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는 정말로 따뜻했다. 적어도 스쿠틀루는 그렇게 느꼈다.
세 포니들이 열심히 사과를 털고 있는 그 위로 태양이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의 활기찬 움직임은 나무에서 나무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고, 대기는 흔들리는 녹색 잎사귀의 싱그러운 향과 사과 떨어지는 소리로 가득 찼다. 바구니 하나하나가 다 채워질 때마다, 더 많은 빈 바구니가 그것들을 대신해 채워졌다. 일을 계속해 나가면서도 스쿠틀루의 머리는 계속해서 돌아갔고, 몸을 돌릴 때마다 사과를 다 딴 나무들이 잠시 눈에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다시 앞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사과를 딴 나무보다 네 배, 여덟 배, 열여섯 배 더 많은 나무들이 과수원을 따라 쭉 늘어서서 사과를 털어 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과격한 '운동' 때문에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적어도 이들은 시간을 거슬러 온 페가수스보다도 사과 따는 데 더 익숙할 터였다.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길러졌으니 말이다. 반면, 스쿠틀루는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스쿠틀루는 이상한 기분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스쿠틀루는 드디어 어떻게 '톡' 쳐야 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얼마나 힘을 줘서 나무를 쳐야 좀 전에 일어난 참상을 또 보지 않고 보다 자연스럽게 사과를 딸 수 있는지 알아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최대한 많은 사과를 따야 한다는 생각이 스쿠틀루의 머리 속에 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과거에 있을 때, 애플 가족을 '도우'라는 스파이크의 충고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매번 애플잭과 그녀의 새빨간 솜털을 한 오라비를 쳐다볼 때마다, 그녀는 그들의 피로에 비하면 좀 너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그녀는 작업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농장 일에는 그야말로 초짜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사실, 스쿠틀루는 절대로 자기가 농장 일을 잘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순조로운 사과 따기 작업의 비결은 아마 그녀의 비정상적인 상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투영'된 영혼은 미래로부터 온 그녀의 정수를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만났을 때, 애플잭이 던진 쇠스랑이 그녀에게 맞았다면 어땠을까? 피가 났을까? 좀 더 나아가서, 다치기나 했을까?
과거는 색깔과 온기, 약동하는 생명이 가득한 곳이었다... 적어도 어느 날 재앙이 닥쳐와 대지의 속살을 헤집어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 너머에서 시간 여행자가 얼마나 몸부림을 치던지, 그건 그저 아주 사소한 흠집일 뿐이었다. 녹색의 대지 위로 회색 그림자 하나만을 드리우는 흠집. 한 보라색 드래곤의 놀라운 연구가 낳은 사소한 기적이 낳은 흠집 말이다. 스파이크는 분명 스쿠틀루가 과거로 돌아가 애플 가족을 '도와' 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포니로서는 그저 최선을 다하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더디게 흘러갔고, 저기 있는 농장의 포니들에게도 하루는 더디게 흘러갔다. 스쿠틀루는 엔트로파의 그림자에 둘러싸여 고개를 들어 정말 행복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서 있었다.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녀는 마치 협잡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애플잭이 '고정'해 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는 제약은 계속 스쿠틀루의 안에서 두근거리며 자꾸만 그녀를 괴롭혔다. 스쿠틀루는 도저히 사과 따는 작업에 주의를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어깨 너머를 흘끗거리며 그녀의 '지지대'가 물건을 가지러, 혹은 좀 쉬러 헛간으로 총총거리며 걸어가는 걸 살필 뿐이었다. 그리고, 페가수스의 주위를 둘러싼 세계는 녹색 불꽃에 휩싸여 하릴없이 녹아 들어갔다. 갈수록 태산인 것이, 애플잭을 중심으로 반경 20미터에서 30미터 정도 안에 그녀가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스쿠틀루가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와 과거에 '투영'되어 처음 애플잭을 만났을 때부터, 애플잭은 쭉 스쿠틀루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애플잭이 지금까지 쭉 보이는 모습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쿠틀루의 애플잭에 대한 기억, 늘 웃고 다니고, 특유의 매력이 있었다. 순수한 마음씨를 가진 언니 같은 포니, 모두에게 헌신적이었던 포니. 모두가 그녀의 친구와 같았다. 어쩌면 애플잭이 보이던 모습은 오직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쿠틀루는 이런 생각조차 의심스러웠다. 애플 가문은 대대로 친절과 관용을 베풀며 자라난다. 처음 본 이들조차 가까운 친구처럼 감싸 안고 포용한다.
그럼 애플잭의 이 까칠하기 그지없는 태도는 도대체 왜일까? 당장이라도 '하모니'의 날개를 등짝에서 잡아 뜯어 버릴 것 같은 이 태도의 이유는 대체 뭘까?
스쿠틀루는 어쩌면 포니빌 포니들이 셀레스티아 공주와 뭔가 트러블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캔틀롯'이란 이름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아, 그래. 어쩌면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스쿠틀루는 '정직의 원소'인 애플잭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밖에는 이 점잖고 착한 포니가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 걸 설명할 수가 없었다.
만약 스쿠틀루의 존재가 애플잭에게 그토록 거슬리는 존재라면, 그 숨겨 둔 진실이 뭔지 찾아내는 건 이제 그녀에겐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그제서야 스파이크가 '꾸준히, 끈덕지게 달라붙으라'고 한 충고의 의미가 이해가 됐다. 오후는 열띤 농장 일로 달아올랐고, 스쿠틀루는 애플잭 근처의 모든 것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쿠틀루의 시선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애플잭도, 빅 매킨토시도 아닌 과수원을 향해 있었다. 그 동안 폐허를 뒤적거리며 단련된 눈은 대지에서 서서히 스며 나오는 아주 작은 그 무엇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애플잭이 그렇게 자랑하는 것과는 달리, 사과 나무들이 그렇게 완벽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나무 껍질에는 군데군데 흉터와 긁힌 자국, 베인 자국, 할퀴어진 자국들이 마치 짐승이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남아 있었다. 게다가 아직 수확하지 않은 사과나무의 사과들은 확실히 누군가가 뜯어먹었는지 과육을 훤히 내보이고 있었다. 울타리 옆에는 부서진 나무 조각들이 널려 있었고, 산산이 부서진 농기구의 파편들은 과수원의 그림자 아래 뻗어 있었다. 그 외에도 잔해가 더 많이 보였다. 농장의 동남쪽에 접하는 숲으로 향해 하나의 길을 내며 파편이 이어져 있었다.
스쿠틀루가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의 행동은 더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스쿠틀루가 사과가 반쯤 뜯어먹혔다고 은근히 운을 띄울 때마다 애플잭은 허둥지둥 달려가 그것들을 길게 자란 풀 안에다 처박아 숨겨 버렸다. 스쿠틀루가 나무에 남은 상처들을 오랫동안 자세히 뜯어보고 있으면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가 잽싸게 달려와 다음으로 수확해야 할 사과 나무로 데려가 버렸다. 아직 사과를 덜 땄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과수원 한쪽에서 열심히 사과를 따는 척 하면서 그녀가 본 광경이었다. 빅 매킨토시가 한두 개의 강철 케이지 덫을 과수원 한쪽 끝에 설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호박색 눈이 저 멀리 보이는 광경을 향하면 애플잭의 찌푸린 얼굴이 얼굴 가까이 다가오며 '시간 낭비하지 마라'며 잔소리를 했고, 잔소리를 끝낸 애플잭은 다음으로 수확할 사과 나무로 스쿠틀루를 끌고 가곤 했다.
비록 스쿠틀루가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머리를 핑핑 돌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의 활기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한 시간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녀의 황동색 몸통은 황홀한 태양빛 아래 즐거이 노래부르고 있었고, 풀 냄새는 들이마시면 들이마실수록 더욱 들이마시고 싶어졌다. 그녀가 가볍게 톡톡 치고 지나간 나무 아래로 떨어진 신선하고 부드러운 사과들은 바구니 안에 담기며 굴러다녔다. 그녀는 미세하게 떨리는 자신의 근육을 타고 굴러가는 땀방울을 느낄 수 있다면, 자신의 등에 쌓이던 차가운 재가 아닌, 부드럽게 입맞춤하듯 다가와 감싸 안는 그 따뜻한 햇살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녀의 '투영'된 모습이 아무리 연약하고 또 연약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밝은 전등의 빛조차도, 최고 온도로 맞춰 놓은 하모니 호의 난방장치조차도 이 하늘 아래 늘어진 사과 나무 아래서 느끼는 훈훈함에 비할 수는 없었다. 만일 스미스 할머니의 레코드 플레이어의 소리가 과수원의 흙길을 넘어 여기까지 들리기만 한다면 스쿠틀루는 정말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스파이크가 뭐라고 그랬더라? '스스로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했던가?
스쿠틀루는 재빨리 어안이 벙벙한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치우고는 다시 애플잭을 바라보았다. 애플잭은 완전히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는 '앙증맞은 캔틀롯 왕궁 비서'의 페이스에 맞추느라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사과 따는 속도를 확 줄일까 생각했다. 애플잭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스쿠틀루는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했다. 잔혹한 일일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애플잭을 둘러싸고 있는 그 옹고집의 벽을 어떻게든 계속 깎아내 약화시키는 일이었으니까. 어쩌면 '정직의 원소'가 그 이름에 걸맞는 행동을 보이는 것도 시간 문제일지도 몰랐다. 스쿠틀루를 지금까지 만나 왔던 친구들처럼, 자신의 친구로 대해 줄지도 몰랐다.
뭐 어쨌든, 모든 것에 있어 시간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다. 스쿠틀루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잠시 접어두며 다른 나무로 향해 스위트 애플 에이커를 붉게 물들이는 사과들을 똑 떼어 떨어뜨렸다. 시간이 없다는 걸 알기에, 이 모든 건 그저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걸 알았지만 모든 일에는 끈기가 필요하기에...
태양은 서쪽 하늘에 지는 황금빛 황혼에 서서히 녹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미스 할머니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녹색 나뭇잎을 헤치고 쌩 날아와 스쿠틀루의 귓가에 닿았다. 스쿠틀루는 잽싸게 나머지 나무들을 툭툭 치고 어깨 너머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스미스 할머니가 커다란 물주전자와 세 개의 키 큰 유리잔을 실은 나무 수레를 밀며 언덕 꼭대기에 서 있었다.
"야들아, 쉬는 시간이여!" 스미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번지며 그녀의 재잘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고로 열심히 일한 어스 포니들은 션한 물 한 잔을 즐길 자격이 있다 그러제. 페가수스도 마찬가지여!" 스미스 할머니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 모습은 그들과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젊어 보였다. "션할 때 들드라고!"
빅 매킨토시는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며 귀에서 땀을 털어내며 나무 수레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재빨리 걸어갔다. 애플잭도 딱히 우아하다고는 할 수 없는 발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고, 고맙심더, 할매..." 오렌지색 암말은 입을 떼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스미스 할매요! 워커도 없이 여기까지 온 겁니꺼? 할매 노망나신 거 아입니꺼? 예? 뭔 생각으로 이러고 나온 겁니꺼?"
"애플잭, 내는 괜찮으니께 신경쓰지 말그래이!" 스미스 할머니는 미세하게 떨리는 팔뚝에 힘을 주며 말했고, 이윽고 싱긋 웃었다. "너거들 하는 걸 보니께 너무 잘 해 주고 있어가 나도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카이. 솔직히 말하자모, 내는 올해 애플벅 시즌도 잘 되기는커녕 망칠 줄 알았다카이. 근디 하모니 아가씨가 오셔가 올해 애플벅 시즌은 잘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구마. 아가씨, 정말 고맙데이."
"아, 신경쓰지 마세요." 스쿠틀루가 씩 웃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아, 셀레스티아 공주님께 보고서를 올릴 때 할머니께서 농장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어 주셨는지 말씀드릴 수 있게 되서 정말 기분이 좋네요."
"어...잠깐 장작 창고서 좀 보입시다." 애플잭이 눈을 굴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고, AJ?"
"암것도 아임더, 할매. 물 고맙심더."
"물은 아직도 많응께 괘안타!" 스미스 할머니가 슬슬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스쿠틀루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이잉? 이상하구마!" 스미스 할머니는 눈을 꿈벅거리며 스쿠틀루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어째 땀 한 방울도 안 흘렸나!"
"어..." 스쿠틀루는 침을 꿀꺽 삼키고 초조하게 웃어 보였다. "아, 그건 페가수스의 특징 중 하나랍니다. 저희 깃털 때문에 그래요. 저희 몸에서 분비되는 유분(油分)이 저희가 흘리는 땀을 감춰 주거든요."
"머, 거 참 놀랄 노 자구마..." 스미스 할머니가 고개를 몇 번 흔들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앉아 있던 흔들의자로 향한 발걸음을 옮기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캔틀롯 페가수스들은 여전히 대단하긴 대단하구마. 아가씨는 그야말로 여신께서 내린 선물과도 같다, 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 나가 스탈리오니바리우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아가씨가 쭉 생각날 끼다!"
스미스 할머니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며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스쿠틀루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 동안 정말 많은 이름으로 불려 왔었지. 다이아몬드 독들은 '마지막 포니'라고 불렀고, 브루스는 '최고 고객'이라고 불렀다. M.O.D.D.패거리들은 '골칫거리'라고 불렀고. 지난 25년의 세월 동안, 그녀를 '선물'이라고 불러 준 산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스쿠틀루는 무언가 특별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령 그것이 그녀를 감싸안은 황동색 세월의 융단이 아니라 원래의 고단한 갈색 몸뚱이에 깃든 생각 속의 온기라 할지라도 말이다.
"너거는 여전히 썩을 놈의 거짓말쟁이구마." 애플잭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중얼거렸다.
냉혹하고 애정 하나 없는 애플잭의 비꼼은 회색의 텁텁한 맛처럼 다가왔다. 외로이 흔들리는 하모니 호 안에서 만들어 먹던 버섯 스튜의 맛과 똑같았다. 검은 갈기의 페가수스는 애플잭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다시 말씀해 주실래요?"
오렌지색 암말은 물을 더욱 들이키더니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나으 베프 중에 둘이 페가수스다. 동쪽 해안서 갸들 둘이 땀을 뻘뻘 흘리는 걸 다 봤다 이 말이다. 갸들 둘 다 땀을 흘렸다고." 애플잭은 그 특유의 까칠한 눈길로 째려보며 말했다. "어떻게 너거가 사과 나무덜을 그렇게 세게 치면서도 하나도 안 힘들어했나 묻고 싶은디?"
"뭐, 보셨잖아요. 당신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인걸요!" 스쿠틀루가 어깨를 으쓱 하더니 빙그레 웃었다. "그저 물을 좀 많이 마셨을 뿐이에요." 스쿠틀루의 시선은 한쪽으로 향하다 나무 수레 옆에 서 있던 빅 매킨토시의 조각 같은 근육질을 보고는 즉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빅 매킨토시의 땀으로 범벅이 된 붉은 어깨 위로 그가 물을 한 모금 삼킬 때마다 정맥이 튀어나오며 반짝이고 있었다. "흠흠... 시원하고, 차고, 뼛속까지 얼 것 같은 찬물 말이에요." 스쿠틀루는 물병을 꽉 붙들어 잡더니 검은 갈기를 뒤로 넘기고 물병에 얼굴을 처박았다. 스쿠틀루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야, 이거 끝내주는데요! 에헤헤헤..."
"그려, 그걸로 다 된 기가?" 애플잭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스쿠틀루는 자기도 모르게 이 물을 마시느니 차라리 자기 오줌을 받아서 마시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 네. 정말이지... 너무 감사드려요... 아시죠...? 찬 물 말이에요. 에헤헤..."
애플잭은 마지막 몇 모금을 마저 마시고 난 다음 유리잔을 내려놓고 스쿠틀루를 향해 느릿느릿 다가갔다. "그러니께, 하모니 양, 잠시만 부탁 좀 하재이. 우선 아가씨가 공주님헌티 받은 그 명령 말인디, 우리 농장서 이러고 빈둥거리고 있는 기 아가씨가 받은 명령인가 싶은디 말여. 긍께 이러고 사과나 따고 앉았는 걸로 다 되는 거냐, 이 말이여."
"뭐... 음..." 스쿠틀루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의 지저분한 머릿속 구석구석을 뒤적였다. "당신이랑 빅 매킨토시는 둘이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넓은 과수원의 사과를 다 따야 하죠. 그런데도 여러분은 딱 둘이서 온 캔틀롯 소작농들보다도 훨씬 더 적은 시간에 훨씬 많은 수확을 올리셨다는 거죠!"
"그기야 머 캔틀롯 농부들이야 꽃병에 꽂아 둔 페투니아를 더 걱정하니께 그런 거고."
"뭐 좋아요. 그것까지는 모르겠네요." 스쿠틀루는 헛기침을 하고 기대를 가득 품은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여러분은 정비가 아주 잘 된 기계나 마찬가지에요. 당연히 감정이 있는 기계 말이죠. 혹시 제가 끼어들어서 여러분 발목만 잡는 게 아닌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머 솔직히 말하자몬 아니여. 발목 하나도 안 잡았응께."
스쿠틀루는 기쁨에 가득한 숨을 내쉬었다. "아셨죠? 제가 처음에 도와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절 그렇게 닥달할 필요가 있으셨는지—?"
"그려도 그기 아가씨가 우리 과수원을 막 돌아댕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여! 아가씨가 아가씨 입으로 그랬쟈, 빅 매킨토시랑 내랑 쌔끈한 기계랑 똑같다고 말여. 머 나가 기계 굴리는 거는 유니콘이나 페가수스 절반도 못 따라가기는 혀. 아가씨 말은 스윗 애플 에이커 모두를 위한 말이어야 했다는 거여. 우리는 애플벅 시즌으 일정을 아주 정확하고 훌륭허게 실행하고 있다, 이 말이다."
"그래서, 그거 말인데요." 스쿠틀루가 애플잭을 흘끗 보며 말했다. "애플벅 시즌이란 건 일반적으로 1년을 기준으로 해서 하반기에 있는 거 맞죠?"
"사실, 애플벅 시즌은 봄부터 초가을까지인기라." 애플잭이 걸어가 사과로 가득한 바구니 몇 개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사실, 수확 시기는 농장마다 다 다른기라. 고객들하고 체결한 계약 내용에 따라서 제각각이거덩."
"진짜요? 그러면 빅 매킨토시랑 당신이 언제까지 이 사과들을 전부 따기로 계약을 하신 건가요, 애플잭?"
애플잭은 축 늘어졌다. 애플잭의 시선은 가련하게 사과로 가득한 바구니를 훑고 내려갔다.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며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언제인가요?" 스쿠틀루가 호기심에 가득차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애플잭은 몹시 화가 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금발의 암말은 모자를 흔들며 스쿠틀루를 째려보며 말했다. "앞으로 이틀 남았다."
"네에에? 이틀 남았다구요?" 스쿠틀루의 호박색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툭 불거졌다.
"쉬잇, 조용히 좀 하지 않겄나?"
"AJ—아얏! 애플잭 씨!" 스쿠틀루는 그 말을 듣자마자 너무나 놀라 거의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손질 잘 된 기계이건 아니건 간에, 여러분은 오늘 오후 내내 과수원 동쪽 한 군데서만 열심히 사과를 따셨단 말이죠. 거기다 제가 도와 드렸는데도 스위트 애플 에이커 동쪽의 절반도 아직 다 못 땄다구요!" 스쿠틀루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날개를 가볍게 흔들며 숨을 돌렸다. "셀레스티아 공주님의 갈기에 걸고, 여러분이 남은 이틀, 아니, 하루 반 동안 남은 사과를 다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이 정도의 작업률을 가지고?"
애플잭은 스쿠틀루에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거, 아가씨가 처음 우리 앞에 똑 떨어졌을 때 나가 시간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들리는디?"
"제가 도대체 이 상황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지, 도저히 감도 안 잡히네요! 마치 그... 아으...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이 상황을 아시게 된다면 즉시 페가수스 비행대를 하나 파견해 주실 거에요! 아마 제가 당신께는 '거짓말쟁이'일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사실만은 사실이란 건 아시잖아요."
"내 생각이 맞다고 인정해 줘서 거 참 고맙구마!" 애플잭은 나무에 기대어 으르렁거렸고, 쓸쓸히 모자를 빙빙 돌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가 원하는 건 말이다, 누가 이것 좀 사방팔방에 갖다 퍼뜨려 줬음 좋겄다는 거다. 그려도 이것 하나만은 장담한다." 애플잭은 불타는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들었다. "울 오빠랑 나는 무조건 이 일을 해낼 거다."
"어떻게요? 어떻게 하실 건데요?" 스쿠틀루는 애플잭을 멍하니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제가 포니빌 과거사를 좀 알아봤는데요. 애플잭 씨, 당신 친구들한테 좀 도와 달라고 해서 손해볼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른데요? 아, 올해에는 당신 오빠가 다치지 않았지만 달라진 건 없다는 말이에요. 옛날 일로 뭐 배운 게 있을 것—"
"옛날 일이랑은 하나도 상관 없다카이! 이거는 전통이여! 우리 땅 얘기기도 하고!"
스쿠틀루가 얼굴을 구겼다. "땅이요?" 그녀는 혼란스럽다는 듯 애플잭을 향해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여기, 나무만 빽빽한 이 땅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게 대체 뭐랑 상관있다는 거죠?"
"에휴, 전부 다 상관 있다!" 애플잭이 넓게 탁 트인 과수원을 향해 몸짓하며 말했다. 과수원은 빨갛게 반짝이고 있었다. "항상 땅이 문제라는 기다! 우리가 집어넣는 인풋이랑 여그, 우리 과수원이 뱉어내는 아웃풋이랑은 항상 똑같다는 얘기제. 진짜 업보보다도 더하다카이. 우리 과수원을 갖다 똑바로 잘 관리해 주꼬, 너거가 오기 전으 모든 걸 갖다 고려해가 수확을 시작한 기란 기다!"
"그래서, 그게 여러분이 수확 작업을 단 둘만 해야 하는 이유라 그거죠?" 스쿠틀루가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논리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죠?"
"어... 논리... 논리... 논리라..." 애플잭은 쓰고 있는 갈색 모자 아래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중얼거렸다. "하여튼, 너거 캔틀롯 종자들은 똑같은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구마..." 애플잭은 잠깐 말을 멈추고 나무를 흘끗 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곧 스쿠틀루를 향했다. 애플잭은 모자를 올려 쓰고 나무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저기, 하모니 양, 뭣 좀 해 줬으면 하는 게 있는디."
"말씀만 하세요!" 스쿠틀루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애플잭은 손쉽게 딸 수 있을 만한 높이에 매달린 사과를 향해 입을 가져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사과를 따 던졌다. 그녀는 떨어지는 사과를 꼬리로 낚아채 툭툭 던졌다 받으며 갖고 놀더니 능숙한 솜씨로 스쿠틀루를 향해 휙 던졌다. 스쿠틀루는 깜짝 놀라 얼른 떨어지는 사과를 붙잡았다. "정말 해 줄 꺼모, 한 입 하그래이."
"저기..." 스쿠틀루가 눈썹을 치켰다. "저기, 주신 사과는 잘 먹겠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아가씨,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감사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그랬제? 그럼 아주 온 감각을 곤두세워가 감사를 해야 하는 게 정상 아이겠나! 이해관계 다 따져가 계산하지만 말고, 좀 포니답게 굴어 보그래이. 자, 후딱 들드라고!"
스쿠틀루는 애플잭을 아주 오랫동안, 거의 노려보는 것처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스러운 시선은 이내 자연스럽게 누그러졌다.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계산에 넣고 난 다음에서야 그녀의 이빨은 사과의 부드러운 껍질을 뚫고 들어갔다.
그 다음 순간에서야 스쿠틀루는 자기가 사과 맛에 완전히 압도되어 거의 휘청거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동안 버섯 스튜와 정수제를 넣은 물, 그리고 별 맛대가리도 없는 고기로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던 세월은 사과 맛을 느끼기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그 동안 아예 기능을 하길 포기하고 입 아무곳에나 처박혀 있던 미뢰들이 다시 생기를 받아 돌아왔고, 아득한 저 너머의 기억을 다시 흔들어 깨웠다. 슈가큐브코너의 분홍 지붕 아래, 짙은 분홍색 갈기를 한 망아지였던 그 때의 기억을, 다른 두 '빈 엉덩이'들과 같이 과자와 컵케익, 소다를 나누어 먹던 그 기억을 깨웠다. 떨리는 눈꺼풀과 함께, 숲 한가운데 버려진 헛간의 밀짚 깐 다락방의 기억도 같이 깨어났다. 별이 총총한 달밤에 사과를 하나 깨물어 먹으며 느꼈던 그 행복함이 느껴졌다. 주린 위장이 서서히 채워지며 생기가 온 몸에 돌았다. 스쿠터를 타고 온 포니빌을 쏘다니고 싶었다. 다른 포니들, 서로 다른 색의 솜털을 했어도 모두 친절했던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설령 그들이 스쿠틀루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잘 해 준 것이 아니라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스쿠틀루를 속였다고 해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흠? 아가씨으 그 고급 입맛에 맞는가?" 이상한 목소리가 다리 밑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이거... 지금까지 먹었던 것들보다도 훨씬 더 맛있네요." 스쿠틀루의 목소리는 이상한 흐느낌에 묻어 나왔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촉촉한 사과의 과육이 느껴졌다. 위장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꼭 안아 주는 것처럼. 스쿠틀루의 코에서 한 줄기 숨이 뿜어져 나왔고, 몇 초가 지났다. 그제서야 스쿠틀루는 애플잭이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그녀의 뺨을 타고 내려갔다. 이제야 애플잭이 왜 자기를 어리둥절해서 쳐다보고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스쿠틀루는 뺨을 문질러 닦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 "좋아요. 기준은 충족했어요. 흠흠, 신선한데다 맛도 좋네요. 몸에 좋을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셀레스티아 공주님도 아주 좋아하시겠어요."
"사과 맛이 그리 끝내주는 데도 마 다 이유가 있다." 애플잭은 나무에서 나무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스쿠틀루는 한쪽 발굽에 사과를 들고 애플잭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덜 애플 가문은 여기서 대대로 사과를 키워 왔데이. 사실, 파우스트메어으 캐러밴이 여기 그레이트 이퀘스트리안 밸리에 터를 잡고 나서 한 10년쯤 있다가 우리 가문이 여기 자리잡은기라. 우리 가문이 사과 나무에 들이는 정성은 단순히 '열심히 일한다' 정도가 아니여. 전통이고, 사랑이다 이 말이다. 우리 가문 포니덜은 다덜 이 땅을 사랑하고 가꿔 왔데이. 그기 우리가 사는 이유고, 우리가 꿈꾸는 것이고, 우리가 염원하는 것이여. 그게 전부여. 우리 애플 가문 포니들 중에서 사과 말고 다른 큐티 마크가 나오는 건 지극히 드문 일이여. 백 년에 한 번 꼴로 나올까 말까한 일이지. 백 년 전에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는디, 그 때부텀 아무도 그런 일이 없었다카이. 딱 하나도 그런 일이 없었다꼬."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금발 갈기를 빙빙 돌렸다. 애플잭의 낯익은 얼굴이 아직도 사과 맛에 헤롱헤롱하는 스쿠틀루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울 아부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데이. 아마 그기... 할아부지보담도 더 오래 전의 조상님들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씀이라 그러셨제." 애플잭은 '하모니'를 향해 온화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대지에 네가 해 준 것만큼, 대지도 너에게 해 줄 것이다.'" 애플잭은 농장의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이내 다시 내쉬며 말했다. "이 말씀은 대대로 우리 애플 가문의 가훈으로 전해 내려온 말씀인기라. 우리 가문 하나하나의 피를 타고 흐르는 말씀이제. 뭐 아가씨가 이 말씀으 중요성을 이해할 거라고는 별로 기대 안 한데이. 아가씨는 페가수스니께 말여. 머 그건 됐고, 내 말을 믿어 줬으몬 좋겠다. 어스 포니로서 모든 걸 말해 줄 테니께 말여. 우린 우리 사과를 남들하고 나누는 게 싫지 않어. 낯선 손님을 맞는 것도 별로 싫지 않어. 하지만 말여, 우리의 땅을 보살피고 대지가 우리헌티 돌려주는 걸 받는 기는 우리으 일이지 다른 포니들이 상관할 바가 아녀. 우리는 대지를 보살필 책임이 있고, 대지으 보답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 말이다. 글고,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죄다 끝나고 나서 우리헌티 아무것도 남는 기 없다 그려도, 우리는 우리으 몸뚱이를 이 대지에 바칠 것이여. 그라모 이 대지도 우리헌티 대지의 모든 것을 돌려줄 것이여."
"정말 숭고하군요, 애플잭." 스쿠틀루가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이 땅에만 매달려 살다가는 언젠가 이 땅에 아주 끔찍한 일이 생기면 대지가 아무것도 돌려줄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실 거에요." 스쿠틀루는 아직 사과를 매달고 있는 줄지어 선 사과 나무들을 향해 몸짓하며 말했다. "그러니 아마 당신과 빅 매킨토시가 이 모든 일을 혼자 하실 수도 있겠죠. 그리고 아마 여러분은 이틀 동안 이 모든 사과를 따는 데 실패하실 거에요. 뭐 그게 당장 미칠 영향이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대충은 상상이 가네요. 절대로 좋은 일은 아닐 거에요. 지금 당장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죠. 온 이퀘스트리아에 여러분이 제 시간에 사과를 공급하지 못했다고 소문이 퍼지고 말 거라고요! 왜냐구요? 그나마 시간이 좀 남았을 때 도와 주겠다는 포니의 손길을 뿌리쳤기 때문이 아닐까요?"
애플잭은 한숨을 쉬면서도 가만히 스쿠틀루의 말을 들었다. "별 일 아니구마."
"왜요? 적어도 왜 그런지는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시겠죠?"
"그려. 빅 매킨토시랑 내랑 우리 고객들이랑 계약을 하긴 혔는디 말여..." 애플잭이 고개를 들어 스쿠틀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이 땅이 먼저여. 이 땅이 먼저고,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이 말이다. 계약에... 쫌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인쟈 설명은 끝이여. 다 말했응께."
"실수라고요?" 스쿠틀루가 얼굴을 구겼다. "그게 여러분들이 애플벅 시즌을 이렇게 일찍 시작한 이유인가요? 그 책임감 때문에 이 과수원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을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하시는 건가요?" 스쿠틀루는 잠깐 애플잭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언덕 위에서 반짝이는 철창 덫이 보였다.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나무 울타리 옆에 잘 숨긴다고 숨긴 덫들이다. "애플잭 씨, 저도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대대로 내려온 특유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대지 스스로도 고려하지 못하는 게 있는 법이라구요." 스쿠틀루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를테면, 대재앙 같은 거 말이죠."
"다 따지고 보면 말이다, 중요한 기는 우리, 애플 가문이 대지의 물음에 답을 하는 기다." 애플잭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반대편 사과나무로 걸어갔다. "누가 됐든, 여기에 다른 포니들을 끌어들이모 일이 더 복잡해진다. 특히 캔틀롯 포니 말이다. 자, 그러니께는 아직 아가씨 '감사'가 아직 다 안 끝났으몬 아직도 딸 사과는 넘쳐나니께는 좀 부탁하께. 오후는 끝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오후니께 말여!"
스쿠틀루는 걸어가는 애플잭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음 속 억눌린 불만은 혼란과 연민의 폭포 아래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그녀는 무력하게 한 발굽에 든 사과를 바라보다가 이내 또 한 입 베어 물었다. 어쩌면 그 맛은 좀 전보다는 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맛은 좀 전보다도 더욱 달콤했다.
"그래, 아직 죽지는 않았으니까." 스쿠틀루는 입안 가득히 사과를 물고 중얼거렸고, 이내 오늘 할 일을 마저 다 하러 총총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세계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졸렬하기 그지없는 생각의 모방일 뿐이라고, 스쿠틀루는 그렇게 느꼈다. 스쿠틀루를 감싸고 있던 찬란한 빛과 녹색 대지 위를 포근히 덮고 있는 봄날 같은 햇살은 그녀의 즐거움이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며, 그녀의 머릿속을 산산이 부수어 버린 시간의 이빨에 갈가리 찢기며 그 빛을 바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시간의 이빨은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의 등 뒤에서 덮쳐오고 있었다.
시간 여행자는 이 웃기는 아이러니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와 스파이크는 홀린 듯 30여 년 동안 시간을 돌려 왔다. 그 세월 동안, 녹색의 화염은 그 위에서 즐거이 춤추었고, 지금 그녀는 여기에 있다. 영겁의 순간 중에서도 아주 찰나의 이 순간에 와 있다. 앞으로 48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애플잭 가족에게서 뭔가 건질 수 있을 만한 시간은 앞으로48시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세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어떤 것도 건질 만한 게 남지 않는다.
스쿠틀루는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황혼에 녹아 가는 붉은 태양 아래서 희미하게 흔들리는 큐티 마크의 검은 선(∞)처럼 말이다. 그녀는 도대체 왜 애플잭 같은 다 자란 포니가, 빛과 행복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 사는 포니가 왜 자기파괴에 홀려 있는 건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 대담성만큼이나 불가능한 계약을 체결한 건지, 왜 온 가족이 온종일 매달려도 계약 기한에 맞춰 사과를 보내 주지 못할 위험을 무릅쓴 건지.
이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내기는 죽음의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지난번 스쿠틀루가 점검하기로는 애플잭은 이퀘스트리아에서도 아주 훌륭한 포니었다. 당장이라도 미쳐 버릴 것 같은 회색뿐인 미래를 봤을 리는 전혀 없었다. 적어도 그녀의 존재가, 시간을 거슬러온 존재의 존재가 스미스 할머니의 정신을 오락가락하게 만들어 그녀 스스로도 인정하다시피 원래는 '선물'이 아닌 '저주'였던 것을, '선물'이라고 믿게 만든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스쿠틀루는 한숨을 쉬고 펄쩍 뛰어 일어났다. 애플잭은 아주 오랫동안 이 무덤을 파 왔다. 줄지어 서 있는 사과나무 너머를 흘끗 보자, 스쿠틀루는 자기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는 마치 유령 같았다. 그들이 나무에서 나무로 비틀거리며 옮겨갈 때마다, 그들의 창백한 그림자도 그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갔다. 그들의 떨리는 눈동자에서 뭔가가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매끄러운 사과의 붉은 얼굴에 닿기를 거부하는 무언가가. 그 낯선 무언가는 누가 이들의 몸뚱이에서 사랑을 죄다 빨아먹었는지 보았을 것이다. 스쿠틀루의 어린 날을 다시 되새겨 봐도, 애플 가족들이 이렇게... 공허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최근에 무언가 아주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홱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여기 처음 오고 나서부터 애플블룸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순간 그녀의 안에서 극심한 공포가 죽음의 땅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던 폭풍처럼 끓어올랐다. 스쿠틀루는 즉시 평정을 찾기로 하고, 헐떡대는 가슴을 안고 나무 사이를 쏘다녔다. 정말로 그녀의 어릴 적 친구에게 무언가 정말로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랬으면'정직의 원소'인 애플잭이 뭐라고 말을 했을 터였다.
여전히 이 농장 위에는 엄청난 아이러니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애플잭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거였다. 사실, 다 티가 났다. 그녀의 온 몸이 '나가 뭘 숨기고 있다카이' 라고 말해 주고 있었고, '어이구, 숨기고 있는 걸 들켜 버렸어야'라고 자인하고까지 있었으니까. 애플잭은 나무 사이사이로 축 늘어져 걸어다니며 황동색 페가수스를 두고 아주 무례한 언사로 투덜대고 있었다. 애플잭은 아예 감각 자체가 없는지 그야말로 나무처럼 굳어 사과를 바구니 안으로 잘 담지 못했고, 그녀 주위로 사과가 마구 굴러다니고 있었다. 물론 스쿠틀루도 애플잭이 뭔가를 인정하고 말해 주는 것보다 재앙이 오는 게 더 빠를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애플잭의 행동이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암시하고 있길 바랄 뿐이었다.
노을빛에 녹아 가는 태양은 나무 사이에서 밝은 오렌지색으로 반짝였고, 그 색은 어린 아이같은 색조를 간직하고 있었다. 스쿠틀루의 떨리는 마음은 어쩔 줄 몰라 초조하게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순간 벼랑 모서리의 대피용 지하실이 떠올랐다. 광기로 가득한 내일, 입을 쩍 벌린 낭떠러지의 끝에 쓸쓸히 서 있던 그 모습이. 마지막 포니인 그녀는 애플 가족 모두가 죽어 버릴 거라는 걸 안다. 그건 분명 엄청난 저주다. 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지도 안다. 그것은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앞으로 3개월 후, 애플잭, 빅 매킨토시, 스미스 할머니 그리고 애플블룸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버릴 것이다. 재앙이 그들의 생명을 거두어 갈 것이다. 그들의 해골은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죽음의 땅 아래 화석처럼 온전히 남아 마지막 포니가 그들을 찾아오기 전까지 기다릴 것이다.
이들의 삶, 지금 당장 머리 위로 드리운 먹구름만 걱정하고 있는 걸까? 고동치던 심장이 마지막 고동을 울릴 때까지, 이들은 자부심을 갖고 이 과수원의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을까? 그 자부심은 '하모니'를 여기서 내쫓기 위한 자부심과 같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뭔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들이 아직 찾지 못한 것일까? 스쿠틀루가 이들을 도와 찾아야만 하는 그것일까?
마지막 포니는 자기가 과거로 돌아와 과거에 존재하고 있어야 할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과거의 방문자, 지금 엔트로파 공주의 모습을 하고 나무 사이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 그녀는 오직 '관측자'로서 과거에 존재할 뿐이었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녹색 불꽃 안으로 떨어져 이퀘스트리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관측하는 관측자로서 말이다. 그 대신, 그녀는 오직 잔인한 진실만을 알게 될 뿐이었다. 원래의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게 변해 버린 파멸의 세계 위로 조그마한 얼룩처럼 놓인 좁은 농장에 대한 그 잔인한 진실을. 그녀는 이것보다 더욱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이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과거는 너무나 연약했다. 쓸데없이 생기가 넘쳤고, 지나치게 완벽했다. 그녀가 모든 시간 여행자들을 사회의 잉여포니로 극단적 단순화를 하지 않는 이상, 그녀는 더 이상 단순한 '관측자'로 남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영원한 혼자의 숙명을 타고나지 않는다. 스쿠틀루는 회색 하늘로 뒤덮인 고독한 대지 위에서 그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어딘가 더 나은 곳이 있음을 알기에, 더 따뜻한 곳이 있음을 알기에, 그녀가 항상 그리워하던 그 곳, 고향이지만 더 이상 고향이 아니게 된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하지만 여기, 이 젠장맞을 여기, 어린 시절의 향수가 그대로 배어 있는 이 곳은 그녀가 꿈꿔 왔거나 영원히 잃어버린 것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고독한 황량함이 없고, 회색도 없고, 고통도 없었다. 그녀는 아무 느낌도 없는 엔트로파의 몸을 움직여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의 딱딱한 껍질을 걷어찼다. 애플잭이 파 놓은 무덤에 쌓이는 흙을 걷어내기 위해서, 애플잭이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는 그 멍청한 원칙의 무덤에서 애플잭을 꺼내기 위해서, 그녀는 온 혼을 담아 싸웠다. 그래서 그 원칙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다. 애플잭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그것을 찾아 그 아래로 파고 내려가기 위해서. 그것을 찾는다면 아마 그녀도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애플잭을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퀘스트리아는 언젠가 멸망할 것이다. 태양과 달은 빛이 아니라 음침한 그림자를 이 세계에 드리울 것이다. 스쿠틀루는 그녀 스스로 스파이크의 말을 어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래를 망쳐 놓을 수도 있었고 자기 자신을 망치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이유는 모르겠지만 애플잭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정말 슬플 테니까. 그렇기에 스쿠틀루는 이를 꽉 악물고 조용히 사과를 털었다.
이 갑작스럽지만 어찌 보면 숭고한 행위는 부드럽게 느릿느릿 발을 끌며 걸어오는 라임 색 발굽 소리에 순간 흔들렸다. "하모니 아가씨? 아가씨 체력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구마. 요즘에도 캔틀롯 포니들은 다들 건강하구먼 그려."
스쿠틀루는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태양의 무너져 가는 빛 아래 서 있는 늙은 암말의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뭐, 언제는 안 그런 적 있었나요?" 스쿠틀루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좀 전에, 애플잭 양이 할머니께서는 워커를 쓰신다고 한 것 같은데요."
"머 나야 이것저것 많이 쓰지만서도." 회색 갈기의 포니가 미소지었다. 떨리는 숨과 함께 그녀는 몸을 굽혀 구부린 발굽 위로 하고, 사과나무를 걷어차고 있는 시간 여행자의 그림자 위에 앉았다. "그것덜이 나를 쓰지는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겄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죠, 스미스 할머니?" 스쿠틀루가 등 뒤에서 사과를 따고 있는 스미스 할머니의 두 손주들을 초조한 눈길로 흘끗 보며 물었다. 농장의 두 포니들은 줄을 선 사과나무를 따라 빠른 속도로 사과를 털며 내려가고 있었다. 만일 스쿠틀루가 한 장소에 너무 오랫동안 서 있기만 한다면 '고정'이 깨지며 녹색 화염이 순식간에 그녀를 저 멀리 날려 버릴 것이다. "저, 제가 약속을 하나 했거든요. 이 사과나무를 다 털 때까지는 쉬지 않기로 할머니 손녀분과 약속을 해서요."
"설마 아가씨가 일천 장정이랑 맞먹는 힘이 있다 캐도, 좀 더 빠르기 작업을 끝내는 건 절대 무리다.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말할 것도 없다카이."
스쿠틀루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부드러운 호박색 눈을 들어 스미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도 이 제정신이 아닌 계약 내용을 다 알고 계셨던 건가요?"
"내는 이 농장서 알아야 할 기는 다 알고 있으니께 말이여." 스미스 할머니는 깜짝 놀랄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세월에 씻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머 적어도, 그 건방진 꼬마덜이 내를 띄엄띄엄 알지만서도 내는 그것보담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이 말이제." 스미스 할머니는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백발의 머리를 돌려 두 포니를 비수 같은 날카로운 눈길로 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만두었다. "쟈들이 말 그대로 나사가 풀려가 어리버리하긴 하지, 당연히 마음에 찰 리가 없쟈. 나가 쟈들 나이였을 때는 아무도 나만큼 요 과수원 안팎으로 아는 포니가 없었다고 유명했으니께 말여."
"스미스 할머니,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거죠?"
"마 아무래도 옥타비아으 음악은 분명 들을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갸 첼로 연주에서는 클래식에는 없는 그런 묘한 맛이 난다카이. 나가 보기에는 그것도 젊은이들으 젊음인 것 같어."
스쿠틀루는 앞으로 과거에 남아 있을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그 분'을 향해 간신히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러시다니 정말 기쁘네요, 스미스 할머니. 제가 묻고 싶었던 건 지금 이 상황에 대한 할머니의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침을 삼켰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가 이 농장을 다 망쳐 놓았다고 생각하세요?"
"요즘 애들이 그렇제 뭐, 늘 축 늘어져 갖고는 뭐라도 망치지 않고는 못 배기제. 별로 기억하고는 싶지 않지만서도 릴리 얘기가 생각나는구마. 당장이라도 세계가 멸망할 것마냥 온 포니빌에 악을 쓰고 다녔었제, 머 그래 봤자 달걀로 바위를 깨겄다는 말밖에 더 되겄나."
"언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스쿠틀루는 자기도 모르게 냉소가 어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스쿠틀루는 움찔하며 놀랐다. "가끔은 그 말이 사실일 때도 있답니다."
"흠—흠—흠—" 스미스 할머니가 숨소리가 섞인 웃음을 지었다. 가늘고 맑은 눈동자는 세월이 담긴 눈빛으로 스쿠틀루를 씻어냈다. "내는 너무 오래 살았다, 그러다 보니께 '멸망'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었제. 아가씨, 나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 보면은... 얻는 만큼 잃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될 끼다. 오는 게 있다면 가는 게 있는 걸 알게 될 것이여.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게 있고, 납득도 안 가는 게 있을 끼다. 그래두 오고 가는 기는 사는 것 자체의 문제여. 살았음 언젠가는 죽어 나자빠질 게 아니겠나. 나가 보기엔 말여, 아주 갈피도 못 잡는 일을 갖다 이걸 우짜노, 하고 계속 달라붙어 있는 기는 기양 시간 낭비여. 거기 흘린 땀은 가치가 없다는 거제."
너무나, 끔찍할 정도로 겸허한 스미스 할머니의 진실한 말 속에서 마지막 포니는 어쩔 줄 몰라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겸허한 말에는 그 어떤 말도 가져다 붙일 수 없었다. 그녀는 두 젊은 포니들을 향해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더니 좀 전보다는 차분해진 눈길로 '캔틀롯의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뭐, 할머니의 손주분들께서 저기 계시네요. 뭔가에 열심인 것 같은데요." 스쿠틀루가 한 줄기 호박색 줄이 그어진 갈기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그게 뭔지 꼭 알았으면 좋겠는데요." 심장이 한 번 쿵, 뛰었다. 스쿠틀루는 자리에 앉은 스미스 할머니를 흘끗 보며 말했다. "글쎄, 할머니라면 제 궁금증을 채워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그것까지는 내도 모른데이." 스미스 할머니가 대충 알겠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나가 때때로 애플잭 귀를 붙잡아다 뭔가를 시킬 수는 있겄지만서도, 이 농장을 굴리는 건 갸지 내가 아니데이. 나가 항상 애플잭으 판단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게 뭐든 간에 존중은 해 준데이. 그거는 애플샤인으 소원이기도 했다."
"무슨 소원이길래 그러시죠?" 스쿠틀루가 물었다.
스미스 할머니는 스쿠틀루의 말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생각에 너무 깊이 잠겼는지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스미스 할머니가 말했다. "하모니 아가씨, 그렇게 뭔가 알아낼라꼬 사방팔방으로 뛰어댕길 필요는 없데이. 캔틀롯 귀족들헌티 배운 그 진실 타령하는 버릇 때문에 아가씨가 욕을 먹을 필요는 없으니께 말여. 그 대신에, 여기 요 땅을 한 번 보그라. 우리가 건강허기 꽃피운 여그 과일들을 함 쭉 둘러보그라. 이 정도로 우리 손주들이 고생혔는디, 공주님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과일 아이가?"
"전...아으..." 스쿠틀루는 지친 발굽을 들어 뒷통수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스미스 할머니, 전 정말로, 진실을 알 필요가 있어요. 대체 왜 애플잭이 이 농장을 그런 크나큰 위기에 처하게 했는지 알아야 해요. 왜 계란을 쌓아 탑을 쌓으려고 하는지 알아야 한다니까요! 그게 아니면, 적어도 제가... 제가 어, 어떻게 애플잭을 도와야 하는지만이라도 알려 주실 수 있지 않으신가요?"
"으음..." 스미스 할머니가 차분한 웃음을 지었다. "그려, 알겄구마."
스쿠틀루가 눈썹을 치켰다. "무엇을 아시겠다는 건가요?"
"하모니 아가씨, 아가씨는 헌신적인 포니로구마. 내가 보기에는 살면서 한 번밖에 못 만났던 포니제. 아니지, 두 번이다, 두 번. 홀홀. 나가 부활이란 거를 믿으모, 나가 이렇기 돌아 버릴 것 같지는 않겄제." 스미스 할머니는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그런디 아가씨랑 같이 있으면 말여, 애플샤인이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에 찾아온 그 페가수스가 자꾸만 생각난데이. 그 아가씨도 참 정중하고 우아한데다 예의도 발랐제. 와, 그 셀레스티아 공주님이나 다른 공주님들이 여기 이 농장에 오셨어도 내는 여전히 갈피도 못 잡고 있을 끼다. 참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모, 왕궁으 비서들은 적어도 왕가의 피를 조금씩은 받고 태어난 것 같기도 허고, 마 그 분위기도 그렇고 아주 여섯 공주님이랑 아주 판박이니까 말여. 그저 잠깐 인구 수나 세러 온 그 페가수스가 여기에 더 밝은 빛을 비췄고 더 많은 희망을 줬으니께. 두 번 다시 그런 손님은 못 받을 줄 알았는디, 여기서 또 다시 한 번 아가씨를 만날 수 있으니 내는 복 받은 기 틀림없데이. 나가 좀 전에 그랬제, 이기 바로 산다는 것으 경이로움이다, 아가씨."
스쿠틀루는 슬슬 웃음도 싫증이 나려고 했다. 그건 상처보다도 더욱 깊숙한 곳에 와 닿았다. 스미스 할머니의 부드러운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는 당장이라도 주름진 라임색의 피부와 회색 갈기가 갑자기 보라색 비늘과 녹색 가시로 바뀐다고 해도 전혀 놀랄 것 같지 않았다. 셀 수 없는 순간 동안, 마지막 포니는 사랑받는 기분과 외로움을 같이 느끼고 있었다.
"저를 '선물'이라고 부르셨었죠, 스미스 할머니." 스쿠틀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신 건 정말 감사드려요. 과분한 칭찬인 것은 알지만—그게 사실이길 바랄 뿐이에요." 스쿠틀루는 기가 꺾인 숨과 함께 사과 딴 나무들을 쳐다보았다. 결국 불운히 끝나게 될 사과 털기였다. "진짜 선물은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지는 않으니까요."
"진짜 선물덜은 쓸모가 있게 되기꺼정 조금 걸리는 법이여. 그리고 그 선물을 받은 운 좋은 포니덜이 자기덜이 땡잡았다는 걸 아는 데는 더 오래 걸린데이." 스미스 할머니는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둘은 마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전의 선조들처럼 늘어선 그림자를 등지고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에 매달려 있었다. 스미스 할머니의 세월에 씻기고 갈라진 눈은 순간 더 늙어 보였다. "엘렉트라 공주님은 자신의 발굽으로 이 대지를 빚어 만드셨제, 길토핀 공주님은 자신의 숨으로 생명을 불어 넣으셨고. 그래도 나가 살아 있는 이 축복받은 대지처럼 생생하고 아름답게 생명이 자랄 때까지는 정말 오래 걸렸데이... 내일의 광명에 파묻힐 오늘이지만 말여." 깊은 숨과 함께 스미스 할머니의 두 눈에 생기가 돌아오며 반짝였고, 스쿠틀루의 호박색 눈동자를 향했다. "하모니 아가씨가 어디 출신인지 나는 알 수 없제, 여기 어떻게 왔는지, 왜 왔는지, 아는 척을 할 자격도 없데이... 그려도 아가씨가 여기 와 준 거는 참말로... 정말 때맞춰 잘 와 줬다는 말밖에 헐 말이 없다."
스미스 할머니의 말의 끝자락에서 스쿠틀루는 몸을 떨었다. 지난날의 눈 덮인 암벽의 썩은 이빨처럼 차가운 무언가가 그녀의 몸 속을 지났다. 스쿠틀루는 엔트로파의 모습 아래로 좀 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그 고통에서 도망치려 했다. 과거의 훈훈한 신기루 안에서, 주름살진 늙은 포니의 사색적인 모습을 돌며 춤추는 그 고통에서. 갈수록 아득해지고 갈수록 깊어지는 숨 속에서, 그녀는 산 포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스미스 할머니께서 옳으시길 바랄 수밖에 없네요. 애플잭을 위해서, 온 가족 여러분을 위해서—" 스쿠틀루는 순간 몸을 떨었다. 두 호박색 눈동자는 엄청나게 붉은 색깔 앞에 도취되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피흘리는 듯한 하늘과 그 뜨거운 숨 앞에 마지막 포니는 재앙이 3개월 앞당겨 이 땅에 도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세, 셀레스티아 공주님 맙소사! 저, 저게 뭐죠?!?"
스미스 할머니는 눈을 꿈벅거리더니 고개를 위로 들었다. 회색 갈기가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깊은 숨이 코로 빨려 들어가며 얇은 사지로 버티고 선 휘청대는 몸을 가득 채웠다. "어라라? 아가씨. 이 늙은이랑 장난을 치고 싶은 모양이구마!" 스미스 할머니가 눈을 찡긋하더니 뽐내듯 저만치 걸어갔다. "대체 와 그라는지는 모르겄는디, 저녁노을 아이가! 이거 말고 다른 게 있나?"
두어 시간은 수백 그루의 사과 나무와 함께 저만치 지나갔다. 동쪽 과수원의 3분의 2 정도를 덮고 있던 나무들은 깨끗이 털렸다. 사과로 가득한 바구니는 말 그대로 산처럼 쌓였다. 그것들 대부분은 지금 커다란 나무 수레의 뒤에 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빅 매킨토시는 마구에 수레를 매달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스위트 애플 에이커 한가운데의 커다란 붉은 헛간을 출발해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빅 매킨토시가 걸어가고 있는 길 옆으로는 빅 매킨토시가 다음에 나를 사과 바구니를 정갈하게 정리해 쌓고 있는 애플잭이 보였다. 그녀는 땀에 젖어 축축해진 금발 갈기를 털어 내며 고개를 돌려 근처 언덕 꼭대기에 드리운 어둑어둑한 실루엣을 흘끗 바라보았다.
스쿠틀루는 한 무더기의 검은 흙과 굽어진 풀 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불타는 듯한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은 서쪽으로 서서히 지고 있었다. 마지막 포니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다. 태양은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온몸에 휘감고 붉은 화염에 그 몸을 담그는 녹은 금처럼 보였다. 스쿠틀루는 부드러운 진홍의 업화를 똑바로 대면하며 숨을 내쉬었고, 상쾌한 바람이 언덕 위로 불어왔다. 그녀는 호박색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윗몸을 들어올리며 바람을 몸 깊숙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두 앞다리가 두 번째 날개라도 되는 양 쭉 펼쳤고, 따뜻한 산들바람이 검은 갈기를 차고 들어와 호박색 갈기 한 줄을 숨겨 둔 띠라도 되는 양 마구 흔들었다. 대지를 씻어 낸 향기는 흔들리는 잎사귀와 꽃피는 씨앗의 향기로 그 향그러움이 더했다. 그렇기어 그녀는 날개 없이도 이 하늘 위로 날아올라 이 이상하게 따뜻한 세계를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재와 더욱 차가운 기억 너머로 숨어 그녀를 피하던 이 세계를.
"너거들 캔틀롯 왕궁비서덜은 바깥에 진짜 안 나가는 모양이구마." 애플잭의 발걸음 소리가 대지를 부드럽게 밟으며 뒤편에서 들려왔다. "확실히 여그 근처라모 너거가 보던 노을보다 배는 아름답겄제."
페가수스는 떨리는 숨과 함께 촉촉해진 두 눈을 열어 노을에 녹아 가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건 한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기 마련이죠. 저 멀리 날아가 영원히,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돌이켜보면 영원히 그리워할 그런 것들이죠." 스쿠틀루의 날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볍게 한 번 펄럭였다.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애플잭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전 당신 같은 어스 포니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무언가 보자마자 그것이 정말로 멋진 거란 걸 알고, 거기에 헌신할 수 있다니 말이에요."
"내도 하나 고백해도 될까 모르겄다." 애플잭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스쿠틀루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내는 언젠가 내도 날 수 있을 거라고 꿈을 꾸곤 했다. 예쁜 페가수스의 날개를 달고 내 날개로 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제." 애플잭은 조용하지만 어린 소녀처럼 킥킥 웃었다. "그저 나으 어린 날의 몽상일 뿐이었제."
"계속 몽상하셨으면 좋겠네요." 스쿠틀루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스쿠틀루의 얼굴은 다시 한 번 반짝이는 태양의 마지막 빛줄기까지 잡아먹고 있는 지평선을 향했다. "저희 같은 포니들이 날개를 가진 건 그저 도망치기 위해서에요."스쿠틀루는 침을 삼켰다. "저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애플잭의 녹색 눈동자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단호한 한숨과 함께 스쿠틀루의 검은 갈기를 쿡쿡 찌르더니 남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하모니, 따라오그라. 나가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으니께." 애플잭은 발걸음을 옮겼다.
스쿠틀루는 고분고분하게 그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스쿠틀루는 애플잭과 거리를 맞추기 위해 어느샌가 가볍게 달리는 정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애플잭은 과수원의 구석으로 스쿠틀루를 인도했고, 덩굴이 칭칭 감고 있는 강철 아치문을 지나 똑바로 걸어가 무성하게 자란 밝은 흰색의 꽃밭으로 다가갔다. 완만하게 경사진 이퀘스트리아의 평원은 아득한 울타리 너머로 펼쳐져 있었고, 지평선은 서늘한 저녁이 서서히 다가옴과 동시에 보라색으로 변했다. 황동색 페가수스는 이 넋을 빼놓을 정도의 광경에 완전히 얼이 빠져 걸어가다가 애플잭이 부드러이 멈춰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애플잭의 눈 앞에 무엇이 있는지 흘끗 보자마자 스쿠틀루는 어렴풋이 그 이유를 깨달았다.
비석들이 서 있었다. 아주 많이 서 있었다. 여덟... 열둘... 스물... 스쿠틀루가 언뜻 보기에도 적어도 서른 개의 비석이 서 있었다. 새하얗게 표백된 대리석 비석 위에, 저 멀리 뒤편에 서 있는 비석의 얼굴에조차도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비석을 쭉 훑어 내려오던 스쿠틀루는 이 비석들이 애플 가문 대대로 묻혀 온 묘지임을 알았다. 스쿠틀루가 알아보는 이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름들이 비석 위에 적혀 서 있었다. 가장 최근에 세워진 듯한 비석, 애플잭과 스쿠틀루가 그 앞에 서 있는 비석에 적힌 이름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애플샤인: 헌신적인 아버지, 가장 진실한 어스 포니로 여기 잠들다.'
'오렌지블로섬: 자애로운 어머니, 포니빌의 긍지와 기쁨으로 여기 잠들다.'
스쿠틀루는 아무 말도 없이 비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두 호박색 눈동자는 두 비석 앞에 놓여진 백합 위로 떨어졌다. 얼마 전에 가져다 놓은 듯 아직 싱싱했다. 그녀는 애플잭의 어머니, 오렌지블로섬의 비석 앞의 부드러운 대지에 남은 어린 망아지의 발굽 자국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따지 않은 사과가 매달린 나무들과 저녁의 산들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흰 꽃의 화단까지, 이 주변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지막 포니는 이번만큼은 죽음이 평화로워 보였다. 거의 질투하는 마음까지 생겨났다.
"여기 너걸 데려온 기는 내가 전에 말한 게 그냥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거를 보여 주고 싶어서 데려온 기다." 애플잭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플잭은 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오렌지색 발굽을 들어 그 사이를 가볍게 빗질했고, 입을 꼭 다문 채 몇 마디 사랑을 담은 말을 중얼거렸다. 애플잭은 좀 전 비석 사이를 빗질한 발굽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댔고, 그 발굽으로 비석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이 일련의 행동이 끝나고 나서, 애플잭은 수풀 너머로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수많은 흰 대리석 묘비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말 그대로 대지에 모든 걸 준데이.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을 대지에 주제. 여기 우리 땅은 단순한 흙이랑 사과나무덜 그 이상으 존재니께 말여. 우리으 뼈와 살이니께. 우리덜이 따는 과일 하나하나는 죄다 우리의 일부라는 기다. 그리고, 정말 솔직허게 말하건대, 내는 이 외의 다른 길도 없데이."
어스 포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조금 걷더니 스쿠틀루를 향해 다가왔다.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떨어지도 않는 입으로 나한테 남기신 말이 있다. 아버지가 뭐라 그러셨냐몬, '항상 강해지거라, 애플잭' 이라고 카셨제." 애플잭은 저 멀리,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사과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꺼정 아버지의 유지를 계속 받들어 왔데이. 이거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기라. 아버지를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이 땅을 위해서 내는 계속해서 강해졌데이. 내는 그렇게 너무 오래 강해져 버렸다. 어떻게 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르게, 그렇게 됐데이. 나한테는 그건 그냥 시간 낭비였던기라. 다른 가족덜은 눈물을 흘릴 여유는 있었제. 그저 모든 게 순리대로 됐을 뿐이여. 애플블룸은 너무나 소중하고, 또 너무 어려 강해질 수 없었데이. 스미스 할매, 휴, 어머니 에포나께서 스미스 할매헌티 축복을 내리시길. 할매는 항상 우리 애플 가문으 정신적 지주셨데이. 헌디, 할매의 뼈는 고된 일을 견디기엔 너무 약했다. 빅 매킨토시, 울 오빠는 힘은 세지만서도 성격이 유순허고 말도 제대로 못 허니께. 생긴 건 우락부락혀도 그 무게를 짊어지기에는 너무 마음이 여렸다는 기다. 그 모든 건 다 나헌티 왔데이. 그리고 그게 옳은 거였다. 내는 우리 가족으 맨 앞에 선 선봉이 된다는 게 행복혔다. 그기 내 일이었고, 내는 그저 내 일을 열심히 헐 뿐이었고 말여. 나헌티 그건 요즘에는 아버지으 기대에 부응하는 거 이상이여. 내는 내가 이 대지를 위해 헐 일이 무언가 살폈고, 대지가 나헌티 해 줄 일이 무언가 살펴 왔었다. 헌디 요즘 들어 말여, 아버지가 너무 일찍 이 세상을 뜨실 때, 아버지랑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던 모든 것덜이 찰나의 순간에 저 멀리 사라져 갈 때 느끼셨을 그 기분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데이. 내는 진심으로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만큼 사랑한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내도 이 땅을 사랑한데이. 똑같은 가족이니께 말여, 너거도 알제? 생명, 유산, 그리고 여기 대지. 이 모든 것덜은 돌고 도는 기다. 나으 이 변변찮은 두 눈 안에는 너그 캔틀롯으 날다 긴다 허는 작가들이 쓰고 싶어 안달허는 좋은 시보담도 더 아름다운 시가 있다는 기다."
스쿠틀루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의 심장 소리조차 애플잭의 말에 화답하듯 조용해졌다. 오렌지색 암말은 서서히 고개를 돌려 페가수스의 호박색 두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모니 아가씨, 아침이 오면, 저 해가 다시 한 번 이 땅 위로 떠오르면 아가씨는 이 땅을 떠나야 한데이. 아가씨 마음 속에 오늘, 오늘 하룻동안 배운 것들을 품고 이 땅을 떠나 캔틀롯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애플잭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겁주는 것처럼 들렸다면 미안하구마. 그려도 나가 말하는 건 엄연한 하나으 사실이데이. 만약 나랑 빅 매킨토시가 일어나가 나머지 사과를 따러 문 밖으로 나갔는디 아가씨가 우리를 좀 더 지켜보겄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섰으면 셀레스티아 공주님헌티 편지를 쓸 수밖에 없을 테니께 말여. 우리 앞에 누워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전의 모든 조상님들헌티 맹세하건대, 그건 별로 좋은 내용이 되지는 않을 끼다. 아마 태양의 여신께서 이 하늘을 다스릴지는 몰러도, 이 대지를 다스리시는 건 아니란 말여. 스위트 애플 에이커으 일은 우리 일이여. 시간으 끝에 다다를 때까지, 그건 우리 일이여."
스쿠틀루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 사이에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스쿠틀루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시간의 끝이라... 꽤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애플잭. 그 누구도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요. 그건..." 스쿠틀루는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아마 당신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도 훨씬 일찍 도래할 거에요."
"내 할 말은 다 끝났데이." 애플잭이 말했다. "설령 세상이 오늘 밤에 멸망을 맞는다 혀도, 나는 나으 말을 끝까지 지킬 테니 말여. 내 말은 내 살과 피와도 같으니께. 좀 전에, 너무 까칠허게 굴어서 미안혔다. 골치가 아프지 않은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으니께 말여. 아가씨가 안 좋을 때 온 기라. 하모니 아가씨, 인쟈 가 봐도 된다카이. 그리고 나가 나중에 아가씨를 다시 보게 되모 그 때는 우리 애플 가문과 대지처럼 만나게 될 끼다. 아마 그 때는 나으 친절한 면을 보여 줄 기회가 될지도 모르겄구마. 아가씨에 대한 심심한 감사으 인사도 할 수 있겄제." 애플잭이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아가씨가 나쁜 포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어. 그렇다고 전적으로 정직하다고도 생각하는 것도 아니여. 나헌티는 그기 잘 이해가 가질 않는데이."
"그거야 당연하겠죠." 스쿠틀루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는 두 날개를 펼쳐 몸을 띄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순간 다시 애플잭을 흘끗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것만은 반드시 알아 두셔야겠네요, 애플잭. 단순히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거짓말이랍니다."
애플잭은 안절부절못하며 발굽 모서리로 땅을 조금씩 후벼 파기 시작했다. 이런 행동은... 절대로 강해 보이는 제스처는 아니었다. 스쿠틀루는 더 이상 이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웠는지 땅을 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당당히 어두워져 가는 지평선으로 날아갔고, 이내 보라색으로 물들어 가는 나무 뒤로 사라졌다.
오렌지색 암말은 오후의 무게를 가득 실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는 부모님과 선조들에게 마지막 예의를 갖추고는 몸을 돌려 천천히 수풀 바깥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혼자 과수원으로 걸어 돌아가고 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줄지어 선 나무 뒤에는 밤의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었다. 페가수스의 희미한 실루엔은 꽃피듯 밤하늘 위로 피어나는 별들 사이로 은밀히 춤추고 있었다. 맑은 한 쌍의 호박색 눈동자는 애플잭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나무 위를 날며 '영혼의 지지대'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인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은 끈기가 부족한 것 같네요. 애플잭."
애플 가족들은 밤에는 일손을 쉰다. 태양이 비치던 때 수확된 사과의 마지막까지 수레에 가져다 싣고, 꽤 많은 헛간을 돌아다녔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꾸벅꾸벅 졸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집안일을 마저 끝내는 버릇이 있었다. 몇몇 희미한 불빛이 초라한 집의 창문 위로 애처롭게 떠올랐다. 그들의 불빛은 땅 위에 내려앉은 피곤한 어둠을 비추어 몰아내기에는 너무나 연약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보랏빛 연무와 함께 농장에는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부엉이 웃는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스쿠틀루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애플 가족의 집에서 가로질러 가면 있는 붉은 헛간의 지붕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으니까. 자고 있는 애플잭의 정수에 고정된 자신의 '투영'된 모습을 유지할 만한 최대한의 거리만이라도 유지해야 했으니까.
"이봐요, 내가 재미있는 걸 하나 알아냈는데, 뭔지 아세요? 포니빌에 웬 부랑자 하나가 있거든요. 그게 저에요."
황동색 페가수스는 한숨을 쉬더니 한쪽의 녹슨 수탉 모양 풍향계에 뺨을 대고 거의 눕듯이 주저앉았다. 네 다리는 시큰둥하게 접혀 그녀의 몸뚱이 아래에 놓였고, 그녀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녀는 잠을 자려고 다리를 굽힐 수 없었다. 그녀가 보낸 회색의 세월, 하모니 호를 조종하며 보낸 세월 동안 하루를 보내면서도 잠을 거의 자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그 뿌리 깊은 얼얼한 흥분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솟구치고 있기 때문인 것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잠들 수 없었던 것뿐이다. 이 '실체화'되어 과거에'투영'되어 있는 한, 이 모습으로 과거에 있는 한, 그녀는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스파이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 축복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반대의 경우도 떠올랐다. 이렇게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애플잭의 저 단단한 옹고집의 벽을 뚫을 수 없다면 그건 그저 저주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스쿠틀루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유령처럼 있는 것뿐이었다. 이 땅에,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영원히 남아야 하는 저주를 안은 잠들지 못하는 고대의 유령처럼, 그 존재를 아주 당연한 양 부정하는 포니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면서 말이다. 아주 이상하게도 이건 그녀가 죽음의 땅에서 보내던 외로운 삶과 동전의 양면처럼 똑같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냄새야?"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코를 킁킁댔다. "애플블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거에 너무 들떠서 깜빡 잊고 있었어!"
스쿠틀루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머리는 아침부터 맞닥뜨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핑핑 돌고 있었다. 아직 미래로 돌아가기까지는 며칠이 남아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애플잭에게서 떠나면 안 되었다. 태양이 떠오르면 그녀는 두 깜짝 놀란 포니들 앞으로, 이 대지 위로 뛰어들어야 했다. 어쩌면 그들의 정말 정중한 제안을, 떠나 달라는 제안을 뻔뻔하게도 무시하고 나타난 그녀를 쇠스랑으로 꿰어 꼬치를 만들려고 하는 그들을 설득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럼 왜 아가씨가 여길 떠나면 안 되는데? 스쿠틀루는 그 말에는 도저히 완벽히 설득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애플잭을 만났을 때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아니까. 그녀가 원했던 건 단순히 서로간에 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뿐인데, 애플잭이 그녀에게 입을 열게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애플잭이 그녀를 믿게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제, 그리고 이제는 진실을 보여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지금 애플벅 시즌의 사소한 문제보다도 더한 문제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 거라고. 머지않아 애플벅 시즌은 그 어떤 것을 위한 시즌이 되지 않을 거라고. 태양과 달... 그리고 포니 문명과 함께 시간과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체 누구한테 장난질을 하고 있는 거야?" 페가수스는 자신의 낯선 길고 검은 갈기를 가지고 장난치며 쓸쓸히 별이 빛나는 연무가 덮인 대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정직의 원소'에게 정직하지 않게 구는 한, '정직의 원소'는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정직하게' 말해 주지 않을 거야."
아마도 그게 열쇠가 될지도 몰랐다. 애플잭은 치어릴리 선생님이 아니었다. 애플잭은 강했다. 애플잭은 준엄한 진실의 힘을 가지고 있다. 만일 스쿠틀루가 애플잭에게 찰싹 달라붙어 이퀘스트리아에 도래한 이 끔찍하고 무서운 운명을 알려 준다면, 저 오렌지색 암말의 머릿 속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윤활유를 발라 똑바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러면 기꺼이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접선시켜 줄 것이다. 그러면 스쿠틀루가 그녀를 도와 이 농장의 일을 도울 수 있게 허락해 줄—
스쿠틀루의 눈이 비틀려 돌아갔다. 그녀는 끙 소리를 내며 얼굴에 발굽을 가져갔다. "이런 망할. 그건 내 알 바 아냐! 내 알 바 아니라고!"
스쿠틀루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 유일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 재앙을 초래하는지, 무엇 때문에 셀레스티아 공주와 루나 공주가 죽어야 하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괴로운 마음의 가장 앞에 서 있어야 할 것이었다. 저 앞뒤 꽉 막힌 애플잭도, 애플잭 가족에게 남겨진 유산도, 이틀도 남지 않은 불가능한 수확의 기한도, 저 두 농부 포니들이 끝끝내 고집을 포기하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받지 않아 거대한 위험에 놓일 이 농장의 운명도, 절대 그 앞에 선행하지 못한다...
스쿠틀루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엔트로파의 모습을 빼다박은 몸뚱이 밖으로 거친 숨을 뿜어냈다. 자기 스스로 더 중요한 걸 생각하려고 스스로를 얼마나 채찍질하든 상관없이, 애플잭과 처참한 실패를 맞게 될 애플 가족의 애플벅 시즌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도저히 아무것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애플 가족의 저 쥐꼬리만한 사과 수확을 돕는다고 해도, 이퀘스트리아의 멸망의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잡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멸망한 이퀘스트리아의 대지에 다시 해와 달을 드리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그녀의 온 몸에 한 줄기의 분노가 차올랐다. 분노가 차오른 자리에는 고통만이 남았다. 고통이 있던 자리엔 잿더미만 남았다. 잿더미가 남은 곳에는 고향이 있었다. 고향이 있던 자리에는 고향만이 있었다. 외로이 있었다.
스쿠틀루는 금속이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우는 소리가 헛간까지 와 메아리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강철 수탉 모양으로 만든 풍향계가 불쾌하게 그녀 앞에서 삐걱이며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며 눈을 꿈벅였다. 페가수스는 자신의 발굽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발굽을 휘둘러 강철 풍향계를 후려쳤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풍향계는 묵직했다. 적어도 어디 한 군데는 묵직한 고통이 엄습해야 했다. 모든 것은 그저 당혹스러운 무감각의 고치 앞에 무력했다.
마지막 포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흐릿하게 엄습하는 불안에 맞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이 흥미로운 실험을 계속해 보기로 했다. 수탉은 빙글빙글 돌다가 서서히 멈추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황동색 다리를 들어 부드러운 부분을 녹슨 수탉의 뾰족한 부리에 가져갔다. 그녀는 날카로운 부리에 다리를 가져다 대고 힘껏 눌렀고, 더욱 힘껏 눌렀다. 하지만 그녀의 피부는 뾰족한 부리에 눌려 안으로 움푹 들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보통 포니였다면 다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당장 피가 터져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온 힘을 다하면서도 엔트로파의 단단한 고치는 뚫을 수 없었다.
이 '투영'된 몸은 그녀에겐 여전히 낯선 몸이었다. 검은 갈기를 타고 내려온 호박색 갈기 한 줄기부터 티 하나 없이 깔끔한 발굽까지, 그녀에겐 낯설었다. 스쿠틀루는 마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타임 캡슐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반짝이는 황동으로 겉을 싸 스파이크의 녹색 연무에 휩싸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입 캡슐 같았다. 만일 스쿠틀루가 자기 스스로 대포의 포신에 몸을 넣고 이 별의 최심부를 겨냥해 대포를 쏜다고 해도, 그녀는 자기의 몸이 별의 대지를 뚫고 들어가 상처 하나 없이 반대편으로 튀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건 너무나, 끔찍할 정도로 편리해 보였고, 그와 동시에 불편했다. 죽어 파멸을 맞이할 세계로 되돌아간 스쿠틀루는 잠시나마 불멸의 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기분일까?
하루는 따뜻한 하루가 될 것이었다. 풀들은 푸르른 풀이 될 것이었다. 사과는 붉은 사과가 될 것이었다. 스쿠틀루의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즐길 수 없을 것 같은 씁쓸하고 달콤한 황홀경을 보여 준 과일은 붉은 사과가 될 것이었다. 과즙으로 가득한 저 자그마한 사과 하나하나는 서로 모여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편안한 정경을 색으로 물들였다. 오랜 세월 동안, 회색 죽음만이 지배하는 미래의 암울한 모습 속에서도, 저 천상의 정경 같은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히 스쿠틀루의 마음 속에 살아 있었다.
여기, 붉은 헛간의 지붕 위에는 순간의 분노가 후두둑 흩어졌다. 스쿠틀루의 흐릿한 기억은 주위를 감도는 귀뚜라미의 노래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느끼지 않았다. 전혀 힘들지도 않았다. 사과를 털고 나서도 땀도 한 방울 나지 않았다. 피곤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시간 여행자들의 종착역이 될 거라 여기던 '불가촉 천민'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 누구도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 외에도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녀는 차갑고 오만한 불변을 안고 있다는 거였다. 시간 그 자체로 그러하듯 말이다. 밤의 따분하고 낮은 노랫소리 아래로, 스쿠틀루는 무언가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신비로운 엔트로파 공주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 목소리는 웃고 있었다. 부엉이가 웃는 소리처럼 웃고 있었다.
떨리는 숨이 뿜어져 나왔다. 페가수스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해 보려고 필사적으로 하늘에 뜬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적어도 세 시간을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애플 가족의 집 너머로 빛이 은은히 새어나오기 시작할 때에서야 그녀는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도래할 회색의 황혼으로 뒤덮인 하늘과는 완전히 딴판인 하늘이었다. 하늘은 어두웠다. 죽음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망각의 장막으로 뒤덮인 하늘 너머에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살아 기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에포나 여신의 대탈출 이후에 남은 흔적을 따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밤하늘의 화폭 위 한가운데 빛나는 보석 같은 별들 중에서도 가장 밝은 보석이 하나 있었다. 달 말이다. 그저 단순한 달로 끝날 달이 아니었다. 이 별의 위성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위성이었다. 달이 원래의 티끌 하나 없는 모습으로 이 밤하늘에 내려앉은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나이트메어 문의 어두운 그림자는 앞으로 다가올 처참한 대재앙의 전조를 알리기라도 하듯, 달의 상앗빛 얼굴에서 흐려져 사라졌다. 그리고 여기, 미래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영혼으로 여기 선 스쿠틀루는 요약된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건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남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 속에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페가수스로 여기 섰다. 설령 그것이 행운이든, 불운이든간에.
"루나 공주님이 천 년 동안 저 위에 유폐되어 계셨을 때... 공주님도 그 대지에 스스로를 바치실 수 있었을까...? 궁금하네..." 스쿠틀루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가 하늘 위에 떠오른 찬란한 달에서 시선을 천천히 돌림과 동시에 목에 무언가가 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스파이크,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치게 될 대지는 대체 어떤 대지가 될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무언가의 발이 대지에 부딪히며 나는 또닥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스쿠틀루의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그 소리만으로 마지막 포니가 유추해 낼 만한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번득이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이 대지를 울리는 그 소리. 스쿠틀루는 재빨리 본능적으로 네 다리로 버티고 서서 고개를 돌려 헛간의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에서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가 마주한 것은 그녀 앞에서 헥헥대며 거의 바보스러워 보일 정도로 기분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개 한 마리였다. 꼬리는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날렵한 네 다리와 바람에 날리는 직물 같은 아름다운 털을 가진 러프 콜리였다. 스쿠틀루의 당혹스러운 두 눈은 순간 한쪽에 쌓인 상자와 지붕, 빗물 배수관을 따라 움직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 조그마한 강아지가 날개도 없이 헛간의 지붕 위까지 기어 올라왔는지 정확히 이해가 되기 전까지 말이다. 요 영리하고 조그마한 강아지의 모습은 그녀의 뇌리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아 두었던 어린 날의 기억을 헤집어 이름 하나를 그녀의 입에서 웅얼거리듯 끄집어냈다. "위... 위노... 위노나?"
강아지는 한 번 멍 하고 짖더니 더욱 바보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황동색 페가수스를 향해 달려들더니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며 그녀의 얼굴과 갈기를 열심히 핥았다. 그녀의 입에서는 쉿 하는 소리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이내 깔깔대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이내 자기를 핥아대는 강아지가 마치 스컹크라도 되는 양 한쪽으로 밀어 치웠다.
"알았어—알았어! 알았다니깐! 이야, 모든 애플 가족들이 '캔틀롯 왕궁비서'를 보고 화부터 내는 건 아니었구나!" 그녀는 다시 발굽을 굽히며 앉았고, 그녀의 두 눈은 즐거운 듯 자기 주변을 흥에 겨워 빙글빙글 돌며 뛰어다니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 핥지는 말라고. 마시멜로 맛이 나는 건 스위티벨이지 내가 아니란 말야. 기억이나 하니?"
위노나는 멍멍 짖으며 그녀 앞에 앉고는 그녀를 좀 더 핥으며 같이 놀고 싶다는 듯 숨을 가볍게 헐떡이고 있었다.
"하, 멍청한 꼬마 경찰 아가씨." 스쿠틀루는 엷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거대한 강철 비행선을 탄 네 멀고 먼 친척이 나중에 날 죽이려고 들 텐데, 가문의 수치 아니니?"
위노나는 털이 복슬복슬한 머리를 한쪽으로 갸웃했다.
"뭐, 길리엄도 나름 귀염성 있게 생기긴 했어. 그 산발한 머리 하며, 아주 역겨운 자식이었지. 예상대로, 속에 능구렁이를 수십 마리는 기르고 있더구나. 그래도 네 눈 같은 눈은 없더라고." 스쿠틀루는 눈을 찡긋했다.
위노나는 바보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순간 위노나의 고개는 휙 하고 들렸고, 그 두 귀도 쫑긋 섰다. 눈을 꿈벅이던 위노나는 동남쪽을 향해 고개를 휙 젖히더니 마구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흐음...?" 마지막 포니는 눈썹을 치키며 물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니?"
위노나는 큰 소리로 짖었고, 다시 한 번 으르렁거리더니 겁도 없이 헛간 지붕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한쪽에 쌓아 둔 짚단 위로 내려앉은 위노나는 밤에 흠뻑 젖은 과수원 저 멀리 네 다리를 빠르게 놀리며 엄청난 속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야, 그 황무지에서도 저런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스쿠틀루는 헛간 지붕의 모서리로 터벅터벅 걸어가 눈을 꿈벅였다. "아 나, 이게 웬 미친 소리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데. 잠깐, 이거 뭐야." 그녀는 지붕 모서리에서 거의 비틀거리며 서서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두 개의 커다란 그림자가 애플 가족의 집 앞문을 박차고 나오며 뛰쳐나오더니 동남쪽으로 쏜살같이 사라져 갔다. 달빛은 두 그림자 중 하나가 꽉 붙잡고 달려가는 쇠스랑에 부딪혀 빛나고 있었다. 그들의 그림자가 사과 나무 사이로 꽃히며 사라지는 순간, 저 멀리서 금속이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늦게까지 사과를 털러 나왔을 리는 없을 거고, 흠,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 건가?" 스쿠틀루의 얼굴은 웃는 것도 아니고 찌푸린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그림자 뒤로 미끄러져 날아가 애플잭이 '고정'해 줄 수 있는 범위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들키면 안 된다는 거였다.
"오빠야, 앞으로 몇 미터만 더 가면 된데이." 애플잭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애플잭의 머리 위에는 모자가 얹혀 있지 않다. 그녀는 조용히 흔들리는 사과 나무의 나뭇가지 아래를 지나 어둑어둑한 언덕을 향해 조용히 달려갔다. 쇠스랑의 톱니 같은 얼굴은 그녀의 앞을 향하고 있었다. "나가 말했잖어! 저거 함정에 걸리모 자빠져 퍼 자던 드래곤도 깨울 먼큼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고 캤제! 이 때를 놓치면 안 된데이!"
붉은 수말은 그저 여동생이 앞서 간 어둑어둑한 길을 따라 발을 질질 끌며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매서웠다. 그는 밤의 베일 너머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조용히 달려가고 있는 동쪽에 무언가 반짝이는 무언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빅 맥, 조그만 깃털 하나라도 갖다 댔다카믄 바로 철창 닫히게 줄 매 놨나?"
"그~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고, 순간 앞다리를 들어 열심히 걸어가던 애플잭을 붙잡아 걸음을 멈추었다. 조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그들 바로 앞에 있었다.
"저 염병할 거는 대체 뭐꼬—?" 애플잭은 순간 헉 소리를 냈고, 이내 달빛에 흠뻑 젖은 개 짖는 소리에 힘이 쭉 빠졌다. "아우, 이런 썅! 위노나! 저걸 헛간에 갖다 처넣고 문을 꽉 닫아 놨어야 혔는디! 후딱 가자! 저것덜이 우리 꼬마를 갖다 해치기 전에 서둘러야 쓰겄어!"
둘은 바스락거리는 키 큰 풀들과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고, 이내 탁 트인 밖으로 나왔다. 밀랍 같은 달빛의 상아빛 달빛 아래로 위노나의 실루엣이 사납게 껑충거리며 훌쩍훌쩍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위노나는 대롱대롱 매달린 강철 철창을 향하고 있었고, 철창은 스위트 애플 에이커 가장자리의 나무 울타리 앞에 매달려 있었다. 철창에 붙은 줄 위로는 한 줄기 종소리가 시끄럽게 매달려 걸렸다. 철창이 멈추자 종소리도 스스로 스러졌다.
"쉿! 오빠야, 가만 있으래이!" 애플잭이 쉿 소리를 냈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는 걸음을 멈추었고, 순간 돌덩이처럼 멈춘 강철 케이지를 바라보며 엄청난 공포에 빠졌다. 철창이 울리는 소리는 멈춰 있다. 과수원의 동남쪽 끝은 을씨년스러운 냉기와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강철 철창 안에 무언가 앉아 있다. 검은 무언가가 앉아 있었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놈의 두 눈동자도 그 둘을 맞서 째려보고 있었다. 놈의 몸뚱이에서 딱딱한 숨이 나가고 다시 들어올 때마다 놈의 몸뚱이는 솟았다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건 머길래 우리덜을 똑바로 째려보고 있는 기가?" 애플잭은 숨막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위노나의 짖는 소리도 멈추었다. 강아지는 초조한 듯 두 포니를 향해 걸어왔고, 그 목소리는 축 처진 두 귀처럼 깊은 낑낑거림을 말하고 잇었다. 애플잭이 속삭였다. "오빠야, 내는 이기 별로—"
두 덩어리의 무언가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애플잭을 강하게 후려쳐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빅 매킨토시는 헉 소리를 내며 잽싸게 몸을 돌렸고, 애플잭을 구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주변의 사과 나무에서 튀어나온 네 개의 몸뚱이들이 빅 매킨토시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그를 덮쳤다. 빅 매킨토시는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리며 놈들을 걷어차 떼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애플잭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두 놈 중 하나를 들이받았다. 애플잭은 잽싸게 몸을 돌려 놈을 걷어차려고 했지만, 놈이 휘두른 발톱에 다리를 맞았다. 애플잭은 세 다리와 입에 물고 있던 쇠스랑으로 비틀거리며 섰다. "이 갈아마셔도 션찮을 잡것들 같으니! 이 잡것들이 우리가 논 함정에다 역으로 함정을 파 놨구마!"
빅 매킨토시는 큰 소리를 지르며 사과나무를 향해 뒷다리를 힘껏 휘둘렀다. 사과나무가 통째로 흔들리더니 그의 몸뚱이에 달라붙어 있던 놈들에게 묵직한 과일들을 마구 떨어뜨렸다. 빅 매킨토시의 강인한 사지는 어찌어찌 달라붙어 있던 놈들 중 세 놈을 떼어놓을 수 있었지만, 덤불 아래에 숨어 있던 네 놈이 더 튀어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빅 매킨토시를 덮쳤다. 놈들은 그를 과수원 바깥으로 거칠게 떠밀었고, 빅 매킨토시의 몸은 거칠게 나무 울타리를 뒤집어 놓았다. 엄청나게 커다랗고 단단한 흉물들과 부서진 울타리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자기의 네 다리로 다시 버티고 설 수 없을 것 같았다. 놈들은 빅 매킨토시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놈들의 주둥이 바깥으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튀어나왔고, 놈들의 발에는 면도날 같은 발톱이 튀어나와 있었다.
"오빠! 나가 갈 테니 조금만 참으래이!" 애플잭은 겁도 없이 눈앞에 버티고 선 세 놈 사이를 잽싸게 비집고 나갔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대지를 뒤덮고 있는 놈들의 바다를 껑충 뛰어넘어 갔다. 애플잭은 놈들에게 짓눌린 빅 매킨토시를 향해 심장이 멎을 듯 달려갔다. 하지만 애플잭이 자기 갈기 길이만큼도 가지 못했을 때, 철창 안에 들어 있던 놈은 손쉽게 철창의 빗장을 후려쳐 부수고 나와 한 줄기 비명과 함께 애플잭을 덮쳤다. "으아아아!" 애플잭은 놈의 몸뚱이에 맞고 튕겨져 나가 흙길로 내팽개쳐지며 비명을 질렀다.
애플잭의 쇠스랑은 무력하게 한 쪽으로 날려가 떨어졌다. 애플잭은 공포에 질려 눈 앞에 바싹 다가온 놈의 주둥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송곳니가 가득한 채 침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위노나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뛰어들었고, 놈의 어깨를 온 힘을 다해 물어뜯었다. 놈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쉿 소리를 내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지를 한 번 튕겨 위노나를 잡아 바닥에 패대기쳤다. 위노나는 대지에 맞고 튕겨져 나가며 구슬픈 비명을 질렀고, 그 순간 더 많은 놈들이 위노나를 사방으로 둘러쌌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는 이 추잡한 짐승들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문득 느꼈다. 알 수 있다. 이 가증스러운 짐승들은 하나같이 발톱을 세워 그들의 살을 베어 뼈와 살을 분리해 버릴 거라고—
흐릿한 황동색 형체가 달빛을 뚫고 치솟았다. 애플잭을 덮쳐 짓누르고 있던 짐승은 어느샌가 없어져 있었다. "어, 어라?!" 온 몸에 힘이 쭉 빠진 금빛 갈기의 암말은 영문을 몰라 눈을 꿈벅이며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엉덩이 쪽에 무언가 있었다.
날개 달린 무언가가 비명을 지르는 놈의 몸뚱이 한쪽에 발굽을 무자비하게 내려치고 있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소리가 밤 공기를 가득 채웠다. 두 놈이 더 페가수스의 뒤에서 훌쩍 뛰어 그녀를 덮치고 있었다. 그녀가 가볍게 휘두른 뒷다리는 엄청난 폭발음을 내며 놈들을 저만치 날려 버렸고, 놈들의 몸뚱이는 나무 울타리를 산산조각내며 날려갔다. 호박색 눈이 달빛에 반짝이며 '하모니'의 그림자가 칠흑 같은 검은 대지 위로 불타며 빅 매킨토시를 덮쳐 누르고 있던 놈들의 몸뚱이를 걷어차 저만치 굴렸다. 그녀가 휘두른 발굽은 놈들의 딱딱한 두개골에 세차게 부딪쳤고, 놈들의 절반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저만치 도망치고 있었다. 다른 절반은 갑자기 나타나 대담하게 놈들을 때려눕힌 그녀의 공격에 재미있다는 듯 덮쳐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또 아가씨여?!" 애플잭은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빅 매킨토시의 곁으로 잽싸게 다가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깜짝 놀라 떨리고 있었다. "아아, 이런 망할. 하모니 아가씨. 나가 가라고 하지 않았나?"
"감사의 인사는 됐습니다." 스쿠틀루는 으르렁거리며 답했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근처에 늘어선 놈들을 하나하나 째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순간 대지를 향했다. 스쿠틀루는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쇠스랑을 보았다. 스쿠틀루는 발굽 하나로 쇠스랑을 내려쳤고, 공중으로 떠오른 쇠스랑의 나무 손잡이를 그녀의 이빨로 악물어 잡았다. 놈들의 포효 소리와 함께 놈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지만 그녀보다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그녀는 쇠스랑을 입에 문 채 널찍이 한 번 휘둘러 베었고, 그녀의 검은 갈기와 그 위에 새겨진 호박색 갈기가 쇠스랑의 뒤를 따라 흔들렸다. 그녀는 무자비하게 쇠스랑의 날카로운 톱니를 앞으로 해 줄지어 선 놈들의 가죽 같은 살점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뜨겁고 검붉은 액체가 밤을 적셨다. 몇 놈들은 고통과 패배감에 가득한 비명 소리를 내지르며 도망치고 있었지만,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듯한 세 놈은 멍청하게도 스쿠틀루의 뒤에서 그녀를 향해 내달렸다.
페가수스는 헐떡이는 숨과 함께 한 놈을 걷어찬 다음 한 발굽으로 잡고 빙빙 돌렸고, 훌쩍 뛰어올라 그녀를 덮치려고 하던 한 놈을 쇠스랑으로 후려쳤다. 그 다음 쇠스랑을 등 뒤로 휙 던지더니 활짝 펼친 두 날개로 쇠스랑을 잡아 빙빙 돌리더니 뒷다리로 쇠스랑의 손잡이를 걷어찼다. 공기를 쌕 하고 가르던 쇠스랑은 입을 쩍 벌리고 있던 놈의 두개골을 산산조각내며 날아갔다. 나무 같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쇠스랑은 공터를 지나 나무 몸뚱이에 날아가 박혔고, 조각난 귀 조각은 피투성이가 된 연장의 왼쪽 이빨에 걸려 빙빙 돌아가다 이내 멈췄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놈은 큰 소리로 울부짖더니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를 붙잡고 절뚝거리며 먼저 도망간 무리를 따라 울타리를 넘어 칠흑 같은 숲 속으로 사라졌다. 위노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한지 네 다리로 다시 일어서고도 머리를 마구 흔들었고, 이내 울타리 쪽으로 달려가 저 멀리 사라진 그 추잡한 녀석들을 향해 커다란 소리로 짖었다.
애플잭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 온 싸움을 내내 지켜봐 왔으니 진이 빠질 터였다. 그녀는 빅 매킨토시의 어깨를 흔들었고, 걱정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 빅 매킨토시는 살짝 움찔했지만, 가벼운 타박상일 뿐이었다. 그는 끙 소리를 내며 무너진 나무 울타리와 나무 조각 아래에서 기어나와 애플잭의 앞다리를 괜찮다는 듯 토닥거렸다. 금색 갈기의 암말은 침을 삼키며 빅 매킨토시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고, 스쿠틀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 고맙심더. 아, 아니 그게, 진심으로 고맙심더. 하모니 아가씨. 우리 목숨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맙심더. 저 갈아 마셔도 시원찮은 것들을 몇 주 전부터 쫓아낼라고 얼마나—"
"트롤이에요."
"뭐라꼬예?" 애플잭은 눈부신 달빛 아래에서 눈을 꿈벅이며 물었다.
"저 놈들은 트롤이라는 것들이에요." 스쿠틀루가 침을 탁 뱉으며 위노나가 아직도 멍멍 짖고 있는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놈들, 아직 안 갔어요."
"에에? 저눔들, 아직 안 갔다고요?" 애플잭이 깜짝 놀라 숨을 들이쉬었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의 이빨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고개를 흔들더니 숲을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저것들은 아직 저기 있어요. 나무 사이에 숨어서 우리를 째려보고 있죠. 해가 뜨기 전에 저것들은 다시 여길 덮치고 싶어할 거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요. 뭐, 애플잭도 보셨다시피 저놈들은 태양을 싫어하거든요. 적어도, 쉽게 트롤 저것들을 처리할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우, 우째 그걸 다 아시는 겁니꺼?"
"그 어떤 것보다도, 트롤 저것들에 대해선 제가 유독 잘 알거든요." 스쿠틀루는 기진맥진한 두 남매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켰다. "지금껏 벌인 모든 일들이, 저것들 때문이었다는 거에요? 트롤이랑 싸우고 있었던 거에요?"
"저, 저것들이 보기보다는 그리 나쁘지—"
"애플잭, 저것들은 생긴 것보다 더 심하게 놀아요. 지금 이 시간대에 이퀘스트리아에 트롤 놈들이 나타날 수는 없다고요. 아, 봄철 말이에요, 제 말은.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거죠?"
"제가 좀 전에 얘기해 드린 거, 그새 다 까먹으셨슴꺼?" 애플잭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녀와 빅 매킨토시는 힘없이 줄지어 선 나무들을 바라보았고, 나무에 매달린 사과들에 비친 그들의 눈은 심란하게 다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모든 걸 다 우리 힘으로 해야 합니더. 여긴 우리 땅이니까예."
"애플잭, 대체 그 이유가 뭐죠?" 스쿠틀루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그 답은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라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믄... 왜냐믄 처음 이 땅에는 저것들이 먼저 와 있었으니께요, 우리 탓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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