듯이 부서장님의 고견에, 클라우드데일 위원회의 권위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저 가엾은 동물에게 제가 뭘 해 주면 되나요?"
레드게일은 희비가 교차하는 듯한 시선으로 밀짚 깔린 헛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염소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약초와 마취용 약재는 늘 구비하고 있을 것 같은데, 맞나요?"
플러터샤이가 흠칫 놀랐다. 그녀는 순간 무언가 날 선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이내 그 말이 품은 뾰족한 날에 베여 풀이 죽었다. 그녀는 다소곳하게 고개를 폭 숙이며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 레드게일 부서장님."
"그렇다면 아가씨가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겠군요."
"네, 부서장님..." 플러터샤이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천천히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별빛 총총한 염소자리의 가슴팍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아이가... 아이가 눈을 감을 때까지 고통이라도 덜어 주라는 말씀이시군요."
"잘 알고 있네요, 아가씨." 흐려져 가는 루비의 색을 닮은 암말이 발굽에 묻은 몇 가닥 건초 줄기를 떨어내고는 헛간 바깥으로 냉담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인정해야겠군요. 아가씨는 약한 동물들을 돕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고 말이죠. 나중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조만간 말이죠."
"그게 다에요?" 하모니는 못 믿겠다는 듯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기껏 찾아서 데려왔더니, 얘가 꺽꺽대며 죽어 가는 거나 구경하라는 거에요?"
"그리고 당신." 레드게일이 하모니의 호박색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캔틀롯 엘리트다운 모습을 보여 주실 거라고 기대했었습니다. 그저 이 일을 지켜보겠다는 생각만 하고 계셨어야 했다고요. 플러터샤이가 몸담은 일은 단순하고 하찮은 동정심보다도 많은 걸 요구합니다. 물론 끈기가 있어야겠지요. 그게 없으면..." 레드게일은 그들의 눈앞에서 죽어 가며 먼지로 부서져 가는 염소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깨닫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언젠가 아가씨도 저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겠죠. 뭐, 그럴 거라는 희망은 별로 없지만 말입니다. 자, 그럼 당장은 작별이군요. 잘 있어요."
레드게일은 한 줄기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하늘로 솟아올랐고, 별빛 그늘이 진 클라우드데일을 향하여 북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두 포니들은 영혼을 흔들며 간간이 들려오는 울음소리로 곪아 가는 죽음의 그림자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모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에는 그녀 마음속의 영겁의 눈과 잿가루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흐르는 비극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으로 그녀는 충분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뜨자 몸을 뒤트는 염소자리의 뿔 돋은 머리를 향해 걸어가는 플러터샤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부드러운 숨을 내쉬며 염소자리의 목 바로 옆에 앉아 천천히 얼굴을 비벼 주며 누군가의 공허한 이십오 년의 꿈 속에서 울리던, 편안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여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훌쩍이는 비명 소리와 같은 숨결을 마지막 포니의 폐 속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렸다. "지금... 지, 지금 여기서 대체 뭘 하시려고 그래요, 플러터샤이?"
"이 아이 곁에 있을 거에요."
아무 말도 없었다. 하모니는 그제서야 플러터샤이가 대답한 걸 깨달았다. 황동색 페가수스는 헛기침을 하고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얼마나요?"
"이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이요." 플러터샤이가 나직이 말했다. 그녀가 구름처럼 흐려져 가는 염소자리의 밤하늘을 닮은 몸을 바라보았고, 순간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비 오던 지평선 너머 끝과 유독 닮아 보였다. "죽어 가는 동안 고통을 덜어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을 더 빠르게 할 수는 없죠."
마지막 포니는 한숨을 내쉬며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플러터샤이는 하모니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는지, 아니면 제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는지, 영문 모를 말을 꺼내놓았다.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보고서를 올리실 때, 레드게일 부서장님은 그저 저에게 자극제가 되어 주시려는 뜻밖에 없었다는 것만 알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하모니, 당신도 당신만의 정의가 있을 거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런다 해도 염소자리가 죽고 말 거라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 이 아이를 찾으러 갈 때, 그 어떤 방해도 없었고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하모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모니, 저한테 정말 큰 도움이 되어 주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더 이상 제 곁에 머무르실 필요는 없어요. 제 일은 이제서야 시작됐지만, 당신의 일은 끝났으니까요."
하모니는 플러터샤이와 그녀가 두 발굽으로 감싸 안고 있는 죽어 가는 푸른 밤하늘 사이의 공허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마지막 포니의 요동치는 심장에 달라붙고 있었다. 하모니는 어디선가 유령처럼 계단을 걸어 내려오던 오렌지색 그림자와 닮은 아이 같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플러터샤이, 당신을 두고 가고 싶지 않아요."
한 쌍의 슬픈 푸른 눈동자가 하모니를 바라보았다.
하모니는 마른침을 삼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제 말은, 지금 같은 때 당신을 혼자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는 거에요."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유리마저 삭일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그 부서장이란 양반이 당신을 버려두고 가 버린 다음도 아니에요. 클라우드데일이 당신을 무시해 버린 다음도 아니에요. 그저..."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흐느끼듯 말했다. "당신이 외롭지 않을 때, 그 때 떠나겠어요."
"전 외롭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단지..." 플러터샤이는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녀는 불현듯 몸을 돌려 단호한 푸른 눈동자로 염소자리의 두 뿔 사이에서 반짝이며 흔들리는 빛 덩어리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흐음......"
하모니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플러터샤이에게 천천히 걸어가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플러터샤이?"
플러터샤이는 염소자리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었다. 염소자리의 번쩍이는 뿔은 윤곽이 단단했고 플러터샤이의 노란 발굽이 녀석의 뿔을 가볍게 두드려 보고 있었다. 염소자리는 아직도 울부짖고 있었고, 아주 짧은 푸르스름한 보랏빛을 띤 기운이 녀석의 얼굴에 감돌았다. 동물훈련사는 녀석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고, 밤하늘을 품은 염소자리의 거대한 몸은 서서히 진정이 되어 가고 있었다.
플러터샤이의 목소리는 어색한 침묵 같았지만 전투순양함의 뱃머리처럼 침묵을 깨뜨리며 들려왔다. "하모니, 정말로 절 돕고 싶으신가요?"
"당연하죠, 플러터샤이! 말씀만 하세요."
"제 오두막까지 최대한 빨리 뛰어갔다 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안락의자 반대쪽에 책상이 하나 있어요. 그 안에 보면<우주동물학에 대한 제 3시대 연구서>라는 책이 있을 거에요. 그 책을 가져다 주셨으면 해요."
옛날 옛적 무지개의 기사처럼 하모니가 거수경례를 붙였고, 곧장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밤이 묻어나고 있었고, 그녀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플러터샤이가 자기 영혼을 붙잡아 둘 수 있는 범위 바깥까지 나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순간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향하는 곳은 헛간 바로 바깥에 있는 플러터샤이의 오두막이었고, 따라서 그녀에게 별반 해는 없을 것이었다. 오두막 안쪽에 놓인 책상에서 플러터샤이가 가져다 달라고 했던 책을 재빨리 찾아 들고 다시 그녀에게 뛰어가는 동안에는 녹색 불꽃이 다시 튀길 위험은 없었다. 시간여행자는 혹시 플러터샤이의 심성 덕에 자기가 내일의 에버프리 가시숲으로 다시 내쳐지지 않는 것이라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하모니는 이런 잡생각에 연연하기에는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하모니가 다시 헛간으로 돌아와 플러터샤이에게 책을 건네주었고, 그녀는 책을 받자마자 다급하게 표지를 펼쳐 열었다. 책장이 빽빽하게 모여 두꺼웠다. 플러터샤이는 먼지 묻은 페이지를 넘기며 책 중간쯤에 놓인 장(章, Chapter)을 찾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신실한 학자의 그것처럼 문단에서 문단으로 빗질하듯 흐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플러터샤이는 그녀의 옆에 누운 염소자리의 경련하는 머리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희미하게 헛간을 비추는 조용한 고통 속에서도 시간은 조금씩 흘러가 어느덧 삼십 분이 지났다. 하모니는 염소자리가 언제라도 한 줌 먼지로 변해 흩어지고 말 거라 느꼈고, 불안감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염소자리가 먼저 무너질지, 플러터샤이가 열심히 찾고 있던 게 먼저 찾아질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다급하게 책을 뒤적거리던 노란 페가수스가 풀이 죽어 뿜어낸 한 줄기 숨이었다. "제가 우려하던 대로네요." 그녀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플러터샤이, 뭐라고요?"
"혹시나 했었는데, 당신이 책을 가져다 주기 전까지는 도저히 확신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녀는 염소자리를, 그 중에서도 녀석의 빛나는 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모니, 도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하지만... 하지만... 이제 떠나셔도 미련이 별로 안 남을 만큼 충분히 도와 주셨잖아요... 그만 가세요..." 그녀는 슬픈 한숨과 함께 몸을 떠는 염소자리의 목가에 얼굴을 비벼주었다. "길토핀 공주님... 부디 자비와 축복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요!" 하모니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플러터샤이? 적어도 알려 주실 수는 있지 않아요? 얘가 죽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하모니, 당신은 정말 착한 분이에요. 가끔 선을 넘기는 하지만, 정말 좋은 분이죠. 제 일이니 당신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플러터샤이, 그냥 날 가만 두기만 하면 당신 일은 우리 일이 될 수도 있다고요!"
"당신에게까지 이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플러터샤이가 침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생명 하나가 죽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운데, 하물며 둘이라니요."
"하지만 누군가 도와 줄 포니는 필요하지 않겠—" 하모니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는 순간 엄청난 당혹감에 타오르듯 반짝였다. "잠깐... 둘이 죽는다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에요?"
플러터샤이는 부드러운 발굽으로 반짝이며 숨을 헐떡이는 염소자리의 염소 털 같은 갈기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레드게일 부서장님 말씀이 맞아요. 이 아이는 내일까지 버티지 못할 거에요. 부서장님은 클라우드데일 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예전의 성품을 모두 잃어버리셨어요. 동물들을 세밀하게 돌보는 방법을 잊어버리시고 만 거죠. 저희 관할 동물들의 수를 정확히 기록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녀는 염소자리의 반짝이는 한 쌍 뿔 사이를 부드럽게 만져 주며 말했다. "여기, 뿔 보이시죠? 뿔 사이에서 파란 기운이 반짝이고 있는 게 보이시나요?"
"어... 네, 네. 그런데요?"
플러터샤이가 되돌아보며 말했다. "아기를 품고 있어요. 이 아이의 몸이 지금 이렇게 떨리는 건 품고 있던 아기를 에너지의 형태로 낳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고요. 이 아이가 대지에 내려온 건 아기를 낳으려고 내려온 거죠.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무언가가 방해를 한 거에요. 그래서 실패한 거고요."
하모니는 자기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몇 줄기 건초가 날리다가 다리 주변에 다시 내려앉았을 때야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얘가... 얘, 얘가 지금 애를 낳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낳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아요, 하모니." 플러터샤이가 우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좀 전에 저한테 가져다 주신 책에 좀 더 상세한 설명이 나와 있었어요. 염소자리가 개체 수를 늘리는 방법은 우리 포니들이 취하는 방식과 아주 흡사해요. 임신과 출산, 바로 그거에요. 염소자리나 큰곰자리, 전갈자리는 자기 몸을 구성하는 에너지의 패턴을 복제해서 그것과 똑같은 에너지의 형태로 아이를 낳지요. 이 아이들은 대지 위에서 빚어진 생명체들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려면 반드시 땅으로 내려와서 마나 크리스털을 찾아야 해요. 그래야 아기들이 에너지를 자기의 피와 살로 변환시킬 수 있거든요. 대략 몇 달쯤 그렇게 지내고 나면 육체가 우주를 구성하는 에너지로 자라죠. 그러고 나면 다시 하늘에 있을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거에요."
"그렇다면... 이, 이 말은 마나 크리스털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하모니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장 말로 옮기고 있었고, 그녀는 생각의 물결을 비집고 헤엄치느라 머리가 아팠다. "혹시 그거, 에버프리 숲 속에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염소자리가 다른 데가 아니라 저기에 내려왔을지도 몰라요."
"그래요..."
"그럼... 그럼 당장 가서 크리스털을 좀 구해 오죠!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크리스털을 구해 오면 이 녀석을 살릴 수 있을지도—"
"하모니,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어 버렸어요. 보세요..." 플러터샤이가 천천히 몸을 돌려 경련하는 염소자리의 물고기 꼬리 같은 하반신을 가리켰다. 새빨갛게 달군 철로 그슬리기라도 한 듯, 녀석의 비늘은 갈색으로 변색해 있었다. "이 아이가 재빠르게 대지로 내려오던 중에 도저히 알 수 없는 우주장의 이상 때문에 심하게 다친 상처에요. 사실상 치명상이죠. 더 이상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거에요."
"그 우주장의 이상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이죠?" 하모니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플러터샤이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설령 이 아이가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해도, 얼마 안 되는 마나 크리스털로는 어림도 없답니다." 노란 페가수스가 슬프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기를 제대로 낳으려면 마나 크리스털로 가득한 동굴 안에 이 아이를 데려가야 할 거에요."
"그러면, 에버프리 숲에 그런 동굴이 있나요?"
"그럴 거라고 생각돼요."
"그럼... 글쎄... 혹시 이 물고기 반, 염소 반인 녀석을 데리고 그 동굴로 들어가서 아기를 마저 낳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이 아이를 옮기시겠단 말씀이세요? 몸 상태가 이런 아이를?"
"플러터샤이, 한 번 해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아뇨, 하모니. 그럴 가치는 없어요."
"하지만..."
"이 아이는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닿는 순간부터 죽을 운명이었던 거에요. 아이와 같이 죽을 운명이었단 말이에요." 플러터샤이가 침통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 아이의 커다란 몸집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돼요. 여기, 이 책에 염소자리들은 아주 연약한 동물들이라고 기술되어 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 아이들이 살아남았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에요. 혹시 우리가 삼 일 전에 이 아이를 찾아냈더라도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을 거에요."
하모니가 움찔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불현듯 신음하며 울부짖는 염소자리를 향하던 시선을 떼었다. "당신의 그 존경하는 레드게일 부서장이 여기 서 있을 때부터 죄다 알고 있었군요. 안 그래요?"
"아뇨...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어요." 플러터샤이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더했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은 잊어버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이 아이의 뿔을 가까이서 보는 순간,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좋아요,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단 말이군요." 하모니는 속으로 신음하며 순간 치미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 잘난 척이나 하는 늙어빠진 허풍쟁이가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한 비극을 예상했으면서, 그 아줌마한테는 한 마디도 안 했다는 거죠?"
"하모니, 그건 옆에서 지켜보기엔 너무 슬프고 우울한 모습이에요. 전... 전 안 그래도 슬픈 모습을 더욱 슬프게 만들 생각이 없었을 뿐이에요."
"레드게일이 그걸 못 본 척 하고 넘겨 줄 거라고 생각했나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플러터샤이가 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부서장님이 못 본 척 하고 넘겨 주실 리가 없지요. 언제나 그런 건 아니지만, 제가 알아낸 걸 부서장님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그건... 음... 그건 별로 상관없는 일이죠. 지금 중요한 건, 여기 염소자리가 평화롭게 잠드는 걸 보는 게 제 일이라는 거에요. 이 불쌍한 아이도 분명 이해하고, 알고 있을 슬픔에 잠기지 않고 말이에요. 아기를 잃는다는 건 제가 상상할 수 있을 최악의 고통일 거에요. 아이에게 생명을 주지도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더욱 슬픈 일이고요..."
플러터샤이가 괴로운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가 흐르는 숨의 꼭대기에서 내려옴과 같이, 두 눈이 젖은 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쓸쓸한 눈길로 하모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이제 당신도 아시겠죠. 참관인으로서의 당신의 업무는 이제 모두 끝난 거에요. 이건... 이건 포니빌 동물훈련사로서의 멋진 모습 아래 숨겨진 그림자와 같은 일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또 잔인할 정도의 진실이기도 하죠. 분명... 분명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는 죽음과 상실감, 그 모두를 이미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그러시겠죠." 하모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자기가 몇 살이었는지 떠올렸다. "하지만, 전 그것들을 알 필요가 있어요." 그녀는 염소자리의 한쪽으로 부드럽게 걸어갔고, 플러터샤이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플러터샤이, 당신과 같이 있을게요. 그리고 이 녀석들과도... 두 녀석들과도." 그녀가 뻗은 발굽이 경련하는 염소자리의 흰 갈기를 부드럽게 쓸어 내렸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내일의 황량한 돌 벽 위에 시커먼 가시덩굴로 묶인 한 이상한 해골의 모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플러터샤이의 부드러운 미소는 잊혀지지 않았다.
가장 훌륭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직접 행하는 것이 말로서 행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비참할 정도로 가련하게 죽어 가는 생명의 고통을 같이 짊어지는 것은 여신이 맡아 할 일이었다. 하물며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의 끊이지 않고 퍼지는 떨리는 울음소리에 둘러싸인 두 필멸자가 할 일은 당연히 아니었다. 밤은 천천히 흐르며 앞으로 나아갔고, 플러터샤이는 희미하게 빛나는 염소자리를 달래 주려고 몇 마디 말을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염소자리의 매에 하는 울음에 담긴 공허한 의미 앞에서 두 암말은 너무나 무력했고, 신의 말처럼 아름다운 말만이 염소자리의 떨리는 귀에 스밀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은 몇 시간으로 늘어졌고 늘어진 시간은 다시 깜박이는 영겁으로 늘어졌다. 헛간에 매달린 등잔은 여러 번 바꾸어 줘야 했다. 하모니는 플러터샤이의 지시에 따라 의약품과 약초, 기타 도구들을 가지러 몇 번 더 오두막집을 들락거렸다. 밤은 고통으로 가득한 몇 마일의 길이었고, 길 군데군데엔 염소자리가 발굽과 물고기 꼬리로 걷어차고 때린 자국이 남았다. 염소자리는 그러고 나면 다시 고통과 혼란의 나직한 신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스파이크와 스쿠틀루가 처음 다시 만나던 그 날, 스파이크는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뜻밖의 '선물', 녹색 화염을 뿜어주었다. 그녀는 그때까지 잿더미로 변한 화석들을 담은 살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의 정경 위에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춤이 다가오기 전으로,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밤의 검은 장막 너머로 돌아가지 못하고 갈기를 흩뜨린 채 쓰러져 있는 밤하늘을 담은 생명의 몸뚱이처럼 세계가 엉망이 되기 전의 과거로, 그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하모니는 염소자리의 몸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시간은 절뚝거리며 천천히 지나갔고, 그녀는 염소자리를 볼 때마다 몸을 떨었다. 플러터샤이가 염소자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얼굴이 더욱 자주 비벼졌고, 먼 친척을 만난 듯 나직한 목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그럴수록 마지막 포니가 보는 가시덩굴의 바다는 더욱 선명해지며 그 둘을 옭아매었고, 그 모습은 미래와 연결된 탯줄에 매달린 죽은 쌍둥이를 보는 것 같았다. 모든 운명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품... 그 자리에는 칠흑 같은 진실이 있었고, 그곳에는 에포나의 광휘가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의 헛간에, 내일의 에버프리 가시숲에 있을 이 녀석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재앙이 닥치던 그 순간에 플러터샤이와 염소자리가 함께 있었다는 뜻이라면, 이 녀석이 지금 이 길고 요동치는 밤을 무사히 넘기고 더 살았다는 뜻일까? 주인과 애완동물처럼 서로 껴안고 있던 이 둘을 큰곰자리가 찾아내 아무도 모르는 미래의 심연, 그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갔다는 이야기일까?
하모니의 숨결이 불현듯 날카로워졌다. 생각에 너무 깊이 골몰하고 있었다는 걸 그녀도 알아서 그랬다. 그녀는 생각이 발을 디디지 않았던 마음의 길목으로 생각을 밀어내었다. 플러터샤이의 숨결은 그녀가 보듬어 껴안고 있는 동물의 쌕쌕대는 숨소리와 흐름을 같이하며 천천히 느려졌다. 마지막 포니는 대지를 향하여 떨어지던 별자리처럼, 어떤 그럴듯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플러터샤이의 목숨을 끊은 건 재앙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쩌면 지금 당장 여기서 염소자리를, 그리고 저 노란 페가수스마저도 죽음의 운명으로 인도할 시간의 의지가 그녀를 데려간 걸지도 몰랐다.
하모니는 창 돋친 생각들을 찔러 죽였고, 곧장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득 찬 기억의 웅덩이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단 하나, 플러터샤이와 같이 보낸 어느 오후의 회색 빗줄기의 기억이었다. 빗줄기는 악마처럼 두꺼운 벽으로 자신을 가둔 감옥이기도 했다. 그녀는 헛간 바닥에 깔려 있던 건초 줄기가 자기가 내쉬는 숨에 이리저리 날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자기 숨이 얼마나 가빠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엔트로파의 발굽을 들고 휘청거리며 일어나 무감하게 오두막 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고, 이내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촛불이 비추는 그녀의 무릎과 관절들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날개는 천금처럼 무거웠다. 수백만의 팀버울프가 미래에서부터 그녀를 쫓아오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의 왼편에는 나무 계단이 눈에 확 들어오고 있었고, 하모니는 계단은 무시하며 예전에 자신이 망가뜨렸던 파란 테이블의 환영을 받치고 있던 자리를 지나 걸어갔다. 그리고 발굽을 들어 얄팍한 나무 문을 밀었고...
...일 층 욕실로 들어섰다.
"금방 나갈게!" 스쿠틀루가 큰 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하렴, 스쿠틀루." 플러터샤이의 샛노란 그림자가 벽난로에 장작을 몇 개 더 집어넣었다. 욕실 문은 지나간 꿈결처럼 살며시 밀려 닫혔다.
여덟 살 난 망아지는 혼자 어둠 속에서 허우적댔다. 죄책감이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며 보라색 갈기를 한 망아지의 얼굴을 찡그림으로 색칠했다. 아이는 자신의 뒤편에서 비에 젖어 가는 창문처럼 차가운 날, 두 번씩이나 스쿠터를 타고 떠나가려고 했다.
멀어져 가는 오후의 빛이 희미하게 꺾이며 들어와 아이 앞에서 춤추었고, 스쿠틀루는 그 덕에 바리케이드를 친 폐광 앞에 놓였던 표백한 비석의 흰 그림자처럼 흐릿하고 흰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댔다.
아이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힘없는 숨을 가쁘게 쉬어 가며, 아이는 자신의 발굽을 들어...
...그녀 앞에 놓인 개수대에 담갔다. 차가운 물이 그녀의 황동색 몸뚱이에 튀었다. 떨리는 숨은 죽어 가는 염소자리의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오던 신음처럼 쉬어졌다. 십자가가 되어 플러터샤이를 옭아매던 그 녀석의 신음처럼 말이다. 하모니의 눈가에 검은 가시덩굴이 엉겨왔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쓰고 있지도 않던 고글을 밀어 올렸다. 조그맣고 밝은 그림자가 그녀를 따라 했다.
호박색 눈동자가 불거졌다. 하모니가 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발굽은 매끄럽게 젖은 검은 갈기를 가르고 지나갔고, 그녀는 곧 이퀘스트리아를 떠나 버린 여신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알리콘의 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호박색 줄이 하나 대신 그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거울에 비친...
...커다란 검은 기념비와 닮아 있었다. 그림자 낀 욕실 바깥의 벽을 타고 흐르던 튕겨져 나간 수많은 빗방울의 그림자로 젖은 채, 수많은 이름들이 춤추듯 깜박이며 새겨진 검은 기념비와 닮아 있었다.
스쿠틀루의 시선은 상아색으로 새겨진 한 쌍의 날개를 찾아 기념비에 적힌 이름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숨이 말을 더듬듯 툭툭 끊겼고, 심장은 더욱 크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당장이라도 발굽에 불이 나도록 짤막한 다리를 놀리며 뛰어가 버리고 싶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비치는 아이의 얼굴 너머에는 검은 기운 하나만 가느다란 번개의 섬광으로 몸을 두른 영원한 어둠의 구름처럼 꿈틀거리며 빗방울의 그림자를 겁주어 쫓아 보내고 있었다.
아이는 떨리는 숨을 흘리며 자그마한 오렌지색 발굽을 들었고...
...여전히 거울 너머에 서 있던 누군가의 껍데기를 향해 뻗었다. 이 이상한 껍데기에 둘러싸인 몸이 아니라 진짜 자신을 바라봐 주는 포니를 만난 지 벌써 삼십 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모니의 무릎이 펴졌고, 투영된 혼과 거울 너머에서 과거로 돌아간 그녀를 놀리는 듯한 웃음을 웃으며 기다리는, 어떤 많이 배운 보라색 드래곤의 모습이 문득 비쳐 보였고, 이내 발굽이 닿았다. 거울이 차가워서 하모니는 몸을 떨었다. 과거만큼이나 앞으로 다가올 날들도 미리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과거는 자연스럽고 다채로운 색깔들과 또 그만큼의 비밀들을 품고 있었고, 마지막 포니는 그래서 온몸이 저릿해 오고 있었다. 바로 좀 전의 그것처럼...
...그녀를 집어삼켜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만들었던 그 숨가쁜 혼란의 순간처럼 말이다. 발굽에 닿은 거울은 그녀가 지금까지 꿈꾸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그녀를 막아서고 있었다. 더 빨리 달리려고, 더 강해지려고, 더 오래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포니의 그림자 안에, 그 모든 것들이 들어차 있었다. 아직 그 그림자는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버려진 포니빌의 주택가를 돌아다니던 그녀의 어두운 여행길에서 울리고 있었다. 자신의 흐느낌이 자신에게만 들릴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라리 그러길 바라면서 걸어가던 그 길에서 울리고 있었다.
투영된 엔트로파의 발굽이 무심하게 거울을 지그시 눌러 보고 있었다. 하모니는 흠칫 놀라며 뻗었던 발굽을 거두었고, 망아지 정도의 발굽이라면 쉽사리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동그라미가 생긴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자국은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차가운 얼음이 그녀의 황동색 관자놀이를 타고 슬금슬금 천천히 내려오는 것 같았고, 그녀의 심장은 엄청난 속도로 약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숨을 내뱉으며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폐 속이 검은 가시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날개가 벽에 붙은 선반에 부딪히며 무언가를 툭 쳐 넘겼다. 무언가 깨지는 듯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포니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숙였다. 도자기로 만든 토끼 장식품이 욕실 타일 위에 산산이 부서져 흩어져 있었다. 조그맣게 훌쩍이는 듯한 소리가...
...어린 스쿠틀루의 입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아이는 거울 위에 남은 둥그런 자국에서 몸을 돌리며 무언가를 향해 몇 걸음 다가갔다. 아래를 흘끗 쳐다보니 새하얀 토끼 모양 장식의 흰 파편들이 바닥 위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이의 다리가 떨리고 있어서, 스쿠틀루는 욕실 바깥으로 엉덩방아를 찧듯 주저앉았다. 숨소리가...
...방을 건너왔다. 하모니는 진땀을 뚝뚝 흘리며 노란 눈을 번쩍 밀어 떴다. 흔들리는 시야 바깥에는 한 노란 페가수스가 녹색 소파 위에 누워 죽은 듯 잠자고 있었다. 오렌지색 형체가 급히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걸음 소리가 컸다.
마지막 포니는 꺅 하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두 앞다리를 들어 두 눈을 가렸다. 그녀는 두 뒷다리로 흔들거리며 서 있다가 이내 오두막집의 현관문 쪽으로 쓰러지며 굴렀다. 그녀는 집 바깥 잔디밭까지 굴러가 아무렇게나 다리를 벌리고 엎어져 버렸다. 따뜻하던 치어릴리의 학교 운동장 위를 날아다니던 커다란 나비들이 보이지 않는 몸으로 춤추고 있었다. 여신의 심장 소리가 영원히 남을 그 날의 아름다운 오후에 쏟아지던 얼어붙은 빗소리와 함께 그녀의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래서 월안 마법을 걸어 둔 고글 너머로 보이는 모습과 같이 회색 잿가루 묻은 그림자를 넘어 비행선으로 날아가 버리라고, 자기를 쫓아내고 싶어졌다. 시커멓고 참혹하게 뻗어나가 사라진 해와 달처럼 과거와 미래를 묶어두는 가시숲의 가시덩굴 너머로 돌아가도록, 자기를 다그치고 싶어졌다. 그 날 아이가 얼마나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던지, 얼마나 강하게 강철 격벽을 몸으로 두들겼던지, 레인보우 대쉬가 두 번 다시 비밀 저장고 너머의 화염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으리란 것을, 그녀도 알았다.
마지막 포니는 씨근대는 숨을 내쉬며 다시 자신의 중심을 찾아 끌어안았다. 지난날의 추웠던 밤마다 끌어안고 잠들었던 차가운 스쿠터처럼 중심은 안겨왔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아무 감각 없는 몸을 찔러왔다. 다시 한 번 더, 그녀 위로 떠오른 낯선 밤하늘을 향해 떨리는 눈을 떠 보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
"정신 차려... 씨발, 정신 차리라고! 히드라랑도 싸워 봤고... 그 망할 놈의 팀버울프들도 사냥해 봤잖아... 난 지금 이따위로 구는 것보다... 강한 여자라고!" 그녀의 씨근덕거리는 숨은 차갑고 심드렁한 전등 아래서 헐떡이며 아이를 낳으려고 몸을 비트는 죽어가는 어미의 그것처럼 소용없는 것이었다. "스파이크, 이 망할 놈아. 적어도 이런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는 얘기해 줘야 할 거 아냐... 적어도 씨발 이런 썅놈의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는 얘기해 줬어야 할 거 아니냐고!"
그녀는 혼자서 몸을 떨었다. 그녀는 항상 혼자였다. 과거와 미래는 전혀 다르지 않았고, 끝없는 길 위에 덮인 그림자를 흔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녀는 혼자서 황무지 한가운데서 가장 어둡고 시커먼 곳으로, 가시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과거를 따라가며 즐기는 이 놀이도 하등 다를 바 없었다. 혹시 그녀가 슬퍼하는 플러터샤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춤추었다 해도, 그녀의 바꿀 수 없는 운명에 무언가 다른 흔적을 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저 페가수스의 몸뚱이가 거대한 돌 벽에서 떨어지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건 큰곰자리 때문에 부스러지고 뭉개지며 떨어진 것일 거였다.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커다란 우스갯소리 끝에 찍힌 커다란 파란색 느낌표와 같은 그 녀석 말이다. 그러면 마지막 포니는 절대로... 절대로 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였다.
"아니다... 스파이크, 다 얘기해 줬었구나." 하모니는 쪼그리고 앉아 자신을 더욱 강하게 껴안으며 찔러오는 별빛 아래서 몸을 떨었다. 그녀의 영혼이 숲 속 그림자들 속에서 뽑혀 나오기라도 한 듯,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추억이 찾아왔다. "어떻게든... 나한테... 나한테 모든 걸 다 얘기해 줬었구나."
그녀는 불현듯 울지도 못할 만큼 몸이 피로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다리는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하모니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천천히 일어나 다시 헛간으로 향한 느린 걸음을 걸어갔다. 그녀는 순간 가고 있던 방향과는 정반대 쪽으로 걸어 다시 오두막집의 한쪽으로 걸어가 볼까, 하는 변덕을 부려 몸을 돌렸다. 아이가 고집을 부리며 시계의 분침을 거꾸로 돌리듯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지금 당면한 이 역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하모니는 여전히 운명의 침과 바늘을 온몸에 꽂은 채 무언가를 향해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무서울 정도로 익숙한 창고 옆에 목재가 가득 쌓여 있었다. 몇 개 널빤지가 호기심으로 그녀의 영혼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찬란한 마녀 재판을 보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포니는 호박색 눈을 가늘게 뜨며 아무 감정 없는 듯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내버려진 외로운 목재들이 익숙해 보이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시선이 깊게, 더욱 깊게 떨어지는 곳에는 파란 페인트로 마감한 나무 판들이 있었다. 그녀는 어느 따뜻했던 밤을, 죄책감과 영광의 밤을 생각했다. 그 날은 아직도 그녀의 텅 빈 영혼 안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하나는 남았노라고, 영원히 노래하고 있었다.
"흐음......" 하모니의 얼굴에 창백한 미소가 번졌다. "플러터샤이, 그냥 쓸모 없는 걸 못 버리는 성격이야, 아니면 정말 착한 거야?"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헛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진실을 얻으러 걸어가는 발걸음은 질질 끌리고 있었다. 하모니는 깊이 잠든 플러터샤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을 떨며 신음하는 염소자리의 기운 안에 감싸인 채 천사처럼 잠든 플러터샤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모니는 이제 답을 알 것 같았다.
눈앞의 광경은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고개가 부드럽게 둥근 원을 그리며 돌아갔고, 몇 마디 위로의 말을 속삭였다. 저 거대한 동물을 죽음으로의 길로 평화로이 안내할 수 있을 정도의 말이었다.하모니는 최대한 조용조용한 걸음으로 헛간 안쪽에 놓여 있던 목제 트렁크를 뒤적거려 몇 개의 간단한 목공도구를 꺼내놓았다. 여성스러운 조용한 성격을 한 포니가 몇 년 동안 그대로 방치해 놓았는지, 하나같이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다.
하모니는 다시 나무가 쌓여 있던 곳으로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고, 눈에 보이는 파란 나무란 나무는 모두 찾아내 긁어 모았다. 그녀는 이내 찾아낸 조각들을 별빛 머금은 밤이슬이 맺힌 잔디밭 위에 하나하나 올려두었다. 플러터샤이의 오두막 바로 옆이었다. 하모니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그 앞에 가 앉았고, 곧 자기를 과거에 붙잡아 두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좁디 좁은 비행선의 선실 안에 드리운 고독의 그림자로부터 자기를 꺼내 준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는 목공도구를 발굽에 쥐고 작업 준비를 시작했다.
"사소한 것들이죠. 한 번에 하나씩밖에 하지 못하지만. 여자애처럼..."
플러터샤이의 두 눈이 홱 당겨지며 열렸다. 흐릿한 태양빛이 벌써 그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말도 제대로 못 하며 튕기듯 일어났다. 한 쌍의 황동색 다리가 뒤에서 부드럽게 안아왔다.
"자... 자, 진정하세요, 플러터샤이. 괜찮으니까..."
"하지만 잠들어 버렸는걸요! 세상에... 염소자리는..."
"괜찮다니까요." 하모니는 말을 마치고 입술을 깨물었다. "음... 뭐, 제 말은... 뭐 실수하신 건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에요." 그녀는 아직도 몸을 떨고 있는 염소자리의 별이 총총한 몸뚱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은 여전히 헛간 한쪽에 쌓아 둔 건초더미 위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뭐 아직 일이 끝난 게 아니란 말씀이에요, 플러터샤이."
플러터샤이가 서둘러 염소자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딱딱하게 뭉친 근육에 몸을 움찔하면서도 거품처럼 자라난 녀석의 흰 갈기를 부드럽게 쓸어 주고 있었다. "혹시 아파하지는 않았나요? 약제가 좀 더 필요한 상황은 있었—"
'캔틀롯 왕궁비서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슬 내린 아침의 반짝이는 빛에 서서히 흐려져 가는 그림자에 침통한 듯 앉으며 말했다. "만일 그랬으면 진작에 당신을 깨웠을 거에요, 플러터샤이."
"아... 알았어요..." 플러터샤이가 나직이 말했다. 그녀는 신음하는 염소자리의 갈기를 계속해서 쓸어 주면서도 이마 앞으로 흘러내리는 분홍 갈기를 톡 쳐 뒤로 넘겼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버틸 줄 몰랐어요. 정말로 대단한... 대단한 아이에요."
"마지막을 맞이할 때 옆에 있어 줄 훌륭한 호스피스가 있으니까요." 하모니가 연약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 때문은 아닐 거에요. 절대로." 플러터샤이가 겸양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삼켜지지 않는 침을 억지로 삼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어머니의 의지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모니는 불편한 듯 몸을 이리저리 꼬았다. 그녀는 검은 갈기 한가운데에 줄이 그어지듯 자란 호박색 갈기를 한쪽으로 쓸며 나직이 말했다. "플러터샤이, 당신이 그랬잖아요. 염소자리는 땅 위에 내려오기도 전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요. 언제였을지 모르겠지만, 포기는 했을 거에요."
"저도 알아요, 하모니."
"우리가... 우리가 헛된 희망을 줄 수는 없어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제가 말해 드린 건 이 아이의 희망이 아니에요. 전 그저..."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플러터샤이는 염소자리가 흘리는 우주진을 바라보며 떨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저... 언젠가는 엄마가 되는 게 제 소원이었으니까요."
하모니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왠지 하나도 놀랍지 않은데요?"
"전 언제나 그렇게 되기를 소망해 왔어요." 플러터샤이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염소자리의 경련하는 귀를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소중하지만, 그만큼 연약한 존재들을 돌봐 주고, 이 세상으로 데려와 제가 배운 지식들을 나누어 주고, 그 아이들이 살아가며 만날 수 있을 최대한의 기쁨과 열망이 함께하길 빌어 주는 것보다도 제게 행복한 일은 없답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왕궁비서관'을 바라보았다. "전... 전 그래서 제가 동물들을, 후브즈 어머님의 귀여운 작은 망아지를 돌봐 주는 일에 재능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이 슬쩍 흘러 지나갔고, 그녀는 다시 그림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의... 연장이자 확장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니까요."
하모니는 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마지막 포니는 다음으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엄마가 되면 되잖아요?" 희망 어린 웃음이 번졌다. "왜 엄마가 되지 않는 거죠, 플러터샤이?"
플러터샤이의 두 귀가 축 처졌다. 그녀는 죽어 가는 염소자리의 별빛 어린 정수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모니는 짓궂게 눈썹을 치켰다. 노란 솜털을 한 포니의 한쪽을 바라보면 대답이 나오기라도 할 듯, 그녀는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플러터샤이가 마침내 입을 열자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냥... 그 꿈을 깨는 데는 우주 끝에서 여기까지 떨어져 내리는 것보다도 더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둘게요.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꿈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지막 포니는 그 말을 듣고 풀이 죽었다. 그녀는 그 이야기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몸을 음울하게 웅크리듯 더욱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렇게 해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꽃피듯 일어나는 고요한 아침이 그녀의 눈꺼풀을 극한까지 잡아당기고 있었고, 하모니는 그저... 나약함과 무력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바로 그 때, 엄청나게 커다란 포효가 들려왔다. 염소자리가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헛간은 힘없이 요동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염소자리의 새하얀 눈동자에 타오르는 듯한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고, 녀석은 깔고 누워 있던 건초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맙소사!" 플러터샤이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외쳤다. 그녀는 어떻게든 다시 염소자리를 진정시켜 보려고 녀석의 거죽을 잡고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우왓! 얘 왜 이래요?" 하모니도 숨이 막히는 건 마찬가지였고, 순간 당황한 시선은 플러터샤이의 모습을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 단말마인가요? 죽어 가고 있는 건가요?"
"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에너지를 끌어 모으고 있어요!" 플러터샤이가 몸을 낮게 숙이며 경련하는 염소자리의 귓가에 몇 마디 말을 속삭여 주었다. 녀석은 전혀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모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월석 가루 너머로 보이던 망령 같은 그림자들과 시커먼 가시덩굴들이 그녀의 호박색 눈 위로 깜박이며 지나갔다. "혹시... 혹시..." 그녀는 녀석의 염소 같은 머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머리 위로 돋아난 뿔 사이로 몇 줄기 푸른 스파크가 튀기고 있었다. "플러터샤이, 혹시 이 녀석, 아기 낳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해요!" 플러터샤이가 즉시 대답했다. "근처에 마나를 공급해 줄 수 있는 물건 같은 게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못 믿으시겠다면 책을 찾아보세요!"
"어젯밤에 말씀해 주셨던 그 마나 크리스털 아닐까요? 이 녀석이 찾아냈을 수도 있잖아요?"
"이 정도 거리에서요? 여기서 에버프리 숲 한가운데에 있는 동굴까지 적어도 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어요! 하모니, 솔직히 말해 드리자면 그건 그 자체로 불가능해요!"
"그럼 대체 왜 얘가 이렇게 발작하는 건데요, 이런 젠장!" 하모니가 떨리는 발굽을 들어 염소자리의 두 뿔 사이에서 번쩍이며 커져 가는 에너지 스파크를 가리켰다. "난 동물학자가 아니지만, 적어도 저걸 보아하니 아기를 낳으려는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요!"
"만일 정말로 아이를 낳고 있는 거라면, 아마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근처에 마나를 담을 만한 공간에 담으려고 하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건..." 플러터샤이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의 동공이 급격히 좁아지고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아직도 경련하는 염소자리의 물고기 꼬리를 붙잡았고, 진땀을 뻘뻘 흘리며 황동색 페가수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모니! 지금 몇 시에요?"
"모... 모르겠는데..." 하모니는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며 중언부언하며 말했다. "두 시간 전에 해가 떴어요. 당신을 보고 있었고, 그 때부터 놓친 것 같은데요. 왜 그러시죠? 뭐 불안한 거라..."
"좋은 아, 아, 아, 아, 아침이에요, 플러터샤이! 아침 식사를 좀 가져왔답니다!"
플러터샤이는 유령이 자기 몸을 건너 지나가기라도 한 듯 헉 소리를 냈다. 염소자리는 자기의 두 발굽을 휘청대며 휘두르고 있었고, 주둥이는 떨리는 통곡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 하모니!" 플러터샤이가 헛간 바깥을 향해 발굽을 뻗었다. 쾌활한 목소리가 방금 들려온 방향이었다. "빨리 저리로 날아가세요! 오시지 못하게 하셔야 해요! 돌아가게 하셔야 한다고요!"
"무슨 말이에요? 플러터샤이, 이해가 안 돼요! 대체..."
"딩키!" 플러터샤이는 말 그대로 고함치며 말했다. "딩키를 떼어놓아야..."
헛간 안에 울리던 소리들은 전부 염소자리의 거대한 포효 아래 묻혀 버렸고, 녀석의 뿔 사이에서 응축된 기운은 이제 푸른 회오리바람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하모니의 호박색 눈동자에 에너지 덩어리가 비치는 순간, 그녀도 이제 알겠다는 듯 턱 막히는 숨으로 말했다. "아, 망할!" 하모니는 황동색 잔영을 남기며 헛간 바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날개가 아침의 공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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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보렴, 머핀!" 더피 후브즈가 활짝 웃으며 플러터샤이의 오두막을 향해 난 길을 따라 종종거리며 걸어갔다. "화, 화, 화, 화, 환영 파티란다!"
"네?" 헬멧을 쓴 조그마한 유니콘 하나가 더피의 우편 가방 안에 앉은 채 조그만 하품을 했다.
"어머님! 어머님!" 페가수스 하나가 공중에 둥둥 뜬 채 소리쳤다. 그녀는 다급하게 황동색 다리를 마구 흔들며 재빨리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다람쥐 아저씨!" 사시 페가수스가 기운차게 앞다리를 흔들어 인사했다. "도넛 좋아하세요?"
딩키의 눈이 불현듯 가늘어졌다. 학식 담긴 눈망울에 풀 덮인 언덕 둔덕 너머에서 흘러오는 밝은 푸른색의 섬광이 비쳤다. "음..." 아이는 불안한 듯 가방 안쪽에서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어, 엄마...?"
"이런 제기랄, 더피!" 하모니가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돌아가요! 가라고요! 딩키 데리고 빨리..."
폭발음이 들려왔다. 밝은 푸른색의 마력 덩어리가 헛간 한쪽에서 터지듯 튀어나왔다.
하모니는 급히 몸을 돌렸다. 눈은 커다래져 있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곧장 에너지가 폭발한 곳을 향해 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별빛 어린 번개가 번쩍였고, 그 다음 순간 그녀는 뒤로 칠 미터쯤 날려갔다. 염소자리가 뿜어낸 에너지가 그녀를 치고 날아간 것이다. 그녀의 시야에 순간 광기의 에메랄드 빛 혓바닥이 날름거리는 것이 보였고, 과거의 흐릿한 지평선은 다시 기적적으로 예전 같은 모습을 되찾았다. 영겁의 통곡이 그녀의 세계를 흔드는 것을 그녀는 느꼈고, 회색 재 깔린 굴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 소리는 처절했다.
하모니는 칫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다시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녀는 녹색 연기가 피어나는 이마를 문질렀고, 그녀의 옆으로 누군가가 재빨리 달려오는 듯,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하모니, 괜찮으세요?"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스며 들어왔고, 곧 다리 하나가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왔다.
"오늘 죽지는 않으려고요. 안심하세요." 미래로부터의 방랑자가 툴툴대며 말했다. 그녀는 현기증이 이는 와중에도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염소자리는..."
플러터샤이가 숨을 토해냈다. "죽었어요. 에너지가 몸 바깥으로 빠져 나오자마자 곧 죽어 버렸답니다. 그 아이의 몸은 이제 한 더미의 우주 먼지로 변해 버렸어요."
"먼지라고요?" 하모니의 무감한 영혼은 이제 순간 찾아오는 환희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것이 오랫동안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건..."
플러터샤이는 숨을 헐떡이며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포니에게는 가장 확실한 대답이었다. "아, 안 돼, 신이시여, 안 돼!" 그녀는 곧장 앞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한 쌍의 지친 호박색 눈동자가 플러터샤이의 뒤를 쫓았고, 곧 그을음이 잔뜩 묻은 채 움푹 파인 구멍으로 향했다. 그 옆에는 연기 나는 조그마한 헬멧 하나만 남아 있었다. 헬멧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모니의 떨리는 시선이 고개를 들어 몸을 떠는 회색 페가수스를 향했다. 그녀는 두 앞다리로 경련하는 아이 유니콘을 안고 있었다. 조그마한 뿔은 태양보다도 더 밝게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딩키의 어머니는 절망적으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의 두 눈은 눈이 멀 정도로 밝게 번쩍이고 있었다. 하모니 호의 보일러 일만 개에서 뿜어내는 열보다도 더욱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증기가 피어나며 대기를 적셨고, 아이의 눈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고일 새도 없이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딩키의 입술은 끝없이 경련하며 떨리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말들만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머, 머, 머, 머핀? 머핀, 아가, 제발 말 좀 해 보렴! 제발!" 더피가 고개를 들자 핼쑥해지고 창백해져 가는 얼굴이 보였다. 안색이 평소보다도 배는 안 좋아 보였다. 더피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플러터샤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 파, 파, 파, 파란 빛은 대체 뭐에요?"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플러터샤이는 다리를 덜덜 떨며 작은 유니콘의 머리를 껴안았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의 번쩍이는 뿔의 희미한 가장자리를 쳐다보았다. 빛이 너무 밝아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는데! 최악이야!"
하모니의 몸이 비틀거리고 있었고, 숨은 가빠지고 있었다. "지금 저 녀석의 태어나지 못한 꼬마가 딩키 뿔에 들어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뭐라고요?" 더피의 모습은 순간 가련해 보였다. "어떤 녀석이요? 태어나지 못한 아기는 또 뭐고요? 플러터샤이, 내 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에요?"
"그 에너지 전부가 딩키 뿔에 들어가고 만 거에요. 하지만 그걸로는 염소자리의 정수를 버텨내기에 턱없이 모자라요!" 플러터샤이가 마른침을 삼켰고, 떨며 말했다. "다 자란 유니콘이라 해도 그 정도의 기운을 버텨낼 수 없다는 말씀이에요! 포니의 신경계 자체가 그걸 버티지 못한다고요! 백 개의 마나 샘이 터져나가는 것 정도의 압력으로 붕괴되고 말 거에요!"
"대체... 으.... 플러터샤이,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페가수스 셋이 모여 선 한가운데서 홀로 반짝이는 곳을 향하던 하모니의 시선이 굳어 가고 있었다. "딩키 뿔이 터진다는 말씀이세요?"
"아니에요, 하모니." 플러터샤이의 목소리가 뚝뚝 굴러 떨어지는 눈물 아래로 떨어졌다. "딩키는 죽고 말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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