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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포니 최후의 날

Chapter 30. Everlove

by Mergo 2019. 8. 25.

갈라지는 녹색 불꽃처럼 편두통이 밀려왔다하모니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작은 굴처럼 평온한 분위기가 감도는 플러터샤이의 오두막집이 눈에 들어왔다에버프리 숲에서 돌아온 이후미래의 시공간이 여자가 빌려 쓰는 엔트로파 공주의 몸을 열세 번인지 열네 번인지 잡아당기다가 이내 흩어져 사라져 갔으므로여자는 마음을 보다 편히 할 수 있었다네 다리의 무게가 새삼스레 다시 느껴졌고과거에 자신의 존재가 더 단단히 고정되었음을 확인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던 그녀는 흐릿해져 가는 루비 색 그림자를 감지하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레드게일 부서장이 플러터샤이의 오두막집 거실에 서서 불 꺼진 벽난로에 기댄 채기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이 든 클라우드데일 고급공무원은 지루하다는 듯 시골 특유의 분위기가 감도는 오두막집을 한 쌍 푸른 눈으로 쓱 쓸고 말했다. "살았다는 거군."

 

"살긴 했는데꿈틀꿈틀거리는 진짜 못생긴 놈이었죠." 하모니가 고개를 끄덕였다플러터샤이가 눈치를 주었음에도하모니는 초조하게 땀을 흘리며 계속 말했다. "꼬마 염소자리 치고는 그랬단 얘기에요어떤 꼬마가 됐든지 간에 애완동물로 삼고 싶단 생각은 조금도 안 들더라고요솔직히누가 반은 염소에 반은 물고기인 녀석한테 목줄을 채우고 돌아다니고 싶겠어요?"

 

포니빌 동물훈련사가 조용히 한쪽 발굽으로 녹색으로 마무리한 마룻바닥을 한 번 쓸자 그 위 어깨에 걸터앉아 있던 엔젤이 훌쩍 뛰어 내려왔다. "...... 거의 완벽하게 건강했어요그러니 새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플러터샤이는 내심 자랑스러워하고 있었지만부끄러운 듯 붉게 물든 뺨 뒤로 본심을 감추며 부서장을 올려다보았다. "마나 크리스털 동굴에 적어도 계절이 바뀌고 다시 바뀌기 전까지 견딜 만한 마나가 남아 있으니까요그리고 또매 주마다 한 번씩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레드게일 부서장님그게...... ...... 그 녀석을 그렇게 정신없는 식으로 이 세상에 데려온 데는 제 책임도 있으니까염소자리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걸 보는 게 제 일의 성질과도 맞을 것 같아서요."

 

"당연히 그리해야죠." 레드게일 부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세어 가는 붉은 꼬리가 회중시계의 그것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어떻게 그 가엾은 배달부의 딸한테 자기 아이의 정수를 주입했는진 몰라도정말 놀랐으니까!"

 

"중요한 건 그 녀석을 빼냈다는 거 아니겠어요?" 하모니가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녀석 이름은 딩키라고 해요걔 상태도 알고 싶으실 테니 말씀드리자면아주 건강하답니다제발 좀 그 입 좀 다물었으면 하는 만큼이나 귀엽고 똑똑한, 발굽에서 책장을 놓을 줄 모르는 전형적인 샌님이기도 하죠."

 

"후후후......" 레드게일이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플러터샤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헌데 말이죠어떻게 염소자리가 새끼를 배고 있다는 걸 귀띔해 줄 생각을 한 번 안 하셨는지 참 궁금하군요...... 심지어 녀석이 그런 식으로라도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조차 말입니다."

 

"...... 그게...... ......" 자신을 노려보는 클라우드데일 고위공무원의 날 선 시선에플러터샤이가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여자는 입술만 깨물며 가끔씩 하모니를 슬쩍슬쩍 볼 뿐이었다.

 

하모니는 안절부절못한 채 선 페가수스에게 발굽을 휙 휘둘러 '계속하라고 몸짓했다.

 

"그게......" 플러터샤이가 용기를 짜내어 부서장을 마주 보며 말했다. "회생 불가능한 염소자리에게 필요한 처치를 해 주는 것까지 부서장님께 연락해 지시를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어요그리고...... ...... 그 녀석이 아이를 낳은 거란 걸 알았을 때는 에버프리 숲 속 마나 크리스털만이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제 스스로...... ...... 지난 몇 년 동안 익혔던 기술들을 총동원해서 제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던 거에요." 침을 넘기던 여자는 어느 순간부터 부서장의 차가운 푸른 눈 속에 갇혀 있던보다 완고하지만 보다 넉넉하기도 한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부서장님과포니빌 시청과아니면 클라우드데일 시의회와 맞서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란 건 알고 있었어요...... 문제의 답을 알아냈을 때부터."

 

레드게일이 심드렁하게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대답했다. "...... 나쁘지 않군처음치고는."

 

하모니는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에메랄드 빛 연기 구름을 휘저어 흩어내고옆에서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처음치고는이라니요?"

 

부서장이 바로 '비서관'을 향해 비꼬는 듯한 눈길을 던지고는 오두막 거실을 한 바퀴 빙 돌며 말했다. "자주성을 보인단 뜻이죠." 그러고는 덧붙였다. "필요한 결단력을 보여 주었으므로위원회에서도 당신이 포니빌 동물 훈련사로 계속 재직할 수 있도록 승인할 겁니다."

 

"......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플러터샤이가 가볍게 웃었다그러고는 작은 비명을 중얼거리며 잔뜩 상기된 얼굴과 잘 어울리는 분홍 앞머리 뒤로 다시 본심을 숨겼다. "그게...... 정말 잘 되었다는 뜻으로 한 거였어요레드게일 부서장님여기서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에요."

 

"플러터샤이그렇게 좋아할 것 없습니다." 레드게일이 콧대를 세워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말은 당신의 업무 숙련도 하나만 보여 줄 뿐이니까요그 이상그 이하도 아닙니다그러므로 당신이 염소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나도 동행해서 가까이서 지켜볼 겁니다." 그러고는 불 꺼진 벽난로 근처에 앉아 있던 조그마한 흰 털뭉치 같은 토끼를 무심하게 쓱 보고는 덧붙였다. "......당신이 돌보는...... 가치는 훨씬 떨어지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지켜볼 겁니다." 레드게일이 돌아섰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어떤 건가요부서장—" 플러터샤이가 뒤를 돌아본 바로 다음 순간그녀의 두 눈이 갑작스레 당황하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하모니도 플러터샤이의 떨리는 눈길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토끼 사료 그릇이 레드게일의 뒤통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고하모니는 움찔하며 바로 몸을 날려 접시가 레드게일에게 부딪히기 바로 직전에 접시를 잡아냈다클라우드데일에서 온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마지막 포니는 초조하게 웃으며 그릇을 등 뒤로 숨겼다.

 

"흠흠." 레드게일의 오만한 시선이 정면으로 플러터샤이를 향해 날아갔다. "이 일이 이번처럼 잘 풀리지 않아서위원회에서 당신의 야생동물 관련 자격증을 전부 취소해 버렸다면......" 여자의 푸른 눈이 차가워지며 가늘어졌다. "......어디로 갈 생각이었는지 묻고 싶은데?"

 

"......" 플러터샤이가 입술을 씹었다여자는 마룻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천장을 올려다보았고그러고는 생각난 묘안들이 모여 만든 보이지 않는 구름을 들여다보았다친절한 누군가의 황동 날개를 타고 차가운 말들이 뒤엉키는 위를 날아가기라도 하듯다시 온기가 네 다리 속으로 배어들었다. "래리티에게 가지 않았을까 싶은데......"

 

"누구한테 간다고요?"

 

"...... 친구요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한 명......" 플러터샤이가 순하게 웃으며 말했다. "설령 제가 실패했더라도걔들이 절 도와 줬을 거라 믿어요재기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는 없지만그 애들이라면 분명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해 줬을 거에요."

 

하모니는 레드게일의 대답을 기다리며 엔젤의 밥그릇을 다시 바닥에 내려두었다.

 

돌아간 대답은 그리 온기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라......" 레드게일은 자신이 흰 구름으로 덮인 하늘 위 박힌 암점暗點 하나라도 된 듯 플러터샤이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 그래아무리 그쪽이라도 친구 몇몇 정도 사귈 정도의 시간은 지났으니까그건 그렇고......" 부서장은 꼬리를 차갑게 한 번 탁 휘두르며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적힌 보고서를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이로군그쪽의 그 친애하는 캔틀롯 왕궁비서관께 솔직한 만큼 솔직한 보고서를 말이야또 모르는 일이지여기서 보낸 몇 달 동안 유일하게 흥미를 끌었던 게 염소자리도 아닌 바로 저 비서관일지."

 

플러터샤이는 어느 샌가 다시 몸을 떨고 있었다여자는 나가는 레드게일의 뒷모습만 쓸쓸히 쳐다보고 있었다그러고는 하모니에게 거의 애원하는 듯한 초조한 시선을 던졌다.

 

시간여행자는 순간 혼란스러워진 마음에 흘끗 돌아보았다여자는 그저 플러터샤이를 보고만 있었다.

 

그 반응이 자신에게 필요한 반응의 전부이기라도 했던 듯플러터샤이가 입술을 깨물며 희끗희끗하게 세어 가는 루비 빛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 레드게일 부서장님부서장님가시기 전에......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그리고...... ...... 정말 말씀드릴 게 있어서......"

 

"말은 말해진 대로의 의미만 가질 뿐그 이상은 없어." 부서장이 오두막 문을 밀자 문이 삐걱대는 소리를 대며 열려 흰빛을 띤 황금빛 아침 햇살을 들여보냈다녹슨 숨이 기계적으로 덧붙였다.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으니."

 

"부서장님......" 플러터샤이가 마른침을 삼키고는눈물 맺힌 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엄마제발요......"

 

놀란 하모니의 입술이 갈라졌다.

 

걸음을 옮기던 레드게일이 순간 얼어붙었다잠잠한 숨결이 여자를 그 자리에 묶어두어서레드게일은 오랜 세월 동안 얼음덩이로 얼어붙었던 오두막집 안에서집 바깥 타오르는 세상만 무턱대고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플러터샤이가 의연히 반 걸음 내디디며 말했다. "안 그런 지...... 안 그런 지도 오래 됐잖아요엄마아주 오래요이 얘길...... 이 얘길 듣고 싶어하시지 않는 거 알아요이게 가족의 방식이특히 제가 속한 가족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정말 이것만은 말씀드리고 싶어요...... 엄마와 딸처럼요사이 수많은 일들이 있었어요지난 며칠 동안 여러 가지가 기억났어요그리고 여러 상황에서 간극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났고요그건...... 그 상황들이 우리 사이에선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그러니 제발...... 우리...... 얘기 좀 해요몇 분만이라도 안 되나요그냥...... 그냥 다시 엄마 딸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단 하루만이라도......"

 

그 뒤로 이어진 침묵은 그 때의 재앙을 피해 도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모니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한쪽 페가수스에서 다른 페가수스로 시선을 계속 옮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빌려온 몸 위 목 속에 아린 응어리가 걸렸다가시덩굴에 얽혀 십자가형에 처해질 플러터샤이의 운명에서 비롯된 고통조차레드게일이 꺼낼 답에 비하면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가장 두려웠던 것은 마지막 포니 자신이여자의 대답을 예상했다는 것이었다.

 

"왜 네가 그런 데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는데." 레드게일이 플러터샤이의 머리를 밀어 침울히 숙이게 하는 차가운 바람처럼 에는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까지 신경 써야 할 이유 역시 모르겠고." 레드게일은 플러터샤이를 쳐다보지 않았다그러려 하지도 않았다여자는 콧김을 한 번 내뿜고는 고개를 돌려 완전히 타는 듯한 얼굴이 된 금색 페가수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플러터샤이넌 언제나 날 창피스럽게 했다언제나 그랬고앞으로도 그러겠지네 나약함과 두려움 때문에 네가 ''이라 부르는 이 쥐꼬리만한 땅덩이에서 나오지 않는 한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여자의 세어 가는 루비 색 어깨가 한 번 들썩거렸다. "네가 네 일을 잃는다면...... 네가 클라우드데일에서 도망쳐 나오게 한 몇 가지 시시한 결점들을 전부 지워 버리고 너 자신을 찾을 기회를 얻는다면그렇게 된다면 이 한심한 꿈에서 깨어나 다른 가족들처럼 진짜 페가수스가 될 힘을 얻어 네가 필요한 곳으로 다시 날아 돌아올 수도 있을 거다다만...... 늘 그랬던 것처럼 대답하겠지내 말이 맞다네뷸라 공주님께 맹세코나는 언제나 옳았다."

 

집 문이 두 젊은 페가수스를 뒤에 남겨두고 삐걱대며 닫혀서누구라도 부서장이 떠났다는 사실을 감지하거나 신경이라도 쓸 수 있을 듯싶었다하모니는 무감각하게 몸을 떨면서 겨우 오두막집 문에서 시선을 비틀어 떼어냈다시선이 옮겨간 자리에 펼쳐진 모습이 이십오 년의 세월을 녹색 불꽃을 타고 건너온 유일한 생존자의 떨리는 마음을 찢어놓았다.

 

플러터샤이가 풀린 다리로 집 한쪽 구석을 향하여 비틀거리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여자 자신의 그림자에 영원히 갇힌 듯한 모습이었다올가미처럼 그 여자를 옭아매며 늘어뜨려진 분홍 갈기 뒤로 얼굴이 가리워져하모니는 플러터샤이의 풀 죽은 얼굴을 볼 수 없었다그렇다고 시간여행자가 플러터샤이의 등을 천천히 두드려 주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플러터샤이......" 여자가 건조하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플러터샤이...... 미안...... 정말 미안해요그럴 줄은—"

 

"부탁이니까......" 음악 같은 소리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흐느낌이었고그 위로 훌쩍이는 숨들이 흘렀다. "저 혼자 내버려 두세요그거면 충분하니까......"

 

하모니가 쓴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플러터샤이......"

 

"혼자 이있는 걸로 충분하다고요...... 모르시겠어요?" 플러터샤이의 두 뒷다리가 무너져서여자는 풀린 두 다리의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떨었다하모니의 눈에 비친 그 여자의 등은 떨리고 있었다. "정말 모르시겠어요그냥...... 그냥 혼자 있게 해 달—"

 

"플러터샤이......" 하모니는 용기를 내 앞으로 다가가 그 여자의 구부정하게 구부러진 어깨를 뒤에서 잡았다. "......다시 혼자 있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었잖아요."

 

거대한 시간의 쐐기 위로 뻗어온 아침 햇살이 불변의 거울을 만들어 내어이제 뒤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한 황동색 페가수스의 품에 안긴 바로 그 포니가 되어 울음의 둑을 터뜨리면서 무너졌다하모니 자신조차도 고립과 수치로 얼룩진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쌓여 온 고통이 이룬 샘에서 길을 찾고 있었지만플러터샤이를 안아 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해가이해가 안 돼요......" 딸꾹질을 하며 몸을 떠는 플러터샤이의 얼굴은 여전히 갈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해가!" 여자는 계속 울고 흐느끼면서 하모니가 내어준 앞다리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왜 사랑해 주지 않는 건데?! 왜 보기조차 싫어하는 건데?! 뭐든지...... 뭐든지 다 했는데그저 약간의 친절만 바랐을 뿐인데그게 그렇게 큰 걸 바바라는 거였어?! 네뷸라 공주님전 가치가 없어요...... 어머니께선 절대 절 딸로 이인정하지 않......"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은 절대......" 하모니가 의연히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당신의 어머니처럼 비정한 이들과 있는 게 아니잖아요당신은 친절하고 아름다운천사 같은 포니라고요플러터샤이당신을 미워하는 건 이제 그만둬요친구들을 피해 혼자 있는 것도 그만둬요모든 어머니들이 자연 그 자체처럼 자신의 아이들을 이해하고사랑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모르겠어요...... 아아아아아 에포나 님...... 대체 왜......?"

 

"......" 하모니가 고통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아처럼 얼굴을 비비고 말했다. "세상이란 게 워낙 이상하고 미쳐 돌아가는 곳이잖아요다 괜찮아요......" 속이 타는 느낌에 여자 자신도 움츠러들기 시작했는데기꺼이 할 수 있는 쉬운 일 하나를 생각해 내고그를 말했다. "그게 슬프다면 우울어도 괜찮아요."

 

둘은 짝 잃은 목발 하나하나처럼 서로에 기대고 앉아 끝없는 생명의 호우가 몰고 온 평온한 침묵 속에서외로운 오두막 안에 오래 앉아 있었다.

 

 

"이만 가는 게 좋을 것 같네." 스쿠틀루가 분홍 갈기 위로 헬멧을 밀어 덮어 쓰며 말했다세례처럼 밤새 뿌려진 비가 지나고 난 뒤 남은 촉촉한 아침 공기 속으로 반짝이며 밀고 들어오는 밝은 햇살이 스쿠터에 가 부딪히며 즐거이 빛나는 모습은 풀잎 하나하나마다 묻어 반들거리는 모습과 잘 어울렸다. "밤새 엄마 화분을 생까고 있었단 걸 아셨다간 날 죽일지도 모르거든."

 

"왠지진지하게 아닐 거란 생각이 드는데." 플러터샤이가 정말 작은 자신의 오두막 문간에 서서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착한 아이의 부모님들께서 그렇게 거치신 분들일 리가 없거든."

 

스쿠틀루는 희미한 웃음을 띄우며 숨을 들이마시고는 두 오렌지색 발굽을 뻗어 편안히 스쿠터의 양쪽 핸들을 움켜잡고 말했다. "같이 있는 동안...... 즐거웠어플러터샤이."

 

"나도 그랬단다스쿠틀루."

 

"저기......" 스쿠틀루는 기대고 섰던 자신의 얄팍한 탈것이자 가장 친애하는 친구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던 스쿠터에서 쭈뼛거리며 내려와 섰다. "가끔씩...... 성질 부려서 미안해아무래도 뭐 하나 덜어내지 않고서는 손님 주제를 맞출 수가 없을 것—"

 

"즐거웠던 기억은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겨 두도록 하렴스쿠틀루." 플러터샤이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면 충분하단다그것들이 네 걸음들과...... 날개를 얼마나 멀리까지 이끌어 줄 수 있을지 알면 놀랄지도 모르겠구나."

 

"언제...... ......" 스쿠틀루가 입술을 깨물고는 수선스레 보라색 꼬리를 튀기듯 움직이며 말했다. "내가 큐티마크를 얻고 나면......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눈을 굴리며 깔깔 웃고는 애정 어린 눈으로 플러터샤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언니한테 가장 먼저 보여 주고 싶어."

 

"그래 준다면 정말 기쁠 거야스쿠틀루." 플러터샤이가 장난스레 눈을 찡긋해 보였다. "우리 자신의 재능을 찾으려면 혼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스쿠틀루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이는 목 너머로 아픈 응어리를 넘기며 말했다. "세상 어디서도 그 이상의 것을 찾을 수 없을 때 얘기지."

 

대기가 잠시 반짝이며 안개처럼 일출과 함께 떠오른 연무를 씻어냈다새들이 노래하고 있었고다람쥐들은 나뭇가지를 가볍게 흔들며 잽싸게 휙휙 달리고 있었다에버프리 숲은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잔물결 이는 낙원의 바다 앞에 펼쳐진 반도가 이러할 것인지스쿠틀루는 잠시 생각했다.

 

"플러터샤이 언니?"

 

"왜 그러니스쿠틀루?"

 

스쿠틀루는 입술을 깨물며 의연히 말했다. "용기를 내친구들도 초대하고 그러란 말이야초대를 기다리지 말라고친구들을 데려와...... 그리고 언니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 아름다움을 나누라고."

 

까르르 하고 가볍게 웃고는플러터샤이가 자신의 분홍 갈기를 뒤로 쳐 넘기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벌써 그렇게 했는걸."

 

스쿠틀루가 숨을 토해냈다온 힘을 다해도마음 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무언가를 아이는 눌러 죽일 수 없었다.

 

"부모님께 안부나 전해 드리렴스쿠틀루." 플러터샤이가 가볍게 발굽을 흔들며 말했다.

 

스쿠틀루는 고개를 끄덕였다아이는 한 숨에 노래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천사 같은 무언가에서 눈을 떼어내고 날개를 흔들어 스쿠터를 끌고 바깥의 차갑고어두운 세상으로 돌아갔다.

 

"언니도 우리 엄마 아빠를 볼 수 있길 얼마나 바라는지언니는 모를걸." 아이는 채찍질하듯 밀려오는 아침 바람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십오 년이 지나고......

 

 

......나서도 여자는 그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하모니가 몇 번 주춤거리는 숨을 들이마셨다여자는 검은 갈기로 덮인부술 수 없는 자신의 머리를 꽉 움켜잡았다여자는 온 근육을 긴장시키며 다시 한 번 앞날의 상층운上層雲에서 밀고 내려오며 부딪치고 포효하는매연 같은 녹색 연기 무리를 감당해냈다염소자리가 들린 딩키를 마나 크리스털 동굴로 데려갔을 때부터늘 이 모양이었다염소자리의 마력이 공진하며 접촉했던 것이 엔트로파 공주에게서 빌려온 몸 안에 담긴 스파이크의 숨결을 빨아들인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증세였지만시간이 지나면 여자 또한 떠날 것은 자명했다여자는 사라질 것이었다그것이 당연한 것이기라도 했던 듯하모니도 그를 알고 있었다깊은 호수 속으로 던져진 어린 아기처럼이 께름칙한 녹색 방울 사이에 빠져 죽기도 전부터 여자는 헤엄치고 있었다언제라도그 어느 순간이라도 수십 년간의 고독을 감당하면서 가련하게도 잊어버렸던서로 얽힌 세 가지 따스한 것들인 부드러운 한숨과 웃음그리고 울음의 땅에서 털어져 나갈 수 있었다여자의 일 전부가 위험에 처해 있었다모든 것의 끝이 가까워 있었다여자는 여전히 셀레스티아 공주와 접촉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였다그렇다고 해서이걸 실패라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다시 밀려오는 두통을 견디며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황동 페가수스는 플러터샤이의 집 욕실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는데여자의 지친 얼굴은 무력함 그 자체보다도 무기력했으나 그 시선만은 이제 거울에 비치는 낯선 형상을 향해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었다아침나절의 태양이 뿌리는 온화한 햇살이 황동색 몸 곳곳을 비추어모공 하나하나까지 드러내며 슬프게 반짝여 하모니 자신이 지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명확히 시간의 공주의 육신을 드러냈다.

 

이십오 년 전마지막으로 그녀가 그 거울을 들여다볼 명료한 근거가 있었을 때는 거울에 그 날 오후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굴절되며 비추어져 그 위에 비쳐 그녀를 마주보던 형상은 가리워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였다다행스럽게도이번에는 확실하고 정확한 황동색 형상이 비쳐졌다그 모습은 여자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삶에서도 혼자였고 시간에서도 혼자였다.

 

다만그녀는 더 이상 자신에게조차 혼자가 아니었다.

 

무언가 웃음 같은 것이 비쳤고그 다음에는 고통스러운 녹색 연기가 하모니를 덮쳐 쓸고 지나갔다마지막 포니는 씁 소리를 내며 다시 머리를 부여잡고 칵테일 요법처럼 그녀를 찌르려꿰뚫으려그리고 검은 가시덩굴로 가득 찬 가시숲으로 끌고 가려 밀고 내려오는 앞날의 송곳니에 맞서며 터지려는 눈물을 참았다.

 

(칵테일 요법치료효과가 다른 여러 가지 약제를 동시에 복용하는 치료법주로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에게 실시하는 치료법이다이는 바이러스가 어느 약제에 대한 내성을 갖추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효과와 더불어 바이러스를 한계치 이하로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어 가장 널리 쓰이는 치료법이다여기서는 녹색 연기가 세 가지 목적을 갖고 달려드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하모니는 목 안에 엉기는 날카로운 응어리를 애써 억누르면서 뜨거운 숨을 욕실 천장을 향해 뱉어냈다여자는 자신의 영혼을 투영함으로써 방문한 과거에서 남은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을 셀레스티아 공주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데 쓸 수도 있었다당장 벽을 걷어차고 나가 플러터샤이 앞에 들이닥쳐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캔틀롯으로 가자고 애원할 수도 있었다다만 셀레스티아 공주 바로 앞에서 한 줌의 녹색 연기를 남기고 사라진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왕궁으로 가는 동안에라도 과거에 남아 있을 운이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딩키 녀석한테 남아 있던 운 정도겠지." 하모니가 단조롭고 억양 없이 홀로 중얼거렸다.

 

이 깨달음을 예전에애플잭이나 치어릴리를 찾아갔던 시간 여행 때 얻었더라면여자는 틀림없이 큰 소리로 울어 버렸을 터였다지금의 하모니는 울음 대신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세상에는 실컷 울 만한 이유가 몇 가지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에버프리 숲의 품 속에서 칠십이 시간을 보내고 난 하모니는 지쳐 있었다.

 

그건 실수가 아니었다여자는 그렇게 스스로 타이르며 거울에 비쳐 윤이 나는 자신의 모습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다가 익숙한 얼룩을 보고 멈칫거렸다지난날의 그 날 밤여자 스스로 발굽을 뻗어 찍은 그 발굽 자국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얼룩져 있었다그 자국의 무엇인가 다가와 마지막 포니의 시각을 사방에서 꿰뚫었다발굽 자국은 완연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여자의 입술이 떨어졌다여자가 거울에 남은 자국의 궤적을 따라 시계바늘처럼 눈동자를 굴렸고이내 바닥을 향하여 시선을 비추었다부서진 토끼 조각상의 자기 조각들이 문 앞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대기는 건조했으나 하모니는 벽 너머에서그리고 시간 너머에서 불현듯 비 냄새가 끼쳐오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으나그녀는 웃고 있었다완전한 웃음을 웃어서다시 몰려온 녹색 발톱들이 연기처럼 난리를 치는 것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여자는 정돈된 숨과 함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거울에 묻은 얼룩과 부서진 도자기 조각들이 그대로 영원하도록 버려두고 욕실 너머의 문간을 향해 걸어갔다.

 

하모니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 페가수스가 얼굴을 맞대고 있던 오두막 거실을 바라보았다플러터샤이가 거기에 있었다편안한 몸과 마른 눈으로자신의 친구인 더피 후브즈와 함께 조용하고 나긋나긋하게 담소를 하고 있었다그 둘이 머무르는 따뜻하고 찬란한 과거에서집배원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이야기를 받아 오직 그 둘만을 위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마지막 포니가 처음부터 여기 오지 않은 것 같은 대화였다곧 그녀의 존재를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었지만.

 

이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야 할 것이기도 한 것이 무엇인지 하모니는 알았다다시 몰려온 녹색 발톱들이 여자를 찢어발기고 났을 때여자는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하모니는 옆 문을 열고 오두막을 천천히 걸어 나와 오두막 뒤쪽 헛간을 향하여 걸어가 지난 그 밤 이후 시작한 계획의 재료들 옆에 쌓인 한 더미 공구 쪽으로 다가갔다여자는 파란 칠 된 목재들을 잡고는 숨을 참고 오두막 주변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던진 뒤 부엌으로 향했다.

 

과거와 앞날 사이에 놓인 불변의 벽을 물리쳐 깨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다그 과정은 고된 것이었는데엔트로파 공주의 심폐기관이 여자의 안에서 에메랄드 빛 파문을 일으키는 시간의 파동을 거의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혼신을 다해 집중하면서여자는 작업을 계속했다하모니는 그것들을 오두막 안에 던져 넣고 부엌으로 밀고 가 팀버울프들에게서 도망쳐 나와 황무지의 회색 안개에 웃음을 칠할 어느 페가수스처럼운명의 인도 아래 그것을 보게 될 유일한 누군가가 볼 수 있도록외로운 가장자리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

 

하모니는 발굽을 탁탁 쳐 털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방 너머를 쳐다보았다더피와 플러터샤이 사이에서 오가는 조용한 말들이 쫑긋거리는 그녀의 귓가를 쓸었다둘 사이에서 들려오는 노래 같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여자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하모니는 이내 그 따스함을 등지고 집 바깥으로 완전히 걸어 나갔다다시 한 번 녹색 연기가 들이닥쳐서여자의 걸음이 휘청거렸고그제야 여자는 자신이 졸졸 흘러가는 작은 시내를 감싸며 펼쳐진 잔디 깔린 풀밭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장소의 익숙성이 옆에서 들려오는 한 꼬마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

 

"저기아직도 하늘에서 떨어지시던 그 모습이 생각나네요."

 

시간여행자는 순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발 밑에 깔린 풀밭을 흘끗 쳐다보고 나서하모니는 그 자리가 삼 일 전에 시간 역행의 터널을 지나 자신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임을 알아보았다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 바퀴 돌아 바로 왼편을 쳐다보았다.

 

딩키가 자그마한 티 세트를 늘어놓고 작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아이가 고개를 돌려 마지막 포니를 바라보자 단발 갈기가 흔들려 짤막한 뿔을 밀었다. "언젠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너희 어머니라면 사랑이 뭔지 알려 주시겠지." 하모니가 둥그런 찻잔 받침과 배불리 먹은 동물들 앞으로 걸어가 앉으며 말했다. "플러터샤이는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방법과 보살피는 법을 알려 줄 수도 있을 거야난 어떠냐고완전히 경우가 달라꼬마야." 여자는 앞으로 가 아이의 금발 갈기를 헝클어뜨리며 쓰다듬고 말했다.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다는 걸언젠간 알았으면 좋겠네살면서 몇몇 것들은 설명 불가능한 채 남게 되거든안 그러면 세상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딩키는 까르르 웃더니 풍자적으로 얼굴을 찌푸려 보였다. "배우는 게 재미있잖아요."

 

"그러면 네가 지금까지 산 만큼을 더 살고 나면난 평생 재미있게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유니콘 꼬마 하나를 알게 되겠지뭐 그래도 괜찮아널 막대기로 꿰어서 캠프파이어에 구워 버리진 않을 테니."

 

유니콘 꼬마는 혀를 내밀어 야유해 보였다.

 

"조심하라고그거 중독성 있거든믿어 봐."

 

"엄마께서 그러시는데언니가 지난밤에 혼자서 제 목숨을 구하는 걸보셨다고 하던데요."

 

"누가 진작에 얘기해 줬을지 모르겠는데그게...... ...... 너희 어머니께서 사물을 잘 보시는 편은 아니거든."

 

"캔틀롯 비서관들은 다들 그렇게 비꼬는 걸 좋아하나요?"

 

"아니하늘에서 떨어진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작자만 빼면 안 그래."

 

"히히히......"

 

하모니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 속 지뢰밭을 조심스레 건너가기 시작했는데그럼에도 얼굴에서 미소가 걷어지지 않았다여자는 곧 아이를 향하여 한 번 힘차게 훌쩍 뛰어 다가갔다. "어이...... ...... 너 지난 밤 동안 온갖 망할 것들 때문에 고생했는데......"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해요그냥 멀쩡했던 것 같은걸요!"

 

"자식귀엽네흠흠......" 여자는 호박색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걸...... ...... 염소자리가 너한테 들렸을 때 네 뿔이 무슨 라디오 안테나처럼 되어서 온갖 괴상한 소리를 줄줄 늘어놨다는 거 진짜 기억 못 하는 거야?"

 

"엄마께서 제가 뭔가 기괴하고 무서운 것들을 잔뜩 말했다고 하시긴 했어요그게...... 그게 굉장히 비정상적으로 기억이 흐릿해요상당히 놀라운 경험이라 생각하지만요그런데요제가 염소자리에...... 홀렸을 때 얘긴데그 때부터 온갖 무서운 말들을 쏟아냈던 모양이지만 정작 말하고 있었던 건 단 하나의 잔혹한 사실뿐이었어요그건 기억해요."

 

"혹시...... 혹시 그거에 대해서 했던 말이나 안 했던 말들 중에서 뭐라도 생각나는 거 없어?" 하모니가 입술을 깨물며 마른침을 삼켰다. "'오닉스 이클립스'라는 거...... 혹시혹시 기억나?"

 

딩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하모니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걸 느꼈지만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재빨리 털어냈다. "뭔지 모를 기억들이 한 데 흐릿하게 둥그렇게 모여 있는 것 같았어요뭐라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해요죄송해요언니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답해 드릴 수 있길 바랐는데."

 

"미안해할 것 없어그거야...... ......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까내가...... 알아서 할게." 여자는 아이의 어깨 위에 다리를 얹어주었다보려고 했지만다음으로 꺼내려는 말을 꺼내려 애쓰는 동안하모니는 아이의 밝은 노란색 눈을 들여다보려고 했지만그러지 못했다. "앞으로......" 하모니의 목소리에 조금씩 금이 갔지만여자는 팽팽한 웃음으로 그것을 감추고 말했다. "오랫동안 거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거다진심이야."

 

"노력해 볼게요하모니 언니." 딩키가 정중하고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아이가 찻주전자를 들으며 물었다. "차 드릴까요?"

 

"지금 가는 곳에서는 괜찮을 거다." 하모니는 일어서서 잠시 불어오는 녹색 바람을 쐬었다여자는 이내 그것을 쳐냈는데그 순간 오두막집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시선을 옮기자 더피 후브즈가 옆구리에 편지 가방을 단단히 맨 채 오두막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집배원은 심호흡하며 늦은 아침의 반대쪽 지평선을 힘있게 쳐다보았다그녀의 얼굴에는 편안한 심상에서 우러난 평정이 묻어나고 있었다그 모습은 좋은 쪽으로 전염성이 있었는데

 

"존중했어."

 

하모니는 깜짝 놀랐다여자는 금발 유니콘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 되물었다. "?"

 

"비전 저장고에 밀어 넣고 다시 밖으로 떠났을 때는......" 아이의 움직이지 않는 입술 사이로 나직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했어."

 

마지막 포니는 충격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순간 두 눈이 텅 비었다. "딩키......?"

 

아이는 어질어질한지 휘청거리더니 두 다리로 티 테이블을 붙잡아 몸을 고정시키고 대답했다. "...... ?"

 

"누가 날 사랑했다는 거야?"

 

"누구를 사랑한 누군가요?" 아이는 피곤한 듯 황동색 페가수스를 올려다보았다힘 없고 어색한 웃음이 지어졌다. "이런죄송해요하모니 언니머릿속 거미줄을 닦아내는 중이라서요제가 뭔가 실언을 한 건가요?"

 

마지막 포니는 몇 차례 눈을 깜박이다가 아침 햇살보다도 따뜻한 무언가로 온 몸이 덥혀지는 것을 느끼며 겨우 단단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냐실언이라기보다는......" 떨리는 숨이 흘러나왔다. "친절한 말이었지......"

 

"으음...... 언니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괜찮겠네요." 어린아이는 티 세트가 놓인 티 테이블에서 일어나더니 바로 하모니 쪽으로 달려가 여자의 앞다리에 부드럽게 얼굴을 비볐고그러고는 올 때처럼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잘 가요!"

 

"또 보자......" 하모니는 힘없이 발굽을 흔들며 명랑한 걸음으로 제 어머니를 찾아가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바로 내려 아이에게 얼굴을 비비는 더피의 모습이 바로 들어왔다몇 마디 속삭이는 말들이 둘 사이에서 오갔다더피는 살짝 멍한 시선으로 하모니를 돌아보다가이내 오두막집을 가리켜 보이며 어린 유니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조그마한 회색 꼬마는 바로 신이 난 걸음으로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 플러터샤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고그 동안 집배원 포니는 마당 한가운데 선 '캔틀롯 왕궁비서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 다가왔다.

 

하모니는 침을 넘기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세요......" 자리에 선 더피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한쪽 눈이 하모니를 향해 있었는데누가 보더라도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그게...... ...... '비가 오든 진눈깨비가 오든함박눈이든 싸락눈이든 상관없이배달하시겠지만, '정신 나간 염소자리 꼬마 에너지 빙의 현상'은 절대로 배달하시지 않겠죠그렇죠?" 하모니가 초조하게 웃어 보였다.

 

(원문은 Rain or shine, snow or sleet, we deliver your mail!미국 우편사업부의 비공식적인 모토 겸 신조를 나타낸다미 우편사업부는 공식 모토나 신조가 없으나일반적으로는 이 문장으로 미 우편사업부의 모토를 정의한다.)

 

"마음 써 주시는 방식이 그러시다면야직장에서 잘리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아요." 더피가 건조하게 대답했다그러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특히나 이런 상황이었으니이퀘스트리아 우편사업본부에서도 이해해 주겠죠분명히 이 이상한 여여자가 더욱더 이상한 짓을 해도 용서할 거에요날 믿어요."

 

"어머님께서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거에요." 하모니는 외로운 황동색 발굽으로 몇 개 잎새를 쓸며 말했다. "다만 헌신적이신 것만은 확실하죠딩키 녀석...... 자기처럼 귀엽고...... 소중한 녀석을......" 하모니는 언젠가 자신이 안겨 있었던 금빛 그림자를오두막집 현관을 잠시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챙겨 주고사랑해 주는 어머니를 뒀으니정말...... 운이 좋은 녀석이네요......"

 

"이제 왜 플러터샤이가 첫눈에 당신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알 것 같네요." 더피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빨리 배우신다니까." 그녀는 씁쓸한 숨을 내쉬며 입술을 깨물고 말을 이었다. "전엔...... 전엔 그 동안 봐 왔던 다른 포니들이랑 거기서 거기인 분인 줄 알았어요아무것도 상관 없어하시는 분인 줄 알았죠제 생각이 틀렸어요그 반대인 분이셨죠그저배려의 방식이 너무나 매몰찼을 뿐이었으니까요."

 

하모니는 깜짝 놀라 어색하게 얼굴을 붉혔다. "-헤헤헤...... 각자의 방식이 이있으니까요그렇죠?" 여자는 목에 덮인 검은 갈기를 쓸며 발굽에 쓸리는 녹색 이파리의 소름 돋는 흐름을 견디었고곧 입가를 깨물며 말했다. "...... ...... 그냥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저한테 감사하신다고요?" 더피의 사시 눈이 떨렸다. "대체 왜요?"

 

"저한테 다시 구부려 펴야 할뒤틀린 모습들이 많이 있다는 걸 보여 주셨으니까요." 그녀는 잠깐 움찔하더니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친절해질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하모니우린 우리가 운이 좋은 만큼의 절반만큼도 친절하지 못해요." 더피 후브즈가 단호히 말했다.

 

"그렇죠—" 하모니는 말을 하다 말고 눈을 크게 깜박이며 물었다. "잠깐만요방금 절 뭐라고 부르셨어요?"

 

오두막집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이번에는 플러터샤이가 딩키를 데리고 같이 나왔다. "어머님인사도 못 드리고 보내 드릴 뻔했잖아요!"

 

"헤헤헤......" 흐린 눈을 한 여자가 눈에 띄게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하모니를 등지며 돌아서자 지고 있던 가방이 쌩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더피는 플러터샤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며칠 있으면 다시 볼 텐데요 뭐어떻게 내가 우리 최고의 보모를 두고 다신 아안 오겠어요안 그러니 우리 머머핀?"

 

"다음에는 '고 필리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는걸요!"

 

(Go Filly: 실존하는 카드게임 Go Fish의 변형게임 방법은 검색하면 자세히 나옵니다.)

 

"엄마도 공놀이 좋아해!"

 

"엄마아아아."

 

"헤헤헤."

 

"히히히!"

 

하모니는 눈만 깜박이며 서 있었다벌어진 입이 천천히 오므라들며 부드러운 웃음으로 변해갔고그 사이 여자는 자기 뺨 모퉁이를 혀로 지그시 눌러보았다커다란 앞니는 없었다. "...... 날아다니면서 장사치 노릇 하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안 그러냐브루스?"

 

플러터샤이는 딩키의 부드러운 뺨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지금처럼 책을 읽도록 하렴딩키하지만 여기서 멈추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즐길 수 있을 때 지금의 삶을 즐기기도 했으면 좋겠어가장 좋은 건친구를 사귀는 거란다!"

 

"엄마께서 그러시는데친구들은 얼마나 좋아하든 그게 과하게 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래어머님과 아주 오랫동안그리고 열심히 그 얘기를 했었단다우리 둘 다 이제 약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지."

 

"변화라뇨?" 딩키가 놀라며 반문했다. "그럼 이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녹음한 걸 듣는 건가요?"

 

"귀엽기도 하지." 더피는 이미 굴리고 있던 눈을 다시 굴려 시선을 던지며 빙긋 웃고 어린 유니콘을 잡으며 말했다. "가는 게 좋겠구나머핀." 여자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꼬마를 우편 가방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아무래도 오늘 오후에는 비가 많이 올 것 같구나!"

 

"엄마이번에는 확실하게 구름 피하면서 나셔야 돼요!" 딩키가 헬멧 끈을 매며 윙크하고 말했다.

 

"엄만 머핀만 있으면 직선으로 쭉 날 수 있단다그러니 항공사航空士응답 바람!"

 

"확인!"

 

어머니와 딸이 땅을 박차며 날아오르자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 그 둘을 그 너머 찬란한 빛 속으로 데려가 주기라도 하려는 듯 뻗쳐갔다.

 

"잘 있어요하모니플러터샤이제 외부측두엽 신경정신계에 들어앉았던 커다란 염소자리 꼬마 꺼내 주신 거 고마워요!"

 

"...... 딩키언제라도 또 오렴!" 플러터샤이가 발굽을 흔들며 작별했다여자는 아침의 지평선 너머로 흐려지며 사라져 가는 그 둘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나직하게 한숨지었다.

 

하모니는 잔잔한 걸음으로 산책하듯 걸어가 겸손하게 선 오두막집 앞에 서 있던 플러터샤이의 옆에 가 섰다. "그럴 거에요진심으로 그럴 거라 믿어요."

 

"으음?" 플러터샤이가 황동색 페가수스를 향해 두 은은한 푸른색 눈을 깜박였다.

 

하모니는 너머로 보이는일어나는 시간의 꼭대기에서 흘러오는 백금의 빛에 씻겨서 흐려진 포니빌 집 지붕들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리듯 조용히 말했다. "플러터샤이언젠가 당신도 훌륭한 어머니가 될 거에요그 누구보다도......" 여자는 침을 길게 삼켰다. "당신이 알던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어머니가."

 

플러터샤이는 비단처럼 흘러 내려와 달랑거리는 긴 갈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처럼 유독 나약한 여자가 어떻게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 있겠어요?"

 

"당연하니까요." 하모니가 시선을 돌려 차분한 눈길로 플러터샤이를 바라보았다언제라도 시간 역행의 발톱이 튀어나와 그녀를 산산이 찢어 녹색 파편으로 흩어 놓을지 몰랐지만아직까진 말을 꺼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당신에게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모든 것을당신은 해 주었어요그리고 시간 속 틈새 안에 숨겨져 있던 모든 비밀들을 찾아내는 데도 성공했죠." 여자의 시선은 한 외로운 어린아이의 발 밑에서 활공하듯 나아가는 스쿠터처럼 이슬 맺힌 아득한 들판을 따라 에버프리 숲과 오두막집 사이를 갈라놓으며 미끄러졌다. "살아오며 사랑했거나 후회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그것들 중 무엇이 누군가에게 해 줄 가치가 있고 없는지 생각했고요." 여자는 고개를 돌리며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어머니 대자연이 영원한 것이만물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불변의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 아니라면어머니 자연으로 성립하는 건 불가능하겠죠대자연은 마치 당신 같은 이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빚어지기라도 한 듯...... 완벽한 것이니까요."

 

플러터샤이는 새로이 묻고 싶은 것이 생겼는지 새로 숨을 들이마시며 하모니를 쳐다보고 물었다. "의무도이성도그리고 두려움도 다 버리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제 삶을 비춰 준 하모니당신은 대체 어디서 오신...... 분이신가요?" 여자의 푸른 눈이 가늘어졌다. "지난 삼 일 내내언젠가 당신을 본 적 있는 듯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아요."

 

"그게 친절의 본질 아니겠어요?" 하모니가 조용히 웃으며 두 발굽을 들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빙빙 도는 원을 그리고 말했다. "친절이란 돌고 도는 것이니까요그렇죠?"

 

"그럴 거라고 믿어 왔어요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따뜻한 숨결을 내보내는 플러터샤이의 두 푸른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리고 이제...... 보답을 받았네요."

 

"오리 새끼들을 길렀는데걔들이 강아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히히히...... 하모니 당신이 그렇다 하시니그렇겠죠."

 

"그래요." 하모니는 꺼내던 말을 잘라 끊으며 지금 그 순간의 끝이 지난 시간 여행의 끝처럼 뻔뻔스레 녹색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것으로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지그리고 지금껏 그래 왔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며 숨을 뱉어냈다. "절대...... 절대로 당신을 잊지 않을게요플러터샤이포니들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잊지 않아요."

 

"저도 당신의 힘과 용기를 기억할 거에요......" 플러터샤이가 가만히 걸어와 '비서관'에게 비단 깃털처럼 부드럽게 얼굴을 비볐다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상냥하게 노래하며 말했다. "......그리고 친절한 마음도."

 

"...... 몇몇 원은 어디서 그 궤적의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르니까요......" 하모니는 덮쳐 들어오는 날카로운 녹색 파동을 견디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죠?"

 

"...... 그럴 거에요." 플러터샤이가 고개를 젖히며 불타듯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말했다. "저 구름...... 더피 후브즈 씨 말이 맞았네요오늘 오후에 엄청나게 쏟아질 것 같아요."

 

"그러게요." 하모니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하며고글 없는 자리로 발굽을 뻗었다갑자기 튀어나온 바보 같은 습관에여자는 하릴없이 웃어 보이기만 했다. "누가 알았겠어요그렇죠?" 여자는 헛기침을 해 목을 닦고오두막집을 쳐다보고는 뒤쪽으로 한쪽 발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저것 좀 보세요더피 씨랑 이야기하시는 사이에 누가 저런 걸 던져 놨네요."

 

"어라?" 플러터샤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그러니까 제가 어머님이랑 몇 마디 나누고 있을 때 다른 누가 뭘 가져다 오두막집에 던져 놓았다는 건가요?"

 

하모니는 조금 몸을 움츠리며 실실 웃고 말했다. "그게꼬마던데요." 온 세상에 거품이 일고 있었다머리 위로 뻗어오는 거대한 에메랄드 빛 통로 너머로 쏟아지는 한 무리 검은 덩굴들이 언제라도 그녀의 떨리는 몸을 집어삼킬 듯 뻗어오는 것을여자는 감지할 수 있었다하모니는 의연하게 헛기침하며 말했다. "스쿠터를 탄조그마한 장난꾸러기였어요오렌지색이었는데너무 빨리 휙 지나가서 자세히는 못 봤네요혹시 누군지 짚이는 데가 있나요?"

 

플러터샤이는 놀란 듯했다부드럽고멍한 미소가 노란 입가에 번졌다. "정확히는알 것 같아요."

 

"그럼 됐죠 뭐...... ......"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진실 역시 아닌그저 어느 식으로든 맞는 말이었다. "뭔가 두고 갔던데요자기 말로는 그걸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고는 하던데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네요나무망치 하나 못 들 정도로 뼈만 앙상하던데."

 

"소중한 것들이 관련된다면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아시면 놀라실 거에요."

 

"그렇지는 않아요더는 놀라지 않을 테니." 하모니가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그 무거운 걸 부엌까지 옮겨다 두는 건 내가 했어요."

 

플러터샤이는 곤란한 듯 눈만 깜박이다 물었다. "무거워요?"

 

"그걸로 뭘 하시든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저라면 부엌에 손님을 들이는 건 하지 않을 거에요거기 좀 지저분하니까요!"

 

"...... 그렇겠네요." 플러터샤이가 얼굴을 붉혔다. "하루 대부분을 동물들 밥 주는 것만 하다 보면 청소해야지란 생각이 잘 안 들기도 해서요."

 

"그러면 그걸 얘기해 줄 수 있는 거랑 밥을 먹으면 되잖아요." 하모니가 말했다. "그 식사를 당신 친구래리티와 함께 하세요여기서 나와 그분을 찾아가서그냥 같이 계세요."

 

"래리티......" 플러터샤이가 갑자기 화색이 되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행복한 생각에 빠진 플러터샤이의 얼굴에 장밋빛으로 색이 피어났다. "다시 걔랑 어울릴 수 있으면 정말 즐거울 텐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하모니가 말했다녹색 연무가 기분 좋게 눈을 가렸다여자는 플러터샤이가 마지막 포니 자신이 빠져 들어간 그 아수라장을 보지 못하기를 바랐다. "그 순간을 잡아요...... 플러터샤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플러터샤이가 순진한 표정으로 하모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오렌지색 아이 말인데요어디로 갔나요?"

 

하모니는 욱신거리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그리고는 무감각하게되물었다. "어디로 갔냐고요......?"

 

플러터샤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모니는 결국 웃으며결국 대답했다. "여기서 남서쪽으로 갔어요제 생각엔혼자 선 추모비 쪽으로 간 것 같은데요."

 

"에버클리어 말씀이세요?" 플러터샤이는 알 수 없다는 듯 남서쪽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왜 그리로 간 걸까요?"

 

"누군가를 어딘가로 이끄는 게 뭐겠어요?" 하모니가 수수께끼 같은 윙크를 해 보였다그리고 그녀는 한 줄기 녹색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플러터샤이가 고개를 돌렸다진주 같은 두 푸른 눈이 가늘어지며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는 그녀의 친구이자 캔틀롯 왕궁비서관을 찾았다세상은 다시 한 번 고독해졌고그 사실은 어느 순간 포니빌 동물훈련사가 몇 년 동안 지내며 익숙해져 온 그것보다도 잔혹하게 오두막에 깔린 침묵을 찔렀다그녀는 네 다리의 방향을 돌리며 한 번 꼬리를 탁 치고남겨두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흥미가 생겨 자신의 오두막 속으로 단단한 걸음을 내디뎠다.

 

~*~*~*~*~*~*~

 

플러터샤이가 부엌에 도착하자마자 그것이 바로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여자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눈 앞에 놓인 그것이 분명한 상을 갖추며 시선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몇 초가 지나고마침내 한 줄기 날숨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것은 탁자였다탁자몇 달 전 오두막에 다시 생기가 돌던 어느 날 밤존재만으로도 행복한 세 꼬마들이 그녀의 집에 찾아왔었다그 날 저녁부서진 그 탁자가...... 조각끼리 정확히 맞추어진 채 새것처럼 플러터샤이의 앞에 서 있었다전보다도 상태가 좋아 보였고어떻게 보면 완벽했으며또한 불변할 것 같았다.

 

나직한 웃음이 플러터샤이의 입술을 떠났다그녀는 양동이 하나를 든 분홍 갈기 아이를 떠올렸다생각난 형상은 지난 사십팔 시간 동안의 광기에 찬 순간들에 흐려졌고어느새 플러터샤이의 두 날개는 보이지 않는 바람이 그녀를 앞으로 밀어 주고 있기라도 한 듯 펼쳐져 있었다여자의 마음 속에 회오리바람이 이는 것은 당연했고여자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플러터샤이는 갑작스레 숨을 들이마시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이내 버드나무 바구니와 빵 조각을 담아 둔 가방 몇 개그리고 부엌 창가에 우아하게 놓인 꽃병에 꽂아 두었던 한 묶음 국화를 한 데 모으기 시작했다.

 

~*~*~*~*~*~*~

 

구름이 다니는 높이어서 흰 비석의 바다 위에 찍힌 오렌지색 얼룩 하나처럼 보이긴 했지만플러터샤이는 그 아이를 볼 수 있었다정오의 태양이 덥혀진 시선으로 굽어보는 그 자리에서 하루의 양끝이 만나 입맞춤하는 모습에 행복해하는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여자의 가슴 속으로 뛰어들었다그녀가 날개를 당겨 접으며 아이 뒤에 재빨리 내려앉으며 흘린 숨은 놀랐다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워하는 듯했고곧 재잘거리는 듯한 말로 바뀌었다.

 

"어머안녕스쿠틀루."

 

"흠흠간만이네플러터샤이." 아이는 자기가 인면수심의 범죄 현장 한가운데서 발견되기라도 한 듯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 웬일로 여길 다 온 거야?"

 

"나도 그걸 막 물어 보려던 참이야." 플러터샤이는 웃어 보이고 비석 하나마다 꽃을 놓아두기 시작했다숭고하고 귀중한 이들에게 맞는 아름답고 소중한 꽃들이었다. "여기 가면 네가 있을 거라 누가 그러더라고."

 

"진짜나 뭐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지?"

 

"히히히...... 세상에아니야흐음...... 오히려그 반대라고 하는 게 맞을 거야."

 

스쿠틀루가 어리둥절하게 눈을 가늘게 하고 물었다.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

 

"......" 플러터샤이는 어머니 자연의 따뜻한 숨결 한 모금을 머금고 그것이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자장가이기라도 한 듯 음미하다가 삼켰다여자는 웃을 뿐이었다. "정말 기분 좋은 생각을 했거든순환 속에 다시 순환이 연속되는 생각친절은 춤과 같은 것이어서우리 모두가 같은 댄싱 플로어 위에서 춤추고 있는 거지...... ...... 하나하나가 알든 모르든 말이야만나서 반가웠어스쿠틀루언제나 그래."

 

 

여윈 갈색 몸을 한 어느 방랑자 하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에메랄드 빛 불꽃의 장막 속에서 나타나 어둠보다도 더욱 시커먼 구덩이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여자의 짧은 분홍 갈기가 시간의 연기에 흔들렸다베인 자국과 흉터로 가득한 네 발굽이 차분히 돌바닥을 딛고 섰고그 옆에는 빈 유리 항아리와 잘게 찢긴 가죽 댄 가방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나타남은 꽃이 피는 것과 같아서 그 시작만큼이나 빠르게 끝났고마지막 포니는 흐려져 가는 녹색 숨을 내뱉으며 다시 한 번 황무지의 검은 무덤 속에 섞여 들어왔다.

 

여자는 오랫동안 차가운 숨을 흘려 보냈다다시 진홍색 눈을 열어 떴을 때도...... 자기 숨에 서린 입김밖에 보이지 않았다가시덩굴로 뒤덮인 가시숲의 칠흑 속이 아니었다이 뜻은......

 

멀리서 낮은 소리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가슴이 철렁해져서 몸을 떠는 포니가 다시 땅 깊은 곳 가시숲의 모습을 들여다보자뼈가 드러난 목을 겨우 덮은 짧은 분홍 갈기가 일어섰다스쿠틀루는 돌아온 것이다...... 악몽의 굴 속으로...... 이미 푸른 빛 하나가 포니의 존재 자체를 입증하는 그녀의 냄새를 따라 강철 같은 두 앞발로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면서 여자를 맞이하러 오고 있었다.

 

마지막 포니는 질풍처럼 물건을 챙기고 옆구리에 보호구를 덧댄 뒤 유리 단지를 챙기고 돌이 된 채 산산이 부서진 플러터샤이의 잔해를 지나 재빨리 가시덩굴 속으로 달려갔다여자는 사방으로 뒤엉키고 얽혀 있는 가시덩굴 아래로 기어 들어가 몸을 웅크린 채 전속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포식자가 살인적인 괴성을 내며 미친 듯 놈의 먹이를 뒤쫓아오자 여자의 뒤로 펼쳐진 에버프리 가시숲의 속이 밝은 푸른색의 빛을 흘렸다.

 

스쿠틀루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분명하게 그 분노가 이해되기 전까지그리고 그 쇠 맛 같은 느낌에 몸이 떨리기 전까지 본능적으로 그저 도망만 쳤다전력질주를 하던 다리는 이내 비틀거리는 듯한 걸음을 옮겨놓았고곧 완전히 멈춘 채 여자의 결심에 헐떡거렸다.

 

푸른 기운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었다거대한 큰곰자리가 검은 가시덩굴 몇 개를 산산이 부수어 뜯어내 한쪽으로 던져 버리고는 침 흘리는 주둥이로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주제에 바로 앞에 멍청하게 멈춰 선가련한 중생을 보고 흉악한 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포니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스쿠틀루는 은은한 슬픔이 어린 눈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짐승을 들여다보았다.

 

번들거리는 놈의 송곳니는 가히 신화적이었다혐오스러운 별자리들이 그득 들어찬 큰곰의 몸뚱이가 한 번 들썩이고는 스쿠틀루를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듯 한쪽 앞발을 치켜들었다.

 

지금이 여자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 때일지도 몰랐다시간이 드디어 여자의 발목을 잡은 순간이 지금일지도 몰랐다스쿠틀루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지금 그녀에겐 친절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랬으므로여자는 그대로 했다스쿠틀루가 입을 열었다비단결같이 부드러운 선율처럼여자의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어머니를 잃었구나."

 

큰곰자리의 핏발 선 눈이 움찔했다간헐적인 신음을 흘리는 곰은 혼란스러운 듯 앞발을 내려치지 못했다기묘하게도 큰곰자리가 스쿠틀루가 꺼낸 말에 긴장된 근육에 힘을 뺐는데녀석의 별빛 어린 몸도 조금 흐려졌다.

 

"네 어머니...... 와 너까지 태워 없앨 뻔했던 이상한 일 때문에 돌아가셨어이제 두 번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스쿠틀루가 나직하게 말했다. "오닉스 이클립스 때문에."

 

희미하게 빛나는 큰곰자리의 두 눈동자는 누군가의 아름다운 말들이 노래처럼 나와 싱그러운 녹색으로 일어나던 한 가련하고 따뜻한 숲처럼 줄어들며 녀석의 끝 모르는 혼란과 분노에 뻔뻔스럽기까지 한 친절함으로 맞서는 쥐꼬리만한 사냥감을 바라보며 깜박거렸다.

 

"그 때부터 계속 혼자였겠구나하지만...... 괜찮아." 스쿠틀루는 고통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잿빛 나날들 중 어느 하루조차도 그렇게 될 수 없었던 아이처럼슬픈 울음소리로 말했다. "나도 엄마를 잃었어." 소름 끼칠 정도로 아픈 숨이 쉬어졌다. "두 번이나."

 

큰곰자리가 들었던 앞발을 내려놓았다더 이상 불길이 일지 않는 풀 죽은 눈으로녀석은 자그마한 포니의 몸 너머 끼어 있던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고통의 구름을 슬프게 바라보며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스쿠틀루가 천천한 걸음으로 커다란 푸른 짐승을 향해 걸어가자여자의 몸이 녀석의 눈물 냄새 섞인 숨결에 씻겨졌다. "우리...... 우리 모두 단순히 부모님을 잃기만 한 게 아니야우린 그저 지금까지 그래 왔던 존재들이고또 앞으로도 그럴 존재들이지." 여자는 울먹이며 어느 용이 했던 지혜로운 말을 다시 꺼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혼자야하지만......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아너도 느낄지 모르겠지만우린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해우리 모두 어머니를 잃었지만...... 태어났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우리를 하나로 엮어 주고우리의 조각나고 헝클어진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는 건...... 친절한 마음 뿐." 스쿠틀루는 흐느끼며 몸을 떨었고곧 큰곰자리의 거대한 주둥이 앞에 가 무릎을 꿇었다. "너에게 친절하고 싶어그것뿐이야."

 

녀석의 주둥이는 마지막 포니를 향해 덮쳐 들며 조여지지 않았다그 대신녀석은 천상에서 벌어진 사고 때문에 돌아갈 길을 비춰 줄 해도 달도 없는 곳에 그 끝없는 분노를 전가할 위 세상의 굳어진 시체들과 홀로 남겨진잊혀지고 버림받은 아이로서의 높은 포효를 억누르고만 있었다플러터샤이가 해 주었던 아름다운 말들에흉포했던 큰곰자리는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그 선율에 고개를 숙였다큰곰이 흘린 눈물이 바다를 이루어 좀 전에 부수었던 가시덩굴을 씻어냈다.

 

"......" 스쿠틀루는 갈색 몸 위로 난 상처 너머로 웃어 보이며 별이 총총한 큰곰자리의 몸부림치는 이마를 천천히 쓸어 주며 말했다. "세상은 원래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곳이야그게 슬프다면울어도 돼."

 

거대한 곰은 버려진 에버프리 숲의 자궁 속에 감싸여 자신의 푸른 몸으로 커다란 울음을 비추며스쿠틀루의 말대로 했다스쿠틀루는 행복하게 웃는 얼굴로 눈물을 쏟아내며 몸을 떨었는데감은 두 눈이 잿더미로 뒤덮인 시간 너머에서까지 뻗어와 순환을 완성하는 자연과푸른 기운을 향하고 있었다그녀는 수많은 고통과 대답 없는 기도 끝에서 외로이 몸을 떨던 어린아이이자 기쁘게도 그 역시 이렇게 할 어린아이를 달랬다.

 

“Hush now, quiet now, it's time to lay your sleepy head. Hush now, quiet now, it's time to go to 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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