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포니빌 어느 언덕 벤취 위에 앉은 채로 숨이 끊어진 행려병자의 죽음은 산보를 나온 어느 부부의 신고로 알려졌다. 포니빌 경찰이 시신을 인계받아 시립병원으로 옮겼다. 늙은 의사는 오래된 만년필을 들어 사망진단서에 서명했다. 포니빌 경찰은 시청으로 사건을 이관했다. 시신과 함께 발견된 두꺼운 공책은 거의 비어 있었다. 반쯤 곰팡이가 핀 잉크로 적어 내려간 글 몇 줄에는 시신이 아직 살아 있었을 때 어떤 이름을 썼고, 출신지가 어디며, 가족은 누가 있는지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 홀로그램 처리된 신분증 카드는 있었으나, 사진과 이름을 비롯한 각종 정보들은 기입되어 있지 않았다. 시청은 이퀘스트리아 데일리와 지역지에 조그맣게 광고를 내 시신의 연고자를 찾기 위한 공고를 게재했다. 닷새가 지나도록 연락은 오지 않았다.
시청은 행려병자를 무연고자로 확정했다. 시립병원에 공문을 보내 무연고자 장례 용역 대행업체에 시신을 인계하도록 요청했다. 피곤에 절어 보이는 사내 하나와,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여자 하나가 관짝 하나가 겨우 실릴 만한 수레를 끌고 도착했다. 영안실에서 오랫동안 얼었던 시신은 상온에서 금방 녹았다. 몸에 엉겼던 성에가 녹으며 죽은 살 깊이 스몄다. 시신이 화장터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부패가 시작되었는지 파리가 꼬였다. 남자와 여자가 관을 끌어내려 가마 속으로 집어넣었다. 시신은 축 늘어졌으나 무겁지는 않았다. 뼛가루가 얼마 남지 않아서 관리인은 솔을 들고 안에 묻은 가루까지 털어내 유골함에 담았다. 포니빌을 떠났던 시신은 다음 날 유골함에 담겨 포니빌 시립추모공원 한켠에 마련된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묘소 관리인이 유골함을 옮겼고, 시청의 초임 직원이 동행했다. 시청 직원은 전임자의 아들인 작은 위니가 유골함을 놓은 위치와 일자를 기록했다. 앞으로 5년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유골함을 꺼내 에버프리 숲 초입에 유골을 뿌릴 것이었다.
스윗 애플 에이커 근처에서 놀던 학생들이 버려진 통나무집을 발견했다. 과일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었고, 채소를 길러 먹었을 법한 텃밭이 있었다. 사과나무는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것인지 가지가 제멋대로 뻗치고 열매가 잘았다. 땅에 떨어진 사과 몇 알이 꺼멓게 썩었다. 초파리가 날았다. 텃밭에는 채소를 길러 먹은 흔적은 없고 잡초만 자라고 있었는데, 어떤 잡초들은 어른 키보다도 크게 자라서 하늘을 가렸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분명했다. 학생들이 통나무집 문을 슬쩍 밀자 녹슨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썩어서 문드러지기 시작했는지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목조 침대 위로 베갯잇 대신으로 쓰기라도 한 듯,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누렇게 변색된 벨벳 천쪼가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크기와 형태로 미루어 보니, 커다란 리라 하나 정도를 담고 다닐 만한 가방 같았다. 남루하고 추레한 실내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운 물건이 다 해진 채 굴러다니는 꼴을 이상하게 여긴 학생 하나가 코를 움켜잡고 벨벳 쪼가리를 집어들었다. 머릿기름에 찌든 벨벳은 갈고리로 콧구멍 속을 찢어발기는 듯한 냄새를 풍겼다. 학생은 헛구역질을 하며 집어들었던 것을 팽개쳤다.
한켠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학생이 창가에 던져 놓다시피 널어 놓은 걸레 조각 같은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벨벳 가방과 마찬가지로 꽤나 정성들여 짠 직물이었다. 얼기설기 기워 놓은 꼬락서니와 때를 타서 시꺼멓게 변해 버린 외형 탓에 걸레로 오인했으나, 처음에는 스웨터로 기능했던 것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누가 와서 보더라도, 노숙자나 행려병자가 거점으로 삼은 폐가로밖에 생각할 수 없으리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게다가 원래대로라면 이런 식으로 쓰이지 않았을 비싼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제 편할 대로 넝마로 만들어 쓰고 있는 꼴을 보니, 버릇마저 안 좋은 노숙자가 여기 사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학생들은 경찰에 신고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마을을 들락거리며 고가품에 발굽을 댈 정도라면, 밝혀지지 않은 재산 피해는 더 클 것이며, 그런 노숙자를 잡아들이는 데 공헌한다면 가족들은 물론 선생님도 칭찬해 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경찰서에 당도한 것은 두어 시간이 지난 뒤였다. 어지간한 사람은 잘못이 없더라도 꺼림칙하게 여기는 경찰서에, 거의 들이닥치다시피 들어온 꼬마 셋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보던 경찰들은 못쓰게 된 커다란 벨벳 가방에 고급 스웨터가 폐가에 버려져 있으며, 살아 있는 몸에서 분비되는 냄새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제보를 받자마자 출동하였다. 시민의 제보에 즉각적이고 성실하게 반응하고 작동하는 공권력의 아름다움에는, 품위 있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행려병자의 죽음 이후, 이퀘스트리아 데일리에 실린 광고를 본 트와일라잇 스파클 총리대신은 노구를 이끌고 포니빌을 찾았다. 보라색 솜털과 갈기는 대부분 빛을 잃어 푸석해지고, 얼굴은 주름져 있었으나 두 눈만은 내제자 시절처럼 맑았다. 그녀는 포니빌처럼 고즈넉하고 인정 많은 마을에서까지 행려병자와 부랑자가 나타난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실정 때문이라고 머리 숙여 사과했다. 포니빌까지 따라온 기자단은 총리실에서 사과문 전문을 각 언론사에 배포하기도 전에 트와일라잇 스파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받아적어 속보로 보도국에 넘겼다. 시청은 총리실의 움직임과 속보로 날아들기 시작한 신문 조각들을 마을 근처에 들러붙은 노숙자와 부랑자, 행려병자들을 긁어 내어 '적당히' 처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이는 경찰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총리실이 발표한 복지 정책의 개선안과 법령 개정안 등은 금방 잊혔고, 총리가 사과했다는 사실만 남았다. 경찰서장은 최근 분실물 신고 기록이나 주거지 무단침입 사건 기록을 확인할 생각도, 학생들이 가져온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만한 재봉사들의 상호 및 연락처를 문서화할 것을 지시할 겨를이 없었다.
경찰들은 스윗 애플 에이커 근처 통나무집 근처에 잠복 병력을 배치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과수원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애플잭과 애플블룸 자매가 경찰의 협조 요청을 수락했다. 애플잭은 늙었어도 한참 어린 동생인 애플블룸보다 잘 뛰었고, 다리에 힘이 남아 있었다. 애플잭은 통나무집에 관하여, '아버지께서 통나무집을 짓던 방식이다', '특히 저 벽난로와 굴뚝은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라고 진술했지만, 그 통나무집이 언제부터 있었으며 누가 지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매가 아주 어릴 때 부모가 작고하여 저런 곳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고, 남매를 기른 것은 할머니인데 할머니께서도 기력이 쇠하여 많은 것을 알려주지 못했다고 애플블룸이 진술했다. 오두막 내부에서 발견된 벨벳 가방과 스웨터에 대해서는 자매 모두가 모르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자기네들은 하는 일이 흙을 밟고 땅을 갈아 파종하고 수확하는 일인지라 굳이 값비싼 물건을 집안에 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스윗 애플 에이커의 증언에서 얻은 것이 없었다.
오두막 현장을 분석해서 얻어낸 것 또한 없었다. 학생들에게 현장 훼손에 대한 관념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문제되지는 않았다. 오두막은 보존하여야 할 현장이 없이 살풍경했다. 누가 있었다는 사실밖에 확인해 줄 수 없는 물건들을 가지고 경찰들은 부랑자가 아직도 거기 붙어 살고 있는지, 눈치채고 다른 곳으로 옮아갔는지, 근처에 숨어서 경찰의 철수를 기다리고 있을지, 교외 쪽의 민가에 침입하여 빵을 훔쳐멱고 있을지 판단할 수 없었다. 옷장에는 어딘가에서 주워 온 듯한 낡은 옷 두어 벌이 전부였고, 책상에는 트와일라잇 스파클이 총리대신에 취임한 소식이 적힌 오래된 신문 한 부와 부러진 깃펜 두어 개, 뚜껑을 열어 두고 나다녔는지 다 말라비틀어진 잉크 위에 들러붙은 곰팡이만 담긴 잉크병, 강아지나 고양이가 썼을 법한 사료 그릇 두 개만 올라가 있었다. 오래된 신문에서 어떠한 의도도 읽어낼 수 없었고, 부러진 펜과 썩은 잉크는 사용자에 관하여 말해 줄 수 없었다. 있기는 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주인을 찾아 경찰을 인도해 줄 수 없었다. 경찰은 사흘 동안 숨어서 부랑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경찰이 어디를 뒤진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구경하러 온 얼치기 몇몇을 제외하면 오두막에 얼씬거리는 자들은 없었다. 경찰은 부랑자가 이미 다른 곳으로 은신처를 옮겼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종료했다.
수사를 종료한 날, 경찰은 지역지로 보도자료를 전달했다. 신원 불상의 부랑자가 마을 인근을 배회하고 있을 수 있으니, 외출 시에는 반드시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학생들은 가능한 세 명 이상이 모여서 등교 및 하교하는 것을 권장함 등을 운운하는 발표문이었다. 지역 유지인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위시한 자들이 경찰서에 항의문서를 보냈다. 그녀의 문서는 격식이 없었고, 말에 가림이 없었으며 날을 세워서 달려들었는데, 묻고자 하는 내용도, 따지고자 하는 내용도 없어서 답신이 불가능했다. 다이아몬드 티아라의 항의문서는 접수도장도 찍히지 않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경찰은 순찰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계획을 실행했다. 민원의 해결을 바라고 보낸 문서가 아니었으므로, 경찰이 자신의 비분강개에 반응하였다는 생각 하나로 다이아몬드 티아라는 흡족해했다.
수사 종료부터 일 주일 후, 포니빌 시청은 스윗 애플 에이커 인근의 무허가 건물이 부랑자의 거처로 쓰일 수 있고, 이로 인해 치안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 철거할 예정이라면서 현재 당해 건물의 법적 소유권자가 있다면 공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소유권을 입증하는 문서를 첨부하여 보상을 청구하라고 공고했다. 시청은 일 주일 동안 철거 용역을 수배했다. 통나무집은 공고 후 보름 만에 전부 헐렸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통나무집의 목재는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로 삭아 있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목재도 뜯어서 안을 들여다보면 흰개미가 물어뜯어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스 포니들로 구성된 인부들이 통나무집을 해체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구경하던 애플잭은, 저 오두막은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사람을 가림이 없이 헌신하다가 끝내 갈라지고, 비틀리고, 벌레 먹히고, 으스러지고, 으깨지고, 끝내 부서지면서도 마지막 사람을 보살펴 내보낸 뒤에야 허물어진다면서, 저런 사람이 이 나라에 백 명만 있었으면 아비 어미에게 매 맞는 아이들도, 집에 돈이 없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요양원에서 홀로 죽는 늙은이도,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끝내 갈라서는 부부들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랑을 포기하는 젊은이도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곁에 앉아 있던 애플블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애플잭이 돌아보니 동생은 햇살에 젖어 졸고 있었다. 애플잭은 동생을 책하지 않았다.
해체 공사 중 인부들이 지하실을 발견했다.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은 조악했고, 안에 무언가를 보관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목적으로 만든 지하실은 아닌 것 같았다. 지하실은 오두막 안보다도 적막했다. 금속으로 만든 보면대는 녹이 슬어 거의 다 부스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등잔 하나가 깨진 채 굴러다녔다. 의자였던 것 같은 무언가는 지하의 습기를 견디지 못하고 삭아 있었다. 이것이 지하실의 전부였다. 인부들은 물건을 적재하기 위한 지하실도, 유사 시 대피하기 위한 피난처도 아닌 이 기묘한 땅굴을 두고 무의미한 추측을 간식으로 씹으며 해체를 계속했다. 누군가를 납치, 감금하고 고문하기에는 딱 적당한 장소라는 말이 나왔고, 자신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고자 미리 파둔 묘혈이라는 말도 나왔다. 반장은 집주인이 기막힌 음치여서 마음껏 노래를 부르려고 판 땅굴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인부들은 근처에 인가라고는 스윗 애플 에이커 한 곳밖에 없으며, 그나마도 과수가 도열해 있어 산만한 용이 트림하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인부들은 대충 판 땅굴에 흙을 채우고 문을 뜯어냈다.
인부들이 쓸 만한 과수를 뽑아냈다. 이전에 조사 협조를 위해 오두막을 찾아온 애플잭은 아직 살아 있는 과수가 있다면 스윗 애플 에이커가 매입하겠다고 말했다. 오두막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과수의 주인 또한 알 수 없었으므로 애플잭은 과수를 뽑아내고 옮긴 뒤 재식하는 비용만 지불했다. 오두막의 사과나무는 늙고 병든 것도 있었으나, 관리가 미흡할 뿐 아직 싱싱하여 공을 들이면 살려서 쓸 만한 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손자 손녀들에게 나무 돌보는 일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교보재였다.
전임 시장의 딸인 스칼렛 브리즈는 오두막이 철거되기 전과 철거가 완료된 후의 사진을 찍었다. 늙은 몸이 먼 거리를 나다니기 힘들어하여, 마을 사람들의 결혼 사진이나 기념 사진을 찍어 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스칼렛 브리즈는 집에서 신문을 보다가 시청의 공고를 읽었다. 그녀는 문득 오두막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집을 나와 얼마쯤 걷다가 인력거를 타고 언덕을 올랐다. 늙은 사진사의 발굽은 카메라를 고정하기 힘들어했다. 그녀는 삼각대를 설치하고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리며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다가 적당한 구도를 잡고,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인력거꾼은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여자는 사양하는 인력거꾼에게 기다린 시간도 요금에 포함해야 한다며 인력거꾼이 부른 돈의 세 배를 더 쥐여서 보냈다.
인화를 마친 스칼렛 브리즈는 철거를 기다리는 오두막의 사진 한 장을 집어들고 문득 깊이 들여다보았다. 자신에게는 어머니를 증오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던 시절, 여자를 데리고 전국을 유랑하던 방랑 화가의 모습이 문득 오두막에 비쳐 보였다. 그를 따라 전국을 다니던 여로에 끝은 없었고 사내의 늙은 몸에 남은 날들은 많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며 가끔 네뷸러스를 생각할 때마다, 스칼렛 브리즈는 사내의 여로에 끝이 없었던 것은 돌아갈 집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돌아갈 집이 없는 자의 집은 끝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외에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녀는 오두막이 갓 지어졌을 때를 생각했다. 잡초도, 흰개미도 없이 정갈히 관리되어 있었을 오두막을 생각했다. 오두막은 장기적인 정착을 목적으로 설계된 형태가 아니었다. 사과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꾸기는 했으나, 집 전체 넓이와 같은 방 한 칸에 생활에 필요한 세간살이를 전부 몰아넣은 점, 그나마도 넓은 집은 아니라는 점, 직장에 출퇴근하거나 가게를 열러 가기에는 턱없이 먼 거리에 있는 점, 인가가 드문 곳에 집을 지은 점, 농지를 관리하기 위한 임시 거처라고 하기에는 농지가 협소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오두막은 길어 봤자 2년 정도 머무를 작정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였다. 저 오두막은 하루 해가 지고 돌아오기 위한 곳이 아니었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잠시 비바람을 피하는 곳이었겠구나, 오두막의 주인은 애초부터 부랑자나 다름없었겠구나...... 스칼렛 브리즈는 혼자 앉아 벽면을 쳐다보았다. 작별 선물로 네뷸러스가 준 그림 한 점과 오두막 사진을 번갈아 보며 여자는 사내를 연민했다.
오두막이 있었던 자리에 몇 차례의 비가 지나간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잡초가 피고 고라니가 꽥꽥 짖었다. 포니빌 경찰은 부랑자가 마을을 이미 떠났다고 결론지었다. 지리멸렬한 수사 끝에 아무렇게나 보관되어 있던 행려병자의 유품인 노트에 적혀 있던 몇 줄 글은 어느샌가 습기를 먹기라도 했는지, 어느 자리에 있었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로 흐려져 사라졌다. 아마도 좋은 잉크를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행려병자의 노트는 아무런 말도 적혀 있지 않은 채, 그저 누렇게 떠 버린 빈 종잇장과 짓눌려 으스러진 모서리만 남은 고물일 뿐이었다. 아무렇게나 적당히 처분하라는 지시를 받은 순경은 퇴근길에 문득 무연고 납골당을 찾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납골당 관리인은 유리문의 자물쇠를 풀고 행려병자의 노트를 유골함 옆에 꽂아둘 수 있게 해주었다. 이름도 고향도 가족도 누가 알아 주는 업적도 없이 떠난 자의 묘비는 아마도 그러해야 할 것이라고, 관리인은 혼자 생각했다.
행려병자가 세상을 떠난 봄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이 가을이 되었다. 어머니의 묘소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 스칼렛 브리즈는 오두막이 있던 공터를 다시 찾았다. 사진을 찍고 거의 일곱 달이 지난 뒤였다. 빛나는 초록으로 하늘을 찬사하던 잡초들은 기력이 빠져 누렇게 물들었고, 함께 늙은 사마귀가 풀 위에서 양 발을 치켜들었다. 사과나무가 있던 자리와 오두막이 있던 자리와 지하실이 있던 자리와 텃밭이 있던 자리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듯 적막했다. 길이란 그런 것이었으므로, 스칼렛 브리즈는 그 적막이 슬프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오두막의 주인과 네뷸러스가 닮았다고 생각하며 스칼렛은 챙겨 온 돗자리를 펴고 앉아 공터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일러두기
이 글은 SS&E의 Background Pony 최종장 Ch.20 Denouement 이후의 일을 역자가 상상하여 적은 3차 창작일 뿐, 결말을 바꿔 쓴 것이 아니다.
번역문이 아님에도 여기에 적는 것은, 사족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BgP의 3차 창작 중 어느 하나로만 읽혀야 한다.
이 글은 오로지 BgP에 입각하여 쓴 글이므로, 원작 애니메이션인 My little Pony : FiM의 설정과 상이하다. 아마 그 상이함 안에 라이라 하트스트링스의 구원이 있든지 없든지 할 것이다.
쓰다가 지쳐서 급히 마무리지었다. 잘 된 글이라고 할 수 없다. 더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을 때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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