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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미주 달고 해설 쓰기

by Mergo 2021. 1. 25.

오래 전... 그러니까 한 2013년쯤에 옮겼던 글에도 주석을 달아놓기는 했습니다. Princess Celestia Hates Tea 같은 경우 얼마 안 되는 것들이나마 홍차나 티세트 관련 이야기가 나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끄적였죠. EoP나 BGP 같은 경우 SS&E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지명 등을 가져다가 비틀어 써놓는 걸 좋아해서, 그런 쪽 주석이 많습니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유독 핑키 파이랑 엮이면 그런 경향이 더 강렬해지는 게 있더군요. EoP 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4막 Dredgemane의 각 챕터명부터 죄다 패러디인 건 유명하죠. BGP에서도 비슷했고요.

 

그러면 '어떻게 미주를 달고 해설을 쓰는지'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작가가 써놓은 주석 외에도 독자의 이해를 위해 역자가 써넣는 주석을 역주라고 하죠. 역자의 기량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어와 그쪽 언어에 능해야 하고, 해설이 필요한 부분을 잡아내고 써내는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 같지만, 제 독서가 그리 깊은 것도 아니고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 넌 뭘 갖고 미주를 다니? 싶은 생각이 들죠. 운칠기삼이라고, 대충 얻어걸린 게 7이고 제 능력이 3입니다.

 

우선, 현실을 MLP스럽게 변주한 것부터 말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건 아는 대로 적습니다. EoP Ch.3에서 유명 철학자와 작가들의 이름을 변주해 적은 게 대표적입니다. 아리스트롯텔레스, 카뮬, 니이트체, 데칸터가 각각 아리스토텔레스, 카뮈, 니체, 데카르트에 대응한다는 것 정도는 고등학교에서 탐구과목으로 윤리를 픽한 사람이라면 때려맞출 수 있는 수준입니다. 카뮈랑 니체는 빼고요. 제가 모르는데도 역주가 달린 부분으로 말하자면, 뭔가 낌새가 느껴져서 구글링하다 나온 게 대부분입니다. SS&E가 움베르토 에코 급으로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지는 못하니까, 대충 그걸로 맞춰서 뽑아내는 거죠.

 

주석 다는 건 뻘짓해도 상관 없습니다. 구글링하는 게 태반이니까요. 문제는 해설입니다.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 보니까, 열심히 해설 달아 놓은 게 잘못된 경우도 많이 있어요. Ch.12에서 그래나이트 셔플이 말하는 '전쟁'을 현실 역사에 대입하려는 무용한 시도가 대표적입니다. 포스팅 직전에 보고 어 아닌갑다 하고 싹 날려 버렸지요. Ch.14에서는 수비학Numerology을 동원해 '왜 하필 아홉 번째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설을 적어 놓았습니다. 아마 비슷한 내용을 <푸코의 진자>에서 읽었던가 했을 거에요. 카발라던가 하는 부분에서 좀 나왔던 것 같은데, 잘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푸코의 진자>에 어지간한 음모론, 신비학 얘기 다 얽혀 있으니까 그쪽 얘기가 한두 마디는 나왔을 겁니다. 대충 그럴듯한 레퍼런스가 있는 이런 케이스가 가장 편합니다.

 

오늘은 방구석 구데기가 어떻게 주석과 해설을 뽑아내는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걸 주절주절 쓰는 것은, Ch.15 번역하는 게 생각보다 피로하기 때문입니다. 힐링이 필요한 것이죠. 힐링, 힐링이라고 하니까 하루 일과 중 가장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이 언제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전 다*와로 아이쇼핑하는 게 가장 재밌긴 하네요. 요즘은 노트, 볼펜 리필심, 아로마디퓨저, 자전거 관리용품에 눈이 많이 갑니다. 콤퓨타랑 폰은... 바꾸고 싶긴 한데 돈이 없어서 봐 봤자 뽐뿌만 오고 피곤해서 잘 안 보고 있읍니다. 조만간 자전거 분해해서 녹 싹 벗겨내고 기름칠 해 주긴 해야 하는데 너무 귀찮고, 용품도 없고 해서 그냥 어물거리고만 있지요.

 

Ch.15 Part I이 올라갈 때까지는 이틀, 사흘에 한 번 꼴로 헛소리 주기를 줄여 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돌아가는 걸 보니 안 될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