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이 지나자 집에 켜져 있던 대부분의 불빛이 꺼졌다. 벽난로의 불꽃은 여전히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었고, 뜨거운 한숨과 같이 반짝이며 자수 덮개가 덮인 가구의 부드러운 모서리 위로 빛났다. 소파에 편안히 앉은 스미스 할머니의 무릎 위에는 씻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친 애플블룸이 앉아 있었다. 라임 색깔 솜털을 한 할머니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두 발굽으로 책을 들어 아이를 안았고, 아이는 눈을 깜박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할머니는 방 안의 춤추는 그림자와 아이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었다.
"허지만 노란 아기새는 다른 새덜이 자기를 놀림거리로 맹글어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꼭 나만으 나무를 가지고 말 거여!' 갸가 말했어요. '그라모 나도 다른 새덜처럼 크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끼다!' 그래서 갸는 주변을 샅샅이 훑어가 날고, 날고, 날고, 날아다녔어요. 허지만 커다란 나무는 죄다 다른 새들이 벌써 차지허고 있었습니다. 갸도 다른 새들으 둥지로 폴짝 뛰어들어가는 기 대단히 건방진 일이라는 걸 알았고, 그런다 그래도 다른 새덜이랑 같이 사는 기는 갸 노래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기를 알았답니다. 갸는 혼자서 연습을 헐 필요가 있었으니께는! 어느 맑고 화창헌 날 아침에, 노랑 아기새는 햇님이 맨 처음으로 들렀던 저그 언덕빼기 위에서 아주아주아주아주 쪼그마한 사과나무를 하나 찾았답니다. 사과나무는 정말 작아서 다른 새들은 그 누구도 그 위에 둥지를 틀고 싶어허지 않았지만, 노랑 아기새헌티는 딱 맞는 곳이었습니다. '드디어 나무를 찾았구마. 나가 노래를 연습허기에 아주 딱 맞는 크기여!' 그래서 갸는 그 위에담 둥지를 틀고 매일 아침마다 노래를 연습혔습니다. 하지만 갸 노래는 조금도 나아지지를 않았어요. 갸는 그냥 자기 노래가 크고 아름다워지기만을 원했을 뿐이었지만서도, 노래가 똑바로 나오지를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 아침에, 갸는 나무를 떠나갔습니다. 물론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는 거는 잊덜 않구요. '괘안타. 사과나무 아가씨. 아가씨를 더 크게 키울 만한 기 먼지 알고 있응게. 다른 새들이 큰 나무에 사는 이유는 바로 갸들헌티 가족이 있기 때문이여! 그러니께 나가 나으 가족을 꾸리게 되모, 아가씨도 마찬가지로 커질 거여!'"
계단 아래쪽에서는 스쿠틀루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계단 맨 아랫단에 앉아 그림자에 싸인 채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스미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벽난로의 불빛에 비치는 애플블룸의 모습은 따뜻했고, 페가수스는 이 옛날 이야기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듣는 옛날 이야기였다.
스미스 할머니는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 풀어갔고, 황동색의 시간여행자는 장막을 친 현관문에 의자를 가져다 쌓은 빅 매킨토시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의 녹색 눈동자는 과수원을 둘러싼 어둠을 똑바로 쏘아보며 그 악마 같은 짐승들이 저 너머에 숨은 조짐을 보이는지 찾고 있었다. 그는 그의 앞다리로 삽을 들고 있었고, 분명 너무나 지쳐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을 터였지만 그는 여전히 우직하게 우뚝 서 피곤하단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발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애플잭이 계단을 느릿느릿 걸어 내려오며 스쿠틀루의 옆에 와 신음 섞인 한숨을 내쉬며 앉았다. "저 잡놈들으 조짐이 있었습니꺼?"
스쿠틀루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것보다도, 지금은 빅 매킨토시 씨가 보초를 서고 있을 시간인데... 안 주무실 건가요?" 스쿠틀루의 목소리는 위층의 애플블룸이 들을 수도 있어 조용하고 은밀했다.
애플잭의 목소리도 조용하긴 마찬가지였다. "아가씨는 그럼 왜 안 주무십니꺼. 저만 잠 못 드는 기 아니었네예." 말은 그렇게 해도 애플잭은 커다랗게 하품을 하더니 근처의 벽에 몸을 기대어 충혈된 녹색 눈동자를 열었다. "여기 제 가족들이 있심더. 아주 편안하게 잘 있지요. 그리고 저기 울타리 너머에는 그 무섭고 추잡한 것들로 득시글거리죠."
"그래도, 좋지 않나요." 스쿠틀루는 아늑한 벽난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고, 아이와 노마가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시간을 전에 한 번도 가져 보지를 못해서..."
애플잭이 몸을 돌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말은 스쿠틀루의 두 귀를 부드럽게 감쌌다. "저녁 식탁서 말씀하셨던 거 말인데예.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님서 봤던 그 모든 기 다 텅 빈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십니꺼..." 애플잭이 한쪽으로 고개를 기대며 물었다. "하모니 아가씨, 그기 아가씨가 삶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깁니꺼?"
스쿠틀루는 웃음을 지어 애플잭을 안심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는 뭐, 다 녹슨 서양갑옷의 장갑으로 풍선을 잡으려 드는 꼴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삶은 절대로 텅 비지 않아요, AJ. 삶이란 것은 자기를 채우려고 하니까요."
"나가 보기에는 아가씨도 그냥 저희처럼 여물통에 머리 박는 부류인데예."
"무슨 말씀이세요. 전 깔끔하게 먹는 걸 더 좋아한다고요."
"치, 배신자!"
"헤헤헤." 스쿠틀루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 스쿠틀루는 다시 한숨을 쉬며 앞다리를 팔짱 끼듯 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벽난로를 바라보며 그 너머에서 흐르는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노랑 아기새는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스미스 할머니가 하품을 하는 애플블룸을 안으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왜냐모, 갸는 지 가족들에 아주 흠뻑 빠졌거든요. 아내와 두 꼬마들을 데리고 사는 기 이토록 행복할 줄은 전혀 몰랐으니께요. 갸는 자기 꼬마덜한티 자장가를 불러 주것다는 생각 하나로 노래를 연습했습니다. 갸는 고향에 두고 온 조그마한 사과나무도 죄다 잊어버렸어요. 왜냐모, 갸으 삶은 하나으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고, 가족이 노래으 후렴구가 되어 주었으니께요. 그리고 갸도 모르는 사이, 갸으 노래도 크고 아름다워졌어요. 꼬마덜한티 딱 맞는 아버지가 된 기지요. 어느 날 갸가 과수원 서쪽으로 돌아왔을 때, 갸는 정말루 깜짝 놀랬십니더. 가족덜이 가서 살기 딱 좋을 정도로 크게 자란 사과나무가 있었거든요. 허지만, 갸는 맨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왜냐모 그 나무가 살아 움직이면서 다른 새덜이 둥지도 못 틀게 날아 들어온 새덜을 때려서 던져 버린 것처럼 너무나 깨끗했거든요! '저 나무 말인가! 상서롭지 못혀!' 다른 새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저 나무, 새들을 들이질 않어. 그 누구도 들이질 않았다니께!' 하지만 노랑새는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갸는 가족들이 살 나무가 필요혔고, 그 나무는 딱 알맞은 크기였으니께요. '사과나무 아가씨, 아가씨 위에다 둥지를 틀게 해 주소!' 갸는 날개도 딱 접고 나무헌티 사정했답니다. '지는 충분히 크고 강허고, 저희 가족덜은 살 디가 필요헙니더!'"
스쿠틀루의 날개는 멍하니 펼쳐졌다 접혀지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오며 날아 지나갔던 하늘을 떠올림과 같이, 그녀의 안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하늘은 단 한 번도 금빛으로 빛나지 않았다. 우울한 흥얼거리는 소리가 방의 고요한 침묵을 깨뜨렸고, 스쿠틀루는 억지로 애플잭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저기요, AJ..."
"음... 네, 하모니?" 애플잭이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나며 말했다.
"혹시... 아, 저기..." 페가수스는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더듬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어스 포니로서, 이 땅에 무언가 이상한 게 있다, 고 느낀 적이 있나요?"
"아가씨 말은, 땅에서 기어나와서는 우리 전부를 다 죽여 버릴라 카는 저 추잡한 트롤 잡것들 말고도, 다른 기 또 있었냐, 이거죠?"
"흠흠. 네, 트롤 말고요." 스쿠틀루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말을 계속했다. "혹시... 전 잘 모르겠지만... 땅이 조금 떨렸다던가, 아니면 이상한 지진이라던가, 아니면... 아니면 그냥 이퀘스트리아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난 적 있나요?"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심더. 여기 땅은 아주, 아주 좋은 땅이거든요. 가끔 소덜이 막 뛰어댕기거나 허지 않으면 땅이 흔들리지도 않고요. 포니빌에 그 개판이 나기 전에 지 혼자 그걸 막아야 합니더. 머, 헤헤... 위노나가 도와 주긴 합니더. 그러고 봉께, 말이 삼천포로 빠져 버렸심더."
"하늘에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나요? 그... 뭐냐... 일식이나 월식, 그것도 아니면 별 이유도 없이 일어난 이상한 일이 있었나요?"
애플잭은 눈을 찡그리며 페가수스를 흘겨보았다. "그기 아가씨가 공주님헌티 당장 보고하고 싶어 몸이 단 그 보고서랑 연관이 있는 깁니꺼?"
스쿠틀루의 얼굴이 순간 빨개지며 애플잭을 향했다. "그런 일은 없었나 보네요, AJ."
"지송헙니더." 애플잭이 씩 웃었다. "여 봐요. 하루 하고도 절반 동안 도와 준 거는 지도, 지 가족들도 정말 감사허고 있심더. 빅 매킨토시랑 지랑 해서 트롤헌티 잡어먹히지 않게 해 주셔서 그렇고, 아가씨 그 똑똑한 머리로 사과도 엄청 빨리, 많이 따서 그렇심더. 허지만 아가씨헌티 걱정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인쟈 실실 듭니더."
"그, 그건 제 천성이 그런 것 같네요." 스쿠틀루가 초조한 듯 웃으며 말했다. 마른침이 삼켜졌다. "하지만, 이퀘스트리아에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정말, 정말 어떻게든 공주님을 알현해야 해요."
"그 이상한 기 대관절 어떤 깁니꺼?"
"저, 저는 애플잭 당신이 그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스쿠틀루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 뭐 그냥... 트롤보다도 더 안 좋은 게 있었다고만 해 두죠."
"휘유, 머 아가씨가 그래 말씀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지요." 애플잭이 밤이 묻은 갈기를 발굽으로 쓸며 어깨를 으쓱했다. "신실허기 잘 사는 농부 가족덜을 찢어 죽이고 싶어하는 저 잡것덜보다 더한 것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잘 안 갑니더. 놈덜이 우리헌티 하려는 짓거리 자체가 최악 그 자체니께 말입니더. 매킨토시랑 지랑 덫을 만들어 놓고, 그 잡것들 대가리에다 농기구를 확 쑤셔 넣어 버릴라 캤다니...?" 애플잭이 부끄럽다는 듯 그림자를 흘끗 바라봄과 동시에, 한 줄기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지나갔다. "저희가 그런 계획이나 짜고, 그걸 또 실천에 옮길라 캤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추잡한 일입니더. 하모니 아가씨가 노을을 보면서 했던 말이 백 번 맞심더. 우리 포니덜은 생명을 사랑할 줄 아는 생명입니더. 저 괴물들이 가져온 비탄을 딛고 일어나는 기는 우리는 몰랐어야 합니더. 그 캔틀롯서 만든 '조화유지법'이란 기 우리를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합니더. 우리덜이 절대 깨울라 하진 않았지만, 일어나 버린 우리으 그림자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거라고 말입니더."
"그, 그래요." 스쿠틀루가 마른침을 삼켰다. "저희 왕실이 뜨, 뜻한 바는..." 스쿠틀루는 다시 한 번 거짓말을 함과 같이 몸을 떨었다. "당신을 보호하는 거에요." 그녀는 몸을 떨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 동안 나란히 앉아 있던 애플잭은 몸을 떨지 않았다. 오렌지색 암말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스쿠틀루는 순간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언제라도 저 트롤 녀석들은 창문을 깨고 돌입해 들어올 수 있었고, 농가가 품고 있던 마지막 선량함마저 갈갈이 찢고 산산이 조각내어 버릴 것이었다. 스미스 할머니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어린아이 같은 공포에 질린 스쿠틀루의 주의를 돌렸다.
"노랑새가 사과나무 속에 둥지를 막 맹글려는 순간, 잎사귀들이 아주 사납게 흔들렸어요. 노랑새는 처음에 자기도 다른 새덜처럼 저 멀리 던져지는 기 아닌가 생각했어요. 헌디, 잎사귀 흔들리는 소리가 먼가 달랐십니다. 그 소리는 음악 소리였던 기지요. 그리고 노랑새 갸도 당연히 박자에 맞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근디 이럴 수가, 지금꺼정 불렀던 노래보담도 훨씬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나오는 거에요. 기쁘게도, 오래 전, 갸가 둥지를 틀라 캤던 그 사과나무가 이 사과나무였던 기지요.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떠나 날아가 버린 그 사과나무였던 것입니다. 나무는 그 세월 내내 갸를 기다린 것이었지요. 그 동안 나무도 자라 온 가족덜이 모여 즐겁기 노래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커진 깁니다. 그리고 갸는 속으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흐음, 내 사랑스런 작은 나무는 이제 더 이상 작은 나무가 아니구나.' 그래서 나무는 크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 기고, 나중에 온 가족이 그 크게 자란 나무 위에서 행복허게 잘 살았더래요."
스미스 할머니는 아주, 아주 조용하게 이야기책을 덮어 닫았고,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자그마한 어린아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할 때마다 몸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라임 솜털의 어른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의 새빨간 갈기에 얼굴을 비볐다. 그 따뜻한 광경 위로 불빛이 서서히 흩어지며 그림자를 남겨 그 둘을 감쌌다. 할머니의 말은 물이 흐르듯 밖으로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 말을 건 대상은 다른 아이였다. "자기 전에 누가 이야기책도 안 읽어 준 모양이구마. 그런디 와 이리 놀랍지가 않노?"
스쿠틀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순간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애플잭을 슬쩍 보았고, 그 다음으로 저 멀리서 보초를 서고 있는 빅 매킨토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벽난로를 향해 걸었고, 침묵과 뒤섞인 방 안의 공기 속으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조금 목가적인 얘기긴 했지만, 좋은 이야기네요."
"그라모 목가적이어야지, 하모니 아가." 스미스 할머니가 잠자는 애플블룸의 갈기를 부드럽게 쓸어 주면서 세월이 묻어나는 웃음을 띄웠다. "애들 들으라고 쓴 얘기 아이가. 이퀘스트리아 동화책 중에서도 진실을 얘기하고 세상의 그림자와 그 공포를 얘기해 주는 동화책은 하나도 없다카이. 그 수많은 어두운 진실은 아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기다. 다른 기는 다 혀도,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는 기는, 그거는 죄다. 아가씨 방식으로 애플잭이랑, 빅 매킨토시랑을 격려한 거는 잘 한 일이고. 내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저 시커멓고 어두운 밤 속에서 기어나올 공포와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는데이. 아가씨가 가져온 희망은 우리 농장을 위한 잠자리 동화로는 최고인 셈이다."
"전 여기 희망을 가져오려고 온 게 아닌데요, 스미스 할머니." 스쿠틀루가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말을 쥐어짰다.
한 쌍의 세월에 젖은 눈이 휘청이며 애플블룸을 향했다. "인쟈 여그 아가씨가 온 목적이 정확히 먼지 찾았나?"
"몇 분만 있으면, 우리 모두 다 그게 뭔지 알게 되겠죠." 스쿠틀루가 나직이 말했고, 그녀의 두 눈은 깜박이는 녹색 불꽃의 끝에서 흔들렸다. "어쩌면 모두 다 모를 수도 있고요."
"하모니 아가." 나이든 암말의 피로해진 눈 앞에는 벽난로의 맑은 아지랑이가 피었고, 할머니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아가씨가 나헌티 말해 준 기랑, 보여 준 기랑 다 해가 머릿속에서 정리를 했는디 말여. 아가씨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걸로 만들어진 것 같어. 허지만서도 여기 우리가 머무는 기 위험한 일이고,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건 알아야 뒤어." 스미스 할머니는 빅 매킨토시의 조용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히 앉아 밤의 깊어 가는 어둠을 노려보며 쓸모 없을 삽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오늘 하루 죙일 몸을 피할 시간이 있었제. 우리덜은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딱히 도와 주시지 않으셔도, 포니빌 어딘가에 다시 정착할 수 있다, 이 말여.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릴 둘러싸고 있을 저 잡것들을 피해 갈 수 있었단 말이다. 하모니 아가씨가 대체 뭣 땜시 그래 튼튼헌지는 몰러도, 그래도 우리덜은 여전히 약하단 말이다. 우리덜은 지금 저 트롤 놈들헌티 한주먹거리도 안 된단 말여. 인쟈 어쩔 것이여?"
"지금 할머니 말씀은, 할머니께 내려진 '축복'에 대한 할머니의 믿음이 깨졌다는 건가요?"
"나가 그 축복보담 더 원하던 기를 얻은 동안에는 그럴 일이 없제." 스미스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이유를 알고 싶은 기다. 설명이 듣고 싶은 기다. 왜 이기 축복받은 일인지, 왜 계획을 짜질 않았는지, 와 우리 전부를 다 갖다 죽음과 탈진 사이서 비틀거리기 했는지 말이다. 하모니 아가씨는 여기 말뚝을 박고 버팀서 대체 뭘 하려는 기고? 실실 이 문제가 우리 애플 집안 문제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가씨는 지금 트롤 놈덜, 그 이상으 무언가랑 싸우고 있단 말여. 그기 뭐가 됐든지, 아가씨 혼자 하늘을 날아댕김서 본, 지금도 아가씨를 뒤덮고 있는 그 공허랑 똑같은 디서 끌고 들어온 기라는 거는 확실하구마. 대관절 아가씨가 혼자, 아님 우리 전부를 다 제쳐 두고 찾으려는 기 대체 뭐꼬? 아가씨가 잃어버린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라도 찾길 원하는 기가?"
"뭐가 절 강하게 만들어 주는지, 알고 싶으신가요? 스미스 할머니." 스쿠틀루가 갑자기 화난 듯한 말투로 쏘아붙이듯 말했다. 스쿠틀루의 타는 듯한 눈빛은 스미스 할머니의 세어 가는 갈기 위로 쏘아졌다. "주변을 둘러보시죠. 할머니 가족들을 보세요. 이들의 체온을 느끼고, 소중히 간직하세요. 전 어떻게 해도 영원히 알 수 없을 힘이, 할머니껜 있었다는 걸 알게 되실 거에요. 저 바깥에 있는 트롤 놈들에게는 영원히 알 수 없을 힘이겠지요. 뭐, 놈들이 한 번 덮쳐 산산이 부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도 말이에요. 제정신이 아닌 채 말씀해 드리느라 할머니께서 알고 싶으신 걸 다 알려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할머니의 그 공포를 녹여 삭힐 수 없다는 것도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웃음과 찌푸림, 잠자리 동화와 저녁 식사 자리의 수다까지, 지금 당장 제 눈 앞에 놓인 이 일을 처리하기에는 충분해요. 그래도, 그래도... 할머니의 가족 분들의 안전까지 담보해 드릴 수는 없어요. 장담할 수... 없어요."
"아가씨가 삭혀 줄 공포심을 품고 있다는 얘기는 한 번 안 했데이." 스미스 할머니가 곁눈질로 스쿠틀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엾을 뿐이여. 아가가 가엾을 뿐이여. 아가씨가 우리 가족덜이랑 여그 땅이랑 해가 지켜 주려고 한다 그라모, 아가씨를 파묻고 있는 공허으 하늘에서 디비져 나오는 방법도 알 것이여. 그래, 아가씨 생각에는 아가씨가 내려와 대지에 발을 디딘 것 같은가?"
스쿠틀루는 멍하니 할머니의 말끝에 매달려 있었다. 혼자 외로이 스쿠터만 끌어안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던, 이 집의 불이 꺼지는 걸 지켜보던 어린 망아지와 그 모습이 같았다. 저 무서운 울음소리가 들이닥치기 전에, 스쿠틀루가 뭐라도 말할 수 있었다면 그 말은 폐허를 뒤적이던 삶을 닮아 텅 비고 공허했으리라.
놈들의 포효 소리가 동남쪽에서 닥쳐왔다. 놈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가공할 만한 속도로 꺾여 떼를 지어 모여들며 과수원 서쪽으로 달려갔다. 긴 기다림에 얼어붙은 밤에, 끝내 공포가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 위노나가 짖는 소리가 방을 채웠다. 빅 매킨토시는 몸을 휘청거리며 싸울 태세를 취했고, 그의 두 귀는 그의 시선이 어둠 깊숙한 곳을 잔뜩 긴장해 노려봄과 같이 쫑긋 섰다. 다시 한 번 더 놈들의 포효 소리가 노래하듯 퍼지자 방 안에서 졸고 있던 두 손녀들이 동시에 헉 하는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오, 오빠야?!?" 애플잭은 자기를 덮고 있던 마지막 잠결을 떨치며 일어났고, 떨리는 그림자가 빅 매킨토시를 향해 다가갔다. "놈들이 온 기가? 정말, 놈들이 온 기가?"
"그려." 수말도 잔뜩 동요한 듯 말했다. 마구 벌렁대는 심장 소리가 방에 메아리침과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삽은 삽날을 앞으로 해 쥐여졌다.
"이런 시상에." 애플잭은 저 너머 소리지르고 포효하는 완전한 광기의 광파(狂波)에 훌쩍이는 숨을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에포나시여, 저희를 지키사..."
"무... 무슨 일이야?" 할머니의 주름진 앞다리에 안긴 애플블룸은 잠에서 깨 덜덜 떨고 있었다. "그기 쟈들이었어? 그기 저 괴물 얘기였어?"
"침착혀라, 애플블룸." 스미스 할머니의 중얼거림 속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있었다. 할머니는 눈 깜짝할 새 벽난로의 불을 껐고, 집은 더더욱 두꺼운 그림자의 장막에 가리웠다. 창문 유리는 집 바깥에서 들려오는 밴시*의 울음소리에 덜컹거렸다. "너거 언니가 허는 말 잘 들어라. 알아들었노?"
"하, 할매요..." 애플블룸의 노란빛이 도는 얼굴은 줄줄 흐르는 뜨거운 눈물에 흠뻑 젖었다. 아이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무서워요... 저 소리 너무 무서워요! 너, 너무, 무, 무서워요..."
"다 안다, 아가. 우리 옆에 꼭 붙어 있거래이. AJ, 이리 좀 와 보그라."
"아, 알았심더. 와 그러심꺼?"
"집 문 죄다 잠가 놓은 거 맞제?"
"그... 그, 그럴 낍니더. 오빠야?"
"그려."
"그, 그라모 일단 현관문에다가 바리케이드 쳐 놓고 쟈들이 가기를 기다려야겠심더."
"AJ, 쟈들 소리 안 들리나. 저번보다 네 배는 더 쳐들어왔다카이. 문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 그라모... 으음... 부, 부엌에서 버틸 수 있을 낍니더. 가구를 죄다 끌어모아가 방어벽을 쌓으면..."
“AJ...”
"그, 그라고 나섬... 찰싹 엎드려가 죽은 것마냥 가만히 있으모..."
"AJ, 아가. 우리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수고 많았다." 죽음의 비명이 사이클론처럼 집에 휘몰아치는 와중에도, 스미스 할머니는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할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다시 꺼내졌고, 그 사이 놈들의 소리가 모든 이들의 귀에 웅웅거렸다. 위노나가 짖는 소리는 눈물에 훌쩍이는 장송곡처럼 서서히 잦아들었다. "허지만, 지금은 네 그 진실헌 힘으로 버틸 시기가 아니여. 지금은 다른 포니가 결정을 해야 헐 시기니께."
애플잭이 마른침을 삼켰다. 마찬가지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빅 매킨토시 옆에 찰싹 붙어 전율하면서도, 애플잭은 방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연약한 녹색 눈동자는 스쿠틀루의 마음 한구석을 뚫고 들어갔고, 폐허에서 흘렸던 그 모든 피보다도 시간여행자의 각오를 단단히 다잡았다. "하모니 아가씨... 지, 지발 말씀 좀 해 주이소. 이, 인쟈 어, 어떻게 합니꺼?" 마룻바닥이 흔들렸다. 벽에 걸린 사진은 대롱대롱 흔들리며 춤추듯 움직였다. 방 안은 놈들의 떠나갈 듯 한 악마 같은 노랫소리로 가득 찼고, 몇몇 보이지 않는 그림자는 발을 질질 끌며 느릿느릿, 서서히, 서서히, 서서히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우, 우찌 혀야 저희 가족덜을 지킬 수 있을지 마, 말씀해 주이소."
스쿠틀루는 애플 가족 포니들의 시선이 닿는 그 끝에 서 있었지만, 더 이상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그녀는 25년 후의 갈색 날개로 날아가고 있었다. 애플 일가의 모든 것을 앗아간 거대한 함몰의 구덩이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멀쩡하게 남은 집 저편을 걸어가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았다. 시신이 보였다. 시신이 보였다.
"지하실로 가세요." 마지막 포니는 자기의 무감각한 폐 속으로 회색의 유령을 다시 불러들이며 중얼거렸다. 다음에 할 말. 그녀는 그 말에 무너지고 있었고, 그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말아야만 했다. "폭풍대피소 지하실 안에 계셔야... 여러분을 지킬 수 있어요."
"지하실이요?" 애플잭이 마른침을 삼켰다. 피에 굶주린 울음소리가 놈들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가 깜짝 놀라 움찔했다. 애플블룸은 흐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하모니 언니..."
"저 녀석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에요. 지금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요." 스쿠틀루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저 자식들한테 신경을 쓰는 캔틀롯 대법원 집행부 애들이 얼마나 될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대법원과는 달리 전 저 자식들이 여기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여러분을 고통 속에 놓아두고 싶지 않아요. 애플잭, 여러분 모두는 이 대지가 낳은 포니들이잖아요. 그러니 대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세요. 지하실로 가요. 여러분의 대지 아래 깊숙한 곳으로 가요. 트롤 놈들은 우릴 뒤쫓고 싶어하겠지만, 그렇게 놓아두지 않을 거에요. 놈들은 그럴 자격이 없어요. 대지에 바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놈들은 우릴 시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놈들이 맞설 수 없는 유일함이지만, 우리는 맞설 수 있어요. 애플잭,어서 움직이죠. 망설이다간 놈들 손에 죽어요. AJ, 놈들은 정말 우릴 죽이려 들 거에요. 정말로."
애플블룸은 흐느끼던 숨에 딸꾹질을 하고 있었고, 아이는 스미스 할머니의 품에 바싹 안겨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할머니는 페가수스보다도 연배 비슷한 손자와 손녀를 더욱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그들을 둘러싼 광기 어린 증오의 불협화음으로 이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고, 식식대는 숨과 함께 문을 박차고 들어와 절망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었다.
"아, 알았심더. 하모니 아가씨." 애플잭은 간신히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 잘 해 주셨심더."
"이제, 여러분 스스로 좀 더 나은 길을 찾아보세요." 스쿠틀루는 흔들림 없이 애플잭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더니 빅 매킨토시가 덜덜 떨며 쥐고 있던 육중한 삽에 몸짓했다. "삽 좀 주시죠."
애플잭이 선두에 서서 걸어갔다. 수레는 비틀거리는 발굽이 끌어 버둥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온 가족이 벌벌 떨며 별빛 내리는 잔디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발굽 아래서 요동치는 대지는 어두운 곳 곳곳에서 다가오는 가죽질의 발에 더욱 크게 요동쳤다. 폭풍대피소의 엷은 색깔 문은 몇 개의 건초 더미 아래에 있어 난공불락이었고, 절망적인 불안감과 피땀으로 수 주에 걸쳐 쌓인 요새와도 같았다.
"계, 계획이 뭡니꺼?" 애플잭이 마른침을 삼켰다. "스미스 할매랑 애플블룸을 안에 두고, 우리 셋은 밖에서 방어진을 치고 버티는 깁니꺼?"
"음, 그거랑 비슷한 거에요." 스쿠틀루가 중얼거리며 시선을 돌려 두려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검은 과수원을 노려보았다.
"아가씨 말이 참 차갑고 날카로운 기 고드름 같네예." 빅 매킨토시가 짐을 휙 던지고 나서는 폭풍대피소의 핸들을 만지작거렸고, 오렌지색 암말은 잠깐 훌쩍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지가 살라고 남을 죽일 정도로 피 한 방울 안 날 냉혈한이 될 줄은 몰랐는데예. 이래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더." 애플잭은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입술로'왕궁비서관'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좀 알려 주이소. 여그 농장이랑 우리 평판을 지킬 가치가 있는지 말입니더."
"뭐든지 다 말해 주겠다고 속이지도 못하겠네요, AJ." 스쿠틀루가 침울하게 말했다. 그녀는 눈물로 흠뻑 젖은 애플블룸이 덜덜 떠는 스미스 할머니에게 안겨 문 앞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흘끗 바라보았다. 아이의 새빨간 갈기는 아이가 악몽이 다가오는 여기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릴 때마다 버둥거렸다. "당신 농장이 파멸을 맞이하는 건 절대 바라지 않아요. 하지만 곧 있을 피바다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싫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이랑 빅 매킨토시 둘은 제가 말한 대로만 하세요. 이해하셨나요?"
"네, 네, 알겠십니더. 그래 하것심더." 애플잭은 덮쳐오는 회색 그림자에 굴종했고, 들려오는 사이렌**의 가학적인 노랫소리에 몸을 떨었다. "아, 아가씨 말만 믿겄십니더. 여신님, 지발 좀 도와 주이소. 믿심더."
스쿠틀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은 잔디가 한바탕 날림과 동시에, 폭풍대피소의 문이 드디어 당겨져 열렸다. 빅 매킨토시는 숨을 한 번 들이쉰 뒤에 나머지 가족들을 향해 새된 휘파람을 불어 보였다. 그는 다리를 절룩거리는 스미스 할머니를 부축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 앞으로 애플블룸의 빠른 발걸음 소리가 어둡게 사라져 갔다. 애플블룸은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스미스 할머니를 붙잡으며 빨리 내려오라고 투정을 부렸다. 그래야 저 꽉 막힌 지하실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떨리는 몸을 기댈 수 있었으니까. 투정 소리와 같이 코를 킁킁대던 위노나도 안전한 어둠 속 틈새로 뛰어 들어갔다.
"애플잭!" 아래에서 스미스 할머니의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더 어두컴컴하구마! 등잔 어따가 놨는지 아나?"
"아, 이런 썩을!" 애플잭은 공포에 질린 숨을 내뱉으며 얼굴을 구겼다. "하모니 아가씨, 잠깐이면 됩니더." 애플잭은 말 그대로 날아가듯 걸음을 떼어 안에 고인 차가운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할매, 잠깐만 기다리소! 금방 불 키겄심더!"
시간여행자의 답은 그저 경련 같은 떨림이었고, 그녀가 잡고 있던 녹슨 삽의 끄트머리는 자기도 모르게 그림자 드리운 그 속으로 내려졌다. "이런 빌어먹을. 여 보쇼, 빅 매킨토시 씨, 신사면 신사답게 등잔 좀 갖고 오시지?"
새빨간 수말은 스쿠틀루를, 지평선을 뒤덮어 가는 요동치는 그림자를 흘끗, 초조한 듯 바라보더니 이내 차가운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는 몸을 낮게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 강인한 이빨로 삽의 손잡이를 집었다. 금발 갈기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바로 위면서 그의 뒤이기도 한 곳에서 쾅 하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귀를 찌르는 소리에 그의 녹색 눈이 커다랗게 열려 떠졌다. 그와 동시에 지하실에 오렌지색 불빛이 퍼졌고, 그는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플잭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고, 그녀의 두 다리는 스미스 할머니와 애플블룸 사이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등잔에 불을 붙이던 참이었다. "오, 오빠야?"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냉연히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래? 어디서..."애플잭은 마른침을 삼켰고, 그녀의 오렌지색 얼굴은 순간 계단 위를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하모니!"
애플잭이 빅 매킨토시를 지나쳐 달려감과 동시에 빅 매킨토시도 급히 몸을 틀었다. 단단한 나무문은 불운한 애플 가족 넷을 지하실에 파묻으며 닫혀 있었고, 애플잭은 발굽으로 문을 두들겼고, 얼굴로 문을 밀어 열려고 하고 있었다.
"아욱! 하모니 아가씨, 안 됩니더! 혼자서는 절대로 안 됩니더! 안 된다고요! 죽고 말 낍니더! 엘렉트라 공주님을 위해서라도 저랑 오빠 좀 내보내 주이소!"
애플잭은 숨이 거칠어질 때까지 발굽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 문을 두들겼다. 그녀는 무기력하게 몸을 떨며 빅 매킨토시를 흘끗 보더니 금발 갈기 덮인 고개를 흔들어 문을 턱짓해 가리켰다. 빅 매킨토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던진 삽은 요란한 덜커덕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그는 우레 같은 발걸음을 떼어 자기 붉은 근육질의 몸뚱이로 조잡한 나무 문에 힘껏 부딪쳤다. 모두가 다들 깜짝 놀라 헉 하고 숨을 내쉬었지만,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빅 매킨토시는 계속해서 부딪치고, 또 부딪쳤지만 이내 몸을 멈추어 애플잭을 쳐다보았다. 지하실 문틈으로 별빛이 새어 들어왔고, 그 위로 갑자기 엄청나게 무거운 게 덮여 별을 가리웠다.
스쿠틀루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마지막 건초 더미를 닫힌 지하실 문 위로 마저 던졌다. 투영된 엔트로파의 몸은 다른 포니라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을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저 넷 중 그 누구도, 여기서 나갈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못하리라. 피 흘리는 밤의 소리는 최고조에 달했고, 그녀는 뒷걸음질을 쳐 지하실 문 근처로 다가가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거기 계세요, 애플잭! 이건 당신의 싸움이 아니라고요! 이 혈전血戰은 당신이 벌일 싸움이 아니란 말이에요! 절대로!"
"돕게 해 주이소!" 대지의 몸 깊숙한 곳에서 서서히 미약해져 가는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 나왔다. "하모니 아가씨를 산산이 찢어 죽여 버릴 깁니더! 혼자서는 무립니더!"
"제가 할 수 있든지 없든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스쿠틀루가 대답해 소리쳤다. 세상은 우르르 소리와 같이 흔들렸고, 그 통에 스쿠틀루는 땅 위에서 반 미터 정도 올라와 날고 있었다. 여기서 무너질 자격은 없었다. "이건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요! 가족 분들과 계세요. 거기..."
웅웅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밤의 두근대는 공허를 회색의 운무가 감싸 식혔고, 잊혀지지 않는 황무지의 눈처럼 날리며 스쿠틀루의 주변에 내렸다. 스쿠틀루는 몸을 돌렸고, 그와 동시에 얼어붙었다. 가죽질의 몸뚱이가 늘어서 있었다. 수십 놈 뒤에는 다시 수십 놈이 있었다. 백 마리도 넘을 트롤들이 초승달 아래 돌처럼 우뚝 서 지하실 입구를 타는 듯한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놈들의 손에는 조잡한 무기들과 타닥거리는 붉은 횃불이 들려 있었고, 잔뜩 굶주린 그들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한 '고깃덩어리'를 빤히 쳐다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괴물들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놈들 모두가 그녀의 호박색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저 피에 미친 혼돈의 종자들을 피해 달려 도망하던 그녀의 모습이 만화경처럼 비쳤다.
보내 온 잿빛의 영겁 속에서, 마지막 포니는 처음으로 가만히 있었다.
"애플잭..." 애플블룸이 훌쩍이며 오렌지색 포니에게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다리를 몇 번 잡아당겼다. "하, 하모니 언니가 지, 지금 뭘 하는 거야? 괜찮은 거야?"
빅 매킨토시의 몸은 떨리고 있었고, 얼굴은 가련해져 있었다. 위노나는 구석에 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강아지의 꼬리가 슬픈 듯 먼지 앉은 바닥을 쓺과 동시에 위노나의 눈은 커다랗게 벌어졌다. 스미스 할머니는 침묵의 장막에 덮여 있었지만 세월 묻은 눈은 손자, 손녀들의 떨리는 머리 위 너머에 있을 그림자 드리운 진실에 똑바로 가 박혀 있었다.
"하모니 언니가 괘, 괜찮을까?" 애플블룸은 멈춰지지 않는 울음과 같이 아까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내는... 내는 잘 모르겄다." 애플잭이 말했다. 어두운 지하실 문에서 떨어져 걸어감과 동시에 문 너머에서 무서운 소리가 갑자기 퍼졌고, 애플잭은 무릎을 꿇고 납작하게 엎드려 흐느끼는 아이를 안아 달랬다. 햇병아리 어른 생활에서 처음으로, 자기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조차 애플잭은 알 수 없었다. "내는, 정말, 정말 잘 모르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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