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Pony 번역은 2013년 중반 즈음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포게에서 BgP 번역을 시도한 사람들이 몇 명 있기는 했었어요. 연재 중이었던 BgP 만화 버전을 번역하시는 분도 있었고, 원문을 번역하려는 시도도 있긴 했습니다. 저는 EoP를 개판으로 옮기고 있었고요. 그러던 중, Google Docs로 BgP를 번역하려고 한다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죠. 어느 날 문득 기억나서 들어가 보니, 조금도 진전이 된 게 없더라고요. 그 꼬락서니가 워낙 한심스러워서 그냥 챕터01을 제가 옮기기로 했죠. 그렇게 EoP로도 모자라 BgP라는 짐까지 스스로 떠안는 꼴이 되었어요.
2014년 입대 직전의 번역 속도는 끔찍할 정도로 느렸습니다. BgP 챕터05를 옮기다가 제 영어 능력의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에, 군대 간다는 핑계로 미루고 늦추고 하고 있었죠. 그리고 입대를 핑계로 한 번역 중단이 이루어졌습니다.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하고 다시 학업을 시작한 즈음에는 MLP : FiM의 기억이 거의 사라져 있었어요.
다시 MLP : FiM 팬픽션 번역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EoP 때문이었습니다. 이제쯤 완결됐겠지, 하고 들어가 보니까 연재 중단을 해 버렸더군요. 대신 4막 Dredgemane 이후의 스토리 전개를 공개해 둔 게 있었는데, 이거라도 해서 그만둔 EoP 번역을 마무리하는 게 역자의 도리가 아닐까 싶어서 깨작깨작 옮기다가... 이왕 하는 거 기존에 해 놨던 것까지 다 올려놓고 창고처럼 만들어 두자 싶어 옛날 번역문을 옮겨둔 것이 블로그 개설 초기의 일입니다. 그때가 19년 9월 말쯤일 거에요. 오랫동안 쉰 번역을 재개하는 것이다 보니 손을 좀 풀 게 필요했는데, 그게 Rated Ponystar 선생의 글들입니다. 정말 미안한 일이죠. 나름대로 열심히 쓴 글을 연습용으로 소비했다는 게 좀 그렇지만, 나중에 슥슥 보다 보니까 이제 연습용으로도 옮기기 싫다 싶어서 그냥 그만뒀습니다.
그리하여... 2014년 입대와 동시에 중단되었다가 2020년 1월 8일 챕터05, '산업' Part I로 복귀하며 재개한 Background Pony의 번역이 끝나게 된 것입니다. 번역 재개하고 나서 2년이 조금 더 걸린 셈이지요. 이 시간 동안 전에 옮겼던 Ch.1~4도 처음부터 다시 옮겼으니, 2년 정도 기간 동안 BgP를 다 옮겼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제가 몹시 불쾌해하는 짝사랑 얘기 때는 도저히 번역이 손에 안 잡혀서 몇 달씩 그냥 날리기도 했으니까, 실질적인 시간은 2년 안으로 끊은 것 같습니다. 솔직한 감상은, 그냥 무덤덤합니다. 취업 성공했을 때도 그냥 무덤덤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줄은 몰랐네요.
다 고사한 MLP : FiM 팬덤에서 어지간히 재미있고 영향력 있는 팬픽션 번역이 아닌 이상 큰 관심을 받긴 어려운 게 사실인데, '백그라운드 포니를 번역한다'는 사실 하나로 과분한 관심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번역을 마치고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로 읽기 편하도록 pdf파일을 만들어 배포할 예정이라, 다시 제게 올 관심은 사그라들겠지만 그것이 순리겠지요. 제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고요.
후기 외의 이야기도 한 가지 해야겠습니다. 엔딩 시퀀스에 불만을 가진 독자들이 꽤 있었던 관계로, 저도 시간이 되면 대체 엔딩을 써 볼까 기획은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나마 써둔 것도 있었고요. 엔딩 시퀀스를 옮기며 생각해 보니, 그건 이 글 속의 라이라 하트스트링스를 모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더군요. 그 죽을 고생을 한 캐릭터를 그대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내버려 두는 게 더욱 모욕이 아닌가 싶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Background Pony에서 라이라는 굉장히 일관적인 선택과 결정을 내립니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희생하는 캐릭터죠. 짝사랑이 될 수밖에 없는 자기의 연심을 내버리기도 하고, 궁창 너머의 세상을 보고 와서는 자기가 그 지옥에서 세상을 지키겠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2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라이라 하트스트링스가 영위하던 모든 것들이 부서진 것도 빠뜨릴 수 없겠죠. 부모는 이혼, 절친은 절교, 그나마 같은 동네 사는 절친은 자기를 모릅니다. 자기가 세상에 원래 없던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의 세상은 무너졌지만,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됨으로서 타인의 세상을 되살릴 수 있음을 알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인 것이죠. 마지막에는 자기의 구원을 내버리고 세상의 존속을 선택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가운데, 혼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립무원의 황야로 들어가 스스로를 거기 못박은 캐릭터에게 다른 결말을 선사하겠다고 하는 것 또한 모욕이지 않을까요. 라이라 하트스트링스의 마지막 선택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한 게 아니었습니다. 두 가지 선지만을 주고 고를 것을 강요한 자야말로 오히려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었으니 말입죠.
좋았거나 싫었거나 부담스러웠거나 가벼웠거나, 2년여의 시간을 함께 보낸 라이라 하트스트링스의 일대기를 마무리지은 뒤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가끔 라이라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어서 그랬는지 잘 놓아지지가 않는군요. 세상에 제 번역을 던져 놓는다는 생각으로 번역을 마쳤던 것 같은데, 마음은 아직 그럴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노트북 교체 후 최종 배포본을 작업할 생각인데, 그때는 정말 라이라를 놓아주고 새로운 벗 퍼피스마일스를 데리고 먼 길을 갈 수 있을까요.
기나긴 2년 동안 Background Pony를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제 블로그를 드나들며 하찮은 번역이나마 읽어 주시고, 또 댓글을 달아 의견을 개진해 주셨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이 블로그는 BgP 번역의 장이 아니라 오래 전의 쓰레기같은 번역문을 모아 놓기만 한 곰팡내 나는 창고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3월 20일, 어느 한 골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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