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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포니 최후의 날

Chapter 27. Everdarling

by Mergo 2019. 8. 25.

"스쿠틀루, 어디 안 좋아?"

 

"으음? 어?"

 

"괜찮은지 물어 보려던..."

 

"어! 어, 당연하지. 흠흠. 난 괜찮아, 플러터샤이." 스쿠틀루가 현기증에 아찔해하면서도 아닌 척, 오두막 거실 벽난로 앞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가 흡사 실크 스크린으로 찍어낸 그림처럼 창 밖 세상을 가려 밖이 서서히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근데 왜?"

 

"나올 때 조금 어지러워 하는 것 같아서......"

 

"아...... 피, 별 거 아니야." 아이는 히죽거리며 발굽을 가로저었다. "집에서 살아 본 적이 없으니까." 스쿠틀루는 숨을 들이마시다가 순간 흠칫하더니 다급히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아, 내 말은 비 때문에 집에 붙어 있는 게 힘들단 말이었어! 기상관리팀 이 양반들이 아주 작정하고 바닷물을 죄다 퍼다가 들이붓는 것 같다니까."

 

"비 하니까 전에 내렸던 그 비랑 지금 내리는 비랑 거의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 플러터샤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저번에......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처음 포니빌에 온 지 일 년 하고도 조금 더 됐을 적에 엄청나게 거센 뇌우가 와서 다른 페가수스들이 그거 수습하느라 고생했던 게 기억났거든."

 

"아, 그러고 보니까 애플블룸이 전에 얘기해 준 게 하나 있었는데." 스쿠틀루는 겨우 슬쩍 웃어 보이고 말을 이었다. "애플잭, 래리티, 트와일라잇 스파클, 그리고...... 나무 안에 있던 다른 나무 하나가 엮인 얘기였지, 아마."

 

"음......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마감을 좀 더 깔끔하게 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나무 안에 나무가 서 있다니, 그게 상상이 가? 무슨 네모난 나무나 뭐 그런 것 같잖아."

 

"나도 그런 나무는 되기 싫어."

 

스쿠틀루는 히죽히죽 웃으며 조용히 오렌지색 혀를 날름거리는 벽난로의 불길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 폭풍이면 마을에 쌓인 온갖 지저분한 게 전부 씻겨 내려갈 것 같은데."

 

"포니빌에 온갖 먼지랑 티끌이 앉아 있었다는 건 전혀 몰랐어. 시장님께서 마을 청소 작업을 지시하셨을 줄 알았는데."

 

"정말이야." 스쿠틀루는 흐려지며 죽어 가는 그림자 속으로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어느 곳이든 지저분한 데는 늘 있기 마련이니까."

 

"어...... 음...... 그렇구나......" 플러터샤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했다.

 

스쿠틀루도 발굽을 꼼지락거렸다. 가득 쌓인 땔감들이 마치 연약한 목탄이나 상아색 돌멩이처럼 가볍게 지글거리며 타오르다 이내 흰 잿가루로 변해 부서지고 무너져 가고 있었다. "플러터샤이?"

 

"왜 그러니, 스쿠틀루?"

 

"비 때문에 기념비가 떠내려가거나 하진 않겠지?"

 

"음?" 푸른 눈동자가 놀란 듯 깜박이더니, 이내 눈썹이 치켜져 올라갔다. "아아, 에버클리어 추모공원에 있는 것 말이니?"

 

스쿠틀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짙은 분홍색 갈기가 노란 페가수스를 향해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플러터샤이가 대답했다. 추모공원 관리자로서의 여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추모공원이라면 아주 긴 세월을 견뎌낼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란다. 돌아가신 분들과 그분들의 명예, 그리고 그분들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보존할 자리니까. 상식이 있다면 하루 이틀 날씨 궂은 정도로 추모공원이 무너지게 만들진 않았겠지."

 

"그럼 그 기억이란 건 대체 뭔데, 플러터샤이?"

 

"응?"

 

스쿠틀루가 마른침을 삼키며 되물었다. "영원히 남을 무언가......야?"

 

물음에 떨어진 답은 불이라도 단번에 꺼트릴 정도로 차가운 것이었으나, 왠지 아이는 전혀 풀이 죽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온 평생 동안 아이의 보라색 눈동자에 비친 건 오직 잿더미 하나뿐이었으니까.

 

"영원한 것은 없어, 스쿠틀루. 하지만 모두가 계속해서 그 기억을 갖고 살아간다면 포니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기억이 우리의 삶을 보다 특별하게 해 줄 거야. 그 이상을 바랄 수 있을까?"

 

스쿠틀루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 이상 바랄 수 있어." 아이는 포개놓은 발굽 위에 얼굴을 올려놓으며 덧붙였다. "다만 그러지 않을 정도로 철이 들었을 뿐이지."

 

"난 행복해지고 싶다면 무언가를 자꾸 바라기보다는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단다."

 

"언니가 생각하는 그거 있잖아, 혹시 그 '친절'의 원소와 관련이 있는 거야?"

 

"그게 바로 내가 추모공원 관리자로 자원한 이유라고만 해 둘게, 스쿠틀루."

 

"영원한 게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데?"

 

"친절은 기억과 닮은 거거든.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앉아만 있으면 우리의 훌륭하고 좋은 모습들은 그냥 흩어져 사라지고 말 거야. 자, 스쿠틀루, 이제 이해가 좀 되니? 영원이란 '지금'과 같은 말이란다. 우리 눈 앞에서 흘러가는 '지금', 진심과 친절을 담아 노력한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 때를 걱정할 이유는 없지 않겠니?"

 

스쿠틀루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아이의 지난 삶으로는, 날 수 없는 페가수스의 삶으로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 하면......

 

 

......딩키의 작은 몸이 고통으로 마구 비틀리는 것만 보고 있기에도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떨리는 뿔 안에 갇혀 맥동하는 광기만큼이나 두려운 상아색 빛이 아이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유니콘 꼬마는 오두막집 거실 구석에 놓인 푹신한 녹색 방석 위에 누워 있었다. 몇 번인가 나무와 발굽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오렌지색 실루엣이 유령처럼 조용히 삐걱거리며 안개처럼 나타났다.

 

마지막 포니는 혀를 차고 두 눈을 꽉 감았다. 하모니는 발굽을 들어 황동색 얼굴을 비비고 다시 눈을 열어 떴다. 다시 눈을 뜨자 몸을 떨며 자기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 주는 회색 페가수스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의 네 다리를 잡아 주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으으으으으...... 굽이쳐 흐르는 석고의 강이여!" 딩키가 미친 듯이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아이의 악물어진 이 사이로 신음이 흐를 때마다 딩키의 이마가 악에 받힌 듯 엄청나게 일그러졌다. "맹렬히 회전하는 칼날이 상처를 다시 벌리나니! 난 알리코니아의 무지개 하나...... 하나도 손대지 못했어, 닿을 수 있었는데!"

 

"가엾은, 가엾은 우리 머핀." 더피가 두 노란 눈동자에 눈물을 가득 담고 몸을 떨며 아이의 갈기에 뺨을 비볐다. 아이의 뿔이 하얗게 달아올라 있어서, 자칫하면 눈이 멀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 머핀이 대, 대, 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자신조차 자기가 뭘 말하고 있는지 모를 거에요, 어머님." 플러터샤이가 오두막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쓸쓸한 한 줄기 숨을 뱉어냈다. 여인이 여러 개의 단지를 뒤적이며 몇 가지 약초를 꺼내 섞고 물약을 붓는 동안에도 갈기는 춤추는 분홍 깃발처럼 흔들렸다. "일종의 실어증 같은 거죠."

 

"실, 실, 실...... 실어, 실어, 실어...... 그게 뭐죠......?"

 

"하고 싶은 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해서 전달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플러터샤이는 가엾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만들던 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금 딩키의 머릿속은 수백, 수천의 마력 선이 뒤엉킨 채 한데 얽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상태에요.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마력을 담는 그릇이 되어 버렸다고요. 그 누구도 딩키가 하는 말 속에 담긴 수많은 정보를 전부 받아들일 수 없을 거에요."

 

"이렇게 된 게 전부 다 그 염소자리 아기가 우리 머핀 속으로 들어간 것 때문인가요?" 더피가 두려움에 떨리는 눈으로 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와 하모니 양은 죽어가는 염소자리를 돌보고 있었어요. 녀석은 임신한 채였는데, 엄마가 마지막 순간 아기의 정수를 에너지 덩어리로 바꾸어 밖으로 내보냈어요. 근처에서 마력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 바로 딩키의 뿔이었고요. 아아......" 플러터샤이가 약을 짓다 말고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의 샘이 고여, 입을 여는 여인의 몸이 떨렸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아파하던 그 가엾은 녀석에게만 신경 쓴 제 잘못이에요! 어머님이랑 딩키가 아침 일찍 올 거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던 거라고요! 제가 나약하고 생각이 얕아서 지금 딩키가...... 딩키가......"

 

"플러터샤이." 하모니가 두 앞다리를 노란 페가수스의 어깨에 얹어 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일단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 해요. 일단 딩키한테 줄 약부터 만들어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해결하도록 하죠."

 

"하나하나 천천히 하자고요?" 더피가 헉 소리를 내며 물었다. "우리 가엾은 머핀이 죽어 간다고요!"

 

"어머님, 따님은 지금 죽어 가는 게 아니라......"

 

"조금 전 그 말은 뭔데요! 밖에서 했던 말 말이에요! 플러터샤이가 조금 전에—"

 

"플러터샤이 양이 조금 전 뭐라고 했는지 우리 모두 다 똑똑히 들었어요, 그래서 알아요!" 하모니가 으르렁거리듯 쏘아붙이며 아기 유니콘의 고통으로 얼룩진 비명으로 물든 회오리바람을 만들기라도 하는 듯 홱 몸을 돌렸다. 여자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으나 이내 아이의 번쩍이는 얼굴을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해야 해요. 이해하셨죠?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하고 싶으시겠죠, 그러니 저희가 하자는 대로만 해 주세요. 아, 젠장! 생각 좀 하게 내버려 두시기만 하면 돼요!"

 

하모니가 빽 지른 소리에 온 오두막이 울렸고, 뇌도 같이 울렸는지 먹먹한 침묵이 닥쳐왔다. 더피는 떨고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조용히 약만 짓고 있었다. 그 동안에도 고통으로 얼룩진 딩키의 신음이 오두막을 적시고 있었다.

 

하모니가 강한 콧김을 뿜었다. 여자는 자신의 고통스런 숨결이 잦아들 때까지 두 황동색 발굽을 들어 호박색 줄 그어진 검은 갈기 깊숙이 파묻고만 있다가 기계적으로 신음하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좋아, 지금 상황을 정리해 보자. 딩키의 뿔 안에 물고기 염소 꼬마가 처박혀 있단 말이지. 그래, 참 엿 같은 일이야. 하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면 꺼낼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있을 거란 말이지. 여긴 이퀘스트리아고, 알리콘 공주가 자기 힘만으로 태양을 띄우는 나라란 말이야. 다만 우리 중 그 누구도 마법이나 뭐 그런 게 관련된 일에 말려들면 쉽게는 해결하기 힘들어. 그러니까, 일단 침착하자! 분명 방법은 있을 거야. 단순한 통계적 가능성만으로 따져 봤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라도 방법은 분명히 있어."

 

"약이 다 되었어요." 플러터샤이가 나직이 말했다.

 

하모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이제 딩키에게 먹이세요."

 

플러터샤이가 미끄러지듯 달려가 아기 유니콘이 누운 녹색 방석 옆에 쪼그리고 앉자 더피도 조용히 옆에 가 앉았다. 아이는 경련하고 있었다. "딩키, 나야. 네 보모 플러터샤이란다. 내 말 들으렴." 플러터샤이는 죽처럼 질척이는 약이 담긴 나무그릇을 들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좀—"

 

"아아아으! 앞 못 보는 맹금(猛禽)! 깨어지고 부스러진 검은 눈빛이 하늘에 닿을 때마다, 그 자리도 깨어지고 무너지리라!" 딩키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자 희게 달아오른 뿔이 더욱 밝고 뜨겁게 번쩍이며 방을 비췄다. "하으으윽! 놈들을 벌하라, 천벌로서 놈들을 벌하라!"

 

플러터샤이가 깜짝 놀라 움찔했고, 그 통에 들고 있던 나무그릇이 휘청거려 반쯤 떨어질 뻔했다. 그 와중에도 여자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플러터샤이는 절로 숨이 막히는 흐느낌을 울더니 우편배달부이자 아이의 엄마를 향해 필사적인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아이를 좀 붙잡아 주시면......"

 

더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엄마가 부드러운 손길로 떨리는 딩키의 어깨를 잡아 주는 동안 플러터샤이가 몸을 기울여 약초 섞인 물약을 아이의 입안에 부어주었다. 딩키는 두세 모금 정도의 약이 들어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곧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구기며 기침을 토해냈고, 거칠어진 숨이 그 뒤를 이었다. 다만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몸을 덜 떨고 있었다.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해요." 플러터샤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던 의자에 반쯤 빈 그릇을 올려두었다. "지금 당장 고통을 줄여 줄 수는 있을 거에요."

 

"고, 고, 고, 고통을 줄여 줄 수는 있다니요?" 더피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플러터샤이, 우리 머핀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지 진통을 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딩키를 치료할 만한 의료용구가 지금 저희 집에 없어서......"

 

"그럼 어디라도 아이를 치료할 만한 곳으로 데려가야죠!"

 

"저도 아는데, 그럴 만한 곳이......"

 

"지금 당장 내 딸이 아프고, 난 내 딸이 아파하는 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요!"

 

"자, 좀 들어 봐요!" 하모니가 두 발굽을 번쩍 들어 보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플라즈마처럼 번쩍이는 빛은 여전히 오두막 안과 황동색 페가수스의 호박색 눈동자를 비추고 있었다. 하모니는 눈을 찡그리더니 딩키의 뿔에서 뿜어지는 섬광에서 시선을 돌렸다. "플러터샤이 양이 요점을 짚어 주셨네요.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여자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다시 말을 꺼냈다. 목소리가 서서히 낮아져 보다 차분해져 있었다. "어쨌든, 약 고마워요. 조금 전보다 훨씬 나아 보이네요."

 

"전 그저......"

 

"하지만 머핀은 여, 여, 여, 여전히 경련을......"

 

"자......" 하모니의 목소리가 다시 방을 집어삼키듯 퍼져갔다. 여자는 섬광을 뿜는 망아지의 아득한 신음소리 너머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마을만 가면 바로 우릴 도와 줄 포니들로 가득할 거에요. 어쩌면 유니콘일 수도 있겠죠? 트와일라잇 스파클 양은 어때요? 제가 듣기로는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제자 중에서도 천재라 할 만한 유니콘이라더군요, 안 그런가요? 바로 저기 언덕 너머로만 가면 포니빌이 있고, 포니빌에는 공주님의 최고의 제자가 있죠. 제 생각에는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유일한 포니인 것 같네요."

 

"하, 하지만 하모니!" 플러터샤이가 소리쳤다.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마을에서 똑똑한 포니를 꼽으라면 그 포니 하나밖에 꼽을 포니가 없잖아요!" 더피가 끼어들었다. "우리 머핀을 데리고 클라우드데일까지 갈 수도 있지 않나요? 시의회 의료 자문위원 중에 잘 아는 이들이 몇 명 있어요. 의사도 많이 알고요!"

 

"그런다고 해서......" 플러터샤이가 뭐라 말하려다가 이내 말을 끊었다.

 

"아, 그래요. 다른 방법도 있군요!" 하모니가 발굽을 들어 강조하며 말했다. "우리 모두 다 페가수스잖아요. 우리 셋 중에......" 딩키의 뿔에서 섬광이 다시 한 번 뿜어져 하모니의 호박색 눈동자를 찔렀다. 여자는 투덜대며 자리를 옮기고는 말을 이었다. "바로 캔틀롯으로 옮겨 줄 수도 있을 거에요! 굳이 저 같은 왕실비서관이 그러지 않더라도 이런 종류의 사고를 해결하는 데 캔틀롯만한 곳이 없다는 건 여러분 모두가 알고 계시겠죠!"

 

"제발 그만하세요! 그렇게 했다간—!"

 

"그건 안 돼요!" 더피가 놀라며 말했다. "전 정기적으로 캔틀롯에 다녀와요! 우편배달부 정도의 속도로 난다 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고요!"

 

"그럼 포니빌로 가서 우리 셋이 나는 것보다 더 빨리 날 수 있는 페가수스를 찾아보죠. 그 분께 딩키를 부탁드리면 될 것 같아요!" 하모니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그 분 이름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들 아시죠?"

 

"캔틀롯 치들이 우리 머핀을 제대로 치료할지 어떻게 알아요? 우리 머핀은 클라우드데일로 가야 해요!"

 

"클라우드데일보다 훨씬, 훨씬 낫죠! 그 양반들은 진작에 저 망할 놈의 염소자리가 죽도록 내버려 둔 전적도 있다고요! 그런 작자들이 딩키를 돕는 데 발굽 하나 보태 줄 것 같아요?"

 

"저 캔틀롯 책상물림에 앞뒤 꽉 막힌 관료, 관료, 관료, 관료......(Bureaucracy, 관료제, 관료주의) 멍청이들보다는 훨씬 낫죠!"

 

"저기요!"

 

더피도, 하모니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쌍 하고도 하나의 떨리는 눈동자가 플러터샤이 쪽으로 움직였다. 플러터샤이는 갑자기 시선이 쏟아지자 얼굴을 붉혔다. 여인은 용기를 짜내는 듯 마른침을 삼키더니 말을 꺼냈다.

 

"딩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사 포니는 포니빌에도, 클라우드데일에도, 캔틀롯에도 없어요!" 플러터샤이는 슬픈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없어요. 지금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시간을 벌어 주는 일밖에 없어요."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가 대체 뭐죠, 플러터샤이?" 하모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플러터샤이는 불안한 듯 발굽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했다. "왜냐 하면, 제가 치료법을 알고 있거든요."

 

"뭔데요? 대체 그게 뭔데요?" 더피가 다급히 떨리는 날개를 펄럭여 플러터샤이에게 날아가 두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더피의 두 눈은 처절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는데, 정작 그 눈이 향한 곳은 플러터샤이의 두 귀였다. "우리 머핀을 살릴 방법이 대체 뭔데요, 제발 알려 줘요!"

 

"어머님, 딩키가 지금 아픈 건 소량의 마력이 침투한 것이나 간단한 통증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에요. 즉, 치료 마법 하나만으로는 절대 치료할 수 없어요." 플러터샤이의 시선이 하모니를 향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분명 재능 있고 영리한 포니고, 캔틀롯에는 그 애처럼 똑똑한 포니들이 아주 많아요. 이퀘스트리아 의학과 약학을 발전시켜 온 클라우드데일에도 수많은 의사들이 있지요. 하지만 가장 강력한 치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의사나 가장 뛰어난 외과의사를 데려온다 해도 아기 염소자리를 도로 꺼낼 수는 없어요. 딩키가 달고 태어난 뿔 안에 흐르는 마법 기운 안에 염소자리의 정수가 침투했기 때문이에요. 염소자리의 생태는 아주 기이하기 때문에 셀레스티아 공주님이라 해도 태양과 달 정도만 다룰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별자리는 손대실 수 없어요."

 

하모니는 반사적으로 멈칫하며 말을 꺼냈다. "에이, 이봐요! 우리 공주님께선 말 그대로 포니들 사이에 군림하시는 여신과 같은 분이시잖아요! 공주님께서 하지 못하실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나이트메어 문을 물리치는 데 조화의 원소가 필요했으며, 왜 계절을 바꾸기 위해 하루마다 정해진 양의 햇빛을 뿌려야 하겠어요?"

 

하모니는 대답하려 입을 열었으나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발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그래도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는 오래 사셨고, 긴 삶에서 그만큼의 지혜를 얻으셨으니 아이와 그 뿔에 들어간 염소자리 정도는 어떻게든 해 볼 능력이 있으시지 않을까요? 플러터샤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공주님을 믿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하니, 하모니 양의 제안은 그 어느 쪽으로도 판단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우리가 딩키를 공주님께 데려가는 동안 딩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이를 살려 보려는 노력과 거기 들인 시간이 전부 헛된 것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왜요, 그렇게 따지면 세상이 끝나면 또 어때요?" 하모니가 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여자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당혹한 듯 움찔하고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죠, 그럼? 그게 왜요? 산다는 건 그런 거에요!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은 딩키를 태양의 공주에게 데려가는 것 하나뿐이에요!"

 

"저라도 그 의견을 따르겠어요." 플러터샤이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더욱 힘있게 한 마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제가 이미 해결책을 알아요. 그리고 그 해결책이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아니랍니다."

 

더피가 처절하게 떨리는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공주님께서도 딩키를 치료해 주실 수 없다면, 대체 누가 치료할 수 있다는 건가요?"

 

"음......" 플러터샤이가 살짝 풀이 죽어 대답했다. "음...... 어머니 자연이에요."

 

"자, 자, 자, 자연이라고요?"

 

플러터샤이는 마른침을 삼키더니 녹색 방석에 누워 경련하는 아이를 쓸쓸히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자연의 본질이라는 게 있죠. 본능, 그리고 힘이 그것인데, 파우스트메어와 그 일행이 여기 닿기 전부터, 이퀘스트리아 문명이 변변한 역사를 써 내려가기 전부터 세상을 작동시킨 원동력이에요. 물론 공주님들께서 이 세상에 그 에너지와 생명, 그리고 법도를 내려 주신 것은 맞아요. 이퀘스트리아 내에서 그를 가장 명료하게 증명해 주는 증거가 바로 에버프리 숲인데, 바로 이것 때문에 염소자리가 아기를 낳을 장소로 처음부터 그 곳을 정해 두고 그리 간 것이죠. 하지만 숲으로 내려가던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염소자리는 끝내 자기가 가려던 곳으로 가지 못했어요. 얄궂게도, 죽은 염소자리는 그 본능에 따라 자기 아이를 딩키의 뿔에 집어넣어 버리고 말았죠."

 

"플러터샤이......" 하모니가 플러터샤이를 곁눈질하며 몇 미터 앞으로 걸어나오며 물었다. "에버프리 숲 어딘가에 있다는 마나 크리스털이 그 답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자의 호박색 눈동자가 한 번 깜박였다. "그러니까 이거에요,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극심한 고통 때문에 딩키 뿔이 마나 크리스털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마나 크리스털이라뇨?" 더피가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지금 대체 무슨 말씀들을—"

 

"그건 그저 본능에 충실했던 것뿐이에요!" 플러터샤이가 옹호하듯 소리쳤다. "절대 딩키를 해치려는 뜻은 없었다고요! 그 가엾은 아이는 별빛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며칠 동안이나 숲에 쓰러져 있었다고요. 그리고, 염소자리는 가능한 한 멀리 자기 아이를 보내려 했어요. 다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게 딩키였을 뿐이에요!"

 

"그래서, 결론은 이거군요?" 하모니가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염소자리가 후브즈 씨네 따님을 저 숲 구석 어딘가에 처박힌 마나 크리스털 동굴쯤으로 생각했다, 이거죠?"

 

"제 말은, 지금 이 사건 안에서도 자연의 본질은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거에요!" 플러터샤이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애초에 염소자리는 마나 크리스털에 아이를 담으려고 내려온 거고, 아이를 보낸 그 힘은 마나 크리스털뿐만 아니라 딩키의 뿔에도 적용되는 힘이었다고요! 하모니, 정말 모르시겠어요? 언제나 그랬듯, 자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설령 우리가 딩키를 클라우드데일이나 캔틀롯, 트와일라잇 스파클, 심지어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데려간다고 해도 나오는 답은 하나밖에 없을 거에요. 그리고 우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되겠죠. 그 동안에도 딩키는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을 거에요. 아니면...... 아니면...... 으음...... 더 악화될 가능성도......"

 

"플러터샤이." 하모니가 한숨을 폭 내쉬며 지친 듯 발굽을 얼굴에 가져갔다. 딩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에 에버프리 숲 깊은 곳 어딘가에 마나 크리스털 동굴 몇 개가 있다고 얘기해 주신 적 있었죠. 너무나 깊어 거길 찾다가 염소자리가 먼저 죽어 버릴 거라고 하셨어요."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대체 왜 우리가 그 멍청한 동굴을 찾는 게 딩키를......" 마침 그 때 딩키의 뿔에서 다시 섬광이 뿜어져 하모니의 눈을 찔렀다. "으앗! 누구라도 좋으니까 딩키 뿔에 양말이든 뭐든 좀 씌워 놓으면 안 돼요?"

 

더피가 천장 쪽을 보며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우리 머핀이 그걸 쓰고 얌, 얌, 얌, 얌전히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다람쥐 아저씨."

 

"알았어요. 우선, 소리질러서 정말 죄송해요." 하모니가 고개를 비틀어 다시 쏘아져 나오는 섬광을 피하며 으르렁거리듯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 제 예의 없는 행동이나 기타 궁금한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잠깐만요!" 플러터샤이가 놀라며 외쳤다.

 

더피와 하모니는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플러터샤이가 그들 옆을 지나쳐 가더니 딩키를 부드럽게 천천히 안아 올리며 머리를 똑바로 돌려주었다. 아이는 무어라 중얼거리며 경련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조금 전의 그 빛이 다시 뿜어져 나와 시간여행자의 시야를 가렸다. 그런데 아이의 뿔이 어디를 향하든지, 그 빛은 늘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며 쏘아지고 있었다.

 

"두 분 다 보셨어요?" 플러터샤이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어...... 네." 하모니가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네. 봤어요."

 

"나도 봤어요." 더피가 말했다.

 

"딩키 뿔 안에 담겨 있던 염소자리의 생명의 정수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걸지도......" 플러터샤이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자의 푸른 눈이 한 번 깜박이며 섬광의 자취를 따라갔다. "집 바깥의 무언가가 어린 염소자리의 정수를 담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딩키의 뿔보다도 더 큰 그릇인 것 같네요."

 

"다른 유니콘일 수도 있는 건가요?" 더피가 숨을 들이쉬며 물었다.

 

"마나 크리스털일지도......" 하모니가 외쳤다. 여자는 급히 몸을 돌리며 섬광이 향하는 벽을 가리키며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플러터샤이. 대충 이 벽 너머에 뭐가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그쪽이면 북서쪽이네요. 그 벽 너머 섬광이 향하는 곳이라면, 에버프리 숲이에요."

 

"플러터샤이, 그럼 아까 그 동굴이 있는 곳이란 말이죠?" 더피가 잔뜩 흥분해서 숨을 헐떡이며 되물었다. "거기 있는 그 크, 크, 크, 크리스털만 있으면 우리 머핀, 살릴 수 있는 거죠?"

 

"잠깐, 잠깐, 잠깐, 잠깐!" 하모니가 발굽을 들어 보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 크리스털이 딩키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조금 전에 플러터샤이가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에 답이 있다고......"

 

"아버지 겨울(Father winter)이든, 하지 삼촌(Uncle solstice)이든, 갱년기 숙모(Aunt menopause)든 그런 건 뭐가 됐든 상관없어요! 플러터샤이, 열두 시 전에 바로 스탈리온그라드까지 딩키를 데려가 전문의의 소견을 받게 해 줄 유니콘이 지천으로 널리고 널렸는데......"

 

"하모니......" 플러터샤이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시간여행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얼굴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듯한 표정이 떠 있었다. "전 포니빌 최고 동물훈련사에요. 에버프리 숲이 어떤지, 직접 보고 들으며 관측하며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헌신해 온 전문가로서 말씀드릴게요. 딩키 뿔에 들어간 염소자리의 정수를 빼낼 유일한 방법은 마나 크리스털 동굴로 데려가 자연의 인도를 따라 빠지게 하는 방법뿐이에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 역시 숭고한 일인 건 변함없지만, 그 답이 나와 있을 즈음에 딩키가 살아 있으리란 보장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제 생각이 맞는다면, 딩키 뿔이 이미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사실대로만 말씀드리면, 지금 딩키의 뿔에 담긴 별자리의 정수는 에버프리 숲 어딘가에 있는 그릇의 마력에 이끌리고 있어요. 따라서 클라우드데일이나 캔틀롯, 심지어 포니빌로 데려갈 경우에는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씀이에요!"

 

"플러터샤이, 왜 그런 건가요?" 더피의 물음에는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일단 뿔 속 아기 염소자리의 정수가 어느 쪽으로 가고 싶어하는지는 파악이 됐는데,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가는 정수가 딩키의 신경계에 보다 깊숙이 침투할 가능성도 있어요. 지금 뿔 안에서 흐르는 마력과 완전히 섞여서 완전히 정신을 부숴 놓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지금 유일한 대책은 아기 염소자리가 가고자 하는 곳, 즉 마나 크리스털이 있는 곳으로 딩키를 옮기는 것뿐이에요. 그렇게 하면 분명 고통도 많이 줄어들 거에요!"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더피가 '캔틀롯 왕실비서관'을 쓱 훑듯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서 가만히 시간만 버리고 있다가는 상황만 더 악, 악, 악, 악화될 뿐이라고요!"

 

"아 나, 이거 진짜 환장하겠네!" 하모니가 자신이 예전에 그랬듯 의심 많은 꼬마처럼 소리질렀다. 여자의 눈은 죽음처럼 맑게 갠 아침 하늘을 비추는 창문에 옛날 그 빗물처럼 부딪치는 섬광에 떨리고 있었다. 하모니는 순간 일어나는 현기증을 견디며 숨을 참다가 이내 내쉬며 말했다. "플러터샤이, 어제 오후 때만 해도 에버프리 숲 속을 들여다볼 용기도 내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거동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가자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무도 한 번 본 적 없는 마나 크리스털 동굴을 찾아보자고 하는 건가요? 그것도 단지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 하나만 가지고?"

 

"하모니, 지금 중요한 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해결책을 찾아 그 방향대로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거에요." 플러터샤이가 말했다. "저도 제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그 어느 방법을 택하더라도 딩키에게 하등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할 거란 것도 알아요. 하지만 동물에 관한 거라면 아무리 어렵고 자세한 내용이라도 알고 있기도 해요. 에버프리 숲을 지켜보며 보낸 시간 동안 쌓아 온 순수한 경험으로 얻은 지식들이죠. 제 알량한 자존심이나 고집 때문에 이 방식을 고집하는 게 아니에요. 하모니, 제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절 믿어 주셨으면 하는 거에요. 제 말 때문에 마음이 묶여 망설이시더라도 당신 잘못은 아니에요. 레드게일 부서장님이셨다면 분명 제 능력을 믿지 않으셨겠지만요. 하지만...... 하지만 지금만큼은, 지금만큼은 절 믿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하모니 당신도 제 말이 후브즈 씨의 소중한 아이를, 너무 늦기 전에 살려낼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란 걸 아시게 될 거에요."

 

하모니는 입을 떡 벌린 채 플러터샤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호박색 눈이 몇 번 깜빡이더니 이내 얼굴에 발굽이 올려졌다. 잠시 감긴 눈 앞으로 수많은 비석들과 그 아래 깔린 싱그러운 잔디, 그 위를 거니는 부드러운 노랑색 발굽들이 지나갔다. 마지막 포니가 억지로 눈을 열어 떴지만, 커다랗고 흐려진 눈을 한 페가수스 하나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하모니, 부탁이에요.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게요! 딩키한테서 저, 저것만 뗄 수 있다면 못 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내 건강, 내 일자리, 내 목숨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어요. 우리 애, 애, 애, 애, 애....... 애를 위해서라면."

 

"선택권은 없는 모양인데요." 미래의 방랑자가 푸념하듯 중얼거리더니 바로 앞에 있던 회색 페가수스와 조금 멀찍이 서 있던 플러터샤이를 쳐다보았다. 둘이 하모니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여자는 몸을 떨었다. "대체 왜 두 분 다 절 쳐다보고 계신 거죠?"

 

"음......" 플러터샤이가 입술을 깨물며 땅을 파듯 마룻바닥을 긁었다. "당신이...... 캔틀롯 왕실비서관이기 때문이에요. 그건 방법론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당신이 이 사안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마지막 포니는 당황하더니 두리번거리듯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대답은 까르르 웃는 소리에 묻어 나왔다. "이야, 두 분 다 절 갖고 노시려고 하는 거죠!" 하모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발작하는 아이를 가리키며 발굽을 흔들며 소리쳤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저 아이의 수호천사로서의 역할 때문도, 사신으로서의 역할 때문이 아니에요! 전 포니빌 동물훈련사의 일을 참관함과 동시에 공주님을 위해 에버프리 숲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왔다고요! 이건 제 소관 밖의 일이란 말씀입니다!"

 

"하모니,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더피가 멍해 있는 동안 플러터샤이가 방을 가로질러 오며 말을 꺼냈다. 여자는 더피의 목에 뺨을 비벼주고는 조용히 안아주어 어머니의 흐느낌을 가라앉히고 푸른 눈동자로 부드러이 마지막 포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어요. 당신이 규정대로만 움직인다 해도 다 이해할 수 있어요. 레드게일 부서장님이나 클라우드데일 위원회가 마찬가지의 결정을 내리라 했다면, 저도 그렇게 했을 거에요. 하지만 이 일엔 한 생명이, 딩키의 생명이 달려 있어요. 올바른 행동이나 친절한 행동을 구걸하는 게 아니라...... 한 아이와 그 어머니를 위한 행동을 부탁하는 거에요."

 

하모니는 대답하려 입을 열었으나 그 안은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거친 신음을 내뱉으며 엉덩방아를 찧듯 주저앉고는 꽉 감은 눈을 두 발굽으로 가렸다. 아득히 들리는 딩키의 신음 소리가 노랫소리에 섞여 가, 등 뒤에서 고함을 내지르며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가 죽음밖에 남지 않은 황무지 위로 하모니 호를 몰고 가는 듯했다. 공동묘지나 다름없게 되어 버린 앞날의 이퀘스트리아는 다른 이의 고통을 걱정하는 고통 따위 짊어지지 않으면서 자기 일만 생각하며 살기에는 편한 곳이었다.

 

딩키는 죽을 것이다. 딩키는 분명 죽을 것이다. 플러터샤이도, 트와일라잇 스파클도, 포니빌과 에버프리 숲의 푸르른 녹음도, 세상을 지탱하는 질서와 그를 초월한 모든 것들도 곧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죽음만을 남기는 재앙의 불길 아래 무릎 꿇고 말 것이었다. 단 몇 달만 지나면 지극히 단순하고 거대한 어둠이 닥칠 것이고, 마지막 포니는 거기서 지내게 될 터였다.

 

여기는 과거였고 저 상처받은 페가수스들 역시 완전한 실재였다. 시간여행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실제였지만 여기서 겪은 모든 좋은 일들은 단순한 꿈이었지만, 이십 년 하고도 오 년 동안의 불타 재만 남은 먹먹한 세월을 건너올 만큼의 가치가 있는 꿈이기도 했다. 하모니가 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정말 손쉬운 일이었다. 녹색 불꽃이 한 번 일렁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기운 빠진 플러터샤이와 흐느끼는 더피, 신음하는 아이 모두 똑같은 시체로, 마지막 포니가 그것들을 신경 쓸 수 있든 없든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무가치한 시체로 변하고 말 것이었지만.

 

어쨌든, 마지막 포니가 그 곳에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뜻한 벽난로 앞에 누워 있는 것도 아니었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가 부딪혀 잔물결을 만들어 내는 창문 앞에 서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아이의 눈동자에 비치며 흐릿한 망령처럼 흔들리던 무가치한 기억 안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과 기쁨 안에 있는 건 더욱 아니었다. 온기 도는 몸뚱이도, 안아 주는 두 발굽도 없는 곳이었다. 오직 검댕 앉은 들판 한가운데 지옥의 입구 같은 주둥이를 쩍 벌린 갱도 하나, 그리고 거기 서 있는 수많은 비석들에 흰 글씨로 아로새겨진 이름들, 그리고 하얀 날개뿐이었다. 생명이 떠나간 자리에는 메마른 돌덩이뿐이었고 죽음이 있던 자리에는 다른 기념비가 하나 더 세워져 있었다. 마지막 포니가 결단의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이퀘스트리아에서 유일하게 그 사건을 계속 추모해 왔던 이도 사라지게 될 터였다. 다시 해와 달을 띄울 수 있다 해도, 그것이 긍지도 무엇도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면 아무 뜻도 없는 일이 될 것이었다.

 

적어도 하모니에게 영원할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 목소리, 드래곤의 이빨을 타고 에버프리 가시숲에 누운 자신을 알린 그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뿐이었다.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무언가가 시간의 자취보다도 바뀌지 않을 것을 노래하며 그 어떤 그물침대나 벽난로보다도 더 포근하고 따뜻하게 마지막 포니를 안아 주었다. 하모니가 다시 그걸 느끼고, 다시 안기려던 때마다 오렌지색 그림자 하나가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타고 저축거리며 내려와 녹색 방석 너머에서 어른거리곤 했다.

 

하모니의 두 눈이 떨리며 다시 열렸다. 노란색 그림자 대신, 녹색 방석 위에 누운 딩키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는 몸을 떨며 아파하고 있었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흐릿한 눈물이 아이의 뿔에서 섬광이 쏘아져 나갈 때마다 번쩍이는 눈가에서 한 줄기 증기로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딩키는 괴물들을 피해 황무지에 뚫린 커다란 구멍에 웅크려 주린 배와 한 번 받아 본 적 없는 사랑에 굶주려 흐느끼던 아이가 중얼거리듯 부르던, 아무도 들어 줄 이 없이 가치 없는 노래처럼 여전히 난잡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삶도, 다가올 삶의 시커먼 불합리성조차도 찰나의 꿈일 뿐이라고, 하모니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불현듯 다른 여신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상으로 간 이름 없는 여신의 탈을 쓴 채 저 너머에서 포니빌의 잔해에 선 자기 자신과 스파이크를 만나러 또 다른 불꽃을 타고 올라온 유령이 하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 자신이 그것이 비록 꿈일지언정 세상에 닥칠 종말을 빗겨나가게 할 수 있는 대신 목 매달린 천민의 꼴이 되어야 하고, 그 꿈에서 깨어날 유일한 방법이 신마저 저버린 불꽃이 세상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이라면 여인은 과연 세상을 구원하길 원할까?

 

"하모니......" 다시 한 번, 노래하듯 낭랑한 목소리가 여인을 감싸 품으며 찔러왔다. "결정을 해야 해요. 최대한 빨리요." 플러터샤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덧붙였다. "딩키를 위한 일이에요."

 

하모니는 이 꿈에서 깨어 다시 스쿠틀루로 돌아가고 싶었다. 당장 자기 앞에서 일렁이고 있을 망할 놈의 나무 계단을 산산이 부수어 조각낸 다음 있을 리 없는 비행선을 쫓아 녹색 불꽃의 장막 속으로 사라져 큰곰자리를 따돌린 채 편안한 그물침대로 돌아가 눕고 싶을 뿐이었다. 다만 그와 동시에 여자는 적어도 지금이 자기가 살아온 과거는 아니라는 걸, 자신의 과거가 아니라는 걸 다시 떠올렸다. 지금이자 과거는 시간의 샘 속 깊은 곳으로 영원히 사라지고야 말 따뜻한 실재이기도 했고, 여자는 악몽으로서 눈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가엾은 이들을 속이며 거짓 구원자로서 서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그들을 구할 수 없었고, 그럴 수 있다 해도 그들에게 주어질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을 것이었다. 여자는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말을 섞을 수도 없었고, 이 문제를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하모니는 녹색 불꽃이 다시 자신을 집어삼켜 미래로 돌려보내기 전에 저 둘과 아이를 데리고 트와일라잇 스파클에게 가 셀레스티아 공주의 주의를 끌어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전부 다 전해야만 했다.

 

그 한 번의 일렁임 속에서 여자와 스파이크는 멸망한 세계와 과거의 간극을 뛰어넘어 태양의 공주에게 멸망의 수수께끼를 전하고 세상을 파멸시켜 잿가루와 눈가루만이 영원히 날리는 곳으로 바꾸어 놓을 저주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딩키...... 이퀘스트리아에서 가장 조용한 마을에 사는 한 샌님 페가수스 혼혈 유니콘 포니, 재앙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은 포니는...... 온 포니들과 온 이퀘스트리아, 멸망하고야 말 제 4시대의 역사에 비하면 한낱 티끌에 불과한 작은 아이는......

 

 

마지막 포니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말을 꺼냈다. "좋아요, 이렇게 합시다......"

 

하모니는 에버프리 숲 근처로 급히 달려오느라 계속 찬 숨을 내쉬고 있었다. 플러터샤이와 더피 후브즈의 옆구리에서 아침 햇살이 기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둘도 하모니를 급히 따라온 참이었다. 딩키는 더피의 가방 한 쪽 주머니에 품기듯 들어가 있었다. 아이의 가련한 신음소리가 짙어져 가는 녹음 속에 늘어선 나무줄기에 가 부딪쳐 메아리가 울렸고, 그 위로 섬광이 흘렀다.

 

"지금 여기선 내가 가장 힘이 세요. 굳이 토 달지 말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세요. 제가 방향을 잡으면서 가다가 위험해 보이는 게 있는지 찾아볼게요. 플러터샤이, 당신은 동물을 다루는 데 익숙하시죠. 근처에 숨어 있다가 성질 나쁜 동물이 튀어나오면 도와 주세요. 그리고...... 어...... 그 녀석들이 얼마나 지독한 녀석인지도 좀 말씀해 주시고요."

 

"알겠어요. 최선을 다할게요."

 

"가끔 가다 딩키 뿔에서 나오는 섬광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나 크리스털 동굴을 가리키고 있는 게 맞는다면, 그 섬광의 방향을 토대로 길을 잡을 수 있을 거에요.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높이 날아서 그쪽으로 가기로 합시다. 우리 셋 다 날 수는 있으니까......"

 

"저기...... 음...... 그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아요."

 

하모니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물었다. "왜죠?"

 

플러터샤이가 풀이 죽어 대답했다. "염소자리의 정수가 가리키는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나 크리스털인데, 이건 딩키의 뿔이 이 근처의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음......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면 마나 크리스털의 마력이 감지되는 범위 바깥으로 나갈 가능성이 생겨요. 동굴을 가리키는 신호를 잃을 수도...... 어쩌면 영원히 잃을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딩키의 뿔이 지금 에버프리 숲 어딘가에 있을 마나 크리스털의 신호를 다시 잡아내는 데 실패한다고 하면, 아기 염소자리가 다시 마나 크리스털의 위치를 찾아내는 데까지 엄청난 시간이 소비되거나, 자신을 담을 그릇을 영영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에요. 그럼 딩키의 정신은 영영 부서지고 말겠죠."

 

"죽여주네요." 하모니가 투덜대며 말했다. "좋아요. 아무래도 일이 쉽지만은 않게 되었네요. 그럼, 후브즈 씨?"

 

"네?"

 

"아무래도 따님의...... 그...... '뿔빛'이 이번 일의 열쇠인 건 확실해요. 그 빛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지 계속 보고 계신다면 저희가......" 하모니가 말을 끊었다. 여자가 고개를 돌리자 더피의 좋지는 않을 것 같은 시력을 증명하는 듯한 사시가 눈에 들어왔다. 하모니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됐어요. 플러터샤이와 제가 마나 크리스털 동굴을 찾아가는 동안 따님을 잘 보살펴 주시기만 하면 돼요."

 

"제가 따로 더 해 드릴 일이 있지 않을까요?" 회색 암말이 몸을 떨며 말했다. "두 분 모두 저희 머핀을 위해 많은 이, 이, 이, 일을 해 주셨고, 저도 여러분을 돕고 싶어서 그래요."

 

"가다가 동굴을 찾았어도 전에 학교 창문을 박살냈던 것처럼 무작정 날아 들어가지만 않으면 돼요."

 

"하모니......" 플러터샤이가 나직하게 주의를 주고는 순간 현기증이 나는지 눈을 깜박였다.

 

"플러터샤이......" 하모니가 플러터샤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뭣 좀 말씀해 주셨으면 해요." 여자가 몸을 기울이고 속삭이듯 물었다. "최선의 상황을 가정할 때, 마나 크리스털 동굴까지 무사히 갔다면 딩키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엄마 염소자리가 내보낸 아기 염소자리의 생명의 정수가 딩키의 뿔에서 나올 텐데, 아까처럼 강한 충격이 있을 거에요. 생명 정수가 안정화되면 마나 크리스털이 그 에너지를 흡수해서 하나로 합친 다음 아기 염소자리의 모습으로 변환시킬 거에요. 얼마 안 걸릴 거에요. 이걸로 별자리들이 아이를 낳는 과정은 끝나는 거고요."

 

"우리 머핀은 어떻게 되는 거죠?" 더피가 여전히 한쪽으로 몰린 눈을 한 채 부드러이 물었다.

 

플러터샤이가 슬픈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여인은 네 다리로 섰는데도 순간 비틀거리더니 이내 자세를 다잡고 숨을 한 번 쉰 다음 대답했다. "우리가 제 때 도착하기만 하면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입지 않았으리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음...... 하모니 양께서 말씀하셨듯 최선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에요."

 

"번개, 번개가 친다!" 딩키가 회색 페가수스가 메고 있던 가방 안에서 휘청거리듯 꿈틀거리며 움찔하더니 경멸하듯 중얼거린 말이었다. 아이의 두 눈은 여전히 번쩍이고 있었다. "오직 모순만이 가득하나니! 죽음의 궁궐은 무너져 내렸노라!"

 

더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마가 아이에게 뺨을 비벼주려고 고개를 돌렸으나, 몸을 떨더니 다리가 풀리기라도 한 듯 거의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플러터샤이가 급히 흐느끼는 엄마의 몸을 들어 부축했다.

 

하모니는 순간 감각이 무뎌져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여자의 투영된 몸뚱이 여기저기가 타다 만 녹색 불꽃에 휩싸여 사라지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흔들어 이상한 환상을 털어 버리고 침을 한 번 삼킨 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플러터샤이...... 지금 하신 말씀이...... 당신이 했던 말대로 모든 게 흘러간다면...... 그러면...... 새 몸뚱이를 얻어 태어난 아기 염소자리를 눈 앞에서 보게 된다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실체가 생기는 거죠?"

 

"그러길 바라요...... 분명 그렇겠죠......" 플러터샤이가 더피를 부드럽게 안아 주며 겨우 대답했다. 여자는 침착하지만 생기 잃은 눈으로 하모니를 쳐다보며 덧붙였다. "아기는 분명 크리스털에서 자신을 분리할 수 있게 건강하게 자랄 거에요. 그러고 나서 몇 달 있으면 다시 하늘로 올라가겠죠. 하지만, 서둘러야 해요."

 

플러터샤이의 마지막 몇 마디 말은 시간여행자에겐 들리지 않았다. 에버프리 숲이 가장자리부터 칠흑 같은 가시덤불 속으로 섞여 들어가고 있었고, 그 가운데 가시덩굴과 운명에 얽힌 두 구의 시신이 있었다. 플러터샤이와 염소자리의 시신이. 그 둘의 시신을 쳐다보는 다른 시신이 하나 더 있었다. 백만 년을 산 큰곰자리보다 더 잔인하고 더 큰 죄를 지은 자의 시신이.

 

"아, 스파이크......" 하모니가 날숨에 짜증을 섞어 말했다. 여자는 흔들리는 눈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예전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두려운 먹먹함이 목을 졸라 왔다. "제발 부탁이야. 어딘가 재앙의 불길이 닿지 않을 곳 한 군데만 만들어 줘." 여자는 말을 마치고 상장(喪章)처럼 짙어져 가는 어둠 속으로, 피할 수 없는 불운을 맞이하고야 말 플러터샤이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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