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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E/.마지막 사람을 건넬 때까지.8

.Until the Last pony is Ferried. 번역후기 SS&E에 대한 한없는 적의가 솟구친 작업이었습니다. 이렇게 간결하고 쉽게 쓸 수 있는 인간이었다니. 초창기 김훈처럼 미친 듯한 만연체로 주절거리는 글을 보다가 이 글을 보니 배신감이 들었어요. 백그라운드 포니도 이렇게 써놓았으면 오죽 좋습니까? 평소 제가 옮기는 스타일에 굉장히 잘 맞았다 싶습니다. 문장 잇고 끊을 것도 없이 딱딱 떨어져 주니까 이쪽도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지요. 양도 얼마 안 되고. 그래서 이 카론이란 자가 누구냐, 라는 댓글이 처음에 좀 달렸었습니다. 태그에 OC 없이 Mane six만 박혀 있었거든요. 대충 눈치 까신 분들은 눈치 까신 것 같던데. 어떻게 보면 수명물을 극단으로 몰아붙인 형태가 이 글이라 하겠습니다. 우주 종말 시나리오 중 Big Freeze 시나리오에 맞춘 것이.. 2020. 11.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제 나 여기 서 있으니. .사후세계의 마지막 남은 칠흑 같은 조각이 내 주위로 녹아들고 있다. .무슨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배가 스스로 무너져 사라져가고 있었다. .내 배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수도 없이 많았던 사람들 중 중요한 사람은 일부였다. .생각해 보면, 어떤 식으로든 다들 중요한 사람이었겠지. .그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시선을 두었을 뿐. .등잔 안에 고여 있던 마지막 빛 한 줄기가 사라진 끝에, 등잔까지 깨져 없어졌다. .고개를 돌려, 나를 기다리는 심연과 마주선다. .심연의 바닥에 침잠하는 것으로, 이 짓도 끝이 난다. .칠흑보다도 검은 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여기서 이만큼 쪼는 건 처음이다. .그래, 이제 말이 통하네. .한 줄기 숨결이 불꽃을 튀기다가.. 2020. 11.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녀는 의외로 동전을 갖고 있었다. .영겁의 세월 끝에서도 아직 무로 돌아가지 않은 세상의 원리가 있다니, 놀랄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향해 노를 저어 갔을 뿐. .여자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렸다. 아직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쓰러지는 것을 막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두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그대가 카론Charon인가요?. .그녀의 숨결은 오래 전에 해져 뜯어져 버린 밤의 베일을 향해 몰아치는 회오리바람과도 같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버티고 서 있었다. .소생을 아시나이까?. .다른 지성체와 대화해 본 것이 벌써 셀 수도 없이 오래된 일인 것처럼, 여자는 살짝 비틀거렸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구 떨리고 불.. 2020. 11.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다. .수백 년이 수천 년이 되었고. .몇 번의 겁파劫波로 이행되었다. .한 번 왕복하는 시간을 재고, 몇 번 왕복했는지 곱하여 시간을 센다. .검고 검은 강 위로 한 명을 건네주고 나서 바로 다음 사람을 건네주어. .모든 사람을 건네주었다. .생명을 낳은 자들과 생명을 꺼뜨린 자들을. .성자와 악인을. .영웅과 비겁자를. .다만 한 번에 한 명씩, 가야 할 곳으로 인도했다. .하나같이 이전의 색을 잃어 창백하고 아무 색도 남지 않은 자들이었다. .내가 아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수도 없이 많은 자들 중, 희미하게라도 희망과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자들은 거의 없었다. .수천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내게 말을 걸었다. 그쯤이면 자주 있는 일이었다. .말을 건다 해도 무의미한 헛.. 2020. 11. 3.
.____. .솔직히 까고 말하리다. 왜 그 옘병할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소만. .여자를 싣고 강을 건너가는 길이었다. 나는 노를 더 단단히 잡으며 말했다. .너에게 전해달라고, 그 사람이 부탁하더군. .그러니까 하는 소리요. 어딜 봐도 당신이 누구 얘기를 전해 줄 사람 같지는 않단 말요! 세상 누가 다 썩어빠진 거무죽죽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 얘기를 전해준다고! 죽었으면 가야 하는 곳이 있다고 하니, 그리로나 갑시다!. .나는 아무런 감흥 없이 평온했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노를 저으면서도, 평범하게 노를 젓는 척 하며 말했다. .그 사람만 너를 걱정한 게 아니다. 평생을 강인하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 살았다며 네 이야기를 늘어놓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죽.. 2020. 11. 3.
.___. .대가는 필요없다. 내 일은 너를 피안으로 인도하는 것 하나뿐이다. .무슨 그런 말씀을. 자, 동전 가져가세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원래 이래야 하는 거잖아요?. .여자의 우아해 보이는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 떨어뜨리자, 발굽에 쥐여진 동전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반짝하게 잘 닦인 동전이었다. .나는 차가운 한숨과 함께 동전을 받아 로브 아래 주머니에 집어넣고, 노를 저어 배를 밀어냈다. . 망자는 카론에게 대가를 주고, 저승의 뱃사공은 죽은 자를 사자의 강 저편으로 인도한다고 하니까요. .여자는 횡설수설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두 벽안은 고요한 수면 위를 차분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게. .죽은 자들이 강을 건너 도착한 곳은 저승의 샘, 거기 발을 들인 자 영겁.. 2020.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