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처럼 찬 물이 한 동이 스쿠틀루의 등 위로 끼얹어지는 그 순간, 그녀는 그 동안 저질러 온 수많은 죄의 순간들을 후회했다. 그녀의 얼굴은 꼭 얼음덩어리를 낳는 듯 뒤틀려 있었고, 몸 깊숙한 곳에서 새된 비명이 올라왔다. 스쿠틀루는 자기가 몸을 담근 상아색 욕조 안에서 떨리며 철벅이는 몸뚱이를 꽉 붙잡았다. 욕실은 2층에 있었고, 애플잭이 욕실을 가로질러 걸어와 텅 비어 버린 통 옆에 부드럽게 깜박이는 등잔을 놓아 두었다.
"그렇게 얼굴 구기지 마이소. 무슨 겨울잠 자빠져 자다 말고 밖에 기어나가 눈이나 맞고 자빠졌는 개구락지 같심더!" 애플잭의 얼굴에 퍼지는 미소는 빠져나가는 숨 아래였다. "좀 있으모 괜찮아질낍니더. 느긋허기 계이소. 그라모 요거, 찬물이 하루 죙일 뒤집어쓴 열기를 빼내 줄 낍니더! 아, 우리 집서는 달랑 목욕통에 몸 담근 걸로 뼈빠지게 사과 딴 날을 끝내진 않심더! 땀구멍 하나하나까지 깨끗허게 씻어 내이소! 그기 나가 평생 뙤약볕 아래서 피 터지게 일하면서도 비루먹은 노새 같은 꼴이 안 된 비결입니더!"
"사, 사, 사실 저, 저, 전 제 피, 피가 이, 이 물 온도만큼이나 내려가는 게 아, 아닌가 거, 걱정되는데요." 스쿠틀루의 이가 덜덜 떨며 부딪쳤고, 그 사이로 그녀의 투덜거림이 새어 나왔다.
"피, 그라모 머리 끝까지 푹 담그소." 애플잭은 자기가 한 말에 당황해 눈만 깜박였다. "어... 그기, 지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실 깁니더." 애플잭은 눈을 한 번 찡긋하더니 오렌지색 발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비누는 저기 있심더. 저기, 포니빌 주택가에 가면 알로에랑 로터스라고, 스파 하는 아들 있거든요? 갸들헌티서 좋은 샴푸도 좀 얻어 왔심더. 머 사실 지는 갸들 그 쓰잘데기 없는 갈기 컨디셔너 개발 지원금으로 한 푼도 쓰지 않았지만서두요. 대신에 우리 하루 종일 셀레스티아 공주님마냥 반짝반짝허게 꾸미기나 허는 레이디 래리티께서 지원금을 많이 대 줬지요."
"고, 고, 고맙습니다. 애플잭." 스쿠틀루는 벌벌 떨면서도 웃어 보였다. "저, 정말로요... 저, 정말 치, 치, 친절하시네요."
"에, 또 아마 거기 머가 있을 낍니더. 선반 위에 그 좀 밝은 색깔에다 보라색 마개 꽂아 논 병이 하나 있지요? 그기 거품목욕 할 때 쓰는 기랍니더. 쓰시고 싶으시모 쓰이소.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건 안 쓸 끼니까예."
"그, 그, 그, 그럼 왜 갖고 계신 건데요?"
"핑키 파이라고, 지 친구가 줬심더." 애플잭이 빙긋 웃었다. "착한 앱니더. 근디 뭣 땜시 그라는지는 모르겄는데, 갸는 다른 포니덜두 자기처럼 흠뻑 젖는 거를 좋아하는 줄 압니더."
하모니의 떨리던 이마가 찌푸려졌다. "음..."
"뭐 어쨌든 다 씻으셨으모 내려오이소."
"고, 고, 고마워요, 애플잭." 하모니가 떨면서도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 정말로... 치, 치, 친절하시네요."
"AJ라고 부르셔도 됩니더." 애플잭이 싱긋 웃으며 욕실 문을 향해 뒤돌아 걸어갔다. "목욕 끝나고 나모, 발굽까지 물기 깨끗허게 닦으시는 거 잊지 마이소. 아, 글구 지금 스미스 할매가 수선화 알프레도(버터, 치즈, 크림을 섞어 만드는 이탈리아식 소스를 버무린 파스타 요리의 일종)를 만들고 계시니께, 혹시나 좀 맵다 싶은 냄새가 나드래도 그런가보다 하이소. 특별한 손님께서 오셨다고 진짜 오랜만에 만드시는 깁니더." 애플잭이 활짝 웃었다.
"그거... 참..." 스쿠틀루는 '투영'된 자기 몸 깊숙한 곳까지 홍조를 띄우며 말했다. "저, 정말 맛있겠네요."
"맛나다니 무신 말입니꺼!" 애플잭이 깜짝 놀라 말했다. "그거 맵—" 애플잭은 순간 말을 멈췄다. "아, 헤헤헤헤... 아임더, 아가씨 말이 맞심더. 그라모 푹 담그다 나오소!" 그녀는 욕실을 나가 문을 닫았고, 애플잭의 발걸음은 낡은 농가의 나무 마루바닥에 삐그덕거리며 멀어졌다.
황동색 솜털을 한 페가수스는 다시 욕조 속에서 첨벙거리기 시작했다. 몸의 떨림은 부드러이 달래는 듯한 호박색 등잔빛에 서서히 잦아들었다. 스쿠틀루는 이마에 붙은 몇 줄기 매끄러운 갈기를 슥슥 문질러 자기 발굽 위로 올렸고, 눈 가까이로 들어올려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기는 그저 스쿠틀루, 자기 자신의 영혼의 투영체에 불과하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물기로 축축히 젖은 사지는 그녀의 사지가 아니었고 영혼 한구석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물로 떨리는 신경은 그녀의 신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가 지금보다 더 마음이 편한 적이 있었던지, 이보다 더 따뜻한 환영을 받아 본 적이 있었는지, 지금보다 더, 자기가 자기여서 기뻤던 적이 있었는지, 그녀의 기억에 그런 기억은 없었다. 이건 그저 단순한 목욕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너무나 외로웠던 나날들보다 먼저 흘러간 외로웠던 시간 속에서, 이 절반만큼의 호의를 받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을, 스쿠틀루도 알고 있었다. 황무지를 헤매던 황혼의 날들 속에서, 이렇게... 몸을 깨끗히 닦을 수 있을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25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몸을 닦을 수 있었다. 이 꿈같은 순간은 절로 숨이 막히게 만들었으나, 조금씩, 조금씩 욕조 속으로, 더욱 깊숙한 곳으로 몸을 담그는 그녀는 순간, 그런 건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마지막 포니는 두 눈을 감았다. 어느새 그녀의 몸은 차가워 정신이 드는 무중력의 물 위에 두둥실 떠올랐다. 눈꺼풀을 닫으면 언제나 보이는 광경과 똑같은, 의식의 지평선에 마구 휘몰아치는 회색 잿가루와 눈가루를 그녀는 보았다. 엔트로파 공주의 '투영'된 몸이 차가운 물을 서서히 데우기 시작함과 같이, 너무나도 추웠던 안개는 서서히 스러져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몇 줄기 클라우드데일의 풍경이 마음의 표면에서 방울져 올라왔다. 그 파란 하늘과 상아색 건물들이 금빛으로 빛나 생기가 넘치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수백, 수천의 페가수스들이 찌릿한 공기를 가르며 광풍처럼 날았고, 그 눈은 그들 자신의 영혼처럼 밝았다. 스쿠틀루가 그들 사이로 날아오면 그들은 날아가다 말고 커다란 안개 덩어리 위에 부드러이 멈추곤 했다. 그곳엔 웃음소리가 있었다. 일상의 기쁨을 노래하는 깊은 웃음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푸르르던 하늘 위로 날아오던 한 푸른 포니가 있었다. 그녀의 갈기와 꼬리털은 무지개 하나하나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가 어린 망아지를 내려다보며 쾌활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한 줄기 매운 냄새가 공기를 채움과 동시에, 레인보우 대쉬는 몸을 돌려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불타는 나무둥치로 가득한 골짜기 위를 날아가는 것처럼 매운 냄새였다. 날아가던 레인보우 대쉬의 앞에 뜬금없이 두꺼운 철괴들이 나타났고, 그 다음 순간 거대한 잿빛의 폭발이 일어나며 온 하늘을 뒤덮었다. 불타는 월석이 수십만의 포니가, 수십만의 비명을 지르는 포니가 던진 투석처럼 스쿠틀루의 얼굴을 강타했다.
커다란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쿠틀루는 목욕통 한쪽을 거세게 부여잡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녀 옆에서 깜박이고 있는 불빛은 이퀘스트리아를 태우는 불길이 아니라, 그저 등잔 구석에서 부드럽게 떨리는 불빛일 뿐이었다. 공기를 채우는 냄새는 재의 매운 냄새가 아니라, 아래층에서 그녀와, 다른 애플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는 맛있는 저녁의 냄새였다. 스쿠틀루는 과거에 있었고, 과거는 여기였으며 지금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녀에겐 모두 허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떠오른 진실의 흐려져 가는 자국 안에서, 스쿠틀루는 다시 한 번 진실을 떠올렸다.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앞날에 남을 뼈 몇 개뿐이라는 것을.
그 말이, 스쿠틀루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곳이나 둥둥 떠다니는 망령'처럼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않고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추방당한 여신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축축히 젖은 몸뚱이를 즐기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었다. 천장을 향한 무언의 욕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삼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스파이크의 얼굴을 찾아 떠다니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부드럽고 푹신한 웃음이 떠올랐다. 책으로밖에 배우지 못했던 점잖고 우아한 몸짓으로, 스쿠틀루는 비누와 컨디셔너를 들어 공주처럼 목욕을 즐겼다.
스쿠틀루는 초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어두운 색의 계란형 틀에 끼워진 사진 위로는 애플 집안 포니들의 어두운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스쿠틀루가 천천히, 사색에 잠긴 발걸음으로 삐걱대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갈 때마다, 한 세대가 등 뒤로 지나갔다. 따뜻하고 훈훈한 방에 그녀가 들어왔다. 푹신한 안락의자 위로는 담요가 덮였으며 방 멀리 설치된 벽난로에는 게으른 불꽃이 타닥이고 있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애플블룸의 실루엣은 장난스러운 발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갔고, 별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까르르 웃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눈길을 돌려 밝은 식당을 바라보았다. 식당은 부엌의 한쪽에 붙어 있었고, 스미스 할머니가 애플블룸을 나무라며 얌전히 앉혀 두고 있는 참이었다. 나이든 암말은 비틀거리며 자기의 라임빛 주름진 몸뚱이를 식탁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스미스 할머니는 이내 건초와 수선화로 가득한 접시를 식탁 위로 올려놓았다. 음식은 피망과 귀리로 먹음직스럽게 장식되어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커다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포니는 깜짝 놀라 순간 대비 태세를 취했지만, 위노나가 그녀 주변을 개구쟁이 같은 발걸음으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고 이내 긴장을 풀었다. 애플블룸은 위노나의 북슬북슬한 꼬리를 보고 즐거워하며 웃고 있었다. 스쿠틀루의 주의가 멀찍이 보이는 벽난로 위에 걸린 커다란 사진으로 향함과 동시에, 그 둘은 다른 방으로 달려갔다. 목제 틀에 끼워진 그림 위에는 행복해 보이는 여섯 포니가 가족사진을 찍는 구도로 서 있었다. 스미스 할머니는 그림 한가운데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새빨간 솜털과 날카로운 녹색 눈동자를 한 수말과 부드러운 오렌지색 얼굴을 한 암말이 서 있었다. 암말은 아직 덜 자란 망아지를 안고 있었는데, 숱이 조금 많은 붉은 갈기를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부모를 빼다 박아 하나는 새빨갛고 하나는 오렌지색인 두 아이들이 어머니의 다리를 꼭 붙잡아 안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진기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하모니'의 몸뚱이 안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같은 이름의 비행선과 같이, 그녀는 느슨하게 매달려 있었다. 부끄러운 꼭두각시가 되어 예전의 녹색 화염의 깊은 샘으로 불타는 꼭두각시 끈에 사로잡혀 매달려 있었다. 여기는 재앙 뒤로 영원히 흩어져 사라질 지저귐의 노래로 가득한 따뜻하고 훈훈한 세계였고, 여기 있는 마지막 포니는 돌처럼 단단한 재앙의 껍질 위로 발굽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 존재였으며, 어딘가 의지할 곳을 찾아 계속해서 걸어가지만 결코 그 곳에 닿을 수는 없는 존재였다. 그녀는 여기 있을 자격조차 없었다. 불가침의 피부와 폐허의 도둑으로서의 재치, 그리고 추잡한 거짓말을 가지고 여기 있을 수 없었다. 지금 이렇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있을 자격이 있다고,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에 정중한 경의를 표하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강한 포니도 아니었으니까.
시커먼 구름은 한데 뭉쳐 끈적하게 드리우자마자 곧장 사라졌다. 페가수스는 현관문이 한 번 열렸다가 거세게 쾅 하고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커다란 붉은 형체가 지친 사지를 이끌고 저벅저벅 걸어 들어옴과 동시에 근처 복도에서 애플잭의 그림자가 그를 불러 세웠다.
"오빠야, 부엌 문에다가 바리케이드는 다 쳤노? 그기로 그 잡것들이 제일 먼저 그 딱딱한 대가리를 들이밀 거 같아서 허는 소리여!"
"그~려!" 빅 매킨토시는 스쿠틀루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순간 깜짝 놀라 그녀의 갈기를 두 번이나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막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소리 없는 웃음을 눌러 죽이고 식당으로 향한 당당한 발걸음을 떼었다.
스쿠틀루는 미세한 홍조를 띄웠고, 황동색 얼굴에는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 애플잭이 근처 선반에 모자를 휙 집어다 던지며 재잘거렸다.
"후유, 힘들기도 해라. 가끔씩 내는 마 이런 생각을 합니더. 에포나 여신께서 맨 먼저 '일'을 맹그시고 두 번째로 우리 포니덜을 맹그셔서 '일'을 하게끔 만드신 기 아닌가, 그런 거 말임더." 애플잭이 스쿠틀루를 한 번 흘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오, 아가씨, 목욕 끝내셨네예." 애플잭은 충격 받은 듯 했다. "후아, 이기 머꼬! 에헤헤... 아가씨도 아시겄지만... 욕실에 거울 있지 않았심꺼?"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애플재... 어... AJ." 스쿠틀루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목욕을 하다가 그 상태로 뻗어 버릴 뻔했는데요. 제가 여기 내려오기 전에 트롤 애들이 그 조잡한 몽둥이나 다른 걸로 절 때린 적이 있었나요?"
"그런 기 아닙니더." 애플잭은 우스운 듯 발굽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아가씨 어머님께서 갈기 빗질허는 법도 안 가르쳐 주셨습니꺼?"
"네, 네?" 스쿠틀루는 멍청하게 눈을 깜박이며 발굽을 들어 목가를 쓸어 훑었다. 무슨 미친 여자처럼 산발을 한 갈기가 서로 엉키며 천장까지 닿을 듯 치솟아 있었다. "이런 망할! 에헤헤... 아, 네. 그, 그렇네요..."
"빗이라모 저기 테이블 위에 있심더. 얼른 가져다 쓰이소."
"으으으음...?" 스쿠틀루는 애플잭의 제안을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아... 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기, 전 한 번도... 어... 헤헤... 그러니까... 빗은 어떻게 집는 거에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재앙 이후, 마지막 포니가 자기 갈기를 가지고 뭐라도 해 본 기억이라곤 깨끗하게 밀어 버린 짙은 분홍 갈기를 가지고 수건을 짠다거나, 뭐라도 가져다 묶는다거나, 하모니 호 내부에 쑤셔 넣어 단열재로 쓴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무지개의 색으로 물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포니빌에서 보낸 그녀의 유년기... 그 끝은 '상대적으로' 우스운 끝으로 끝났다.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끝으로 끝났다.
"풉!" 애플잭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 "이기 무슨 소립니꺼? 그렇게 따지모, 밤이고 낮이고 갈기를 빗어 줄 하인덜이 없으모 아가씨 같은 캔틀롯 포니덜은 하루도 못 살고 다 죽어 버릴 깁니더! 자, 일루 오소!" 애플잭이 페가수스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당기며 방 한가운데에 놓인 푹신한 스툴(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혔다. 그녀도 카우치 가장자리에 앉았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머리빗을 집어 스쿠틀루의 호박색 줄 그어진 검은 갈기에 들이댔다. "똑바로 앉으소. 그러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깔끔해질 깁니더."
"네? 뭐가 어떻게 된다고요? 아야야야야!" 스쿠틀루가 움찔했고, 몇 줄기 머리칼이 강하게 잡아당겨져 모근(毛根)까지 빗겨짐과 동시에 그녀의 한쪽 눈이 단단히 닫혔다. 그녀는 순간 수백, 수천의 올가미가 자기 목 곳곳에 빽빽이 감겨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아야야... 호, 혹시 제 머리가 사과 나무로 보이시는 건가요? 제 머리를 털고 계신 거에요, AJ?"
"자, 자. 징징대지 마소, 하모니 아가씨." 애플잭이 나직이 중얼거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스쿠틀루의 긴 오닉스(검은 보석) 같은 갈기를 빗질해 폈다. "아가씨 갈기가 너무 이뻐서 해 드리는 깁니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모, 이래 이쁘장한 갈기가 요로코롬 개판인 기 보기가 싫어서 그런 기지만요. 이 정도로 갈기를 길게 기른 페가수스는 지 친구 플러터샤이 빼고는 한 번도 못 봤심더. 그것 땜시 날지를 않는다는 것도 참 어이가 없고요. 날아댕기다 보모 바람에 앞머리가 날려가 눈을 가린다 그럽니더. 그래가 갸는 날아다니다가도 곧장 내려와서 걸어댕깁니더. 저기, 고개 좀 숙여 보소."
스쿠틀루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의 통통 튀는 시선은 깜박이는 벽난로의 불빛 아래 놓인 도톰한 양탄자에 놓였다. "친구들끼리 정말 가깝게 지내시는 것 같군요." 스쿠틀루는 '하모니'의 입을 빌려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트와일라잇 스파클, 레이디 래리티란 분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플러터샤이란 분인가요?"
"아, 우리 친구덜끼린 참 찰싹 붙어다니고 그럽니더." 애플잭은 스쿠틀루의 호박색 갈기 줄기를 한데 모아 빗질하고 나서 스쿠틀루에게 주의를 돌렸다. "나이트메어 문이랑 우리랑 해가 한 판 붙은 거를 아는 포니덜은 다들 그기 다 조화으 원소 덕이라 그럽니더. 나 참,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면서 지껄이지라. 지는 그 조화으 원소보담도, 우리덜 진심이 훨씬 더 통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심더. 지는 우리덜을 하나로 묶은 그 운명 비슷헌 기 닥치기 전부터도, 저그 슈가큐브코너으 핑키 파이랑 케이크 부부랑도 잘 알고 지냈심더. 또 포니빌에 사는 포니 전부 다, 플러터샤이 하면 다 알아듣었심더. 머, 상대적으로 말입니더. 갸는 마을 바깥쪽 교외서 오두막 하나 짓고 혼자 살았심더. 갸가 'Mane 6'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갸는 마을에 얼굴 몇 번 비치도 않았심더. 아, '메인 6'라는 기는 마을 아들이 우리를 한 번에 묶어서 부르는 이름입니더."
"Mane 6라." 스쿠틀루는 방긋 웃다가도 엉킨 갈기를 훑고 지나가는 빗질에 순간 움찔했다. "그거 참, 독창적이네요."
"아임더. 딱히 그렇지는 않구요." 애플잭이 잠시 웅얼거리며 말했다. "머 그래도, 그 말이 갸들이랑, 나랑 해서 정확히 정리하긴 했으니..." 그녀는 잠깐 말을 쉬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 "아이구, 나가 지금 먼 흰소리를 지껄이는 긴지, 안 그렇심꺼?"
"아니에요, 괜찮아요." 스쿠틀루는 순간 자기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계속 말씀하세요."
"머..." 애플잭이 뒷머리를 마저 빗질하며 입을 열었다. "언제더라, 어쨌든 그 날 우리덜이 서로 좀 특별한 연관성이 있다는 기를 알아차렸심더. 사실만 말씀드리자모, 어느 순간에는 서로 만날 운명이었던 깁니더. 우리가 죄다 조그마한 망아지일 때 얘긴디, 어떤 사건 하나가 온 이퀘스트리아를 뒤흔들었심더. 딱히 확인해 본 거는 아니지만은, 그거 덕에 우리가 동시에 큐티마크를 얻었거등요.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십니꺼?"
스쿠틀루는 가빠 오는 숨을 붙잡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그 전설적인 이야기가 슬슬 시작되려 하자, 그녀 몸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뜨뜻한 것이 서서히 꽃피듯 퍼져 나가고 있었다. 재로 뒤덮인 하늘에서 보낸 고독의 세월 동안, 마지막 포니는 비통한 기억의 아이러니를 파묻어 버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곳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앉아 있었고, 그녀 스스로를 위해 갈기를 빗질하는 참이었다. 스쿠틀루는 귀를 뒤로 쫑긋하며 애플잭에게 공손하게 물었다. "그게 뭐에요? 무엇 때문에 큐티마크를 얻으셨다고요?"
"소닉 레인붐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꺼?"
"알려 주시죠."
"페가수스면서, 그것도 모른다는 기 말이 됩니꺼?"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스쿠틀루가 쏘아붙였다. 그녀는 너무 까칠해 보이지만 않기를 바랬다. 거의 다 왔으니까. "그런 것도 다 해 봐야 아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머 그렇긴 하네예. 소닉 레인붐이라는 것 덕에 우리가 큐티마크를 얻었다, 이 말씀입니더. 무엇보다도, 얘기를 들어 봉께, 그 모든 일이 우리 친구덜 중에서도 딱 하나 덕에 일어났더라고요!"
"그게 누군데요?" 스쿠틀루는 몰래 미소지었다. "플러터샤이인가요?"
"푸후후후—하하하하! 시상에, 아임더! 갸 말고, 레인보우 대쉬라고, 퍼런 페가수스 하나 있심더. 갸 이름을 기억해 두시는 게 좋을 깁니더. 갸도 언젠가는 전설이 될 끼니까예."
"네." 스쿠틀루의 발굽은 아래 깔린 양탄자를 휘저어 반죽하듯 주무르고 있었고, 그녀는 나직이 중얼거려 말했다. "부, 분명 그렇게 되, 될 거..."
"저기, 사실. 아가씨를 보면 참 여러모로 갸가 생각납니더."
스쿠틀루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런 말을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지금까지도.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거의 훌쩍이듯 말했다. "저, 정말로요...?"
"한 이틀 동안, 지는 아가씨가 귀찮은 파리 떼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복이 될 수도 있다고, 그래 생각했심더. 생각할 것도 없이, 레인보우 대쉬를 그보다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낍니더." 가느다랗고 느릿한 웃음이 번졌고, 애플잭은 황동색 페가수스의 어깨를 장난치듯 몇 번 쿡쿡 짤렀다. "물론 장난하는 깁니더. 지가 보기에 하모니 아가씨는 사탕 비마냥 기분좋은 포니니까예. 레인보우 대쉬에 대해 지가 말할 수 있는 최소한으 말도 바로 그겁니더. 그 선머슴이 때때로 귀찮은 일을 벌이기는 허지만은, 지는 언제나 똑같이 갸를 사랑합니더."
"저..." 스쿠틀루가 숨을 내쉬며 그림자를 향해 따뜻한 웃음을 짓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그분도 저희를 똑같이 사랑할 거라고, 전 확신해요." 그녀는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왔는지도 몰라 놀랐고, 가볍게 몸을 움츠렸다.
"헤, 아가씨가 그래 말씀하신다면야 그렇겠지요. 사과 수확만 다 끝내고 나모, 아무래도 한 번 지 친구들헌티 소개해 드릴 수도 있겄네요. 지는 한 주 내내 피 터지게 사과 털고 나서, 친구덜이랑 축하 파티를 하는 기 정말 좋으니께요. 아가씨도 오고 싶으시모 오셔도 됩니더!"
"새, 생각해 볼게요." 스쿠틀루가 대답했다. 그녀는 앞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비록 자그마한 몸짓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의 기회를 저울질하느라 그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녀는 기회를 잡기로 결정했다. "이봐요, AJ?"
"왜 그러십니꺼, 하모니 아가씨?"
"저기..." 스쿠틀루는 헛기침을 해 목을 풀었다. "세,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직접 알현하고자 하는 포, 포니들에게 피, 필요한 자격 조건이, 뭐,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셀레스티아 공주님 말씀하시는 깁니꺼?" 스쿠틀루는 자기 목 뒤에서 바라보는 애플잭의 무언의 눈길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캔틀롯 왕궁 비서관이면서, 지금 저헌티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알현하기 위한 조건을 물어 보시는 깁니꺼?"
스쿠틀루는 그 말에 몸을 떨었다. 그 모든 말에 몸을 떨었다. 25년의 세월을 거슬러 시간 역행을 하기 전부터, 진작에 알아 두었어야 할 일이었다. 그녀는 화려한 언변을 늘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애플잭, 당신이 관료주의적 체계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저도 알아요. 별 쓰잘데없는 중간 과정이 싫으신 거겠죠. 저 같은 왕실 비서관들이나 그에 준하는 다른 포니들도 공주님께 서류를 가져다 드리려면 중간에 들러야 할 부서가 몇 군데나 되는지 몰라요."
"아가씨가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관련된 보고서를 올릴 때처럼 말입니꺼?"
"네—아뇨, 아니에요." 스쿠틀루는 갈기 끝부분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똑바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았다. "흠흠, 제 말은, 스위트 애플 에이커에 관련한 제 감사 내용과는 하등 관련이 없어요."
"그라모, 대체 머에 관한 얘깁니꺼?"
"그게... 그게 말이죠..." 스쿠틀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수천의 죽어 가는 얼굴이 한 번의 깜박임에 눈 앞에 깜박였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일이에요. 그게 다고요. 공주님을 간단히 알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는 그 누가 됐든지 미욱한 생각이죠. 그랬다간 어쩌면 매일매일 뭔가 문제가 생겨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공주님께 편지를 써서 보내는 다른 포니들로 빽빽하게 들어찬 대기인 명단의 끝자락에 있을 각오는 해야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하, 하지만 제가 공주님을 알현하고자 하는 건... 지금까지 이 모든 건 다... 말씀드릴 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우리 이퀘스트리아의 대지에 관련한 무언가를 좀 찾았거든요. 심층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려야겠다고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걸 읽고 결재해서 공주님께 드릴... 음... 마땅한 정부 부처가 없어서 말이죠."
"그렇구만요. 그런디 그기 개인적인 문제라꼬요?"
"저... 음..." 스쿠틀루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더니 슬쩍 웃어 보였다. "이퀘스트리아의 안녕과 앞날보다 지극히 더 개인적인 사무가 있을까요? 애플잭 당신도 이 대지에 크나큰 믿음을 가지고 있을 테지요. 그리고 그건 당신한테 정말로 괜찮고, 좋은 거에요. 당신, 어스 포니잖아요. 여기 살고요. 저요? 애플잭 당신 생각처럼 전적으로 캔틀롯에서만 사는 건 아니라는 건 밝혀 두죠."
"그라모 하모니 아가씨는 대관절 어디서 사시는 깁니꺼?"
스쿠틀루는 꾸물거리며 두 눈을 감았다. 재투성이 세계가 다시 눈 앞에 나타났다. "전 하늘 위에서 살고 있어요, AJ. 단지 제가 페가수스라서 거기 사는 건 아니에요. 저의 책무와 신념, 그리고 제가 누구인지, 그 모든 게 그 이유죠." 스쿠틀루는 다시 황동색 눈꺼풀을 들어 호박색 눈동자를 열어 떴다. 방 안의 따뜻한 불빛이 소리 없이 깜박이며 눈 앞을 가득 채웠다. 입을 연다는 것은 등골 깊숙한 곳까지 싸늘하게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영겁의 세월이 지난 언젠가, 이퀘스트리아에는 오직 하늘밖에 남아 있지 않을 거에요. 저처럼 오랜 세월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해 왔던 포니는 다른 포니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죠. 물론 셀레스티아 공주님은 예외에요.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는 모든 걸 다 꿰뚫어보고 계시니까요." 마른침이 삼켜졌고, 한 줄기 중얼거림이 그 뒤를 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그러실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만..."
"아가씨가 대관절 저헌티 무슨 말씀을 허고 싶으신 건지, 조금도 이해가 안 됩니더. 그래두 제가 드린 말씀에는 정말, 지나칠 정도루 정중하게 대답해 주셨구요. 지금까지 아가씨랑 보냈던 시간이랑 다 종합해 봐두, 아가씨를 존중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더." 나직한 딸깍 소리와 같이 빗이 놓여 있던 테이블 위로 놓여졌다. 두 발굽이 스쿠틀루의 어깨 위로 얹혀졌다. "자, 다 됐심더. 프리마돈나 급으로 우아헌 거는 아니지만서도... 충분히 품위는 있어 보입니더."
스쿠틀루는 어색하고 당황해서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툴에서 일어나 섰다. 그녀는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커다란 괘종시계의 거울 같은 표면을 훑어보았다. 시계에는 꽃피듯 머리부터 흘러 내려온 아름다운 검은 갈기가 비치고 있었고, 숱 많은 검은 갈기 한가운데로 한 줄기 호박색 갈기가 숲 사이를 흐르는 강처럼 흘렀다.
"이거 참... 예쁘장하네요." 페가수스의 얼굴에 미세한 홍조가 떠올랐다.
시계 표면에 오랜지색 무언가가 비쳤고, 얼굴에 싱긋 웃음을 띄우며 천천히 다가와 옆에 섰다. "그려요. 이쁘장헙니더." 돌아가는 시간의 시계바늘 위로 망연자실하게 떠가며, 애플잭이 스쿠틀루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너무 자기를 깎아내리지 마이소, 아가씨. 지가 어제 아가씨헌티 했던 그 익살시런 말덜두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더. 그거는 아주, 아주 특별한 사실이지라. 혹시 캔틀롯으로 돌아가실 때, 아가씨가 그렇게 좋아하는 하늘서 똑 떨어지모 거기 남정네들은 죄다 기절 마법이라도 맞은 것마냥 눈이 뒤집어져가 아가씨를 쫓아다닐 깁니더."
스쿠틀루는 숨을 내쉬었고, 그 숨은 스쿠틀루의 두 눈이 순간 경사진 시침으로 뚝 떨어짐과 같이 시계에 가 닿아 뿌옇게 김을 서렸다. "내려올 수나 있을지, 전 잘 모르겠네요..."
"우리 둘이, 서로 참 우연히도 만난 기 참 호사(好事)입니더." 애플잭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 덕에 아가씨가 이 땅이 뭔가 좀 더 똑바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더. 땅덩이도 똑같이 아가씨으 그 힘을 모르고 있었으니 더 그렇죠."
"어... 네. 아마 그렇겠죠..."
애플잭은 발굽을 들어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저기요, 공주님이랑 만나는 기,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더. 생각해 보니께 그렇네예."
스쿠틀루는 순간 애플잭을 향해 고개를 홱 젖히며 말했다. "어렵지 않다구요?" 스쿠틀루는 깜짝 놀란 듯 했다.
"머, 지 친구 트와일라잇 덕분이지만 말입니더." 오렌지색 암말이 골똘히 생각하며 말했다. "갸는 여그 포니빌에 살면서 셀레스티아 공주님헌티 우정에 대한 보고서를 써서 편지로 올립니더. 트와일라잇 갸, 공주님으 직속 제자거든요. 머, 아시겠지만."
스쿠틀루는 제자리에서 몸을 돌리며 물었다. "설마...?"
"처음에, 지가 갸 트와일라잇 주변서 한 한 마디 말이나, 일거수일투족을 죄다 종이 쪼가리에다 빽빽허게 써섬 편지로 만들어가 그 조그마한 꼬맹이 드래곤 친구헌티 줘서 공주님헌티 보낸다는 기, 저는 그게 싫었심더. 근디, 트와일라잇 스파클, 갸가 정말로 정중허고 나름 귀염성도 있는데다가 예의도 바른 아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갸를 찬찬히 신뢰허게 됐심더. 또... 에라, 모르겄다! 지는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헙니더. 최소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심더. 어쨌든 지가 생각허기로는 그랬죠. '그기 뭐가 대수라고?' 그 생각은 두 번 다시 저를 성가시게 허지 못했십니더." 애플잭은 자랑스러운 듯 웃음지었다. "아가씨가 우리 가족덜을 도와 주신 덕에 쓸데없이 공주님으 주의를 끌지 않았다는 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더. 어쩌면 저 디스코드 놈으 트롤덜에 대한 얘기는 완전히 쏙 빼놓고 트와일라잇헌티 말해 줘도 될 것 같은데예." 애플잭은 초조한 웃음과 같이 말을 끝냈다.
"그, 그러면 공주님께서 저, 저를 만나고 싶어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요?" 스쿠틀루는 거의 말을 더듬으며 말했고, 날개는 거의 펄럭이고 있었다.
"피, 천천히 하이소, 아가씨. 이제 시작이지 않습니꺼, 안 그렇습니꺼?"
"대관절 야들이 어디로 가 숨었다냐? AJ! 하모니 아가!" 스미스 할머니가 밝은 부엌에서 몸을 떨며 걸어 나오더니 두 포니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들 있었구마. 우리 두 아가씨덜! 밥 다 식는다! 저 추잡헌 잡것들이 숲 밖으로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전에 후딱 와서 한 술 뜨드라고!" 스미스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다리를 절며 빅 매킨토시와 애플블룸의 그림자가 드리운 테이블 쪽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스쿠틀루는 조금 몸을 움찔했다. "이런 세상에, 내 정신 좀 봐. 규칙적인 식사에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아서요. 저녁을 거르게 하실 생각은 아니었어요."
"우리 귀연 아가씨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됩니더." 애플잭이 눈을 찡긋하더니 식탁으로 걸어가며 고갯짓하며 말했다. "말만 우적우적 씹어 드시지 마시고, 일루 와서 밥이나 드시는 기 어떻십니꺼?"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황동색 페가수스도 초조한 듯 애플잭의 뒤를 따라 걸어갔고, 따뜻한 기운이 내리는 저녁 식탁에 가 앉아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푹 파묻었다. 스미스 할머니는 벌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선화 알프레도 다섯 그릇을 내왔고, 그 와중에 빅 매킨토시와 애플블룸, 애플잭이 푹신한 스툴을 질질 끌며 꺼내다 앉았다. 맛있게 요리된 저녁식사의 냄새에 취한 스쿠틀루는 자기가 막 의자를 끌어다 앉으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빅 매킨토시의 무표정한 얼굴이 보였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러지 말라는 듯 발굽을 흔들었다. 스쿠틀루는 눈을 깜박이며 자기가 막 앉으려고 했던 자리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쪽 자리에는 먼지가 잔뜩 앉아 있었으며 소박했다. 그 자리 위에 유일하게 장식된 거라곤 잘 보존된 오렌지 꽃으로 가득한 꽃병 하나뿐이었다. 그 자리 바로 옆에는 한 쌍의 구식 편자가 십자가형으로 놓여 그 주인을 추모하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얼굴이 잔뜩 빨개져서는 빅 매킨토시를 향해 미안하다는 듯 몸을 움찔했다. 새빨간 수말은 테이블 반대편에 놓아 둔 손님 접대용 스툴을 향해 괜찮다는 듯 발짓하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재빨리 그 의자에 달려가 앉았고, 순간 자기는 거의 애플 집안의 일원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고,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전에, 이렇게 답답하고 갇힌 느낌을 받아 본 적 있었다. 하모니 호의 선실은 누군가 끼적거릴 만한 자그마한 공간을 남겨두었다. 하모니 호 안에서, 스쿠틀루는 비행선을 몰았고 룬스톤을 조각했으며 공주의 일기를 읽었고 그물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답답하고 좁은 곳에서 살아가는 데는 굳이 불편한 것이 없었다. 그녀는 살아서 그 선실을 이용할 수 있는, 이용해야만 하는 유일한 산 포니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살아 숨쉬는 입김과 음식의 냄새로 가득한 이 저녁 식탁은, 마치 사방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당장 내장을 뽑아내 버리려고 드는 하피들에게 둘러싸였을 때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마지막 포니는 세월을 보내며 식어 버린 자기의 차가운 어깨 이외에, 무언가 다른 걸 받는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무언가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이런 '관습적'인 식습관에도 전혀 길들여져 있지 않았다. 애플가 포니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방긋 웃고, 정중한 식사 전 감사 기도를 중얼거리자마자 건초와 꽃으로 요리한 매운 음식에 얼굴을 처박고 먹기 시작하는 모습을, 스쿠틀루는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저녁 식탁을 무슨 하나의 커다란 여물 통이라도 되는 양 얼굴을 처박고 맛있게 먹는 통에 잘 요리된 귀리와 맛있는 흰 꽃잎이 조금씩 뚝뚝 떨어졌다. 혹시라도 스쿠틀루가 자신의 희미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죄다 잊어버렸다면, 아마 이 광경을 보고 아주 메스꺼워했을 것이다. 그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혼란스러움의 진원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깨달았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스쿠틀루의 식사는 버섯 스튜와 질퍽한 고기 죽 둘뿐이었고, 비행선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비행선 내부에 있던 식기에 철제 손잡이를 만들어 달았으니까. 그러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보관함에서 음식을 꺼내 올 때나, 항로에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이나 해적이 강습해 올 때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 데나 휙 던져 두고 재빨리 조종석으로 달려가 항로를 수정할 수 있었으니까. 스쿠틀루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혼자였고, 그 때문에 포니답게 식사를 하는 게 무엇인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건 분명 좋은 게 아니었음에도 스쿠틀루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스쿠틀루는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눈길을 돌려 애플가 포니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흘끗 보더니 자기 눈 앞에 놓인 음식 담긴 접시를 멍하니 응시했다. 수선화 알프레도가 맛있을 거라는 것은 알았다. 그녀의 온 감각이 곤두서서 이 요리에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배가 고프다, 고 말하지 않는 그녀의 '투영'된 소화 기관에게 수선화 알프레도를 강요하는 일은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식사란 수면과 마찬가지인 일이었고, 이 모든 것은 모두 하루 종일 끊임없이 사과를 턴 '하모니'의 비정상적인 체력과 연관된 일이었다. 사실, 스쿠틀루가 목욕을 한 것도 다 애플잭이 고집을 부려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었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는 저 네 포니들을 그녀는 더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고, 커다란 황동제 크레인이라도 되는 양 입을 열고는 한 무더기의 꽃과 건초를 입에 물었다. 접시가 달가닥거렸다.
수선화 꽃잎은 입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빨에 씹히며 아삭거리는 꽃 줄기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독특한 손맛이 살아 풍부한 맛에 녹아 들어갔고, 거품 방울처럼 혀 위에 올랐다. 그 순간, 엄청난 양의 엔돌핀이 분출하는 것이 느껴졌다. 스쿠틀루의 눈은 거의 뒤집어져 있었다. 전에 한 입 깨물어 먹었던 사과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맛이었다. 이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기쁨이 온 몸에 맹습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전에 음식을 먹으면서 이런 기분을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순간 스쿠틀루는 '살기 위해 먹는다'가 아닌 '먹기 위해 산다'가 무슨 뜻이었는지, 비로소 기억해냈다. 슈가큐브코너의 머핀 뷔페를 활보하는 듯한 묘한 즐거움이 척수를 타고 오르내리며 춤추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생각에 조금 깊게 잠겼고, 그러다 보니 자기가 열심히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스쿠틀루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입안 가득히 음식을 물고 고개를 들었을 때, 자기를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네 포니의 얼굴을 보았을 때였다.
"시상에, 시상에나. 캔틀롯 왕궁서는 왕궁비서관덜을 쫄쫄 굶기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안 그라노?" 라임색 솜털을 한 나이든 암말이 소리 죽여 웃으며 말했고, 다 알겠다는 듯 눈을 찡긋했다. 그 모습은 스쿠틀루만 볼 수 있을 듯싶었다.
"아가씨 너무 흠잡지 마소, 할매." 애플잭이 입안 가득 음식을 물고 씹으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렇게 일을 했으니, 저렇게 묵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까는. 뭣보담도, 할매 알프레도가 이래 맛나지 않심꺼?"
"예이! 하모니 언니요, 언제 몇 번 더 와 줄 수 있어요?" 애플블룸이 트림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매주마다 먹어도 안 물릴 것 같아요!"
"얼래, 아가. 그렇게 되모, 특별한 날에만 묵는다는 그 의의가 없어지지 않긋나?"
"다른 포니덜 좀 자주 부르자, AJ! 언니야가 사과 다 털고 난 다음에, 응? 내는 우리가 무슨 바위 농장의 그 고독한 포니덜인 줄 알았다. 맨날 일만 허고, 놀지를 않는 갸들 말야!"
"수확 다 끝내자마자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그리 할 끼다. 아주 축하헐 기 한 무더기로 쌓였구마. 내 말은, 올해는 참 이상허단 말이제."
"애플잭, 너거 말이 백 번 맞구마."
"그~려!"
"왜 그거 있잖슴꺼. 만약 나가 올해 혼자 턴 사과를 바구니당 한 개씩만 묵었어도 래리티랑 거의 비등비등할 만치 이뻐졌을 깁니더."
"AJ, 그러고 보니께 말이여. 포니빌서 가장 삐까번쩍헌 포니가 요새 머 하고 지내는지 아나? 나가 포니빌 시장에 갈 때마다 래리티가 안 보여서 허는 소리여."
"아, 머 평소랑 똑같심더, 할매. 그 옷 쪼가리 가지고 난리지라. 캔틀롯서 왔다는 그 패션 비평가라던가 허는 호이티 토이티(Hoity-toity, 형용사로 거만하다는 뜻이 있음)라고 했던가, 그 아저씨가 주문한 것 때문에 피 터지게 일하고 있을 깁니더."
"여 봐라, AJ. 포니 이름을 지대로 모른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막 부르는 기 예의가 아니라는 기는 니도 알지 않나?"
"할매요, 아닙니더. 그게 그 아저씨 이름입니더. 호이티 토이티 맞심더."
"캔틀롯 엘리트 이름이 그게 뭐에요? 참 말도 안 되네요! 있잖아요, 셀레스티아 공주님께서 세우신 왕립 영재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나온 남자 포니는 그럼 'Dr. 후브즈' 겠네요!"
"어... 흠흠... 하모니 아가씨,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애플잭이 알프레도를 다시 한 입 물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캔틀롯 왕실비서관인 아가씨가 돌아댕김서 보고 듣고 헌 걸 좀 들려 주실 수 있겠습니꺼?"
"어, 음..." 스쿠틀루는 몸을 꿈지럭거리며 한 덩이 귀리를 삼키고는 초조하게 웃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들려 드리기에는 그리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서요."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식탁 건너편의 라임 색 암말을 슬쩍 쳐다보았다. 회색이 조용히 따뜻한 방 한가운데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기 무슨 말씀이세요?" 애플블룸이 앉아 있던 스툴에서 거의 튕기듯 풀쩍 뛰며 말했다. 활짝 웃는 얼굴 위에 묶어 둔 머리리본이 흔들렸다. "전에 왕실 직무를 수행하는 페가수스는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거든요! 공무를 수행하시면서 틀림없이 진짜 멋있고 끝내주는 걸 여러 번 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일을 하러 들렀던 곳은 나랑 마찬가지로 그리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단다." 스쿠틀루가 말했다. 그녀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반쯤 중얼거리는 투로 덧붙였다. "내가 한 일도 마찬가지고."
"혹시 바다뱀 본 적 있어요?"
"어..." 스쿠틀루가 당황한 듯 물었다. "얘, 한 번만 더 말해 줄래?"
"스위티벨이 그러는데, 이퀘스트리아 대협곡을 이루는 산 너머에는 바다뱀이 아주 득시글거린다고 그랬거든요! 걔 말에 따르면 그 바다뱀 이름이 '레비아탄'이라(혹은 리바이어던) 그러더라고요. 걔들 덩치가 워낙 커서 일반적인 호수나 강에서는 살지 못한다고 그랬어요!"
스쿠틀루는 빙긋 떠오르는 웃음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 스위티벨이란 친구는 마치 걸어다니는 사전 같구나."
"아뇨. 제가 보기엔 그냥 다른 포니들한테 인상을 남기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걔 언니인 레이디 래리티처럼 고상하게 보이려고 그러는 것 같고요. 걔는 정말 자신감이 없다니까요. 제 다른 친구인—"
애플잭이 애플블룸의 말에 끼어드는 순간, 스쿠틀루의 심장은 순간 멎는 것 같았다. "너거 큐티마크 크루세이더 애들 갖고 떠드는 건 이만허면 됐다, 애플블룸. 나중에도 할 수 있잖나."
"아우우우— 그래도 언니야! 큐티마크 크루세이더으 목표는 세계로 나아가서 큐티마크를 얻을 만한 일은 뭐든지 다 해 보는 기다! 나가 보기에는 여그 하모니 언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애플잭이 다시 말에 끼어들기 전에, 황동색 페가수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참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지. 애플블룸, 너는 그런 훌륭한 일을 같이 할 좋은 친구들인 큐티마크 크루세이더 친구들도 둔 것 같구나. 하지만, 굳이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고 그렇게 기를 쓸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지금 여기에도 충분히 멋지고, 놀라운 일들로 가득하니까."
"무슨 말이에요, 하모니 언니?" 애플블룸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애플잭도 눈썹을 치켰다. 조용히 알프레도를 먹던 빅 매킨토시와 스미스 할머니도 음식을 반쯤 씹다 말고 스쿠틀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쿠틀루는 따뜻한 시선의 스포트라이트를 맞으며 두 발굽을 식탁 위에 포개어 올려놓고 한숨쉬듯 숨을 내쉬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꽤 많은 것을 봐 왔어요." 그녀는 말하면서도 회색으로 뒤덮인 자기 마음에서 조심스레 단어를 골라 가며 말했다. "대지에, 적어도 수십만 년은 되었을 법한 아주 깊은 화강암질의 골이 패여 있더군요. 그 모든 것은 한 여신의 마음 속에 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변덕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습니다. 저는 캔틀롯 고고학자들이 재어 보기에도 너무 높은 산 몇 군데를 돌아다녔어요. 산은 정말 엄청나게 커서 말 그대로 자연이 낳은 괴물과도 같았어요. 포니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또 우리가 에포나 여신의 눈에는 그저 조금 반짝이는 반점과 다를 바가 없는지, 그걸 깨닫게 해 주더군요. 애플블룸, 나는... 나는 황무지를 봤단다. 수백,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황무지를 봤단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포니 문명의 불멸의 얼에 스민 그것밖에 없었어. 세상은 아주 널따란 곳이란다. 세상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조각만이 남으면 순식간에 답은 명확해지지. 발자국, 네가 만들고자 하는 그 발자국은 네가 사랑하는 이들과... 영원히, 영원히 잊지 못할 이들의 영혼에 새겨지는 거라는 걸, 그들의 발자국은 너의 영혼에 새겨지는 거라는 걸. 설령 그들이 산 아래에 잠든 거친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세상은 넓단다. 또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 하지만, 나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세상은... 세상은 언젠가 아무것도 없이 텅 비게 될 거야..."
스쿠틀루의 입술은 꾸물거렸다. 그녀는 순간 두려움에 떨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산 포니들의 눈에 어린 온기는 조금 희미해져 있었다. 그들이 그녀를 바라봄과 같이, 그들의 얼굴은 조금... 창백해져 있었다. 마치 트롤 놈들에게 에워싸인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지, 그녀는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페가수스는 말을 마쳤다. "하지만 여길 좀 볼래? 여기엔 공허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지. 애플블룸, 네가 원하는 바깥 세계를 꿈꾸고, 또 생각하는 건 좋단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어.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단다. 수천 번 집을 떠날 수도 있고, 수십만 마일을 돌아다닐 수도 있을 거야. 땅으로 가거나, 날아가거나 말이야. 하지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거란다. 애플블룸, 너희 가족들이 사는 이 멋지고, 아름다운 집, 여기 이 집은 분명 좋은 안식처란다. 네가 온 이퀘스트리아와 그 너머를 돌아다니더라도, 여기에서만 네가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을 거란다. 다른 곳에서는 그저 공허할 뿐이지." 스쿠틀루는 오렌지색 암말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해 준 것만큼, 또 당신에게 돌려주는 대지가 다른 데 또 있나요?"
애플잭은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식탁 너머에 앉아 있는 나이든 암말도 활짝 웃어 보였다. 반은 흡족한 듯한 웃음이었고, 나머지 반은 이해한 듯한 웃음이었다.
"머, 그래도 저는 언젠간 레비아탄을 꼭 보고 싶어요!"
"애플블룸! 아가씨 말 멀로 들었나!" 스미스 할머니는 눈을 돌려 스쿠틀루를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아가, 좀 더 주까?"
스쿠틀루는 할머니의 시선에 발그레해지며 대답했다. "조금만 더 주세요, 스미스 할머니."
"애플블룸이 허는 반찬 투정이 대충 이해는 갑니더." 라임색의 포니가 스쿠틀루에게 걸어가 한 숟가락 크게 건초와 수선화를 퍼 주는 동안 애플잭이 혼잣말했다. "내일 밤부터는 지가 허구헌 날마다 만들던 그 구식에, 별 맛도 없는 밥을 다시 먹게 생겼심더. 아, 하모니 아가씨는 그기 별로 좋지는 않을 깁니더. 울 할매처럼 양념을 잘 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래도 지가 만든 식사는 몸에 좋다고 자부합니더!"
"그리고 맛도 없제!" 애플블룸이 얼굴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
"어우, 조용히 하그라!" 애플잭이 얼굴을 찌푸리며 두 볼을 뿌루퉁하게 부풀렸다. "여기 시금치랑 샐러리는 대체 왜 남긴 기가?"
"'포니는 사과만으로는 살 수 없다.'" 스쿠틀루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쓸어 먹으며 조용히 생각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주워 들은 것 같긴 한데, 그것까지 말해 드리기엔 너무 피곤하네요." 스쿠틀루는 다시 거짓말을 했다.
"그거 참, 밤이 우리더러 당장 침대로 기어 들어가라고 눈짓하는 기랑 아주 딱 어울리네예. 오늘 낮에 쓴 힘보덤도 두 배는 씨게 잡아땡기고 있으니 말입니더."
"스탈리오니바리우스를 좀 틀어 줄 수도 있는디." 스미스 할머니가 부드러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안에 담긴 애절한 분위기는 스쿠틀루만이 눈치챌 수 있었다. "그라모 편안허게 잠들 수 있을 끼다."
"할매요, 됐심더. 음악 틀어준다는 기는 고맙긴 헌디, 벌써부터 디비져 자기는 싫심더. 아시다시피, 뭐가 언제 여기 과수원을 활보하고 다닐지 모르잖아요."
"AJ, 또 손님 오는 거야?" 알프레도에 버무려진 건초의 가느다란 줄기 위로 애플블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포니들이 그들 자신의 정직한 본성을 배신하기 전에, 스쿠틀루는 먼저 선수를 쳐 말했다. 스쿠틀루의 말은 따뜻하게 반짝이는 벽난로의 불길 위에서 춤추었다. "그러고 보니까, 애플잭. 당신 음악 취향은 어떻게 되나요?"
"흐으으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심더. 트와일라잇이랑 래리티는 항상 뭔가 음반을 가지고 수다를 떨지만 말입니더. 좋은 교향곡을 듣고 싶어하는 거는 유니콘들으 특징인 거 같십니더. 갸들 머릿속에는 무슨 조음기라도 하나 들어가 있는 것 같다니께요. 하모니 아가씨는 어떻십니꺼? 아가씨 음악 취향은 어떻십니꺼?"
"현악을 좋아해요. 가끔씩은 바이올린도 좋지만, 거의 대부분 첼로를 듣죠." 스쿠틀루가 빙긋 미소지었다. 그녀는 말하며 스미스 할머니를 잠시 흘끗 쳐다보았다. "아주 아름답지요. 조금은 애절하기도 하지만, 그 스스로 환희를 품고 있기도 하거든요."
"아, 그러십니꺼? 그러고 보니께 지는 덜시머(두 개의 나무망치로 철현鐵絃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타악기)으 현 울리는 소리가 참 좋은데 말입니더."
"아하, 그러세요?"
"그리고 여그 빅 매킨토시는 때때로 리라 음반을 사러 마을에 들릅니더. 안 그라노, 오빠야?"
"허허허..." 수말은 음식을 씹으면서도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려."
어린 여동생과 언니가 명랑하게 깔깔대며 웃었고, 그 둘의 웃음은 부엌 한가운데에서 서로 섞이며 하나의 노래가 되었다. 빅 매킨토시는 그러는 동안에도 따뜻한 숨을 내쉬며 조용히 입에 물고 있던 음식을 우물거렸다. 스미스 할머니는 그 광경의 가장자리에서 맴돌며 지켜보고만 있었다. 스쿠틀루, 마지막 포니는 과거의 찔린 상처와 다가올 외로움에 숨가쁜 채 자리에 앉아 접시에 담긴 음식을 모조리 입에 쓸어 넣었다. 공포와 혼돈의 군단이 내뱉는 숨 한 줄기와 거친 움직임이 애플 가족의 집에, 그 순수한 마음을 깨뜨리며 덮쳐오기라도 하는 양. 그녀는 이 잠깐의 순간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트롤 놈들이 여기 관심을 두는 동안, 재앙이 다가오고 있는 동안, 엔트로파 공주가 이 모든 것을 벌어지게 한 동안, 여기 이러고 앉아 있을 정도로 스스로가 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용기를 다시 찾을 때까지. 그녀가 처음 저녁 식탁에 다가와 앉을 때와 마찬가지인 무기력함으로, 그녀는 주변을 맴돌았다. 방랑하던 어린 망아지는... 안식처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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