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을 다시 검토했다. 이번이 열여섯 번째였다. 평소대로라면 스파이크가 문건 정리를 도왔을 것이지만, 본국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스파이크를 뒤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알에서 부화시킨 이후 스파이크는 많이 자랐다. 전쟁을 겪으며 스파이크는 내 생각보다 더 성숙해졌다. 이번 회담에서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뭐, 혹시 몰라 준비해 둔 플랜B를 잘 수행할 것이라 믿는다.
"공주님, 홀로 들어가심은 위험합니다." 근위 하나가 두 눈에 두려움을 가득 담고 말했다. 내 안위가 걱정되었거나,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를 척살하고 싶어 안달이 난 적병들 한가운데 포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통신 스피커 중 하나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트와일라잇 공주. 알파 테이블로 출두하시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안내인을 따라 다른 복도로 차분히 걸어갔다. 이퀘스트리아의 존망이 이제 내 두 어깨에 걸려 있었다.
압박감이 없을 리가 있겠나?
이퀘스트리아의 대표자로서 다른 종족과 마주한 첫 번째 경험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 지난 오백 년 동안 한 번도 국토가 위협받는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이퀘스트리아가 나 때문에 전쟁에 휩싸일 뻔했던 것이다. 핑키 파이가 아니었다면 야크들은 분명히 전쟁을 선포했을 것이다. 그래도 전쟁의 위기는 어찌어찌 막아냈다. 우리나라의 조화와 평화를 지켜내기는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후에도 무력 충돌을 일삼던 두 가문 사이를 중재했고 그리폰과 협상했으며, 심지어 한두 개의 용 부족과도 교섭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르다. 지금까지 우리가 마주했던 자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위험성을 가진 자들과 협상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과의 관계는 십오 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간혹 영민했으며, 때로는 무자비하기도 했고 가끔은 극도로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 그들의 행태는 나를 두렵게 했다.
말인즉슨 이렇다. 나 이전의 그 어느 누구도, 저 인류라는 기이한 족속들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아 교섭해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호위대를 대동하고 저 국제연합United Nations이라는 자들의 뒤를 따랐다. 그 자들이 우리를 향해 겨눈 적의는 굳이 보지 않더라도 감지할 수 있었고, 저들 중 몇몇은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판을 엎어 버리고 싶어하다는 것도 분명했다. 지하 벙커에서 근무하는 소수 병력의 태도가 이렇다면야, 저 바깥 세상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기도 두려웠다.
내가 받은 보고서 몇 개는 북아메리카를 비롯해 소수 유럽 국가들은 우리를 그다지 증오하고 있지 않다고 되어 있었다. 반면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같은 지역 국가들은 우리를 절멸시키기를 바랐다. 인류에 항복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들은... 크리스탈 제국처럼 우리나라에도 핵미사일을 발사해 완전히 파괴해 버렸을 테니......
안 돼, 아직은 울 때가 아니다. 수천만이 아니라 수 억이 죽었다고 해도 아직은 울어서는 안 된다... 케이던스나 조카 때문에 울어서도 안 된다. 아직은,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뉴욕 침공 때 전사한 샤이닝 아머를 위해서 나는 울었었다. 핑키 파이와 래리티, 크루세이더를 비롯해 포니빌 폭격 때 죽은 자들을 위하여 나는 울었다. 캔틀롯 공방전 때는 내 부모님이, 예루살렘 진격 때는 루나 공주님이 돌아가셨다. 너무 많은 이들을 잃었다.
내가 곡해야 할 죽음은 많았지만, 그 자리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남은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우리나라의 존망과 내 백성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채 비밀리에 캔틀롯 지하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는 셀레스티아 공주님 모두가 내 두 발굽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완전한 혼자였다. 그것은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요구였다.
인류의 손에 복도에 밝힐 작은 전구 하나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 복도는 한 점 빛도 비치지 않았다. 안내인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2분에 한 번 꼴로 무장 순찰대와 마주쳤다. 그들이 휴대한 총기는 언제든 발포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나는 이토록 잔혹한 병기가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저들의 피로 물든 역사를 조사한 끝에, 오직 그 방법 하나만이 저들을 바꿔놓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인류를 우리처럼 만들고, 우정과 조화의 개념을 가르치는 것 말이다.
인류의 상당수는 우리의 지침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바라던 바와 같이 '새망아지'로 거듭났다. 단지, 그 정도로 극심한 저항과 불신이 팽배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이제 무력 행사밖에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들의 자유의지로 우리의 조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야, 저들을 우리처럼 바꾸어 구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저들을 어느 정도 파괴하는 편이 나으리라는 뜻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는 문제가 정말 간단했었다. 우리를 보호해 주는 방어막으로 서서히 지구를 뒤덮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없어졌다. 이제 우리는 패전국이 되었고, 저들은 승전국이 되었다. 우리는 저들을 구원하려고 했을 뿐인데... 생각하면 저들은 구원을 바라지 않은 게 아니었는가 싶다.
우리는 인간 안내인의 뒤를 따라 두꺼운 철제 문 앞에 도착했다. 안내인은 컴퓨터 장치에 카드를 읽히고는 비밀번호 몇 자리를 입력했다. 지금 봐도 인류의 기술은 정말 굉장하다. 마법 없이도 만인이 저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마법과 과학기술이 결합되면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까? 나는 이런 점에서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달랐다. 그분은 인류의 기술을 혐오했다. 인류는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미명 아래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실상을 보면 파괴와 오남용으로 얼룩져 있지 않으냐고, 그분은 내게 말씀하셨다. 자기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백 년을 주기로 편을 갈라 수백만, 때로는 수십억씩 죽여대지 않느냐고.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보기에는 인류는 정신에 비해 물질문명만 지나치게 빨리 발전시켰고,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만들어댔던 것이다. 그분의 견해는 나의 견해와 아주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 그분의 말씀이 옳아 보여서, 나는 그 말에 따랐던 것이다. 기술은 오직 전쟁의 구도만을 발전시켰고 따라서 기술은...... 위험한 것이라고.
문이 열리자 호위들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능한 차분한 척 연기했지만, 일단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순간이동할 준비부터 했다. 뭐, 시도했더라도 실패했을 것이다. 텔만 발생기가 사방에 장치되어 최대 출력으로 작동하고 있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텔만 발생기, 또는 반마법 발생기라고도 불리는 물건은 우리의 패전을 초래한 핵심 전략물자였다. 루나 공주님이 그토록 쉽게 패배한 것도 방어막이 해제되어 그런 것이었고, 결국 국군은 저들의 손에 너무나 손쉽게 학살당했다.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혼수상태에 빠진 것도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마력을 동원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인간이 그렇게 강력한 장치를...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전력을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양 찢어 버리는 장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 나는 인류를 얕보았고, 그래서 그 상황이 부조리하다고 느꼈다. 내 영혼 일부가 뜯겨나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등 뒤에서 철문이 닫혔고, 나는 이제 테이블 너머에 앉아 수많은 문건을 앞에 두고 있는 한 명의 인간과 단둘이 방 안에 남겨졌다. 나는 그자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자의 이름은 앤소니 도일로, 국제연합 평화유지부서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줘 보자고 주장한 얼마 안 되는 고위 공직자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어서 오시오,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
"안녕하세요, 도일 씨."
나는 자리에 앉았고, 둘 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일은 한숨을 폭 내쉬더니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요. 이 안에서 있었던 대화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할 거요. 도청장치나 마이크, 기록장치 같은 것도 하나 없소. 그대가 우리의 손님으로 있는 한 그 누구도 그대들을 공격하거나 상해를 입히거나 사살하는 일 또한 없을 거요. 그대의 죽음을 바라는 사람들로 말하자면 한도 없지만 말이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일은 계속 말했다. "내가 협상 테이블로 나온 이유는 한 가지, 그대들이 우리 인류를 완전히 절멸시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에게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이오. 전쟁 중 우리에게 몸을 의탁해 온 포니들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패배한 것은 우리 인류였을지도 모르지요. 추측컨대, 라이라 하트스트링스라는 자를 알고 있겠지요?"
나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화가 나 순간 뿔을 밝혔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라이라 하트스트링스. 그 매국노를 한때 친구라 생각했다니. 그년과 그 추종자들이 인간 편에 서서 우리 모두를 팔아넘겼다. 그년은 우리가 틀렸고 저들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믿었던 이들 중에 인류와 붙어먹은 자들은 더 있었다. 플래시 센트리, 문댄서, 캐럿 탑, 더피 후브스, 브레이번, 심지어 플러터샤이도 그 중 하나였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인 플러터샤이가,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들을 억지로 다른 무언가로 바꿔놓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것은 대자연이 바라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플러터샤이는 말했었다. 인간이란 처음부터 자기 파괴적인 족속들이 아니던가! 그치들이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나서 어찌어찌 종을 보존하더라도 또 같은 짓을 반복하고 반복할 텐데 말이다. 우리는 그걸 막고자 했을 뿐이다. 우리는 인류를 도우려 했을 뿐이다. 우리는 인류를 구원하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플러터샤이는 듣지 않았다. 그자들 중 그 누구도 듣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매를 맞아야 한다. 더 끔찍한 것은 디스코드가 플러터샤이를 따라나선 것이다. 그자의 충심이란 우선순위가 있어서 플러터샤이가 항상 앞이었다. 디스코드가 인류를 돕기 시작한 이후, 비록 저쪽 세계에서 그자의 마법에도 제한이 생기기는 했지만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반발은 더욱 거센 것이 되어 갔다. 이게 다 라이라 하트스트링스가 염병할 영장류 이상성욕으로 가득한 주둥이를 닥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요,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말하기 싫다는 뜻을 확고히 담은 어조로 대답했다.
"그대들이 획책했던 인종 청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평화로이 공존할 기회를 주는 것은 모두 라이라 하트스트링스와 그녀가 데려온 다른 포니들, 그리고 다른 몇몇 사람들 때문이오." 도일이 말했다.
"도일 씨, 우리는 인종 청소를 시도한 게 아닙니다. 당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어요." 나는 내 스승의 신념에 확고히 동의하려고 애를 쓰며 대답했다. "우리가 지구에 오기 전 당신들은 어땠나요. 3차 세계대전을 목전에 두고 있지 않았나요. 천연자원은 고갈되었고, 굶주리는 자들은 지천에 널렸는데 고위층에서는 부정부패가 일상이고, 신을 모시기 위함이라면서 다른 사람들을 죽여대지 않았나요. 우리는 당신들을 보다 큰 대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제안한 것뿐이에요. 인류에게 우정과 조화를 가르쳐 주려고 한 거라고요. 상당수 인류도 받아들였-"
"당신네들의 대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제 세뇌당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처럼 하루종일 셀레스티아의 광명에 대해서만 늘어놓는 밥버러지가 되었소만." 도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끊었다. "그래, 한번 말해 보시오,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 공주는 혹시 새망아지들을 만나 보기라도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그 행태를 보았소? 지껄여대는 소리를 들었소?" 그치들과 말을 섞어 보기라도 했소? 사람들을 당신네들처럼 만들어 놓는 약물을 몸소 개발하셨으니, 그 결과물도 마땅히 직접 목도해야 하지 않소."
나는 몸을 움찔했다. 그래, 본 적 있었다. 그리고... 차마 보지 못할 광경인 것도 인정하겠다. 내가 개발한 약물은 인류를 좀더 포니에 가깝게 만드는 것으로, 인류의 죄악 가득한 본성에 제동을 걸고 탐욕, 색욕, 증오와 같은 못된 감정들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새망아지들은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며 인류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격렬한 혐오로 대응했으며, 포니가 말하는 것이라면 절대복종하는 자들이 되었다. 서로를 해치지는 않았다. 차라리 착했다...... 그냥... 너무 착했다 정도로만 해두자. 스타라이트 글리머가 포니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떠오를 정도로.
그렇더라도 가만히 내버려두었을 때보다 나은 결과라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인간 본성에 맡기면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 반복할 뿐이니까. 그리고 새망아지들을 좀 더... 정상화시킬 계획도 다 세워두고 있었다. 인류의 전향을 관리하는 부서의 설립과 전쟁 수행에 우선순위가 조금 밀린 것뿐이었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겠지만, 평화로워지지 않았나요. 행복해하더군요."
"당신네들 입맛대로 프로그램된 것에 지나지 않잖소." 도일이 한숨을 쉬었다. "그 물약을 개발하는 계획은 당신이 아닌 다른 자가 주도한 것쯤이라는 것은 알고 있소. 셀레스티아 공주지. 그 여자도 머지않아 잡아들일 생각이오만, 그대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시오. 우리가 바라지도 않던 무언가로 우리를 당신네들 마음대로 바꿔놓을 권리가 그대들에게는 없소.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할 자유를 제한할 권리도 마찬가지요."
"그게 고통과 괴로움만 야기하는데도 그런가요?" 나는 물었다.
"공주는 새망아지가 된 아들이 자신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본 어머니를 본 적 있소? 자기 아이들의 눈앞에서 말로 변한 부모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단지 인간이라서,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사악한 기술을 사랑하는 죄 많고 추악하며 환경 파괴적인 인류'라서 증오하는 꼬락서니는 보았소? 인간으로 살지 못할 바에 차라리 인간으로 죽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봤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가슴 속에서 그들에 대한 약간의 동정심이 일었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가슴이 아플 테지만, 그 모든 것은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말한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포니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그런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평화와 조화를 사랑하는 포니가 되느니 전쟁과 죽음을 찬미하는 인간으로 남으려 드는 이유가 뭐지?
"인류는 항상 넘어지면서 교훈을 얻었소. 한 걸음 퇴보하면 두 걸음 진보하는 식으로 말이오. 우리는 그렇게 사람이 되었소,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 내가 알기로 그대들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대로 멸종할 위기에 몰렸다고 하더군." 도일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물었다. "이에 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니 그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구려."
"전쟁과 죽음의 시대잖아요. 왜 그런 고통스러운 과거를 반추해야 하지요?" 나는 물었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자들은 역사를 되풀이함으로서 자멸하기 때문이오." 그는 말했다. "새망아지 얘기로 돌아갑시다. 그대의 물약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거짓말하지는 않겠소. 우리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절단된 사지를 재생하거나 난치병을 치료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대들의 약을 인류에 맞게 개조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새망아지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기는 약 또한 원하오. 그쪽의 과학자들이 협조해야 할 거요."
"...좋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포니로 계속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다시 포니가 되는 약 개발에도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나는 치고 들어갔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마음대로 하시오. 다만 그들의 기억이나 인격, 감정에 대해서는 그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아야 하오. 본질은 인간 그대로여야 한다는 거요." 도일이 말했다.
이것으로 협상 하나는 끝났다. 이제 내 차례였다.
"우리의 고향을 재건하기를 바랍니다. 전쟁 중에 수많은 도시와 국토가 초토화되었으니, 이를 복구하기를 바랍니다. 의료지원과 식량 지원도 요청하고 싶은데요." 나는 말했다.
"납득 못 할 것은 아니나, 무너진 도시와 국토라면 우리에게도 있소. 당신네들이 파괴한 곳들 말이오. 그러니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겠소?" 도일이 무엇인가 적어 내려가며 말했다. "그대들의 도시와 거주지를 복원하는 것은 돕겠소. 하지만 우리 이주민들이 당신네들 나라에서 살 권리를 주어야 하오. 인간들만 거주하는 거주지역과, 인류와 포니가 같이 사는 거주지역을 따로 두시오. 이 편이 우리 두 종족이 장기적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일 거요. 인류 어린이들이 포니의 망아지들과 어울리다 보면 긴장 상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
"그 편이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되겠군요." 나는 말했다. 우정과 마법의 힘으로 두 종족 사이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으니.
우리가 이 별에 갇혔다면, 여기서 눌러앉아 살 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양측이 여행할 수 있는 구역을 정하는 논의가 첫번째였다. 양측 과격파로부터 상호간 어떤 보호를 제공할지에 대한 논의와 경제, 우리나라의 무장 제한이 뒤따랐다. 20년 동안 국제연합이 우리나라를 신탁통치하며 불온한 움직임을 감시하겠다는 요구에도 나는 따랐다. 나는 백성들의 대표자였지만, 지금은 저들의 법을 따라야 했다.
그다지 기쁜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협상 카드를 전부 쥐고 있는 것은 저쪽이었다. 나는 친구 둘을 잃었고, 네 명의 알리콘 공주 중 둘이 죽고 나머지 하나는 혼수상태였다. 작동할 권력이 아직 남아 있기라도 하다면, 이를 쓸 수 있는 유일한 공주는 오직 나뿐이었다. 애플잭은 레인보우 대쉬가 이끄는 반란군에 들어갔다. 그 둘은 항복에 동의할 수 없었고, 나는 그렇게 친구 둘을 또 잃었다. 플러터샤이는 우리를 배신했으니 더는 내 친구가 아니었다. 이퀘스트리아를 지켜 온 우리 여섯은 이제 완전히 흩어졌다. 우리 우정은 끝장난 것이다.
이게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지 않았나 싶다. 함께 이룩한 일들과 함께 맞선 사건들은 전쟁과 증오 아래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누가 죄인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인류인가? 아니면 우리? 이제 와서 이게 중요할까? 인류가 나를 잡아 죽이고 내 백성들도 전부 처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둘이 지금 협상을 하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미래 계획을 세우며 협상에 임했다. 이제 마지막이자, 가장 큰 문제로 논의해야 했다.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처분에 관한 문제였다.
"우리는 셀레스티아의 죽음을 바랍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포니였지만, 이 세상에서는 가장 증오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공주님은 저들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했지만 저들은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한없는 고난과 희생의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캔틀롯에 있던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마력까지 소모하고 나서 혼수상태에 빠진 것 하나뿐이었다.
"안 됩니다." 나는 단언했다. "그분은 우리의 공주십니다. 그분은-"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지요." 도일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셀레스티아는 당신을 비롯해 당신의 나라, 당신의 백성들을 이 세계로 순간이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약을 만들고, 인류의 전향을 도모했지요. 인류가 거부하자 그자는 전쟁을 선포하고, 그 꼴같잖은 문어체로 된 연설을 지껄이며 전향하거나 죽음을 택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자는 자기 발굽 아래 놓인 30억 인류와, 한때 지구상에 존재했던 국가의 절반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자기가 인간을 한낱 괴물로밖에 보지 않음을 시인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네들의 공주라는 공공의 적 앞에 다시 뭉쳤습니다. 그 여자 하나만을 끌어내리기 위해 잠시 서로의 입장차는 접어두기로 했단 말입니다. 15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과 북한은 언제라도 미사일을 날려 서로를 끝장내 버릴 기세로 으르렁거렸지요. 지금은 당신네들 덕에 피와 증오로 얼룩진 역사를 청산하고 통일국가로 이행했습니다. 그 정도였단 말입니다."
나는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사실, 나의 형제와 루나 공주님, 그리고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인류가 가진 저마다의 편견과 지난날의 원한으로 갈라져서 내분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인종, 국적, 지역, 빈부, 영토, 정치 이데올로기와 천연자원 등 가지각색의 이유로 다투고 있었으니까. 인류는 갈라서고 흩어져 있으니,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인류는 하나로 뭉쳤다. 서로에 대한 증오보다도 더 큰 증오가 향하는 공공의 적이 등장한 순간, 그들은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인 것이다. 그 공적은 우리였고, 우리는 예상 외의 적인 단합된 인류와 맞서게 된 것이다.
도일이 몸을 기울여 나를 내려보았고, 나는 그의 시선 아래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셀레스티아 공주의 이름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큰 증오를 불러일으키는지 아시오. 스탈린도, 히틀러도, 폴 포트도, 마오쩌둥도, 흉노의 왕 아틸라도, 오사마 빈 라덴도, 심지어 사탄마저도 그자의 악명에 비기지 못하오. 아니, 차라리 셀레스티아가 사탄 본인의 현신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구려. 그자는 인류에게뿐만 아니라 당신네들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역병 같은 존재요. 당신네들은 그자를 아무 생각 없이 떠받들었지. 심지어 지금에 와서도, 당신네들의 전부를 잃고 나서도 그 여자의 본질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군!" 도일이 쾅 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나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도일의 눈빛에는 오직, 내가 막 걸음마를 뗄 떼부터 믿고 따랐던 공주님을 향한 증오만이 있었다. "그자는 우리에게 단 한 번의 허락을 구한 적도 없이 세상 모든 곳에 마수를 뻗치고는 당신과 당신네들을 위한 세상을 세워 자기가 신으로 군림하려 했소. 인류와 한 번 협조해 본 일도 없이, 교섭을 시도한 일도 없이, 심지어 도움 한 번 줘 본 일 없이 갑자기 나타나 인류를 자기와 비슷한 형상으로 개조하고, 우리가 그저 그 모습을 신께서 자신의 모습을 본따 내려주신 거라고 믿게 해 자기를 숭배하려 하게 만들었다는 말이오."
* 이오시프 스탈린은 2,300만 명, 아돌프 히틀러는 1,700만 명, 폴 포트는 170만 명, 마오쩌둥은 7,800만 명을 학살한 독재자. 폴 포트는 킬링필드를 연 그 작자. 아틸라는 로마제국 쇠퇴기에 흑해 연안으로 이주해 게르만 대이동을 촉발한 흉노족의 왕, 오사마 빈 라덴은 테러리스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자. 아틸라는 평가가 엇갈리는 편이라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음...
"그렇지 않아요! 그분은-"
"새망아지들이 전부 불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과, 그걸 주도한 게 셀레스티아란 사실은 아시오?" 도일이 말했다. 나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모르는 사실이었다. 내 연구노트를 뒤적거리며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도일이 문건 하나를 내 쪽으로 던져주었다. 과학 데이터를 훑어보는 새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지고 있었다. 거짓말이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그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내 입을 막았다.
15년이 지났지만 새망아지들 사이에서 태어난 망아지는 하나도 없었다. 포니로 변이한 이상 다른 포니들처럼 발정기를 맞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정말 그랬을까? 정말로 진실로 그랬을까? 아니면... 정말로 불임인가?
"이건... 전혀 몰랐..." 나는 몸의 통제권을 서서히 잃어가는 것을 느꼈다. 한 종 전체를 불임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나도... 나도 불임이 되었으니까. 전투 중 날아든 눈 먼 총알에 맞아서...
"아하, 그러고 보니 아는 한 전부를 털어놓은 자들 중 셀레스티아의 이너 서클에 속한 자가 하나 있었소. 아주 흥미로운 연구를 하셨더군. 크리스털 캐논을 쏘아 로마와 메카를 싹 날려버리라고 케이던스 공주를 충동질한 게 누군지는 알고 계셨소? 지구상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도시를 파괴하면 우리가 사기를 잃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오. 외려 전세계 종교들이 하나로 단합하는 결과만 초래했지. 특히 예루살렘 침공이 실패로 끝났을 때 그랬소. 세상에 어느 누가 가톨릭과 개신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단합해 싸우는 날이 오리라 생각했겠소이까. 그래 결국 그 결과는 어땠소? 핵무기가 크리스탈 제국을 쓸어버리지 않았소. 셀레스티아가 크리스탈 제국 초토화를 들먹이며 젊은이들에게 입대하라고 얼마나 충동질했는지 혹시 아시오?"
* 로마의 바티칸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의미. 메카는 이슬람교에서 무하마드의 출생지로 여겨 신성시하는 도시.
내 몸이 마구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사실일 리 없지 않은가?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말로는 케이던스가 크리스털 캐논을 사용한 것은 뉴욕에서 내 오라비가 전사한 복수의 의미였다고 했다. 공주님은 쓰지 말라고 말렸다고 했지만, 이건...... 케이던스가 그걸 막 발포했다는 것도 사실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럴 분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제 죽고 사라진 내 유년기의 추억을 돌이켜보다가, 그리고 그분의 품에 안겨 핵무기의 불꽃에 휩쓸려 사라진 내 조카를 떠올리다가... 두 눈이 젖어들었다. 나는 핵무기만큼이나 위험하고 두려운 병기는 본 적 없었다. 핵무기 투하 이후 크리스털 포니들은 겨우 수백만이 살아남았는데, 그나마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그 때 우리는 전쟁이 우리의 패전으로 끝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신네들 때문에 죽은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들과 딸들을 비롯한 자들의 무덤이 한두 곳인 줄 아시오. 당신네들이 '공정하고 자애롭다'고 부르는 그 잡년을 살려서든 죽여서든 우리 쪽에 보내지 않으면 당신네들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리겠다는 나라들도 널리고 널렸고. 당신네들이 데려오든 우리가 끌고 오든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거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년의 머리요." 도일은 몸을 기울이고 으르렁대며 말했다. "트와일라잇 공주, 셀레스티아의 목이 이 상황을 전부 해결할 가치가 있을 것 같소? 전혀 아니오. 당신이 우리의 심경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그 목을 갖고야 말 것이오. 하지만 우리의 행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신네들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것들조차 철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거요. 용서는 꿈도 못 꿀 것이고."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스승이자 어머니상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의 머리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찌 그분을 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인류의 이같은 반응은 단순한 공갈이 아니었다. 내가 그분을 규탄하여 우리의 발굽이나 저들의 손으로 그 목숨을 거두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그분을 매도하고 그분에게 죽음을 내려야 한다고 그분을 배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안간힘을 써서 버텼다. "그분은......"
도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한 가지만 마지막으로 물어 보겠소, 트와일라잇 스파클 공주. 당신네들이 이런 짓을 벌인 까닭은 우리를 포니로 만들어 지구상에 새로운 이퀘스트리아를 건설하기 위해서였소. 하나되어 평화롭고 우정으로 가득한 세상을 말이오. 내가 맞소?"
"네." 나는 말했다.
"그대들이 지냈던 별에서는 셀레스티아와 루나가 해와 달을 맡아 관리했지만, 지구상에서는 그곳의 해와 달을 관리할 수 없소. 이 또한 맞소?"
"그래요. 지구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사실이죠."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대들의 옛 별에는 그대들 말고도 다른 종족들이 있었소. 그리폰, 얼룩말, 용, 미노타우르스, 야크, 체인질링, 다이아몬드 독, 사슴 등등일 것이오. 이 또한 맞소?"
"그래요. 이게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이러는 거죠?!" 나는 따졌다.
도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한숨지었다. "그러면 그대들이 지구에 와 있는 동안 그대들의 옛 별에서는 누가 해와 달을 관리한단 말이오?"
...
...
... 안 돼.
세상에.
두려움이 마침내 나를 집어삼켰고, 내 두 눈은 크게 뜨였다. 절로 입이 떡 벌어졌고 심장조차 뛰기를 거부했다. 이 모든 사실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안 돼. 그럴 리 없어. 그럴 수는 없어. 나는 제코라와 길다를 비롯해, 다른 나라 출신으로 친구가 된 다른 이들을 생각했다. 천성 자체가 순박한 사슴부터 잔혹한 체인질링까지, 그 누구도 해와 달을 움직일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15년 동안 우리의 옛 별에서는 해와 달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그 뜻은...
눈물 방울은 처음에는 천천히 툭툭 떨어졌다. 그리고 폭포처럼 마구 떨어져 내렸다. 나는 자리에 쓰러져 통곡했다.
죽었을 것이다.
그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그리폰과 용을 비롯한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지지 않는 해에 불타 죽었거나, 지지 않는 달에 얼어 죽었을 것이다.
그 모두가 죽었다.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에서 목숨을 건졌더라도, 그런 극한 상황에서 거주할 만한 곳은커녕 작물을 키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래 버텨 봐야 3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떠나온 별에 남았던 모든 이들이 죽었고...... 그 죽음을 불러온 것은 우리였다. 인류를 구원하겠답시고 떠났을 때 그들은 이미 파멸한 것이다.
스파이크는 내 옆에 계속 붙어 있었기에 살아남았고, 이제 최후의 용이 되었다. 레인보우 대쉬의 친구인 길다도 겨우 마음의 벽을 허문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았다. 제코라, 항상 의지할 수 있었던 벗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우리는 에버프리 숲을 가져오지 않았었다.
그 여자는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이런 짓을 한 것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왜 우리의 발굽을 더럽혔단 말인가!?
이 모든 의문들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 해답이 떠올랐다.
물약과 새로운 세상, 포식자도 없고 흑마법사도 없는 곳. 우리 손으로 손쉽게 치유하고 가꾸어 갈 수 있는 세상. 인류를 전부 포니로 바꿔 놓는다면 지구는 오직 포니만이 사는 곳이 될 것이다. 오직 포니만을 위한 세상이 된다.
...이 같잖은 생각 때문에... 그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니.
"... 죽이시지요." 내 마음 속에서 셀레스티아를 향한 사랑이 꺼져갔다. 도일은 나를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문간으로 향하며 말했다. "데려가 처단하십시오. 그것으로 끝내지요."
"스파클 공주." 도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지으며 말했다. "미안하오. 이 말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군."
"아닙니다. 도일 씨." 나는 몸을 돌려 대답했다. "제가... 전부 죄송합니다."
나는 나를 키운 스승을 영원토록 비난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다. 그 악마가 우리가 지켜온 모든 것과 우리 자신까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지금 당장은 새로운 세상의 선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벌충해 주려고 시도라도 하면서, 우리가 버려두고 온 세상에서 공포 속에 죽어갔을 이들을 위해 곡할 수밖에 없으리라.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Well (0) | 2023.07.26 |
---|---|
Forever Faithful (1) | 2023.07.18 |
[DannyJ]불편히 잠드소서Rest in Chaos (0) | 2020.01.23 |
[Horse Voice]면회시간The Visiting Hour (2) | 2020.01.13 |
[SS&E]버드 피더The Bird Feeder (0) | 2019.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