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태양은 아름다운 가락과 같이 찬란하다. 한 과수원에도 세계는 꽃피듯 피어났고, 그와 같이 새벽의 따스하고 밝은 빛줄기는 울창한 사과나무 숲 위로 퍼져나와 고된 일로 지친 세 포니의 갈기 위로도 비쳤다. 한 줄로 늘어선 사과나무를 따라 붉은 수말과 오렌지색 암말이 다리를 뻗어 사과를 터는 모습은 숙달되어 매끄럽다. 그 반대편에서는 검은 갈기를 한 페가수스가 '고정' 범위 안에서 빨갛고 푸른 과실들로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드넓은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대지를 따라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며 시간과 싸우고 있었다.
포니가 아니라 무슨 기계라도 되는 듯, 손을 잡은 포니들은 과수원 동쪽의 마지막 한 그루까지 수확을 끝냈다. 그들은 헐떡이는 숨도 돌리지 않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과수원 남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빅 매킨토시와 애플잭만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두 남매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몸뚱이는 수많은 난관들로 짜맞춰진 절대 불가한 작업 위로 늘어선 난관들을 뛰어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을 보는 스쿠틀루는 민망했다. 아침 동안의 작업은 뭐가 어찌됐든 시간여행자의 '투영'된 몸에는 그 어떤 피로도 쌓을 수 없었고, 애플잭과 마음을 터놓으려고 보낸 지난날은 이제 애플잭을 도와야 할 의무가 되어 있었다.
스쿠틀루는 순간 진실을 밝힐까 고민했다. '조화유지법'에 대한 진실뿐만 아니라, 모든 진실을 말이다. 스쿠틀루 자신과 스미스 할머니 사이에 쌓아올린 신뢰를 구축한 진실보다도, 수십만 배는 더욱 명확한 진실, 그 모두를. 스쿠틀루는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를 저 한쪽 나무 그늘 아래로 데려가 미래에 대해 전부 말해 줄까도 생각했다. 재앙에 대해서, 마지막 포니가 되는 그것에 대해서, 지금 보이는 농장의 정경과 이 주변의 모든 것이, 지금도 느껴지는 이 모든 것이 불길에 삼켜져 전부 끝난다는 그 진실에 대해서. 지금 여기서 그들이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쓰는 이 모든 것들은 그 진실에 비한다면 한 조각 먼지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진실을 안다고 그들에게 뭐 좋을 게 있을까?
치어릴리 선생님과 그 앞에 앉은 어린 학생들의 공포와 두려움에 질린 얼굴이 스쿠틀루의 떨리는 마음 너머에서 스치듯 지나갔다. 어쨌든 그곳에서 스쿠틀루 자신이 저지른 만행은 애플잭의 뼈를 찾으려는 뒤적임과 시간 역행 앞에서 이미 별 일 아닌 일로 치부되고 있었다. 하지만 스쿠틀루가 아는 포니들의 얼굴에, 빅 매킨토시와 애플잭의 얼굴에 어릴, 그 공포에 질린 표정을 다시 보는 것은 절대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안다는 게 그들에게는 무슨 소용이겠는가? 저주스러운 트롤 놈들의 도래는 그 존재 자체로 그렇듯 그들의 생기를 빼앗아 갈 뿐이었다.
애플잭의 농장은 무시무시한 괴물 놈들에게 강습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플잭 그녀는 겨우겨우 사과 수확을 하는 형편이다. 이 어스 포니 가족에게는 걱정할 만한 진실이 있음을,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고 있음을, 스쿠틀루는 알 수 있었다. 끔찍하고 무서운 미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 그 다음에야 다가올 흐릿한 부록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스쿠틀루가 생각하다 지칠 정도로 생각하던, 항상 생각해 오던 그것일지도 몰랐다. 삶이란 죽음이 다가옴을 모르는 채 살아갈 때야말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서도 모르는 채 살아갈 때야말로 진정 행복한 것이었다. 그게 스파이크가 스쿠틀루에게 납득시키려고 했던 진실일까?
스쿠틀루는 뚝뚝 떨어지는 사과를 한 알 한 알 잡아 바구니 속으로 던져 넣으며, 자기의 어깨 위로 드리워 내려앉은 의심의 어둑어둑한 구름을 흔들어 털어 냈고, 걱정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지극히 단순하고, 기계적인 일이었지만 그녀는 그래도 계속 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쩌면 스쿠틀루는 자기 스스로 이 작업을 반복할 수도 있었고, 저기 보이는 두 포니들은 반복할 수 있었고, 또 그래야만 함을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미래로부터의 방문자가 찾아와 애플 일가에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소식을 전할 수도 있을 터였다. 셀레스티아가 그녀를 용서한다면, 그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그들을 돕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식으로, 앞으로도 유일할 그 방법으로 그들을 돕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직 그녀 스스로도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말이다.
'조화유지법'이란 이름의 기만에 대한 기억은 분명 현재의 기억이고, 옆구리를 찌르는 죄책감의 박차였다. 떠올릴수록 공포, 절대적인 공포와 절망감만이 다시 살아나 시골 같은 녹색의 정경 속에 선 그녀를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다. 생명으로 가득한 이퀘스트리아의 활기와 그 매혹스런 모습은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하릴없이 그 속에서 춤출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쁨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을 가슴에 품고, 그곳에서 우러나는 노래와 같이 그 숨을 마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녀의 천성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무감(無感)함과 회한의 밧줄만이 그녀의 목을 휘감아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고, 겨우 몇 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대지 위에는 반짝이는 잔디의 잎사귀가 포근히 깔려 푹신했다.
스쿠틀루는 자신의 몸과 자신의 마음으로 여기, 이 곳에 있다. 비록 그것이 가짜 몸과 용감할 정도로 부정직한 마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온 힘을 다해도 스쿠틀루는 자신의 네 발굽을 대지에 '정말로' 디딜 수 없었다. 굳이 날개를 쓰지 않아도, 그녀는 공중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이 농지와... 이 안식처는 그녀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한 번도, 그녀를 위한 곳이었던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스쿠터를 껴안고 캠프파이어를 둘러싼 통나무에 걸터앉아 있었던 그 때처럼, 오직 친구들만을 위해 마시멜로를 사 온 거라고, 그래서 정작 자기는 마시멜로 한 개도 먹지 않았던 그 때처럼, 그녀는 휴식을 거부했다.
애플잭이 간직한 힘은 스스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게, 그녀를 옭아맸다. 그리고 스쿠틀루의 어린애 같은 생각은 그녀를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덕에 어린애 티를 벗지 못한 소녀는 방랑하며 폐허를 뒤지다가 아무 데나 허름한 집만 보면 그 밤의 외로움에 떨곤 했다. 굳이 재앙이 아니었어도 스쿠틀루는 어쨌든 혼자가 되었을 것이다.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예전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스쿠틀루의 유년기는 고독의 차가운 발톱에 마구 긁힌 자국으로 가득했고, 그와는 정반대인 큐티마크 크루세이더 활동이나, 누군가를 우상으로, 빛나는 우상으로 삼아 찬양하고 칭찬하기로, 스스로 채찍질하던 기억이 남았다.
다른 포니가 잠을 자라고 내준 침실도, 먹으라고 차려 준 저녁 식사도, 그리고 살라고, 살며 웃으라고, 그러며 자라라고, 그리고 마지막 안식을 찾으라고 내준 집조차도, 스쿠틀루는 한 번 들어가 잔 적도 없었고, 받아 먹은 적도 없었고, 들어가 산 적도 없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큐티마크 크루세이더들과의 밤샘 파티, 비 오던 날 플러터샤이의 집에서 보내던 며칠,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도서관을 향한 발걸음...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어린 날의 엉뚱한 생각에서 비롯된 유치한 외도에 불과했고, 영원하지도 않았으며 그녀 스스로도 당당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그 모든 것들의 이유, 마구 쏘다니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그 세월 동안 스쿠틀루는 더 이상 억세질 수 없을 때까지 억세졌다. 적어도, 그 어떤 단것조차 입에 댈 자격이 없고, 영원히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할 때까지 억세졌다. 그 때문에 스쿠틀루는 아무렇게나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며 대담한 짓거리를 일삼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온갖 고난에 시달린 이 불행하고, 어떻게 보면 또 멍청한 시간여행자는 그랬는데도 이 대지 위로 자기의 발굽을 디딜 수 없었고, 포근하고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안는 이 모든 것 위로 발굽을 디딜 수 없었다. 그녀는 오직 아주 작은 조각만을 맛보았고, '투영'된 엔트로파의 그 무감한 몸뚱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자그마한 조각은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안전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이 놓이는, 그런 정적인 흐름 속으로 말이다.
스쿠틀루 안의 그 모든 것을 보아 온 스파이크의 두 눈에는 지혜와 현명함이 가득 차 빛났고, 그 두 눈으로 그녀의 고단한 몸을 꿰뚫은 날카로운 가시를 뽑았다. 그녀가 방랑을 멈추었던 그 곳, 슈가큐브코너의 무너진 폐허에서 그는 행려병자(行旅病者)와 같은 떠돌이 생활을 멈추기를 권고했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25년의 시간을 거슬러오른 여기, 그녀의 삶을 마구 할퀴고 찢어발겨 한 조각 넝마로 만들어 버린 놈들이, 그녀의 기력을 전부 피가 흥건한 비행선의 철판 바닥에 기댄 아이의 가녀린 흐느낌으로 만들어 버린 놈들이 그녀를 다시 한 번 나와 맞고 있었다. 스파이크의 말이 맞았다. 그녀에게 안식처란 없었다. 애플가 포니들이 그녀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확신이 들지 않았기에, 그녀는 여기 그녀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또 그랬기에 대지 위로 그녀의 네 발굽을 딛을 수 없다는 적막함의 진실을 애플잭에게도, 빅 매킨토시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태양은 느릿느릿 움직여 정오에 닿았고, 과수원의 녹색 이파리 위로 드리운 이슬은 온기에 기화되어 하늘로 떠올랐다. 그 사이로는 지칠 대로 지친 세 포니들이 나무 사이사이로 그들의 무리한 발굽을 질질 끌며 걷는다. 과수원 남쪽의 1/3 정도 되는 면적의 수확을 막 끝낸 참이다. 이런 작업률로는 '일을 끝마친다'는 것은 어렵기만 한 일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위트 애플 에이커는 말 그대로 재앙의 낭떠러지 위에 기대서고 있었다. 외로운 소외자는 수십억의 탄식을 보내며 다른 이들의 안식처를 외로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그런 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가 이런 말을 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혔는디 말입니더." 애플잭의 땀으로 축축해진 금발 갈기는 젖어 불쾌했고, 땀이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애플잭이 끌고 있는 나무 수레 아래로는 스위트 애플 에이커를 잇는 흙길이 깔렸고, 그 위로는 아예 사과로 넘쳐나는 과일 바구니 세 무더기가 놓였다. "우째 인쟈 이기 실실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더." 애플잭은 수레에 기대었고, 그녀의 갈색 모자를 벗어다가 부치며 흥건한 땀을 식혔다. "나가 이거를 하겄다고 혔을 때 도대체 생각이란 기를 하기는 한 긴지 도저히 모르겠심더."
"그저 당신 가족이 저 끔찍하고 무자비한 트롤 놈들에게서 몸을 빼내야 한다고 생각하셨겠죠. 무엇보다도, 그 때 애플잭 당신은 필사적이었을 거고요. 그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어요." 스쿠틀루는 바구니를 쌓으며 말했고, 쌓인 과일 바구니는 마치 기둥 같았다. "하지만 지나간 일을 계속 되새기기만 하면, 지금 우리와 함께 하는 순간이란 시간에 충분히 감사할 수 없게 되죠." 스쿠틀루는 정오의 태양을 잠깐 흘끗 쳐다보았다. 태양을 보던 눈은 가늘어지며 지평선에 닿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피를 쥐어짜듯 사과나무를 털고 있는 빅 매킨토시에 닿았다. "전 당신을 잘 모르지만... 전 항상 과거는 과거로 남겨 둬요. 그 자체에 깊은 존중을 표하죠. 제 생각으론 그렇게 하면 삶이 좀 더 나아질 것 같아요."
"하모니 아가씨으 그 인생철학만큼이나 체력도 끝내주네예.." 바람을 실어 나르던 애플잭의 모자는 순간 움찔하며 멈췄지만 애플잭은 이내 부드러운 웃음을 웃어 보였다. "내 맹세헙니더. 정말 아가씨으 그 비밀을 꼭 들어 봤음 좋겠네예. 만약 나가 아가씨만큼 사과를 털었다간 진즉에 열사병으로 시상 떴을 깁니더."
"이거 참, 저도 여러분이랑 똑같이 귀리를 먹는답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잠시 접어두죠." 스쿠틀루의 호박색 눈이 지평선을 훑으며 지나감과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한 줄기 중얼거림이 떨어졌다. 보이지 않는 놈들의 가죽질의 몸뚱이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비웃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놈들의 비웃음을 고개를 흔들어 떨쳐 냈고, 곧 자기를 감싸는 엔트로파의 몸으로 돌아왔다. "애플잭, 제가 캔틀롯의 높으신 분들을 보좌하는 왕실비서관일 수도 있지만... 저는 저를... 일단 직업상으로는 엔지니어라고 보고 있어요." 입에서 떨어진 말들 위로 그녀의 시선이 닿았고, 말은 그것과 상관없이 더듬어졌다. "저는 정말 제가... 아... 모르겠네요... 이 과정을 다 완전히 기계화해 줄 수 있는 어떤 장비라도 만들어 드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지금보다 수억 배는 더 빠르게 작업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아뇨, 아뇨. 그러실 필요 없심더." 애플잭의 고개가 솟았고 부채로 부치던 모자는 탁 하며 다시 머리 위로 씌워졌다. "100% 수작업으로 하는 기는 우리 스위트 애플 에이커으 트레이드마큽니더. 스탈리온그라드나 필리델피아서 보셨던 공장 기계덜은 저희는 일체 안 씁니더. 그 생산성 때문에 요즘 온 이퀘스트리아서는 저희덜처럼 농장 경영허는 집은 갈수록 줄고, 또 줄고 있고요."
"그래도 사과 따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해 줄 만한 게 있으면 써야 한다니까요! 여기 쌓아 둔 바구니에 사과를 가득 채워서 탑을 쌓는 등 쓸데없이 거창한 일들을 벌이고 싶으신 게 아니라면요!"
"글씨..." 애플잭은 오렌지색이 감도는 발굽을 들어 턱을 슥슥 문질렀다. "흐으으으음... 아임더."
스쿠틀루는 애플잭을 째려보았다. "애플잭, 제가 먹은 끼니 수가 당신이 먹은 수보다 많습니다만."
"머..." 애플잭의 목소리는 안절부절못했고, 이내 초조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냥 예전에 친구덜이랑 같이 애플루사라고, 개척지 마을에 한 번 들러가 사촌 브레이번을 보러 간 적 있심더. 그거 생각했어예. 거기서는 황무지를 개간해가 사과 과수원을 만들었는데, 그기 원주민덜이랑 잘 얘기가 되가 수확 속도가 두 배가 됐심더. 원주민덜이 버팔로덜인디, 갸들은 먼가 관습적인 의미로 정기적으로 한 번씩 떼지어가 뛰어댕기고 그러거등요. 그래가 사과나무 사이에 길도 만들어 줬고요. 갸들이 한 번 뛰어가모 아주 그냥 지축이 다 울립니더. 갸들 발굽도 무지하게 세다 봉께 사과 떨어뜨리는 기는 식은 죽 먹기고요. 그라고 나모 그 보답으로 사과를 좀 나눠 주지요! 그러다 봉께 애플루사으 원주민덜이랑 정착민덜끼리 서로서로 잘 지내고 있심더!" 애플잭은 자랑스러운 듯 빙긋 웃었다.
스쿠틀루는 질렸다는 듯 호박색 눈을 들어 애플잭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것 참,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온갖 멍청한 짓거리들보다도 훨씬 멍청한 짓거리 같네요."
애플잭은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머, 저는 잘 모르겠는데예."
스쿠틀루는 한 줄 호박색 갈기가 그어진 검은 갈기로 발굽을 가져갔고, 상념에 잠긴 이마를 덮던 갈기는 헝클어졌다. "아, 그런데 말이에요." 그녀는 입술을 슬쩍 핥고는 눈을 깜박이며 얼빠진 듯한 웃음을 웃었다. 마음의 정원에서 꽃들이 피어남과 같이 깊은 밤의 트롤의 육벽(肉壁)은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그것보다 더 멍청한 짓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스쿠틀루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일을 해야죠! 갑시다!" 그녀는 빅 매킨토시 너머로 심어진 한 줄 사과나무를 향해 힘껏 달려갔다.
애플잭은 비틀거리며 잰걸음으로 그녀를 쫓아갔다. "대체 무신 생각을 하시는 깁니까, 냄비 아가씨?"
"바구니 몇 개나 좀 집어와 보세요, 그럼 알려 드릴 테니까. 아, 그리고 화염석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건대, 절 그렇게 부르지 말아 주세요!"
반짝반짝 빛나는 오후의 태양 아래, 스쿠틀루는 나란히 늘어선 두 줄의 사과나무 아래 나머지 바구니를 모두 가져다가 제자리에 놓아 두고 있었다. 그녀는 눈만 꿈벅이는 두 남매 옆으로 슬슬 걸어왔고, 자기가 늘어놓은 바구니를 보고 빙긋 웃었다.
"네, 됐습니다. 이게 제 탁월한 아이디어에요." 스쿠틀루는 몸을 돌려 두 남매를 보고 싱긋 웃어 보였다. "제 특유의 스테미너 말인데, 두 분 다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말이 맞나요?"
"그~려!"
"뭐, 그럼 됐습니다. 제 생각엔 그걸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요." 스쿠틀루는 다시 몸을 돌렸고, 발굽을 들어 늘어선 나무들을 가리켰다. "저것들을 한 번에 터는 게 더 효율적이잖아요. 한 번에 저것들을 털어 볼 생각입니다. 뭐, 안 되면 한 번 더 털죠 뭐."
"대체 무슨 이상한 생각을 허시는 깁니꺼?" 애플잭이 눈썹을 치키며 물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가 야심한 밤에 아가씨가 트롤 놈덜을 때려잡는 걸 다 보긴 봤심더. 확실히 아가씨께서 놈들 처리에는 전문가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더, 사과 나무는 아주, 아주, 아주 섬세하게 다뤄야 한단 말입니더!"
"아닌데요. 어제 자기 입으로 말씀하셨잖아요. 아닌가요?"
"내는...어...그기..."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되는지, 안 되는지나 한 번 보도록 하죠." 스쿠틀루가 날개를 펼쳐 풀며 말했다. "이 날개로 말이죠. 애플잭, 지금부터 저 나무들 사이로 고속 저공비행을 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날아가는 동안 저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와 주셔야겠습니다."
"아가씨랑 같이 뛰라니요? 아가씨, 도대체 뭣 때문에 내랑 아가씨랑 거리를 맞춰야 한다는 깁니꺼?"
스쿠틀루는 애플잭을 슬쩍 곁눈질하며 바라보았다. 영혼을 '고정'할 수 있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따라오라는 거지, 그 이상은 아니라고 스쿠틀루는 말하고 싶었다. 이 짓거리를 하다 잘못하면 녹색 불길이 다시 그녀를 삼켜 미래로 내던져 버릴지도 몰라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스쿠틀루가 입을 열었다. "제가 나무를 때려서 털 때 제가 어떻게 치는지 봐 줄 포니가 필요하거든요. 좋은 나무에 한 점 상처조차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에요. 이해하셨나요?"
"으으음... 알았심더." 애플잭도 결국은 끙 소리를 내며 스쿠틀루의 말에 동의했다. "어떻게 하시나, 일단 한 번 보입시더."
"그냥 보고만 계시면 됩니다, 애플잭." 스쿠틀루는 방긋 웃더니 황동색 날개를 펼쳐 땅에서 발굽을 떼었다. "나머지는 제가 할 테니까요."
"지는 진작에 준비됐심더." 애플잭이 가벼운 걸음걸이와 같이 끼어들었다. 애플잭의 옆에는 빅 매킨토시가 서서 땀에 젖은 흥미로 스쿠틀루를 쳐다보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죠."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발굽은 버릇처럼 고글을 올려 쓰려 머리로 갔지만 과거로 돌아간 그녀에겐 고글이 없다는 사실만 재차 확인할 뿐이었고, 눈만 돌아갔다. 마음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스쿠틀루는 과수원 한쪽 끝으로 날아갔고, 그 곳은 다른 곳보다 불룩 솟아 있었다. 애플잭이 전속력으로 뛸 만큼 몸이 풀리길 기다리던 그녀는 이내 한 줄기 기합 소리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양 옆으로 늘어선 사과나무의 벽을 따라 미끄러지듯 활공하기 시작했다. 스쿠틀루는 날개를 둥글게 구부리며 다리를 슬슬 구부렸고, 그와 동시에 왼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그녀의 발굽은 나무 몸통에 정확히 내려꽂히며 강하게 때렸고, 다시 무릎이 굽어짐과 동시에 75도 정도의 고각도로 쏘아져 나왔다. 몸은 빙빙 돌며 날아가고 있었고, 그녀는 다시 나무를 발로 걷어차며 반대편 나무로 날아갔다. 다시 한 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스쿠틀루는 빙빙 돌며 사과나무의 골목을 튕겨져 날아갔고, 다음 나무를 발굽으로 쳤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튕기며 날아가는 속도는 심히 가공할 만 했고, 그렇기에 더욱 빠르기도 했다. 황동색의 페가수스는 두 줄로 늘어선 사과나무 사이를 광기의 불꽃이 어린 핀볼 공처럼 튕기며 날았고, 옆에서 뛰어가던 애플잭은 말도 나오지 않는 경이에 눈만 껌벅이며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현기증나는 일련의 작업이 끝나자 스쿠틀루는 대지 위로 미끄러져 내려앉았고, 2미터를 조금 넘는 정도로 대지를 긁어 흙가루를 튀겼다. 스쿠틀루의 숨은 거칠었고, 그 숨은 이내 몸을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작업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기쁨은 황홀하게 다가왔다. 스쿠틀루가 부딪혔던 나무, 마주보고 섰던 두 줄의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던 사과는 그야말로 마법처럼 죄다 떨어져 있었다. 떨어진 사과는 나무줄기에 보기 좋게 세워 놓은 바구니에 담겨 기립박수를 치는 청중처럼 높이 일어나 있었다.
빅 매킨토시의 입에서 새된 휘파람 소리가 샜다. 애플잭도 미끄러지듯 몸을 멈춰 다가오며 찬사의 말을 내비쳤다. "오매, 정말 대단하시구먼요. 지금까지 봤던 과일 수확 중에 가장 빨랐심더. 아, 유니콘을 빼고요. 내 맹세하는데 말입니더, 아가씨 페가수스들은 항상 내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니께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말이에요." 스쿠틀루는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검은 갈기 사이로 기진맥진한 웃음을 싱긋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도 직접 해 보기 전까진 이게 과연 될지 확신이 없었어요. 꽤나 쿨하지 않아요?" 이마를 덮던 한 줄기 호박색 갈기는 스쿠틀루의 입에서 불어진 바람에 흔들렸고, 그 아래로는 애플잭을 보고 빙긋 웃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럴 때 하라고 '기적 같다'란 말을 만들어 논 것 같심더! 오빠야, 오빠야는 어떻노?"
새빨간 수말은 빙긋 웃으며 진정이 담긴 고개를 끄덕였다.
스쿠틀루는 마치 처음으로 잔잔한 호숫가에, 잔물결 하나 없는 호숫가에 온 아이처럼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순간 눈부시게 빛났고, 트롤 놈들은 놈들이 있어야 할 어제와 내일의 회색 비탄 속으로 순간 돌아갔고, 마지막 포니의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생기 가득한 기쁨으로 찬 지금뿐이었다. 쓸모있는 포니가 되었을 때보다 기분좋을 때도 없었고, 애플잭의 눈앞에서 억지로 거짓말을 짜내던,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거짓말 하나하나를 뱉어내던 그 때가 쓸모가 있게 되었기에 그 느낌은 더했다. 하지만 이내 그 순간은 끝났다. 시간여행자는 애플잭의 목소리에 잠긴 기진맥진한 울림에 다시 지금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땀으로 흠뻑 젖은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는 지금으로.
"한 몇 번만 그거 더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꺼?" 애플잭이 말을 더듬으며 말하더니 마른침을 삼켰다. "아, 제가 '몇 번만 더'라고 말을 하모, 그기는 한 백 번만 더 해 달라는 뜻입니더. 어쩌면 과수원 남쪽 전부일 수도 있고요. 머, 결국은 아가씨만 가능하시다면 말임더."
"브루스도 입에 꿀칠 잔뜩 하고 말을 했었지, 아마?"
"대체 무신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꺼?"
"아, 그 말 말인가요? 그냥, 당신 생각에 동의한다고요." 스쿠틀루는 그 특유의 웃음을 빙긋 띄우며 말했다.
오후의 남은 숨은 기계적이면서 또 말 그대로 기계적인 작업으로 물집이 잡혔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가 바구니를 죽 한 줄로 세워 '하모니'가 날아갈 길을 만들어 놓으면 애플잭은 슬슬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면 그 둘은 커다란 소리를 울리며 두 줄로 늘어선 사과나무의 벽을 따라 내려갔고, 황동색 페가수스는 숨을 헐떡이며 그 사이에서 지그재그로 튕겨지며 수백의 사과를 떨어뜨렸다.
그 결과는 붉은 점으로 가득한 잔디밭의 잔디를 깎는 것과 같아서, 약 4시간이 흐르고 나자 과수원 남쪽의 사과나무들은 사과 한 알 남김없이 깨끗이 수확되었다. 어두워져 가는 지평선을 향해 태양이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감과 같이, 세 포니의 마음 깊숙한 곳은 희망으로 헤아릴 수 없이 밝아졌다. 아직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총면적 중 절반이 남아 있긴 했지만, 다가올 아침이, 계약 만료 기한의 마지막 날이 서서히 펼쳐지며 드러날 뻔한 예상은 그 날이 기적 같은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느낄 수 있었다. '투영'된 스스로의 눈으로, 저 다가오는 노을의 황금빛 빳빳한 빛살과 같이 저 경이로울 정도의 오늘 일과를 똑똑히 지켜보지 않았던가. 현기증이 났고, 머리도 빙빙 돌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날개는 지칠 대로 지쳐 축 처졌다. 어쩌면 묵직한 근육통이 몸의 무감함과 거의 맞먹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스쿠틀루도 거의 느끼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한낱 몽상이라 할지라도, 보람찬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나면 찾아오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도 역시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목제 수레 뒤에 무더기로 쌓인 사과 바구니를 싣고 왔다갔다한 지 스무 번이 되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수를 헤아리지 않아 몇 번이나 왕복했는지 알 수 없었다. 스쿠틀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언제라도 다음 사과나무 사이로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애플잭은 스쿠틀루의 눈앞에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봐요, 아가씨. 솔직히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허는 짓인디, 쪼매만 좀 쉬입시더. 아가씨도 그리 생각하시 않으십니꺼?"
스쿠틀루는 아이처럼 깔깔대며 웃다가 헛기침을 했고, 이내 좀 더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아, 그, 그러죠, 애플잭. 저기, 저, 저 정말 미안해요. 저도 날랐어야 했는데..."
"어이구야, 무슨 소리를 하시능교?"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 언덕가 위는 초록색 잔디로 풍성했고, 애플잭은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무렴, 그래 주시면 저희야 좋지요! 많이많이 날라 주이소. 그건 그렇고, 작년 겨울 마무리 때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댕김서 팀별 작업 방법이랑 우선순위 같은 거를 정해줄라꼬 피 터지게 일한 기를 보고 나서는 이리 끝내주는 포니를 본 적이 없심더!"
스쿠틀루는 순간 모른 척 하고 싶어졌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란 분은 페가수스였나 보네요!"
"어라라, 시상에. 아임더." 애플잭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갸는 뭐, 뭘 어떻게 정리허고, 어떻게 해야 헐지 확실허게 아는 책벌레 유니콘임더. 그려도 내는 갸를 무덤까지 따라갈 낍니더." 애플잭은 깊은 숨을 마시고는 반짝이는 과수원 남쪽의 나무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긴 하루 동안 일한 과수원의 나무에는 사과가 없다. "그리고 아가씨마냥 제가 갸 도움이 정말로 필요할 때모, 갸는 저를 도와 줬고요."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띄운 애플잭의 얼굴은 편히 접어 놓은 발굽 위로 땀이 흥건한 피부를 기대었다. "으음... 작년이던가, 재작년이던가 그 때부터 나가 진짜로 좋은 친구덜을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심더."
"애플잭 당신, 정말 운이 좋으시군요." 스쿠틀루의 목소리는 어둑어둑한 마지막 포니의 목소리의 손길이 닿아 서서히 어두워졌다.
"머 저도 제가 그렇다는 기는 잘 압니더." 오렌지색 암말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애플잭은 황동색 페가수스를 향해 쓸쓸한 한 쌍의 눈을 돌려 바라보았다. "그런 끝내주는 방법으로 사과를 털 생각을 허다니, 아가씨랑 내랑 똑같이 꼬불탕거리는 뇌 덩어리를 갖다 머릿속에 처박아 둔 건지부터 의심스럽네예. 그라모 저거 트롤 놈덜을 끝장낼 방법도 알고 계시겠지라?"
스쿠틀루의 한숨은 길고 진했다. 육체의 무감함이 돌아옴과 같이, 번득이는 새까만 눈동자의 환영은 바다를 이루어 나타났다. 이지러지는 해는 타이머가 흘러가는 시한폭탄 같았고, 녹색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도화선은 갈수록 짧아져만 갔다. "애플잭, 정말 미안해요." 스쿠틀루는 냉담하게 웅얼거렸다. "제가 다중작업에 능했으면 저로서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사과를 터느라 아주 진이 쭉 빠져서요... 좋은 생각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군요." 그녀는 애플잭 옆 잔디밭에 웅크리고 앉았고, 그와 같이 사근사근한 산들바람이 불어와 그 둘의 갈기 사이를 기분좋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설령 제가 놈들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해도, 그게 놈들을 처리하는 데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 것 같진 않습니다."
"하모니 아가씨, 사과 따는 일만 해도, 정말 엄청나게 잘 해 주신 겁니더. 그려도, 이건 진짜 진심인데예." 애플잭은 슬픈 얼굴로 중얼거렸다. "밤이 내리고 나서도 저 잡것덜을 좀 전에 사과 털듯이 털어 달라꼬 부탁할 수는 없심더. 그거는 잘못된 거니까. 그 누구도 무적은 아님더. 아가씨도 예외는 아니구요."
녹슨 풍향계와 산산이 부서진 커팅 나이프, 그리고 덜덜 떨리는 스미스 할머니의 숨결은 스쿠틀루의 생각을 타고 들어왔다. 애플잭은 스쿠틀루의 '투영'된 몸뚱이의 안전을 걱정할 만큼 운이 좋은 포니였다. 애플잭과 언쟁을 벌여 볼까 잠시 생각하면 마음은 한기 도는 지하무덤의 문을 열어 스쿠틀루에게 하모니 호 깊숙한 곳을 보였다. 그곳에서 흐느끼며 피 흘리는 십대 망아지를 보였다. "제가 무적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지도 못했을 텐데요." 스쿠틀루의 말은 생각이 묻어나지 않았고, 웅얼거리며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머라꼬요?"
오후의 산들바람에 스쿠틀루의 한숨이 섞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애플잭을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란 분이 여기 계시다면 그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구조화' 능력을 가지고 트롤 문제를 어떻게 좀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으으음... 나가 보기에도, 트와일라잇 갸는 재주가 참말로 많심더. 작은곰자리에 히드라, 그 골 때리는 패러스프라이트까지 잘 처리할 수 있으니께요. 문제는, 갸는 머리 하나만 기똥차게 잘 굴러가지 막상 겁은 굉장히 많심더. 갸는 캔틀롯 출신 유니콘 아닙니꺼. 굳이 갸 머리 위에서 풍선을 팡 터쳐가 깜짝 놀래키지 않더라도 갸는 트롤으 번들거리는 눈만 봐도 잽싸게 집으로 도망가 버릴 깁니더."
스쿠틀루는 가늘어진 눈으로 애플잭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캔틀롯 출신인데요. 전 용감한 거 아닌가요?"
"아임더. 아가씨는 기양 좀 머리가 돈 거에 훨씬 가깝지라." 애플잭이 싱긋 웃었다.
스쿠틀루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에 애플잭의 웃음소리가 섞였다. 침묵은 더욱 고요하게 언덕 위로 스몄고, 둘은 지나가던 구름의 그림자를 기분 좋게 쪼였다. 태양의 광휘는 금을 빚어 만든 하프의 현 같았고, 성긴 구름을 부수며 반짝였다. 찰나의 시간에 벌써 두 번째 일몰을 맞았고, 스쿠틀루의 숨결은 마시자마자 밖으로 재빨리 달아났다. 엔트로파의 무감(無感)한 장막을 간단히 가른 그녀의 두 눈은 지그시 감기며 불가시(不可視)한 녹색의 비탈길을 따라 달려가 25년의 악몽 속으로 뛰어들었다. 닻을 올리고 돛을 펼쳐 악몽을 건너간 그녀를 맞이한 것은 봄날의 언덕길이었다. 스쿠틀루는 오렌지색 발굽과 바람에 흐르는 분홍색 갈기로, 행복 담긴 보라색의 눈동자로 그 위로 내려섰다. 그녀가 밟아 디딘 기억의 언덕길은 순간 시간여행자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에 녹아들어 버렸다. 꿈결 같은 기억은 스쿠틀루에게 커다란 도취감을 안겨주었다. 투영된 혼의 유리벽 안에서 40킬로미터를 한 시간에 주파하기라도 한 것 같은 그런 도취감이었다. 언젠가 그녀는 그 유리벽이 부서지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그녀는 다시 잿빛 내린 공허의 대지에 돌아와 있을 뿐이었다. 다시 눈꺼풀을 열자 호박색 눈이 떠졌고, 아까와 똑같은 따뜻한 세계가 그녀를 감싸며 꽃피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포니가 보는 과거의 세계는 푹신푹신한 담요가 깔린 침상 같았고, 들어와 잠들라고, 영원히 잠들라고 손짓하는 세계의 손짓에 그녀는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 과거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는 그녀 자신의 눈 앞에서 몸을 쉬이는, 그러면서 나직이 중얼거리는 저 포니를 위한 곳이었다. "지는 제 부모님 앞에 부끄럽심더."
스쿠틀루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녀의 혼의 네 발굽들은 대지에서 몇 센티미터 더욱 떨어졌다. 그녀의 고개는 번쩍 하며 돌아갔고, 시선은 이상하다는 듯 애플잭을 향했다. "대체 왜 그런 죄받을 생각을 하시는 거죠?"
농부 포니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고, 건성으로 가장자리를 구부려 빙빙 도는 듯한 둥그런 원형으로 만들었고, 그와 같이 그녀 아래에 깔린 잔디의 이파리를 차분하고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나는 강해지라는 아버지 유언 때문입니더. 항상 그 유언에 저 스스로를 맞춰 살라 그랬습니더. 허지만... 애플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은 항상 누군가에 기대게 만듭니더. 야, 정직하라, 는 그 말 말입니더. 지기미..." 애플잭은 미안한 듯 '하모니'를 슬쩍 바라보았다. "...지는 '정직의 원소' 이기도 헙니더. 혹시 알고 계셨습니꺼?"
스쿠틀루는 애플잭의 말에 답하려 입을 열었다. 캠프파이어 앞에서 조화를 비웃던 꼬맹이의 이미지가 순간 비쳤고, 결국 말은 떨어졌다. "제가 캔틀롯 밖으로 많이 나가 본 게 아니라 잘 모르겠네요, 애플잭. 이야기를... 들려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흐으음... 달리 일에 엮이지 않았으모 겁나게 길고, 또 재미없는 얘깁니더. 솔직히 지금꺼정 제 친구덜이랑 갸들 동생 정도헌티만 얘기해 줬거등요. 갸들헌티는 정말 커다란 의의가 있는 일이니께요." 애플잭은 몸 깊은 곳까지 숨을 들이쉬었고, 시선을 돌려 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허지만서도 제 정직함을 갖다가 함 뜯어보면요, 그냥 제 포니성으 한 조각에 지나지 않심더. 다만 그 한 조각이 끝장나게 끝내주다 보니께 제 운명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 덕에 온 이퀘스트리아를 다 돌아댕겨도 만날까 말까 헌 최고으 친구덜이랑 저랑 엮이게 된 거고 말임더." 강하고, 또 행복감에 차 뿜어진 숨은 애플잭이 모자를 탁탁 터는 소리에 가려 흐려져 사라졌고, 모자는 다시 애플잭의 금발 갈기 위로 눌러 씌워졌다. "머, 근래 제가 그렇게 정직허게 굴지 않았다는 기는 지도 똑바로 잘 알고 있심더. 아가씨가 저랑 빅 매킨토시랑 나머지 가족들이랑 다 해서 도와 주실라꼬 처음으로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오셨을 때 얘기하는 깁니더. 제 문제라 카믄 제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을 받아야 헌다는 그런 의무감에 칭칭 감겨 있다는 거라고, 지는 그렇게 봅니더. 그러니 가끔씩 지도 인정하고 싶지를 않은 제 모습을 등지게 된 깁니더. 제 친구덜이랑 같이 지를 좀 더 나은 걸로다가 만들어 주는 그걸 등진 깁니더. 솔직해진다는 기는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겁니더. 지가 진실을 숨기고 등지모, 저 스스로 저를 무너뜨리는 거랑 다를 바가 없었어예. 트롤 잡것들은 분명 무서운 것들입니더. 허지만 갸들이 그래 봤자, 지를 진짜로 강하게 만들어 주는 거에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할 낍니더."
"당신의 책무는 결국 그거군요?" 스쿠틀루가 물었다.
애플잭은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지 자신을 지키는 거지라."
페가수스는 싱긋 웃었다. "어라라, 애플잭. 제가 보기엔 살면서 애플잭 당신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 누가 됐든지간에, 누구나 살면서 무언가는 잃어버리게 마련입니더, 하모니 아가씨. 그기 삶인걸 우짭니꺼. 적어도 지가 계속 정직허게 얘기를 꺼낸다 카믄, 제가 잃어야 허는 그 모든 것들은 그냥 줘 버리면 그만인 것들이니께요. 진실이라는 거는 그렇게 돌고 도는 겁니더. 그렇게 생각 안 하십니꺼?"
시간여행자는 숨을 죽였다. 스쿠틀루와 애플잭 사이에는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틈새가 있어 그 속에서 공기방울이 방울방울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스쿠틀루 스스로 꾸며낸 틈새였다. 열두 시간의 사과 수확이 끝났지만 당장 애플 가족의 눈앞에 닥친 저 트롤 놈들을 어떻게 할 만한 뾰족한 수는 전혀 짜맞춰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냥 제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은 추악한 죄악을 범함이었고 애플잭의 고해를 듣는 것은 상처 더욱 깊숙한 곳까지 곪아 터지게 함이었다. 스쿠틀루는 아직 빛이 바래지 않은 영혼의 한구석에서 말을 끌어낼 기력을 뽑아냈다. 마음 한구석으로 존경했고 또 존중했던, 그러면서 또 경애하던 과거의 그림자는 금발 갈기를 하고 그녀의 앞에 앉았다.
"글쎄요, 지금 당장 저에게 일말의 '진실'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마 저도 분명히 볼 수 있었겠죠, 애플잭." 스쿠틀루가 앞무릎으로 애플잭을 은근히 쿡쿡 찌르며 씩 웃었다. "분명히 두 분 부모님 모두 당신을 자랑스러워하실 거에요. 당신 스스로가 갖고 있을지 모른다, 고 생각하는 오점 몇 개가 있다 해도 말이에요." 사과로 가득 찬 나무 수레를 힘있게 끌며 흙길을 따라 붉은 헛간으로 걸어가는 빅 매킨토시의 멀찍이 보이는 실루엣에 그녀는 가볍게 몸짓했다. "부드러운 사랑으로 당신 가족들을 다 돌봤잖아요. 당신 오빠 말인데, 온 포니빌에서 가장—"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꺼!"
"히히힛... 제 말은 강하고 재주 있는 포니라는 뜻이에요. 저 분과 같은 대지를 밟고, 같은 하늘을 이는 다른 농부들도 그렇고, 다른 시민들에게도 그렇고, 충분히 귀감(龜鑑)이 될 만한 포니시니까요. 거기에 귀여운 여동생도 있으시고. 예의도 바른데다 유복하게 컸더군요. 애플잭 당신이 얼마나 사랑과 관심으로 동생을 돌봤는지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죠. 아직도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하신 스미스 할머님도 마찬가지에요. 아주 정정하셨고 행복해 보이셨어요. 거기다 여기 농장에서 사신다는 게 자랑스러워 보이셨어요. 네, 당신이 지고 온 스위트 애플 에이커 말씀입니다."
"에이, 아가씨..." 애플잭이 모자 챙을 내려 얼굴을 덮었다. "부끄럽심더."
"애플잭,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거에요.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세요. 당신 두 분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사세요." 스쿠틀루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스위트 애플 에이커의 녹색 잔디 위로 발굽을 비볐다. "가족이 있으시죠. 가정이 있으시죠.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황금빛 산들바람에 둥둥 떠갔고 입술은 그 자취를 훑었다. "...조화로운 삶을 사시잖아요."
"하하하하—" 오렌지색 암말은 순간 다시 챙을 들어올렸다. "진짜로 우리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심더, 아가씨."
"잠깐,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시간여행자는 막상 입을 열었지만, 곧 심장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쿠틀루의 마음 어딘가 밤빛이 슬슬 내리는 그 곳에, 집 없는 망아지가 버려진 헛간의 다락방 위에서 몸을 떨고 있었고, 따뜻한 눈물은 아이를 덮었다. "...아니에요."
"지는 기양 두 분 부모님들께서 길토핀 공주의 가슴팍 위에서 이 대지를 내려다봄서 지가 잘 보살핀 스위트 애플 에이커으 모습을 봐 주길 원할 뿐임더." 애플잭이 한숨을 내쉬며 잔디 위로 발굽을 미끄러뜨려 앞뒤로 흔들며 게으른 원을 그렸다. "허지만서도 지가 그 소원이 너무 힘들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카면은... 절대 지 삶을 살 수 없을 겁니더. 저희 가족덜도... 또 조화도... 말입니더. 그기는 실숩니더... 명백한 실숩니더."
스쿠틀루는 목에 걸려오는 무언가를 삼켜 내려보냈고, 이상하다는 듯 애플잭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어떻게... 흠흠. 저기, 질문을 해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음..." 그녀는 자기 자신의 뻔뻔함에 질려 몸을 움츠렸다. "저, 죄, 죄송합니다—"
"흐음? 머가요?" 애플잭은 순진한 눈빛으로 스쿠틀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제 부모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가 물어 보실라 하신 겁니꺼?"
스쿠틀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기요. 솔직히, 전 캐물을 생각은 전혀—"
"아임더. 다 괘안심더.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아닙니꺼?" 애플잭은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 "지는 지 앞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더."
"현명하시군요."
"흠흠." 애플잭이 꼿꼿이 앉으며 허리를 이리저리 틀어 뚜둑 하는 소리를 냈고, 그와 동시에 수 년간의 세월로 장식을 드리운 이야기를 꺼냈고 날숨이 곁을 따랐다. "저희 어머니랑 아버지는 그냥 단순한 농부가 아니셨심더. 포니빌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셨던 유지셨심더. 아버지는 포니빌 소작농덜으 최고위 의사결정위원이셨고 1년마다 모이는 애플 친척 총회합을 주관하시는 분이셨심더.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애플잭은 자랑스러운 듯 미소지었다. "말 그대로, 저희 어머니께서는 '포니빌으 긍지와 기쁨' 이셨심더. 그냥 데이지 꽃이나 따제껴가 어머니께서 그런 멋진 타이틀을 얻은 기 아닙니더. 어머니께서는 포니빌 시의회 중역의원이셨심더. 애플 가문에 시집을 오셔가 한 2년쯤 될 때였나, 포니빌 시의회 의장으로 선출이 되셨고요. 그러고 나서 한 15년 동안 겨울 마무리에, 하계 태양절 축제를 모두 주관하셨심더. 그러면서도 포니빌 자선사업가들이랑 같이 모금 행사도 여셨고요."
"정말요?" 스쿠틀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드러난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전혀 몰랐네요."
"머, 모르시는 기 당연합니더. 어머니께서는 포니빌 안에서 인정받기에는 충분하셨으니께 말임더. 어머니는 캔틀롯에 발 한 번 딛으신 적도 없심더."
"아... 네, 넵." 스쿠틀루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다시 입을 떼었다. "묘비에 적힌 날짜를 봤어요. 도, 동시에 돌아가신 것 같던데요."
"으음... 야." 애플잭은 쓸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끔찍한 사고였심더. 포니빌 주민도 많이 엮였구요. 혹시 에버클리어 광산이라고 들어 보신 적 있으십니꺼?"
스쿠틀루의 숨은 턱 막히며 그녀를 떠났고, 어떤 칼이 있어 그녀의 투영된 가슴팍 한가운데에 꽂혀 조각조각 자르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두 눈은 순간 빙빙 돌았고 곧장 그녀의 입에서는 풀이 죽은 듯한 웅얼거림이 빠져나왔다. "두, 두 분 모두 에버클리어 광산 붕괴사건 때 매몰되신 건가요?" 스쿠틀루는 무언가 말라붙은 것을 삼켜 목구멍 아래로 내버렸고, 고개를 푹 숙여 땅만 쳐다보았다. 그녀의 심장 소리는 거의 목끝까지 차오르고 있었고,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애플잭."
"아임더, 광산이 무너질 때 아버지랑 어머니는 거기 안 계셨심더." 애플잭은 옆에 앉은 포니의 숨이 순간 엇나감을 알았으나 모른 척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에버클리어 광산 붕괴사건 당시 목숨을 잃은 건 재수 한번 더럽게 없었던 거기서 일하던 광부 수십뿐이었심더. 여그 근처서 사는 포니덜도 다들 그렇게 알고요. 그럼, 제 부모님께서 왜 돌아가셨냐고요?" 애플잭은 순간 말하기를 망설였지만 곧 자랑스러운 듯한,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오렌지색 몸뚱이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용기가 묻어나는 웃음을 띄웠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광산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현장으로 뛰어가셨심더.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신 분들도 그 두 분이셨고요. 어머니께서는 즉각 구호물자를 끌어오셨고 아버지께서는 그 동안 갱도에 가득히 쌓인 돌덩이 사이로 소리를 질러가 생존자가 있나 찾으셨고요. 구조대가 오기 전에 두 분께서 같이 적어도 여덟은 거기서 꺼내셨을 깁니더. 에버클리어 광산 아래에 무쟈게 큰 구멍이 하나 뻥 뚫려 있었다는 기는 아무도 몰랐심더. 거기서 꺼내 온 광부 대부분이 일주일을 채 넘기덜 못하고 폐가 다 망가져가 죽어 버렸심더." 애플잭은 말하다 말고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 포니들 중에는 저희 어머니랑 아버지도 있었심더. 편히 쉬셨으면 좋겠는디. 그 누구도 저희 부모님 두 분께서 기댈 만한 포니가 아니라고 말하지를 못했심더. 마지막까지 말임더. 분명 아름다운 이야깁니더. 설령 그기 엄청난 비극으로 끝났을지라도 미담은 미담입니더. 정말로요. 나중에 포니빌 주민덜이 무너진 에버클리어 광산에다가 기념비를 세웠는디, 두 분 다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한 용감한 포니로, 허지만서도 또 불행한 구조대 중 하나로 첫 줄에 이름을 올리셨심더. 애플 일가가 다 모일 때마다 거기는 반드시 들립니더. 그래서 그런지, 저희 집안 포니덜은 하나같이 안된 포니덜을 볼 때마다 항상 마음쓰여서 견디지를 못합니더."
스쿠틀루는 애플잭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다른 세상에 가 있었다. 아주 차고, 또 외로워 몸서리가 쳐지는 세상은 재와 잔해만이 남은 이퀘스트리아의 기억을 끌어내 서서히 그녀의 머릿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애플잭은 스쿠틀루를 한 번 슬쩍 보더니 궁금한 듯 눈썹을 슬쩍 치켰다. "하모니 아가씨? 혹시... 혹시 누구라도, 에버클리어 광산 매몰사건으 책임을 진 그 누구라도 알고 계십니꺼?"
스쿠틀루는 헛기침을 하며 애플잭의 말에 맞서 말을 더듬어 뱉었다. "뭐, 어떤 의미에서는... 네, 그래요. 알고 있어요." 그녀는 날카로운 숨을 들이쉬고는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어 애플잭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애플잭, 당신이 말한 것처럼 앞날에나 최선을 다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어요? 그렇죠?"
오렌지색 암말은 싱긋 웃으며 '새 친구'가 했던 말로 되받아쳤다. "현명하시군요."
스쿠틀루의 고개가 끄덕였다. 그녀의 코 끝이 수수한 인사를 마치자 스쿠틀루의 입이 떨어졌다. "이제 전부 다 이해가 되는군요. 의지할 수 있는 뒷모습과 용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힘. 그 모든 게 애플잭 당신의 피를 타고 흐르는군요, 안 그런가요?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대지 깊숙한 곳 기반암(基盤巖)이 무너져 더욱 깊숙한 곳의 나락을 드러낸다 해도, 당신은 누군가 구해 내려 그곳으로 뛰어들 거라는 데는 한 점 의심도 없답니다. 이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알지만, 우리가 상대해야만 할 저 트롤 녀석들과 맞서는 것도 거기에서 가까워 멀지 않아요. 그 모습을, 놈들과 맞설 때도 드러내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적어도 해 보기는 할 깁니더." 애플잭이 말했다. "어머니랑 아버지는 분명 용감허시고, 또 헌신적인 분이셨지만 무언가 곰곰히 숙고하고 움직이시는 분들은 아니셨심더. 갱도 깊숙한 디꺼정 파인 구멍은 아무도 몰랐심더. 그리고 저기 저 트롤 자슥들은..." 애플잭은 한숨지었다. "그 자슥들을 처음 봤을 때, 그 때 알아챘어야 했심더. 놈덜으 그 끔찍한 가죽질으 피부랑 그 위에 번들거리는 눈깔을 봤을 때 알았어야 했심더. 놈덜이 그냥 짐승이 아니라는 기를 알아챘어야 했는디... 하아, 나가 도대체 우리 가족덜을 어디다 갖다 처박아 버린 긴지..." 애플잭의 말은 순간 쌓이는 탄식의 무더기로 쓰러졌다.
"이봐요." 애플잭의 어깨에 스쿠틀루의 발굽이 얹혔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우리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일단 발로 뛰어서 사과 터는 데 집중하다 보면, 분명 그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캔틀롯 포니덜은 다들 산도 옮길 만한 그런 정신력이 있는가 봅니더."
"저희 둘 다 그렇잖아요, 확실히요!" 스쿠틀루가 빙긋이 웃었다. 스쿠틀루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 애플잭에게 한쪽 발굽을 내밀었다. "아까 그러셨죠, 당신의 정직한 품성이 애플잭 당신의 친구들과 당신을 이어 줬다고. 음, 당신의 삶의 본질 역시 그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거에요. 가족이 있고, 가정이 있고..." 스쿠틀루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조화로운 삶을 얻으셨으니... 뭐가 두렵겠어요?"
애플잭은 스쿠틀루가 내민 발굽을 부드럽게 감싸 잡으며 몇 번 흔들었다. "그 계획이란 기는 언제쯤 알려 주실 깁니꺼?"
"당신이 내게 보여 준 것만큼 완성되면, 그 때 기꺼이 알려 드리지요." 스쿠틀루의 입이 열렸고, 금빛 노을로 물들어 가는 붉은 과수원을 바라보며 갈기를 쓸어 넘겼다. "자, 그럼 가 볼까요? 우리 둘이서라면 충분히 과수원 몇 군데는 털고도 남을 거라는 건 확실한데요."
애플잭은 스쿠틀루의 뒤를 따라 뜨거운 걸음으로 쫓아갔다. "부탁 하나만 들어 주이소. 저거 사과 터는 새에 제 허리 좀 두들겨 주실 수 있겠십니꺼?"
"아뇨. 모자를 다 망쳐 놓고 말 걸요?"
"피."
대략 삼십 분쯤 지났을까, 스쿠틀루의 숨은 헐떡이고 있었다. 단순히 몸이 지쳐 체력이 바닥을 쳐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의 몸에서 뿜어지는 피로감이 전염병처럼 퍼져 그녀의 몸뚱이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쿠틀루는 나무 하나에 기대어 푹 주저앉았다. 앞에서는 두 어스 포니들이 두 줄로 늘어선 사과나무들 아래에 바구니를 세우고 있었다. 대략 일 분쯤 지나면 점수 대신 사과를 따는 핀볼 게임이 재개될 것이었다. 이번에도 지루하고 시시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지난 오늘과 남은 오늘, 그 전부와 같이 무감한 일이 될 것이라고 스쿠틀루는 생각했다. 설령 스쿠틀루가 뜨겁게 타오르는 하모니 호의 동력 기관처럼 일한다 해도 사과 따기는 그리 빠르지 않을 것이었고 울부짖는 밤은 그리 천천히 오지 않을 것이었다.
황동색 페가수스의 황동색 눈동자 위로 눈꺼풀이 덮여 감겼다. 감긴 눈 안으로 회색 재 날리는 폐허가 다시 나타났다. 되돌아온 미래와 같이, 황혼은 그녀의 뒤를 밟았고 그의 걸음은 절름거려 눈이 깜박일 때마다 애플 집안의 무결한 대지에 침범한 고통의 짐승들과 자신의 존재는 마찬가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눈 앞에 들이댔다. 서로를 적으로 돌린 같은 아이러니의 존재들은 유한한 시간의 한 지점 위에서 만나 싸움을 벌였다. 그곳은 그들 둘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은 땅이었다. 그 둘은 대지를 둘러싸 하나의 쓰디쓴 샌드위치와 같은 이전투구를 벌일 것이었다. 그래서 포니의 말로 담아낼 수 없었다. 스쿠틀루는 찰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엔트로파 공주가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계획했을지 모른다고. 공주가 떠난 우주의 구름 속에서 이 모든 일의 아귀를 맞추고 설계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이건 뻔뻔하게도 자기의 육신을 훔쳐 달아난 한 페가수스에 대한 복수일지도 몰랐다. 녹색 불꽃에 싸이는 그 찰나의 순간조차 참지 못한 것일지 몰랐다. 되돌아 흐르는 시간을 타고 과거로, 미래로 쏘다니게 하는 그 불꽃 말이다.
그렇다면, 산 이퀘스트리아와 죽은 이퀘스트리아, 둘을 모두 품은 마지막 포니가 그 녹색 불꽃을 얻지 못했다면, 스쿠틀루를 고독한 황혼의 관 속에 밀어넣고 못질해 영원히 가두는 시간의 벽을 잠시나마 뛰어넘게 하는 녹색 화염을 얻지 못했다면,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누구란 말인가?
스쿠틀루는 노곤하게 두 눈을 열었다. 눈을 열어 뜨고 나자 반짝이는 스위트 애플 에이커 위로 한 포니가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도 숙명인지, 그 포니는 다름아닌...
"피곤혀야 헐 틴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구마. 하모니." 스미스 할머니가 말했다. "아가씨가 사과나무 사이로 날믄서 사과 터는 거 다 봤다. 나가 지금꺼정 본 것 중에서는 제일이었다카이."
"믿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네요." 스쿠틀루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더 말해 달라는 말이 묻어났다. "스미스 할머니께서는 오래 사셨잖아요. 과찬의 말씀에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허지만서도 그거는 과찬이 아니데이." 라임색의 나이든 암말이 나직이 말했다. 스미스 할머니는 시간여행자가 축 늘어져 앉은 나무를 향해 흔들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그 번쩍번쩍하고 날아댕김서 사과 따는 기를 진즉 이틀 전, 아녀, 어제였어도 상관 없겠구마, 어쨌든 그 때부텀 했어도 괜찮았을 끼다. 그 옘병헐 계약도 충분히 소화헐 만한 근거가 있었을 기란 얘기다."
"뭔가 쓸만한 게 생기면 그걸 못 쓰던 시절을 괜히 애석해하고 또 아까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스쿠틀루의 목소리는 컸고 그 뜻은 진중했다. "하지만, 그건 시간을 더욱 낭비하는 일에 지나지 않죠. 저는 제 눈앞에 있는 일을 어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달리는 게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퀘스트리아의 역사를 만든 포니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으니까요."
"하모니 아가씨는 가죽 아래 '시간'을 두르고 있는 것 같구마. 안 그라노?"
스쿠틀루의 황동색 코가 씰룩였다. "짐작도 하지 못하실 거에요." 끙 하는 소리가 뒤를 따랐다.
"아가씨 말이 맞구마. 내도 그렇게 생각한다카이." 스미스 할머니가 고개를 숙여 스쿠틀루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말해 줄 수 있으모 말해 보그라. 하모니 아가씨는 스탈리오니바리우스으 음악이 아가씨으 혼에 말을 걸어 줘서 좋아하는 기가, 아님 심장 소리에 말을 걸어 주는 거 같아서 좋아하는 기가?"
"스미스 할머니, 제가 온 곳에서는 심장 소리란 건 제 생각 속에서나 있는 그 무언가였어요."
"아가, 우리 애들헌티 아가씨가 어디서 왔나 말해 줄 생각은 있나?"
"전..." 다리를 찔린 망아지의 얼굴이 스쿠틀루의 얼굴 위로 떠올라 가엾었다. 스미스 할머니의 녹색 커팅 나이프의 부서진 조각이 그녀의 안에서 형체 없이 떠올라 혼을 조각조각 가늘게 베어내고 있었다. "앞으로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죠."
"그거는 우리가 알아서 찾아봐야겠구마." 스미스 할머니가 답했다. 말은 건조하여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귀에 들었다. "흐으으으음..." 할머니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빙긋 번졌다. "정말로 여신 같구마. 우리헌티 우리으 연장을 쥐어 주고 떠나가는 여신이구마."
"저기요, 스미스 할머니." 스쿠틀루는 사나운 한숨을 내쉬며 황동빛 머리를 흔들어 내저었다. "저는 여신이 아니라—"
"물론 내도 안다카이." 스미스 할머니는 한 줄기 숨을 내쉬며 스쿠틀루의 옆에 가 쪼그리고 앉았다. 할머니의 두 눈은 저 멀리 보이는 애플잭과 빅 매킨토시를 향했다. "허지만, 우리 가족들으 앞날이 아가씨 네 발굽에 달려 있다는 건 확실허지 않나? 안 그러나?" 할머니의 세월 묻는 눈은 날카로워 무엇이든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불현듯 따뜻해 보이기도 했다. 스미스 할머니가 말했다. "혹시 시간이 아가씨헌티 갈 상처를 생각 없이 나으 무릎 속에다가 쏟아부어가 아가씨헌티 상처입지 않는 몸뚱이를 줬다고 하모, 아가씨가 그 축복에 보여야 할 경의를 보이지 않으모 하늘은 아가씨가 아니라 우리를 대신 도울 끼다."
"할머니, 가장 훌륭한 축복들도 결국에는 저 멀리 떠나가게 마련이에요." 스쿠틀루가 말했다. 그녀 마음 안의 눈에 비치는 것들은 흉측해 날카로웠다. 이를 부득부득 가는 창백한 가죽질의 놈들의 바다가 비쳤다. 그녀는 두 눈을 비틀어 꽉 닫고 얼굴로 발굽을 가져갔다. "또 더욱 깊숙한 곳이기도 하고요." 스쿠틀루는 몸을 떨었다.
"그거 참 이상하구마, 하모니 아가씨." 스미스 할머니의 목소리는 커다랗게 돌출된 산 위로 둥둥 떠가는 회색 구름덩이 같았다. "대체 어디꺼정 내려간 기가? 거기서 대체 얼마나 시커먼 광경을 보고, 얼마나 날카로운 칼바람을 맞았길래 여기까지 걸음해서 그리 축 처진 기가? 아가씨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지니께는 이 늙은이가 깜짝 놀랐다 이 말이다." 할머니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단순히 이 늙은이 앞에 앉은 젊은 포니가 아니여. 그럴 수가 없어. 아가씨는 뭔가 다른 존재여. 뭔가 더욱 크고, 더 어두운 포니여. 우리 가족덜은 그거를 알아먹을 만한 그게 아직 없데이. 갑자기 떠오른 긴데, 캔틀롯 박사님덜을 기차로 실어 날라와도 아가씨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할 끼다."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건가요, 스미스 할머니?" 스쿠틀루는 풀 죽은 숨과 같이 소리를 내어 말의 무릎을 꿇었다.
"나가 하고 싶은 얘기는 말여, 나가 하모니 아가씨를 용서하겠다는 말이다."
스쿠틀루의 눈은 깜박이다 깜박임을 멈추고 크게 열렸다. 라임색 솜털을 한 노마(老馬)를 그녀의 눈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 저, 절... 용서하신다고요...?"
"우리 손녀, AJ 갸는 참말 천사데이. 갸를 천사로 만들어 준 건 다름아니라 갸 천성(天性)인 정직인기라. 정직한 포니덜은 이 세상으 아름다운 빛을 갖다 자기 걸로 하는 방법을 알고, 또 그 빛으로 빛나가 다른 포니덜이 그거를 보고, 또 경탄할 수 있게끔 하는기라. 허지만 아가씨는 아니여. 아가씨는 별종이여. 아가씨는 세상으 어두운 부분을 보는 눈이 있는기라. 또 나가 그 어둠 너머 볼 수 있는 곳 너머까지 아가씨는 볼 수 있데이. 그려, 나가 살면서 얻은 어두운 곳 너머까지 말여. 하모니 아가씨, 대체 어떤 무선 그림자가 여그 농장에 나와 돌아댕기는가, 내는 아는 척을 할 수도 없데이. 허지만 내 맘 깊숙헌 곳에서는 또 기쁘기도 허다. 고맙고 또 복 받은 기분이데이. 아가씨가 저 빌어먹을 것들을 갖다 도로 깊숙한 곳에 처박아 버리러 왔으니 말여. 그거는 또 하나으 놀라운 힘이다. 애플잭이 가진 힘과는 완전 다른 별개으 힘이여. 그러니 애플잭 갸는 그런 영예를 평생 못 얻을 거라고 내는 본데이. 나도 마찬가지고 말여."
"스미스 할머니, 제발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스쿠틀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멀찍이 보이는 두 남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구니도 제자리에 놓였고, 나무들도 털릴 준비가 된 참이었다. 또, 죽어 가는 오후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가 준비되어 있길 원할 뿐이었다. "그건 영예가 아니에요. 영예였던 적도 없고요." 스쿠틀루는 침을 삼켰다. "그건 절망에 불과하고, 또 절망으로 남아 있어야만 해요."
"글씨, 내는 여신께서도 그거는 잘 모르실 거라 생각허는디."
"그분들은 아실 필요 없으세요. 저희는 알아야 하고요."
한 시간 하고도 삼십 분의 시간은 사과 털기로 뜨거웠다. 과수원 서쪽 언덕 아래를 빼곡히 채운 사과나무는 시계 방향으로 털리며 매달고 있던 사과를 떨어뜨렸다. 세 포니들은 막판까지 자기들의 몸을 용감히 몰아붙였고, 그들의 가차 없는 몸놀림은 매달린 사과를 향해 달렸다. 그 셋의 눈 앞에 더 이상 사과가 보이지 않을 때만, 그 찰나의 시간에만 그들의 몸이 멈추었다. 태양이 황동색으로 물들어 가는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가라앉을 때까지. 몽롱한 땅거미가 과수원의 모서리부터 서서히 깔려 내려오고 있었다. 밝은 녹색의 잎사귀가 칙칙한 회색의 나뭇잎으로 변함과 동시에 흔들리는 나무줄기 사이를 헤치며 날아가는 '하모니'의 춤이 멈추었다. 애플잭은 숨을 헐떡대며 '하모니'의 아래에서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다. 스미스 할머니는 집에서 느릿느릿 걸어나왔고, 발을 질질 끌며 서쪽으로 통하는 흙길로 걸어갔다. 할머니는 약해진 뼈를 들어 헛간으로 통하는 길의 길가에 매달아 놓은 전등에 불을 켜 밝혔다. 마지막 수확물을 담은 바구니 위로 또 바구니가 쌓여 마지막 수레는 꽉 찼다. 빅 매킨토시는 근처에 놓아 둔 물그릇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고, 남은 태양빛의 울부짖음에 다시 한 번 그의 근육을 추스렸다. 그는 커다란 수레를 끌고 과수원을 덮은 사과나무의 숲 사이로 걸어갔다. 전에 정교한 철창 덫을 만들던 그 자리였다. 그의 덫은 밤새 트롤의 발가락에 몸이 풀려 흩어졌다..
트롤...
스쿠틀루가 말없이 스러지는 잔디 위로 날개짓을 하며 날아감과 같이, 그녀는 어두워져 가는 하늘에, 차가워져 가는 바람에, 숲 속에서 흘러나와 번지는 그림자의 벽이 울타리를 넘어오는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쿠틀루는 과거로 '투영'된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이 애플가 포니들의 곤경을 해결해 줄 방도가 아니라 거대한 공허뿐이어서 몸을 떨었다. 그 방도를 찾으려 분투했음에도, 기를 쓰고 궁리했음에도, 기다렸음에도, 방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막 포니는 길고, 또 거칠어 힘들었던 트롤과의 싸움으로 세월을 보냈다. 심무(深霧)의 악마들과 부대끼던 그녀의 세월은 황무지 곳곳에서 들리는 짐승의 울부짖음과 놈들의 포효를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옆구리와 영혼에 흉터 몇 군데를 남겼다. 이퀘스트리아 깊숙한 곳 어둠을 끌고 올라와 이퀘스트리아의 미래를 더럽히던 야만적이고, 또 난폭한 흉물들을 과소평가한 대가였다. 재앙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트롤들을 '처리'할 스쿠틀루의 답은 사실 없었다. 놈들과 맞서기 위한 유일한 방도는 놈들을 피하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이 스쿠틀루가 위험을 감지하면 곧장 비행선으로 달아나는 이유였다. 두려운 재앙이 말 그대로 이퀘스트리아를 짓밟아 그녀가 밟고 선 대지를 잿더미로 만들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저 괴수들은 말 그대로 그나마 남아 있던 옛 이퀘스트리아의 옛모습마저 빼앗아 갔다. 트롤 녀석들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한 짐승들이었지만 지금 저들이 생명 없는 망각 아래 바글거리고 있는 한, 놈들은 분명 다가올 미래에 군림하게 될 것이었다.
지금껏 본 대지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대지를 굽어보는 스쿠틀루의 굽어진 눈은 고통스러웠다. 대지는 살아 있었으나 기쁨과 음산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비견될 정도로 푸르고 또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은 이퀘스트리아에 없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어스 포니의 위대한 정신이 공존하는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이퀘스트리아가 화염과 날리는 재 아래서 죽어 갈 때, 그 둘은 깊은 무저갱(無底坑)을 파 세계에 남았던 생명의 숨소리를 깨끗하게 닦아 영원히 지워 버렸다.무자비한 미래의 괴물들의 입 밖으로 삐져나온 혼돈의 송곳니 속으로 온 세상이 집어삼켜지는 것을 보는 것은 어이없고 졸렬한 희화화였다. 무지개를 띄우는 고군분투나 마법의 불꽃을 찾아 파괴된 도시의 잔해를 뒤지고 다닐 때도, 그녀는 놈들과 같이 숨쉬고 있었고, 그 때마다 놈들에게서 목숨을 건지려면 겁쟁이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 셀레스티아 공주의 비옥한 농토와 땀에 젖어 자애로운 대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살다 죽어 간 애플가의 선조들... 스쿠틀루가 몸을 빼내 도망칠 만한 핑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놈들이 정말 많군요." 황동색 솜털을 한 페가수스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무슨 일임꺼, 아가씨?" 애플잭이 빅 매킨토시가 끌고 가는 수레의 그림자 드리운 가장자리를 빙 돌아 걸어오며 말했다. 애플잭은 사과나무 사이로 날쌔게 날아가는 스쿠틀루의 뒤를 쫓아 뛰어다니느라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궁금한 듯 스쿠틀루를 바라보며 모자를 바로 고쳐 썼다. "드디어 그 잡것들을 쫓아낼 방도가 생각나신 깁니꺼?"
불가능하다고, 스쿠틀루는 애플잭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믿고 신뢰하는 한 포니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저 괴물들을 상대하며 느낀 고통과 고뇌, 그리고 슬픔을 흐느끼며 털어놓고 싶었다. 살아남은 다른 포니를 찾아, 무지개를 띄우려 할 때 저 멀리서 달려오는 놈들의 발소리에 떨어야 했던 기억을, 완전히 파괴된 포니빌 한가운데서 창에 찔려 피칠갑이 된 기억을 말해 주고 싶었다. 그 세월에 굳어진 영혼 깊숙한 곳에서도, 스쿠틀루는 그 침흘리던 짐승들을 처리한 것이 자기가 아니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기적처럼 나타난 드래곤 하나가 놈들을 처리했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폐허가 아니었다. 여기는 과거였고, 스위트 애플 에이커였다. 그리고 저녁이 끝나고 밤이 찾아올 그 때는 저 나무 속에 숨은 가죽질의 몸뚱이가 뛰쳐나와 쇄도하는 것의 서곡이 될 것이다. 또, 스쿠틀루는 마지막 포니가 아니었다. 그녀는 '하모니 비서관' 이었다. 애플잭은 스쿠틀루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애플잭,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당장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아요." 스쿠틀루는 돌 같은 호박색 눈동자를 들어 애플잭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일단 가능한 한 많은 사과를 수확했으니 됐어요. 다음으로는 저 숲을 봉쇄해야 해요. 모든 출입구에 판자를 덧대서 막고,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불침번을 서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놈들을 주시하는 한, 적어도 우리 목숨은 무사할 거에요."
"그라모 과수원 서쪽이랑 북쪽은 우짭니꺼?" 애플잭이 마른침을 삼켰다.
스쿠틀루는 냉정히 숨을 뱉어내며 말했다. "그건 내일 걱정합시다..."
애플잭은 진흙 묻은 발굽을 들어 턱을 문질렀다. 그녀는 소리 없는 웃음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을 내비쳤고, 순간 그녀의 녹색 눈동자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쳤다. "그 자슥들이 햇빛만 보면 나가떨어진다고 하셨죠, 기죠? 그라모 횃불을 사방에 달아가 밝게 비추모 갸들도 순 겁쟁이마냥 꽁무니를 빼지 않겠십니꺼?"
스쿠틀루의 시선이 씰룩거렸다. 재앙 직후, 달이 떨어져 생긴 커다란 구멍에 선 외로운 분홍갈기 꼬마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마지막 포니도 애플잭과 같은 생각을 했었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은신처 주변에 오십 개의 횃불을 매달아 밝게 비춘 모습은 불길의 방벽을 쳐 놓은 모습과 같았다. 횃불을 다 매단 스쿠틀루는 처음으로 몰아 본 비행선을 가지고 낑낑대고 있었다. 요점만 말하자면, 스쿠틀루는 비행선의 시동을 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뇨, 그건 안 됩니다, 애플잭. 트롤 놈들한테는 횃불은 그저 장난감에 불과해요. 만일 그랬다간 놈들은 순식간에 횃불을 뜯어내 던져 온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불을 질러 버리고 말 거에요."
"니미럴. 확실한 깁니꺼?"
"절 믿으세요."
"머..." 애플잭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씰룩이는 목을 툭툭 두들겼다. 애플잭의 입술은 찌푸린 바위의 모습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빅 매킨토시랑 내랑, 한 번도 저희가 맹근 덫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심더. 사실, 어떤 식으로든 그기 망가질 거란 거는 알고 있었으니께요."
"무슨 뜻이죠?"
"그 잡것들을 어떻게 할 건지, 진즉에 계획을 맹글어 논 게 있심더." 애플잭은 지친 듯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오늘 밤에, 저 빌어먹을 잡것들을 완전히 박멸해 버리고 말 깁니더."
애플잭을 바라보는 스쿠틀루의 두 눈은 가늘어졌다. "그 '박멸'이 뭔지 설명해 주시죠."
"머라꼬요...?"
"놈들이 보이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당신이랑 당신 오빠가 저 트롤 놈들이 보이면 놈들한테 어떻게 할 거냔 말입니다."
"머, 아시다시피— 온 힘을 다해가 몇 대 후려 패고 말 깁니더!"
"달랑 그건가요? 놈들을 '때리시겠다'는 건가요?"
"저기..."
"그걸로 되겠어요? 그 자식들의 대가리를 한 대 호되게 쥐어박고 나면, 걔들이 꼬리 말고 도망갈 것 같아요? 걔들이 어디에 멍 좀 들었다고 깨갱대면서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기, 어, 아님더. 저희가... 아시다시피..." 애플잭이 제자리에서 자세를 바꾸며 말했다. "...놈들을 여기서 쫓아낼 깁니더. 말 그대롭니더."
"애플잭, 전에 뭐라도 죽여 본 적 있어요?"
"뭐, 뭔가를... 죽인다꼬요?"
스쿠틀루는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보자... 그니까... 스위트 애플 에이커도 대대손손, 아주 오랫동안 귀찮게 하는 기 참 많습니더. 비암에, 초파리에, 벌레에, 쥐새끼에, 혼자 돌아댕기는 늑대도 몇 번 봤심더.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모, 지 가장 오래된 기억 중으 하나가 아버지랑 같이 땅에서 그 귀찮은 두더지 놈들을 파내던 기억이니까예. 그러다 보니께 그런 귀찮은 잡것들을 처리하는 데는 전문가가 다 됐심더."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애플잭."
"아니라꾸요?" 애플잭은 초조한 듯 눈을 깜박였다.
스쿠틀루는 애플잭을 차갑게 노려보며 그녀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 뭐가 됐든, 죽일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묻는 겁니다. 애플잭. 제가 말씀드리는 건 단순한 무언가가 아니에요. 생각도 하고, 숨도 쉬면서 똑똑한 것들 말입니다. 당신의 공포와 약점을 속속들이 다 꿰고 있는 그 놈들 말입니다. 놈들도 물론 두려워하는 것이 있고, 약점도 있겠지요. 저는 그걸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놈들을'박멸'하기 위해서요. 놈들의 기억에서 길어올린 모든 산 것들에 대한 증오와 욕망을 담아 씰룩대는 놈들의 영혼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 스스로의 의지로 놈들과 맞설 수 있어요. 날카롭게 간 쇠스랑이나 무거운 삽으로 무언가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보다도 더욱 날카로운 직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애플잭, 당신이 놈 하나를 잡아다가 얼마나 짓밟아서 얼마나 짓이기는지는 하등 상관이 없단 말입니다. 부정할 수 없으실 겁니다. 에포나 여신의 축복이 담긴 당신의 마음 한구석 아주 조그마한 곳에서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놈들이 아무리 괴물이라지만, 놈들도 가정이 있고 어머니가 있습니다. 우리 포니들을 살아 숨쉬게 하고, 또 춤추며 노래하게 하는 자연의 섭리는 놈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졌단 말입니다.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애플잭은 입술을 깨물며 축 늘어져 대지에 깔린 그림자 어린 흙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뇨, 못 합니더. 못 해요. 저, 저는 그런 거는 못 합니더. 오빠도 그, 그런 짓은 못 합니더..."
스쿠틀루는 쓰라린 웃음을 지었다. "그 누구도, 놈들과 같은 감정을 가져서는 안 돼요. 애플잭, 우리는 생명을 사랑하는 생명이니까요. 우리는 평화와 우정, 그리고 이 세상을 아름답고 또 마법 같이 만들어 주는 그 모든 가치 안에서 살아야 해요. 포니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전쟁도 천 년 전이에요. 당연히, 그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루나 공화국이 자기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항해 무기를 들고 일어난 그 전쟁 이래로, 우리 문명에 깊숙히 새겨진 그 무의미한 상처를 다시 고치는 데 너무나 오랜 세월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스쿠틀루는 침을 삼키고는 밝은 금빛도 다 져서 없어져 가는 서쪽 지평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포니들이 양심의 가책 없이 누군가를 죽이게 될 때는 이미 암흑의 시대가 도래한 뒤일 거에요. 뭔가... 뭔가 앞으로 온 대지를 뒤바꿔 놓을 일이 생기고야 말 거에요..."스쿠틀루의 숨은 씁쓸하고 텁텁한 중얼거림에 걸렸다. 그녀의 숨에는 순간 구리의 냄새가 섞였고 이내 사라졌다.
"그라모, 우리덜이 더 이상 견디지도 못하고, 또 놈덜을 쥑이 삘 수도 없다 그라모..." 애플잭이 모자를 툭툭 쳐 털며 한숨지었다. "...그라모 대체 우리덜이 뭘 해야 하는 깁니꺼?!?"
스쿠틀루는 조용히 속으로 빌었다. 애플잭의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이유를 대기 위해서였다. 무엇이든 좋았다. 지금 당장, 여기서 답을 하지 않을 이유면 충분했다. 어린 망아지의 발굽 소리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같이 다가와 기도에 답했다. 즐거운 목소리가 어두워져 가는 대기를 밝혔다.
"우와! 언니야가 오늘 여기 사과 다 턴 기고? 완전 끝내준다!"
"애플블룸!" 애플잭이 꾸짖듯 말했다. "나가 한 달 내내 너한티 헌 말이, 집 밖으로 혼자 나와도 된다는 말이었나? 특히 다 어둑어둑해지는디 나오라 캤나?!"
"혼자 아니다!" 새빨간 갈기를 한 망아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천진하게 밝은 머리리본이 머리에 묶여 꾸미고 있었고, 그 광경은 갓 태어난 혜성이 떨어지며 주위를 밝히는 모습과 같았다. 애플블룸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뒤를 따랐다. "언니야랑 하모니 언니가 나랑 있지 않나!" 애플블룸이 스쿠틀루를 보며 눈을 찡긋하고 입을 열었다. "언니가 사과 따는 거 다 봤어요! 나무 사이로 통통 튀어다니던 기 꼭 유령 같았어요. 그거 되게 멋있었어요!!"
"애플블룸..." 애플잭이 지친 발굽을 얼굴에 비비며 투덜대듯 말했다. "아가, 우리가 지금 쪼매 바빠서 말이여—"
"스미스 할머니가 언니가 음악도 들을 줄 안다고 그러셨어요! 다른 포니들도 그렇지만, 저는 특히나 명곡을 즐길 나이보다도 훨씬 어렸다고 그러시던데요." 애플블룸은 얼굴을 구기더니 이내 방긋 웃었다. 아이의 밝은 호박색의 눈은 놀라움에 가득 차 자기를 바라보는 낯선 포니의 눈동자와 맞았다. "바이닐 스크래치라고, 들어 보셨나요?"
스쿠틀루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참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몸을 배배 꼬고 있었지만 애플블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살짝 떨렸다.
"하모니 언니?" 조그마한 망아지가 눈썹을 치켰다. "괜찮아요?"
"자, 가자. 우리 꼬마." 애플잭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가 주둥이로 애플블룸을 쿡쿡 찔렀다. "집에 들어가 있으래이, 알았나!"
"그래도 언니야! 하모니 언니헌티 음악 관련해가 뭣 좀 물어보고 있었는데—"
"나헌티 '그래도' 란 말 쓰지 말그래이! 슬슬 저녁 먹고, 씻고 잘 시간이다! 내일꺼정 딸 사과가 아직 산더미처럼 남았응게, 빅 매킨토시랑 내랑은 좀 미리미리 털고 들어갈 끼다. 그러고 들어가자마자 디비 잘 거거덩? 우리 둘이 일찍 잔다는 기는, 니는 더 일찍 자야 헌다는 야그제!"
"아우우우... 그래도 언니야!"
스쿠틀루는 헛기침을 했다. 두 자매는 그 자리에 굳어 페가수스를 흘끗흘끗 쳐다보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스쿠틀루는 고개를 돌려 애플블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초조한 듯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스쿠틀루가 말을 꺼냈다. "애플블룸, 아직 아름다운 교향곡을 듣고 이해하기에는 넌 아직 어리잖니. 할머니께서는 단순히 취향만 고상하신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 역시도 알고 계시단다. 할머니는 당신이 알고 계신 그 모든 걸 너랑, 오빠랑, 언니랑 나누시길 원하시는 것뿐이란다. 왜냐면, 그건 할머니 자신을 나누는 것과도 마찬가지인 일이니까."
"그래두 그건 너무 졸리고 딱딱해요!" 애플블룸이 얼굴을 구겼다. "전 빠른 비트랑 춤추기 좋은 댄스곡이 좋다고요. 언니도 그렇죠?"
"그 '졸리고 딱딱한' 음악도 춤추기 정말 좋은 음악이라는 걸 알면, 분명 깜짝 놀랄 거야." '하모니'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특히, 그 음악이 네 좋은 시절과..." 그녀는 미세하게 숨을 마셨고, 곧 눈을 찡긋하며 다음 말을 꺼냈다. "...좋은 친구들을 떠올리게 해 준다면 더더욱."
"우와. 하모니 언니도 참 많이 아네요." 애플블룸이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그렇게 해서 큐티마크를 얻으신 거에요?"
"내, 내 큐티마크 말이니?" 스쿠틀루는 순간 잊고 있던 큐티마크 크루세이더의 기억과 눈 앞에 서 있는 작은 큐티마크 크루세이더 앞에 눈만 깜박였다.
"야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더." 애플잭이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애플블룸을 쿡쿡 찔렀다. "한창 큐티마크를 얻을 때니 말임더. 아가씨도 얘기를 좀 들려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예."
"하아,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스쿠틀루가 빙그레 웃으며 눈만 깜박이는 망아지를 향해 걸어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꼭 알고 싶다면 이야기해 줄게, 애플블룸." 치어릴리 선생님이 말했던 별 망령 같은 말 위로, 그녀의 마음이 떠가며 그 자취를 훑었다. "내 큐티마크는 내가 캔틀롯 왕실의 비서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나는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위해 포고와 외교 업무를 맡고 있어.가끔씩은 공주님의 전령 역할을 하면서 이퀘스트리아 위를 날아다니기도 해. 포니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야."
"우와아아아아아..." 아이는 깜짝 놀란 듯 했다. 아이의 웃음은 꿈결 같았고 거의 침이 흐르기 직전까지 갔다. 아이가 물었다. "그러면 여기 검은 문장 위에 새겨진 이거, 검게 빙빙 도는 건 뭐에요?"
"그건 무한대를 나타내는 기호란다." 스쿠틀루가 숨을 내쉬며 말없이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건 말 그대로... 음... 무한 아닐까?"
"어떻게 얻은 거에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 되나요?"
"애플블룸!" 애플잭이 다시 꾸짖어 말했다. "집으로 가그래이! 인쟈 충분허지 않나!"
"허지만 나가 큰 소리로 멋진 걸 얘기허고 댕기모 나가 하모니 언니만큼 멋있는 큐티마크를 얻을지 모른다!"
"내 말 좀 듣거래이, 아가. 진짜로 그렇게 큐티마크를 얻으모 너그 발굽부터 갈기꺼정 그 시커먼 빙빙 도는 기 다 뒤덮을지도 모른다카이. 우리 작은 강아지는 인쟈 집에 가그래이!"
"허지만 하모니 언니랑 같이 가고 싶다!"
"내일 학교 가려면 좀 자 두는 게 좋지 않겠니, 아가?" 스쿠틀루가 방긋 웃었다.
"피. 그랬으면 그랬겠죠! 오늘은 토요일이에요!"
"아." 스쿠틀루가 멍하게 눈을 깜박였다. 마지막 포니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토요일 다음에 뭐가 오더라...?"
"헤헤헤헤! 하모니 언니도 참! 누구나 다 아는 긴데!"
"애플블룸."
"갈 거야! 갈 거라고! 언니야, 모자 돌리지 말고!"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잽싸게 발걸음을 옮겼다.
애플잭이 금발 갈기 덮인 머리를 흔들더디 다시 페가수스 앞으로 걸어왔다. "쟈는 신경쓰지 마이소. 머라더라, 쟈 친구 둘이랑 같이 '큐티마크 크루세이더'던가 뭔가를 만들었거든요. 쟈도 정회원임더."
"뭐 그래도, 정말 귀엽긴 하네요." 스쿠틀루는 숨기려 했던 우울한 숨과 같이 말을 내쉬었다. "할머니랑 마찬가지로 붙임성이 굉장히 좋네요."
"그리고 또 완전 앞뒤 꽉 막히기도 했고요." 애플잭이 눈을 굴렸다. "나가 지금 누구 얘기를 하는 깁니꺼? 헤헤헤헤..."
"히힛, 알았어요." 스쿠틀루가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이맛살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바이닐 스크래치는 대체 누구죠?"
"저도 모릅니더. 요즘 아들이 아주 좋아 죽을라 카는 클럽 음악하는 아 중에 하나라고 그러데예. 지 취향에 너무 신경쓰진 마이소. 요즘에 제가 듣는 노래 중에 유일허게 유명한 게 딱 하나밖에 없심더. '12월까지는 수확해야지.' 라고, 트로터 스위프틀리 노래 하나 있심더."
"네, 그럼 됐어요."
애플잭은 멀찍이서 사과로 가득한 상자를 날라 바리케이드를 치는 빅 매킨토시를 바라보며 어두워져 가는 저녁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하아, 신이시여." 애플잭이 신음했다. "오늘 하루 죙일 사과 따느라 저 스스로를 엄청 몰아붙였어예. 빅 매킨토시는 전혀 안 그래 보이긴 하지만서도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거는 똑같심더. 그리고 또, 저희 둘 다 쥐새끼를 쫓아가는 굶은 뱀마냥 진이 쭉 빠졌다는 기를 알지만서도 한 숨 자고 나면 불 보듯 뻔한 기적처럼 도로 나아 있을 깁니더. 매일 밤마다 똑같은 짓거리를 반복하지라. 설령 저 트롤 놈덜이 우리으 피를 원하는 기 아니라, 그냥 죽지 않을 만큼만 갖고 노는 거라 기래도 말입니더. 지난 몇 주 동안이나 포니빌 주택가에 놈들의 시끄러운 포효 소리가 안 들어갔다는 걸 알고서나 깜짝 놀랬심더. 하모니 아가씨, 지는 어떻게 그 소리가 안 들렸나 전혀 모르겠심더. 내일 딸 사과가 남아 있기나 할런지, 지는 희망을 버리기로 했심더."
"포기하지 마세요, 애플잭." '하모니'가 어두워져 가는 과수원 서쪽과 북쪽의 나무 꼭대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머라꼬요?"
"아침에 다시 뵐 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인걸요." 페가수스가 말했다. "누군가는 불침번을 서야 해요." 저 끝없이 펼쳐진 사과 과수원의 그림자 속에 무리지어 숨은 창백한 몸뚱이를 생각하자 스쿠틀루는 현기증이 났고,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확실히, 아주 길고 긴 밤이 될 것이었다. "당신 가족을 당신 혼자한테만 던져 두고 떠날 수는 없어요.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헤아리지도 못하겠군요."
"다시 포니빌로 돌아가시는 기 아니셨심꺼?"
"포니빌이요?" 스쿠틀루가 얼굴을 구겼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지는 아가씨가 저희를 도와 주시러 오시면서 호텔이라거나 뭐 그런 데에 묵으실 줄 알았는데예."
"아아, 아니에요." 스쿠틀루가 빙긋 웃었다. "호텔엔 가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하던 말을 끊고 잠시 몸을 움찔하더니 반복해서 말했다. "제 말은, 전 괜찮답니다. 애플잭. 전 당신을 도우러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들른 거에요. 그러니 일이 끝날 때까지 여기를 비우지 않을 거에요. 두 개 다 말이에요. 사과 따는 거랑, 트롤 놈들이랑."
애플잭은 오래도록 스쿠틀루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오렌지색 얼굴에 환한 웃음이 천천히 번져 갔다. "우리 구릿빛 아가씨! 머리 없는 말이 돌아다니는 밤중에 혼자 돌아다니게 놔둘 수는 없지요! 자자, 어서 가시죠—" 애플잭은 페가수스의 꼬리털을 잡아당겼다.
스쿠틀루는 고개를 갸웃거려 두 번 그녀를 흘겨보았다. "저기요?"
"네, 네. 저기요. 안으로 들어오이소."
"어디 안으로요?"
"에이, 다 아심서 그러시네, 저희 집 말임더!"
스쿠틀루의 심장은 한순간 박동을 멈추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네 발굽 아래의 녹색 대지가 빙빙 돌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거절했다. "아뇨, 괜찮아요. AJ...아니다, 애플잭. 그럴 수 없어요. 누군가는 저 숲에서 트롤이 기어나오는지 아닌지 보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거라모 오늘 하루 뼈빠지게 일한 것 때문에 금방 엎어져 잘 테니 아무래도 좋심더! 날아댕김서 사과 따는 데 재능이 있을지는 몰라도, 누구나 자기의 한계는 있는 법임더. 아가씨 혼자 저 갈아 마셔도 션찮을 것들을 막으라고 이 찬 디 던져 두고 가모 지가 죄스러워서 그럽니더. 식사 좀 허시고, 디비져 주무시는 게—"
"애플잭, 전 괜찮—"
"아가씨를 내일꺼정 여기 세워 뒀다간 저희 가족덜이랑 여기 농장이랑 벼락을 맞을 낍니더!" 애플잭이 툭툭 치며 말했다. 애플잭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고,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물론 '은유적 표현'입니더, 아가씨." 그녀는 헛기침을 하고 진심 어린 눈길로 검은 갈기 포니를 바라보았다. "어제는 아가씨를 쫓아낼라꼬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심더. 그냥 좀 낯익은 얼굴이라 미처 몰라보고 말임더. 그려도 지금은 하모니 아가씨가 저희랑 같이 있지 않습니꺼. 아가씨가 울 오빠으 목숨을 구했고, 또 제 목숨을 구했십니더. 지가 만약 아가씨헌티 응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은 저희 어머니랑 아버지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깁니더. 맛있는 사과랑 주무실 데를 내 드리겠십니더. 저희 집에서 묵으실 깁니꺼, 아니면 관두실 깁니꺼?"
스쿠틀루는 숨이 막힐 듯 애플잭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깜박인 자리는 흐릿했고, 그 자리에 탁탁 소리를 내는 호박색 불꽃과 녹는 마시멜로의 냄새가 풍겼다. 그 자리에는 사과 세 개를 담은 뒤집어진 모자를 들고 선 언니 같은 얼굴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간 죽음 같은 세월 속에서, 가장 간단할 수 있는 선물은 혼자 떨던 어린 망아지에게 한 주 동안의 몸서리쳐지는 시간이 따뜻하고 밝은 꿈을 꾸듯 물 흐르듯 지나가게 했다. 누군가 가족이라 부를 포니를 갖는 생각으로, 집이라고 부를 거처의 생각으로, 그녀의 순간이 잠깐이고 그 자리에서의 순간이 잠깐이듯 잠깐 지나가는 조화의 생각으로 그렇게 한 주는 잠깐 동안에 지나갔다.
마지막 포니는 머릿속에 흐르는 생각을 용감히 끊었다. 그녀가 그렇게 강인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멍청하진 않은 건 확실했으니까. "애플잭, 초대에 감사드려요." 스쿠틀루는 웃음을 맛보듯 웃음지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미소짓지 못하리라는 걸 아는 것처럼.
"그라모 됐심더!" 애플잭이 방긋 웃으며 비틀거리는 페가수스를 쿡쿡 찌르며 자랑스러운 듯 농가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말 한다고 너무 신경쓰진 마이소, 아가씨. 우선 목욕부터 좀 하입시다!"
스쿠틀루는 짜증 섞인 눈을 깜박였다. "으음... 네에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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