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병동"
동쪽 병동으로 향하는 회랑의 쌍여닫이문 위에 굵직한 검은 글자로 찍힌 문구였다. 형광등 불빛을 슬쩍 쳐다보던 봉봉은 풍겨오는 소독약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오며 지나친 복도와 몇 곳 병실은 한결같이 베이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아무런 특징이 없었다. 얼마 없는 창문은 그나마도 작았다.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을 가둬두고 멀쩡할 거라고 생각하지? 봉봉은 생각했다.
과장 직급이라는 의사가 붙여준 직원이 봉봉의 뒤에서 문을 단단히 잠그고는 그녀를 회랑 반대쪽으로 안내했다. 걷는 길은 찰나였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여기서 무엇을 보게 될지, 봉봉은 알고 있었다. 의사가 불러주었던 말들이 다시 머릿속을 휘저었다. "...중증 정신분열..."
둘은 미친 듯이 웃어대는 소리가 메아리지는 문 바로 앞에 멈추어 섰다. 직원이 문을 세차게 두들기자 웃음소리가 순간 잦아들더니, 곧바로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101호 중앙에는 일 인치 정도 되는 특수 투명 아크릴 수지 판이 놓여 양쪽을 갈라놓고 있었는데, 이 투명한 벽 위에는 두 개의 수직선이 그어져 있어 그 위로 각각 네 개씩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은 그 근처에 놓여 있는 플라스틱 의자 하나뿐이었다. 반대편 벽과 바닥은 발포 고무 매트리스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봉봉이 보기에는 다름아닌 황달 색이나 다름없었다.
저편에는 라이라가 앞뒤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라이라의 꼬리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고, 네 다리를 동시에 쓰는 일이 어려운 듯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걷는 모습이 평소에 쾌활하게 걷는 모습과 너무 달랐다. 라이라는 흰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마법을 쓰지 못하도록 구속 목걸이도 걸려 있었다.
직원은 봉봉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의자를 가리켜 보였다. 그는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한쪽 눈은 끊임없이 라이라를 감시하고 있었다. "면회를 마치신 뒤에는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라이라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봉봉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네 다리가 웅크려졌다. 라이라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시선으로 면회인의 움직임을 쫓았다.
잠깐 동안, 둘 사이에 아무 말도 없었다.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몇 시간 동안이나 봉봉은 라이라를 보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려 애썼었다. 그 때 몇 마디 말을 떠올렸든지 어쨌든지, 지금 당장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안녕, 라이라." 봉봉은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 라이라의 친구야?" 라이라의 어조는 극도로 사무적이었고, 평상시의 따뜻한 어조와 웃음기는 완전히 제거되어 있었다.
봉봉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의사는 면회객을 보게 되면 어느 정도는 기억을, 라이라의 진짜 인격의 편린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봉봉은 마음을 추스르려 심호흡을 하면서도, 당장 솟아올라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눌러앉혔다. "라이라, 하나도 안 괜찮잖아."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라이라가 답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지만, 결국 시간 문제라는 거야. 그 시간도 오래가지 못할 거고."
"라이라, 너 그게 무슨 뜻이야?" 봉봉은 정신과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라이라의 말은 아무것도 아니며, 신경 쓸 것 없다는 것 정도는 봉봉도 알고 있었다.
"이 몸뚱이가 여기 갇혀 있다는 것은 내가 실패했다는 뜻이겠지." 라이라가 말했다. "잘 듣고 대답해. 혹시 고위 관료 쪽에 댈 만한 연줄 있어? 군부 쪽은?"
"라이라... 나야. 봉봉."
라이라는 콧방귀를 뀌더니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진지하게 듣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지. 감시자도 마찬가지일 거고. 가까운 관청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다니, 실수였어. 곧장 잡아 가둘 줄이야."
"나 정말 모르겠어?" 봉봉이 말했다.
"난 네 친구가 아냐." 라이라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든 이 정도는 눈치 깠어야지. 일단 안심해. 네 친구 몸뚱이에 어떤 상해를 입히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어쨌든 내 몸은 아니잖아."
봉봉은 그 자리에서 달아나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그 친숙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봉봉은 그녀 앞에 있는 포니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라이라는 봉봉의 침묵을 계속 말하라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였는지 말을 이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네가 내 말을 들어 보기라도 해야 유일한 희망을 붙잡을 수 있지. 네가 소중히 생각하는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해서라도, 내가 그 기회를 직접 떠먹여 주지." 라이라가 심호흡을 하고 봉봉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지금 시간대에서 256년 뒤 미래의 존재야. 과거에 존재했던 누군가의 머릿속에 직접 우리의 정신을 투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지."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아크릴 판막만 없었어도, 봉봉은 라이라에게 달려들어 마구 흔들어대며 제발 정신 차리라고 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봉봉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더듬거리며 겨우 한 마디 하는 것뿐이었다. "왜?"
"나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이 면회라는 사건이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도록 일련의 사건을 꾸며냈어." 라이라가 말했다.
봉봉의 뇌리에 무엇인가 스치고 지나갔다. "라이라의 인격이 남아 있다는 거지? 라이라 바꿔 줄 수 있어?"
"정신 투영이 끝나면 네 친구의 정신도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봉봉의 가슴 속에 희미한 희망이 피어났다. 그녀는 가쁜 숨으로 물었다. "나가고 나면... 영영 이 세상에서 떠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거지?"
"이번에도 내가 실패한다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지." 라이라가 말했다. "좀 더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른 대상을 찾아보겠지만 말이야. 그것도 다음 기회라는 게 존재할 때 얘기지만. 그러니 다시 말한다. 똑똑히 들어."
선택을 한다고 하면, 봉봉은 저 라이라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주워섬길 말은 단 한 마디도 듣지 않기를 골랐을 것이다. 그러나 봉봉은 누구보다도 라이라를 잘 알았고, 라이라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게 무엇인지 알아내기만 한다면, 그러면 어쩌면,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머지않아..." 라이라가 말했다. "엄청난 천재지변으로 네가 알던 이퀘스트리아 문명이 멸망할 거야. 처음에는 무해한 자연 현상처럼 보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본성을 드러내고 나면 수습하기에 때가 너무 늦어 버려. 알리콘들도 죽어 없어질 것이고,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말 거야. 그러니 지력을 회복시킨다고 무진 애를 써 봐야 별 효과도 없겠지. 결국 살아남은 인구조차 급속도로 줄어들게 될 거야."
"우리의 멸종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될 쯤, 우주 저편에서 낯선 자들이 찾아올 거야. 그리고는 너희 종족을 보존하고자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겠지. 그래, 우리는 멸종을 피하고 살아남게 될 거야......" 라이라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가축으로서 말이지."
미친 소리였다. 봉봉은 곧장 이런 결론을 내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라이라의 망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아주 빤히 보였다. 봉봉은 라이라의 입을 막으려고 말을 꺼냈지만, 라이라가 곧장 끊었다.
"애초에 재앙을 일으킨 것도 그 자식들이었으니까. 그것들은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 같은 것인데,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오직 마법을 이용해야만 탐지하고 대적할 수 있어. 우리 시대까지 남아 있는 문헌에는 조상들도 우주 저편에서 어떤 날아다니는 기계를 타고 낯선 자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걸 예언했다는 증거가 빼곡하게 남아 있지. 하지만 정작 직접 보니 기계 같은 건 전혀 쓸 이유가 없겠더군."
봉봉의 가슴 속에 다시 흐릿한 희망이 피어났다. 라이라의 말을 들어 보면서 저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갖고 있는 모순을 캐낼 수만 있다면, 저 망상 어딘가에 있을 틈새를 찾아내 물고 늘어질 수만 있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그래... 그것들이 그렇게 강력한 존재들이라고 치자. 왜 굳이 포니를 가축으로 삼으려는 거지?"
라이라가 시선을 잠시 돌렸다. 들끓는 노기가 이마를 찌푸려 놓았다. "그것들에게 포니의 미토콘드리아는 유용한 자원이거든. 그걸 밝혀내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정신 투영 마법을 개발하는 데 들어간 시간보다도 더 오래 걸렸으니까. 우리는 수명까지도 30세 이하로 통제당해. 알아들어?"
"너 누구야?" 봉봉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 자체로 라이라가 광증에 한 걸음 더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무심결에 물었다.
"내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야." 라이라가 말했다. "일단 들어. 내 정신을 여기에 투영하고 있는 이상 내 몸뚱이는 빈껍데기나 마찬가지야. 친구 몇몇이 내 몸을 지켜주고 있기는 하지만, 낯선 자들이 내 친구들을, 우리를 보기라도 한다면 안전한 곳으로 피하기도 전에 살처분당하고 말 테지. 이 상태에서 살해당했다간 네 친구 몸뚱이에도 감당할 수 없는 반작용이 미친다고."
봉봉은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굳이 표현한다면 직설적인 방법으로 대화하기로 결정했다. "라이라... 자기... 우리는 책도 같이 읽잖아. 이건 그냥 언젠가 같이 읽은 소설 줄거리고."
"아냐!" 라이라가 뒷걸음질치며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 위로 공포감이 번졌고, 목소리에도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이건 다 사실이야!"
봉봉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굳게 다잡은 뒤, 아크릴 벽 너머 라이라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랑 하는 말도 똑같잖아. 외계인이나 정신 투영 같은 건 H.P.러브콜트나 그런 작가들..."
라이라의 몸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봉봉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라이라의 두 눈이 희게 뒤집어졌고, 숨을 쉬지 못해 구역질 소리처럼 들리는 끅끅 소리가 헤벌어진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봉봉은 의자를 박차고 뛰쳐나와 아크릴 수지 판에 두 발굽을 가져다 대고 그 너머를 쳐다보았다. 매트 위에 쓰러진 라이라의 사지가 제멋대로 구부러지며 꿈틀거리는 모습뿐이었다.
봉봉은 급히 면회실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문을 열기도 전에 바깥에서 문이 홱 열리며 흰 솜털을 한 포니들이 달려들어와 라이라를 붙잡아 제압해 바닥에 엎었다. 봉봉을 따라온 직원이 어느샌가 옆에 붙어서서, 봉봉을 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사내의 질문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봉봉은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물었다. "저건 뭐 하는 거죠?"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발작을 일으킨 것 같은데요. 저건 숨을 쉴 수 있는 자세를 만들어 주는 것이고요."
봉봉은 몸의 밑바닥이 빠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봉봉이 라이라의 정신을 지나치게 몰아붙여 발작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닐까?
직원이 입을 열었다. "제 보기에는 선생님께서 이만..."
봉봉은 벌써 면회실을 나서고 있었다. 그녀 눈앞에서 마주한 끔찍한 모습과 거기서 절박하게 느낀 무력함, 라이라의 발작에 그녀 또한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이 봉봉의 도주 본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봉봉은 내심 그 자리에 더 머물러 있고 싶었지만, 몸은 그러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따라온 길을 되짚어 가며 미친 듯이 달려, 자신을 둘러싼 벽들이 봉봉을 가둬 버리기라도 하는 양 병원 정문을 박차고 달아났다.
봉봉은 빠른 걸음으로 속도를 늦추었다. 저물어가는 저녁의 찬바람이 병원의 텁텁하고 답답한 공기를 씻어주어서, 봉봉은 가슴이 곧장 진정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작은 안도감은 가슴 구석을 찔러대는 죄책감의 아픔을 보다 강조해줄 뿐이었다. 나는 여기 있어선 안 돼. 봉봉은 생각했다. 당장 돌아가야 해, 라이라의 곁에 있어야 해.
봉봉은 당장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을, 가능한 빨리 다음 면회 일정을 잡는 것으로 하자고 타협해서 억눌렀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직후인데, 병원 쪽에서 허락하지 않을 게 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 날 저녁도 다른 날의 저녁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기울어가면 저편에서 달이 고개를 내밀고, 청명한 하늘 곳곳에서 별들이 날카로운 별빛을 뿌렸다. 마을 곳곳에 서 있는 주택에서 따뜻한 누른 불빛이 창을 밝혔다. 한 줄기 바람이 멀리서 누군가 웃어대는 소리를 실어다 주었다.
봉봉은 고개를 푹 숙였다. 구역질이 났다.
봉봉이 하고자 했던 것들은 불가능한 것들이었으며,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도 병원 근처에 가만히 서 있는다는 선지는 가능한 피하고 싶은 선택이었다. 봉봉은 마을로 돌아가는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어스름이 빠르게 대지를 덮어 가는 가운데, 오늘도 아무 일 없는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은 봉봉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렇다 해도 길가가 어두워서, 봉봉은 마을을 보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장날을 날리기는 했지만, 봉봉은 습관적으로 중심가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주변을 좀 둘러볼 정신이 있었다면야, 평소 저녁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집 바깥에 나와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봉봉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각자 앉거나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들의 정신 또한 다른 데 팔려 있었던 것이다. 봉봉은 데이지가 말을 걸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어머 봉봉, 뭐 잊은 거 없어?" 데이지가 말했다.
"응?"
데이지가 코끝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성우 말이야."
오역 하나 수정. 어째 몸이 피곤하다 싶더라니 결국 하나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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