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게.
영웅은 다만 역사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영웅인 것일까? 신화적인 삶을 살다 간 위대한 이들이 역사에 남은 이유는 또 무엇일까? 영웅의 자질을 스스로 성취해서? 아니면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덕을 봐서? 서사시에 이름을 남겨 시간의 돌팔매와 화살을 이겨낸 이들이 다만 일반상식의 일시적 변덕의 덕을 본 것뿐이라면,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지난날과 오늘날의 악인을 섬기게 되는 것도 가능한 일일까?
솔직히 나는 유명해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 정말로. 아주 약간의 유명세가 생기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었지. 혹시나 내가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겨서 대대손손 내 이름을 남기게 된다면야 기쁘기는 하겠지만, 뭔가 극적인 위업을 남겨 내 이름을 소리높여 연호하게 할 날이 오리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이제 와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더라고. 포니빌로 걸어 들어가다가 누군가, 그 누구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그 뒤를 따라 나오는 실없는 농담이나 별 것 아닌 소문 얘기를 듣는 생각과, 끝없는 한기에 뒤채이며 잠 이루지 못한 밤들이 있었지. 딱히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건 아니야. 내 이름에 휘황찬란한 조명이 비추이는 것도 그닥이고. 그냥 누구라도 나에게 말을 걸어 주기를, 그리고 그것이 즐겁고 유쾌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지.
저주를 짊어지고 산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지. 그 정도 시간은 합리적 사유와 단순한 상상의 차이를 깨우치기에 충분했어. 몇 번이고 두려운 순간들과 마주했고, 감당해야 할 고난을 견뎌낸 시간이었지. 이쯤되면 누구 하나라도 날 알아볼 때가 됐다 싶으면 너무 이기적이려나.
아니. 그건 이기적인 게 아냐. 멍청한 거지. 이 차분한 비극, 어쩌면 승리일지 모르는 것을 노래할 이는 누구일까? 장대한 합창 소리에 걸어온 길과 보았던 것을 녹여낼 이 그 누구인가?
이제 슬슬 알 것 같아. 내가 그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겁없이 날뛰는 성질머리 더러운 여자가 눈 하나 깜짝 않고 가장 어둡고 추운 밤을 견뎌내는 노래는 쓰지 않을 거야.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다만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벗삼아 들어가는 고독한 학자에 대하여 말할 거야. 그녀가 무엇을 찾아내든지, 그 모든 것은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국 혼자서 해내는 여자의 이야기를 쓸 거야. 나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모은다고 하면, 나를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를 전부 보관하게 할 것이고. 사실, 단 하나의 청자도 감명시키지 못하면 그건 영웅은 아니지. 그러니 나는 그리 영웅에 가까운 사람은 아닐 거야.
열 개의 화음.
항아비곡의 여덟 번째 곡을 여는 열 개의 화음이 머릿속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곡 하나를 완성하기는커녕 트와일라잇에게 들려주고 이게 예전에 존재했던 곡인지 물어 볼 수조차 없었다.
비곡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중에서도 처음 시작할 때가 가장 버거운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울어대는 멜로디에 잠이 깨어 일어났다. 나는 가만히 앉아 열 개의 화음을 반복해서 들어보았다. 서서히 곡의 형태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한 마디 한 마디로 구성되었고, 고대의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그때부터는 산 자들의 세상으로 그것을 이끌고 나오며 골치를 썩여야 했다. 들릴 듯 말 듯한 음악소리로 그 결실을 맺는 데 거의 영겁의 시간이 투입되어야 할 것 같았던 날들이 있었다. 나에게 일종의 통행료를 지불하는 것과도 같은 과정이어서, 내가 미치지 않도록 해주는 것 같다고밖에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니 그 한없이 느린 과정을 조금이라도 가속하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에서 그 형상을 끄집어내는 데 필요한, 사소하기 짝이 없지만 유용한 행위로 바삐 지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게 싫으면 평생 동안 그 단계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어야 하니까.
그 때문에 두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당근 농사를 돌보고 다른 채소 몇 가지를 심느라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 그 소리를 들은 것이다.
벼락 같은 소리가 숲 사방으로 울려퍼졌고, 등 뒤에서 골골대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아이구!"
나는 앞다리로 땀에 젖은 이마를 문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보다 일찍 온 모양이었다. 사실, 저 폭음도 늦은 오후쯤이 되면 일상적으로 들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느린 걸음으로 오두막 가까운 곳, 원인 제공자가 입가를 문지르며 땅에 널브러진 자리로 향했다.
"크흠. 도와 드려요?"
"아아이구...... 당신 뭘 믿고 이런 짓 해 둔 거야?" 레인보우 대쉬가 부들거리며 오두막을 똑바로 쏘아보며 말했다. "이 멍청한 오두막은 또 왜 생긴 거고?"
"우기잖아요."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비가 오면 어디선가 무언가가 톡 튀어나오기 마련이죠."
"이봐! 나 페가수스인데!" 레인보우 대쉬가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우기마다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페가수스인 내가 더 잘 알겠지! 게다가 내 비행 경로상에 왜 오두막이 서 있는 건 또 무슨 염병할 경우야?" 그녀는 잠시 툴툴대며 성질을 내다가, 나를 곁눈질로 훑어보았다. "뭐 어쨌든, 좋은 아침이요. 만나서 반갑수." 레인보우 대쉬가 투덜대듯이 말했다.
"저도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머리는 괜찮아요?"
"그런 것 같긴 한데." 레인보우 대쉬가 두 발굽으로 자기 머리를 붙잡고 양쪽으로 꺾으며 대답했다. 의례적인 것 같기도 한 몇 번 뚝뚝 소리가 목과 척추 사이에서 들려왔다. "휴! 이러다가 원더볼트 입단시험 필기전형 통과할 뇌세포도 남김없이 싹 사라지는 거 아닌가 몰라. 드디어 윙 쪽 신입단원 모집 열린다는데. 트로팅엄 출신자라는 그 플릿풋이 입단하고 나서 육 년 동안 모집이 없더니 장장 육 년 만에 다시 모집하는 거거든. 하, 머리는 텅 빈 주제에 관운 하나는 기막히게 좋아서..."
"음, 들어 보니 합격은 따놓은 당상 같은데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날 아침은 정말 아름다웠고, 마침 산들바람이 부는 그 때 살아 있는 무지개를 더하니 금상첨화였다. 순간 얼마나 추웠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런데 왜 그리 급하신 거에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뇌진탕 생겨서 병원 신세질지도 모르겠는데."
"흠..." 레인보우 대쉬가 피식 웃더니 날개를 쭉 펼치며 대답했다. "이름값 하고 살려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아, 그렇다 이거죠. 이걸 들어가? 암만, 암만. 들어가야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길래 그 정도씩이나?" 나는 은근슬쩍 비꼴 생각으로 피식 웃으며 레인보우 대쉬를 쳐다보았다.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는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까.
눈을 감고 귀를 막았더라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하디 뻔했다. 레인보우 대쉬는 깜짝 놀라며 나를 보더니, 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척하는 대답이 자기가 밟고 선 풀밭을 맹독으로 오염시키기라도 한 양 날개를 퍼덕여 떠올랐다. "그건 아니지! 지금 날 모르신다, 하신 건가?! 나 레인보우 대쉬야. 포니빌 기상관리팀장에, 소닉 레인붐 구사자에, 작년에 청년비행대회 나가서 우승까지 한 레인보우 대쉬를 모르신다고?!"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가끔은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공짜로 구경할 수 있는 때가 있다. "이런, 죄송해요! 들어 보니 꽤나 굵직한 분이신 것 같네요!"
"굵직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구! 그 뭐냐... 짱짱한 사람이지! 그쪽이 말하는 '굵직한' 걸 넷 포개서 길다란 빵 몇 개 썰은 것에 끼워 만든 '끝내줌'의 샌드위치 같은 사람이다, 이거지!"
"당신을 찬미하거나 잡아먹거나 둘 중 하나를 하라는 건가요?"
"그런 거 말고! 어, 그러니까...... 으으으음......" 그녀는 나를 수상쩍게 여기는 눈치로 내 주변을 빙빙 돌더니 물었다. "이거 지금 뭐 장난하는 건가? 요 근처 사는 사람이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데!"
"가끔씩은 차라리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싶은 때가 있더군요." 나는 축 늘어진 한숨을 토해내며 당근밭 너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 만남을 길게 끌어갈수록 여덟 번째 비곡을 완성하는 것은 요원해질 뿐이었다. 내 인생이라고 해야 이제 사방을 거울로 에워싼 거울 방이나 다를 바 없어서, 거기 그 어떤 아름다운 것이 비치더라도 결국 어제와 내일이 하나로 뒤엉켜 영원토록 쏟아져 내리는 형상의 거울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항상 되새겼다. "이거 죄송하게 되었군요. 새로 이사 온 사람이겠거니 생각하세요. 그래도 그쪽처럼 자신감과 자존감이 넘치는 분을 뵈니 정말 좋네요."
"그러셔야지!" 레인보우 대쉬가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날개를 퍼덕여 나와 오두막 주변을 장난치듯 '거꾸로' 한 바퀴 돌아 보였다. "들소 떼가 달려든다고 마을에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코를 어떻게 고는지 연기를 뻑뻑 뿜어대는 용을 쫓아내기까지 한 애향민이란 말씀. 아, 셀레스티아 공주님 수제자랑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고!"
"흐으으으으음......" 나는 텃밭으로 돌아가 쪼그리고 앉아 당근이 잘 크고 있나 살피며 말했다. "설마, 정말이에요...?"
"그렇고말고!" 레인보우 대쉬가 오두막 전면에 만들어 둔 테라스 난간 위에 내려앉으며 날개를 접었다. "그것 때문에 저러고 있었던 거고. 연습해야 하니까!"
"연습이요?" 나는 뒤돌아보며 물었다.
"동네에서 제일가는 먹물인 트와일라잇 스파클 선생이 순간이동을 주로 연구하신다는 교수 양반 실험을 도와 주기로 해서 말이지. 트로팅엄 양반인데, 그짝에서도 한 끗발 한다더라고. 그래 그... 음... 피험체인가 뭔가를 순간이동시킬 건데 그걸 계속 따라가면서 관측할 수 있는 날쌘 페가수스 하나가 끼어야 한다나. 트와일라잇 말로는 레이저도 쓸 거라길래 하겠다 그랬지. 레이저 겁나 쿨하잖아?"
나는 뒤돌아보던 채로 한쪽 눈썹을 치키며 물었다. "그... 순간이동 실험을 한다고 했다고요?"
"그렇다니까!" 레인보우가 씩 웃었다. "얘기 못 들었어? 아니다, 새로 이사 왔댔었지. 으음...... 뭐, 재미없는 숫자에 공식 같은 걸 갖다 붙이는 짓거리를 설명하는 건 못 해도, 누구더라, '닥터 헤이Hay'... '닥터 하우스House'... '닥터 호스Horse'... 아 몰라, 뭐 뭐시깽이라는 아저씨 생각에는 유니콘이 쓰는 마법을 어디 잡아다가 저장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보더라고. 초장거리라고 하나, 세상 사람들이 전부 엄청 멀리 떨어진 데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 양반 생각에는 마법 못 쓰는 사람들도 순간이동을 쓸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 싶었던 거지. 교통이 엄청나게 좋아지니 물류도 좋아지고, 그러면 경제도 좋아지고 운운하는 소리는 관심 없지만."
"진짜요?" 나는 근처에 늘어서 있던 나무들 사이로 시선을 옮겼다. 대화가 이쪽으로 빠지는 건 예상 외였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한기를 느꼈다. " 그거... 그거 굉장하겠는데요."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해. 이퀘스트리아 건국 이후 수천 년에 또 수천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 페가수스처럼 쿨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식으로 이해했거든." 그녀는 씩 웃으며 윙크했다. "순간이동이 대중화되면 우리 페가수스와 똑같이 어디로든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되겠지. 뭐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야. 이 실험이란 것 덕분에 트와일라잇이랑 어울려 다닐 핑계거리가 생기기도 했고, 책에 얼굴 박고 읽어대는 것보다는 실험실에서 뭘 날려버리는 게 더 쿨하니까 말이지." 레인보우 대쉬는 낄낄 웃더니 날개를 펼쳐 숲 위로, 다시 밝은 하늘 위로 날아가며 말했다. "자, 그럼 갖다 치울 구름이 몇 덩이 있으니 빨리 해치우고 트와일라잇을 도우러 가야겠구만. 걔들 말로는 역사를 새로 쓴다네 어쩌네 하지만, 난 아무래도 좋아. 마나더스트 가지고 뭘 좀 터뜨리면 기분 째질 텐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파편을 잘게 쪼개서 여러 번 터치는 것도 좋은데 말이죠."
"이야! 그거 괜찮은데!" 레인보우 대쉬가 낄낄거리며 나를 지나쳐 날아갔다. "다음에 만나면 터지는 모습이 어땠는지 말해주기로 했다고 얘기하는 거다! 뭐가 됐든 아주 끝내주는 얘깃거리 하나쯤은 나올 것 같으니까."
나는 날아가는 레인보우 대쉬에게 발굽을 흔들며 인사했다. 떠나고 남은 빈 자리에 바람만이 가득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굉장한 것들은 스스로 그렇다는 것만 기억하면 그만인데." 레인보우 대쉬의 빈자리가 나는 서럽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된 그녀의 장대한 비행은 항상 똥 떨어지는 궤적처럼 비참한 추락으로 끝났고, 그 끝자락에는 내가 있어 몇 번이고 자기소개를 되풀이해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프도록 짧은 만남의 절정에 필요한 무관심한 태도를 몸에 익히도록 자신을 몰아댔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눈물에 잠겨 죽었을 테니.
그렇기는 했으되, 레인보우 대쉬가 방금 뱉은 말을 여러 번 곱씹어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레인보우 대쉬까지 뭐라뭐라 주워섬길 수 있을 정도라면, 지금쯤은 과학 역사에 있어 장대한 발전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 스파클과 트로팅엄에서 왔다는 교수가 비유니콘 순간이동 실험에 착수했다? 주문 제어 쪽 기술을 그런 데 쓸 수 있던가? 마력장 조작인가? 아니면 기계장치 같은 걸 썼나?
기억 몇 개가 머릿속에 떠오름과 동시에 으스스한 한기가 들이닥쳐서 후드에 연결된 조임끈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저주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트와일라잇과 나누었던 몇 번의 대화가 떠올랐다.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저주받은 자가 여기 있다고 몇 번이고 부르짖었으나 결국 닿지 못했던 우리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글줄을 적어 부치는 것은 무용했다. 종잇장에 적은 글이 사라지거나, 스파이크의 녹색 불꽃에 그대로 불타 재가 될 뿐이었다.
트와일라잇이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순간이동을 제안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트와일라잇이 일체의 잡념 없이 정신을 극한으로 집중시켜 마력장이 닿는 곳까지 우리 둘을 순간이동시키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포니빌 경계선에서부터 2.5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트와일라잇은 순간이동 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정신을 집중해 순간이동하는 방식으로 동쪽을 향하여 계속 가다 보면 캔틀롯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첫 번째 순간이동 뒤 두 가지 예상 외 변수가 생겨나면서 실패했다. 첫째는 첫 번째 순간이동 뒤 트와일라잇이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순간이동 과정에서 마력을 과하게 소모한 것 때문에 저주의 영향이 다시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둘째는 포니빌 중심가에서 2마일 가량 떨어지는 것만으로 등줄기에 시퍼런 얼음 칼날이 떨어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내 인생에서 그런 추위는 겪어 보지도 못했고, 두 번 다시 겪을 수도 없을 것만 같은 한기였다. 나는 그대로 당시 거소를 두고 있던 버려진 헛간으로 줄행랑을 놓은 뒤 사상 최대의 모닥불을 피웠다. 그러고 나서도 다시 사지에 감각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2주가 지난 다음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유니콘만 가능한 순간이동의 벽을 깨기 위한 실험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희소식이었다. 트와일라잇 수준으로 공간이동에 통달하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힘든 일이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낳은 열매로 득을 볼 수 있다면 또 어떻겠는가.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온몸에 피가 돌았다. 좀 더 알아봐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내 생각은 얼마 뻗지 못하고 오두막 한쪽에서 들려온 커다란 퍽 소리에 주저앉아 사라졌다. 처음에는 내 존재를 망각한 레인보우 대쉬가 가엾게도 다시 추돌사고를 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사고 지점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듣고 나니 내 생각이 틀렸음이 명확해졌다. "아오 씨... 누가 여기다 집을 지어 놨대?" 어린애가 아니고서는 낼 수 없는 높은 목소리였던 것이다.
"음......?" 나는 몸을 돌려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괜찮아?"
아직 작은 오렌지색 여자애가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채 자빠져 있었다. 아이의 옆에 넘어져 있던 스쿠터의 바퀴가 그때까지도 돌고 있었다. 꼬마가 보라색 헬멧을 밀어 벗자 분홍 갈기가 흘러내렸다. 아이는 욱신거려 오는 이마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으으. 네. 땅바닥이 제가 알던 위치에 잘 있는 거 맞죠?"
"그 자리에 잘 있지. 풀떼기랑 풀벌레가 득실거리고 있잖니."
"그래요, 그러네요." 꼬마는 보라색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오, 유니콘이시네요."
절로 웃음이 나왔다. 뭔가 막 나오는 말 같지만 귀여웠다. 저 꼬마를 묘사하는 데는 그 두 가지 단어면 충분할 듯싶었다. "내가 알기로도 그렇단다. 왜, 뭐 문제라도?"
"으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꼬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쿠터를 집어 똑바로 세우며 말했다. "그냥... 뭐. 숲 한가운데잖아요. 야외 활동을 즐기는 유니콘은 처음 보는 거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주절거리며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동이 나를 뒤흔들고 있었지만, 이런 어린애 앞에서 그럴 생각은 없었다. "유니콘이란 마법에 능한 만큼이나 변화에도 능숙하지. 도시 생활을 오래 하기는 했지만, 좀 투박하고 시골스러운 생활이 어느 순간부턴가 더 마음에 차더라고."
꼬마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그래요. 근데 '능숙'이 무슨 뜻이래요."
나는 한숨지었다. "그래, 뭐, 과속하는 만큼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들여 보렴. 그럼 대화가 한결 편해질 테니."
"사전요? 하!" 꼬마는 스쿠터를 세워 놓고 그 위에 서서 균형을 잡고 놀며 말했다. "그거라면 대신 해 줄 베프가 있으니까."
"오늘 날씨도 좋은데 왜 같이 놀러 나오지 않고......?"
"흐으으음......" 꼬마는 대답 대신 극혐하는 눈빛으로 얼굴을 잔뜩 구겼다.
나는 벙쪄서 서 있었다. 나무 꼭대기에 달린 잎새마다 아직 아침 이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잠깐. 오늘 학교 가는 날 아니니?"
"여기 끝내주는데......" 꼬마는 스쿠터를 몰아 느긋하게 내 오두막을 한 바퀴 돌아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직접 지었어요?"
"음......" 나는 곤란한 시선으로 꼬마를 쳐다보고 말했다. "그래. 혼자서 지었지."
"쩌네......"
"어떻게 알았니?"
꼬마는 살짝 볼을 붉혔다. "통빡?" 그리고는 내 오두막집의 출입구 일부를 구성하는 한 쌍 기둥을 쓸며 말했다. "나는 그런 말은 정말 자기가 손수 지었을 때나 할 수 있다고 봐. 언제가 됐든 독립해서 살게 되면 어디서 어떻게 살지 정도는 결정한 다음에 하려고. 그래야 내 손으로 직접 집을 짓든지 말든지 할 테니."
"그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느릿하게 꼬마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몸도 고되고, 땀은 또 얼마나 나는지. 그래도 짓고 나니 그럴 가치가 있다 싶긴 하더라고." 나는 태세를 바꾸며 짓고 있던 웃음을 지웠다. "흠흠. 그래, 음, 처음 보는 사람은 상대하지 말라고 부모님이 말씀 안 하셨-?"
꼬마는 곧바로 내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혼자서 지을 수밖에 없었던 집에 혼자서 살면 엄청 무서울 것 같은데." 아이가 웅얼거린 말이었다. 밝은 솜털이 한순간 몇 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오렌지색 몸통 곳곳에 그 흔적을 새기기라도 한 듯 일순간 퇴색했다. "그래도 견디고 살 만한, 좋은 무서움이 아닐까 싶기는 해."
나는 생각에 잠겨 꼬마를 바라보며 갈기를 쓸어넘겼다. 왜 전에 이 녀석과 마주친 적이 없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동네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점은 내 자랑거리였다. 항아비곡 생각으로 몇 달 동안 머리가 꽉 차서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조차 잊고 지낸 건 아니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친구, 이름이 뭐야?" 나는 무심결에 물었다.
꼬마는 나를 쳐다보았다. "응?"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가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다 나오기라도 한 양, 나를 멀뚱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답했다. "아. 스쿠틀루."
"스쿠틀루, 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이름을 말해보았다. 엉덩이 쪽을 흘끗 보니, 큐티마크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꼬마를 보며 씩 웃고 말했다. "발레를 좋아해서 붙은 이름인가 보구나."
도발이 먹혔다. 꼬마는 얼굴을 구기며 혀를 삐죽이 내밀고 말했다. "하이고 참. 하나도 안 웃기거든. 그게 내 적성에 맞으면 차라리 접시물에 코 박고 말겄수."
"어째 하나도 놀랍지가 않을까?" 나는 말했다.
"애초에 그런 뜻이니까!" 꼬마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발굽이 스쿠터 발판을 쿵 찧었다. "언제가 됐든 진짜 끝내주는 큐티마크를 얻고 말 테니 두고 보라구! 불 붙은 고리를 뛰어넘는다거나! 고공강하라거나! 로큰롤 가수도 괜찮고! 레인보우 대쉬처럼 끝장나게 멋있는 스턴트우먼도 좋고!"
"레인보우 대쉬?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여기 있었어?!" 스쿠틀루가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더니 보고 있던 내가 당황할 정도로 짧고 뭉툭한 날개를 퍼드덕거렸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나는 그 이름이 꼬마의 보랏빛 눈동자를 특히나 더 반짝이게 할 때까지 녀석이 페가수스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분명 아주 끝내주는 곡예비행을 하면서 구름을 조져 놨을 거야. 그렇지?!"
나는 꼬마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얘 대체 몇 살이지? 저 정도로 컸는데 아직도 못 난다고? 나는 녀석의 조그마한 날개와 스쿠터의 바퀴를 거쳐, 내 오두막집과 부딪치며 남긴 땅 파인 자국을 쳐다보았다. 다혈질적이고 앞뒤 가리지 않는 저 성질머리야말로 레인보우 대쉬가 미사일이라도 된 양 내 집에 머리를 들이받게 한 것이고, 저 꼬맹이도 통하는 바가 있으니 레인보우 대쉬를 따라다니는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글쎄, 듣기로는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뭔가 과학 실험을 한다는데, 실험보조로 참여한다면서 연습을 하고 있다고 하던—"
"어! 그거!" 스쿠틀루는 입이 귀에 걸려서는 선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맑고 밝은 아침, 두 번째 해가 떠오른 양 밝은 얼굴이었다. "나한테도 얘기했었어 그거! 뭐가 펑펑 터지고 레이저가 날아다닐 거라고! 갈기나 꼬리를 태워먹지만 않으면 다행일 거라고 그러던데!"
나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분이 그렇게 말했다고?"
"어!"
"용감한 친구를 두었구나."
"그럼! 안 그래—?" 스쿠틀루가 말을 하다 멈추었다. 그러더니 발굽으로 땅을 푹푹 파며 고개를 수그리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음. 아니다. 아니지. 내가 레인보우 대쉬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닐 건 아니니까..."
"왜?"
스쿠틀루가 말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레인보우 대쉬처럼 용감한 사람이 될 거야." 꼬마는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조금 전보다 조용하고 잔잔한, 고요한 것이었다. "그럼 나도 끝내주는 걸 할 수 있겠지! 끝내주는 사람이란 게 뭔지 그때쯤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꼬마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스쿠틀루..." 그리고 쪼그려 앉아 아이와 얼굴 높이를 맞추었다. "다른 사람이 이미 앞서 간 길을 그대로 따라 살아가기만 한다면 끝내주는 건 찾지 못하지 않을까?"
"그게..." 꼬마는 벙쪄서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질문에는 굉장한 흥미가 이는지 무엇인가 시선 안에서 꿈틀댔다. "글쎄, 이해가 안 되는데. 레인보우 대쉬처럼 되기 싫을 이유란 게 있나?"
"그게 나쁘다고 하려던 건 아니야. 어쨌든 포니빌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잖아. 그렇지?"
"암만!"
나는 씩 웃으며 부러 꼬마를 더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그렇기는 해도, 레인보우 대쉬 같은 사람이 되는 길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어. 그것도 훌륭하고 좋은 길인 건 맞지만, 세상에는 그와 다른 사람이 되는 길이 적어도 수백만 개는 있을 거고, 어느 하나 신나고 끝내주는 길 아닌 게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니?"
스쿠틀루는 나를 마주보았다. 꼬마의 시선은 눈앞에 나타난 심연의 낭떠러지 앞에 얼마 견디지 못하고 꺾여 쓰러졌다. 그 순간에 그 녀석의 큐티마크가 뿅 하고 나타났다면 그것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었을까 되짚어보면 좀 두렵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게 되어 눈을 가린 채 내 오두막집을 다시 지어 올릴 때 느낄 나의 두려움은, 저 어린것이 기회의 광명되지만 또 한없이 씁쓸한 맛을 보게 되었을 때 느낄 두려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꼬마가 겨우 답변을 지어 내뱉기도 전에, 굽어지는 길가 언저리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쿠틀루?!" 흰색 솜털에 노란 갈기를 한 여자 하나가 얼굴은 잔뜩 찌푸린 채 발을 쿵쿵 구르며 흙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 스쿠틀루 맞지?! 당장 튀어와!"
"아 나..." 스쿠틀루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밀키 화이트. 그 얘긴 언제까지 할 거야?" 꼬마는 한숨을 폭 쉬더니 헬멧을 뒤집어 머리에 얹고 갈기를 거칠게 쑤셔 넣으며 쓰고 말했다. "지금 가!" 꼬마는 뒤돌아보고 소리쳤다.
나는 멀찍이서 그 여자를 흘끗 쳐다보고 물었다. "네 언니니?"
"하. 그럴 리가." 스쿠틀루가 피식 웃고 말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 그럼 또 봐!" 꼬마는 한없이 작은 두 날개를 퍼덕여 스쿠터를 가속하더니, 높이 뛰어 여자 근처에 착지했다. 나는 그 모습을 놀라워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밀키! 한참 찾았잖아—"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릴 해라!" 밀키 화이트가 딱딱거리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부루퉁해져서는 골이 난 꼬마를 데리고 포니빌 중심가로 사라져 가는 그 여자는 어스 포니였다. 나는 그 여자의 뒷모습을 조금 더 오래 쳐다보았다. "왜 학교는 안 갔어? 벌써 삼십 분도 전에 치어릴리가 수업 시작했는데!"
"어어어우, 이거 왜 이래 밀키! 그냥 옆길로 좀 많이 돌아간 것뿐이야! 요 근처에서 레인보우 대쉬가 글쎄—"
"변명은 이제 그만! 또, 레인보우 대쉬가 할머니처럼 점잖게 굴기 전에는 혼자서 막 레인보우 대쉬나 마을 어른들 귀찮게 하고 다니지 마. 알아듣겠어?"
"으어어어어... 그러지 뭐..."
"그리고 그런 태도는 그만두렴! 이게 다 너 뒷바라지하려고 하는 것들이야, 스쿠틀루. 그 때 우리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지?"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말소리조차 닿지 않는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생각에 잠겨 당근밭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그때, 저주를 짊어졌든 그렇지 않든, 수많은 자들이 아직도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넘는 데 성공했거나 실패한 벽은 그 그림자로 각자의 한계를 덧칠하고, 결국 공허한 생을 살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는 다시 숲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식은땀에 젖어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으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어두운 밤을 다시 생각했다. 그 때 내 머릿속에는 만장의 차가운 수수께끼가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내 인지 밖에 있던 공포였지만, 나는 결국 이겨내고 살아 있지 않은가. 그런 고난에서 목숨을 건진 것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게 남은 생애 동안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고난과 맞닥뜨려야 할 것이며, 그 고난은 운명의 장벽 대신 얼마나 두텁고 험난한 두려움의 장벽을 치고 나를 맞을 것인가?
"이번 실험에 참여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스파클 양. 정말 고마워요."
"제가 감사하죠, 후브즈 박사님Dr.Whooves." 그녀는 싱긋 웃으며 뿔을 밝혀 나머지 여덟 개의 크리스털을 천천히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이 똑 닮은 보석들은 포니빌 시립도서관 한가운데 놓인 강철 받침대 위에 놓인 강철 상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단순한 상자는 아니었다. 은으로 된 표면 위로 아주 작은 구멍들이 뚫려서 복잡한 룬 문양을 형성한, 복잡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정육면체 모양 상자였다. 상자 맨 뒤에는 부여받은 마력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원기둥형 받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게 바보스러워 보이지 않으면 좋겠는데요." 트와일라잇이 나직하게 말하며 임시로 꾸린 실험실 중간쯤에 장치한 구리 죔쇠에 놓인 크리스탈을 똑바로 세웠다. "그래도 박사님 연구논문은 정말 좋아해요. 실험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거에요. 저는 어떻게 태어났든지 마법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스파클 양처럼 훌륭한 유니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후브즈 박사가 대답했다. 사내가 몸을 굽혀 이로 물고 있던 펜치로 상자 모양 장치 측면에 붙은 강철 패널을 바로잡았다. 바다처럼 새파란 두 눈동자가 빛났다. 그는 물고 있던 공구를 트레이 위에 내려놓고 계속 말했다. "유니콘의 절반만큼이라도 어스 포니들이 마법을 다룰 수 있었다면 한 명이 다섯 명 몫을 했을 겁니다. 마법의 오남용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라, 접근성을 높이되 보다 안전하고 실용적으로 다루려는 게 목적이라는 것만 이해해 주시면 좋겠군요."
"이퀘스트리아 과학기술협의위원회가 기계장치를 사용한 일반 대중의 마력장 채널링을 금지하는 안에 대하여 재심하기로 결정했으니, 시기도 적절하다고 봐요." 트와일라잇이 도서관 한가운데 놓인 일련의 기계장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후브즈 박사를 도와 정밀 검사를 도우며 말했다. "어쨌든 천 년 전 내전이 낳은 끔찍한 살상기술이 남긴 유산 같은 거니까요. 루나 공주님께 씌여 있던 나이트메어 문을 구마한 이래 앞으로 영영 사람들이 마법과 기계를 혼용하는 것을 터부시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들더군요."
"듣기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군요!" 후브즈 박사가 숨을 들이마시며 자신의 어린 전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캔틀롯 위원회 개최 전 몇 달 내내 순간이동 장비는 철저히 선한 의도에서만... 농경 및 산업 용도에 한하여 사용될 거라고 설득하느라 무릎 꿇고 얼마나 빌었나 모릅니다. 이번 주 실험이 계획대로만 풀린다면 분명히 연구비 지원도 받을 수 있겠지요!"
"지금껏 흘린 피와 땀이 가치있는 것이었다는 걸 입증할 방법은 하나뿐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자부심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조정을 가했다. "준비되셨죠?"
"시작할까요." 후브즈 박사는 어딘지 풍자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시작은 그쪽이 해주셔야 하지만."
"1단계의 1단계인 셈이죠." 트와일라잇이 대답했다. 그리고 한쪽으로 돌아서서 소리쳤다. "야, 레인보우 대쉬!"
레인보우 대쉬는 도서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주저앉아 반쯤 자빠진 자세로 잠든 채 큰 소리로 코를 골고 있었다.
트와일라잇이 얼굴을 찌푸렸다. "야, 레인보우!"
"스으으읍... 으음... 쩝...... 으아아아아—어? 뭔 일이야?" 레인보우 대쉬가 헤롱헤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준비 다 됐어? 뭐 하나 펑 터지는 건 아직인가?"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뭐 터치거나 하는 건 계획에 없어!"
"아우우우..."
"전부 계획대로 되리란 법은 없긴 합니다만." 후브즈 박사가 불안한 눈치로 덧붙였다.
"어!" 레인보우 대쉬가 씩 웃으며 두 날개를 펼쳤다. "그럼 아직 희망이 있다 이거네?" 숨을 씁 하고 들이마시는 레인보우 대쉬의 가슴팍에 고글 하나가 툭 날아와 얹혔다.
"그거 쓰고 준비해!"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후브즈 박사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럼 뭘 가지고 시험해 볼까요?"
"어음... 이런, 그걸 미리 생각해 뒀어야 했는데 깜빡했군요." 후브즈 박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도서관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비활성물질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뭐 쇳덩어리나 상자, 아니면... 음... 공책 같은 것도 좋겠군요!"
"헤, 좋아, 그건 그만두라구!" 레인보우 대쉬가 고글을 뒤집어쓰며 웅얼거렸다. "떨어지는 책이나 쫓아다니려고 댁들 실험 돕겠다고 한 거 아니니까 말이야! 그런 건 일주일 중 어느 때든 트와일라잇네만 오면 할 수 있다구!"
"보자......" 트와일라잇이 눈을 굴리다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레인보우의 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군요. 혹시..." 그리고는 낯익은 도서관 내부를 샅샅이 훑어보더니 갑자기 밝아진 표정으로 외쳤다. "아하! 이건 어때요!" 트와일라잇은 나무를 깎아 만든 유니콘 조각을 들어올려 박사의 눈앞에 가져다 주며 물었다. "유기물을 써도 될까요?"
"살아 있는 게 아니니, 상관없습니다!" 후브즈 박사가 활짝 웃었다. 그는 이빨로 조각상의 '뿔' 부분을 물어 잡고 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원기둥형 받침대에 올려놓았다. 그 뒤 안전 거리까지 뒷걸음질로 물러나 트와일라잇의 옆에 섰다. "좋아요, 스파클 양. 모든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아이구 이런!" 그는 상자와 선으로 연결된 스위치를 집어들다가 반쯤 엎어졌다. "아, 뭐 됐군요. 점화 장치를 건드리지도 못하면 일을 시작도 못 하지 않겠습니까?"
트와일라잇은 까르르 웃었고 레인보우는 하품을 했다.
"뭐 있어 보일 필요도 없고 진지해질 필요도 없잖아. 이제 그만 슬슬 시작하지?"
"시작해 볼까..." 트와일라잇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는 보라색 눈을 가늘게 뜨며 가장 가까이 있던 크리스털에 뿔을 겨누고 이를 악물었다. 일 분쯤 지난 뒤, 트와일라잇의 뿔에서 보라색 섬광이 뿜어져 나와 크리스털로 날아들었다. 찬란한 광선이 크리스털을 뚫고 나오며 사방으로 굴절되었고, 굴절된 빛은 다시 다른 일곱 개 크리스탈로 튕겨져 날아갔다. 빛줄기가 세 번 순환하자 여덟 개의 크리스털이 상자 한가운데로 빛을 집중시켰다. 빈 상자 안쪽에서부터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트와일라잇의 뿔에서 방출된 빛 주문은 은제 기계장치에 아로새겨진 마력장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도서관 안을 꽉 채웠고, 창틀마다 끼워진 유리장들이 진동했다.
"이야, 내 이빨로 누가 기타라도 치는 것 같은데!" 레인보우 대쉬가 웅웅대는 소음보다 큰 소리로 소리쳤다. "끝내주고 좋긴 한데, 설마 터뜨린다는 게 우리 몸뚱이란 뜻이었어?!"
"레인보우 대쉬..." 트와일라잇이 짜증내듯 말햇다.
"최대 출력에 거의 도달했어요!" 후브즈 박사가 서서히 일어나는 이상한 바람을 맞으며 외쳤다. "좋습니다. 거의 제 예상대로 되어 가고 있어요!"
"언제 스위치를 작동시켜야 하는지는 어떻게 알죠?!" 트와일라잇이 되받았다.
바로 그 때 상자 위에 올려두었던 목조 조각상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기... 이보세요들...?" 레인보우 대쉬가 그 기괴한 볼거리를 가리켰다.
"박사님—?!"
"됐습니다! 지금이에요!" 그는 두 발굽으로 쥐고 있던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그와 동시에 발생한 전기 충격이 전선을 따라 기계에 공급되었다.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섬광이 일었고 그와 동시에 크리스털들에서 마지막 광선이 뿜어져 나와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도서관이 다시 어두워졌다. 어둠은 옅은 안개처럼 방 안에 고루 흩어졌다.
나무 조각상은 없어져 있었다.
"작동했어요!" 후브스 박사가 소리쳤다. 사내는 그야말로 짜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트와일라잇은 벌써 친구를 향해 몸을 틀고 있었다. "레인보우 대쉬! 출발해!"
"좋아!" 레인보우는 거수경례를 붙이더니 창문을 열고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푸른 페가수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과학도 둘만 남은 방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어디까지 갔을까요?" 트와일라잇이 불안한 듯 물었다.
후브스 박사는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기대감에 몸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사백 피트는 갔을 겁니다.(1ft = 30.48cm, 약 122미터) 더 멀리 보낼 수는 없었어요. 이 장치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 출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모르니까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하잖아요, 박사님. 조심해 주셔서 오히려 감사하죠."
"어어어어어......"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꼬물거리며 서 있었다. 두 눈은 열린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실현되지 않는 계획은 세우지 않은 것과 마찬가집니다. 일이 잘못되어 스파클 양의 애장품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그 다음은... 상상도 하기 싫군요."
"애장품이요?" 트와일라잇은 사내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박사님도 참. 과학 발전을 위해서라면 그런 것쯤이야 방사능에 찌든 히드라에게라도 던져 줄 수 있어요."
"허허. 그거야 의심할 것도 없지만요. 그거야—" 박사의 두 눈이 갑자기 반짝이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말이 끊겼다. "맙소사! 벌써 오셨습니까?"
트와일라잇이 고개를 돌려 창 쪽을 바라보았다. "레인보우 대쉬?"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어땠어?"
레인보우 대쉬는 팔짱을 낀 채 창문으로 도서관에 들어섰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잠시 아무 말도 없더니, 씨익 웃으며 팔짱을 풀고 품에 안고 있던 유니콘 모양 나무 조각을 꺼내 보였다. 조금도 상하지 않았고, 완전히 온전했다. "짜—잔!"
"됐어요! 성공이에요!" 트와일라잇이 몇 걸음 물러나 환하게 웃으며 박사를 쿡쿡 찔렀다. "후브즈 박사님!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그는 환희와 약간의 불신이 뒤섞인 얼굴로 서서 중얼거렸다. "사백 피트..." 그는 침을 삼키고 천천히 미소지었다. 두 눈은 젖어 있었다. "포니빌 반경에 가까운 거리를 수직으로 공간이동시켰는데도 피험체에 아무런 손상이 없었어요!"
"정답. 그리고 하나 더!" 레인보우 대쉬가 피식 웃으며 조각상을 트로피처럼 하늘 높이 들고 말했다. "내가 잡으러 갈 때까지도 하늘 위에 둥둥 떠 있었다구! 뭔가 개 쩌는 마법 공간이동기인가 뭔가 성공한 모양이다 싶었지!"
"으으음..." 박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트와일라잇이 눈을 부라려 보이더니 박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쟤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틀림없이 박사님 말씀은 과학의 역사에 길이 남아 전해질 테니까요."
"야!" 레인보우 대쉬가 얼굴을 구겼다. "내 이름은 쏙 빼놓고 너희만 과학관 기념비에 이름을 남기겠다고?! 너희 셋이서 다 해먹겠다 이거—?" 그녀는 말하다 말고 사람 수를 다시 세 보았다. 그리고는 잽싸게 고글을 이마 위로 밀어 벗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째려보며 물었다. "어...... 거기 놈팽이는 누구야?"
"저요?" 나는 독서용 의자에 앉은 채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다가 말했다.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헉!"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놀란 소리를 내더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후브즈 박사 역시 나머지 둘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선 자리에서 펄쩍 뛰며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누구...... 뭣...?!" 트와일라잇은 당황한 눈길로 나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여긴 대체 어떻게 들어왔죠?"
나는 '당황'과 '충격'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말했다. "어... 그냥 들어왔는데요? 이거 실례했군요. 혹시 휴관일인가요?"
"지금 임시 실험실로 쓰고 있는 거 안 보여요?" 트와일라잇이 소리쳤다. "임시 실험실로 사용하는 동안에는 휴관이에요! 제 보조 스파이크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안내문도 붙이고 휴관 표시도 해 놨을 텐데요!"
"어..." 나는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늘어뜨렸다. "옆문은 아니던데요?" 나는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책 반납하러 와 봤더니 옆문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요."
트와일라잇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가, 레인보우 대쉬를 돌아보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레인보우...... 너 또 옆문 열어두고 안 닫았어?"
"뭐?" 레인보우는 눈만 꿈벅거리며 쥐고 있던 조각을 가볍게 던지고 받았다. "아냐! 당연히 아니지! 어..." 그리고 입술을 씹으며 천장을 한참 올려다보더니,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아하하... 어쩌면 그랬을지도..."
"으으으으......" 트와일라잇이 발굽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죄송합니다. 오해가 있었어요."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는 들어오시면 안 돼요. 선생님이나 다른 분이 함부로 들어오셨다가 어떤 해를 당하실지 알고—"
"저희 실험이 성공한 걸 보셨습니까?!" 후브스 박사가 싱글벙글 웃으며 나와 트와일라잇 사이에 끼어들었다. 과학도로서의 환희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했다. "비활성 물질을 400피트나 되는 거리에 안전하게 공간이동시키는 데 성공한 거랍니다! 이 기술을 상용화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상상이 가시나요?!"
"어... 박사님?" 트와일라잇이 박사 옆으로 삐죽이 고개를 내밀며 소심한 미소를 지었다. "박사님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말했다. "제가 똑바로 이해한 게 맞다면..." 나는 상자를 둘러싼 크리스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보석들은 숙련된 유니콘이 사용한 빛 마법을 증폭시켜 기계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겠죠. 저 상자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력장을 모방하기 위한 룬 문양을 새긴 판을 여러 장 붙여 만든 것이고요. 증폭된 마력 흐름을 상자에 집중시켜 재배열하고, 이걸로 마력의 핵을 구성해 미리 조정해 놓은 한 가지 주문을 사용하는 원리겠지요?"
나머지 셋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레인보우 대쉬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좋아, 이 인간 백과사전 초대한 사람 누구야?"
"정말... 잘 보셨군요." 후브스 박사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혹시 박사님 팬이세요?" 트와일라잇이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포니빌에 사는 유니콘이란 유니콘은 다 만나봤는데, 이런 표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첨단과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내 소꿉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냥...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고 해두죠."
"이럴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후브스 박사가 발굽을 내밀었다. "학식이 깊은 분과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성함이..."
"라이라에요." 나는 빙긋 웃으며 박사의 발굽을 잡아 악수했다. "라이라 하트스트링스." 그리고 셋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빠질 수야 없지요."
"과찬이십니다. 하트스트링스 씨." 후브스 박사가 두 명의 실험보조를 보고 싱긋 웃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 후속 실험이 더 있을 겁니다. 그것도 성공한다면 이런 장비를 가정마다 보급하는 것도 시간 문제가 되겠지요! 마법을 쓰지 못하는 분들도 이 놀라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가능성이 어마어마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뭐..." 레인보우 대쉬가 트와일라잇의 뒤편에 조각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몸은 그럼 오줌보부터 어디 갖다 치워놔야겠군 그래. 무슨 말인지 알라나 몰라." 그녀는 하품을 하며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 빼고 뭐 날려 버릴 생각은 하지 말라구."
"으음... 그렇게 하지요. 대쉬 양." 박사는 불안감을 내비치며 말했다.
트와일라잇이 눈을 굴리며 걸어나왔다. "그럼 이...뭐라 그래야 하나... 애장품의 구조적 건전성을 시험해 봐야 하니 몇 가지 실험을 해 봐야겠어요. 이게 눈에 보이는 것처럼 정말로 멀쩡한지 확인해 봐야 하니까요. 박사님...이랑 하트스트링스 씨만 좋으시다면."
트와일라잇이 멀어져 갔고, 나는 박사에게 몸을 돌리고 말했다. "박사님의 최종 목적은 유니콘 아닌 사람들도 누구나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드는 것 같은데, 기계를 작동하는 데 트와일라잇 스파클 같은 유니콘의 마법이 요구되는 건 좀..."
후브스 박사가 얼굴을 붉혔다. "네, 뭐, 아무래도 시제품이니까요. 이런 순간이동기는 제 구상이 어떻든간에 동력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유니콘의 힘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발전형 마나축전지를 탑재하기만 하면 이런 물건이라도 전지 하나에 수백 번은 장거리 공간이동이 가능할 겁니다."
"즉, 살아 있는 유니콘 말고도 다른 마력 전달 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무에서 마력을 창조하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후브스 박사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상과학은 현실이 될 수 없으니 공상과학인 것이지요."
나도 까르르 웃으며 멀리서 기계장치를 감탄스레 쳐다보고 말했다. "큐브 위에 탑재된 원기둥형 플랫폼은 아르카니움Arcanium으로 만든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아르카니움은 마력 억제 용도로 자주 쓰이죠. 저 플랫폼은 이중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군요?"
"그 말씀대로입니다, 하트스트링스 씨. 공간이동 주문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인공 마력장이 집중되는 지점에 방출 지점을 설정해야 합니다. 장치로 모여든 마력 흐름의 출구 같은 것이지요. 플랫폼 바로 아래가 그 지점이고요."
"박사님께서 거기 아르카니움 층을 배치하지 않으셨다면..."
"장치에서 방출된 마력은 순수한 에너지 흐름으로 전환되어 흐르게 되지요." 후브스 박사가 입술을 깨물며 초조한 시선으로 장치를 흘끗 보고 말했다. "저 플랫폼은 단순한 공간이동 패드 이상의 기능을 하는 것이죠."
"아, 그러면 거기서 레이저와 엮일 수도 있겠군요."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폭발도 있을 수 있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후브스 박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스파클 양이 장치의 오작동을 제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답니다. 게다가 실험하는 데 필요한 안전한 장소도 제공해 주셨지요."
"좋은 분이죠." 나는 큰 나무 안에 지어진 도서관의 멀찍한 끝자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모로."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트와일라잇과 레인보우 대쉬가 머지않아 돌아올 것은 뻔한 일이었고, 나와 떨어진 거리를 고려할 때 내 존재를 잊어버렸을 것도, 다시 나를 보고 당혹스러워할 것도 불 보듯 뻔했다. 한 사람은 나를 알지만 다른 둘은 모르는 이상한 상황을 피하려거든 그 자리에서 발을 빼는 것이 마땅했으나, 내 머릿속을 두들기던 질문 하나만큼은 꼭 던지고 가야만 했다. "피험체를 올려두기에 아르카니움 판이 너무 작은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습니다. 해질녘쯤 몇 번 더 시험해 볼 생각입니다. 스파클 양이 허락만 한다면야 좀 더 크고 밀도가 높은 물질로 시험해 보고 싶군요. 생각 있으시면 와 보셔도 괜찮습니다."
나는 차분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주신다면 저야 더할나위없이 기쁘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나는 심호흡했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다. "다음 시제품을 만들 때는 좀 더 큰 텔레포트 패드를 써 보시는 건 어떠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굳이 더 큰 플랫폼을 쓸 이유가 있을까요?"
나는 박사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생명체의 공간 이동 실험."
후브스 박사는 나를 벙쪄서 쳐다보았다. 박사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기도 전에 나는 그가 당혹스러워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박사가 걸음을 옮기며 대답하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 "그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트스트링스 씨. 그런 실험은 지금까지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눈썹을 치켰다.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그런 실험을 할 생각도 없을뿐더러, 실험 자체의 위험성도 너무 큽니다."
"위험하다는 건?"
"하트스트링스 씨를 비롯한 유니콘들은 자신이나, 다른 유니콘이 사용한 순간이동 마법으로 이동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박사는 여덟 개의 크리스털을 거느리고 앉은 상자를 손짓해 보이며 말했다. "이 장치를 이용한 순간이동은 근본적으로 그 동력을 유니콘이 사용한 빛 마법을 통해 공급받습니다. 여러 겹으로 겹쳐 쌓은 룬 문양을 거쳐 방출되는 마력은 어쨌든 자연적으로 구성된 건 절대 아니죠. 유니콘이 자신의 몸을 공간이동시키는 과정에서는 목적지에 자기 자신의 마력장이 발생합니다. 자신의 정수를 이용해 마력장 흐름을 타고 공간이동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건 유니콘이 자신과 함께 공간이동시킨 다른 사람이 유니콘이건 아니건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정수, 이를테면 각자의 영혼이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간이동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죠. 같이 공간이동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 놓인 장비가 어느 순간부터 사악한 장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저 장비로 생명체를 공간이동시킨다면, 목적 지점에 도착한 생명체는... 마력장에서 분리된다는 것이군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후브스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순간이동 장치로 생명체를 순간이동시킨다고 해도 죽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키며 초조한 미소를 짓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그렇지요."
"그 말씀은...?"
"이런 겁니다. 공간이동 목적지에 도착한 시점의 피험자는 자기 신체를 정상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력장에서 분리되는 순간 육체와 정신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고 만다는 것이죠."
"몸에서 영혼을 뜯어놓는다는 것이군요."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군요." 박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트스트링스 씨도 아시겠지만, 제 목표는 이 장비로 사람을 순간이동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원격으로 물건을 보내고 받아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기계장치를 이용해 순수하게 인공적인 수단으로 생명체를 공간이동시키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릴 겁니다. 제 생전에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나도 모르게 꼬리를 탁 소리내며 흔들었다. 나는 박사를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그러니까... 가능하기는 할 것 같으시다는 거죠?"
박사는 껄껄 웃으며 자기 갈기를 쓸어내렸다. 그는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피험자의 정신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단 하나의 방책이 있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고급 마법을 어느 정도 쓸 줄 아는 다른 유니콘이 한 명 더 있어야 할 겁니다. 피험체가 공간이동되는 지점에 대기하고 있다가 피험자와 피험자 본인의 마력장을 다시 연결시켜 준다면 가능할 테니까요. 그렇다고는 해도 그 과정에서 얼마나 높은 집중력과 마력이 필요할지는 감도 잡히지 않는군요. 현재 시점에서 생각하기로는 그런 짓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행위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위험천만한 행위라, 그래도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후브스 박사가 남긴 말만이 머리속에 꽉 차 있었다. 그 다음 날 오후, 나는 오두막집 앞에 설치한 테라스에 앉아 생각에 빠져 있었다. 리라는 내 옆에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놓인 채 한 개의 음도 노래하지 못했다. 여덟 번째 비곡을 연습해야 했지만, 마법의 상자와 그 위에 놓여 있던 나무 조각이 순식간에 사라져 트와일라잇의 도서관 나무의 가지 너머 하늘 높은 곳까지 날아갔던 일에 정신이 팔려 어쩔 수 없었다.
그간 나는 항아비곡 하나에 매달려 살아왔다. 왜 그런 삶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을까? 항아비곡을 이루는 곡 하나하나가, 집중해서 나아가야 할 분명한 목표처럼 보였다. 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온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싸늘한 한기와 지난날의 망령만이 남아 있는 삶의 첫 번째 하루의 눈을 뜬 순간부터 루나 공주님이 남긴 곡의 비밀을 탐구하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임무를 굳이 다 마치지 않아도 된다면 어떤가? 속임수를 쓰는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나는 포니빌에 갇힌 몸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그것에 입각해 살아왔다. 하지만 다른 변수를 동원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 다음을 상상한 내 심장은 미친 듯 약동했다.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캔틀롯에 있는 오래된 마법 도서관에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왕궁의 문간까지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어떻게든 두 분 공주님의 관심을 끌어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끔찍한 저주에서 나를 구원할 것을 청원할 수도 있으리라.
그것이 전부 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정작 공간이동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후브스 박사는 명료하게 그 결과를 말해주었다. 나처럼 살아 있는 자는 기계장치로 공간이동시킨다 해도 공간이동을 마치고 나서 얼마 못 가 죽을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결국 가여운 흙인형과 마찬가지인 껍데기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 유일한 희망은 트와일라잇 같은 유니콘이나, 루나 공주님 같은 알리콘이 기다리고 있다가 어떻게든 내 영혼과 몸뚱이를 '재연결'해 내가 짊어진 저주에서 나를 구해 달라고 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게 하는 것뿐이었다. 혹여나 내가 이 끔찍한 과정을 전부 성공적으로 넘어가더라도 내 따뜻한 '집'에서 떨어진 시점부터 닥쳐올 한없는 추위와 망각에 맞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는 한숨지으며 두 발굽을 후드 재킷의 소매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쪼그려 앉았다.
이보다 더 사람 피곤하게 하는 상황도 없을 답도 없는 상황을 곱씹으면서 앉아 있던 중, 내 코앞에서 실행되고 있는 과학 실험만큼이나 감질나게 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비곡을 연주하는 일은 뭔가 끔찍하게 무서운 후폭풍을 동반했고, 이 소름끼치는 곡들을 얼마나 깊게 탐구하는지는 목적에서 갈수록 멀어져 가는 현실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답이 있을지도 모르는 어딘가로 나를 공간이동시킨다는 발상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그러면 그것이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일일까?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게 보다 안전한 길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이걸 가지고 내가 얼마나 머리를 굴리더라도 둘 다 엄청난 용기를 요구했다.
사실, 나는 평생 동안 용감한 사람이란 말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레인보우 대쉬나 애플잭, 트와일라잇 스파클 같은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용기를 쥐어짜내는 건지 나는 알 수 없다. 저주를 짊어진 채 강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얼음 막대끼리 비벼 불을 피우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시시때때로, 아침이 되어 오두막집 밖으로 걸어나오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고독했지만, 그조차 내가 느낀 말 그대로의 두려움에 비하면 댈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공간이동기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일에는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 내게 지워진 삶은 희망의 이름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한 뒤 이상한 것들을 쥐여 주는 것의 반복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음악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웅의 일은 영웅에게 맡겨 두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
무엇인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사지가 널브러지는 소리가 뒤엉키는 불협화음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두막집 앞에서 그쪽 방향을 쳐다보니, 조그마한 꼬맹이가 흙길 한가운데 넘어져 있었다. 뒤집어진 스쿠터의 바퀴가 빙빙 돌았다. 나는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어느샌가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꼬마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일어났던 먼지가 막 가라앉고 있었다. 꼬마가 아파하면서 신음하는 소리에 섞여 나오는 쌕쌕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음... 꼬마야?" 나는 몸을 기울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했다. "괜찮니?"
"으으으으으..." 스쿠틀루의 두 눈은 꼭 감겨 있었다. 꼬마는 이를 악물고 씩씩대며 대답했다. "난 괜찮아!"
"네가 얼마나 멀리 나가떨어졌는지 아니." 나는 스쿠틀루 뒤쪽을 흘긋 쳐다보았다. 길바닥 한가운데에 뾰족한 돌부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깊숙하게 난 바퀴 자국이 스쿠터가 어느 지점에서 돌부리와 충돌했는지 명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좁은 길에서는 조심해야지. 이쪽 길은 오래 전에 낸 길이라 사람들이 그닥 신경을 안 쓰니까 말이야." 아이의 두 앞다리가 뒤쪽 왼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몸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어디, 좀 보자—"
"괜찮다고 했잖아!" 꼬마는 씩씩대며 내가 내민 발굽을 쳐냈다. "난 터프하다구! 이보다 더 멀리 나가떨어져 본 적도—아야! 아야야야......" 입술 사이로 씩씩대는 소리를 내면서도, 눈가가 젖어 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발굽을 뻗었다. 꼬마는 이번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나는 스쿠틀루의 두 앞다리를 걷어내고, 그 아래에서 오렌지색 다리를 태우는 듯 새빨갛고 깊은 상처를 찾아냈다. 응급실에 데려가야 할 만한 상처는 아니었다. 좀 아프기는 하겠지만.
"세상에, 이건 좀 많이 다쳤는걸!"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내 웃음이 꼬마의 고통을 진정시켜 주기라도 할 것처럼 빙긋 웃었다. 약효는 없었다. 그래서 두 발굽으로 꼬마의 턱을 살살 문질러 주면서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으로 대신했다. "가자. 따라오렴. 응급처치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도움... 같은 건... 사양이야..." 꼬마는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벽에 머리를 부딪친 사람처럼 고통을 참으며 툴툴댔다.
"네 다친 다리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은데." 나는 똑바로 서서 뿔을 밝혀 밝은 녹색 불빛을 피워냈다. "걱정하지 마. 얼마 걸리진 않을 테니."
스쿠틀루가 무언가 웅얼거렸다. 꼬마의 얼굴 위로 긴장감과 불만이 뒤섞여 떠올랐다. 아이는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염동력이 다친 다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반짝였다. 아이는 나의 부축을 받아들였다. 나는 꼬마를 데리고 절룩이는 걸음이나마 내 오두막집 앞까지 걸어왔다.
나는 곧장 오두막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순식간에 응급처치 키트를 들고 나왔다. 포니빌을 돌아다닌 지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조달한 물건들로 채운 것이었다. 내가 심각하게 다쳤을 때 내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렴. 처치는 내가 해 줄 테니."
나는 꼬마의 상처 가장자리를 씻어냈다. 그 다음, 붕대에 연고를 발라 다친 자리를 가만히 감싸 주었다. 그 동안 스쿠틀루는 유독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가 상처를 돌보는 동안 거의 몸을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입술 밖으로 나오는 신음도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정도였다. 이 녀석도 나름 용감하게 굴려고 하는 것을 나는 알았다. 조금 지나치기는 했지만. 꼬마의 상반신이 터지기 직전의 가죽 풍선이 된 듯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차분하게 두 번째 붕대를 준비하면서 말했다. "냄새가 좀 심할 수 있으니까 조심해."
스쿠틀루가 동요했다. 꼬마는 긴장이 역력한 채 말했다. "내, 냄새라니? 아무 냄새도 안 나는구만..."
"그게, 실은 말이지..." 나는 스쿠틀루의 등 뒤에 가 서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귀한 약을 쓸 거거든. 다친 곳이 감염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약인데, 이게 사람마다 부작용이 조금씩 달라. 몇몇은 뭔가 끔찍한 냄새를 맡게 돼. 그게 아니면, 뭐, 아무 냄새도 맡지 않기는 할 거야. 그래도 부작용은 있지만."
꼬마가 마른침을 삼켰다. 스쿠틀루의 목과 머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떤 부작용인데...?"
"상대적으로 가벼운 거야." 나는 조용히 말했다. "콧물이 조금 난다거나, 눈물이 난다거나 하는 거."
"그게... 그, 그게 보통이지?" 스쿠틀루가 물었다. 아주 작은 소리로 훌쩍이는 것을 나는 분명히 들었다.
나는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통이고말고."
아이의 훌쩍거림이 두 배가 되고 다시 네 배가 되었고, 스쿠틀루가 진정하면서 꼬마의 몸도 안정되었다. 나는 굳이 꼬마의 눈물 젖은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다. 나는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그럼 다친 다리를 들어 보렴. 거의 다 됐으니까."
아이는 순순히 말을 들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붕대를 감아 주고 단단히 묶었다. 나는 일어서면서 꼬마의 두 날개를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눈을 가늘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스쿠틀루의 가장 긴 날개 깃털조차 또래 꼬마의 절반 정도에 미치지 않는 정도밖에 자라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마치 거기서 성장이 멈추어 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천천히 걸어 꼬마 옆에 가 앉았다.
"자... 그럼 왜 그랬는지 얘기해 줄래?"
스쿠틀루가 마지막으로 훌쩍이는 소리를 내더니, 앞다리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왜냐니? 뭐가?"
"타르타로스에서 뛰쳐나온 박쥐처럼 스쿠터를 몰고 흙길을 질주한 이유가 있지 않니?"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고, 오후의 지평선에서 시선을 떼어놓으며 대답했다. "으으으음... 연습."
"무슨 연습?" 나는 씩 웃으며 물었다. "폭파 올림픽?"
"피! 아냐!" 꼬마는 잠시 날 째려보더니 말했다. "언니가 내 다릴 고쳐 준 건 정말 고마운데, 날 괜히 자극하진 마!"
"야...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나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희 또래 애들은 자살 행위보다는 나은 취미생활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자살 아니거든." 꼬마는 한숨을 폭 쉬더니, 분홍 갈기를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페가수스적인 일이야. 언니가 이해할 것 같진 않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네 나이쯤이었을 땐 내가 어느 쪽 마법의 적성을 타고났는지 찾아본다며 몇 번이나 침실 구조를 '재배치'한 일이 있었지. 하. 유니콘이라도 어릴 땐 그렇게 난장판을 만들면서 크는 법이야."
"나는 그래서는 안 돼! 땅바닥이나 굴러다니면서 살 수는 없단 말이야!" 스쿠틀루가 기나긴 한숨을 토해냈다. 아이는 두 무릎을 안고 쪼그려 앉아 쓸쓸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내가 스쿠터를 모는 이유는 하나뿐이야. 그게 무슨 느낌일까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그거라니, 그게 뭔데?"
"속도. 맞바람. 바람 소리."
나는 한쪽 눈썹을 치키며 물었다. "날아다니는 것 말이니?"
아이가 콧김을 뿜어냈다. 그녀는 테라스 아래로 깔린 흙을 지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잘 날아다니는지......"
아하. 그렇구만.
"혹시 그 언니가 누구인지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으으. 저기..." 스쿠틀루가 일어서서 절룩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언니가 누구든 간에, 고마워. 정말로. 그래도... 언닐 귀찮게 할 생각은 없거든. 그게... 나도 갈 데가 있고. 어쨌든 숙제나 뭐 그따위 재미없는 짓거리도 해치워야 하니까."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바람에 후드 자락이 날리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고 보니 거의 여덟 달 동안이나 뇌우가 없었지."
"알아." 멀리로 떠나는 스쿠틀루의 목소리는 한층 방어적으로 들렸다. "포니빌 기상관리팀은 이퀘스트리아에서도 가장 완벽한 기록을 갖고 있으니까."
"그 사람도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을 테니, 몇 번은 번갯불에 그을린 경험이 있진 않을까?"
스쿠틀루는 걷다 말고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나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아이의 보라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용감한 것만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아냐, 어린 친구." 나는 꼬마가 감고 있는 붕대를 가리켰다. "완벽해 보이는 것이라도 몇 번이고 다치고 멍든 자리에 새겨지는 거야."
아이는 곧장 대답하면서 유독 진지하고 무감정한 표정을 지었다. "내 삶 자체가 다치고 멍든 상처의 연속이었는걸." 스쿠틀루는 그것이 자신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신성한 것이기라도 했던 양 얼굴을 찌푸렸다. 스쿠터를 일으켜 세우고 짧은 날개를 움직이는 아이의 모습이 아득하게 보였다. "나도... 나도 멋있어지고 싶어. 그 언니는 멋있는데. 왜 나는 안 돼?" 스쿠틀루는 마지막으로 훌쩍거렸다. 이제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모든 것은 아이가 스쿠터에 올라타 길을 따라 내 시야와 내 삶에서 다시 한 번 사라져 가며 지은 찌푸린 표정에 녹아 사라졌다.
나는 다시 리라를 옆에 놓아둔 채, 쿵쿵 뛰는 가슴을 안고 홀로 앉았다. 나는 느릿느릿 응급처치 키트를 닫으며 한숨지었다. 내 인생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돌봐 줄 수 있는 척 하는 것도 그만둘 수 있는 때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몇몇은 영웅이 되는 것을 그저 꿈꿀 수밖에 없다. 몇몇은 영웅의 이름을 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영웅이 된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이 남긴 유산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란 이름에 영원히 주저앉아 있을 것이고.
"좋습니다..." 후브스 박사가 기계장치의 아르카니움 플랫폼 위에 검은 원기둥형 물체 하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 몇 걸음 물러섰다. "산양제 합금 50킬로그램입니다. 지금까지 실험한 것 중에서는 가장 무거운 것이죠."
"그럼 선생, 이번에는 얼마나 멀리 날려보낼 생각이야?" 레인보우 대쉬가 물었다.
후브스 박사는 트와일라잇 스파클을 슬쩍 곁눈질하더니, 침을 삼키고 씩 웃으며 대답했다. "900피트(274.32미터)입니다. 헌데 대쉬 양이 날아가서 낚아채기에는 가속도가 과하게 붙을 것 같아서 걱정이군요."
"위험하다 이거지." 레인보우 대쉬가 말했다. 루비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준비됐으면 시작하라구!"
"저... 음... 혹시 전에 이런 일을 해 보셨는지요?"
레인보우는 낄낄 웃더니 한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고 말했다. "어이, 트와이! 빅 맥이 언덕 가장자리 언저리에다 변소 지어놓고 일 보던 때 기억하냐? 그래 마침 걔 머리 위에서 구름 치우고 있었는데 빅 맥이 그 때 뭘 어쨌는지 기억하지—?!"
"흠, 흠." 트와일라잇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박사를 쳐다보았다. "얘 정도면 할 수 있죠, 박사님. 그럼 시작할까요?"
"이번에는 크리스털 열두 개를 사용할 겁니다.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룬 매트릭스에 주입하게 되겠죠."
"알겠어요." 트와일라잇은 조심스레 가장 가까이 있던 크리스털 쪽으로 다가가 뿔을 겨누었다. "집중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준비되면 신호를 드리죠."
후브스 박사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전선에 연결된 스위치를 꽉 쥐었다. "그럼 준비하고 기다리도록 하지요."
레인보우 대쉬는 공중에 떠서 둘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트와일라잇이 뿔 위에 빛 마법을 집중시키자 도서관 한가운데가 짙은 보라색 불빛에 비쳤다. 땀방울이 얼굴을 따라 굴렀고, 집중된 마력이 일으킨 바람에 갈기가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거의... 다 됐어요..." 그녀는 이를 악물며 숨을 들이마시더니, 크게 소리쳤다. "지금이에요!"
섬광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섬광이 사라진 자리에는 열두 개의 크리스털을 따라 얽히고 설킨 보라색 광선의 그물망이 있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비틀거리며 주저앉으려 하자, 후브스 박사가 뒤에서 받아 주었다.
"괜찮습니까?"
"전 신경 쓰지 마세요!" 트와일라잇이 큰 소리로 외쳤다. 큐브를 둘러싸고 늘어선 크리스털들이 큰 소리로 웅웅대며 울어대는 소리가 온 도서관 안에 메아리졌다. "에너지 충전량은 어떻죠?"
"거의 다 됐습니다!" 박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두 발굽으로 스위치를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에너지 충전률을 조정합니다. 인공 마력장 마나 유입 저항도 35%에서 마력을 주입할 겁니다!"
"에너지 출력량을 상향 조절했는데 괜찮을까요?"
"잘못되더라도 측방 마나 흡수 장치로 마력을 안전하게 흘려보낼 테니 괜찮습니다!"
"아 뭐야, 김 빠지네!"
"제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동안엔 어림도 없지요!" 후브스 박사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실험실 안에 마력이 안개처럼 끼어 휘돌고 있었다. "그럼 대쉬 양, 준비는 되셨지요?"
"시작해, 선생!"
"시작합니다! 900피트를 보낼지, 고장나고 끝날지 한번 보죠!" 박사가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그와 동시에 열두 개의 크리스털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와 큐브를 향하여 쇄도했다. 상자 안에서 빛이 스며나오는 기세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기계장치에 설치된 공간이동 패드 위에 올려진 검은 쇳덩이는 처음에 기대한 대로 비물질화되어 사라지는 것 대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상자 안쪽에서부터 낮은 소리로 끽끽대는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레인보우 대쉬가 얼굴을 찌푸렸다. 파닥거리는 날개가 왠지 조금은 늘어진 것 같았다. "이거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나만 이런 생각 드는 건가?"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전전긍긍하며 박사를 홱 돌아보았다. "박사님?"
"이게..." 후브스 박사는 작동하지 않는 공간이동기를 쳐다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이게 이럴 수가 없는데! 지금쯤이면 벌써 방출이 끝났어야 합니다!"
"더 무거운 쇳덩이를 올려놔서 그런 거 아니야?" 레인보우 대쉬가 막 던지듯 물었다.
"아냐. 실험 대상의 질량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트와일라잇이 말했다. "이거, 마나 전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같아. 그럴 수가 없는데! 저 큐브—"
"하느님 맙소사." 박사가 중얼거렸다.
다른 둘은 두려움에 찬 눈길로 박사를 쳐다보았다.
박사도 둘과 다를 바 없이 겁에 질려 말했다. "충전한 마나가 갑자기 사라진 건 물론 아닙니다. 마력 흐름이 관측되지 않는 건 아마 충전된 마력이 인공 마력장의 외부층을 뚫고 나갔기 때문일 거고요."
"광선이 장치 중앙부까지 뚫고 들어갈 정도로 충전되었다는 말씀이세요?"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급히 물었다.
"으음..." 레인보우 대쉬가 아래로 내려와 물었다. "안 좋은 건가?"
"저 큐브 안에는 룬 챔버가 가득 들어 있어. 룬 챔버는 저 정도로 집중된 마력을 감당 못 해!" 낯선 불협화음이 실험실을 가득 채우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비명을 질렀다. "지금 우리가 이러는 동안에도 과부하가—"
"중단합니다!" 후브스 박사가 소리쳤다. 이제 말하는 본인조차 자기 말을 듣지 못할 지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강제 정지시킵니다!" 박사는 장비를 만지작거리다가, 쾅 하고 장비 패널을 내리쳤다.
"아으으으으!" 레인보우 대쉬는 아파 오는 귀를 막고 있었다. 조명들이 머리 위에서 진동했다. 도서관 창문 위로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으으으—왜, 왜 그래?!"
"안정화 장치가 손상되었어요!" 박사가 소리쳤다. 거대한 지진과도 같은 진동 속에서 박사의 외침은 속삭임이나 다름없었다. "마나 흡수 장치가 타 버렸습니다!"
"그러면—!" 트와일라잇이 외쳤다.
레인보우 대쉬가 급하게 날아들었다. 큐브의 금속 표면이 마구 찌그러지며 그 사이로 밝은 보라색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레인보우 대쉬는 잽싸게 트와일라잇과 후브스 박사를 밀쳐냈다. "엎드려—!"
큐브가 폭발했다. 검고 둥근 받침대가 폭발에 밀쳐져 날아가 나무 벽에 부딪치며 거의 2피트 깊이로 박혔고, 열두 개 크리스털은 산산조각나 흩어졌다. 진동에 진동을 거듭하다가 여진까지 사그라든 도서관 내부에 낮게 웅웅대는 소리와 먼지구름만 자욱했다. 나무 속을 비워 지은 집 안에 그림자만 춤추고 있었다. 장서를 비롯해 다 떨어진 페이지가 마력 회오리에 휘말려 날리는 가운데 그 아래 엎어져 있던 후브스 박사가 끙끙대며 제정신을 수습했다.
"으으... 스타스월 맙소사... 머리가..." 박사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몸을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귀와 코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박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크게 놀라 경악했다.
찢겨나간 큐브 표면 사이로 노출된 룬 챔버의 핵이 보라색으로 달아올라 보랏빛 섬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난리가 날 정도로 큰 폭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동 장비는 딱 한 곳, 아르카니움 받침대가 날아간 걸 빼면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한 가지 더, 큐브는 원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가 장비 옆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룬 패널을 여러 겹 쌓아 만든 인공 마력장이 그대로 어느 한 지점을 겨누고 있었고, 그 지점은......
"대쉬 양!" 후브스 박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으으으..." 레인보우 대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고, 의식도 희미했다. 순수한 마력을 자기 몸으로 받아냈기는 하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큐브의 찢어져 열린 주둥이가 정확히 그녀를 겨누고 있었고, 그녀는 자기 목에 칼을 들이미는 기계장치의 사선에서 일어나 벗어나기는커녕 기어갈 힘조차 없었다.
후브스 박사가 레인보우 대쉬를 향해 꿈틀거리며 기어가려 했지만, 엄습하는 고통에 몸을 움찔하더니 뒷다리 쪽을 돌아보았다. 마나 크리스털이 깨지면서 생긴 수많은 파편이 사내의 무릎에 가 박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박사는 공포에 질렸으면서도 다시 레인보우 대쉬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다시 고개를 돌려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쓰러진 자리를 보았다. 레인보우 대쉬와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거리였다.
"스파클 양! 헉..." 박사는 밀려드는 고통에 몸을 움찔하면서도, 두 여자를 향하여 기어가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헛된 시도였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숨을... 쉴... 수가..." 트와일라잇이 목을 쥐어짜내 말했다. 그녀 또한 바닥에서 일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둘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였다. 공간이동기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트와일라잇을 덮쳤고, 트와일라잇의 뿔은 그것과 공명한 여파로 약하고 깜빡이는 빛을 내고 있었다. "마력에... 너무 노출되었어요. 몸에... 감각이..."
"당장 끌어내지 않으면 대쉬 양이 위험해질 겁—" 후브스 박사가 꺼낸 말은 어디선가 들려온 커다란 삐걱대는 소리에 가로막혀 더 나오지 못했다. 두꺼운 책이 빽빽하게 꽂힌 육중한 서가가 마나 폭발에 휘말려 박사가 있는 쪽으로 서서히 기우는 모습이 박사의 눈에 비쳤다. "이런..." 그는 몸을 움츠리며 두 발굽으로 머리를 가렸다. 커다란 원목 가구가 박사가 있는 곳을 덮쳤다.
커다란 충돌음이 도서관 안에 퍼졌다. 하지만 후브스 박사는 털끝 하나 깔리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누가 그를 끌고 피했기 때문이었다. 박사는 경련하며 나를 올려다보고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감사 인사는 됐고요." 나는 진땀을 흘리며 대충 대답했다. 나는 안전 거리까지 박사를 끌어다 놓고 트와일라잇과 레인보우 대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과부하된 큐브의 영향을 심하게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열 걸음도 더 떨어져 있었는데도 몸을 가누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번 실험을 근처 복도에 숨어서 구경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심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자기소개는 때려치우자고요, 선생!" 나는 부서진 큐브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력을 겨우 견디며 말했다. "정지시킬 방법은 있겠죠?"
"그... 그..." 후브스 박사는 내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같은 건 잠시 잊어버리기로 하고, 절망 섞인 눈으로 쓰러진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두 분 공주님이 오셔도 지금 상황에서 저걸 정지시킬 방법은 없어요! 장치에 압축되어 저장된 마력이 다 방출될 때까지는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나는 깊고 낮은 소리로 우레처럼 웅웅대는 소리에 지지 않으려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쪽 발굽으로 눈 위에 그늘을 떨어뜨려 트와일라잇과 레인보우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큐브에서 마나를 토해내면서 내는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은 되죠?"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박사가 외쳤다. "장비가 수용 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마력을 충전했습니다! 첫 번째 폭발은 그저 전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이에요?!"
"저런 꼴이 났지만 공간이동기 자체는 그대로 작동할 거란 말입니다!" 나는 박사를 똑바로 일으켜 앉혀주었고, 박사는 큐브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저것 자체가 국소 공간이동 주문이 형성되면서 발생하는 마력 광선이에요! 게다가 하필이면 그 방향이—"
"레인보우 대쉬..."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옮기죠—"
박사는 나를 단단히 붙잡고 말했다. "절대 안 됩니다! 코어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셨다간 저 두 분처럼 될 거에요!"
"옮겨야 하잖아요! 두 분 다 꺼내와야 하잖아요!" 이가 딱딱 부딪치는 것이 느껴졌다. 추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쿵쿵거리는 진동을 거느리고 더 강해져 가는 섬광을 쳐다보고 물었다. "다른 방법이라도?"
박사는 그제서야 내 얼굴을 처음 보기라도 한 듯한 눈길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유니콘이시군요! 루나 공주님 감사합니다!" 박사는 무너진 서가에서 뜯겨나온 두꺼운 나무 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쩌면 저걸 쓰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나는 큰 소리로 답했다. 떨리는 숨을 애써 가라앉히며 네 다리로 바닥을 단단히 디디고 선 뒤 내 뿔에 최대한의 마력을 집중시켰다. 내가 써 왔던 그 어느 마력보다도 더 크고 집중된 마력이 뿔에 모여들었고, 나는 그 힘을 빌어 소용돌이치는 마력 폭풍 한가운데로 목판을 집어 세차게 쑤셔넣었다. "으으..." 자리에 쓰러져 신음하는 레인보우 대쉬를 향해 목판을 조금씩 밀어붙일수록 땀에 젖은 몸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젖은 시멘트 사이로 플라스틱 버터 나이프를 꽂아 자르는 것 같았다. "이거... 안 닿을 것 같아요!"
"그러면 나중으로 미루십시오!" 후브스 박사가 소리쳤다. 기계가 낮은 소리로 웅웅대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찢겨나온 공간이동기가 다음 마력 방출을 앞두고 있었다. "스파클 양이 더 가깝습니다! 우선 스파클 양부터 구조하지요!" 박사가 손짓하며 말했다. "그 다음에 두 분이 힘을 합쳐 레인보우 대쉬 양을 구조하시면 될 겁니다!"
"트와일라잇!" 나는 그녀 쪽으로 방향을 틀며 소리쳤다. "박사님 말씀 들었지? 꽉 붙들어!"
"아... 아..." 트와일라잇이 멍하니 발굽을 들어 더듬거리다가, 목판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거기... 거기 누구...?"
"스무고개는 나중에 해!" 나는 외쳤다. 창문이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금이 간 유리판이 박살나 떨어졌다. 나는 염동력으로 목판을 힘껏 잡아당겼다. "꽉 붙잡고 있어! 바로—"
"레인보우 대쉬!" 트와일라잇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늘어진 레인보우의 몸을 겁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며 목판을 꽉 붙잡고 내 쪽으로 끌려왔다. "조금만 참아!" 깨진 큐브가 레인보우 대쉬를 겨누고 있는 것을 본 트와일라잇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셀레스티아 공주님 맙소사, 안 돼..."
"으으윽... 트, 트와일라잇..." 레인보우 대쉬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기계 가까이 있던 두 날개 깃털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 말 들려?!" 트와일라잇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겨우 트와일라잇을 끌어내 나와 박사가 있는 쪽으로 데려왔다. 그녀는 내 앞에 무너지다시피 쓰러지더니 자세를 가다듬으려 용을 썼다. "숨 천천히 쉬고... 가만히 있어, 금방 꺼내 줄게—"
기계장치가 다시 고동쳤다. 순수한 마력의 파도가 터져나와 우리 셋을 덮쳤고, 휘말린 우리는 뒤로 밀려났다. 나는 균형을 잃고 후브스 박사의 다친 다리 위로 쓰러졌다. 박사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몸을 다시 일으키고 나서는 찬란한 태양빛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도서관 정문이 벌컥 열린 것을 깨닫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이게 대체 무슨 지랄이 난 거야?! 다들 괜찮아—?" 높은 목소리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레인보우 대쉬!"
트와일라잇이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안 돼... 멈춰! 여기 들어오면 안 돼! 대쉬 근처로 가지 마!"
도서관 정문을 돌아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뒤집어진 스쿠터와 거기 달린 네 개의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떨리는 시선 위로, 작은 주황색 몸이 말 그대로 욕지기가 이는 마력 속을 헤엄치듯 달려 들어왔다.
"스쿠틀루, 내 말 들어!" 트와일라잇이 소리쳤다. 나는 트와일라잇을 부축해 몸을 일으켜 주었다. 그녀는 이 난리통과 끝없는 소음 위로 고함치듯 외쳤다. "물러서! 절대 건드리지 마! 기계가 곧 폭발할—"
"다쳤... 다, 다쳤잖아!" 스쿠틀루가 미친 듯 팽창하며 흘러나오는 마력 무리를 보고 소리쳤다. 악문 이 위로 잔학한 보랏빛 마력 흐름이 비쳤다. 스쿠틀루는 레인보우 대쉬를 향하여 고통을 참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 이제 트와일라잇의 경고가 들렸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다. 우리는 무기력하게 도서관 끄트머리에 서서 두려움에 젖어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내가... 내가, 내가 레인보우 대쉬를 꺼내 오겠어!"
"으으으으음... 뭐, 뭐야......?"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다시 깨어나기라도 하듯 레인보우 대쉬의 두 눈이 반짝 열렸다. 대쉬의 눈에 스쿠틀루가 비쳤다. 스쿠틀루가 받아내고 있는 고통이 비쳤다. 마력 분출 직전에 달해 어마어마한 섬광을 뿜어내고 있던 공간이동기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레인보우 대쉬는 깜짝 놀라 스쿠틀루를 향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앞다리를 뻗어 올리며 소리쳤다. "야! 물러서! 당장—"
그 찰나의 순간에 스쿠틀루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쓰러졌다. 붕대를 감은 다리가 도서관 바닥에 부딪쳐 일으킨 고통에 아이의 몸이 움찔했다. 그것이 스쿠틀루의 안에 어떤 불꽃을 피워 올린 듯, 아이는 두 눈에 불꽃을 튀기더니 짐승의 울부짖음과 같은 포효와 함께 작디작은 두 날개를 미친 듯 퍼덕여 자신의 몸을 레인보우 대쉬 옆으로 날아드는 혜성처럼 날려보냈다.
"안 돼! 그러지—" 후브스 박사가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공간이동기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 보라색을 띤 마력 덩어리가 큐브의 찢어진 아가리에서 뛰쳐나와 목조 바닥 위로 깔리며 쇄도했다. 레인보우 대쉬의 쓰러진 몸 앞을 스쿠틀루가 막아섰고, 그와 동시에 레인보우 대쉬의 입에서 헉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를 막아선 스쿠틀루의 몸은 섬광에 휩싸여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뒤에는 흐릿한 보랏빛 안개만 자욱했다.
재앙이 이끌고 온 소음과 대혼란이 자취를 감추자 레인보우 대쉬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리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제기랄! 젠장 젠장 젠장 젠장!" 그녀의 어질어질한 머리 안에 충격과 분노가 자리잡았다. 레인보우 대쉬는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 시도는 그녀의 몸이 다른 책장과 실험 기구 몇 개 위로 쓰러져 넘어뜨리고 박살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아아아아악—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애꿎은 나무 테이블을 미친 듯 내리찍고 걷어차며 허공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등신 같으니! 그게 대체 무슨 짓인 줄 알고 그 지랄을 해?! 이... 으으으... 바보... 바보 같은 것이..."
큐브는 완전히 작동을 멈춘 채 침묵하고 있었다. 더 마나 충격파를 뿜어내지도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레인보우 대쉬에게 다가가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꼬마가... 꼬마가..." 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다, 마른침을 삼키고, 스쿠틀루가 마지막으로 서 있었던 자리에 남은 둥근 검댕 자국을 쳐다본 뒤에야 말을 이었다. "...공간이동을 했겠군요. 당연히 그래야만 하고요! 대쉬 씨, 혹시—"
"흡!" 그녀는 마음 속에 천길 들불을 피운 얼굴로 나를 세차게 밀쳐 넘어뜨리고 도서관 방을 건너가 물었다. "트와이! 얘기해 봐! 얘 어딨어?! 저 병신같은 기계가 앨 어디로 보낸 거냐고?!"
트와일라잇 스파클은 입을 닫지 못한 채 도서관의 빈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두 눈은 언제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양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트와일라잇!" 레인보우 대쉬가 트와일라잇의 어깨를 붙들고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나 봐봐!"
트와일라잇은 침을 삼키고 레인보우 대쉬를 쳐다보며, 떨리는 입술로 대답했다. "나...는 모르겠어, 레인보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일은 이미 터졌어!" 레인보우 대쉬가 다그쳤다. "저 병신같은 기계가 별 쓰레기 같은 걸 순간이동시킨다고 했지? 그럼 애는 어디로 갔어? 여기서부터 구백 피트 떨어진 데로 보낸 거야 뭐야?"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후브스 박사가 말했다.
레인보우 대쉬가 고개를 돌려 박사를 쳐다보고 말했다. "틀렸어!" 대쉬의 얼굴이 구겨졌다. "내가 직접 찾고 말지!" 그녀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채비를 했다.
"안 됩니다! 멈춰요!" 박사는 다친 무릎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찡그리면서도 기다리라고 몸짓하며 말했다. "여기 있으세요. 기계장치가 폭주하면서 스파클 양이 처음 사용한 마법을 열 배로 증폭해서 방출했단 말입니다! 공간이동기가 손상된 상태로 순간이동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로 순간이동했다고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어딜 찾아보라고 얘기나 해 보란 말야, 선생!" 레인보우 대쉬가 소리쳤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가빠 오는 숨을 짓눌러 진정시켰다. "공간이동긴가 뭔가가 애한테 안 좋으면 안 좋았지 좋을 건 없을 거 아냐!"
"박사님 말씀은 스쿠틀루를 어딘가로 순간이동시킨 건 맞는데, 정확히 어디라고 특정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용을 쓰며 말했다. "어느 방향으로든... 어디로든 날려갔을 수 있다고."
"도움 안 되는 말 하지 마, 트와이!"
"잠시 생각 좀 해보자..." 트와일라잇이 기운 없는 걸음으로 방을 빙빙 돌았다. 우리는 트와일라잇이 쓰러진 칠판을 일으켜 세우고, 분필 하나를 띄워 올려 수많은 고차방정식을 미친 듯이 풀어대는 모습을 잔뜩 긴장한 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마는 깊은 생각에 잠겨 주름이 져 있었고 입 밖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방출 패턴을 고려해 보면 말입니다." 후브스 박사가 엄슴하는 고통에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 아이처럼 작은 몸이라면 최초 상정한 이동 거리의 다섯 배는 더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 그게 뭐 어쨌다고?" 레인보우 대쉬가 두 과학도 사이를 다급하게 오갔다. "그게 무슨 뜻인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 집중 좀 하자!" 트와일라잇이 딱딱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 방정식 몇 개가 잘 풀리지 않는지 이를 박박 갈며 붙들고 있었다. 트와일라잇이 두 눈을 꽉 감더니나지막이 몇 마디 중얼거리다가 답을 도출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눈을 휘둥그레 뜬 레인보우 대쉬를 올려다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 모양으로 13제곱마일 안이야."
"여기, 그러니까 공간이동기가 있는 자리가 원점입니다." 박사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인보우 대쉬가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봉두난발이 된 갈기 위로 두 앞다리를 뻗으며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인데?"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2마일 안에 있을 수도 있고, 남쪽으로 2마일일 수도 있고, 남서든 남동이든 2마일 떨어져 있단 말이야, 방향은 전혀 모르고!" 트와일라잇은 초조한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레인보우 대쉬는 심호흡을 하더니 각오를 굳힌 듯 단단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뭘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근처 깨진 창으로 향하며 말했다. "나는 팔팔한 페가수스 애들 싸그리 긁어모을 테니까, 트와일라잇 넌 시장님한테 사정 설명 좀 해라.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지자고! 한나절이 걸리든 하루가 꼬박 걸리든 상관없어. 찾을 수만 있다면 일 주일 내내 찾아다녀도 돼!"
"대쉬 양, 그 아이를 찾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박사가 소리쳤다. "얼마나 빨리 찾아내느냐의 문제죠."
"왜?" 레인보우 대쉬가 박사를 째려보며 물었다. "또 뭐야?"
그는 입술을 깨물며 트와일라잇과 시선을 교환하더니, 다시 레인보우 대쉬를 쳐다보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 어느 생명체도 공간이동기를 이용해 순간이동한 사례가 없습니다." 그는 몸을 움찔하면서도 다친 다리를 꼭 붙들고 몸을 똑바로 일으켜 앉았다. "이론상으로는 생명체가 이런 국지적 공간이동기를 사용해 공간이동하더라도 생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얼마 버티지 못한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되묻는 레인보우 대쉬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갈라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뜻이야. 스쿠틀루는 어디로 날려갔더라도 곧 신체 기능을 잃기 시작할 거야.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면서 사지가 마비되거든." 트와일라잇은 한없이 끔찍한 이 상황에서도 애써 침착하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공간이동기는 그 작동 원리상 스쿠틀루의 영혼과 육신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마력장 연결을 끊을 수밖에 없어. 머지않아 마법 때문에 질식하는 것처럼 신체 기능이 멈추기 시작할 거야."
"그럼... 그럼..." 레인보우 대쉬는 공중에 떠서 계속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씹어대더니, 소리지르듯 말했다. "그러면 당장 튀어나가서 데려와야겠군. 너처럼 똑똑하고 마법 잘 쓰는 녀석이면... 그 마력장 연결인가 뭔가 하는 거 다시 이을 수 있는 거지, 그렇지?"
"그게..."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꼼지락대다가 말했다. "그렇게 어려운 건 해 본 적이—"
"할 수 있다 이거지?"
"으음, 어! 하지만—"
"그거면 됐어!" 레인보우 대쉬가 딱 잘라 말했다. "넌 박사 양반을 병원으로 데려가! 나는 돌아다니면서 수색조를 꾸려 볼 테니!"
"스파클 양... 대쉬 양..." 트와일라잇이 사내의 몸을 부축해 일으켰다. 후브스 박사가 움찔하더니 말했다. "일을 이렇게 만들어 정말 죄송합—"
"사과는 나중에 해, 선생! 스쿠틀루가 우릴 기다린다고!"
"잠깐... 다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나는 그 한복판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일단 무턱대고 나가서 될 일이 아니에요! 그... 확실하진 않지만 꼬마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있어요!"
셋은 깜짝 놀라 펄쩍 뛰며 나를 쳐다보았다.
"저기... 누구신지...?"
"어디 계셨던 거죠?"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이런 막장 상황에서도 내 존재가 망각될 수 있다니 놀랍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게... 그냥... 저기..."
"처음부터 지금까지 다 보고 있었던 거에요?"
나는 짐짓 짜증을 내며 발을 굴렀다. "지금 그게 문제에요?! 진짜?" 나는 후브스 박사를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 기계는 빛 계통 마법을 기초로 만든 마력 주입 주문으로 작동하는 거죠?"
"어떻게..." 사내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떻게 아셨습—"
"맞아요 틀려요? 그것만 말해요."
"맞아요." 트와일라잇이 경계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빛 마법을 집중시켜서 크리스털에 마력을 주입하면, 크리스털은 마력을 빨아들여 기계로 전달하지요. 기계 안에 장치한 룬 챔버로 마력이 공급되면 미리 설계해 놓은 대로 순간이동 마법이 발생하고요."
"그래, 빛 마법에 기반했다 이거죠..." 나는 생각에 잠겨 턱을 문질렀다. 무엇인가 머리에 떠오르자 숨이 막힐 듯 벅차올랐다. "조명 마법을 쓰면 기계가 발생시킨 공간이동 궤적을 따라갈 수 있을 거에요!"
"저..." 트와일라잇은 덜덜 떠는 레인보우 대쉬와 다친 박사를 돌아보았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 분명했다. "조명 마법은 안 써 본 지 한참이나 지났어요. 쓸 수 있더라도..."
트와일라잇이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내 머리는 생각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저 레인보우 대쉬조차 감탄할 만한 곡예비행으로 나타날 게 분명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나는 비곡을 연주할 때마다 들어가는 어두운 토굴 속, 머리 위에 매달린 등잔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생각했다. 금지된 곡의 손아귀에 스스로를 밀어 넣을 때마다 나는 시커먼 땅 속이 나를 둘러싸고 꿈틀거리는 듯한 상상에 젖어들었다. 빛과 그림자가 뒤엉켜 눈앞에서 춤추는 환각 가운데에서, 번쩍 하고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건 괜찮아요!" 나는 씩 웃어 보이고는 급히 복도로 내달렸다. 실험을 구경하러 도서관에 숨어들었을 때 가방을 거기 내려두었던 것이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가방 깊숙한 곳을 뒤적거려 리라를 꺼냈다. "빛을 꺼뜨리고 어둠을 불러오는 곡 하나를 알고 있으니까 그걸로—"
한기가 몸 깊숙한 곳까지 침범하며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순간 몸이 비틀거렸다.
"어... 여러분?"
나는 돌아섰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트와일라잇 스파클과 후브스 박사는 벌써 절룩이는 걸음으로 저만치 멀어져 있었고, 깨진 창문 밖으로 레인보우 대쉬가 보이는 페가수스마다 큰 소리로 불러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일이 어떻게 되든지 그 마지막에 나는 항상 혼자였다. 하지만 스쿠틀루는? 나는 그 때 그 어떤 것보다도 스쿠틀루를 찾고 싶었다. 운명에서 뛰쳐나갈 수 없는 자가 나 하나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나는 리라를 쳐다보았다. 발끝에 닿는 황금색 울림통과 팽팽히 매인 현은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그 짓처럼 차가웠다. 쓰레기로 뒤덮인 도서관 한가운데서 그러고 있자니, 발가벗겨진 듯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땅을 파고 들어가 만들어 놓은 지하실의 찬란한 내부와, 거기서 나를 기다리는 어둠은 이미 나와 한 몸이었고, 그걸 새삼스레 깨닫는 일은 놀라웠다. 뭐가 어쨌든지, 나는 부서진 큐브 위로 걸음을 옮겨 리라를 들고 그 자리에 섰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혹시...
그냥 해보는 생각이지만... 내 머릿속에 비곡이 떠오르는 데 뭔가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짊어진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는 더없이 다행스러운 구원일 수도 있었으니까. 내게 주어진 음악은 어느 지점을 넘기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루나 공주께서 남긴 악곡들은 이제는 흐릿해져 가는 세월을 뛰어넘어 순수한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는 또한 내 발굽이 입혀 주는 화음을 입고 새로이 나타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잊혀진 곡들의 사용인으로서 의무를 떠맡은 셈이다. 그러면 고되기만 하고 득은 없는 일을 더 해야 할까? 아무도 모르게 저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책임도 맡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용감한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똑똑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한다. 루나 공주님이 남긴 곡은 아주 오래 전이나마 나는 알 수 없을 이유로 연주되었다. 악곡의 목적이 무엇일지는 몰라도, 그게 악곡의 기능을 본래 의도와 다르게 활용하지 말라는 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영리하고 창의적인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유령으로나마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영웅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훌륭한 악사 노릇도 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를 영영 용서하지 못할 게다.
부서진 도서관 한가운데에 서서 정신을 집중하고 난 뒤, 나는 뿔을 밝혀 항아비곡의 첫 번째 곡을 퉁기기 시작했다. 그림자 전주곡의 귀에 거슬리는 선율이 느릿하게 도서관을 채웠다. 사실, 그림자 전주곡 전체를 다 연주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 몇 마디만 연주하면 그만이었으므로 거기서 더 이상 연주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현을 퉁긴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그림자 전주곡의 부작용이 도래해 무자비한 손길을 뻗어왔다. 머릿속에서 편집증적 망상이 끓어오르며 내 심신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나는 몸을 떨었다. 항아비곡을 백주대낮에 연주해 본 일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그 때 내 주변에 널린 쓰레기와 잔해들이 다시 꿈틀거리며 되살아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장 두 눈을 감아야만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방에서 깜박이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온갖 끔찍한 환영들을 마주했다. 그 끝에 한 가닥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 전주곡의 으스스한 음색이 드리운 꿈틀대는 그림자와 춤추는 어둠 사이로, 내가 찾던 것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러 개의 빛줄기가 내 앞에서 갈라져 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필멸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스펙트럼이 나타난 것이다. 빛줄기들은 갈라지며 사방으로 뻗어나갔고, 이제는 작동을 멈춘 공간이동기의 핵에서부터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나가는 빛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방금 인위적으로 발생한 것인 만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리라 퉁기기를 그만두고 빛줄기를 향해 다가가 그것을 들이마셔 보았다. 텁텁한 바닐라 맛이 났다. 이 끔찍한 맛은 도서관 밖으로 뻗어 있었다. 나는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빛을 따라 걷다가, 항아비곡을 다 연주하지 않고 중간에 끊은 대가로 밀려드는 끔찍한 추위에 균형을 잃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
엄습하는 공포에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꽃과 잔디가 저마다 뱀이 되어 나를 향해 끝없이 꾸물거리며 다가오는 듯한 환각이 나를 덮쳤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빛줄기는 마을 변두리와 스윗 애플 에이커를 넘어 산안개 낀 숲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3마일 이내 거리였다. 나는 환희했다.
스쿠틀루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 것이다.
나는 행복에 겨워 우는 듯한 소리로 숨을 뱉어냈다. 한없는 추위와 곤두선 신경 때문에 나는 몹시 피곤했다. 차라리 거기서 아주 쓰러졌다 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포니빌 오후의 정경이 끊임없이 모여드는 페가수스들로 시끌시끌해지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속삭이며 중얼대는 목소리와 질주하는 발굽 소리가 온 골목에서 울려퍼졌다. 역설적이게도, 공포에 빠진 포니빌은 그만큼 생동감이 넘쳤다. 마을 어린이 하나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려 사라졌고, 지금 당장 찾아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몸을 떨면서 겨우 네 다리로 일어섰다. "으으으으... 트와이... 트, 트와일라잇..." 나는 말했다. 나는 발을 질질 끌며 힘없는 걸음으로 걸었다. 그림자 전주곡이 내게 남긴 충격은 공간이동기 폭발보다도 더한 것이었다. 나는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걸었다. 나는 트와일라잇이 박사를 데려갔을 만한 병원을 머릿속으로 대어 보았다. 포니빌 시립병원 정문 앞에 다다랐을 때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모른다. 나는 거기에서 트와일라잇을 보았다.
트와일라잇은 혼자가 아니었다. 레드하트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후브스 박사를 돌보고 있었고, 트와일라잇은 몇 년은 삭아 보이는 시장에게 쉴새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 한가운데, 낯익은 사람이 하나 끼어 있었다.
"제발 부탁이에요! 우리 애 찾아 줘요!" 밀키 화이트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캐럿 탑과 콜게이트가 우는 여자의 양옆에 붙어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그 가엾은 것이 왜 다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느냐고요! 그때껏 있었던 일은 다 잊고 새 시작 하자고 포니빌에 데려온 건데!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약속해요." 트와일라잇이 밀키 화이트의 어깨에 두 발굽을 포개고 말했다. 트와일라잇은 내심 품고 있던 절망감을 겉으로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소꿉친구인 나는 알 수 있었다. "스쿠틀루 찾을 수 있어요! 레인보우 대쉬는 벌써 시작했고요! 그러니 일단 진정하시고 수색이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
"북서쪽으로 가세요!" 나는 기침하며 겨우 말을 토해냈다. 말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에 짓눌려 사라졌다. 내가 뒷다리로 버티고 일어서던 때, 캐러멜의 조용한 숨결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스쿠틀루는 북서쪽에 있어요! 다른 데 뒤져 보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트와일라잇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째려보았다. "그쪽이... 그쪽이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공간이동기는 빛 마법으로 작동하잖아요, 아니에요?"
"어... 네." 트와일라잇이 이상하다는 눈길을 던졌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그쪽은 또 누구고요? 저희가 한가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
"그래, 그러니까 지금 스쿠틀루가 어디 있는지 얘기해 주려고 하잖아!" 내가 소리치자 주변에서 나를 흘겨보는 시선이 두 배, 세 배로 따가워졌다. "공간이동기가 스쿠틀루를 어디로 공간이동시켰는지 알아내려고 빛 마법의 궤적을 드러내는 마법을 썼어! 그러니까 당장 북동쪽으로 이, 삼 마일 떨어진 쪽으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보내라고!"
"트와일라잇!" 레인보우 대쉬가 양 옆에 클라우드키커Cloudkicker와 레인드롭스Raindrops를 데리고 날아 내려왔다. "페가수스 오십 명 모아 왔어! 캔디 메인Candy Mane이랑 블로섬포스Blossomforth는 사람 더 모아 오라고 보냈고!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트와일라잇이 급히 몸을 돌려 대답했다. "근처를 수색하는 데 페가수스처럼 귀한 자원을 낭비해선 안 돼. 공간이동기의 최대 전송 경계부터 시작해서 마을 쪽으로 오면서 찾아봐. 어스 포니들과 유니콘은 마을 근처부터 찾아볼게."
"그렇게 해요!" 시장님이 말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셋씩 조를 짜서 각자 할당받은 마을 구역을 찾아보세요! 캐럿 탑은 지금 즉시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를 찾아가세요. 그 둘과 상의해서 다른 농부 분들과 경작지 근처 숲을 수색하도록 해요!"
"야!" 나는 저희끼리 모여 흩어지는 인파 한가운데 휩싸인 채, 다시 휘몰아치는 한기에 몸을 떨며 말했다. "내 말 안 들려?! 스쿠틀루가 어디로 갔는지 얘기했잖아!"
"아으으..." 트와일라잇이 이마를 문질렀다. 나를 보는 트와일라잇의 눈은 속이 뒤집히는 메스꺼움과 치솟는 욕지기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어? 이게 무슨 소리...누가 소리지르는 건가. 이거—"
"내 말 들어!" 나는 펄쩍펄쩍 뛰며 가쁜 숨으로 외쳤다. "스쿠틀루 북서쪽으로 갔다고!"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상황은 이미 나와는 철저히 분리되어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진정하고, 여기 서서 똑바로 들으라고! 스쿠틀루 어디 있는지 안다니까—"
"거긴 또 왜 얼타고 앉았어?!" 레인보우 대쉬가 소리쳤다. 그녀는 우리 머리 위에서 27피트 정도 높은 위치에 떠 있었다. 내가 떠든 말은 그녀와 나 사이에 은하수가 네 개는 있었던 양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장 찾아서 이리로 데려와야 한다니까! 그래야 트와일라잇이, 뭐 가능할진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라도 할 거 아냐!"
"대쉬 양, 서둘러야 합니다!" 후브스 박사가 소리쳤다. 그는 레드하트가 상처를 살짝 건드리자 몸을 움찔했다. "스쿠틀루의 목숨이 정말로 경각에 달려 있어요!"
"그건...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밀키 화이트가 흐느꼈다.
"진정들 좀 하라니까! 제발 좀!" 나는 소리질렀다. "어디 있는지 안다니—"
"지금 같잖은 장난질이나 할 때로 보여." 캐럿 탑이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같이 찾을 거 아니면—"
"스쿠틀루를 찾아낼 수 있게 마법을 썼다고 방금 얘기—"
"나는 그럼 스쿠틀루를 치유할 준비를 해야겠네." 트와일라잇이 머리를 문지르며 절룩이는 걸음으로 후브스 박사 쪽으로 다가섰다. "여기 도착할 때까지 마법을 쓸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마력장 연결을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전원 산개!" 레인보우 대쉬가 외쳤다. 그녀는 같이 있던 동료 페가수스들과 찢어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며 소리쳤다. "반시계 방향으로 찾는다!"
"그럼 저는 애플 가 사람들을 만나볼게요!" 캐럿 탑도 멀리 뛰어나갔다.
"안 돼—안 돼, 멈춰! 멈추라고!" 나는 뭐라도 말하려 했지만, 호흡이 가빠지면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내 앞을 지나쳐 갔다. 다급해진 그들의 몸은 그 절박감으로 나를 흐트러진 실타래처럼 여기저기 밀쳐대며 지나갔다. 다른 날이었다면,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한없이 냉혹한 저들의 기억상실을 겸허히 인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는 몸을 떨면서 나 자신을 꼭 껴안은 채, 서서히 저물어가는 태양 아래 무익한 수색을 떠나는 자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쩌면 그 가엾은 것이 살아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노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무기력하게 내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가방은 아무렇게나 벗어 대충 던져두었다. 나는 불가 앞 마루바닥에 쓰러졌다.
불을 피우지는 않았다.
나는 눈앞에 놓인 건조한 땔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아래로 재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제 죽어 생기를 모두 잃은 부박한 땔감이 타고 남긴 잔해였다. 나는 저주를 짊어지고 맞이한 첫 번째 하루와 다를 바 없는 나날들을 계속 살아오고 있었다.
귀가 따가웠다. 나름대로 잔뼈가 굵은 연주가 노릇을 하다 보니,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고함 소리가 절로 귀에 들어왔다. 그들의 수색은 포니빌 전체에 대한 것이었다. 수십이 훑고 지나간 자리를 다시 수십이 훑으며 꽤 넓은 범위를 뒤져댔지만, 장님이 더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스쿠틀루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스쿠틀루가 어떤 녀석이든, 나보다는 형편이 낫다는 것도 .
포니빌 중심가에서 2마일, 어쩌면 3마일 떨어진 자리. 저주를 받은 이후 그렇게 멀리까지 나가 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트와일라잇이 직접 나를 순간이동시켜 주었던 때도 그렇게 멀리 나가지는 않았었다. 지금까지 내가 포니빌에서 가장 멀리 나가 본 것이라고 해도 에버프리 숲 한가운데 있는 제코라의 집에 가 본 것뿐이었고, 그나마도 많이 쳐 봐야 1.5마일에 불과했다. 그 귀한 음석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면, 나는 다시 사지에 감각이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몸을 덥히고 있어야 했다.
밖에서 페가수스 하나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몸을 움찔하며 두 눈을 감고, 두 앞다리로 내 갈기를 쓸었다.
나는 캔틀롯 거리에서도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내 잘못으로 내 몸이 상한 것은 단 한 번, 어린애였을 때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반려묘를 따라가다가 발목을 삔 것밖에 없었다. 나는 보름 정도 깁스를 했고, 그것뿐이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최대한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자랐고, 나는 자라는 세월을 책과 악보로 둘러쌓인 채 알리콘 공주께서 가호하시는 화려한 대학 생활로 마무리했다. 나는 고통이라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내가 고난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는가? 내가 짊어진 저주라는 것도 한없이 차갑고 두려운 것이지만 낯선 이를 기꺼이 돕고, 즐거이 낯선 자와 말을 섞으며 심지어 안아주기까지 하는 내 친구들의 발그레한 얼굴의 탈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영웅이 될 그릇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나는 참을성이 강한 것뿐이지 용감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나는 물리력을 제공해 줄 단단한 근육 1인치도, 가슴 속에 깊이 잠든 불굴의 용기도 갖고 있지 않다.
그 때 나는 내 몸 덥히자고 난로에 불을 피우는 것이 너무나 죄스러워 몸을 떨었다. 내가 가진 것은 지식과 기억이었다. 나는 스쿠틀루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다른 자들은 알지 못하는 곳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날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다른 하나는 아마 평생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알았다.
이것도 나이트메어 문이 나를 점찍은 이유라면, 나는 그 여자를 증오하는 만큼 그 뜻도 존중할 생각이었다.
나는 내 이성이 반항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래리티가 짜 준 스웨터를 껴입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코트였다. 아홉 달 전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던 것을 주워 온 이후 그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거의 입지 않은 옷이었다. 스카프를 두르고 양말을 신고 스타킹을 신었다. 양모로 짠 모자와 망토를 둘러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듯, 나는 본능적으로 가방을 가져다가 담요를 마구 쑤셔 넣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채비를 마치고 오두막 문을 나섰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 없이 죽음에 직면하는 자는 없기 마련이다. 모직 장갑을 두른 전차처럼 차려입은 나는 내게 허락된 몇 방울의 땀을 흘리며 북서쪽으로 내달렸다. 완전히 꺼져 가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길 잃은 페가수스들을 비추어 그림자가 늘어졌다.
나는 내가 들어선 숲이 차라리 에버프리이기를 바랐다.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간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숲은 한없이 울퉁불퉁한 바닥을 드러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걸릴 지경이었다. 몸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여러 겹으로 단단히 싸매 입은 옷 때문에 사지를 마음대로 놀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불을 켜켜이 쌓아 만든 바다 한가운데를 헤치며 걷는 기분이었다. 네 다리를 마음대로 쓰고 싶다는 욕망은 간절했으나, 얇은 천 하나라도 벗을 수는 없었다. 그때 나는 가볍게 몸을 떠는 정도였지만, 앞으로 한 시간 안에 극지대를 걷는 듯한 한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것이 너무나 뻔했다.
걸어 들어간 지 이십 분이 지났을 때는 하지에 감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한기 때문에 감각이 사라졌구나 싶었다. 그러나 수많은 돌멩이와 조약돌을 그대로 밟고 지나오느라 몸이 지친 것뿐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사면이 목적지보다 한참이나 더 북쪽으로 올라간 후에야 시작될 거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산자락은 이미 내가 내딛고 있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몸을 곧추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조깅을 몇 번 나가 본 적은 있지만, 그 때는 평평한 평지였고 지금은 울퉁불퉁한 산길이었다.
해가 지고 있는 것도 좋지 않았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빛의 궤적은 이미 그 힘을 많이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쪽을 향하여 걸어갈수록 숲이 더더욱 빽빽해져만 갔다. 스쿠틀루를 찾는 데만 급급했던 나머지, 찾으러 가다가 중간에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올바른 방향을 찾으려면 그 때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한없는 한기를 몸으로 뚫고 나가기 전에 해야만 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걸터앉아 가방을 열어 리라를 꺼냈다. 염동력을 집중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난장판이 된 도서관 한가운데서 그림자 전주곡을 연주하기 전 준비할 때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리라가 진동하며 비곡의 첫 마디를 일으키자 몸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빛의 궤적이 다시 나타나며 스쿠틀루가 공간이동한 자리를 가리켰다. 빛은 한기로 얼어붙은 벼락과도 같이 산 높은 곳을 향하여 뻗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림자 전주곡이 불러일으키는 편집증적 망상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랬으므로, 비곡 연주의 부작용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게 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꼈다.
더 시간 낭비할 것도 없이 곧장 리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빛줄기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백금빛 불꽃에서 피어나는 불타는 깃털처럼 내 머리 위에서 빛을 뿌렸다. 더 빽빽해진 숲을 향해 뿜어진 숨결이 입김으로 응어리졌다. 궤적이 갈수록 밝게 보이고 있었다. 밤이 내려앉는다는 뜻이었다. 머리 위에 페가수스들이 지나가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계속 타고 올라가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한파가 덮쳐왔다. 이제 일 마일 정도 온 모양이었다. 입을 열 때마다 그 안에 있는 침까지 얼어붙는 듯한 냉기가 느껴졌고, 그것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았다. 껴입고 온 옷들은 작은 집과 같은 무게로 내 몸을 내리눌렀다. 거기서 스카프 한 장이라도 풀어 놓는다면 그 자리에서 얼어 죽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게다가 잠시 멈추어 다시 생각해 본다는 선택도 스쿠틀루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현재 상황에서 있을 수 없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얼음 바늘과 침이 온몸에 꽂히는 듯한 고통을 견디면서 다른 사람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일은 어려웠다.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지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걸음이 뻔뻔한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계속해서 밀고 올라갔다.
두 번째 한파가 들이닥쳤다. 더 강한 냉기에 부딪친다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눈보라의 벽에 부딪쳤다는 것이 맞겠다. 이제는 내가 걷고 있다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걸음은 차라리 부슬부슬한 서리를 밟고 지나가며 그 흔적을 남기는 과정과도 같았다. 걷던 중에 두 눈이 찔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져서 보니, 눈물이 얼어붙어 내 눈을 찌르고 있었다. 가냘픈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스쿠틀루가 근처에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 울음은 나의 울음이었다. 나는 그 때 내가 공간이동기가 내뿜은 주문에 맞았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생각했다. 앞으로 내딛는 내 걸음조차 나와는 다른 존재의 몸에 실려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고통이 무엇인지 배웠다. 악몽 같은 고통, 사람의 몸으로 감내할 수 없는 진짜 고통은 사실 꿈에서나 나타나 우리가 자고 깨어 일어난 뒤 멍청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어야 했다.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을 따끔하게 혼내 그것이 본래 깃들어 있어야 할 몸으로 되돌려보낼 수 있는, 죽음을 피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고통 말이다. 그런 고통을 짊어지고서도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망각의 심연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는 무엇이며, 이 걸음은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운이 좋아 제때 스쿠틀루를 찾아낸다고 치자. 꼬마의 목숨을 천운에 맡긴다 치더라도 트와일라잇이 조치를 취할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하게 꼬마를 데리고 내려갈 가능성이 있기는 한가?
문제의 본질은, 내가 여기서 죽거나 살거나 결국 나는 내 이름을 새긴 묘비조차 얻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하지만 스쿠틀루는...
아직 이 세상에는 스쿠틀루를 위해 떨어질 눈물이 남아 있었다. 나를 위한 울음보다 한없이 따뜻할 것도 자명했다. 나는 산비탈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나는 울부짖고 땅을 할퀴며 내 몸을 그 위로 떠밀었다. 끔찍하게 애쓴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결과는 소행성에 아기 고양이가 남긴 발톱 자국만큼도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잿빛 갈기처럼 수목들이 사방에 늘어섰다. 나는 펄떡이는 혈관을 찾아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벼룩이었다. 그때껏 책으로나 읽었던, 다분히 시적으로 표현되고 각색된 가지각색의 두려움으로 치장한 불모의 푸른 얼음 위를 나는 미끄러지며 달려갔다. 얼음이 쾅 하고 무너졌고, 나는 그 충격으로 눈앞에 별이 오가는 듯한 환각을 보았다.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세 시간 동안의 산행으로 마비된 의식을 무엇인가 흔들어 깨운 것이다.
"으으으으—이런 썅!" 나는 염한 시신처럼 온몸을 꽁꽁 싸맨 채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나는 관짝이 아니라, 바위덩어리가 있는 숲 속에 있었다. 살펴보니 산마루였다. 멀리 남동쪽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포니빌 외곽 쪽으로 태양이 피처럼 붉은 석양을 흘리며 기울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내 시신을 노리는 새들이 머리 위에서 짖어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다시 들어 보니, 새가 우짖는 소리가 아니라, 뚝뚝 끊기며 흘러나오는 흐느낌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고, 그 자리에 아이가 있었다.
스쿠틀루는 마비된 몸으로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꼬리가 죽은 나무에서 용렬히 뻗어나온 가지에 걸린 것이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우는 줄 알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아이 쪽으로 다가갔다. 세상이 희미해졌다가도 또렷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쓰러졌다.
숨이 막혔다. 내 몸이 내 몸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 때, 나는 주변에 박혀 있던 돌덩이보다도 생기가 없었다. 흐릿한 노을에 내 발굽을 비추어 보는 것조차 두려웠다. 혹시나 민트색 솜털 대신 새파랗게 질려 동상을 입고 괴사한 살점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일어서 보려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뒹구는 것뿐이었다. 까칠한 돌멩이에 몸이 찔리고 긁히는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아직 내 몸뚱이가 고통에 반응하기는 한다는 것에 나는 기괴한 황홀감을 느꼈다. 나는 몸을 따라 흐르는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일어서서, 감각이 없는 두 앞다리를 머리 위로 들어 스쿠틀루를 잡아 내리려 흔들어댔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스쿠틀루는 아무리 못해도 2피트는 더 높이 매달려 있었다. 그랬으니 닿을 턱이 없었다. 성인을 구조하는 거였다면 아마 온갖 쌍욕을 퍼부어댔을 것이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내 어린 날에 들었던 한 곡조를 떠올렸다. 그리고 거기서 끄집어낸 마력을 뿔로 밀어올렸다. 뿔에서 밝은 녹색 스파크가 튀며 염동력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다행히 스쿠틀루가 걸려 있던 나뭇가지가 염동력에 뜯겨나가 떨어졌다. 스쿠틀루는 주황색 혜성처럼 내 몸 위로 떨어졌다. 나는 꼬마가 가능한 아프지 않도록 내 몸뚱이로 아이의 육신을 받아냈다.
"우욱!" 아이의 몸에 짓눌린 와중에도 내 숨에서는 입김이 피어났다. 스쿠틀루를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가 밤의 그림자 속으로 붙잡혀 사라졌다. 나는 내가 뭐에라도 취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으으으으... 여긴 어디...?" 스쿠틀루가 경련하며 사지를 마구 움직였다. 꼬마는 혼란과 구역질의 그림자에 감싸여 태어난 신생아와 같았다. 꼬마는 미친 듯 눈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 누, 누구야...?"
"여, 여기서 내보내 줄 급, 급행열차지." 무엇인지 모를 목소리가 대답했다. 한기에 무너진 말소리가 더듬거려서, 나는 두려웠다.
"나... 나..." 스쿠틀루가 흐느껴 울며 헛구역질을 했다. 아이는 말을 더듬었다. "모, 몸에... 감각이... 없어..."
"나, 나, 나도 마찬가지야, 어, 어린 친구." 꼬마를 들어 등에 짊어지자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보였다. 나는 한없이 두려웠다. 산자락을 따라 굴러 떨어질 것을 예비하기라도 하는 양 눈이 헛것을 본 것이었다. 이윽고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꽈, 꽉 붙들고 있어. 뭔 짓을 해도 사, 상관 없으니까 노, 놓지만 마. 이, 이, 이, 이제 지, 집에 가자."
"날개에도..." 꼬마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보다도 차가운 무언가가 내 등을 찔러댔다. 스쿠틀루가 흘리는 눈물 방울은 내게는 칼날의 바다와도 같았다. "나... 날개도 감각이 없어..."
내가 조금만 더 강인한 사람이었다면,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그래. 알아, 스쿠틀루."
"그래도... 그래도 난—"
"이제 지, 집에 가자.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것—"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새까만 땅이 내 얼굴을 덮쳤다. "악!"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조약돌이 가득한 땅바닥에 얼굴을 부딪쳤다. 밤과 하늘의 경계가 무너졌다. 등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 스쿠틀루!"
나는 숨이 멎을 듯 놀라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주황색 그림자가 보일 때까지 두리번거렸다. 나는 스쿠틀루가 더 다치기 전에 두 앞다리를 뻗어 안아들었다. 그 때는 그것 하나만이 중요했다. 안도의 한숨이 몸 밖으로 밀려 나오는 것과 동시에, 나는 균형을 잃고 나뭇잎과 잔가지가 저희끼리 엉켜 쌓인 더미 위로 적어도 5피트를 미끄러져 굴러 떨어졌다.
"으으윽!" 몸뚱이를 타고 고통이 퍼져나갔다. 몇 초 뒤, 나는 두 앞다리를 풀어 스쿠틀루가 잘 안겨 있는지 확인했다. "뭐, 뭐라도 말해 봐."
꼬마는 침을 삼키며 나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 "아야야..."
"아직 괜찮네." 나는 스쿠틀루를 다시 들쳐올렸다. 그리고 나 자신의 몸도 일으켜 세웠다. 가방에 넣어 온 담요 한 장을 꺼내 덮어 줄까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도 진땀을 저렇게 흘리는데 담요를 씌우는 건 옳지 않았다. 그날 밤은 한없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워서, 내가 이퀘스트리아 역사상 최악의 한기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란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나는 굴러 떨어지는 사탕처럼 산비탈을 타고 내려갔다. 스쿠틀루의 울음이 귓가에 울렸다. "어디든... 일단 어디로든... 어디라도 좋으니 일단..."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좌우를 살폈다. 정확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해가 진 이상 어디가 동쪽이고 서쪽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림자 전주곡을 한 번 더 연주할 기력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기력을 거기에 쓰느니 차라리 불을 피우는 편이 지나던 페가수스의 이목을 끌기에 더 적합했다. "어디라도 좋으니 사람들이 우릴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해... 그러면 트와일라잇에게 데려다 줄 테니... 그러면..."
"이제... 너무 지쳤어..." 스쿠틀루가 그렇게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벼락처럼 두 귀에 꽂혔다. "그냥... 조용한 데서 자고 싶어—"
"야! 야!" 나는 외치고 소리질렀다. 악몽 같은 한기 속에서 스쿠틀루의 두 날개가 떨리는 육신 위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모두 어둠의 세계에 갇힌 죄수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오직 하나만이 거기서 풀려날 자격이 있었다. "정신 차려, 스쿠틀루! 정신 붙들고 있어!"
"못 해... 그냥... 그냥 좀 자고—"
"뭐라도 얘기해! 그래, 이참에 네 가족—" 나는 그 때 내 비틀대는 걸음만큼이나 엇나간 말을 했음을 깨닫고 곧장 입을 닫았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내 얼굴을 향해 몰려오며 살을 에는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향해 소리쳤다. "네가 누구처럼 되고 싶은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얘기나 좀 듣자!"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사지의 힘이 빠져나갔다. 나는 그 때 절대영도를 체험한 것 같다. 내 심장 박동도 몇 마일은 떨어진 듯 희미하게 느껴졌다. "가능하면 그 이유도 같이 얘기해 봐!"
"아무것도... 세상 두려운 게 없으니까..." 스쿠틀루는 흐느끼는 사이에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기대어 갈 수 있는 마지막 온기였다. 내가 껴입은 옷들은 고열로 식은땀을 흘리는 스쿠틀루와 나 사이에서 휴지처럼 부박한 종이처럼 느껴졌다. "뭐든지 자기 스스로 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하고..."
나는 이쯤에서 몸을 휘청거리고 비틀거리며 절뚝거렸다. 다친 무릎을 질질 끌면서도, 떨리는 시선을 우리 바로 앞에 놓인 희뿌연 잿빛으로 보이는 공터에 겨눈 채 계속해서 몸을 떠밀었다. 저기에만 다다르면, 불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나 자신을 축축한 산길의 흙 속에 파묻다시피 엎드려 애걸하듯, 스쿠틀루가 제발 계속 말해주길 바라며 말했다. "다른 건?"
"요, 용감해." 스쿠틀루는 내 몸에 마지막으로 감각이 남아 있던 지점을 파고들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광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술 취한 사람의 환각처럼, 꼬마의 첫 번째 비행을 보았다. "그리고... 그리고 날 챙겨 줘." 아이는 한 번 흑, 울고 나서 숨을 들이마시더니, 훌쩍이며 말했다. "혼자 있기 싫어..."
"혼자..." 나는 숨을 헐떡이며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앞으로 잡아뺐지만 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한기가 등골까지 기어 올라왔다. 공터는 한없이 멀게만 보였고, 내 목소리도 그만큼 멀게만 들려왔다. "넌 외롭지 않아..." 나는 절박하게 망각의 표면을 긁어대며, 혹시 기억될 수 있을지도 모를 상처를 그 위에 남기려 용쓰며 말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거고..." 나는 젖은 흙에 얼굴을 처박으며 쓰러졌다.
두 눈에 보이는 빛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부모님 생각은 나지 않았다. 트와일라잇 스파클도, 문댄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벽난로도, 애플잭의 느긋한 말투도, 래리티가 짜 준 멋진 스웨터도 생각나지 않았다. 구체화하지 못했거나, 내가 찾아내지 못한 루나 공주님의 비곡들과 구체화되지 않았던 악곡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닝 듀Morning Dew의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오직 스쿠틀루만 생각했다. 그 어린것의 날개와, 저들의 품이 아니라 내 품에서 죽음으로서 그 누구도 임종을 지켜주지 못할 아이의 운명을 생각했다.
나는 영웅으로 죽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무엇으로 죽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따뜻해졌다. 나는 영원한 밤의 품에 안기며, 내 마지막을 다시 생각했다.
나는 온기 대신 두 앞다리에서 전해지는 공허함에 깨어났다.
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내 바로 옆에서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너무나 가까워서, 혀를 뻗으면 깜박이며 튀는 불똥 맛도 볼 수 있을 듯싶었다. 나는 그대로 혀를 뻗었고, 그대로 혀를 데었다. 나는 그 때 내가 확실히 살아 있음을 자각했다.
나는 사지를 퍼덕이며 일어났다. 그 다음은 일어나 앉으려고 꿈틀거렸다. 몸에 아직 한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되살아난 시체처럼 미친 듯 덜덜 떨었다. 나는 작은 모닥불 옆에 쪼그리고 앉은 창백한 페가수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두 앞다리로 잡은 부싯돌을 부딪치며 불을 피우고 있었다.
"붙어라... 붙어라... 그렇지.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
"클라우드키커Cloudkicker!" 낯익고, 거친 목소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너 씨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앉았어?! 지금이 마시멜로나 구워 먹을 때야!"
"레인보우 대쉬... 그래도!" 그 페가수스는 나를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이 유니콘이 얼어 죽을 지경—"
"너는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뭔 유니콘?! 애 찾았어!"
"그게... 아니... 안 보여?"
"지금 당장 신경 쓸 유니콘은 트와일라잇 하나밖에 없어! 걔가 지금 얼마나 기다리고 있겠냐! 뻘짓 그만하고 당장 움직여!"
클라우드키커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두 눈 위로 창백한 빛이 어른거렸다. 달이 떴다 싶었다. 그녀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뒷걸음질쳐 물러났다. "아... 그, 그러지 뭐. 내가... 뭔 생각을 한 거래?" 나는 클라우드키커의 그림자가 나를 지나쳐 가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깃털을 몇 개 떨어뜨렸다.
클라우드키커가 날아간 뒤, 몇 야드 떨어진 곳에 두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레인보우 대쉬가 쪼그려 앉아 덜덜 떠는 스쿠틀루의 몸을 껴안고 있었다.
"쉬이이잇... 이제 괜찮아, 꼬맹이. 내 말 들리지?"
"레, 레인보우 대쉬?!" 스쿠틀루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레인보우 대쉬! 날 찾았구나! 언니가 와 줄 거라 믿고 있었어!"
"진정해, 꼬맹아. 아직 숲도 못 벗어났어. 일단 트와일라잇에게 가자. 그 녀석이 널 고쳐 줄 거야."
"레인보우 대쉬..." 꼬마가 울며 말했다. "너, 너무 무서웠어..."
"그래, 뭐 하늘이 도왔는지 그 등신같은 기계가 널 공터로 옮겨놨더라. 꽉 잡아!" 레인보우 대쉬는 두 앞다리로 스쿠틀루를 안아들고는 새파란 날개를 펼치고 달빛 속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포니빌을 향하여 날아갔다. 내 곁에는 한기와 모닥불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헐떡이는 숨을 내뱉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입으로 가방을 잡아당겨 열었다. 가져온 수많은 담요를 써먹을 구석이 생겼다. 저주가 기억을 지우기 전에 모닥불을 피워 준 클라우드키커가 정말 고마웠다. 나는 불가에 앉아 따뜻한 온기를 쪼였고, 마침내 일어서 앉을 만큼 기력을 회복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토했다.
내가 공터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주변은 흙 대신 돌이 드러나 단단했다. 머리 위에서 달빛이 반짝였으니, 스쿠틀루와 내 모습은 석고판 위에 찍힌 두 개의 검은 점처럼 보였을 것이다. 공중 관측에 아주 약간의 소양만 갖춘 페가수스라도 손쉽게 찾았으리라.
그런데...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분명 공터에 다다르지 못하고 숲 속에 쓰러졌는데.
그럼... 여기까진 대체 어떻게 온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경사진 숲의 가장자리쯤을 쳐다보자, 낙엽과 부서진 흙으로 이루어진 흔적이 한 줄을 이루며 지금 내가 모닥불 옆에 앉은 자리로 이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발굽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았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날 끌고 여기까지 왔구나.
스쿠틀루...
나는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내 입술이 갈라지며 미소를 지었다. 아팠지만 기분이 좋았다. 나는 담요로 온몸을 감쌌다. 내 오두막집도, 난롯가도 아니었다. 마을에서 일 마일은 족히 떨어져 있었으므로 추위는 여전히 내 주위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이만큼이나 편안했던 적은 없었다.
"아르카니움 판이 문제였습니다." 후브스 박사가 말했다. 며칠이 지난 뒤, 박사는 트와일라잇 스파클과 함께 포니빌 중심가를 돌아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공간이동기와 시험체 사이 완충 장치로 구상해서 설치했었지요. 그러나 아르카니움이 거울처럼 기능하면서 큐브 쪽으로 마나를 되돌려 보낼 거라는 건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인공 마력장의 가장 바깥쪽이 손상되었던 거군요." 트와일라잇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다친 사내의 걸음에 맞추어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앞서 여러 번 실험을 거치긴 했지만, 멀쩡했던 건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던 거고요. 반사된 마력에 계속 노출되면서 안쪽에서부터 손상되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제 잘못 때문에 소중한 어린이를 잃을 뻔했습니다." 사내가 한숨지으며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아직은 인공 마력장을 이용한 공간이동을 주창하기에 적합한 때가 아닌가 봅니다. 과학기술협의위원회가 제 실험실 장비를 몰수하지 않을 것 같지는 않으니, 당분간 이 실험은 어디에 넣어두고 잊고 있어야 할 것 같군요."
"박사님, 실수라면 저도 했는걸요." 그녀는 빙긋 웃으며 사내를 쿡쿡 찔렀다. "스쿠틀루를 찾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위원회 쪽에서 박사님 실험 기구를 몰수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 해도 박사님이 이룩한 성과를 두고 입 닫고 있지 않을 거에요."
그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셀레스티아 공주께서 스파클 양을 수제자로 받아들이신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마치 희망의 샘 같습니다그려."
"히히히... 칙칙한 가설이 아니더라도, 과학자들이 희망을 갖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에요."
둘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고, 그 빈자리를 레인보우 대쉬와 핑키 파이의 목소리가 채웠다.
"그래 클라우드키커랑 같이 산 쪽을 싸그리 훑고 있었지. 그러다가 내가 한 번만 더 찾아보자고 그랬고!" 레인보우 대쉬는 이미 공중에 둥둥 떠서 다분히 극적인 강하 비행 흉내를 내 보이고 있었다. "그래 내가 —슝—하고 날아가서 살피다 보니까 이 몸의 매의 눈에 무엇인가 포착이 되었다 이 말씀이야. 보니까 애가 거기 있어! 불쌍하게도 달달달 떨면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거 있지. 조심스레 안아 올려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 혹시나 한 번 잘못 흔들리거나 홱 꺽기라도 하면 걔 영혼이 몸에서 뜯겨나갈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데. 트와일라잇이 그러드라. 기계가 그랬다고."
"이야, 대시!" 핑키 파이가 팔짝팔짝 뛰며 대답했다. 그녀는 레인보우 대쉬가 들려 주는 장대한 무용담을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었다. "진즉부터 니가 슈퍼-근성가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 그런데 이게 뭐야? 이제 보니 슈퍼-근성-젠틀가이였네!"
"고렇지! 금지옥엽 아기인 양 안고 날아왔다구! 살면서 애 안아본 건 두 번밖에 없지만. 아닌가, 세 번인가. 애플블룸 태우고 스윗 애플 에이커 돌아본 것까지 세면 세 번."
"애플블룸이 애던가?"
"글쎄다, 어린애가 젖 토하는 것처럼 토하긴 하던데!"
"히히히히! 너랑 트와일라잇이 스쿠틀루를 애로 만들지 않아서 다행이야!" 핑키 파이가 폴짝 뛰었다. "아, 죽을 것도 피했지!"
"하... 그래. 진짜 거의 죽을 목숨이었지." 레인보우 대쉬가 날개를 파닥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야 핑키. 내 일이 사람들 구하는 일이잖아. 트와일라잇은 아니지? 슈퍼히어로가 될 기회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구."
"그렇지! 트로피나 감사패 같은 거라도 맞춰 줘야겠다 그럼!"
"이야! 좋은 생각이야. 래리티랑 얘기해 보자구. 진짜로 끝내주는 사람이 칭찬 한 마디 못 들으면 쓰겠어?"
둘이 사라져 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여덟 번째 비곡의 열 개 화음을 퉁겨보며 멜로디를 구성하는 작업을 멈추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왼쪽 발굽을 흔들어 보았다. 그 날부터 사나흘이 지났다. 아직 사지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염동력이라도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원하는 때 내 마음대로 음악을 만질 수 없었다면 아마 진즉에 미쳐 버렸겠지.
사실 이것도 저주 때문이 아니었던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고 차라리 죽어 달콤한 해방을 맛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조장하니까. 곤경을 헤치고 나올 기회를 주지도 않는 주제에 말이다. 아닌가?
나는 오랫 동안 여덟 번째 비곡의 비밀을 풀려 하지 않았다.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것의 반도 무섭지 않다. 항아비곡을 연주할 때면 한없이 무서운 부작용이 일어난다. 하지만 루나 공주님의 잊힌 악곡이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니 어떻겠나? 항아비곡에 담긴 마법은 나를 뺀 만인에게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그것은 저주일 수 있는 것이고, 간덩이를 뻥튀기시켜 항아비곡의 비밀을 찾아내는 작업을 계속 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용기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고.
나는 다시 한숨지었다. 눈가에 주황색 무언가가 비쳤다.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이후로 스쿠틀루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스쿠틀루를 흘긋 보았다. 더 시간 낭비할 것도 없었다. 나는 리라를 가방에 집어넣은 뒤 자리를 떴다. 스쿠틀루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 시선은 반쯤 하늘에 가 있었다. 그것이 레인보우 대쉬의 궤적을 찾는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흠흠."
스쿠틀루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음... 안녕." 그리고 내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잘 들었어."
나는 눈썹을 치키고 물었다. "듣고 있었니?"
"엉." 스쿠틀루는 차분한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이 동네도 꽤 시끌시끌하네. 지금까진 전혀 몰랐었어. 아마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해서 그런 거려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스쿠틀루를 쳐다보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네 스쿠터는 어디 갔니?"
꼬마는 불만스러운 듯 눈을 굴리며 이마 위로 흘러내린 분홍 갈기를 훅 불어 넘겼다. "밀키 화이트가 이번 주는 스쿠터 압수래."
"저런. 누구한테 부딪친 건 아니고?"
"아냐. 이번엔." 스쿠틀루는 두 뒷다리를 꼬물거리며 땅을 차고 말했다. "하. 그게, 감각을 회복하려면 이래야 한다나 뭐라나. 칫! 난 멀쩡한데 말야! 트와일라잇이 마법 뿔로 한번 쫙 지져주고 나니까 하나도 안 어지러워졌거든!" 스쿠틀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돌리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뭐, 거의 그렇다는 거지만."
나는 씩 웃었다. "밀키 화이트는 네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
"헤.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난리를 피우더라고." 스쿠틀루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바닥에 쪼그려 앉더니, 두 앞다리를 가만히 포개고 외로운 눈으로 마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단단이 엮여 버린 것 같아."
"글쎄, 좋은 뜻으로 한 말이지?"
스쿠틀루가 입술을 깨물었다. "흐으으음... 아냐, 안 좋아." 꼬마의 짧은 날개가 하릴없이 꿈틀댔다. "아주 안 좋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옆에 계속 있는 것을 눈치챈 스쿠틀루는 눈을 굴리며 한숨지었다. "좋아. 어디 한 번 해보자..."
"뭐라고? 나랑 뭘 해보자는 거지?"
꼬마는 나이에 걸맞는, 약간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 살아남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일장연설을 하면서 완치 선물이라도 줄 생각인가 본데.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 내가 관심이 고픈 건 맞는데, 벌써 세 번씩이나 슈가큐브코너로 끌려갔다 왔다구. 속이 메슥거려 죽겠어."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나는 싱긋 웃고 말했다. "그것보다, 넌... 네 또래들에 비해 뭐라고 할지, 그, 조숙한 것 같은데."
스쿠틀루는 잠시 눈만 돌려 나를 쳐다보고는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덜떨어진 말이야."
"진짜?"
"그래, 진짜로." 스쿠틀루는 폭 한숨을 쉬더니 서글픈 눈으로 마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조숙한 게 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커서 레인보우 대쉬처럼 되고 싶어! 멋진 걸 하고 싶고, 그 누구도 내 업적을 가로채지 못하게 나 혼자서 그걸 이루고 싶다구!"
나는 땅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래, 뭐. 그래도 몇몇 사람들은 홀로 되는 걸 싫어하거든."
스쿠틀루가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꼬마의 작은 깃털들이 흔들렸다. 아이는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나도 혼자였던 때가 있었어. 그 때 레인보우 대쉬가 날아와 나를 구해 줬지. 그 미친 기계 때문에 얼어 죽기 직전까지 갔는데, 그 산자락에서 나를 꺼내 줬어." 스쿠틀루는 승리감에 젖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가장자리는 왠지 빛이 바래 있었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뭐도 아닌 데에 널부러져 죽은 시체 나부랭이나 되었겠지."
나는 한숨지으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스쿠틀루..."
꼬마는 당황스러워하며 벙찐 얼굴로 물었다. "그...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나는 스쿠틀루 앞에 가만히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나는 공포와 어둠으로 가득했던 그 날 밤에는 하지 못한 눈맞춤을 하며 말했다. "글쎄, 누구라도 아는 거겠지만 레인보우 대쉬가 이 세상 최고의 영웅이라는 것쯤은 알아."
"당연하지, 그렇고말고!" 스쿠틀루가 활짝 웃었다. "진짜 대단하지—"
"레인보우 대쉬가 해낸 것 중 몇 가지는 심지어 자면서도 할 수 있는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거고." 나는 스쿠틀루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날 밤 가장 용감했던 사람은 너였어."
스쿠틀루가 얼굴을 찌푸렸다. "나?"
"그래." 나는 끄덕이고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그 끔찍한 일을 겪고도 견뎌내지 않았니. 그 누구도 네 나이 때, 어쩌면 평생 겪을 일 없는 고통을 버텼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맞서고, 불가능한 일을 이뤘으니 그거야말로 용감하다는 뜻이 아닐까. 스쿠틀루 넌 용감한 녀석이야. 글쎄... 언젠가 네가 레인보우 대쉬만큼 나이를 먹고 나서 그 날 밤을 되돌아보면 그걸 이겨낸 원동력은 결국 너 자신의 힘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난 그러기를 바라지만." 나는 심호흡하고 애정 어린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일단 네 내면의 힘을 깨닫고 나면, 너도 그렇겠지만 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기뻐할 거야. 그때부터는 너 스스로 영웅으로 완성될 거야. 아마 너를 찬미하는 노래도 나오고 그럴걸."
스쿠틀루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날 어른거리던 저주받은 달빛이 밝은 보라색 눈 위로 녹아 사라진 듯했다. 나를 쳐다보던 꼬마는 한층 더 밝게 웃더니 처음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오를 양 날개를 흔들었다. 생의 잔혹한 장막이고 뭐고 그때는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 내 앞에서 꽃피는 소중한 꿈을 축복하고 싶었으니.
"야! 스쿳!"
"스쿳—스쿳—스쿠틀루우!"
우리는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한 쌍 꼬마들이 스쿠틀루를 저만치서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하... 그랬지... 잊고 있었어." 스쿠틀루가 까르르 웃더니 기억을 되살리며 그 달콤한 향기에 취해 말했다. "오늘 밤 '수행'을 좀 해야겠어서 말이지. 음..." 꼬마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악동 특유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밀키 화이트한테 이르기 없기에요?"
나는 깔깔 웃고 일어섰다. "그럼 가 보렴." 나는 발굽을 흔들며 스쿠틀루와 작별했다. "아직 용감해질 수 있는 날들은 많이 남아 있으니..."
스쿠틀루는 즉시 달려나갔다. 나는 꼬마가 남기고 간 웃음소리 아래 혼자 남아 있었다. 나는 스쿠틀루와 두 친구가 마을 외곽 쪽으로 흐려져 가는 오후 햇살을 받으며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어디부터가 이지러지는 석양이고 어디에서부터가 스쿠틀루의 몸통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홀로 선 단독자가 되는 것도 용기 있는 일이다. 내가 고독의 노래를 짓는 한 누구라도 구함을 받으리.
영웅이 되기에 너무 늦었다는 말은 있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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